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옷 안 입겠다고 떼쓰는 조카를 30분 간 달래어서 드디어 외출한 우리가 처음 간 곳은 나이키 직원 전용 매장.
직원 아이디로 들어가면 45%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오레건 주 본사의 어마어마한 매장 크기를 설명 들으며 도착한 상하이 지점은, 한국의 조금 넓다 싶은 나이키 매장 하나 만했다. 오빠도 언니도 상하이 지점은 처음 갔는데 그렇게 작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미국 본사는 그보다 10배는 크다고.
조카 녀석을 위한 겨울 점퍼랑 다현 양을 위한 운동화, 큰 시스터 운동화, 큰 조카 야구 모자 구입.
빨간색을 좋아하는 나는 가방 하나 구입! 우리 돈으로 29.400원. 들고 간 돈에서 약간의 여유 발생. 찜해뒀던 니트도 하나 샀다. 우리 돈 32,800원.

오빠가 유행에 안 맞다고 보는 눈이 없다고 뭐라뭐라 했다. 스타일리쉬 어쩌고 저쩌고~~~
사진으로 보니 색이 엄청 튀는구나. 실제로는 이것보다 예쁜데 말이지비...(스타일, 스타일, 스타일....;;;;)
매장을 나와서 인근 네일 아트샵에 들어가는 오빠. 아니 여긴 왜??? 했는데, 뒷문 쪽으로 1달러짜리 dvd가 쫘악 깔려 있는 거다. 오호라! 뒷장사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근데 여긴 오빠가 원한 한국 dvd가 없다. 오빠에게 본 시리즈 3편과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를 추천했다. 배트맨 시리즈를 한 개도 못 보았는데 괜찮냐고 하길래 노 프라블럼~!
개인적으로는 '타인의 삶'을 너무도 강조하고 싶었지만 이 독일 영화 제목이 영문판으로 뭔지 모르겠더란 말씀...ㅠ.ㅠ
다음으로 오빠 근무하는 나이키 회사 방문. 직원은 전체 300명인데 오빠가 넘버 쓰리란다. 호곡! 좋겠다~
사무실에서 오빠가 캐비닛 속에 있던 신발이랑 작은 포켓용 가방들을 더 가져가라고 챙겨줬다. 신발은 조카들이 신기엔 너무 크고 우리가 신기엔 너무 작았지만, 그래도 조카가 자라면 신겠지 뭐. 땡스!
출출해진 우리는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돌아갈 날을 하루 앞두고, 모처럼 제대로 된 식당을 방문했다. 딘 타이펑!
명동점에서 한 번 맛을 보았던 만두 전문점. 93년도 타임지 선정 세계 10대 음식점으로 소개됐다고 하는데, 다른 9개의 음식점은 어디일까나?
메뉴판이 모두 중국어랑 영어로 쓰여있긴 했지만, 그래도 뭐 먹고 싶냐고 좀 물어나 봐주지... 이번에도 오빠가 싹 주문.
새우가 들어간 딤섬이랑, 뜨거운 국물이 들어간 딤섬이랑, 예쁘게 무쳐서 나온 오이랑 땅콩 소스 국수 그리고 마지막에 차가운 코코넛 우유차.


두번째 사진의 저 여인네는 누굴까? 설마 매염방???
오빠랑 새언니도 성룡은 알아보더라. ㅎㅎㅎ
조카가 어김 없이 잠들어서 새 언니가 안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면을 먹기는 힘든지라 오빠가 다 일일이 먹여주었다. 자상하기도 하지. 짠돌이인 것만 빼면은 굉장히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로 보인다. 새언니도 짠순이인 것을 빼면 성격 좋고 명랑하고 나무랄 데가 없다. 둘은 천생연분으로 보인다. 서로의 복이다. 부럽구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디 더 가고 싶은 곳 없냐고 묻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상해임시정부 유적지는 봐야 하지 않을까...하는데 바로 옆에 정말 상해 임시 정부가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우연이!
그래서 내렸다. 입장권을 사는데 여권을 제시하라고 한다. 티켓은 1인당 3천원. 새언니가 중국돈 가져가도 환전하면 수수료 붙으니까 그냥 여기서 다 쓰고 가라고 해서 지갑 탈탈 털어 동전까지 모두 내고 입장. 신발에 비닐 캡을 씌우고 입장한다.






계단이 엄청 가팔라서 손잡이 안 잡으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몹시 작았고 낡아 있었다.(당연하지만.)
사실, 여기서 무언가 대단한 임팩트를 얻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쫓겨다녔던 임시 정부가 대단한 흔적을 남기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피흘리며 고생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라리다. 게다가 떡하니 붙어있는 이승만 사진을 보니 갑자기 막 화가 나고...;;;;
저만큼 사진 찍다가 엄청 무섭게 생긴 여자분께 대따 혼났다. 촬영 금지라고. 표정이 어찌나 살벌하던지, 여권 제시했던 게 생각나면서 잡혀가는 것 아냐? 라는 생각까지도.
나오는 길에 기념품도 팔던데 청나라 복장을 한 인형이 너무 예뻤다. 나이키 매장에서 돈을 다 쓰고 나와서 인형 살 돈은 안 되었는데 새언니가 빌려줄까요? 했다. 살까, 말까 계속 고민하는데 문 닫을 시간이라고 해서 쫓겨났다.ㅠ.ㅜ
조카가 막 잠에서 깼는데 배고플 것 같아서 인근 스타벅스 가서 녀석을 위한 크레페 비스무리한 메뉴를 하나 사고, 새언니의 카페인 없는 음료 한 잔 고르기. 우리 모두 밖으로 나왔는데 어무이 혼자 스타벅스 남아 계셔서 뒤늦게 깨닫고 엄마 찾아옴. 헉, 어찌나 놀랐던지! 근데 한국 매장도 비싸지만 중국 매장도 미국 보다는 비싸다고 한다. 그래도 손님만 많더라. 한국처럼.
오빠가 더 살 거 없냐고 물었다. 지인이 톰과 제리의 '제리' 인형을 발견하면 꼭 사달라고 했는데 제리 인형도 구할 수 없었다. (한국에도 없더라.)
집에 돌아와서 한국 가져갈 짐을 쌌다. 오빠가 나이키 운동화를 많이 줬는데 이게 모두 샘플인지라 우리 식구들 발 사이즈에 딱 맞는 건 없었다. 그래도 주는데 받아가야지(>_<). 조카들이 자라서 언젠가는 신으리!
또 다시 happy feet 이랑 니모를 찾아서를 감상하며 수다 한 판! 우리 사이에 오간 심각한 얘기들은 패쓰!
그런데 시간이 8시가 넘었는데 도무지 밥 먹을 기미가 안 보인다.
새언니는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 아직도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고, 오빠도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떡국 끓이니까 오빠는 두 그릇 해치우더라. 조카도 떡국을 아주 잘 먹었다.
다시 또 시작되는 불꽃놀이 소리를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나니 어무이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쉬시고, 오빠는 한국 dvd 보겠냐고 한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까 좀 더 같이 있을 생각에 보자고 했다. 한국에서 이미 보았지만.
중간쯤 시청했을 때 새언니도 합류. 다 함께 시청. 다 끝났을 땐 역시 새벽 1시. 오빠의 감상은 그저 그랬다고. 새언니 왈, 자막이 아주 형편없지는 않지만 썩 좋지도 않아서 오빠는 이해가 안 됐을 것 같다고. 그래도 여기 와서 본 세 편의 영화 중 타짜가 젤루 낫더라.
굿나잇을 외치고 방에 돌아와서는, 잠자기가 아까웠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가질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시간. 조용한 방, 아늑한 침대를 만끽하며 좀 더 책을 읽었다. 2시가 넘어서 잤나 보다.
아침에 깨어서도 그 기분을 좀 더 느끼려고 책을 더 읽었다.

너무나 말랑말랑하고 로맨틱한, 두근거리게 만드는 책.
아, 이 책을 추천한 다락방님의 설레임이 느껴진다.
아껴보고 싶은 책이었다.
이제 그만 굿모닝을 외칠 때~! 조카 녀석은 화장실에 갈 때도, 옷을 갈아입을 때도 쫓아다니면서 "What are you doing?"을 외친다. 짜식, 귀여운 것!
비행기는 3시 출발이지만 두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하니까 12시 반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했다. 아침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것.
그. 런. 데.
쌀이 없단다. 헉, 쌀이 없다고라? 그래서 아침 댓바람부터 신라면 한바탕 끓여 먹었다. 아, 속 쓰려. 한국에서도 매워서 신라면 안 먹는데..ㅠ.ㅠ(삼양라면 먹어요~) 장이 안 좋으신 오마니 아침부터 설사 작렬하시공...ㅠ.ㅠ
공항까지 가는 동안 조카는 이미 잠들어 있고, 결국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고마움과 아쉬움이 담긴 포옹과 작별인사로 다음을 기약한다.
오빠네 식구들이 가버리고, 공항에 남겨진 우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기념품 샵을 들어갔다. 생애 첫 해외 여행인데, 중국에 다녀왔다는 티가 나는 기념품 뭔가를 하나 사고 싶었다. 역시나 너무도 곱고 고운 청나라 복장 인형이 나를 끌어당겼지만 우리 돈으로 5만원이 넘어가는지라 꾸욱 눌러 참고, 15.600원의 작은 인형으로 만족하기.

(다현 양이 자꾸 눈독을 들이고 있다!)
여전히 시간은 많이 남았고, 아침이 부실했던지라 또 다시 배고픔에 두리번 거리다가 편의점 발견. 소세지랑 음료수랑 비스켓을 구입. 우리나라 소세지가 훨 맛있다.ㅠ.ㅠ
티켓팅을 하니, 안쪽으로는 식당이 있더라. 이럴 수가! 들어가서 먹을 걸...ㅠ.ㅠ
비행기를 기다리는 대기석엔 한국 사람들이 한 가득. 오랜만에 와글와글 한국어를 들으니 정겹다기 보단 시끄러웠다.ㅎㅎㅎ
그리고 드디어 탑승. 이번에는 한국 승무원도 한 사람 타고 있었다. 역시나 반갑!
올 때와 달리 갈 때는 빈 좌석 없이 사람이 꽉꽉 들어차는데 이코노미석이 엄청 좁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밤에 도착해서 못 봤던 구름을 낮이라 맘껏 감상! 그렇지만 복도 쪽 좌석인지라 사진은 찍을 수가 없었다ㅠ.ㅠ
그리고 드디어 기내식이 등장한다. 아, 나로서는 공포였다. 엄마 나 안 먹을래.... 했는데, 메뉴가 올 때랑 다르더라.
옆 라인의 노랑 머리 외국인도 쓱쓱 비벼 먹는 것을 보고는 재도전! 그러나 밥을 한 입 먹다가 도로 뱉었다. 아, 약품 냄새 어쩌란 말이냐....!
그런데 엄마 옆의 창가쪽에 앉은 아주머니는 너무도 잘 드시는 거다. 신기했던지 엄마가 말을 붙였다. 밥 괜찮냐고.
그분 왈, 중국에서 식당을 하고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이 비행기를 타는데 익숙해져서 이젠 잘 먹는다고. 처음 먹는 사람들은 보통 못 먹는다고 하신다. 그렇구나....;;;;
5분 일찍 도착했는데, 한국 시간이 한 시간 빠른 까닭에 5시 40분. 짐 찾고, 리무진 버스 타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8시를 넘기고 있었다.
아, 하도 밥밥밥 했더니 민망하지만, 엄마랑 나는 죽도록 배고팠다. 집에 와서 우리집 표 밥이랑 김치 찌개랑 고등어 한 마리 놓고 밥을 먹으니 이 맛이 꿀맛이구나!
선물 증정식(?)을 먼저 끝냈는데, 언니의 말로는 중국 나이키 매장의 정가가 한국보다 비싸서 직원 할인가가 한국 할인 매장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럴 수가! 엄마랑 내가 바리바리 사들고 온 선물도 맘에 들어하지 않음. (크르릉!)
대청소 한 판과 설거지 한 무더기를 해치우니 어느덧 늦은 시간.
피곤해서 일찍 자고 싶었는데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급작스런 거주 환경의 변화가 심난해서 적응이 안 되고 있음..;;;;
오빠는 자신이 있는 3년 동안에 다른 식구들 모두 다 와서 북경으로 놀러가자고 했는데, 그때는 새로 태어날 조카가 지금 조카 나이 정도가 되어 있을 무렵이니, 동반 여행은 생각보다 힘들지 싶다. 그래도 북경은 몹시 탐이 나는구나. 그렇지만 다음 번 여행은 부디 패키지로...;;;;
그나저나 거기서 생수만 먹었는데 뭔 조화인지 엄마랑 나랑 도착해서 사흘 내리 설사...ㅠ.ㅠ
거창했던(할 줄 알았던) 상하이 여행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로 채운 채 끝이 났다. 5박 6일 일정을 잡은 건 오빠였는데, 2박 3일 정도면 서로 좋았을 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거기서 찍은 사진들을 압축해서 보내줬는데 한글 제목 붙은 파일이 압축인지 못 알아봤는지 사진 못 받았다고 한다. 하나하나 풀어서 첨부해서 다시 메일을 보내야겠다.
참! 잊은 거 하나! 내 전화 로밍해 가려고 했는데 영상통화가 안 되는 전화는 로밍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엄마 폰을 로밍해 갔는데, 거기서 전파가 잡히지 않아서 전화를 한 통화도 못 썼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전화를 켜보니, 그 흔한 광고 문자 한 개도 안 왔더라. 좀 슬펐다는...;;;;
리무진 버스에서 뉴스를 보았는데 웬 희대의 살인범이 잡혀서 나라가 뒤집혀 있었다. 쓰디쓴 기억 하나가 또 저 멀리서 스물스물 떠오른다. 연쇄 살인범 그 놈......
아.무.튼. 숫자 10개 안에서 끝내려고 급 마무리하는 상하이 여행기. 가서 뭐 했어요? 뭐 봤어요? 뭐 먹었어요? 라는 질문에는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나름 인상적이었던 시간들. 오빠가 엄마표 밥을 양껏 먹었던 시간들. 아니 간 것보다는 훨씬 좋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