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작년 8월 달에 첫 장을 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다 읽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고 말았다. 이렇게 챕터 구성이 짧아서 토막토막 읽기 좋은 책은 짬짬이 읽다가 오래 묵히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뭐, 나의 게으름 탓이다. 

모두 합해서 열 여덟 명의 작가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대상이 많은 까닭에 한 사람에게 많은 페이지를 할애할 수 없었지만, 액기스만 모아서 핵심만 얘기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닥 좋아하지 않는, 혹은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에 대한 인터뷰만 책 한 권이라면 그 책을 읽을 가능성이 너무 없지 않은가.  

이 중 2/3는 내가 아는 사람이고, 그 중에서 책까지 읽어 본 사람은 대략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몇몇 분은 앞으로도 그 책을 만날 가능성이 별로 없기도 하고, 몇몇 분은 꼭 만나고 싶다고 책 제목까지 받아 적기까지 했다. 이 사람은 이렇게 공부하고 이렇게 책을 쓰고, 이렇게 사시는구나...하고 감탄은 할 수 있지만, 그게 꼭 닮고 싶은 사람은 아닌 까닭에 평가가 박해질 수 있다. (그 사람이 공병호 씨라고 말하면 좀 거시기한가???) 

다양한 분야의 글쟁이들을 인터뷰 했지만, 인문학 분야에서, 미술 분야에서, 역사 분야에서 등등... 분야가 겹칠 수 있기 때문에 앞의 분에 관한 내용을 쓰면서 '최고의 저술가'라고 해놓고, 뒷 사람도 최고의 저술가라고 평가하는 내용이 곧잘 나온다. 어쩌겠는가. 누구는 2인자라고 쓰긴 힘들지. 나름의 차이와 다양성이 있으니 그 정도는 각자 알아서 새겨 듣자.  

국문학 저술가 정민 교수님. 

성실한 글쟁이시다. 동시에 지독한 지식탐구가이기도 하다. 다른 어떤 취미보다도 공부하기를 더 즐겨하는 학자라니, 천성이며 운명이며 팔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덕분에 대중들은 그가 쏟아놓은 결과물들로 지식의 달콤함을 함께 맛본다. 고마운 일이다. 파일이 꽂혀 있는 회전 거치대가 인상적이었다. 그의 아이디어 싹들이 모여 있는 곳. 많은 인터뷰이들이 각자 저만의 메모 보관법을 갖고 있던데,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들을 얼마나 성실하게 잘 모아두고 활용하는가에 따라서 연구 성과가 달라지는 듯하다. 새겨들을 일이다. 정민 교수님은촌각의 시간도 아껴서 알뜰하게 사용하는 경제적인 사람이다. 21세기의 다산 정약용이랄까. 어머. 성씨도 같네. 정약용과 정민! 정민 교수님의 책은 읽은 것은 평범했고, 아직 읽지 않은 책 중에 소장하고 있는 책들은 평가가 썩 훌륭한 것들이다. 조만간 빨리 만나고 싶다.

글 잘 쓰는 팁이 인상적이다. 형용사와 부사를 줄이고 -이다. 형 어미를 쓰되 강조할 때 '-있다'와 '-것이다'를 쓸 것. 거품을 들어내라는 말. 김훈의 글쓰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전혀 염두에 둬본 적이 없는데 내가 쓰는 글들이 어떤 형태로 읽히는지 점검해보고픈 욕구가 생긴다. '낭독'을 활용해서 잘 읽히는지 짚어본다는 것은 꽤 효과적으로 들린다. 언젠가 나도 해본 듯하다. 권해준 책 '생각 없는 생각'은 품절이다. 아쉽다. 아무튼, 그의 스승 이종은 교수와의 에피소드는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가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이 되는 순간, 내공의 깊이와 차이를 깨닫는다.  덜어내고 가벼워지는 더 채워지고 깊어졌다. 아름답다.

미술 저술가 이주헌씨.

멀기만 했던 예술을 대중 가까이 끌어온 저술가다. 한겨레 미술 기자 출신인 그는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쉽게 설명하는 훈련을 쌓았다.  회사를 나와서 잡지사도 그만두고 직업 저술가의 길을 택하기 위해 그가 던진 출사표는 장엄하기까지 했다. 학고재가 출판사 겸 화랑이란 것은 처음 알았다. 그곳에서 나오는 일련의 책들에 대한 수긍이 조금 더 가는 단서다. 선인세라 치고 받은 1100만원. 거기에 저금 300만원을 보태어 일가족 네 명이 함께 떠난 유럽 여행. 그리고 나온 책이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땀과 노력이 밑바탕이었지만 우선 '기획'의 승리에 방점을 찍고 싶다. 기획자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연수입이 억대란다. 엌!소리 나온다.  스테디 셀러는 확실히 다르구나. 각주를 거의 쓰지 않는 글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도 각주 읽는 것 정말 싫다. 그나마 책 아래에 나온 것은 덜 부담스럽지만, 책의 맨뒤에 몰려 있는 각주는 정말...ㅠ.ㅠ '나쁜 사마리아인들' 읽을 때 책 넘기다가 화딱지 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자기가 쓰고 싶은 것보다 독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책을 써야 한다는 의식이 확고하다. 그건 대중연합주의가 아니라 그가 대중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의 책이 진짜 빛을 발하려면 해당 미술관을 좀 가보고 실제로 경험해 보는 작업이 따라줘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그런 경험이 없는 게 슬프다. 그래도 언제고 다녀올 날이 있겠지... 

개인적으로는 오주석 씨의 글이 너무 편안하게 읽히는 까닭에, 그 후에 만난 이주헌 씨의 글들은 내게 너무 딱딱하게 읽혔다.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사'는 그나마 덜 했지만, 훨씬 앞서 나온 50일 간의 미술관 체험은, 사실 읽다가 중도 포기했다. 다시 만날 날을 나 역시 고대한다..;;;; 

가만 보니 각 인터뷰이마다 사진 찍은 사람이 다르다. 오옷! 한 번에 인터뷰한 것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신선하다. 사진이 칼라였다면 눈은 더 즐거웠겠지만, 그건 고스란히 독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테니 만족해 하자. 책의 도판도 아니니 말이다. 

역사 저술가 이덕일 씨는 내가 참 좋아하는 분이다. 학벌과 인맥이 너무 강조되는 한국의 풍토에선 교수직을 따내기 어렵다고 여긴 그는 일찍부터 역사 저술가의 길을 택했다. 그 자신은 꿩 대신 닭의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독자 입장에선 고마운 차선책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분의 강연을 들어봐서 하는 얘긴데,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훠얼씬! 훌륭하신 분이다. 말솜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솜씨가 워낙 탁월하기 때문에 그렇다. 인문학 서적에서 '문학적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게 나로서는 정말 신선했고 자주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는 정통 사학자의 코스를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재야 사학자'라는 꼬리표가 늘 달려왔었다. 그것 역시 학연 지연 서열 중시하는 한국의 풍토가 낳은 선입견으로 여겨진다. 이덕일 씨를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그 사람 의견은 비주류야! 라고 잘라 말하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무조건적으로 절대적 지지를 보내던 초기에 비해서 요즘엔 조금 거리를 두고 읽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게는 참 좋은 글쟁이이신 이덕일 선생님!(갑자기 호칭이 바꼈다!) 앞으로도 부지런한 저작 활동을 기대한다. (그렇지만 개정판 말고 새 책을 원해요!) 

NGO 저술가 한비야 씨. 삶과 글이 일치하는 글쟁이라는 제목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 듯 싶다. 쓴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외우다시피 한다는 그녀. 직접 '낭독'을 한다는 것은 독자의 입에 어떻게 읽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보통 완벽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부지런하기까지! 이 책에는 여러 베스트셀러 작가가 나오지만 한비야 씨의 책이 팔린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지구 세바퀴 반이란 표현은 그녀에게 여러모로 딱이다. 지구 세바퀴 반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었는데, 제대로 순서대로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이들 중에는 '교수님'이 많았다. 이 분들은 안정된 수입이 뒷받침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분들보다는 좀 더 연구 활동에 몰입하기가 좋은 조건을 갖고 계시다. 게다가 '방학'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유급 방학! 반면, 그런 고정 수입이 없으신 분들은 연구, 강연, 저술, 재차 강연...의 순서를 반복하시면서 작업을 수행하신다. 노성두 씨 인터뷰에서 제일 놀랐던 게, 가장 쓰고 싶은 책은 고고학 책인데 외국의 사진을 저작권료 지불할 재간이 없어서 못 쓰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도판 사용료는 미술이나 건축처럼 사진을 많이 쓰는 출판 분야에서 책을 못 내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비싼 도판의 경우 책 한 페이지 정도 크기로 쓰는 데 10만 원 가량 들기도 한단다. 300쪽 짜리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사진 100장 정도 쓴다면 수백 만원에서 1천만 원 정도가 도판 사용료로 들어가니, 책을 만드는 비용이 너무 어마어마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 비용을 건지려면 최소 3천 부는 팔려야 하는데 우리나라 출판문화와 독서 문화를 생각한다면 가능하지 않은 손익 분기점이다. 책 한 권 내고 출판사 망하라고 할 수도 없고, 사재를 털어 책 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부분들이 보완될 수 있게 정부 차원의 지원이 시급한데, 그런 성숙한 풍토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우린 그저 고고학의 즐거움을 '마스터 키튼'으로 달래야 한단 말인가! 

훌륭한 책을 쓰기 위해서 영어는 기본으로 깔고 가고, 독일어 불어에, 심지어 라틴어까지 1차 사료 강독이 가능한 저자들의 지적 수준을 보며 입이 쩍 벌어진다. 그래, 학문의 길은 이렇게 치열하구나! 이분들이 펜을 꺾는 일이 없도록 오래오래 지지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함께 할 일이다.  

대학에서는 논문 발표만 중요한 성과로 취급하고, 책을 출판하는 일에 대해서는 경원시하는 분위기라는데, 그런 것도 바뀌어야 한다. 언제까지 학문이라는 것이 소수 엘리트들만을 위한 지적 허영심으로 자족해야 하겠는가.  

초반에는 리뷰 쓸 생각에 메모를 하면서 읽었는데, 그 후 수개월 방치해뒀다가 이번 주에 다시 읽으면서 촤르륵 읽는 바람에 메모를 못 했다. 좀 더 성실한 리뷰를 쓰지 못한 것이 막 미안해지고 있다. 인상깊었던 책들을 다시 찾아 읽는 것으로 그 미안함을 달래보련다.  

다음엔, 인터뷰어 구본준 기자의 글쟁이로서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그의 서재도 너무 궁금하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이, 이 인터뷰보다 훨씬 재미있었음은 물론이다. 그게 가능했던 것들도 이런 만남, 이런 인터뷰, 그들의 저작물들의 도움이었겠지만. 아무튼 간에! 

참, 인터뷰이들에게서 글쓰는 Tip이 인터뷰 말미에 나오는데, 뒤로 갈수록 그게 사라진다. 팁도 안 준 분들은 왜 안 주셨을까? 혼자만의 비법으로 남겨두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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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2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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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탕으로 만든 사람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4
아니카 에스테를 지음, 원미선 옮김, 율리아 구코바 그림 / 비룡소 / 2000년 8월
평점 :
절판


네덜란드 출신 작가가 글을 쓰고, 러시아 출신 작가가 그림을 그린 그리스 옛 이야기 책이다.  

제목도 독특하지만 그림체는 더 신비롭고 평범함을 벗어났다.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달리 말하면 해독하기 어려운 그림이었다. 



공주님은 외동딸이었는데, 수많은 남자들의 구혼을 모두 거절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주님은 마음에 드는 남자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곱게 빻은 아몬드와 설탕, 밀가루를 골고루 섞어 사람을 빚은 다음, 왕궁에 있는 성스러운 그림 앞에 세워 두고 40일 동안 밤낮으로 기도를 했다. 그 결과 공주님이 만든 사람은 생명을 얻어 눈을 떴고, 공주님은 그 사람을 "설탕으로 만든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금세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아주 먼 나라에 살고 있던 어느 여왕도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그를 훔쳐 오기로 결심했다. 여왕의 주변에 뿜어져 나오는 검은 오라가 무시무시하다. 여왕은 황금 돛이 달린 황금 배를 타고 가서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설탕으로 만든 사람도 그 배를 구경하다가 그만 잡혀가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공주님은 비탄에 빠지게 된다. 



황금 배는 저 멀리 미끄러져 흘러가고, 바다에는 무수한 얼굴들이 둥둥 떠 있다. 그리고 유독 튀는 하얀 얼굴 하나. 저게 설탕으로 만든 사람일까? 글쎄, 미모가 좀 아닌 것 같긴 한데... 

무튼, 이 책은 좀 그림이 난해하기 때문에 그냥 공주의 어지러운 마음과 그림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자! 


공주님은 무쇠 신발 세 켤레를 챙겨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찾아 나섰다.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던 공주님은 마침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벗어나 달님의 '어머니'에게로 갔다.  

달님도 아니고 그 어머니를 먼저 만났다는 것이 무척 독특한 설정이다.  

친절한 달님의 어머니는 자신은 본 적 없는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혹 자신의 아들이 보았을 지도 모르니 기다려 보라고 한다. 흔히 달님은 '여성'으로 표현되는 것에 비해 이 책에서는 달님을 남자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달님도 해답을 주지 못했고, 공주님은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찾기 위해서 해님을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달님보다 세상을 더 많이 보고 있으니 혹시 보았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서...... 

무쇠 신발이 무겁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보다는 무쇠 신발이 닳아 없어질 만큼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찾아 헤맨 공주님의 정성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달님과 달님의 어머니는 공주님에게 위급한 일이 있으면 사용하라고 아몬드 한 개를 주었다.




해님의 어머니도 자신의 아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뒤늦게 도착한 해님도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해님이 준 충고는 이번엔 별님에게로 가보라는 것. 별님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그 중 어느 별이 보았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

해님의 어머니와 해님은 공주님에게 호두 한 개를 주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호두를 깨뜨리라고. 

아몬드와 설탕으로 빚은 사람. 그리고 위급함을 모면하게 해주는 아몬드와 호두... 그리스에서 이 열매들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뭇 궁금하다.  



두번째 무쇠 신발마저도 모두 닳았을 때 공주님은 별님들의 어머니께 도착했다. 하지만 별들의 어머님도 설탕으로 만든 사람의 행방은 알지 못했고, 무수한 별들도 아무 소식을 전해주지 못해 절망에 빠지려는 철나! 별 하나가 자신이 보았다며 앞으로 나선다. 희망이 싹트는 순간! 

공주님은 별님들의 어머니와 별님들로부터 개암나무 열매를 하나 받고서  위급한 순간의 도움을 보장 받고 여왕이 산다는 하얀 궁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공주님이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바로 구해올 수 있다면 앞에서 받은 아몬드와 호두와 개암나무는 뭐에 쓰겠는가. 공주님께 닥친 위기는 모두 세차례. 그 세차례의 위기를 극복해 내야만 공주님은 사랑하는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만나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구조가 피그마리온도 떠오르게 하고 프쉬케도 연상시킨다. 공주님은 자신이 사랑하고픈 상대를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냈고, 위기가 닥쳤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갔다. '공주님'이라는 지위의 사람에게 흔히 기대되는 연약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설탕'으로 만든 사랑이라니, 물이 닿아도 녹을 것이도, 햇볕이 뜨거워도 녹을 것인데, 고이고이 간직해 두고 보살피기만 해야 할 연약한 사랑은 아닌지 또 걱정이 된다.  

신비로운 그림이 책보는 재미를 주는데, 아이들이 좀 어려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반응은 두고 봐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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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속에 늑대가 있어
닐 가이먼 지음, 이다희 옮김, 데이브 맥킨 그림 / 비룡소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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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로 나 환심을 샀던 닐 게이먼과 데이브 맥킨의 작품이다.(책에는 닐 가이먼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좀 통일해 주지...) 나로서는 굳이 한 작품을 고르라면 이 책, '벽속에 늑대가 있어'가 더 재밌었다. 아, 이렇게 상상력이 자유롭고 날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뿐이다! 



집안을 서성이던 루시는 벽 속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덜커덩덜커덩
부스럭부스럭
삐거덕삐거덕
오지끈우지끈하는 소리! 

루시는 벽 속에 늑대가 있다고 당장 엄마한테 신고(!)를 했지만 엄마의 반응은 시니컬할 뿐이다. 



뿐인가. 튜바 연주자 아빠도, 또 게임에 빠져있는 남동생도 모두 루시의 말을 무시한다.  

벽속에 늑대가 있을 리 없다고. 벽 속에서 늑대가 나오면 '끝장'이라고! 

하지만 밤이 되어 벽 속에서 나는 수상한 소리는 점점 커지고, 루시의 공포도 점점 커져만 갔다. 

엄마는 생쥐의 짓이라고 했고, 아빠는 집쥐 탓이라고 했고, 동생은 박쥐가 살고 있는 거라고 우겨댔다.  

그러나 루시는 기필코, 분명히, 단연코, 반드시 그건 늑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어이...... 



벽 속에서 늑대들이 튀어나왔다! 

식구들은 부랴부랴 도망쳐서 집을 빠져나왔다. 식구들은 정원 한구석에 모여 앉아 밤을 지새워야 했다. 

집에는 방마다 불이 켜져 있었고 늑대들은 식구들이 보던 텔레비전을 보고 식구들이 먹던 음식을 먹고 또 춤을 추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분하게도 말이다! 

식구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북극에 가서 살자는 아빠. 사하라 사막에 가서 살자는 엄마, 우주에 가서 살자는 동생까지! 

그러나 루시는 우리 집이 아니면 어디서도 살기 싫었다. 게다가 아끼는 돼지 인형 포실이도 두고 왔기 때문에 절대로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루시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몰래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는 계획이었다. 


늑대들이 튀어나온 벽으로 숨어든 루시. 그리고 벽틈으로 늑대들이 집안을 마구 망가뜨리며 맘껏 어지르며 즐겁게 지내는 풍경을 목격한다. 포실이를 무사히 구해갖고 정원으로 돌아온 루시. 이제 집안으로 들어가본 경험이 있으니 자신감이 붙는다.   

사진과 그림을 적절히 섞은 그림들은 묘하게 재미와 웃음을 준다. 이건 많은 작가들이 자주 쓰는 콜라쥬 기법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그림을 그린 데이브 맥킨의 또 다른 작품들이 마구 기대되는 순간이다.

한 편 식구들은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아빠는 무인도에 가서 살수 있다고 얘기하신다.
엄마는 열기구에서 살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동생은 아주 높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루시는 자기 집이 아니면 안 된다고 다시 강조한다. 

경악하는 식구들을 설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루시는 이미 벽 속에 숨어서 집을 들여다 보고 온 경험자이니까. 




살금살금 집에 들어간 식구들은 늑대들이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파티를 여는 모습을 목격한다. 눈이 뒤집어지는 순간은 그 다음이었다. 각자 자기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들이 망가지는 것을 보았으니 말이다. 

엄마의 잼과 부엌,
동생의 비디오 게임 최고 기록,
아빠가 두 번째로 아끼는 튜바! 

결국 식구들은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심한다.  

식구들이 똘똘 뭉쳐 벽 속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이제 놀라는 건 그들의 몫이 아니다. 바로 벼락 맞은 듯 놀라는 늑대들의 차례다. 



지난 번 늑대들이 튀어나왔을 때 루시의 식구들이 놀랐을 때보다 더 크게 놀라고 있는 늑대들. 

표정이 너무 리얼해서 웃음이 푸하핫! 튀어나온다.
그들도 똑같이 말했다. 벽 속에서 인간들이 나왔으니 이젠 모두 끝장이라고! 

자, 이제 어찌 될까? 루시의 가족들은 집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대로 끝일까? 

또 다른 반전은 없을까?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과 어느 정도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지만, 그림과 대사가 더 웃긴 이 책에 좀 더 마음이 간다. 

글이 이렇게 맛깔스럽게 읽히는 건 번역의 몫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책을 어찌나 험하게 보셨던지, 제본이 다 튿어져 있다. 이 책은 조만간 소장해야겠다.  

이 작품 읽고서 영화 '코렐라인'이 궁금해졌다. 닐 게이먼이 원작자란 얘기를 들었거든.  

몇 해 전에 영화 '스타 더스트'도 참 재밌게 보았는데 이 작가 작품이란다. 작품을 만날수록 더 깊게 반하게 된다. 퍼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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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다짐대로 오늘은 기필코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울 동네에 미용실이 세 개 있는데, 가장 오래된 미용실은 작년 12월에 과감하게 커트를 해서 앞머리를 내렸던 곳인데 현금만 받는다는 결점이 있고, 그 다음 엄마가 애용하는 포인트 주는 미용실은 수년 전에 파마했다가 일주일 만에 풀리는 경이로움을 맛본 곳이었는데, 4월에 앞머리 잘랐다가 너무 실력 없어서 다시 가고 싶지 않았고, 그리고 오늘 간 곳은 작년 12월에 오픈했는데, 당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가고 첫번째 미용실로 발길을 돌렸더랬다. 

미용실은 일년에 두 번 정도 가는 것 같다. 한 번은 파마하러, 한 번은 컷트하러.
한 동안은 웨이브를 줄기차게 했는데 또 최근 몇 년 동안은 생머리를 고수했던 듯하다.  

금년 여름은 유독 더울 거란 관측이 있고, 나는 또 워낙 더위를 잘 타서 여름에는(사실 일년 내내) 머리를 꼭 묶거나 틀어올리기 때문에 대단한 펌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머리카락이 너무 무거우니까 숱을 치고 잘 올라가라고 웨이브 약간 주면 됨. 

그래서 보통 시내에서 2만원짜리 제일 싼 파마를 즐겨 했다. 푸르고 다니지도 않고, 에센스를 발라 관리해주는 부지런함도 없으니 싼맛에 나한테 제격인데, 동네 미용실은 파마에 25.000원을 받는다. 차비 생각하면 그게 그거고, 동네 경제를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에 오늘은 집근처 미용실 중, 가보지 못한 세 번째 미용실로 갔다. 

가보니 앞 사람 머리 말아주느라 한 시간 기다리고, 내 머리 하는데 2시간 반. 어휴... 길기도 하여라.  

그리고 결제하려는데 '5만원입니다' 이러는 거다. 웰빙 파마라나. 나 그거 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 기본이 웰빙파마인가??

암튼, 내 예상의 두 배가 아닌가! 어허, 슬픈지고!!! 

다음 달 피아노 레슨 그만두어서 십만원 절약하나 했는데 그 중 절반이 뚝 떨어져 나갔다. 흑...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나는 십 년 전 숙대입구 이철 헤어커커에서 오만원 주고 파마했었다. 

십년이 지난 물가를 생각하면, 두시간 반의 서비스로 과한 요구가 아닐 것이다. 

머리는 맘에 들게 나왔다. 다만, 푸르고 다닐 일이 없는 나로선 잘 나온 컬을 자랑할 데가 없다는 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름에도 머리를 푸르고 다녔던 적은 연애할 때뿐이었구나. 그 후 연애 소식이 없는 게 설마 머리를 묶고 다녀서??? 

셀카를 예쁘게 찍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내 팔을 뻗어봤자 머리 전체가 나오지도 않고, 다른 사람한테 찍어달라고 하니 남사스럽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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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9-05-3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겨울엔 점 빼야지, 저도 해마다 하는 듯 ㅎㅎ (올해는 꼭! 불끈.)
아무리 동네 미용실이라도 정말 미용실 한 번 다녀오면 생각했던 것보다 돈을 더 쓰게 되는 것 같아욤.
근데 머리 예쁘게 되셔서 부럽!
전 이제 머리 묶어야지 하고 앞머리를 잘랐는데 묶으면 이상해서 못 묶겠어요 ㅠ_ㅠ

마노아 2009-05-31 00:31   좋아요 0 | URL
우리 올해는 꼭 점 빼자구요.ㅎㅎㅎ
제대로 영양주고 이것 저것 추가하면 몇 십만원도 우습게 나올 게 또 머리잖아요.
이매지님 사진 보니까 깜찍하게 잘 나왔던데요, 뭘요.^^

웽스북스 2009-05-31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여름엔 살 빼야지. 이 말을 저는 15년째 하고 있는 것 같아요. ㅋㅋㅋ
한번 들어가면 빠질 수 없다는 앞머리의 수렁~

마노아 2009-05-31 10:43   좋아요 0 | URL
수렁에 빠진 다이어트죠.
앞머리도 초공감. 근데 지금 앞머리 기르고 있어요. 여름엔 그냥 똑딱삔으로 고정시켜 넘기려구요.
답답해서 못 참겠는 거 있죠.

후애(厚愛) 2009-05-3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굴이 야위셨어요. 무조건 영양 보충을 하셔야겠어요.^^
웰빙 파마라고 했나요? 머리가 잘 나왔어요. 이뻐요~~
근데 가격을 정말 비싸게 받네요.

마노아 2009-05-31 10:43   좋아요 0 | URL
아앗, 야위었다니! 내 평생 그런 단어는 처음 들어봐요.^^ㅎㅎㅎ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제의 분위기는 삭 사라졌더군요..;;;;
운명으로 생각했어요.^^

순오기 2009-05-3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마머리는 감고 나서 돌돌 말아주면 그대로 유지되고 보기 좋아요~~~ 비싸니까 오래 가야죠.ㅋㅋ
얼굴이 좀 빠진 듯... 눈이 더 커보여요.

마노아 2009-05-31 12:07   좋아요 0 | URL
좀 전에 둘째 언니가 백 만 년에 파마해놓고 두배로 값 줬다고 길길이 날뛰고 가버렸어요..;;;;
에어콘 빵빵한 데서 일을 하면 머리 푸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ㅎㅎㅎ
체중은 변화 없는 것 같은데 얼굴이 빠져 보인다면 최근에 일이 많아서 혹시 축이 난...^^;;;

sweetrain 2009-05-3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년 반동안 미용실에 한번도 안 갔네요..
머리가 귀신 꼴입니다 ㅡ.ㅜ

...다이어트는 그래도 최근에 13kg를 빼긴 했지만, 더 빼야 해요. ㅡ.ㅜ

마노아 2009-05-31 22:16   좋아요 0 | URL
아악, 단비님 13kg를 뺐단 말입니까? 비법이 궁금하군요.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졌을 거예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소중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많이 잃었다. 김수환 추기경님, 장영희 교수님, 탤런트 여운계씨,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  

여운계 씨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나이를 먹고 있구나......
마치 공기처럼 지나치게 익숙해서 당연히 내 곁에 늘 있을 거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난다. 그들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할지라도, 추억과 경험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라져 간다는 것에서 세월의 힘을, 자연의 법칙을, 그리고 작디 작은 인간을 느꼈다.  

장영희 교수님. 언제나 많은 타이틀이 그녀의 이름을 장식했다. 아마도 '영문학자' 혹은 '수필가'라는 이름보다는 '장애를 극복한', 혹은 '암을 이겨낸'... 이런 타이틀이 그 이름 앞에 더 많이 붙어온 듯했다. 그런 이름들이 작가 자신은 그렇게 반갑지 않았겠지만, 사람들은 늘 그렇게 경이롭게 그 사람을 보곤 했다. 그래서 거듭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이번에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날 거야! 라는 근거 없는 자심감을 지녔고, 이번엔 그 믿음에 배반당했다. 그랬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이 모두 만들어져서 예약 판매 접수를 받고 있던 와중에, 새로 나온 자신의 책을 받아보지 못하고 그만 이 세상과의 인연을 놓고 말았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 그녀가 칼럼을 쓸 때 당시엔 살아서 열심히 세상을 이겨내고 바꿔보려고 애썼던 사람들이, 이 책을 다시 정리할 때에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 더 보태어,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는 이미 고인이 된 그녀를 책 너머로 추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 인생무상,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누구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 사람의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곧 그게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앞서 읽었던 그녀의 다른 수필집에서도 느꼈지만, 그녀의 글은 언제나 사람 내음이 난다. 따스하다. 많이 배운 지식인 층이면서도 결코 현학적이지 않고 나대지도 않고 내세우지도 않는다. 김훈의 글처럼 아름답지만 어렵지 않고, 공지영처럼 재밌지만 샘나게 만들지 않는다. 그저 동조하게 되고 반가워하며 빙그레 웃게 만든다. 수필가로서는 최고의 재능이 아닐까.  

그녀의 부모님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혼자선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를 날마다 업어서 등학교 시켜주었던 그 모정과, 아이를 받아주지 않는 대학을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문을 두드려 결국 대학 공부를 마치게 해주신 부정. 게다가 어머니께서는 아이가 집에서 책만 읽는 것을 마뜩치 않게 여겨 밖에 나가 아이들 노는 모습이라도 구경하게 꼭 대문 앞에 앉혀 놓았었다고 한다. 동네 친구들은 동무 장영희가 그저 멀뚱히 구경만 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무언가 놀이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러니까 불편한 다리로도 해낼 수 있는 건수를 꼭 만들어냈다. 그 아이들이 딱히 착해서가 아니라, 남달리 배려심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런 마음씀이가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오늘날엔 그렇게 동네에서 뛰노는 아이도 보기 힘들고, 그렇게 장애를 가진 친구를 돌봐주는 큰 마음을 지닌 아이들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이들이 그렇게 된 건 모두 어른들 탓이지만. 

그래서, 작가 자신도 인정하다시피, 그녀는 참으로 복받은 사람이다. 아름다운 가족, 아름다운 친구들, 그리고 아름다운 그녀 자신.  

유학 시절 탈고를 마친 논문을 도둑 맞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절망. 그 바닥을 치고 올라온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같은 눈물겨운 노력의 여정은 그녀 인생에서 무수히 많이 반복된다. 애틋하고, 대견하게, 그리고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며...... 

책은 편안하고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내며 술술 익힌다. 이렇게 빨리 읽히는 게 아쉬울 정도로. 다시 이런 책을, 새 글밥으로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자꾸 자각했어야 하니 말이다.  

김종삼 시인의 시에서 차용한 제목이 적절했고, 정일 작가의 그림은 작가의 글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다가오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깊은 이중 커버는 요새 너무 유행인지라 자꾸 말하는 게 입이 아프긴 하지만, 이런 커버는 좀 지양했으면 한다. 차라리 표지 한장으로 나가고 책 값을 깎아달라는 소박한 소망이 있다.

자잘한 흠으로는 오타가 좀 눈에 띄고, 띄어쓰기는 상당히 많이 틀려 있다. 다음 쇄를 찍을 때 수정이 되었으면 한다.  

작가 장영희의 삶은 '기적'이라고 부르기에도 지나치지 않은 놀라움이 묻어 있었다. 그녀의 살아온 흔적을 되새겨 보며, 이제 우리가 살아갈 기적을 생각해 본다. '기적'을 늘 기다려야만 유지될 것 같은 하루하루의 피곤함은 서글프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기다림의 기적을 굳게 잡아본다. 지금은 '기적'같은 일이, 어느 순간 대한민국의 '상식'이 되길 바라며, 또 온 세상의 당연한 '이치'가 되길 바라며, 책의 제목이 되어준 김종삼 시인의 시 '어부'를 옮겨본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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