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세대를 위한 반자본주의 교실
에세키엘 아다모프스키 지음, 일러스트레이터연합 그림, 정이나 옮김 / 삼천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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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기본 체제가 자본주의인 까닭에,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순리처럼 느껴졌었다. 적어도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는 반공 교육을 받았고, 그래서 왜 나쁜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북한은 나쁜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로 인식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 대척점에 있는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는 아주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따라서 선에 해당하는 사회로 알고 있었다. 이 사회의 운영 체제가 상당히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하다는 것은 아주아주 오랜 후에 알았다. 아마도, 내가 학생일 때는 못 알아차렸던 듯하다.  

전근대 사회도 아닌데, 자본주의 체제가 상당히 억압적인 형태라고는 차마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짚어보면 자본이 곧 권력인 사회이고, 자본을 가진 자가 대다수 시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이 행태를 직시한다면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다수의 군중을 억압하고 있는 사회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교육'에 의한 줄세우기라고 생각하면 뒷못이 뻣뻣해지는 서늘함을 느끼게 된다.  

자본은 사람을 계급과 계급으로 구분해서 서로를 분리시키고 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소수의 지배자가 다수의 억압받는 자의 시간과 노동과 위엄까지도 잠식하거나 하는 중이다. 그것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일 게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국가과 민족이라는 경계. 그것이 개인의 존엄함보다도 더 우위에 있다는 은연중의 강요와 세뇌가 무섭다. 영화 '태풍'이 역겨웠던 데에는 '국가'의 명이라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내겠다는 주인공의 호언장담도 크게 한몫 했을 것이다. 오늘 보았던 영화 '국가대표'에서는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아이가 엄마 찾기 위해서 귀화한 후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뛰는 이야기가 나온다. 재미와 감동을 적절히 선사해준 이 영화가 만약 '애국심'에 호소하는 신파로 기울었다면 음향사고로 인한 환불 소동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감동을 방해해서가 아니라 짜증을 배가시킨 탓으로.  

이 책은 우리가 쉽게 쓰는 용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그밖의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아나키즘 등등)와 같은 단어들을 좀 더 근원적으로 파헤쳐서 쉽게 설명해주는 데에 공을 들였다. 거기에는 자주 삽입되는 일러스트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32쪽의 국가과 조국, 민족의 개념을 자본주의와 대조시켜 설명한 부분이다. 비유가 아주 쉽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18세기에 시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소수의 특권계급에게 몰려있던 권력이 민중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왕과 귀족, 성직자와 같은 특권계급보다 좀 더 넓어지긴 했지만 역시 대다수 민중에 비하면 소수에 속하는 부르주아들이 권력을 잡아챘다. 그들은 오늘날의 자본이라는 권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주의 국가들도 그랬다. 그들이 이상으로 삼았던 평등사회와 달리, 군부를 장악하여 권력을 잡은 독재자가 꼭 등장했고, 그들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의 실패 이후 빠르게 신자유주의화 되어버렸다.  

좌파들은 어떠했던가. 그들은 권력을 잡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걸 기대했다. 그러나 우리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십년 동안에 이미 경험을 했지만 정권을 잡는 것만으로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의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을 잡는 것’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 일이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그런 방법이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권력은 가까이 오는 모든 것을 변질시키는 법이어서 그것에 대항하는 사람들까지 무력화시켜 버리고 만다. 국가 기구를 장악하려고 하는 사회운동이 때때로 권력관계를 재생산하거나 강화시키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선거에서 이기거나 국가를 ‘장악’하기 위해서 과거의 반자본주의자들은 당이나 해방군 같은 조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조직은 사람들을 분리하고 단죄하고 종속시키는 기관이 되어 버렸다.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나면 어김없이 과거 권력자보다 더 심하게 억압하거나 더 세련된 억압 형태를 만들어 냈다. 99쪽

 
   

 지난 선거들에서 압도적인 1위 후보를 따라잡기 위해서 진보 정당에게 표를 나눠주는 건 사표라고 강조했던 것들이 생각난다. 그 전제조건에서 이미 정권을 잡기 위해서 타협이 필요하고, 정권만 잡으면 일단 해결된다는 무모한 확신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은 역으로 정권을 빼앗기면 어떤 꼴도 감당해야 한다는 역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한 함정에 대해 이 책은 '권력에 포섭되지 않는' 노력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민중 권력' 혹은 '반권력', 또는 '대항 권력'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곱씹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혁명'이란 다가와야 할 거대한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납득하곤 하지만, 혁명은 항상 우리 주변에서 바로 지금도 진행되는 부분들이다. 그것이 참 혁명인지 반동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삶 속에서 말이다.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생각을 잠식해 들어가는 자본의 올가미와 권력의 억압을 뿌리치는 것 역시 일상의 혁명 속에서만 지속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반미하면 좀 어떻습니까....라고 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빗대어서, '반자본주의' 하면 좀 어떻습니까...라고 묻고 싶다. '좌파'라고 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아직도 후진 한국 문화를 이젠 좀 바꿔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책에선 전통 좌파와 창조적 에너지를 갖고 있는 반자본주의를 구별하기 쉽게 표로 만들어 놓았다. 



좌파라는 것이, 반자본주의라는 것이 숨막히는 도덕주의가 아니라 융통성도 있고 포용력도 있는 가치라는 것을 알아차릴 차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 이 희망 없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새 힘이 되어줄 것이다.   

제목이 좀 딱딱하고 표지가 덜 호감이 가고, 가끔 오타도 나오곤 하지만, 이 책은 '정독'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자본주의의 역사와, 거기에 대항해 온 역사를 파악할 수 있고, '반자본주의'라는 명제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할 우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 안에 만병통치약이 들어 있지는 않다. (있을 수 없다.)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면 된다. 그건 당신의 몫이다. 

ps. 점점 더 낯선 도시에서 이뤄지는 정상회의들에는 이런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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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01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가지고 사람들하고 한 번 쯤 토론해보고 싶었어요....

마노아 2009-08-01 12:15   좋아요 0 | URL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참 바람직할 것 같아요. 근데 쉽게 쓰여진 책인데도 전 어려웠어요ㅠ.ㅠ

다락방 2009-08-01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이 찍어 올리신 사진을 보고 있자니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 처럼 정독해볼 만한 가치는 있는것 같은데 말이죠, 제목에 '촛불세대를 위한'은 좀 거부감이 들어요. 저 수식어 말고 다른 말을 쓸 수는 없었을까요? 아, 전 왜 저렇게 저 말이 맘에 들지 않는걸까요? ㅜㅡ

마노아 2009-08-01 22:44   좋아요 0 | URL
나름 고심해서 지은 제목일 텐데 오히려 독자층을 너무 구속하는 느낌이에요. 길기도 하구요. 그런데 또 우리 사회에서 '반자본주의'라는 말이 불편하게 다가가잖아요. 여러모로 고민한 결과인가봐요.^^;;;

치니 2009-08-0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처럼 '촛불세대를 위한'이 끝끝내 맘에 들지 않더라구요. 마노아님은 출판사의 고민을 헤아려주시는 관대한 독자. ^_^ 좋은 리뷰 잘 읽고갑니다.

마노아 2009-08-02 14:35   좋아요 0 | URL
아하핫, 졸지에 관대한 독자가 되었어요. ^^;;;;
책을 선택하게 할 때 제목이 주는 역할과 영향을 무시할 수 없어요.
흔한 제목은 너무 식상하지요.^^
 
촛불세대를 위한 반자본주의 교실
에세키엘 아다모프스키 지음, 일러스트레이터연합 그림, 정이나 옮김 / 삼천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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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나타난 여러 사회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가장 억압적인 사회 체제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복종하도록 만들고 무엇이든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힘으로 억압받는 자들을 굴복시키는가 하면, 심지어 ‘교육’을 통해 권력에 순종하는 것이 옳으며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15쪽

자본주의는 계급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억압적인 사회이다. 이 말은 특정한 지배계급(즉 자본가)이 사회적인 지위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능력이나 특권을 이용해 사람들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16쪽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계급이 한눈에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구분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니고 계급 간의 경계도 유동적이어서 생활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비록 중요한 경제 자원을 지배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크게 나뉘지만, 계급은 부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가장 부유한 사람에서부터 가장 가난한 사람들까지 모두 개인으로 존재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오직 몇 사람만 지배계급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지만, 사람들은 늘 자신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19쪽

계급사회인 자본주의는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제적 착취만 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원래 갖고 있는 일하는 능력을 잃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마비시킨다. 나아가 스스로 어떻게 살지를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저항을 통해 억압과 착취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결정권을 되찾고자 한다. 계급투쟁이란 바로 이러한 억압과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지 사이에서 나타나는 지속적인 싸움이다. 계급투쟁은 대규모 저항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소극적으로 일을 더디게 하는 행위도 계급투쟁의 모습이다. 또 계급투쟁은 개인적이고 무의식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든가, 단순한 월급쟁이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 공부를 시작하는 것 또한 계급투쟁의 모습이다.

-23쪽

사적(私的) 소유라는 게 새로운 건 아니다. 먼 옛날부터 토지나 생산 도구 같은 몇몇 재산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가 있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이런 종류의 권리, 즉 사적 소유권이 모든 것에 적용되었다. 수천 헥타르에 이르는 토지는 물론 호수까지도 개인이 소유하게 되었고, 심지어 항만이나 기업, 노래, 아이디어, 유전자 그리고 은행의 수십억 원이 넘는 돈까지도 사유재산이 되어 버렸다. 또한 아직은 개인 소유로 되어 있지 않은 것들도 몇몇 개인들에게는 아무런 비용 없이 사유화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는 형편이다. 예를 들면, 한 회사가 모든 사람이 마시는 ‘공기’를 오염 시킨다든가, 온갖 광고 선전물로 우리가 눈 뜨고 볼 수 있는 공간을 도배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자본주의란 모든 것을 사유화하는 기계 같은 것이다.

-25쪽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우리가 사는 모든 공간이 거대한 시장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고, 이제 거의 모든 것이 판매 가능성 있는 상품이 되어 간다. 생선이나 그릇과 같은 물건뿐 아니라 건강과 교육, 정보, 안전까지도 상품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이 소유한 것에 다른 사람들이 다가가려면 뭐든 돈 주고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사람의 시간마저 상품화된 지 오래다.

-26쪽

자본주의란 일종의 관습이나 법, 정치 경제 제도의 총체로서, 몇몇 사람들이 자원을 독점함으로써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을 보장하고 정당화하는 하나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배계급은 독점한 자원을 이용해 자신들의 부를 축적해 나갔다. 지배계급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을 자기 것으로 삼아 상품을 생산하여 시장에 내다 판다. 이렇게 해서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함에 따라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27쪽

자본주의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제도와 사회 형태를 만들어 내고 보급시켰다. 그 첫 발명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경과 국민(민족)국가다. 단일한 정치권력이 미치는 범위가 국경에 의해 확실히 구분된 지리적 공간과 완벽하게 일치해야 한다는 개념은 자본주의의 발명품이다. 예전에는 이런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31쪽

자본주의는 자본가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통합된 내부 시장을 제공하기 위해 국민국가를 창출해 냈다. 이런 틀은 사람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고 식민지 팽창의 기회를 넓히는 역할도 했다.

-32쪽

자본주의는 또 공적인 공간이나 자연의 산물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사적인 공간이나 ‘가공 상품’으로 채우고 있다. 그 결과 과거에는 누구든지 씨앗을 받아 길러 먹을 수 있던 천연 종자가 유전자 변형을 통해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농민들은 아까운 돈을 주고 종자를 사야만 씨를 부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들과 산에 있던 농장이 아니라 건물을 지어 ‘달걀 공장’이나 ‘채소 공장’에서 나오는 식품을 먹게 되었다. 점점 사람들의 정신과 개인 생활도 축소되고 더 낮은 보수를 받고도 훨씬 강도 높은 일을 하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오직 이윤 창출에만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노동조건이 나빠짐에 따라 개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우리는 유행과 경제적 지위라는 환상에 목을 맨 채 직업은 물론 소비나 생활 방식조차도 선택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심지어는 천진난만한 유아기 때부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지으려고까지 애쓰고 있다.

-37쪽

실제로 우리는 가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19세기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투쟁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원한 것은 ‘민중의 정부’였다. 그런데 당시 자유주의 엘리트들은 민주주의라는 사상에 반발했고 자유주의는 줄곧 민주주의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투쟁 끝에 엘리트들은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을 줄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마치 자신들 것인 양 떠들지만, 그 참뜻을 통째로 왜곡시켰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중의 정부’를 뜻하는 말이 아닌, 단지 정부에서 자리를 차지할 사람을 뽑는 선거제도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47쪽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는 늘 자기중심적이고 차별적인 가치관을 전파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교육, 문학, 광고나 대중매체를 통해 일상적으로 그러한 가치관을 퍼뜨리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가치관은 노골적 방식이라기보다는 늘상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인 형태로 전파된다. 이런 일은 자본가들이 지배하고 있는 문화적 수단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본주의 문화는 우리 모두에게 내면화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자녀의 장래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소비 행위, 또는 일상에서 쓰는 언어 등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그런 문화를 계승하고 전달하는 셈이다.

-55쪽

사회주의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운동으로 생각하지만,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사회주의 운동에는 다양한 사회 계급이 참여하고 있다. 모든 억압의 폐지를 주장한 사회주의는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 특히 노동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학생, 예술가, 지식인, 농민, 여성주의자, 자영업자, 심지어 상인이나 제조업자들에게까지도 사회주의 사상은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최근에는 억압받는 소수 인종이나 민족, 토착 원주민이나 생태주의자 등 어떤 식으로든 자본주의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71쪽

19세기 중반이 되면 사회주의 운동 안에서도 몇 가지 조류가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그 가운데 아나키즘은 경제적인 착취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억압에 관심을 기울여, 특히 중앙집권적인 국가 권력에 강력히 대항한다는 특징이 있다. 아나키스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국가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공산주의자나 그 밖의 사회주의자들을 ‘권위적’이라고 비판했다.

-72쪽

아나키즘과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아주 주요한 수단으로 국가 권력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국가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 공산주의자들은 어느 정도 중앙집권적인 정당을 조직해야만 한다. 필요한 변화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해서 계급이 소멸되고 생산 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억압이 사라지면 국가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듯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불평등과 함께 국가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74쪽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이해하고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구상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사회주의를 이루려는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가 하나의 교리로 전락하는 순간, 다양한 정치적 전략이나 서로 다른 여러 상황과 역사적 변화에 맞게 적용하는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75쪽

레닌주의의 여러 형태는 역사적으로 대립이 있었지만 서로 공통점이 많았다. 정권을 잡기 위해 중앙집권적인 전위 정당이나 군사 조직이 필요하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한다. 또한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일당 체제, 계획경제 체제라는 미래 사회의 구상도 일치한다.

-86쪽

식민지로 지배받던 나라들이 민족자결을 내걸고 제국주의(독점자보주의)에 맞서 투쟁했는데, 흔히 사회주의 운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민족해방투쟁은 서로 대립된다고 말해 온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냈다.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한 당의 역할, 경제 국유화, 평등주의 같은 요소는 민족해방 운동가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계급투쟁과 같은 과제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지지를 얻는 데는 필요했지만, ‘민족 부르주아지’라 불리는 사회 계층의 지지를 얻어 내기 힘들었기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에트연방에서 이루어 낸 급속한 산업화는 제3세계의 여러 운동 세력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본보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회주의를 권력의 집중과 경제 발전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민중의 해방은 그 다음 문제로 미뤄진 채.

-87쪽

공산주의 모델은 다른 나라에서도 실행되었지만 대부분 평등이나 해방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를 띠었다. 1980년대 소비에트연방이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지자 관료들은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부르주아들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소비에트 정부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1년 소비에트는 해체되고 말았다. 좌절한 공산주의의 역사는 반자본주의자들에게 심각한 정치적 패배는 물론이고 도덕적으로도 큰 후퇴를 안겨 주었다.

-89쪽

저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통적으로 과거 좌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권력을 장악하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치권력 잡아서 사회를 해방시키는 도구로 국가를 이용한다는 전략이다. 오늘날 국민국가는 사회생활의 규범을 따르게 하는 권한 정도만 갖고 있다. 국가는 말하자면 정치권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또 그런 권한이라면 강대국 정부, 거대 기업이나 금융 회사, 복합 미디어 그룹들이 오히려 국민국가보다 더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가의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단지 정치권력의 한 부분만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96쪽

"권력이란 ‘바깥에서’ 우리를 억압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내면화되고 체질화된 것이다. 권력은 우리의 사회생활을 지배하고 사람들을 ‘내면에서’ 통제한다. 어쩌면 이것을 ‘살아 있는 권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권력은 사회 생활은 물론이고 개인의 삶에까지도 영향을 주어 새로운 규율을 만들어 낸다. 이런 권력은 단지 삶을 조절할 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재창조하려고 한다." -미셸 푸코

-97쪽

‘권력을 잡는 것’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 일이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그런 방법이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권력은 가까이 오는 모든 것을 변질시키는 법이어서 그것에 대항하는 사람들까지 무력화시켜 버리고 만다. 국가 기구를 장악하려고 하는 사회운동이 때때로 권력관계를 재생산하거나 강화시키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선거에서 이기거나 국가를 ‘장악’하기 위해서 과거의 반자본주의자들은 당이나 해방군 같은 조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조직은 사람들을 분리하고 단죄하고 종속시키는 기관이 되어 버렸다.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나면 어김없이 과거 권력자보다 더 심하게 억압하거나 더 세련된 억압 형태를 만들어 냈다.

-99쪽

혁명을 언젠가 일어날 하나의 사건이나 기다려야 하는 그 무엇으로 봐서는 안 된다. 혁명은 날마다 일어나고 있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혁명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권력에 저항하고 자율적인 틈새들을 새로 만들어 낼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자주 관리, 탈상품화, 그리고 평등한 공간을 만들어 낼 때마다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혁명이란 투쟁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러한 투쟁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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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유의 까만색 세상 어린이작가정신 저학년문고 1
질 티보 지음, 장 베르네슈 그림, 이정주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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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마티유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다. 늘 깜깜한 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둠이 무섭지 않다고 하는 아이. 

보이지 않는 눈 대신에 서른 세 개나 되는 다른 눈이 있다고 하는 아이다.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손바닥 두 개, 발바닥 두 개, 귀 두 개. 콧구멍 두 개, 그리고 입에 5개. 왜 입에 5개인지 모르겠지만, 마티유는 그 모든 감각들을 이용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마티유에겐 귀로 듣는 음악도 보는 것이고, 손 끝 발 끝으로 느끼는 모든 감각이 보는 행위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와 냄새와 촉각을 다 받아들이는 마티유는 보는 사람 이상으로 세상을 느끼고 즐기고 있다.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고 양털 구름 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니고 커다란 호수도 있는 마티유의 세계. 그 속에 보스무리 빛깔과 밤비스리 빛깔을 띤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고 한다. 이 색은 마티유가 만들어낸 색이라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색이다. 번역되기 전의 원서에는 이 색깔들이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우리 말을 마티유스럽게 바꿔가는 작업이 꽤 신중하게 진행되지 않았을까 상상되어진다.  

마티유는 밝고 긍정적인 아이다. 종이랑 물감이 없어도 그림을 그릴 수가 있는 마티유. 방법은 간단하다. 커다란 해님 아래서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린다. 지우고 싶을 때는 눈만 한 번 깜박이면 된다. 그러면 깨끗하게 지워진다. 그리고 다시 신기한 색으로 아까보다 더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마티유가 그려낸 그림을 모두 펼쳐서 친구들한테 보여주려면 집의 벽으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책에는 간간이 그림들이 나오는데 마티유 식 표현을 담아 모두 까맣게 칠해져 있다. 까만 크레파스로 채워진 공간을 하얀 선으로 표현을 해낸 그림. 마티유가 보고 있는 세상과 닮았지만 결코 어둡거나 칙칙하거나 암울하지 않다. 혼자서도 척척 해내고, 부모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뭐든 적극적으로 해내는 마티유는 장애가 있다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엄마와 아빠가 마티유를 위해 준비해 준 선물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는 것은 몹시 재밌는 엿보기였다. 곰돌이 인형과 얘기하면서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는 마티유를 따라 독자도 그 시간을 즐거운 긴장으로 기다린다. 마침내 선물은 공개되고, 마티유가 그 선물을 손에 잡는 순간은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졌다. 마티유를 지켜보던 다른 두 아이가 마티유가 앞을 못 보는 게 맞는가 의아해할 만큼 최고의 선물을 골라내니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던 아이가 '본다'라는 것을 어떻게 체득하고 이해하는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눈 이상으로 세상을 그려내고 읽어내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인상적이고도 감동적이다. 아이의 이런 긍정 마인드는 부모님의 영향도 매우 클 것이고 사회 분위기도 크게 좌우할 것이다. 어린이 친구들이 이 책을 만났을 때 어떤 생각들을 갖게 될지 궁금하고 또 조심스럽기도 하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은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안에 나의 조각들은 없는지 되돌아볼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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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07-3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티유의 서른 세개 눈에 하루하루가 조금더 살만함으로 느껴지길.
님 리뷰를 읽다 보니 저도 이쁜 그림동화 한권 본 느낌이 들어요.

마노아 2009-07-31 23:48   좋아요 0 | URL
배꽃님! 요새는 배꽃님 글이 많이 올라와서 기분 좋아요.^^
마티유의 세상처럼 우리의 세상도 날마다 조금씩 더 좋아지길 소망해요.^^

다락방 2009-08-0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나오는 영화가 있었거든요. 그 남자의 직업은 안마사였나 암튼 그랬을 거에요. 안마를 받으러 온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러다 그 둘은 함께 살게 되면서 남자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거에요. 수술을 받아서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남자가 수술을 받고 난 후, 모든걸 보게 된 뒤에 일어났어요. 이 사람은 빗소리도 아름답게 느끼고, 사랑하는 여자도 아름답게 느껴졌지만, 그 아름답다는 것이 우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아름다움과는 달랐던 거에요. 자신이 알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눈앞에 보여지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게 이 남자에게는 꽤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눈뜨고 보면서도 비명을 지르며 흉측하게 생각해요. 이게 뭐야, 이게 뭐야 하면서 말이죠.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길에서 이 남자는 자신이 서있는 길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고 보이지 않은 채로 지냈던 그 시간들 보다 훨씬 더 많은 혼란을 겪게 되는거죠. 아, 그렇지. 연필의 생김새를 보고 연필이라고 알지 못했던 사람에게 연필을 보여줬을 때, 자신이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을 일치시키기는 쉽지 않겠지, 막연하게 저도 생각하면서 꽤 충격적이었죠. 저 사람은 볼 수만 있게 된다면 가장 큰 소원을 이루는 걸텐데,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마노아님의 리뷰를 보니 그때 그 영화가 생각나네요.영화 제목은 [사랑이 머무는 풍경]이었고, 실화를 영화화 했다고 알고있어요. 영화의 마지막에 자막이 나왔던 것 같거든요.

마노아 2009-08-01 22: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댓글 보고서 찾아봤어요. 발 킬머가 나오는 영화가 맞지요?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고 하니까 더 실감나요. 고등학교 때 제가 쓴 글에서 사고로 앞을 못 보는 중년 아저씨와 다리가 불편한 어린 소녀가 친구가 되는 이야기가 나와요. 남자가 후에 수술을 통해서 앞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데 고민 끝에 거절을 해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눈을 뜨고 나서 바라볼 세상이, 사람이 자신이 느끼고 믿어온 것과 달라질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요. 아마 그렇게 글을 쓰게 된 건 눈 감고 찾아가던 길을 눈 뜨고서 못 찾고 헤맸다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서 정했던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떡해서든 보는 것이 최우선일 텐데, 글 속에서는 그렇게 써나간 것이 좀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은 했지만요.
 

종이는 매끈하고 촘촘해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그물처럼 연결된 분자들 사이에 빈 공간이 많다. 
종이를 구성하는 분자들이 서로 끌어당기며 구조를 유지하는데, 이 힘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종이가 쉽게 찢어지는 것이다.
종이가 물에 젖으면 물 분자가 종이를 구성하는 분자들 사이의 빈 공간에 끼어들며 결합을 끊게 된다.
그래서 처음 구조가 흐트러진 종이는 다시 말린다고 해도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쭈글쭈글해진다.
종이가 쭈글쭈글해 지는 또 다른 이유는 종이를 구성하는 물질 중 일부가 물에 녹아 사라지기 때문이다.
종이는 풀이나 젤라틴과 같은 성분이 있고, 이 물질들은 종이를 만들 때 사이에 끼어들어 일정 공간을 차지한다.
종이가 물에 젖으면 이런 성분들이 물에 녹으면서 부피가 줄고, 모양에 변화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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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9-08-01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고 있으니까 고배율 루뻬를 사고 싶어져요~. 루뻬로 종이를 들여다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

마노아 2009-08-01 12:14   좋아요 0 | URL
오, 아이들이 서로 먼저 보겠다고 싸울지도 몰라요.^^;;;;
 


장난감은 살아있다 [제 962 호/2009-07-31]



친구들과 놀다 오겠다며 밖으로 나간 태연, 십분도 채 지나지 않아 씩씩거리며 집으로 되돌아온다. 현관문을 탁 닫자마자 ‘우앙~’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태연. 어찌 된 것인지 이마에는 자두만한 혹이 불룩 튀어나와 있다.

“아빠, 철수가 요요로 내 머리에 혹 만들었어요!! 엉엉~ 하도 요요 잘한다고 자랑하기에, 요요를 잘해서 만날 요요현상이냐고, 살 좀 빼라고 한마디 했거든요. 그랬더니 이렇게 해놨어, 엉엉~”

“안 그래도 비만이 걱정인 애한테 요요현상 얘기를 했으니, 너도 잘한 건 없구나. 그런데 사실 네 말에도 일리는 있어. 장난감 요요는 ‘다시 돌아온다’는 뜻의 필리핀 말이거든. 다이어트를 할 때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 버리는 요요현상도 같은 뜻이고 말이야.”

“이 요요가 그 요요라고요? 그러면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어요. 철수는 무조건 요요 대장이 틀림없을거에요. 씩씩. 아빠, 저 결심했어요. 철수를 이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요요를 잘 할 수 있는지 비결을 알려주세요!”

“요요는 가운데 축이 있는 바퀴와 기다란 줄로 만들어진 아주 간단한 장난감이야. 하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과학지식이 숨어있단다. 요요에 실을 돌돌 감아서 아래로 놓으면 실이 풀리면서 회전을 하게 되고, 실이 다 풀렸을 때는 상당한 양의 회전운동에너지를 갖게 되지.”

“맞아요. 그리고 보니 저도 매번 거의 다 풀릴 무렵 줄이 엉키고 그랬거든요?”

운동을 하는 물체는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계속 같은 운동을 하려고 해. 이런 특성을 관성이라고 하는데, 요요 역시 관성에 따라 계속 회전을 하게 되고 제 몸에 다시 실을 돌돌 말아 위로 올라오게 된단다. 손에 닿을 때쯤엔 회전운동에너지가 위치에너지로 바뀌고, 놓으면 또 회전운동에너지로 바뀌고. 이렇게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요요를 할 수 있는 거란다. 하지만 회전하는 요요의 운동을 상하 운동으로 바꾸어 주려면 중간에 약간의 시간이 필요해. 네가 너무 빨리 요요를 낚아 챈 건 아닐까?”

“와, 그럼 관성에 의해 요요가 말려 올라오는 타이밍만 정확히 잡으면 요요를 잘 할 수 있겠네요? 역시, 과학을 알아야 노는 것도 잘할 수 있겠네요.”

“그럼. 장난감에는 생각보다 아주 많은 과학지식이 숨어있단다.”

“아빠. 갑자기 궁금해 졌는데요, 뒤로 확 잡아당겼다 놓으면 쌩하고 달려가는 모형자동차 있잖아요. 그게 어떻게 달려가는지 궁금해 졌어요.”

“어릴 때 많이 가지고 놀던 태엽자동차 말이니? 갑자기 그건 왜?”

“실은 요즘에도 가끔 갖고 놀거든요. 아까도 가지고 놀다 나갔는데….”

“하하. 아이고, 우리 태연이 아직 아기였네? 그 모형자동차는 탄성을 이용하는 거란다. 스프링을 눌렀다 놓으면 다시 똑같은 모양으로 되돌아가지? 그렇게 외부 힘에 의해 변형을 일으켰다가 힘이 사라지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성질을 탄성이라고 하는데, 장난감 자동차에 태엽을 감고 뒤로 쭉 잡아당기면 탄성에너지가 크게 증가한단다. 이때 자동차를 놓으면 탄성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뀌면서 튀어나가게 되는 거지.”

“와, 재밌어요. 아빠. 또 얘기해 주세요, 또요!”

“글쎄다. 또 무슨 장난감 얘기를 해줄까. 아! 조트로프 얘기를 해주면 되겠구나. 네가 유치원에 다닐 때 만들어서 집에 가져온 장난감인데, 기억이 나려는지 모르겠다. 연속되는 동작을 그림으로 그리고 검정색 원통 안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 그것들을 붙이는 거야. 그런 다음 세게 돌리면 그림들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장난감, 혹시 기억나니?”



<장난감은 단순해 보이지만 많은 과학적 연구에 의해 만들어진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네! 기억나요. 창문 같은 틈을 통해 돌아가는 원통을 보면 정말 그림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재미있어서 꽤 오랫동안 가지고 놀았었어요.”

“맞아, 그런데 그 조트로프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어머니란다. 촛불을 한참 바라보다 갑자기 다른 곳을 보면 아직도 촛불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지? 그렇게 눈으로 본 사물의 모습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뇌 속에 남는 현상을 잔상이라고 하는데, 조트로프는 이러한 잔상효과를 이용해 여러 장의 그림을 빨리 보여줘 동영상으로 만들어주는 최초의 장치란다. 이것이 발전해서 1초에 수십 컷의 그림을 보여주면 애니메이션이, 사진을 보여주면 영화가 되는 거지.

“와, 그럼 내가 유치원 다닐 때 일종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거네요? 아빠, 이제 장난감 속의 과학을 많이 배웠으니까 실제로 확인해 봐야겠어요. 일단 워밍업 삼아 요요의 관성부터 해 볼께요.”

하지만 과학적인 이론을 알았다고 해서 실제로도 잘 되는 법은 아니다. 요요를 꺼내들고 거실에서 연습을 하던 태연이의 손가락엔 관성의 법칙 같은 건 어디로 사라지고 없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만 장식장에 있던 오래된 도자기를 ‘쨍그랑’ 깨고 만다.

“으아아악!! 조상 대대로 물려온 고려청자를 깨다니! 태연이 너, 너, 거기 못 서!!”

엄청난 실수를 깨달은 태연은 쏜살같이 줄행랑을 치고, 아빠는 순식간에 헐크로 변해 태연에게 돌진한다. 다리몽둥이라도 분지를 태세다.

“아, 아빠. 잘못했어요~ 요요! 요요! 제발 원래의 자상한 아빠로 돌아와 줘~ 요요!!”

글: 심우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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