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학기가 되면서 두발 단속 규정을 강화시켰다. 6시 반부터 교문을 지켜내는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머리를 사수하려는 녀석들은 그보다 더 일찍 나오고, 아니면 아예 1.2교시 지각을 해버린다. 그런 아이들 때문에 수업 시간에도 단속이 이뤄진다. 최근 두 해 동안 비교적 다른 학교들보다 자유로웠던(귀걸이 한 녀석들이 무척 많다!) 두발을 이제 와서 규정을 강화시키는 까닭은 금년 3학년과 1학년의 행태가 갈수록 가관이기 때문. 1학년은 보다 어리니까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도 하지만, 3학년은..... 휴, 답이 없다.
2. 그러니까 그건 화요일의 일이다. 수업에 들어갔을 때 한 녀석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껌을 씹고 있다. 껌은 뱉고 핸드폰은 집어넣으라고 하니 핸드폰만 집어넣고는 "잘 거예요."하고는 그냥 엎드린다. 선택 과목을 듣지 않을 때 자는 학생은 너무도 많으니 그걸 문제삼으려던 건 아니지만, 껌부터 뱉으라고 했다. 꿈쩍을 안 한다. 그래서 깨웠더니 바닥에도 껌을 퉤 뱉고는 다시 엎드린다. 아,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마구 흔들어 깨우는데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필살기! 간지럼을 태웠더니 버럭 성을 내면서 껌을 줍고는 버리고 와서 다시 엎드린다. 헐~ 이 녀석이 1학기 회장이었다.
3. 그리고 어제, 수요일. 역시 같은 반에서다.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교탁 바로 앞에 앉은 녀석이 갑자기 저기요! 하고는 수업을 끊는다. 보통 이럴 때 나오는 말은 '화장실 갔다 올게요" 내지 "물 마시고 올게요" 정도인데, 이 녀석이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목소리가 너무 크세요. 좀 줄여주세요."
아... 그 당혹스러움이란. 사실, 내 목소리는 크지 않다. (그게 나로서는 불만이다.) 연차가 쌓이다 보니 처음 학교 갔을 때보다는 다소 성량이 커지기는 했지만, 목소리가 너무 커서 못 참을 반응이 나온다는 건 무리라고 본다. 톤이 높을 수는 있다. 내가 듣는 내 목소리는 굉장히 저음인데, 남이 듣는 내 목소리는 아마 하이톤일 것이다. (녹음된 목소리 듣고 충격 받은 적이 있다!)
수업을 듣지 않는 녀석들이 다른 과목이라도 열심히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지들끼리 떠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아니, 다 집어치우고, 정말 목소리가 우레처럼 크다고 가정을 해도, 수업을 중지시키고 조용히 해달라는 요청이 나올 수 있는 걸까? 내가 권위적인 것일까? 이때 이 친구는 평소 버릇 없이 구는 녀석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4. 그리고 오늘. 전국 모의고사 보는 날이다. 1교시 시감이, 역시 같은 반에서 있었다.(그러니까 이 반의 시간표는 화.수.목이다.)
내 옆자리 샘과 나는 종 치기 5분 전에 입실했다. 이 학교는 언어영역 시간을 실제 수능 시간보다 10분을 더 주고서 한다.(이유는 모르겠다. 타종 간격 때문인지도) 내가 늦게 들어가지 않았고, 원래 10분 여유가 있는 시험이었고, 종 치기 전에 답안지랑 시험지 다 나눠줄 타이밍인데, 내가 들어서자마자 애들이 떼로 화를 내는 거다. 늦게 왔다면서.
그래서 안 늦었다고 하니 또 버럭버럭 성을 낸다. 그 중 한 녀석이, 미안해 해도 모자를 판에 고개 빳빳이 들고 있다는 말을 했다.
아, 난 심장이 따가웠다. 원래 수업 분위기가 안 좋기로 유명한 반이고(담임샘은 체육샘인데 엄청 무섭다), 내가 1학기 끄트머리 중간에 들어와서 더 우습게 알고 있고, 또 내가 좀 만만하게 생겼고, 화도 잘 못 내고... 무서운 샘한테 꼼짝 못하는 것처럼 만만한 샘한테 애들이 잘 대드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누군가 버릇 없이 한 놈이 목소리를 높이면 거기에 편승해서 다른 애들도 예의를 깡그리 무시하고 막되먹은 말을 쏟아내는 이 분위기. 아직 어리다고 용서해줄 일인 것일까? (고3은 어린 걸까?)
5. 기억을 돌이켜보면, 문제의 그 반에서 1학기 말에 모의고사 보던 시간에는, 내가 뭐라 질문을 했는데 한 녀석이 "몰라도 돼요." 이렇게 받아쳤던 게 생각난다. 무슨 얘긴가 꺼내면 같은 녀석이 "안 궁금해요." 이렇게 잘라버린 것도.(요즘은 그 녀석 잠잠하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은 그 반에서 수업 분위기 크게 깨지 않고 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6. 다시 두발 자유화. 머리 단속이 약하다고 생각되는 학교로 지원 학생이 몰리는데, 이 때 오는 학생들이 소위 좀 논다는 학생들이 온다는 게 장/감님들의 생각이다. 과연 그럴까?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 말이 꽤 신빙성 있게 들린다. 짧은 머리가 성적과 생활 태도에 무슨 과학적인 연관이 있느냐고, 그런 건 다 군사주의에 권위주의이고 자유를 억압하는 한 행태라고... 나도 말하고 싶긴 한데, 근데 실제로 현장에서는 머리에서 바짝 경계를 시키면 수업 분위기가 좋아진다. 그게 일종의 억압에 의한 효과일 테지만.
7. 두발 단속 따위에 기대지 않고 학생들을 이끌어내는 게 교사들의 과제 중 하나겠지만, 너무 어렵다. 아주 기본적인 '예의'조차도 부재한 상태에서는 더욱 더.
8. 박정희 수업을 하다가 인혁당 사건을 얘기해 주고 있었는데, 스윽 지나가는 장/감님. 아, 순간 식은땀이 주르륵.
없는 얘기를 한 것도 아니고, 못할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도, 난 긴장하고 말았다. 낮엔 덥지만 에어콘을 틀지 않아서 교실 문도 열어둔 상태여서 복도에서도 들렸을 텐데.
아씨, 계약 연장해야 하는데 찍히는 거 아냐? 막 지레 짐작으로 꿀꿀해지고.
이런 비교가 언감생신이긴 하지만, 진중권도 짤리는 대한민국에서 말이지비......
9. 조카 18색 크레파스 마냥 못 되게 구는 녀석들이 바글바글 하다 해도, 그래도 어쨌든 난 이 일자리를 잡아야 하고, 뻑하면 이런 저런 규정과 핑계를 방패 삼아 급여가 깎여 나오기도 일쑤지만, 그렇다 해도 밥벌이는 신성하고.
10. 씨이... 그래서 너무 우울하지만, 이 책이 나를 위로해 주는 구나.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소장했어야 했던 책이다.
도판 때문에 값이 쫌 나가지만 후회 없을 책이다. 오주석 선생님의 '한국의 미 특강'을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그 충격과 흡사하다. 멋져 멋져! 완전 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