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스위퍼 1
키타가와 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연간 자살자 약 3만 명. 매일 이 나라 어딘가에서 90명의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고... 

그리고, 그 여름에 형이 자살했다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자살 미수에 그친 사람, 그리고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건 비단 이웃 나라 일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정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 지금도 곳곳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든 없든, 그들 나름의 이유에 따라서.  

작품은, 그 형의 죽음을 계기로 다른 세계로 한 발자국을 내딛은 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평범한 스무 살의 대학생이었다.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심야 영화를 같이 보는 게 귀찮은, 약속이 있었다는 것도 여친이 화내면서 말했을 때야 기억에서 떠올리는 그런 녀석이었다. 어려서부터 수재였던 형은 의대를 다니다 그만두고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지 1년. 가끔 들여다 보며 자취방에 방세를 전달해 주러 가는 게 동생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어느 날 형은 지나가는 말투로 자살을 내비쳤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무심히, 무신경하게, 무성의하게 지나쳤는데, 그 형이 죽어버린 것이다. 곡기를 끊은 채로. 

사체가 썩은 냄새로 이웃 집에서 항의가 들어오고, 그 바람에 문을 열고 들어간 현장에서 마주친 형의 죽음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살아 생전 피가 돌던 그 인간의 형체가 아닌 부패한 고깃덩어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데스 스위퍼가 나타난다.  

그는 사체 현장을 청소하고 뒷정리를 해주는 청소 업체에서 나온 직원이었다. 시크하고 쿨하게 생긴 외모를 가졌지만 악취가 진동하는 죽음의 현장을 청소하는 낯선 직업의 사내. 형의 죽음이 자신의 삶에 던져준 질문과 회의, 그리고 슬픔에 대한 항거로 주인공 히로유키는 이 일에 뛰어든다. 물론, 무수한 시행착오와 함께. 

영화 굿바이에서 첼로를 켜던 남자 주인공은 오케스트라가 해체되면서 고향 집으로 돌아가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수익을 보장해주던 납관 일을 하게 된다. 시체를 닦아서 염을 해주고 성불을 기원해주는 숭고한 작업이었지만 썩어가는 사체와 마주하는 일은 감당하기 벅찬 일이었다. 간혹 곱게 숨지는 분도 계시지만 방치되어서 부패한지 오랜 시체라든가 자살한 시체나 사고로 죽은 시체 등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게 하는 순간이 예고도 없이 찾아든다. 심하게 부패한 사체를 닦아주고 돌아오던 날,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내의 살냄새를 격하게 들이키던 그의 모습에서 살아있는 삶의 슬픔이 느껴졌었다. 그 느낌을, 이 작품에서도 같이 읽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마주친 진짜 죽은 사람은 아빠가 전부였다. 위암이셨던 까닭에 식사를 거의 못하셔서 거의 해골 수준으로 마르신 채 돌아가셨다. 너무 말라서 눈을 채 못 감으셨던 게 오래오래 마음이 아팠는데, 그래도 가족이 감당하기에 최악의 사체는 아니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모든 죽음과 이별은 아픈 거지만, 그래도 자살이나 사고사는 아니었다는 것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히로유키의 파트너가 되어준 미와 레이지. 좀처럼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 남자는 형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워하는 히로유키에게 빨간 두건 아가씨의 이야기를 해준다. 늑대에게 우걱우걱 잡아 먹히면서 끝나버린 끔찍한 동화의 이야기. 그 속에서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의 뒷처리를 감당해내는, 죽음의 청소부인 그가 말이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는 일을 걱정하기 마련이고, 세입자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집주인은 다시 세입자를 들일 수 없을 거란 부담에서 먼저 허덕인다.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서 안타깝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현실의 버거움을 먼저 생각할 뿐이다. 그 역시 지극히 인간다운 일이었다. 그 걱정에 싸인 주인 아주머니 앞에 미와 레이지가 보내준 반응은 이것이다. 



저 무심한 얼굴과 냉혹한 한 마디라니. 그는 어줍잖은 위로를 던지지도 않고 과분한 비난을 쏟지도 않는다. 그저 치러야 할 견적을 얘기해줄 뿐. 

지금도 수시로, 사람들은 죽고 또 죽어가고 있고, 그렇게 죽은 사람의 뒷처리를 해줘야 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생계의 수단이든, 혹은 숭고한 사명감이든 그런 사람들이 이 사회 어딘가에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다. 다음 주 개봉하는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여주인공 하지원이 맡은 역할은 '장례지도사'다. 죽음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엄연히 전문직이고 꼭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청소부'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표현되겠지만 그 속에서 담아내는 죽음의 의식과 산자가 망자에게 보내는 예의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이 책은 현재 4권까지 나왔다. 4권이 지난 주 말인가 나왔을 거다. 사람에 따라서 내용에 깔린 의미를 좇아가기도 전에 사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호불호가 좀 갈릴 수는 있겠지만 기대치가 점점 커질 것 같은 작품이다. 호문쿨루스나 이키가미 등을 만났을 때 받았던 그런 기묘한 충격 같은 것. 우리나라와는 확실히 다른 일본 만화의 강점 말이다. 일단은 소재의 특별함 때문에 흥미를 끌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어떤 감동 같은 것이 작품 안에 있다. 생과 사에 대한 좀 더 심각한 접근과 사고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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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9-16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서워요.ㅠ.ㅠ 소재의 특별함은 좋지만 무섭단 생각이 먼저 드네요.

마노아 2009-09-17 00:09   좋아요 0 | URL
인간이 비로소 평등해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면 무섭기보다 좀 숭고하단 생각도 들어요.
사체는 끔찍하지만 풀어내는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만 해요.^^

후애(厚愛) 2009-09-17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첫번째 그림을 보는순간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마노아님은 정말 다양한 책들을 많이 보시는 것 같아요.^^

마노아 2009-09-17 07:02   좋아요 0 | URL
아마 옆의 사신 얼굴 때문인가봐요.
읽으면서 볼 때는 두번째 그림이 더 슴뜩했답니다. 너무 리얼해서요. 아, 현실은 이렇지...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무스탕 2009-09-17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만화의 소재의 다양성은 정말 부러울 따름이지요.
그 다양한 소재를 대중에게 인식시키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들은 아마 세계 최고일거에요.

마노아 2009-09-17 12:06   좋아요 0 | URL
아직도 무궁무진한 소재로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니 좀 배가 아프고 또 고맙고 하네요.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카스피 2009-09-17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이만화 보았읍니다.우리에게는 저질 음란 폭력만화로 매도되고 있지만(뭐 한편으론 사실이지요),일본 만화는 우리가 다루지 못하는 갖가지 소재를 정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그리고 있지요.사실 이 만화의 소재도 일상에서 우리가 볼수 있는것이만 잘 알수 없는 세계를 그리고 있네요.
실제로 저런 직업이 정말 있을까도 싶지만,미국 같은 경우는 시체를 다듬는 직업(사고등으로 시체가 온전치 못한 상태를 살아 생전 모습 그대로 복원해주는 직업)이 있다고 하더군요.미국은 우리와 달리 관을 열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관습이 있어 이런 직업이 발달한것 같더군요.
아무튼 이 만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흥미 진진합니다^^

마노아 2009-09-17 12:08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보셨군요. ^^
미국에선 그런 직업도 있네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고인과 작별인사하는 관습이 달라서 그런가 봐요. 천주교에서도 그렇게 인사하는 듯해요.

2009-09-17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09-09-18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절실한 죽음을 맞닥뜨려본 적이 없어서...
근데 이런 소재를 만화로 표현하기도 하는 일본의 정서가 새롭네요.
전 만화와 그리 친하지 않아서.^^

마노아 2009-09-18 15:13   좋아요 0 | URL
작가가 등장인물을 통해서 죽음에 대해서 너무도 완벽하게 봉쇄해 놓은 일본 사회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어요. 점점 더 무서워지는 세상인지라 여러 방향에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었답니다.
전 만화랑 더 친해지고 싶어요.^^

같은하늘 2009-09-1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마노아님 머리는 안 자르셨는지요?
배꽃님 서재에 갔다가 2006년인가 단발머리의 마노아님을 보았는데 완전 고등학생~~ㅎㅎㅎ

마노아 2009-09-18 15:13   좋아요 0 | URL
아, 아직이에요. 다음 주 시험 기간에 자르는 게 어떨까 벼르고 있답니다.^^
배꽃님 서재의 사진은 제가 20대 중반이었을 때 사진이에요. 으하핫, 고딩같아 보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입지요.^^ㅎㅎㅎ
 

온라인 연재했던 김훈의 소설이 드디어 책으로 묶여 나온다. 10월 8일 발간이니 아직도 한 달 가까이 남았다. 예약 주문시 친필 사인본이 온단다.  

그런데 출간되면 알사탕을 주지 않을까? 난 친필보다 알사탕을 원하오. -_-;;; 

나의 야곱이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연재한 소설의 제목은 '공무도하가'다. 바쁜 일정들에 밀려서 몇 해 째 연재가 이어지질 못하고 있는데 그 사이 김훈의 새 소설이 '공무도하'로 잡혀 있어서 너무 놀랐다. 다행히 내용은 안 겹치는 듯하다. 온라인 연재를 읽지 않는 나지만 혹 시대적 배경이 겹칠까 봐 딱 한 번 클릭해 봤는데 거기선 현대가 배경이었다. 그 회만 그런 건지 계속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놀랄 일은 없을 게다.  

표지는 실물과는 느낌이 좀 다를 거란 예상이 든다. 어째 '질감'이 남다를 것 같은 기분. 여하튼, 김훈 작가의 신작은 늘 반갑다. 이번에는 어떻게 독자를 매료시킬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윙크 연재물 중 내가 참 좋아하는 란제리 4권.  

토요일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오늘부터 검색이 된다.  

표지를 장식한 이는 역시 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최부장 나리~ 

진무가 주인공이지만 난 최부장 쪽이 더 멋지더라! 

윙크 연재물로 앞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미 다 본 거라도 반가운 건 반가운 거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윙크가 나오는 날이구나. 게다가 세븐 시즈 14권도 나오는 날. 야호! 

 

아직 이미지도 안 뜨고 있지만, 세븐시즈 14권이다.ㅎㅎㅎ

...... 

이미지 떠서 나중에 추가했다.^^ 

오늘 도착했다. 아직 비닐도 못 뜯었다. 기대 가득!!!  

 

 

 

흑집사 7권. 알라딘은 일단 '한정판'만 먼저 검색이 되고 있다.  

값도 두 배다. 한정판 답게...;;;; 

흑집사는 재밌게 읽고 있지만 어쩐지 정가 다 주기는 조금 아깝단 생각이 들어서 계속 중고샵만 노려보고 있다. 그 덕분에 배송료 아끼려다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곤 한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중고샵의 유혹...ㅜ.ㅜ 

이미지가 아직 안 보이는데 치키타 구구.

절판본 이후의 내용이니까 팬들은 더 기대가 클 거다. 표지도 같은 스타일로 나왔을 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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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9-09-1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내일 세븐시즈 나와요? +0+
마노아님 소식 없으면 전 신간 못챙겨요.. 앞으로 자~알 부탁드려용~~~ ^^*

마노아 2009-09-15 11:16   좋아요 0 | URL
방금 전 주문하면서 추가하려고 했더니 아직 목록에 추가 안 됐어요.
알라딘 만화책은 원래 좀 늦으니까 오후에 다시 검색해 봐야겠어요.^^

후애(厚愛) 2009-09-15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색하다가 김훈 공무도하 봤어요.^^
예약 주문시 친필 사인본을 준다고 해서 욕심을 내고 있었답니다.
전 친필 사인본이 탐나네요. ㅎㅎㅎ

마노아 2009-09-15 11:16   좋아요 0 | URL
예전에 강연회도 갔었는데 책을 안 들고 가서 사인을 못 받았어요.
그런데 별로 아쉽지가 않았어요. 책 보고 얼굴도 봤으니 되었다 싶었죠.^^

하늘바람 2009-09-1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무도하 그럼 온라인연재 닫힌건가요? 한번 보았는데

마노아 2009-09-15 11:16   좋아요 0 | URL
문학동네 카페 들어가 보세요. 아직 미출간이니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순오기 2009-09-1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친필사인이 더 좋아요~ ^^

마노아 2009-09-15 11:17   좋아요 0 | URL
작가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아마 만화책이었으면 오히려 작가 사인본에 더 열광했을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9-09-1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인본이라니 당장 주문하겠습니다.

마노아 2009-09-15 14:47   좋아요 0 | URL
쥬드님과 넘흐 어울리는 책이에요.^^

2009-09-15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5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09-09-1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배송일이 너무 늦어요. 다음주도 아니고 달을 넘겨, 추석을 지나서 배송이라니..
저도 사인본보다는 알사탕이 더 좋아요 ^^;;

마노아 2009-09-15 14:48   좋아요 0 | URL
이럴 경우 준비된 책 먼저 보내고 나중에 공무도하 보내주겠죠. 배송비 두 번 들여도 책을 더 많이 파는 게 알라딘은 유리할 거예요. 우리는 알사탕 자매 할까요? ^^ㅎㅎㅎ

꿈꾸는섬 2009-09-1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사탕보다 친필사인 좋아요.^^ (사실 알사탕이 뭔지 잘 몰라요.)

마노아 2009-09-18 00:40   좋아요 0 | URL
친필 사인은 제가 읽은 다음에, 직접 작가님 뵙고 제 이름자 박아서 받을 때 제맛이지요.^^ㅎㅎㅎ
알사탕 천 개는 사실 현금 5천원이거든요. 호호홋^^

치유 2009-09-18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인보다 알사탕을 원하오하시기에 알사탕 뭐하시게?/했는데 이곳 댓글 보니 참;;ㅋㅋ

마노아 2009-09-18 00:40   좋아요 0 | URL
하하핫, 배꽃님도 알사탕이 뭔가 하셨나요? ^^

같은하늘 2009-09-18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사탕이 좋아요~~~
현실적인 아줌마~~~ㅎㅎㅎ

마노아 2009-09-18 15:14   좋아요 0 | URL
만화 김대중으로 오늘도 알사탕 천 개 받았어요.^^ㅎㅎㅎ
 


한국인의 핏줄, 누구와 더 가깝나? [제 981 호/2009-09-14]


동북공정의 연구물인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속론’(2003년)에는 고구려인이 중국의 고대 국가인 은나라와 상나라의 씨족에서 분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 한족은 혈연적으로 한 핏줄이란 얘기인데, 과연 그럴까?

2003년 단국대 생물과학과 김욱 교수는 동아시아인 집단에서 추출한 표본을 대상으로 부계를 통해 유전되는 Y염색체의 유전적 변이를 분석했다. 이 결과 한국인은 주로 몽골과 동․남부 시베리아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전자 형, 그리고 동남아시아 및 중국 남․북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전자형이 모두 발견되었다.

한국인은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 가운데서 동남아시아인인 중국 동북부 만주족과 유전적으로 가장 유사했고, 중국 묘족이나 베트남 등 일부 동남아시아인과도 비슷했다. 이는 한민족이 크게 북방계와 남방계의 혼합 민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2300여 년 전 농경문화와 일본어를 전달한 야요이족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 본토로 이주했음을 나타내는 유전학적 증거이기도 하다.

2006년 김 교수는 모계유전을 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도 분석했다. Y염색체가 아버지를 통해 아들에게만 전달되는 부계유전을 하는 것과 달리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머니를 통해 아들과 딸 모두에게 전달된다. 더욱이 미토콘드리아 DNA는 돌연변이율이 높고, 교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 정보인 하플로타입 상태를 분석해 조상을 추적해 낼 수 있다.

하플로타입이란 일련의 특이한 염기서열이나 여러 유전자들이 가깝게 연관돼 한 단위로 표시될 수 있는 유전자형을 가리킨다. 하플로그룹은 같은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자형을 가진 그룹으로 보면 된다. 한국인은 3명 가운데 1명꼴로 몽골과 중국 중북부의 동북아시아에 많이 분포하는 하플로그룹D 계통이 가장 많았고, 전체적으로 한국인의 60% 가량이 북방계로, 40% 가량이 남방계로 분류됐다.

유전적인 분화 정도를 통해 분석한 결과, 한국인은 중국 조선족과 만주족 그리고 일본인 순으로 가까웠다. 그러나 중국 한족은 베트남과 함께 다른 계통에 묶여 한국인과는 유전적으로 다소 차이를 보였다. 동북아시아에 속한 중국 북경의 한족은 한국인과 다소 비슷한 결과를 보였지만 중국 남방의 한족과는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특히 만주족과 중국 동북 3성인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중국 한족보다는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더 가까웠다. 이 때문에 김 교수는 “과거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활동했던 고구려인의 유전적 특성은 중국 한족 집단보다 한국인 집단에 더 가깝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중국 한족을 물리치고 중원을 점령했던 금나라의 여진족(훗날 만주족)이 신라인의 후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금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금사(金史)에는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금을 계승한 청나라의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루원류고’에는 금나라의 명칭이 신라 김(金)씨에서 비롯됐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한국인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해 보면 우리의 유전자가 누구와 가까운지 알
수 있다. 사진은 생명공학기업인 마크로젠이 소개한 한국인 유전자 지도 초안
이다. 사진 제공. 동아일보>

청나라 황실의 만주어성 ‘아이신줴뤄’ 중 씨족을 가리키는 아이신은 금(金)을 뜻한다. 이는 아이신줴뤄를 한자로 가차한 애신각라(愛新覺羅)에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이런 결과로 볼 때 한국인의 유전자는 북방계가 다소 우세하지만 남방계와 북방계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섞여있다. 4000~5000년 동안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발달시키고 역사적인 경험을 공유하면서 유전적으로 동질성을 갖는 한민족으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만주에 살던 이들은 중국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발원한 한족과는 달리 한반도에 살던 이들과 깊은 혈연관계였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나아가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웠던 여진족과 만주족의 역사를 한국사에 새로 편입시켜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 ‘단일민족’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단일민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유전적 동질성을 획득했다는 의미이지 한국인의 기원이 하나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은 동아시아 내에서 남방과 북방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이뤄져 형성된, 다양성을 지닌 민족이다.

유전적으로 다양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집단 구성원이 갖고 있는 유전적 다양성이 세대를 통해 유지될 확률이 크다. 그리고 집단의 안정성도 높아진다. 다양한 유전자를 보유한 집단은 단순한 집단에 비해 집단이 유지되고 진화하는데 유리하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인은 ‘잡종강세’의 전형적인 집단이다. 어쩌면 중국이 동북공정을 서두르는 이유도 한국인의 유전적 다양성을 두려워해서가 아닐까?



 
 

KISTI NDSL(과학기술정보통합서비스) 지식링크

○관련 논문 정보
Y-염색체 DNA haplogroup과 동아시아인집단에서 초기농경민족의 집단팽창[바로가기]
인간 Y 염색체: 구조, 기능 그리고 진화[바로가기]
한국인 집단의 미토콘드리아 DNA HV1 부위에서의 염기서열 다양성[바로가기]

○관련 특허 정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개인인식표지(한국등록특허)[바로가기]
인간 미토콘드리아 DNA의 변이 판별 방법과 변이 판별용폴리뉴클레오티드 프로브, DNA 칩 및 키트(한국등록특허)[바로가기]
유전자의 변이 분석 키트(한국등록특허)[바로가기]

○해외 동향분석 자료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기술과 돌연변이 - 2009년 [바로가기]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분석완료 - 2009년 [바로가기]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 점 돌연변이 병리학의 20년 - 2009년 [바로가기]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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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9-14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나라의 시조 김극수와 애신각라 이야기를 담은 강숙인 소설 '초원의 별'을 읽어보세요.
마의태자 아들이 있었다는 설정으로 진행되는데 굉장해요~ 영화로 나와도 좋을 것 같아요.

마노아 2009-09-14 16:28   좋아요 0 | URL
오, 굉장하단 말이지요. 역시 강숙인 작가님은 역사 소설에 탁월해요. 찾아볼게요. 감사해요.^^
 


뭐? 심장을 전송한다고? [제 980 호/2009-09-11]



아빠 방문 바로 앞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며칠 전 생일선물로 받은 반짝반짝 빛나는 리본 핀을 올려놓은 태연. 그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리고는 아빠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목청껏 소리 높여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다.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우리 아빠가 갑자기 천사처럼 착해지셔서 이렇게 예쁜 선물을 매일매일 사주도록 해주소서. 나무아미타불! 아멘~~”

“하하. 태연아, 종교를 통일해 보면 어떨까?”

“여러 신께 빌어야 더 잘 들어주실 것 같아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아빠 생각에는 프린터 기술이 빨리 발전하도록 기도드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아빠가 산타할아버지가 될 일은 절대 없으니까 말야.”

“엥? 핀하고 프린터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프린터는 컴퓨터로 작성한 문서나 사진 같은 걸 종이 위에 인쇄해주는 기계잖아요.”



<팹앳홈(Fab@home)입체 프린터(Fabber)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그건 2차원 평면 프린터고, 3차원 입체프린터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단다. 평면 프린터가 잉크를 분사하는 것이라면, 3차원 프린터는 액체 플라스틱, 액체 스티로폼, 열가소성 수지, 고분자 같은 것들을 차곡차곡 벽돌을 쌓듯이 분사하지. 물론 평면데이터가 아닌 3차원 입체설계도를 입력해야 되고 말이다. 그렇게 하면 네가 좋아하는 반짝이 핀은 물론 장난감, 핸드폰 등 뭐든 찍어낼 수가 있어. 입체프린터 기술이 더 발달하면 쇼핑몰에 가서 물건을 사는 대신, 인터넷으로 3차원 설계도를 내려받아 집에서 인쇄하는 세상이 되겠지.”

“헉, 완전 대단해!! 이 핀 빨리 인쇄해 주세요!! 많이도 안 바래요. 딱 천개 만!”

“급한 성격 하고는. 기술이 더 발달해야 한다니까. 아직까지 복잡한 제품을 인쇄하기는 힘들고 값도 상당히 비싸단다. 하지만 늦어도 10년 안에는 입체프린터가 보편화 될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상하고 있어. 그때가 되면 인간의 장기까지 쉽게 인쇄할지도 모른단다.”

기술 발달을 더 기다려야한다는 말에 풀이 죽었던 태연. 다시 반짝 눈을 뜬다.

“예? 장기도 인쇄해요? 제 꿈이 의사잖아요, 아빠. 어떻게 하는데요?”



<입체프린터의 작동 원리 자료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에고, 삼일 만에 장래희망이 또 바뀌었다는 건 내가 미처 몰랐구나. 금방 말한 것처럼 입체프린터는 카트리지 안에 아주 다양한 물질을 넣을 수 있어. 액체 프라스틱 같은 화학물질 대신 살아있는 세포를 카트리지에 넣고 뿌리면 인체조직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벌써 피부나 뼈는 인쇄할 수 있는 수준이란다. 무독성 젤 위에 세포를 뿌리고 다시 젤을 깔고 세포를 뿌리고. 이걸 반복한 다음 한동안 그대로 두면 세포끼리 서로 결합해 피부나 뼈로 성장하는 거지. 이 기술이 보편화되면 화상을 크게 입은 환자도 허벅지나 엉덩이 피부를 떼어내 이식을 받는 대신 ‘인쇄’된 피부를 이식받을 수 있게 되겠지.”

“그럼 입체프린터 기술이 더! 더! 발달해서 폐나 심장 같은 장기까지 인쇄할 수 있게 되면, 이식할 장기가 없어서 죽는 사람은 더 이상 없겠네요?”

“뭐,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그리고 아마 그런 시대가 되면 로봇들이 스스로를 인쇄해서 무한히 숫자를 늘려가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삶 곳곳에 로봇이 보편화돼서 생활이 아주 편리해 지겠지만, 반면에 로봇이 인류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될 거라고 예언하는 미래학자들도 있어.”

아빠의 위협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이미 태연의 머릿속은 엉뚱한 상상으로 가득 찼다.

“일단 몽몽이를 한 300마리쯤 인쇄해서 집 안을 귀여운 몽몽이로 가득 차도록 만드는 거예요. 한 마디로 개판을 만드는 거죠! 거기다 고양이 200마리, 이구아나 100마리, 햄스터 150마리 쯤 추가하는 것도 아주 좋아요. 그리고 숙제해주는 로봇, 시험 대신 봐주는 로봇을 마구 인쇄해서 그야말로 유토피아를 만드는 거예요! 원더풀 월드!!”

“오호, 그건 힘들겠는데. 그런 유토피아가 오기 전에, 아빠가 인쇄한 태연이 혼내주는 로봇들이 이미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으흐흐”

글 : 심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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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9-14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계가 발전해가는 속도를 인간이 못따라가는 시대가 올것 같아요 흑흑...

마노아 2009-09-14 16:28   좋아요 0 | URL
우리 살아있는 동안에 그런 일이 벌어지겠죠? 이미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흑흑...

카스피 2009-09-14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대단한 시대가 도래하는군요^^

마노아 2009-09-15 11:17   좋아요 0 | URL
요 기술은 몇 년 전에도 소개 됐었는데 그 후 얼마나 진전된건 지 모르겠어요.^^
 


1박 2일, 캠핑의 과학 [제 979 호/2009-09-09]


아직까지도 고급 펜션이나 휴양지 근처의 콘도에서 보내는 휴가를 계획하고 있나요? 야영을 하면서 겪어야 할 번거로움과 불편함이 끔찍하다고요? 캠핑 장비가 발달하면서 이제는 대자연 속에서도 편안한 휴가를 보낼 수 있답니다.

요즘 캠핑 장비 대부분은 휴대하기 좋도록 부피와 무게를 줄였고 외부충격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내구성을 높였어요. 게다가 전국에는 차로 1~2시간 거리 떨어진 거리에 캠핑장이 약 200여 곳 운영되고 있답니다. 그래도 고민된다면 캠핑 초보인 제가 1박 2일 동안 겪은 체험기를 들려드릴게요.

2009년 9월 0일 오전 10시 날씨: 맑음
오늘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캠핑을 떠나는 날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모 TV 광고가 떠올라 큰맘 먹고 고가의 텐트도 질렀다. 설레서일까. 마치 소풍가기 전날 밤의 초등학생처럼 잠을 못 이루고 이리저리 뒤척였다.

차로 1시간 반을 달려 경기도 여주의 한 캠핑장에 도착했다. 한적한 곳을 찾아 짐을 풀었다. 바로 옆에서 한 가족이 텐트를 설치하고 있었다. 힐끗 살펴보니 캠핑카에 각종 장비까지 두루 갖춘 모습이 말로만 듣던 캠핑 고수임에 틀림이 없었다. “혼자 오셨나 봐요?” 아버지로 보이는 아저씨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사실 나는 텐트 하나를 고르는 일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75D/폴리에스테르/차광피그먼트/UV코팅.’ 제품 대부분이 이처럼 암호 같은 문구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75D’는 텐트 원단을 만드는 원사(실)의 굵기를 나타내는 수치란다.

실의 길이가 9000m일 때 무게가 1g이라면 1D(데니어), 무게가 75g이라면 75D로 나타내는 식이다. 길이가 같은데 더 무거운 75D는 1D보다 실이 굵다. 그래서 소형텐트나 경량텐트를 만들 때는 얇은 실을, 대형텐트나 튼튼한 텐트를 만들 때는 두꺼운 실을 쓴다고 한다.

텐트에 많이 쓰이는 원단에는 폴리에스테르와 폴리아미드(나일론)가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폴리에스테르는 습기에 강할 뿐 아니라 잘 찢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더러움이 잘 타고 정전기가 잘 생기는 단점이 있다.

“반면 폴리아미드는 폴리에스테르보다 탄력성이 좋고 강도가 높아요. 하지만 비가 오거나 습기가 많을 경우 수분을 흡수하죠.” 극성 부분인 아미드기(-CONH)가 물과 수소결합하기 때문이다. 보통 폴리아미드는 상온(20˚C), 상대습도 100%에서 중량의 약 9%까지 수분을 흡수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폴리아미드에서 비극성부분인 메틸렌기(-CH2)는 높이고 아미드기의 농도를 상대적 줄였다고 한다.

또 최근 나온 제품은 텐트 표면에 ‘차광피그먼트’ 코팅을 해 내부로 투과되는 태양빛도 줄일 뿐 아니라 UV코팅을 해 자외선까지 차단한다는 아저씨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캠핑장비의 발달로 대자연 속에서도 편안한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사진 제공. 동아일보>

2009년 9월 0일 오후 3시 날씨: 흐림
“좋은 폴을 구입하셨네요.” 텐트의 뼈대 역할을 하는 폴을 조립하는 동안 아저씨는 폴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산 폴은 알루미늄에 구리와 마그네슘을 첨가해 만든 ‘두랄루민 폴’이라고 했다. “두랄루민의 강도는 철과 비슷하지만 무게는 철의 약 3분의 1로 훨씬 가벼워요.”

갑자기 아저씨가 폴을 부러트릴 기세로 구부렸다. 깜짝 놀라자 아저씨는 하하하 웃으며 “두랄루민은 탄력성이 좋아 이렇게 U자 모양으로 휘어도 부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래 두랄루민은 비행기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개발됐지만 최근에는 레저용품에도 많이 쓰인다.

아저씨는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만든 폴을 사용하고 있었다. “FRP는 철보다 강하지만 알루미늄보다 가볍고 탄성력도 좋아요. 불포화 폴리에스테르나 에폭시수지에 지름 0.1mm 이하로 가공한 유리섬유를 덧씌워 만들기 때문이죠.” 아저씨는 “불포화 폴리에스테르나 에폭시수지는 FRP의 강도를, 유리섬유는 유연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2009년 9월 0일 오후 5시 날씨: 소나기
후두둑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하기 위해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아저씨는 “캠핑을 하다 보면 지금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에 비가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타프는 준비 안 하셨나 봐요?” 사실 그때까지 난 타프가 뭔지 몰랐다. “타프는 텐트 위에 치기도 하고 텐트 주변에 설치해 조리공간이나 활동공간을 확보하는 데 쓰는 일종의 천막이에요. ‘타폴린(Tarpaulin)’의 약자로 방수가 되는 천이란 뜻이죠.”

본래 타폴린은 돛이 물에 젖지 않도록 하고, 비가 올 때 갑판을 덮는 섬유에 방수를 하기 위해 기름 성분인 타르(Tar) 칠을 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최근에는 섬유에 방수능력이 있는 합성섬유 수지를 코팅해 타폴린을 만든다.

“대부분의 텐트나 타프는 폴리우레탄으로 코팅해 방수능력을 높여요. 텐트나 타프에는 ‘내수압 3000mm’와 같은 표기가 있는데, 내수압이란 텐트나 타프에 쓰인 원단의 방수능력을 알려주는 수치예요.” 지름 10mm의 원통을 원단 위에 세운 뒤 안쪽으로 물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물기둥의 높이를 재 내수압을 측정한다. 내수압 3000mm의 제품은 텐트 위에 높이 30cm의 물기둥을 세워도 물이 새지 않는 셈이다.

빗줄기가 굵어지는 것 같아 잠시 나가봤다. 비가 텐트에 닿자마자 구슬처럼 주르륵 흘러내린다. 테플론으로 한 번 더 코팅한 덕분이다. 테플론은 듀폰(Dupont)사가 만든 제품 이름으로 프라이팬에도 쓰인다. 테플론으로 프라이팬 바닥을 코팅하면 물방울이 스며들지 않는다. 텐트와 타프도 테플론으로 코팅하면 표면 저항이 작아져 빗방울이 고이지 않고 흘러내린다. 다시 들어와 텐트 안에 누웠다. 마음이 한결 놓여서일까. 빗소리마저 경쾌하게 느껴진다.

2009년 9월 0일 저녁 7시 날씨: 갬
깜빡 잠이 들었다. 어느새 비는 그쳤고 비를 뿌렸던 먹구름도 모두 물러갔다. 해는 서산에 걸쳐 뉘엿뉘엿 지고 있다. 갑자기 허기가 진다.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아저씨가 가족들과 함께 가솔린 스토브로 음식을 하고 있었다. “가솔린은 계절이나 날씨와 습도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어요. 오늘처럼 비가 오고 난 뒤 습한 경우에도 가솔린은 일정한 화력을 유지할 수 있죠.”

소형 가스레인지에 많이 쓰는 부탄가스는 겨울철에는 사용하기 어려워 캠핑 장비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부탄가스의 끓는점이 -0.5˚C로 기화가 잘 일어나지 않아 화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캠핑장에서는 가솔린이나 액화석유가스(LPG)를 많이 쓴다. LPG는 끓는점이 -42˚C~-1˚C로 부탄가스보다 낮다.

저녁식사를 마치자 해가 완전히 넘어가 금방 어둑어둑해졌다. 음식을 정리하고 텐트 안에 들어와 지금 이 일기를 쓴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펼쳐질까. 쉽게 잠을 못 이룰 것 같다.

글 이준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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