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강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겠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9-11-2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이 시가 생각날때가 있어요. 절절하고 아름답지요?

마노아 2009-11-27 15:12   좋아요 0 | URL
오늘 국어과 공개수업이 있었는데 박재삼 시인의 '추억에서'가 수업 주제였어요.
옆자리에도 국어샘이 앉아 계시는데 이 시가 가장 좋다고 해서 찾아보니 정말 좋더라구요.
그래서 함 올려봤습니다. 절절하고 아름다워요.(>_<)

꿈꾸는섬 2009-11-2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음이 타는 강, 정말 좋죠? 저도 박재삼님 시중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마노아 2009-11-28 12:35   좋아요 0 | URL
박재삼 시인을 어제야 알았는데, 이 시 참 좋네요.^^
 
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해서, 아름답다고 표현해야 더 맞을 것 같은 고운 책들이 있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그랬고, 초정리 편지가 그랬고, 날지 못하는 반딧불이가 그랬다. 그리고 이 책도 거기에 합류해야 되겠다. 잔잔하지만 뭉클한 감동을 함께 선사해 주었으니 어떤 찬사로도 부족하다.  

초등 고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한 작품인데, 동화라고 하기엔 좀 더 묵직하고, 소설이라고 하기엔 또 벅차게 순수하다. 문학동네어린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다른 경쟁작을 내가 알지 못하지만, 심사위원단의 눈을 사로잡았을 이 작품의 빼어남을 결코 의심하지 못하겠다.  

배경은 조선 후기,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막 퍼지고 있을 무렵이 배경이다. 신주 소각 사건이 나온 걸 보니 정조 치세이거나 그 후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천주교' 혹은 '서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책'이 주인공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장이의 아버지는 필사쟁이인데, 나라에서 금하는 서학 책을 필사했다가 장을 맞고 장독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일을 맡겼던 책방 주인 최서쾌에게 거두어져 장이는 책방 사환으로 지낸다. 책방의 단골 손님인 도리원 기생 미적, 그 기생집에 애기 기생으로 팔려온 낙심이, 그리고 소문난 장서가 홍교리가 등장한다.  

이야기를 꿰어나가는 힘은 모두 '책'에서 시작된다. 평생에 소원이 자그마한 책방 하나를 내는 게 꿈이었던 돌아가신 아버지, 그 아버지처럼 필사쟁이로 커가는 장이(게다가 성은 '문'씨로 붙여 읽으면 '문장'이 이름이다!), 빼어난 솜씨의 전기수, 코끼리 어금니로 만든 책갈피를 갈취해 간 허궁제비와의 만남도 모두 책과 관련이 있다. 장이는 물론 장이의 가족과 이웃, 소중한 사람들에게 위기를 안겨주는 것도 모두 책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그리고 장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깨달음의 불씨도 역시 책에서 지펴진다. 

이쯤 되면 책과 노니는 집(서유당)에는 장이만 들락거리는 것이 아니라 독자도 들고 나며 함께 즐길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신명나게, 때로 콧날 시큰할 정도로 감동을 느끼면서... 

작품의 멋을 더하는 그림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유독 좋아하는 김동성 작가의 멋드러진 그림들이 들어가 있다.  



낙심이와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꿔간 돈 내놓으라고 야무지게 손 내밀며 조금은 심통스런 표정을 짓는 모습, 그리고 아름다운 재회의 순간까지. 병약한 인테리의 전형처럼 보이는 홍교리의 얼굴도 마음에 들어찬다. 저 얼굴엔 겸손과 소박한 감사의 모습은 보여도 양반입네 하는 거드름은 보이지 않는다.  



계절 색이기도 하지만, 맑고 단아한 느낌으로도 초록색은 지극히 잘 어울린다. 낙심이의 다홍치마가 보여주는 보색 대비도 강렬하되 자극적이지 않은 멋을 갖고 있다. 지금 장이는 낙심이에게 '심청전'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려주고 있다. 아직 어린 장이는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마음 시중'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 낙심이를 낙심(이름의 낙심이 요 낙심 맞다!)시키고 말지만 그렇게 눈물바람 콧물바람 속에 성장해 가는 모습도 대견하다.  



서유당에서의 장이 모습이다. 손을 자세히 보면, 아직 어린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이 익었음을 느낄 수 있다. 동양인답게 낮은 콧대는 멋을 부리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저 뒤에 꽉 찬 책등이 또 다시 가슴을 왈랑거리게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딱 보는 순간 '날지 못하는 반딧불이'가 바로 떠올랐는데, 청록빛 물빛 번지는 색깔 때문일 것이다. 전기수 아저씨가 맛깔스럽게 흥부전을 들려주고,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귀를 기울이는 자그마한 축제 한마당의 분위기를 함께 만끽할 수 있다.  



작은 소품들도 눈을 즐겁게 한다. 막 조선에 소개되었을 땅콩을 보는 순간 책 밖으로 고소한 향이 나는 것 같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이 책의 주제 의식을 반영한 저 현판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홍교리는 직/간접적으로 장이를 성장시켜주는 선생이 되어주는데, 그가 전하는 말들은 독자가 새겨들어도 하나 부족할 게 없다.  

“어렵고 재미없어도 걱정 마라. 네가 아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어려운 글도 반복해 읽고, 살면서 그 뜻을 헤아려 보면 ‘아, 그게 이 뜻이었구나!’하며 무릎을 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어려운 책의 깊고 담백한 맛을 알게 되지.” – 53쪽 

“네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답을 물을 책도 있고, 심심하고 답답할 때 재미를 줄 책도 있지 않느냐. 네 아버지가 살던 때와 네가 커서 살 세상은 다를 게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 87쪽 


“어려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느냐?”


“양반들이 어려운 중국 글자만 고집해서 이제껏 사람들이 그런 재미난 것을 놓친 듯싶다.” – 154쪽 


“그래도 과거를 보고 공자님 맹자님 말씀을 읽으려면 한자를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조선 사람 모두가 과거를 보는 것도 아니고, 정 그러면 과거도 언문으로 보면 되지 않느냐?” – 155쪽  

젊은 나이에 교리가 된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인 만큼, 그 스스로 옛날의 조선과 지금의 조선이 다름을 입증해 주고 있다. 물론, 장이가 장차 더 커서 만나게 될 조선은 더욱 다를 것이고!

어려운 글이 좋은 글이냐는 반문도 새겨들을 만하다. 어려운 리뷰가 좋은 리뷰냐고 바꿔 생각해 봄직도 하다. ^^


과거도 언문으로 보면 되지 않느냐는 반격은 더 충격적이다. 그렇게 평생을 바쳐 어려운 한자 공부를 해도 중국 사람과 만나서는 대화 한마디 할 수 없다는 얘길 들으면서 그걸 '영어'로 대치시켜 보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책이 주는 즐거움을 생각해 보며, 책이 도리어 감옥이 되는 일도 생각해 본다. 이렇게 책과 노닐며 즐거움을 갖고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베풀며, 내적인 성숙함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고 바쁘고 놀라운 일인데, 그 신나는 책과 어울리지 못하고 집착만 하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은 '역사동화'로서도 모자람 없이 훌륭하다. 역사적 배경을 실감나게 재현했지만, 어디까지나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에 기댄 아름다운 이야기 한자락! 이런 책을 어린이들만 읽는다는 것은 도저히 배가 아파 못 견딜 일이다. 뒷표지 날개에 소개된 문학동네 창작동화 중에 고구려 고분 벽화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무덤 속의 그림'과 궁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궁녀 학이'도 몹시 기대가 된다. 

그런 책들을 만나며, 나도 누군가에겐 밥이 되고, 누군가에겐 동무가 될, 그리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이야기 한 모금을 꿈꾸어 보련다. 책과 노니는 아름다운 꿈을......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11-27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7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9-11-27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내용도 좋지만 김동성님의 그림이 참 아름답죠?

마노아 2009-11-27 11:45   좋아요 0 | URL
김동성 작가님 책은 다 모으고 싶어요. 아름다운 그림에 흠뻑 빠졌어요.^^

후애(厚愛) 2009-11-27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덤 속의 그림>과 <궁녀 학이> 다 읽어 보았는데 정말 좋았어요.
물론 <책과 노니는 집>도 좋았고요. 그림도 너무 아름다웠어요.
저에게도 책과 노닐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을 했었어요.^^

마노아 2009-11-27 11:46   좋아요 0 | URL
두 책도 꼭 읽어야겠어요. 열광하는 책이 겹치니 좋아요.^^

비로그인 2009-11-2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찜해놓고 읽고 또 읽고 싶은 멋진 리뷰에요 마노아님.. 저희집 아해가 별로 관심을 안보여서 아직 장만은 안 했는데 어떻게 해야 이 책에 열광하게 할 수 있을지.. 관심없다는 책 제가 사서 안겨주면 예의상 한번 억지로 읽고 말거든요. 4학년이니까 조금 클때까지 기다려볼까요?

마노아 2009-11-27 15:11   좋아요 0 | URL
관심 안 보이는 책을 관심가게 하려면 정말 어떤 묘안이 있어야 할까요. 예의상 한 번 읽고 나서 나중에 좀 더 머리 굵어지면 자연스레 읽게 될까요? 아, 너무 어려워요.T^T 저는 김동성 작가를 좋아해서 그림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말이에요. ^^;;;

bookJourney 2009-11-27 17:23   좋아요 0 | URL
이 책, 어른이 보기에도 참 좋지요~.
저희 애는 작년에는 별 관심을 안보이더니 올해는 스스로 꺼내서 읽더라구요.
모든 책을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시기에 따라 관심을 보이거나 좋아하는 책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좋은 책은 언젠가는 좋아하게 된다고 믿고 있는 1인 ^^)

마노아 2009-11-27 19:59   좋아요 0 | URL
시간이 약이군요. 게다가 좋은 책이기에 기다림 끝에 달콤한 만남이 이뤄지나봐요.
좋은 책은 언제고 좋아하게 된다고 믿는 2인이에요.^^ㅎㅎㅎ

비로그인 2009-11-27 22:58   좋아요 0 | URL
'기다림 끝에 달콤한 만남'이라니.. 멋진 말씀! 책세상님과 마노아님 말씀이 맞아요. 좋은 책은 언제간 알아보겠지요. 사놓고 제가 보면서 만남의 때를 기다리렵니다. ㅎㅎ

마노아 2009-11-27 23:33   좋아요 0 | URL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기대되는 순간이 될 거예요.
아이와 엄마가 같은 책을 읽고 감동을 나누는 모습, 너무 멋져요.
그날이 빨리 왔음 좋겠어요.^^

blanca 2009-11-27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예쁘죠? 사놓고 읽고 화장실 갈 때마다 한 번씩 또 쓰윽 봅니다. 그림이 넘 귀여워요. 특히 낙심이 표정.좋은 책이에요

마노아 2009-11-27 22:48   좋아요 0 | URL
사랑스러운 그림이에요. 책 속의 작은 문양 하나까지도 곱고 고와서 오래오래 눈에 담아두고 싶어요.
낙심이도 참 사랑스럽죠.^^

덕수맘 2009-12-0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서평을 보고 나니 책을 사고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듭니다.월급탈때마다 아들과 제책을 구매하는데 첫번째 구매서적으로 이걸 사야겠네여..선생님이라서인지.어쩜이렇게 말씀을 잘하시는지..전 책 읽고 서평 남겨도 그얘기가 그얘기 결론은 다 똑같은데 마노아님처럼 책 많이 읽으면 제서평도 좋아지겠죠..헤헤 기대해야지..ㅇㅇ오늘두 잘보내시고요 낼쉰다는 생각에 오늘은 맘이 한결 가볍네요...

마노아 2009-12-04 21:59   좋아요 0 | URL
덕수맘님, 늘 좋게만 봐주셔서 감사해요. 칭찬 덕분에 고래가 춤을 출 거예요.6^^
아드님은 아직 어리니까 이 책을 그림책으로 만날 테지요. 덕수맘님이 읽으셔도 저처럼 마음에 들어하실 책으로 보여요. 어찌나 예쁜 이야기던지요.^^
저는 내일 출근하는 날이지만 보고픈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어서 기분이 좋아요.
주말 즐겁게 보내셔요~
 
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장바구니담기


"어렵고 재미없어도 걱정 마라. 네가 아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어려운 글도 반복해 읽고, 살면서 그 뜻을 헤아려 보면 ‘아, 그게 이 뜻이었구나!’하며 무릎을 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어려운 책의 깊고 담백한 맛을 알게 되지."-53쪽

"네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답을 물을 책도 있고, 심심하고 답답할 때 재미를 줄 책도 있지 않느냐. 네 아버지가 살던 때와 네가 커서 살 세상은 다를 게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87쪽

"어려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느냐?"

"양반들이 어려운 중국 글자만 고집해서 이제껏 사람들이 그런 재미난 것을 놓친 듯싶다."
-154쪽

"그래도 과거를 보고 공자님 맹자님 말씀을 읽으려면 한자를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조선 사람 모두가 과거를 보는 것도 아니고, 정 그러면 과거도 언문으로 보면 되지 않느냐?"-155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9-11-2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면서 참 좋구나 했어요

마노아 2009-11-27 12:00   좋아요 0 | URL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책일 것 같아요.^^
 

Vol.1000 2009-11-25

 
 



 
자연이 준 기술로 건물 짓는다
 
과학도시는 도시 이름에 맞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주택 개발에 힘써 왔다. 오늘은 새로 만들어질 주거지구의 모델하우스가 처음 선보이는 날. 집 장만을 계획하고 있는 향기씨 가족도 모델하우스를 방문했다.

“엄마, 이사 가면 제 방은 제일 시원한 곳으로 해주세요. 더운 건 정말 싫어요."

이제 유치원에 입학하는 아들 호야는 자기 방에 관심이 쏠려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기후변화로 지구온도가 계속 올라가 냉방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기습적인 폭우로 사망하는 사람도 느는 요즘이다. 아빠가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면서 대답한다.

“더위는 걱정할 필요 없을 거다. 이번에 개발된 주택단지는 모두 흰개미집 구조를 따서 만들어졌다더구나. 아프리카 흰개미들은 일교차가 30도에 이르러도 끄떡없이 지낸단다. 이런 구조를 응용해 만든 집이라서 별도의 장치 없이도 냉방이 가능하다고 해."

“아빠, 흰개미집 구조라는 게 어떤 건데요?"

“건물 옥상에 뜨거운 공기를 배출할 수 있는 통풍 구멍을 뚫고, 건물 아래에는 찬 공기를 건물로 끌어들일 구멍을 뚫는 식이란다. 이런 방식을 이용하면 한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실내온도를 24도로 유지할 수 있단다. 이건 이미 1996년에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세워진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에 적용된 기술이란다."

“우와, 그럼 새로 이사하는 집에는 에어컨이 필요 없겠네요?"

아빠의 설명을 들은 호야는 신이 나서 모델하우스로 들어갔다. 모델하우스 내부로 들어서자 홀로그램 가이드가 향기씨 가족에게 새로운 주택지구의 특징을 알려준다.

“저희 모델하우스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과학도시 주택지구에 적용된 첨단 기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냉난방시스템, 깨끗한 공기 시스템, 고장 자동수리 시스템 중 설명을 원하는 내용을 말씀하시면 바로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홀로그램 가이드는 생김새도 멋진데 목소리도 기가 막히다. 향기씨 가족은 깨끗한 공기 시스템의 안내를 선택한다.

“혹시 집안에 흡연하는 분이 계신가요? 네, 다행히 없으시군요. 그럼, 방귀를 잘 뀌는 분은 계신가요?"

아빠 얼굴이 괜히 붉어진다. 가족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왼쪽 사진은 호주 노던테리토리에서 볼 수 있는 바위형태의 흰개미집. 바위처럼 보이지만 자
체적으로 내부굴속의 온도와 통풍, 산소공급을 조절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오른쪽 사진 속
솔방울은 수분의 양에 따라 열었다 닫았다를 조절한다. 이 원리도 건축물에 적용할 수 있다.
사진제공. 동아일보>


“저희 주택지구에는 실내 공기를 오염시키는 생활 냄새나 음식 냄새 등 방의 냄새를 없애주는 페인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벽체에 사용된 콘크리트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제품입니다. 이 제품은 식물과 곰팡이가 공기와 토양을 정화하는 능력을 모방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마음껏 방귀를 뀌라고 과학 기술이 이렇게 발전하는 게 아니겠냐! 하하."

아빠의 큰 소리에 다들 함께 웃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연탄을 난방과 취사용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 때문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저희 주택에 사신다면 유독가스 중독이나 공기 오염에 대해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택에 설치된 유리는 동물의 호흡기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제품으로 키네틱 글래스(Kinetic Glass)라고 합니다.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유리 표면으로 공기가 지나다닐 수 있고 특정 가스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부착돼 있습니다. 그래서 유독가스가 감지되면 자체적으로 공기를 순환시킵니다. 센서가 작동하면 시각적 표시를 해 거주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게 됩니다.

생활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 유리와 거울에는 연꽃잎 원리를 이용한 필름이 코팅돼 있습니다. 연꽃잎은 표면에는 미세한 돌기가 돋아있어 물을 밀어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빗방울이 유리창에 맺히지 않아 표면이 깨끗하게 유지됩니다. 창문 닦기가 어려운 고층 거주자에게 특히 도움이 될 기술이겠지요. 또 더운 물을 사용하면 욕실에 김이 서리는 것도 연꽃잎 기술로 방지된답니다."

“습도 조절 기능도 있나요?"

“네. 영국 레딩대 게오르그 예로니미디스 교수의 연구 결과를 응용한 통풍구가 설치돼 있습니다. 실내 수분 양에 따라 자동으로 열렸다 닫히는 통풍구입니다. 수분이 있을 때는 닫혀 있지만, 수분이 없으면 열려 씨가 퍼질 수 있도록 하는 솔방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입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꼼꼼하기로 소문난 향기씨가 다시 가이드에게 질문한다.

“새로 지어진 주택에서도 벽체 균열이라든가 하자가 나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되나요?"

“입주하는 고객님들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집을 짓고 있습니다만 만약에 있을지 모를 고장이나 수리 등에 대한 대책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주선 선체에 상처가 날 경우 우주인이 직접 나가서 수리를 하거나 로봇이 수리를 대신해야만 했는데요. 요즘은 우주선이 스스로 치료를 합니다. 상처가 생기면 자연적으로 액체가 흘러나와 상처 부위를 메우는 소재가 개발된 것이죠.

영국 브리스톨대 항공우주공학과 이언 본드, 리처드 트래스크 교수팀이 개발한 것입니다. 우리 몸에 피가 나 상처가 공기에 노출되면 혈액이 응고되는데요, 연구팀은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저희 건축물도 이와 같은 원리로 누수나 균열이 있을 때 이를 감지, 자동으로 수리할 수 있는…."

가이드가 설명을 하는 동안 호호군이 아빠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묻는다.

“아빠, 도대체 이렇게 신기한 것들을 어떻게 생각해내는 거죠?"

“얘야. 이 모두가 생체모방기술의 결과야. 우리 인간들은 자연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것뿐이란다. 자연이 38억 년 동안 진화하면서 찾은 해답을 따라하는 거지. 답은 이미 자연 속에 다 있었어.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새삼 고개가 숙여지는구나."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11-26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6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뉴트로지나 스킨클리어링 토너 - 200ml
존슨앤드존슨
평점 :
단종


거의 물처럼 느껴진다. 겨울보다 여름에 더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