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집사 8
야나 토보소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애니메이션으로 결말까지 다 보고 나니 아무래도 만화에 대한 궁금증이 다소 식기는 했다. 그렇지만 연출의 방식이나 느낌의 차이라는 게 있으니까 여전히 책도 즐겁게 보고 있는 중.   

작품 초기에는 팬텀 가의 대저택에 고용된 몇 안 되는 인물들은 대체 왜 이리 무능력하고 사고만 치고 게다가 식충이일까 의아했는데, 이것도 일종의 복선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 업종 종사자가 아니었던 것. 늘 말썽 많은 메이드의 진면목은 섹시 컨셉의 저격수!

 



안경 하나 안 썼을 뿐인데 마치 클라크가 슈퍼맨이 되는 것 같은 변신 과정을 거쳤다.  

그녀뿐 아니라 이 댁의 모든 고용인이 그랬다. 심지어 늘 허허 웃음만 짓고 있는 타나카 씨 조차도.  

서커스단에 위장 잠입해서 여왕의 명을 수행하던 시엘과 세바스찬.  

사건을 파헤쳐서 범죄의 핵심에 다가가면 늘 불편하고 소름끼치는 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때로 시엘은 무척 잔인하게 보일 때가 있지만 그가 내린 명령의 참 의도는 나름의 이유가 늘 있어 왔다. 그리고 이유를 묻지 않는 철저한 집사인 세바스찬은 제 능력을 가감 없이 내보인다. 






한숨짓는 집사. 이어 명령을 수행할 준비를 한다. 세바스찬은 진지할 때도 코믹일 때도 멋있다. 캐릭터의 매력조차도 악마적이다. 

그리고 또 다시 등장한 뉴 페이스 사신. 



사신의 낫도 독특한 걸 들고 나왔다. 잔업은 절대 금물이라고 말하는 녀석.  

사신이 추가된 걸 보면 이야기의 규모가 더 커질 것도 같다. 이 녀석들을 보아도. 



여왕 친위대 같은 인물들이 아닐까. 애니에서 보면 이 녀석들 중 최고 짱이 뒷통수를 제대로 쳤는데 만화는 어떨지 좀 더 두고봐야겠다. 일단 캐릭터가 늘었으니까. 

앞쪽에선 좀 심각한 내용이 진행되었는데 뒤에는 바로 개그로 넘어간다.  

시엘의 옷을 재단하기 위해서 온 디자이너~가 아주 변태스러웠는데, 옷 치수를 재는 과정에서 시엘의 등에 찍힌 낙인 때문에 난감한 일이 벌어진다. 엘리자베스에게 보이지 않으려 무한 애를 쓰는데 갑작스런 훼방꾼의 등장으로 식은 땀이 주르륵!


그러니까 세바스찬에게서 저런 표정이 나올 때가 가장 웃겨질 때다. 그리고 이렇게 그를 당황시키고 나면 다음엔 아주 멋지게 실력 행사를 보여준다. 이 다음 장면이 이번 권에서 내가 가장 멋있어 했던 장면.  

그 옛날 몇 편이었던가, 테이블에 차를 쏟아서 그걸 치우느라 식탁보를 한 번에 다 치울 때와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그러니 이 집사 '만능'이라고 해도 하나 과장이 아니다  

버스를 갈아타려고 할 때 동네 서점 앞에서 잠시 구경을 하는데 흑집사 한정판이 바깥쪽으로 전시되어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컸는데 궁금은 하지만 살 정도는 아니고... 그냥 일반판으로 만족하련다.^^ 

예고편이 꽤 자극적이었는데 예고편을 보니 단행본의 끝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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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6-20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집사는 계약 조건이 좀 으시시하구요.정말로 완전한 집사의 표본은 일드인 메이아가씨를 부탁해(?) 같더군요.최 상류층이 다니는 여자 고교가 배경인데 여고생 한명당 집사가 한명씩 시중드는데 뭐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더군요^^

마노아 2010-06-21 11:57   좋아요 0 | URL
악마쯤 되면 계약조건이 '영혼'쯤 되어야지요. ^^ㅎㅎㅎ
메이 아가씨를 부탁해가 우리 나라 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의 원작인가요? 제목이 비슷하네요.
여고생 한 명당 집사 한 명씩이라니, 엌소리 나요.ㅎㅎ

L.SHIN 2010-06-2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거..완결되면 말해주세요 ㅡ.,ㅡ (아, 정말이지..앞 내용을 다 까먹었..;;)

마노아 2010-06-21 11:58   좋아요 0 | URL
금방 완결될 것 같다고 썼는데, 생각해 보니 더 오래 걸릴 것 같아요.ㅎㅎㅎ
엔딩을 아는데도 어떻게 마무리 지을 지 기대가 되어요.^^

BRINY 2010-06-2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6권인가까지 보다가 만 거 같군요...

마노아 2010-06-21 11:58   좋아요 0 | URL
초반에 비해 인기가 많이 떨어졌어요. 보다가 중단된 분들이 많더라구요.^^;;
 
내 이름이 담긴 병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33
최양숙 글.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2002년 11월
절판


우리 나라 작가가 쓰고 그린 것이지만 영어로 된 작품이었기에 번역되어 출간된 책이다.
유심히 들여다 보니 작가의 이름이 보인다. 최양숙.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은혜가 처음으로 학교에 간 날.
학교 버스 안에서 친구들은 은혜의 이름을 이상하게 발음하며 웃었다.
은혜는 귀밑까지 새빨개져서 교실로 들어갔다.
자기 소개를 할 때 이름을 말해야 했지만 은혜는 영어 이름을 정하지 못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지 못했다.

영어 이름을 짓겠다는 은혜에게 엄마는 '은혜'라는 이름이 얼마나 예쁜지를 강조하셨다.
하지만 아무래도 미국 아이들이 발음하기엔 힘든 이름.

싱크대 위 벽에 걸린 '하면된다'라는 글자가 사뭇 무겁다. 해도 안 되는 게 무수히 많은 세상이지만, 저런 마음으로 이민 사회에서 적응하며 열심히 살았을 테지? 저 말이 나쁘거나 싫다는 게 아니라, 저 말을 자주 사용하던 어느 정치인이 싫을 뿐. ^^

김씨 마켓의 김씨 아저씨.
은혜의 이름은 '베푼다'는 의미의 예쁜 이름이라며 은혜를 환영해 주셨다.
그렇지만 은혜는 아직도 갈팡질팡.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할지 고민이다.
아만다, 로라 등등 이것저것 미국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보지만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음 날 학교에 가보니 은혜의 책상 위에 유리병이 하나 올려져 있다.
그 안에는 아이들이 써 놓은 이름들이 담긴 쪽지가 한 가득.
자기 동생 이름인데 써도 된다고 하는 신디,
자신이 읽은 책의 주인공을 추천하는 네이트.
네가 온 날이 수요일이라고 '웬즈디'란 이름을 적어 넣은 랠프까지...
친구들의 마음씀이 예쁘다. 제일 맘에 드는 것으로 고르든가, 아님 다 골라서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을 쓰라고 하는 재미있는 랠프!
유리병 너머 은혜의 얼굴이 발갛게 홍조되어 보인다.

첫날 교실로 인도해 준 곱슬머리 친구가 다시 한 번 은혜의 이름을 묻는다.
은혜는 부를 수 있는 이름 대신 보여줄 수 있는 이름을 알려준다.
한국을 떠날 때 할머니가 선물해준 자신의 도장이었다.
최은혜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예쁜 내 도장을 하나 찍어서 같이 올리고 싶었는데 도장이 직장에 있다. ^^

매일매일 유리병엔 새 이름이 가득 차고, 은혜는 여전히 갈등 중.
그러다가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학교에 간 날, 유리병이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다 함께 찾아 나섰지만 깜깜무소식.
앞에 나왔던 그림을 보고선 선생님이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남자다. 하하핫!

은혜는 유리병을 포기하고 자신의 이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베푼다는 의미도 강조했다.
친구들이 발음을 제대로 못하자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이제 친구들은 은혜를 '은혜'로 제대로 부른다.
역시 은혜는 '은혜'로 불릴 때 가장 자연스럽다.
은혜 역시 제 이름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마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적응하기 힘든 시기에 방황도 될 법 하건만 은혜는 잘 견뎌주었고 자신의 정체성도 잊지 않았다. 그런 어려운 단어로 고민하진 않았겠지만.^^

이야기가 재밌고도 따뜻하다.
특히 곱슬머리 친구 조이가 보여준 우정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이름'이 주는 의미는 늘 각별하다.
대학 때 회화 시간에 쓴 내 이름은 Lunar였다.
음, 당시 레드문을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짓게 된 이름인데 발음이 힘들어서 그렇지 무척 맘에 들었더랬다.
실제 내 이름을 외국 사람이 발음하긴 무척 힘들 것 같다. 아무래도 받침있는 이름은 그렇다. 사실 한국 발음으로도 좀 어렵긴 하다.^^
그렇지만 어려운 이름도 기꺼이 불러주는 것, 또 마음을 담아 사랑을 담아 불러주는 이름의 힘은 대단하다. 내 이름의 주인공, 나를 표현하는 이름, 소중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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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6-2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친구들의 마음이 이쁘네요. 병에다 쓸 이름을 적어주다니.^^
전에 저는 외국인한테 가운데 이름만 알려주었더니, 그걸 성으로 알고 부르는...(아, 페이퍼에도 썼었다.ㅋㅋ)
저는 그냥 귀찮아서 냅뒀다지요.ㅋㅋ

마노아 2010-06-20 16:29   좋아요 0 | URL
엘신님은 한 글자로 불러도 엘신님처럼 들려요. 하핫^^
친구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려고 애쓰는 모습도 예뻐요.
여러 나라 말로 자기 이름을 가지면 그것도 무척 재밌을 거예요.

hnine 2010-06-21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아이가 읽어보라고 권해서 보았던 책이어요.
읽고 바로 반납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그때 느낌이 다시 되살아나네요.

마노아 2010-06-21 14:11   좋아요 0 | URL
아이가 읽어보라고 권하다니 무척 근사해요. 엄마와 아이 사이의 교감이 그려져요.^^

같은하늘 2010-06-22 00: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hnine님 서재에서 이 책을 보고 마음에 들어 찜해 두었던 기억이...^^

마노아 2010-06-22 08:45   좋아요 0 | URL
제가 나인님 덕분에 이 책을 샀던 걸까요? 어쩌다가 구입했는지도 잊어버렸어요.ㅜ.ㅜ

집요정 2010-07-01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마노아 2010-07-02 06:28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자장자장 잠자는 집 웅진 세계그림책 95
유리 슐레비츠 지음,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9월
절판


'정중동'을 잘 포착해내는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이다.
자장자장 잠자는 집.
원제 So Sleepy Story 보다 확실히 우리 말 어감이 이 책의 분위기에 더 잘 맞는 듯하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일까?

집도 나무도 달도 모두 잠이 든 한 밤.
그렇지만 저 집은 어쩐지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꾸벅꾸벅 의자 옆에
꾸벅꾸벅 탁자.
쿨쿨 벽에 걸린
쿨쿨 그림들.

이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잠자고 있다.
마치 잠 자는 숲 속의 공주를 위해서 다 함께 잠이 들었던 그 성의 모든 것처럼.

드르렁드르렁 벽시계 옆에
드르렁드르렁 찬장.
그 안에 드르렁 접시들.
소르르 소파 위에
소르르 고양이.


'소르르' 고양이라니, 너무 근사한 표현이 아닌가.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말 번역이 무척 마음에 든다.
번역가가 우리말 의태어와 의성어를 절묘하게 배치시킨 듯하다.

그때 음악 소리가 살금살금 들어오더니,

점점 점점
커집니다.

커텐도 잠이 깨어 버렸고, 달님도 눈을 떴다.
집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오선지 위의 음표들은 무지개 빛으로 늘어섰다.
팔딱팔딱 살아서 춤을 추는 음표들의 향연!
불쑥 부부젤라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시즌 탓!

잠자던 의자가
비틀비틀,

휘청휘청.

잠자던 접시가
한들한들,

흔들흔들 춤을 춥니다.

춤추던 접시가 미끄러져

와장창!
고양이가 벌떡 일어납니다.

벽시계는 뻐꾹뻐꾹!

잠자던 아이가
끔뻑끔뻑 눈을 뜹니다.

의태어와 의성어가 점점 큰 느낌으로 확장되어 가는 걸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모두들 어깨춤이 절로 나는 듯 들썩들썩.
책을 읽는 나도 어깨가 들썩들썩. 콧노래가 흥얼흥얼~
이렇게 즐거운 분위기에서 눈치 없게 쿨쿨 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대는 센스 없는 무감각쟁이!

접시들도 손 잡고서 스텝을 밟고 있다.
혼자서도, 둘이서도 즐거운 댄스 타임!

유리 슐레비츠가 살고 있는 뉴욕 그리니치빌리지는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마을인데 밤에도 연주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걸 시끄럽다고 받아들인 게 아니라 이렇게 멋진 작품으로 승화시키다니, 역시 대가다운 선택.

그렇지만 밤새 이렇게 놀 수는 없는 노릇!
이제 가만가만 음악 소리가 사라지고....
음표들의 눈이 반쯤 풀리고 있다.
커튼도 흐느적 흐느적...
심지어 오선지의 색깔도 옅어진 채 바래지고 있다.

어느덧 새벽 4시를 넘은 시각.
벽시계의 뻐꾸기도 콜콜 잠이 들었고, 달님도 다시 취침 중.
의자 위 고양이도, 찬장의 주전자도 모두들 꿈나라로 여행중!

침대 속 아이도 자장자장,
집도 자장자장,
벽도 자장자장,
그림들도 자장자장,
찬장도 자장자장,
접시들도 자장자장,
모두모두 자장자장,
잠이 듭니다.

쉿! 다현양은 꿈나라에 가 있어요.
자장자장 잠자는 집에 도착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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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6-2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쁜 글에 이쁜 그림의 동화책이네요. 참 이뻐요...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다현양의 잠자는 사진에 더욱 그렇네요.

마노아 2010-06-20 16:27   좋아요 0 | URL
어제 퇴근해서 와보니 조카가 저리 자고 있었어요.
얼른 사진을 찍었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사진 생각이 나서 같이 포함시켰어요.^^

후애(厚愛) 2010-06-2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 자는 다현양 넘 이뻐요~ ^^

마노아 2010-06-20 16:28   좋아요 0 | URL
오늘은 밥 먹는 게 예뻐서 한참 쳐다봤어요.
나중에 쑥스러운지 배시시 웃더라고요.^^

무스탕 2010-06-2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현양 자면서도 스티커를 놓치지 않는군요 ^^

마노아 2010-06-20 16:28   좋아요 0 | URL
스티커에 열광하고 있어요. 어제는 오빠 친구 생일 잔치 갔다가 태극마크를 붙이고 왔네요.^^

같은하늘 2010-06-22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요런 그림이 좋아요.
저 이쁜 의태어와 의성어들이 원어로는 어떻게 씌여 있었을지 갑자기 궁금하다는...^^

마노아 2010-06-22 08:46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우리 말의 이 맛깔스러움이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지난 월요일은 내 오랜 친구의 생일이었다. 우린 아홉 살에 처음 만났고, 그러니 앞으로도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같이 했던 친구로 남을 것이다.  

친구는 일찌감치 시집을 가서 두 아이의 엄마다. 큰 아이는 초등 3년이고, 작은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친구는 매번 내 생일에 문화상품권을 선물한다. 책 사보라고. 그리고 자신의 생일에는 아이들 책을 보내달라고 한다. 친구는 아이들을 전집만 읽혀서 단행본은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읽어본 책들 중에서 좋은 책들을 골라서 보내주곤 했다.  

그런데 금년에는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 중에서 도전을 했다. 그래서 일단 우리 집으로 먼저 배송을 시켰고, 그 다음에 내가 추가할 것들을 더 보태어서 다시 친구 집으로 보냈다.  

내가 주문한 책들은 이렇다.  

 

 

 

 

'다르다넬 왕 이야기'는 반 세기 전 작품임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매력적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어른들이 읽기에 더 좋은 책으로 보였다.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은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만큼이나 좋았다. 그림도 여전히 환상. 그렇지만, 이 책도 역시 나는 어른용이라고 생각했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 있는 나이의 사람이 더 뜨겁게 느낄 것 같았다.  

'달을 줄 걸 그랬어'는 내용 자체가 '禪'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어른용이었다. 그렇지만 그림은 여전히 훌륭. '세 가지 소원' 때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아직도 생각하는 개구리'도 내 생각엔 역시 어른용.  

최고봉은 '마지막 휴양지'였다. 이건 초등학생이 읽을 책이 아니었다. '신데렐라' 이후 로베르토 이노센티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도서관에서 슬쩍 들쳐보고는 사서 읽을 책이라 판단하고 도로 꽂아놓고 나왔었다. 그 후 하이킥에서 확 뜨면서 이미 읽은 책인데 왜 내용이 생각이 안 날까 의아해 했다. 읽은 게 아니라 나중에 읽으려고 보류했던 것을...^^;;;  

'자장자장 잠자는 집'은 아직 읽기 전인데 아무래도 너무 어린 취향일 것 같아서 우리집 다현양에게 더 어울릴 책. '파울 클레'는 꼽사리 낀 나를 위한 책이었다. ㅎㅎㅎ 

그리하여 사실상 친구 딸내미들에게 주기로 작정한 책은 '호주머니 속의 귀뚜라미'와 '한눈에 반한 우리 미술관', '고흐',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가 되었고, 여기에 사계절 행사 때 사온 '소 찾는 아이'와 내가 쓴 '몽골'과 '베트남' 책을 넣었다. 이 책은 내게 모두 세 세트가 왔는데 조카네 한 세트 주고 나 한 세트 보관하고, 친구 한 세트 주는 거였다. 그리고는 이집트에서 사온 기념품이랑 내 사진(ㅎㅎㅎ)도 담았다.  

지난 주에 배송받아야 했는데 배송이 늦어져서 화요일에 책을 받았고, 수요일에 친구한테 보냈고, 친구네 집에는 목요일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의 무심한 친구는 뭔가 선물을 보내고 나면 잘 받았다는 연락을 자주 안 하곤 한다. 궁금해진 내가 잘 도착했냐고 전화하기 일쑤. 

오늘도 그랬다. 잘 받았냐고 전화를 했더니 어제 도착했는지 그제 도착했는지 마구 헷갈려 한다. 친구야 그제였어.ㅎㅎ 

그런데 얘길 해보니 아직 박스도 풀지 않았다 한다. 아! 

딸 아이 학교 시험이 다다음 주여서 그때까지 안 보여줄 셈으로 안 뜯었다고 한다. 맙소사.  

나는, 음... 섭섭했다.  

아이 시험 공부 봐주느라 이번 달에는 만나지 못하겠으니 다음 달에 보자고 한 것까진 충분히 이해했는데, 집에 도착한 선물 상자를 뜯지도 않고, 앞으로 2주 동안 안 뜯을 생각이었다는 게 나는 좀... 

뭐랄까. 우리 언니를 봐도 그렇고, 요즘 초등학생 엄마들은 너무 바쁘다. 무수한 숙제들은 아이 숙제가 아니고 엄마 숙제가 되어버렸고, 엄마들은 아이의 학교 성적과 사교육에 올인하고 문제 하나 맞고 틀리고에 일희일비한다. 내 친구가 다소 무심하기도 했지만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들의 일상은 대체로 이렇게 되어버리나 생각하니 좀 우울했다. 아직 아가씨인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도 분명 있지만 아무리 봐도 미친 게 분명한 대한민국의 비정상적인 교육 풍토가 넌더리 난다. 김규항 씨는 자주 엄마들의 그런 경쟁 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엄마가 되면 그게 가능할까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천천히 가고 싶은데 모두들 전력질주를 해버리고, 그 아이들이 골인하고 나면 아직 달리고 있는 아이들은 들어오거나 말거나 경기장 문을 닫아 거는 그런 분위기가 아닌가 싶어서.  

'한눈에 반한 우리 미술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지 않은 책을 산 건데 모두 흡족했다. 다만 읽어보니 아이용 보다는 어른을 위한 책인 경우가 많아서 사심이 깃들었음을 인정한다. ㅎㅎㅎ 

그리고 살까말까 고민했지만 역시 아이보다 내 입맛에 더 맞을 것 같아서 유보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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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1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너무 섭섭해 하지 말아요~~

나 큰 팁을 얻었어요.
친구들 생일 때 왜 책선물 생각은 못했었지?
앞으론 책이닷!

마노아 2010-06-19 21:01   좋아요 0 | URL
제 친구가 좀 무심할 때가 있어서 몇 년씩 내 생일은 까먹고 나한테 다른 사람 선물 골라달라고 할 때도 있었어요.ㅎㅎㅎ
친구가 책을 잘 안 읽어서 아이들 책만 보냈는데 그래도 고흐는 친구도 좋아하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어요.^^

세실 2010-06-1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마노아님이 먼저 보고 다시 보내주는 센스라니....훌륭하세요.
전 친구보고 알라딘에서 고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발송처리^*^
하지만 전 책선물은 싫더라구요. 헤~~
7월 중순이 제 생일인데 오늘 친구가 미리 배낭 사줬어요~~~ 스타트 끊었네요. 호호

마노아 2010-06-19 21:02   좋아요 0 | URL
원래 친구네 집에 보내려고 미리 사둔 도시락 세트가 있었어요. 그거랑 같이 보내려고 했는데 상자 큰 걸 못 준비해서 이번엔 책만 보냈어요. 도시락은 다음에 만날 때 직접 들고 가야겠어요.^^
오, 배낭을 사주는 친구분의 센스도 훌륭해요! ^^

개인주의 2010-06-20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아기들 선물 살 때 여기서 좀 훔쳐봐야겠어요..으흐흐

마노아 2010-06-20 16:30   좋아요 0 | URL
저는 선무당이에요.^^;;;;

BRINY 2010-06-2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과 생일 안챙기기 시작한 지 오래됐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노아 2010-06-20 16:31   좋아요 0 | URL
안 챙기게 된 친구들도 꽤 생겼어요. 그게 편할 때도 있고요.^^;;
챙기는 사람은 계속 챙기게 되더라고요.

Kitty 2010-06-2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ㄴ 저도 그런 생각이 -_-;;;;;;;;;;;;

마노아님은 진짜 아동서 박사에요. 조카 책 사려고 헤매다 보면 항상 마노아님 페이퍼 클릭해서 읽고 있는 ㅋㅋㅋ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마노아 2010-06-20 16:32   좋아요 0 | URL
제가 조카들 핑계로 동화책 포식을 하고 있어요. 요새는 조카보다 내가 갖고 싶은 책이 더 많아져서 큰일이에요. 동화책 너무 비싸요..ㅜ.ㅜ

무스탕 2010-06-20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학년인데 공부를 벌써(시험 2주전)에 시작해요? @ㅁ@ 울 정성은 30일에 시험보는데 지금 탱자탱자.. 오늘도 아침에 10시 30분에나 일어나 밥먹더니 바로 컴으로 게임시작해서 2시가 넘도록 하다가 제가 호통을 치는 바람에 물러나서 내일 독서토론수업에 필요한 책 읽고 지금 또 tv랑 씨름중... -_-

마노아 2010-06-20 16:33   좋아요 0 | URL
그 동네가 수지인데, 학군도, 학구열도 지나치게 뜨거워요. 초등 5학년 쯤 되면 시험 기간에 집에 새벽 2시에 들어온대요. 초등학생이요..ㅜ.ㅜ 제 친구는 그 동네에서 가장 아이 공부 신경 안 쓰는 엄마 축에 속한답니다.
정성이가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는데 울 나라 교육은 정말 답이 없어요...ㅜ.ㅜ

이네사 2010-06-20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그 엄마가 별로 책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시지 않나요?
선물로 온 책 상자 못 뜯어볼만큼 바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걸요. 그냥 핑계지.

마노아 2010-06-20 21:49   좋아요 0 | URL
친구 본인은 책을 잘 안 읽지만 애들은 많이 읽혀요.
책을 좋아하거나 하지 않아서라기보단 그냥 무심했던 거죠.

다락방 2010-06-20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그 입장이 되어보기 전까지는 뭐라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그래도 음 친구한테 받은 책 선물을 뜯어보지도 않다니, 저라면 정말 완전 섭섭했을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마노아님 생각에 동의해요. 지금이야 나는 천천히 가겠어 라고 생각해도 막상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다들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는걸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면 그때도 그런 생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저는 정말 장담할 수가 없어요.

저는 선물에 마노아님 사진을 넣는다는게 정말 사랑스러워요! ㅎㅎ

마노아 2010-06-21 11:55   좋아요 0 | URL
제 친구가 아이가 1학년 때는 굉장히 의연했어요. 공부쪽은 사교육도 안 시키고 아이가 알아서 하게 두었는데 워낙 극성스런 동네라(수지에요.) 위기감을 느낀 것 같아요. 울 언니도 애 공부 시키는 것 보면 헉소리 나거든요. 대한민국의 무수한 엄마들이 그렇게 달리고 있고 아이들도 그러고 있으니 갑갑해요. 우리도 그때가 되면 어떻게 될지 알수 없구요.

어릴 때는 서로 사진도 교환해서 앨범에 꽂고는 했는데 오래도록 그렇게 못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사진 몇 장을 인화하면서 친구한테 주려고 두장 뽑은 게 있거든요. 하핫, 웬디님이 찍어준 바로 그 파란 옷의 사진이어요.^^

라로 2010-06-2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뚱맞은 댓글이지만,,,,저는 마노아님과 같은 친구를 둔 그 친구분이 마구 부러워요,,
저처럼 친구가 별로 없는, 더구나 그렇게 오래된 친구와 연락이 전혀 안되는 저로선 두분의 관계가 넘 부러워요,,,물론 그 친구분이 이번 경우는 심하셨지만,,,암튼 부럽다구요~.

마노아 2010-06-21 11:56   좋아요 0 | URL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닌데, 그래도 한 친구와 이렇게 오랫동안 친구로 남아서 저도 무척 기뻐요.
이 친구가 저를 감동시킨 경우도 참 많았는데 나중에 그런 얘기도 풀어볼게요.^^

파란 2010-06-21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휴양지책이..기억에 남는데 그 책이 마음에 드시면 이번에 '나무집'이라고 글자 없는 그림책이 나왔는데 그림이 멋져요. 처음엔 느긋이 하다가도 불안이 몰려오면서 하나씩 둘씩 학원으로 보내게 되더라구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수시로 모여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활동이 필요해여^^

마노아 2010-06-21 18:26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보관함에 담아둔 책이에요. 글이 없다고 하니 더 관심이 가고 평화를 주제로 했다고 해서 또 관심이 가요. 모두의 불안감을 같이 해소할 수 있는 묘안이 꼭 생겼으면 해요.^^

같은하늘 2010-06-22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친구분의 인내력이 대단하신걸요.^^ 전 절대로 그렇게 두지 못할텐데...
마노아님과 같은 분을 친구로 두신 그 분은 정말 행복한 분이네요.
이중에 제가 본 책은 <한눈에 반한 우리미술관>, <아직도 생각하는 개구리>, <책> 밖에 없네요.
<커다란 나무같은 사람>이 마음에 들어 눌러보니 비싸군요. -.-;;; 정말 책 비싸요~~~

마노아 2010-06-22 08:47   좋아요 0 | URL
제 친구는 모기에 물려도 절대 긁지 않아요. 초강력 인내력이라고 할까요.ㅎㅎㅎ
동화책들의 가격에 놀랄 때가 많아요. 늘 중고책만 사다가 친구 생일을 빌미로 모처럼 새책 동화책을 구입했어요.^^
 
누들 로드 - 3천 년을 살아남은 기묘한 음식, 국수의 길을 따라가다
이욱정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절판


밀가루 음식을 탕으로 맛있게 먹으려면 간이 잘 밸 수 있도록 얇게 늘려야 한다. 밀가루 반죽을 덩어리째 넣으면 간이 잘 배지 않는다. 게다가 가늘고 긴 면의 형태로 만들어야 양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수는 가루를 내어 구워 먹을 수밖에 없었던 빵 문화를 낳았던 밀이 중원의 탕 문화를 만나 끓는 물에 조리하기 적합한 디자인으로 변모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건식의 재료와 습식의 조리법이 만난 동서 최고의 합작품, 이것이 바로 ‘국수’였다.-124쪽

송나라 이전까지의 도시들은 정치·군사도시로서의 성격이 강한, 전형적인 고대형의 도시였습니다.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의 경우도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성벽 내부는 다시 정방형으로 구획되어 바둑판처럼 108개의 방(坊)으로 나누어졌습니다. 방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담도 있고 문도 있어 아침에 문을 열고 저녁에는 잠갔습니다. 이곳에서는 장사를 할 수 없었죠. 상업이 가능했던 곳은 오로지 ‘시(市)’라고 불리는 구역이었습니다. 장안에는 동서로 두 개의 시가 있었는데, 하나는 동시이고, 하나는 서시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서는 내국인들이 장사를 할 수 있었고, 서시는 서역인들이 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물건을 사기가 매우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야간에는 통행금지제도가 시행되어 밤에는 아예 물건을 사는 게 불가능했죠. -145쪽

하지만 송대에 이르러서는 이런 폐쇄적인 도시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아주 개방적인 도시의 형태를 띱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어디서나 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교통에 영향을 주고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장사를 금한 홍교(虹橋-무지개다리)에서도 장사를 했습니다. 「청명상하도」의 홍교를 보면 장사하는 노점이 여덟 곳이나 있습니다. 번화한 지역에서는 밤새 장사를 해서 송대 카이펑은 지금의 도시처럼 밤 문화생활이 활발한 도시였습니다. 2,000여 명의 유태인들이 장사를 하기 위해 정착할 만큼 상업이 융성하고 비즈니스 기회가 넘치는 개방적인 도시였죠. 기록에 의하면 카이펑에는 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만 160여 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교역량이 많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카이펑으로 몰려들었겠는가. -146쪽

송대 연구소장은 카이펑의 도시 규모가 인구 150만 명-당시 유럽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인구는 40만, 런던의 인구는 10만 명이었다-에 이를 정도로 점점 커지면서 사람들이 성을 나가기 힘드니까 성벽을 없애고 가게를 열어 24시간 장사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청명상하도」와 함께 북송시대 카이펑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동경몽화록』을 통해 당시 이곳 거리에 새벽 4시에 문을 열어 한밤중까지 영업을 하는 음식점과 상점들이 즐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경몽화록』은 남송 시대 맹원로가 쓴 역사서로, 북송이 금나라에 패해 어쩔 수 없이 남쪽에서 살게 된 맹원로가 옛 수도의 번영을 그리워하며 저술한 책이다. 때문에 이 책에는 북송의 풍속과 건축, 문화 등 다양한 모습이 아주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음식문화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 제작진의 흥미를 끈 것은 송대에 이르러 국수가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들이었다. -146쪽

이를 테면 당시 북송 카이펑 사람들이 먹었던 다양한 국수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양고기 국물을 낸 암생연양면, 마늘과 귤껍질로 만든 소스로 무친 이탈리아 파스타와 닮은 세물료기자, 돼지고기와 닭고기로 국물을 내서 담백한 동피면, 물로 식혀서 먹는 냉동기자, 밀반죽을 손으로 비틀어 불규칙하게 썰어 고기, 야채와 함께 먹는 흘달, 동피숙회면, 혼돈, 채면, 호접면 등 그 종류가 수없이 많았다. 이를 통해 국수가 송나라 때 매우 보편화되고 인기 있는 음식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147쪽

송대에 국수가 대중화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록은 "옛날에는 그저 숟가락을 쓰고 지금은 모두 저(箸)를 사용한다"는 보편화된 젓가락 사용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는 면 요리가 대중화되어 젓가락으로 먹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을 추측하게 했다. 실제로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당나라 때 밀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제분 기술이 혁신적으로 발달하면서 밀가루 가격이 하락해 귀족뿐만 아니라 서민들도 분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면(麵)’과 ‘병(餠)’이라는 글자가 온전히 구분되지 못했다. 당시 밀가루 음식을 가리키는 병처럼 면도 밀가루라는 뜻 이외에 밀가루로 만든 요리를 총칭하는 말로 쓰였다.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국수처럼 밀반죽을 끓는 물에 데치거나 삶은 형태로 먹는 음식을 ‘탕병(湯餠)’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국수는 탕병의 부분집합에 불과했다. -147쪽

수많은 학자들은 송대 사람들이 많은 음식들 중에서 특히 국수를 즐겼던 이유를 도시발달로 인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상공업에 종사했던 송대 사람들은 그 전의 중국인들과 달리 현대인들처럼 대단히 바빴다. 때문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시간이 없어 주로 외식을 했다.
-150쪽

당시 카이펑은 음식 배달이 대단히 일상적일 정도로 외식문화가 꽃 피웠다.
일상의 속도가 빨라져 외식을 즐겼던 송대 사람들. 이들은 외식을 할 때도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국수는 길고 가늘어 삶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조리법도 간단해 빨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원했던 송대 사람들에게 최적의 메뉴였다.
파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식사 시간 때마다 밀어닥치는 손님들을 감당하기에 국수만큼 훌륭한 상품은 없었다. 국수는 다른 재료와 함께 조리를 해도 모양이 변하지 않고, 심지어 미리 삶아 놓았다가 살짝 데쳐서 국물을 붓고 고명만 얹으면 음식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단시간에 손님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151쪽

송나라 당시 식당 점원들은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메뉴판을 들고 가서 주문을 받아 정확하게 기록을 해두었다가 주방으로 가서 주문 내용을 큰 소리로 전달했다. 그러면 주방에서는 빠른 속도로 음식을 완성했고, 때문에 서빙을 하는 점원들은 쉴 틈 없이 양손은 물론 어깨까지 사용해 많은 음식을 날라야 했다. 그들은 아무리 음식의 가짓수가 많아도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정확하게 그 손님 앞에 놓았다. 하지만 주문을 잘못 받아 다른 음식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 점원들은 주인에게 야단을 맞거나 월급이 깎이기도 했고, 심지어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153쪽

그녀들에게 이 국수틀이 어디에서 온 것 같으냐고 묻자 옆 마을의 국수틀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중국의 것이라고 말하자 매우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방금 전까지 국수가 잘 뽑힌다며 국수틀에 대해 칭찬 일색이던 여인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국수틀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체츄 축제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국수틀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기 전에는 국수틀에 대해 아무 불평도 없던 사람들이 중국의 것이라는 것을 알자 흠을 잡기 시작했다.
산시성의 국수틀을 보고 중국의 것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부탄인들의 반응이 무척 재미나기도 했지만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산시성의 국수틀과 부탄의 국수틀이 놀랄 만큼 흡사한 것은 혹시 중국의 압출면 문화가 전파되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닐까.-239쪽

"인도인들은 산을 싫어해서 산에 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힌두문명의 재미있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힌두문명은 대평원에서 잉태된 문명이기 때문에 애써 히말라야처럼 높은 산을 오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산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었고 실제 전혀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광대한 내륙문화이 중국문명이 바다로 나가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인도에 면뿐만 아니라 중국문화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즉, 히말라야는 중국문화가 인도로 전파되는 것을 막는 거대한 장벽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면도 인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티베트 문화권에서 멈춰선 것입니다."-247쪽

우리가 만난 이어령 박사는 이런 이유로 면이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 될 수 있었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외래문화는 축제문화가 되기 참 좋습니다. 평소에 늘 봐서 익숙한 토착문화와 달리 외래문화는 색다르니까 여느 것과 차별화되기 쉬운 거죠. 외래 작물인 밀로 만든 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통 때 늘 먹던 음식이라 친숙한 밥은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기 어려웠지만 면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면은 이색적인 외래의 것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 좋았죠.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뜻밖에 횡재를 만났을 때 "이게 웬 떡이야?"라고 하지 "이게 웬 밥이야?"하지 않습니다. 밥은 늘 먹는 음식이고, 떡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특수한 것이 의미가 부여되기 쉽죠. 특히 면은 실처럼 모양이 길기 때문에 장수와 사람과의 긴 인연을 상징했습니다. 쌀알은 모두 따로따로 분리되어 떨어지지만 면은 길게 얽히기 때문에 시간의 상징이었죠. 그래서 생일이나 회갑연에는 면처럼 길게 살라는 의미에서 국수를 먹었습니다."-258쪽

"사찰 국수의 육수에 들깨를 넣는 이유는 승려들이 고기를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승려들의 식단은 채식입니다. 때문에 단백질과 지방이 부족해지기 쉬운데, 들깨에는 이런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승려들은 들깨를 많이 먹었고, 또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들깨는 승려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지방의 공급원이었습니다. 들깨 칼국수는 전통적인 사찰국수입니다."-274쪽

"승소는 스님들이 국수를 이르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스님의 미소’라는 뜻으로, 스님들이 국수만 보면 좋아서 웃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스님들이 왜 국수를 좋아하냐면요, 국수에는 육식을 하지 않는 스님들에게 결핍되기 쉬운 글루텐이라는 단백질이 많아서 국수만 보면 몸이 당기거든요. 그래서 국수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미소를 짓게 돼 승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어요."-276쪽

에도시대는 270년간 지속되었고, 개방 전까지 한국, 중국, 네덜란드밖에 교역하지 않았던 매우 폐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에도문화는 일본 안에서 그들끼리 건설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끼리 독자적으로 세운 도시, 에도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18세기 전성기 때의 에도의 인구는 무려 100만 명에 달했다. 비슷한 시기 중국 베이징의 인구는 60만, 프랑스 파리의 인구는 55만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그 무렵 에도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던 것이다.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꺼려했던 에도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니, 나는 아이러니한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328쪽

어촌에 지나지 않았던 에도가 100만 명에 달하는 대도시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에도시대 일본의 실질적인 통치세력이었던 도쿠가와 막부의 정치체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도쿠가와 막부는 쇼군이 다이묘를 영주로 임명해 그들에게 관할하는 영지를 통치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쇼군은 그 다이묘들을 다스리는 형태의 중앙집권적 봉건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쇼군은 다이묘들의 충성도를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했기에 다이묘들의 처자식들을 에도에 인질로 잡아두고 ‘참근교대’라는 제도를 실시했다. 참근교대는 다이묘들을 1년 동안은 자신의 영지에서, 1년간은 에도에서 거주하게 하는 제도로, 쇼군은 이를 통해 반란을 막았다.
그런데 전국 각지의 260여 명에 달하는 다이묘들이 참근교대를 하기 위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수행원이 적게는 100~150명, 많게는 4,000명이 따라붙었다. 그러니까 매년 에도에 30-40만 정도의 무사들이 오갔고, 여기에 이들을 위한 사원과 창고, 숙소 등을 건축하기 위해 전국에서 수공업자와 상인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정권강화를 위해 도입한 참근교대제가 에도를 대도시로 급성장하게 하는 기능을 한 것이다.-328쪽

일본 사람들은 신도시 건설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장인, 노동자, 상인들을 가리켜 ‘조닌’이라 불렀다. 조닌은 도시에 사는 상공업 종사자라는 뜻으로, 다이묘들이 거느린 무사들과 이들이 가세해 에도는 한때 남성 인구가 전체 인구의 70%에 육박했다. 한마디로 에도는 남자들의 도시였던 것이다.
에도의 남자들, 특히 조닌 중에는 가족을 두고 혼자 지방에서 올라와 사는 독신들이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공사 현장 인근의 목조 연립 주택인 ‘나가야’에서 살았다. 나가야는 한 채의 집을 수평 방향으로 여러 개로 칸막이해서 다가구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만든 집으로, 마당에 상수도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급증한 인구로 주거공간이 가구당 5평 남짓으로 매우 비좁았다. 그로 인해 부엌이 있기는 했지만 화재의 위험성 때문에 매 끼니를 해 먹기가 불편하고 위험했다. -329쪽

놀랍게도 같은 시기, 머나먼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유일무이하게 고유한 국수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 중세 유럽 사람들은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남부 이탈리아인들을 가리켜 국수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먹는 대식가라는 뜻의 ‘만자 마케로니’라고 불렀다. 그런데 나는 이 지점에서 이런 의문들이 생겼다. ‘수많은 유럽인들 중에서 왜 이탈리아인들만이 국수를 먹었을까?’, ‘이탈리아 사람들은 언제부터 국수를 먹기 시작했을까?’, ‘혹시 이탈리아의 국수도 중국 국수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등등.-337쪽

에도시대와 나폴리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한 현상에 주목했는데, 바로 국수라는 음식이 중소 상인들, 도시의 육체 노동자들, 서민층에게 각광받는 음식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동서양을 떠나 국수가 인류 최초의 패스트푸드였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닐까.-387쪽

안도 모모후쿠가 개발한 인스턴트라면은 인류의 식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사발이나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면의 문화가 없던 곳에서도 면을 먹게 된 것이다. 즉, 인스턴트 라면으로 인해 면은 인류 공통의 먹거리가 되었다. 실제로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인들이 지금까지 먹은 인스턴트 라면의 개수는 무려 1,000억 개에 이르고, 현재 지구상의 60억 세계인들이 연간 100억 개에 육박하는 인스턴트 라면을 먹고 있다고 한다. 1년간 세계에서 소비되는 인스턴트 라면을 모아 에펠탑을 지으면 무려 327개를 세울 수 있다. 라면은 인류가 만든 가공식품 중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식품으로,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390쪽

인스턴트 라면을 만드는 과정 속에는 2,500년 동안 인류가 고안해내고 발견한 면 제조 방법이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인스턴트라면은 밀가루를 물, 소금 등과 적절한 비율로 섞고(배합)→밀반죽을 얇고 평평하게 밀고(압연)→얇게 민 반죽을 자르고(제면)→면을 익히고(증숙)→찬물에 면을 식히고(냉각)→식힌 면을 말리는(건조)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이는 우리 제작진이 국수의 발자취를 따라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던 곳곳에서 만났던 고대 사람들이 창안해 낸 제면법들이었다. 즉, 간편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대표음식인 인스턴트라면 속에 수천 년의 국수 역사가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 -3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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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1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으로도 나왔었군요. 다큐멘터리 재밌게 봤었어요.
날이 더워도 추워도 국수가 생각나지 않아요? 저는 점심에 냉모밀국수 해먹었어요. ㅎㅎ

마노아 2010-06-19 19:50   좋아요 0 | URL
저는 오늘 점심에 칼국수 먹었어요. 급식 메뉴가 칼국수였거든요.
에어콘 바람으로 추웠는데 딱 좋았어요.
그치만 요새 가장 먹고 싶은 건 콩국수예요.^^

L.SHIN 2010-06-20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전에 읽을까 말까..했었는데.
재밌는 것은 동.서양 어느 나라나 국수 문화가 있다는 거에요 ^^

마노아 2010-06-20 16:30   좋아요 0 | URL
국수가 서민 음식으로 보편화되었는데, 지금도 경우에 따라 고가 음식도 되어요.^^
아, 드라마 파스타 참 재밌게 봤는데..^^

BRINY 2010-06-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다큐멘터리 보면 정말로 면이 땡겼어요.

마노아 2010-06-20 16:30   좋아요 0 | URL
이 책 보는 것 보더니 어떤 샘이 다큐가 1편 빼고 너무 실망스러웠다고 막 흥분하셨어요.
저는 안 봐서 대꾸할 수가 없었어요. 그치만 궁금했어요.^^

같은하늘 2010-06-22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수를 좋아하는 저 TV로 열심히 봤던 기억이...^^
책에도 사진이 잔뜩 실려 있나요? 먹고싶다...

마노아 2010-06-22 08:48   좋아요 0 | URL
책에는 사진이 그닥 많지 않고요, 대략적인 현지 분위기만 담아서 오히려 우중충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