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꽃의 추억 - 이마 이치코 걸작 단편집 1
이마 이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11편의 초기작. 그때도 미스터리한 이야기와 남남 커플에 꽂혀 있던 이마 이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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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8-16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어떻게 지내요, 마노아님?

마노아 2010-08-16 15:56   좋아요 0 | URL
내일 모레 개학한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있어요.^^ㅎㅎㅎ
음, 친구를 만났고, 병원에 다녀왔고, 조카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고, 지금은 만화책을 보고 있어요.
마지막 방학을 만화책과 함께.(응?)
 


오른손잡이는 왼발이 더 크다? [제 1178 호/2010-08-16]


새엄마가 시킨 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마친 콩쥐는 잔치가 열리는 연회장으로 향한다. 다행히 두꺼비가 마련해준 예쁜 옷과 꽃신이 있어 나름 엣지 있는 모습으로 차려입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급한 마음으로 달리던 콩쥐는 그만 길에 넘어지고 만다. 이때 그녀의 발에서 꽃신 한 짝이 벗겨져 원님 앞에 떨어진다.

“어머, 내 꽃신!”
“이런 곳에 꽃신이 떨어져 있다니 누구 것인고?”

꽃신을 주워든 원님은 신발의 임자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콩쥐를 발견한다. 앙증맞은 꽃신만큼 아름다운 처자였다. 원님이 다가가 말을 걸려는 순간, 볼이 붉어진 콩쥐는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포기할 원님이 아니었다. 꽃신 한 짝을 들고 온 동네를 찾아다니며 콩쥐를 찾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꽃신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나머지 꽃신과 옷만 발견됐다. 콩쥐가 새엄마에게 들킬 것을 두려워해 옷과 꽃신을 강가에 내다버렸기 때문이다.

“어허~ 그 처자를 다시 볼 방법이 없단 말인가?”
“나리, 소인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꽃신과 옷을 버린 것을 보니 그 처자가 자신이 드러나는 걸 반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침 이 고을이 나막신으로 유명하니 꽃신과 같은 크기의 나막신을 만들고 그 신발이 발에 맞는 처녀를 모델로 뽑는다고 하면 어떨지요? 꽃신이 아니라면 그 처자도 큰 의심 없이 신발을 신어볼 것입니다.”

이에 꽃신과 크기가 같은 나막신이 만들어졌고, 원님은 ‘고을 특산물 나막신 모델을 뽑는다’는 방을 붙였다. 이튿날부터 마을 처자들은 하나 둘 관아로 나와 나막신을 신어보기 시작했다. 신발 신기 이벤트가 진행된 지 4일째 드디어 나막신이 발에 꼭 맞는 처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리,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래? 그런데 왜 말끝을 흐리느냐?”
“나막신이 꼭 맞는 처자가 두 명이라고 합니다. 한 명은 오른쪽 발에 꼭 맞고, 다른 한 명은 왼쪽 발에 꼭 맞다고요. 그런데 바꿔서 신겨봤더니 둘 다 발에 빡빡하게 끼었답니다.”
“아니, 그럼 나막신을 만드는 자가 양쪽을 다르게 만들었단 말이냐? 내 이놈을 당장!!”
“아, 아닙니다. 신발 치수는 똑같다니까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원님은 고민에 빠졌다. 사람의 양 발 크기가 다르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했다. 신발을 만들었던 장인을 불러 사람의 왼발과 오른발 크기가 다를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럼유, 지가 나막신만 20년간 만들었는데유.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는 해도 왼발과 오른발의 크기가 같은 사람은 드물어유. 왼발이 오른발보다 평균 0.6mm 더 길어유. 어떤 사람은 왼발과 오른발 길이가 1~2mm 정도 차이 나기도 하구만유. 지는 10mm나 차이 나는 발도 본 적이 있다니께유. 그런 분들은 신 만들어신기 곤란할거유~.”
“그래? 그런데 그건 왜 그렇단 말이야? 오른손과 왼손은 거의 크기가 같지 않느냐? 발 크기가 차이 나는 이유는 모르느냐?”

“나막신 만들어 파는디 뭘 알겠어유? 전에 신발 만들어줬던 의원 양반이 하는 말 들으니께 오른손잡이는 왼발이 오른발보다 힘이 더 세다고 하대유. 그래서 왼발이 몸을 지탱하고 힘을 쓰다보니 오른발이 더 길어졌다는 거에유. 뭐 어려운 건 기억이 안 나고유~.”

이때 서양 문물을 꽤나 접했다는 서 생원이 나선다.

“제가 읽은 책을 보면 우리 몸에 신경이 등뼈에 있는 척수에서 한 번 교차돼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오른손잡이는 왼발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발로 공을 차고 달려가는 동안에도 왼발이 몸을 묵묵히 지탱하는 것이죠.

아, 재미있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발 길이가 차이 나는 것처럼 발가락 길이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고대 이집트라는 나라와 그리스라는 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와 조각을 보시면 이집트인은 엄지발가락이 둘째발가락보다 길고, 그리스인은 둘째발가락이 엄지발가락보다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엄지발가락이 둘째발가락보다 긴 발을 ‘이집트형’, 짧은 발을 ‘그리스형’, 같은 것을 ‘스퀘어형’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서 생원의 말을 꼼꼼히 받아 적는 나막신 장인. 이제는 질문까지 할 기세다.

“저, 선상님. 그럼유. 사람들 발 모양 중에 제일 많은 것은 뭔가유? 보통 어떤지 알면 신발 만들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집트형이 60%로 가장 많고, 스퀘어형은 33%, 그리스형이 7%라고 알려져 있어요. 세계적으로도 이집트형이 가장 많은데 이것을 통해서 엄지발가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죠. 엄지발가락은 발의 균형을 잡고,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하기 때문에 길고 커야 하는 것이죠.
“아! 그렇구만유~. 앞으로 신발 만들 때 참고가 되겠어유. 감사혀유!”

콩쥐를 찾으려던 ‘신발 신기 이벤트’가 갑자기 발 모양 학습 시간으로 변하는 동안, 원님은 콩쥐를 찾기 위한 방법을 고민 중이었다. 갑자기 손뼉을 치며 벌떡 일어난 원님. 뭔가 묘안이 떠오른 모양이다.

“이방, 혹시 내가 그 처자를 만났을 때 주웠던 신발이 어느 쪽이었는지 기억하느냐?”
“아, 글쎄요. 오른쪽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왼쪽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 처자가 오른쪽 다리를 절며 사라졌던 것 같구나. 그 말은 오른쪽 신발이 헐거웠다는 것이기도 하겠지?”
“그렇죠!”
“그렇다면 왼쪽 발에 나막신이 맞는 여인이 그 처자인 듯하구나. 왼발에 나막신을 신고 있는 처자는 고개를 들라.”

처자가 고개를 들자, 그때 만났던 아리따운 여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원님은 흘러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콩쥐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꽃신을 내밀며 청혼을 한다. “그대를 처음 본 그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며 “결혼해 행복하게 살자”고.

콩쥐는 붉어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두 사람은 오래오래 서로의 발을 씻어주며 행복하게 지냈다고 한다. 발은 촉각이 가장 잘 발달한 기관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사연을 전하면서 말이다.

글 : 과학향기 편집부

※ 과학향기 제525호 ‘내 발은 이집트형일까, 그리스형일까?(2006년 11월 17일자)’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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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0-08-2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는 재미난데 정말인가요?
전 오른손잡이인데 오른발이 더 크던데...

마노아 2010-08-20 21:32   좋아요 0 | URL
저는 확실히 오른손보다 왼손이 더 커요. 오른손은 피아노 건반 도에서 레까지 닿고, 왼손은 도에서 한 옥타브 위 미까지 닿거든요. 저도 오른손잡이에요~^^
 


이상 탄생 100주년, “이상이 수학천재라고?” [제 1177 호/2010-08-16]


“종이로만든배암이종이로만든배암이라고하면▽은배암이다 / ▽은춤을추었다 / ▽의웃음을웃는것은파격이어서우스웠다 / …중략… / 굴곡한직선 / 그것은백금과반사계수가상호동등하다 / …중략… / 1 / 2 / 3 / 3은공배수의정벌로향하였다 / 전보는오지아니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인 이상(1910~1937)의 ‘▽의유희’라는 시의 일부다. 여기서 역삼각형은 촛불을 의미한다. 촛불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춤을 춘다고 했고, 촛불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모습을 굴곡한 직석이라고 했으며, 촛불이 환하게 밝아지는 모습을 숫자 1, 2, 3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이상의 시를 보면 수학적인 표현이 많이 나온다. 그는 ‘삼차각설계도-선에관한각서1, ∇의 유희, 건축무한육면각체, 조감도-신경질적으로비만한삼각형’처럼 작품 제목에서부터 삼각형, 육면체, 각, 선처럼 우리가 잘 아는 용어를 활용했다. 그러면서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그려냈다. 수학으로 세상을 노래한 것이다.

2010년 8월 20일은 그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박제가 된 천재’라 불리는 그의 작품에는 문학적 표현에 숨겨진 의미뿐 아니라 수학적 표현도 많다. 그래서 수학자들 사이에는 그가 수학자가 됐다면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을지 모른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탁월한 수에 대한 감각과 비상한 계산력을 볼 때 이상이 수학자였다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근무했던 그는 독특한 계산법으로 업무를 처리해 동료를 놀라게 할 정도로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보인 바 있다.

그런데 이상은 왜 수학적인 표현을 이용해서 시를 썼을까? 그가 표현한 수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그의 전공부터 살펴보자. 그는 1926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1929년에 경성고등공업학교(현재 서울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경성고등고업학교 재학 시 그는 일본 도쿄대에서 쓰는 것과 같은 교재, 즉 서양의 최신 과학기술과 수학이 수록된 교재로 공부했다. 덕분에 과학과 수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고 볼 수 있다. 또 수학자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수학적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수학과 과학으로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정신과 같이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어려운 것에 수학이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삼차각설계도’라는 연작시 중 ‘선에관한각서 2’를 보면 이상이 당시에 꿈꾼 세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에는 1과 3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1과 3을 단순한 숫자가 아닌 차원으로 해석한다. 즉 ‘1+3’에서 1은 선을, 3은 3차원의 공간을 뜻하며, 1+3은 차원의 결합으로 4차원의 세계, 즉 인간이 모르는 새로운 세계를 말한다고 본다. 이상이 이 시에서 4차원을 암시했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서 신범순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이 시는 뒤쪽 괄호 안에 주석을 달아 시를 설명하는데, 여기서 ‘인문의 뇌수’, 즉 인문적인 정신과 마음을 강조했다는 것. 또 이상이 숫자를 수학과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 1로는 ‘나’를, 3으로는 ‘그들’을 가리켰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시 말해 과학적으로만 해석할 경우 이상의 시를 잘못 알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다. 신 교수는 “당시에 과학적으로 4차원이 제시됐다”며 “이상처럼 뛰어난 천재가 단순히 흉내 내기를 했을 가능성이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특히 이 시 A+B+C=A, A+B+C=B, A+B+C=C에서 이상의 수학적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이 수식이 성립하려면 A, B, C가 평면에서는 같은 점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공간에서는 다른 위치에 있어도 세 점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해 직선으로 연결되면 세 점이 동일한 한 점으로 보이는 경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역시 이상의 남다른 수학적 표현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상은 이처럼 예술적인 재능은 물론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다. 한 전문가는 “이상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 다방면의 천재”라고 말한다. 전인적이고 다재다능하며, 수학과 과학을 정보로 활용한 천재라는 이야기다.

참고로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다. 이상이라는 이름은 연예인들이 실제 이름 대신 사용하는 가명과 비슷한 셈이다. 필명 이상에 대해서는 학창시절 별명이라는 설과 공사장 인부들이 그의 이름을 몰라 ‘리상(이 씨)’라고 불러 그대로 썼다는 설이 있다.

그는 1936년 폐결핵을 치료할 목적으로 도쿄로 갔다가 불온사상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됐다. 그러다 병보석으로 풀려 도쿄대 부속병원에 입원했지만 안타깝게도 1937년에 생을 마감했다.

글 : 박응서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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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6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고 재미있는 글이예요.
이상 님을 생각하면, 가슴부터 짜안해지지 않나요? 저는 그래요.
갑자기 이상 님의 평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너무 좋다는 생각만 하고, 한번도 생애에 대해 제대로 알아본 적은 없는거 같아요.

마노아님, 좋은 글 감사드려염! 뽀오~

마노아 2010-08-16 14:54   좋아요 0 | URL
수학적 재능을 가진 천재 시인이라니, 이력도 참 독특한 이상 시인이에요.
건축무한육각면체의 비밀이라는 영화가 떠올라요. 긴장감은 덜했지만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재밌었어요.
퍼온 글임에도 사랑 받고, 호홋, 제가 더 기뻐요.^^
 


광화문 복원, 어떻게 진행됐을까? [제 1176 호/2010-08-16]


화강암으로 육중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이층의 문루를 얹은 광화문. 이층 문루로 이뤄져 멀리 조망하기 좋을 뿐 아니라 궁궐 정문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내기도 안성맞춤이다. 기단에 있는 3개의 아치형 출입문은 경복궁이 조선의 정궁이라는 위엄을 과시한다. 돌로 만든 기단 위에는 흙을 구워 벽돌처럼 만든 ‘전돌’로 나지막한 담을 둘렀는데, 여기를 장식한 팔괘문양은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꾸는 조선조 궁궐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경복궁의 남측 정문이자 수도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이 3년 8개월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10년 8월 15일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웅장한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광화문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다. 광화문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고, 옛 모습을 찾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을까?

광화문은 조선 태조 4년(1395년) 창건됐지만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면서 함께 훼손되고 만다. 이후 260년 정도 폐허로 남겨졌다가 고종 1년(1864년)에 이르러서야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대원군이 중건한 광화문은 여러 차례 수난을 겪으면서 원래 모습을 잃게 된다. 대표적인 사건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공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광화문은 총독부 건물의 전면을 막고 있다는 이유로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의 중요 건물인 근정전의 축과 틀어지게 배치됐다는 사실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당시 남산에 있던 일본 신사를 바라보게 한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속뜻은 따로 있었다. 일제는 조선조 정궁의 기본 축을 변형시키고 문을 옮겨서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소행은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든 행위와 같은 맥락이었다.

건춘문 북쪽에 덩그러니 남겨진 광화문은 한국전쟁 중에 하부의 석조 기단을 제외한 상부의 목조건물마저 소실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1968년에 기단은 그대로 사용하고 상부의 건물은 철근콘크리트로 재현했지만 전면에 도로가 개설돼 일제에 의해 왜곡된 광화문의 배치 축과 위치는 바로잡지 못했다. 재료도 철근콘크리트로 복원하게 돼 일제에 의한 정체성 왜곡이 그대로 지속됐다.

결과적으로 광화문은 경복궁의 중심축과 5.6도 틀어지고 후면으로 14.5m 물러나 자리하게 됐던 것이다. 이렇게 원형을 잃어버린 광화문을 복원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드디어 2006년부터 광화문을 복원하기 위한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섰을 당시의 광화문의 모습(1번)과 한국전쟁 때 목조건물이 소실된 광화문의 모습(2번), 1960년대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의 모습(3번), 경복궁의 정문으로 자리하고 있는 광화문의 모습(4번) 자료제공 : 국립문화재연구소>

광화문과 같은 역사적 건축물을 복원할 때는 지켜야 할 원칙이 몇 가지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복원이 증거(evidence)에 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담당자의 추측이나 상상에 의해 복원이 진행되면 원래 건물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국제기구도 이런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광화문 복원에 필요한 증거는 충분한 편이었다. 일제강점기의 각종 사진자료와 당시 실측한 도면들이 존재했으며, 조선 후기 경복궁의 궁궐 배치도인 북궐도형도 남아 있었다. 여기에는 각종 건물의 위치가 비교적 상세히 묘사돼 있고 건물의 주칸, 공포형식 같은 기본적인 사항도 기술돼 있어 도움이 됐다.

그러나 이런 간접적인 사료보다 직접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실제 건물이 위치했던 곳의 발굴조사도 병행됐다. 발굴을 통해 각종 자료를 검증할 수 있었고, 이런 자료들을 토대로 설계도 진행할 수 있었다. 세부적인 건축양식은 경복궁을 비롯해 궁궐에 남아 있는 동시대의 비슷한 유형의 건물들을 참고했다.

이런 자료에도 불구하고 세부 설계에서 증거가 부족해 설계자를 곤란케 했던 것이 ‘현판’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현판은 1960년대에 복원할 때 박정희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이다. 하지만 건물을 ‘고종 당시의 것으로 복원한다’는 취지에 비춰볼 때 현판도 원래 것으로 복원하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현판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우선 일본 동경대에 남아 있는 광화문 사진을 토대로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유리건판 광화문 사진에 남아 있는 이미지는 너무 작고 주변 부위가 선명치 않아 그대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컴퓨터영상처리 기법인 디지털프로세싱을 이용해 글자 형태를 추적하자 복원 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서예 전문가들은 이 안을 가지고 수차례 회의를 거쳐 최종 복원 안을 확정했다.

디지털프로세싱 기법은 기존의 아날로그 데이터에서 확실치 않은 부분들을 디지털로 전환해 작업한다. 이미지 데이터를 작은 단위의 픽셀로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더 정확한 이미지 자료를 획득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첨단기술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광화문 현판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가진 문화유산이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그것의 과거 모습을 모르거나, 제대로 복원하지 못한다면 그 가치가 줄어든다. 광화문처럼 소중한 문화유산을 되살리는 데에는 고증과 발굴은 물론 컴퓨터를 활용한 디지털 작업도 필요하다. 앞으로도 발전한 과학기술의 힘으로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빛낼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김봉건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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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조선 3 - 르네상스의 조선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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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푸스트 형제와의 법정 공방에서 인쇄공방과 성서 출판권을 빼앗긴 이후로 구텐베르크는 실의에 빠졌다. 석주원은 위기에 처한 인쇄소를 다시 일으키고 구텐베르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애를 쓴다. 그가 위기 돌파의 출구로 여긴 곳은 피렌체.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고 있는 그 한복판이었다.  

역사적 사건과 그 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까닭에 실존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코시모 데 메디치와 그의 아들 피에르 데 메디치, 조반니 데 메디치, 이 작품에선 주요 인물이 아니지만 훗날 중요 인물이 되어버리는 로렌초 데 메디치까지 메디치 일가가 나오며 그들의 반대 세력으로 루카 피티, 아뇰로 아치아욜리, 니콜로 소데리니, 디에티살비 네로니 등이 나온다. 메디치 일가의 독재를 견제하고 세력을 잡기 위한 공화파가 그들이다. 이 사람들은 이름만 어렵고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누구라도 딱 보는 순간 그 사람! 하고 떠올릴 법한 등장인물이 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 책의 배경인 1462년에는 아직 십대의 소년으로 나온다. 어리지만 그때 이미 '천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왜 아니겠는가.  

메디치 가에서 추진하고 있는 플라톤 아카데미 부설 인쇄소는 누구에게나 탐나는 사업이었지만 모두가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는 법. 결국 구텐베르크 인쇄소와 푸스트 인쇄소가 격돌한다. 푸스트 인쇄소는 여전히 사람을 매수하고 돈을 뿌리는 방법으로 도전하지만 석주원 측은 실력으로 정면돌파하는 쪽을 택한다. 여느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그쯤이야 모든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전개인데 다만 석주원이 위기를 넘어갈 때마다 우연이 개입하는 게 불만이다. 메디치 가의 사생아를 보호해 준다든지, 나중에 로마에 가서는 추기경의 사생아를 생모에게 찾아주는 등, 뜬금없이 누군가가 튀어나와서 석주원과 엮이며 그들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어주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글쓰기 책의 표현으로 빌자면 '닫힌 표현'이 주로 쓰였고, '열린 표현'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달까. 석주원이 얼마나 강직하며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인물인가를 보여주기보다, 그저 그는 그런 설정의 인물이라고 정해놓고 시작하는 느낌이다. 조선의 중인 출신 아이가 장영실과 함께 명나라로 몸을 피한 후 서양까지 건너가 인쇄 문명의 꽃을 피우는 이야기 자체는 무력 매력적이다. 그러니까 발상의 전환과 상상력의 나래는 몹시 훌륭했는데, 그 좋은 소재를 하나의 마무리된 이야기로 끌어가는 힘은 좀 달리는 편이다. 좋은 식재료를 가지고 왜 이리 맛없는 음식을 만들었을까 안타깝다.  

그 시절에 등장하는 유명한 교황이 세 명 나오고 엔리케 왕자에 콜럼버스까지 등장하는 화려한 출연진이지만 까메오 많은 영화치고 별볼일 없는 것처럼 메인 밥상은 실망스럽다.  

책의 맨 뒤에는 관련 그림과 사진이 실렸는데 이걸 보는 재미는 제법 크다.  

 

양피지 위에 책을 베껴 쓰고 있는 필경사의 모습. 작품 속에선 메디치 가의 사생아가 필경사로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한 자동인쇄기. 작품 속에서 석주원의 인쇄소 측이 경쟁에서 밀릴 위기에 처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게 해준 일등 공신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소를 방문한 고객에게 인쇄된 종이를 보여주고 있다. 앉아 있는 저 남자, 저거 맨 다리인가?? 

 

15세기 피렌체의 전경.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 중에서 르네상스를 주도한 '꽃의 도시'다.  

작품을 읽으면서는 배경 장소가 계속 이동하지만 그 현장감은 별로 살아있지 않다.  

 

요한 푸스트와 쇠퍼가 출판한 책에 넣었던 상표와 그들이 고딕체로 제작한 '시편' 

아래는 알도 마누치오가 창업한 알디네 출판사의 상표와 이곳에서 이탤릭체 활자로 만든 최초의 문고본인 베르길리우스 시집. 

확실히 아래쪽 글자가 눈에 더 편하다. 두 인물 모두 작품 속에서 등장한다. 

 

코시모 데 메디치가 머물던 피렌체의 피티 궁전.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은행가이자 정치 지배자로서 문화예술의 적극적인 후원자였다. 

 

독일 마인츠에 있는 구텐베르크 박물관. 이곳이 오히려 '꽃의 도시' 느낌이 강하다. 꽃나무 때문인가 보다. 

무려 3권이나 되는 책을 읽었는데 좀 허탈하다. '베니스의 개성상인'도 세 권짜리인데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그 책도 출발 지점의 상상력이 빼어나다고 알고 있는데 이야기의 힘이 약하면 화가 날 것 같다. 

이 책을 쓰면서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금속활자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목표였던 것 같은데 목표와 달리 그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 같지는 않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서 얘기를 할 때도 마치 ppl을 보는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시작할 때이 기대치가 있어서인지 마무리의 만족감이 너무 떨어진 게 아쉽다. 욕심이 앞섰던 듯하다. 작가도, 독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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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5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5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8-17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심많은 그 작가에 그 독자^^;

마노아 2010-08-17 21:34   좋아요 0 | URL
그렇게 콤비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