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관계가 대등할 리도 만무고, 좀 더 인간적이기도 힘들지만, 실상은 그 사이에 놓여져 있는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격차를 벌여놓을 때도 많다고, 본인도 알게 모르게, 혹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되는 일이... 많아 보인다 생각했다.  

내내 우울하다. 우울하지 않을 도리도 없지만, 더 우울해질 일들이 계속 생기는 건 속상한 일이다.  

온 세상이 나를 멸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치솟는 건, 절반은 자학이고 절반은 맞는 것도 같다. 그게 속상해서 평소 안 하던 입바른 소리를 하고는, 조금만 더 참을 걸... 하고 하루종일 후회 중이다. 후회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속상해 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배운 게 있다... 하고 쿨하게 넘어가면 좋겠지만, 아마 좀 더 힘들어하고 잊혀지겠지.  

대부2를 보았다. 무려 3시간 20분짜리 영화. 앞에 2시간은 졸다 깨다 해서 도무지 뭘 봤는지 모르겠고, 나중에 1시간 20분만 잠이 깨서 제대로 봤다. 졸음에 겨워 1편 만큼의 감동을 받진 못했지만, 역시 거장의 무게가 느껴진다. 속편이 작품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감탄하면서.... 3시간 20분을 딱딱한 의자에 구겨져 있다가 일어나니 온 몸이 비명을 지른다. 날이 추워 곱아진 손으로 톡톡 두드려 보지만 역시 삐거덕. 이 정도 되면 영화 감상이 아니라 고문이구나.  

엄마는 내일 3박4일 동안 제주도 여행을 가신다. 얼마 전에 다친 발목도 좀 걱정이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걱정이다. 그래도 처음 가보는 제주도 여행, 기왕이면 즐거운 시간 가지셨으면 한다. 나도 여행 가고프다. 머릿속 좀 정리하고, 어디든 훌쩍 다녀와야겠다. 하루 당일치기라도... 아니, 떠나야 정리가 되려나?  

텔레파시처럼, 내 마음 속 울림이 상대에게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애타게 찾고 있다고, 내 목소리 들리지 않냐고, 제발 좀 알아줬으면 싶은데...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뭐가 있을까. 아침에 막힌 변기도 밤11시가 넘어서야 뚫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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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0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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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1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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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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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1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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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1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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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2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의 소통이 가장 힘든 일인거 같아요.
힘내세요! 오늘 하늘이 맑네요!

마노아 2010-10-27 11:00   좋아요 0 | URL
맑고 서늘한 날이에요. 그 정갈한 기운을 받아 정신 차려야겠어요.
마녀고양이님 감사해요!

카스피 2010-10-2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2라 디비디로 보셨나요.이거 절판인것 같던데요^^

마노아 2010-10-27 11:54   좋아요 0 | URL
지금 상영 중이에요.^^ 저는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봤어요.

다락방 2010-10-2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막힌 변기가 그나마 밤 열한시에라도 뚫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도록 해요, 마노아님. 안 뚫렸으면 어쩔뻔 했어요!

난 이제 올림픽공원도 못가겠어요. 너무 추워져서...이제 혼자 울기 위해 갈 데가 없어요, 마노아님. ㅠㅠ

마노아 2010-10-27 17:18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에 누군가 이용했단 소리를 듣고 깜놀했어요. 변기 뚫기 필살기 3단계를 실행해볼 뻔했는데, 다행히 1번으로 해결 보았어요. 뚜레뻥보다도 교화 좋은 더운 물 붓기 신공이랄까요.
아, 금요일 오후에 날이 풀린대요. 올림픽공원, 아직 희망이 있어요.ㅜ.ㅜ
오늘 내일만 버텨요. 불끈!(응?)

같은하늘 2010-11-0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낮에 잠깐 켜진 TV에서 나오는 재방송 드라마에서 갑과 을의 이야기가 나오던데, 마노아님의 우울도 그런걸까요? 마음 정화를 위해 잠시 바람을 쐬 보는것도 좋은 방법일것 같아요.

마노아 2010-11-02 00:09   좋아요 0 | URL
메인 데가 있어서 당장은 못 떠나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어디라도 다녀와야겠어요. 울화가 치밀어서요.^^;;;
 


와이파이 vs 3G, 뭐가 다르지? [제 1239 호/2010-10-25]



태연이네 반 아이들이 퀴즈 수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태연과 말자는 퀴즈에는 관심도 없이 계속해서 실랑이 중이다. 말자, 태연의 어깨를 자꾸만 툭툭 때린다. 태연, 왜 자꾸 패냐고 작은 소리로 화를 낸다.

“자, 이번 문제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휴대폰에 관한 거에요. 요즘 광고에도 많이 나오는…”

급기야 폭발해버린 태연. 큰 소리로 신경질을 부린다.

“아, 왜 자꾸 패! 와이(why) 패냐고, 와이 패에~~~!!!”

“맞았어요! 와이파이(Wi-Fi)가 정답이에요. 우리 태연이 대단한데? 문제를 다 듣기도 전에 답을 맞추다니. 우리 모두 태연이에게 박수~”

태연, 영문도 모른 채 그냥 헤벌쩍 기분이 좋다.

집에 오자마자 아빠에게 오늘 있었던 영웅담을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는 태연. 그러나 아빠는 그저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와이파이가 뭔 줄은 아냐? 아니, 와이파이랑 3G(쓰리지)의 차이는 아는 거야?

“쓰리지? 아이 참, 아빠. 그걸 왜 몰라요. 와이 패, 왜 패냐, 니가 자꾸 그렇게 패니까 쓰리지 않냐. 쓰리니까 그만 패라. 그런 얘기잖아요.”

아빠, 딸의 무식함에 뒷목 잡고 쓰러질 지경이다.

“태연아, 제발 부탁이니까 공부 좀 하자. 명색이 과학자 딸인데, 이리도 무식하면 되겠냐? 지금부터 아빠가 하는 말 잘 들어봐. Wi-Fi는 Wireless Fidelity의 약자인데, 해석하자면 ‘근거리 무선 데이터 통신망’을 말하는 거란다. 무선접속장치(AP·Access Point)가 설치된 곳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 안 즉 ‘와이파이존(Wi-Fi zone)’에 있으면 공짜로, 그것도 빠르게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이용해 무선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거지.

“아, 와이파이는 공짜구나. 근데 쓰리지는 또 뭐예요? 속이 왜 쓰린데요?”

아빠,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아이고, 속 터져. 3G는 이동통신사 기지국의 안테나를 이용해서, 다시 말해서 전화망을 이용해서 인터넷을 쓰는 거야. 전화망을 쓰니까 당연히 전화요금을 내야겠지. 간단히 인터넷 검색 정도 하는 건 비용이 많이 안 들지만 지속적으로 많은 데이터를 사용해야 하는 인터넷 동영상 시청 같은 걸 하면 상당히 많은 돈을 내야 한단다. 대신에 와이파이존이 아니어도, 휴대전화가 뚫리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아!! 뭐가 이렇게 어려워. 그러니까 와이파이는 특정한 지역에서만 쓸 수 있지만 대신 빠르고 돈이 안 든다, 그리고 3G는 어지간한 곳에서는 다 쓸 수 있는데 대신 돈을 내야 한다. 이거잖아요. 안 그래요? 돈 내니까 속이 하도 쓰려서 이름을 3G(쓰리지)라고 한 건가?”

“허걱, 그 어려운 얘기를 어쩜 이렇게 정확 명료하게 정리를 할 수 있지? 너, 넌... 머리가 나쁜 게 아니었던 게야?”

“아빠는 정말 날 우습게 보더라. 제가 나름 천재기질이 다분 하걸랑요!”

“알았어, 인정. 그럼 이 참에 조금 더 얘기해줄게.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지? 와이파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란다. 우리나라 와이파이존 보유 규모는 미국, 중국, 영국 등에 이어 세계 7위지만 인구대비로 따지면 세계 1위야. 철도역, 호텔, 백화점, 대학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대부분 와이파이존이 돼 가고 있지. 그만큼 스마트폰도 많이 보급돼 있다는 얘기고. 또 최근에는 유료인 3G망 신호를 잡아서 무료로 쓸 수 있는 와이파이 신호로 전환해 주는 휴대형 공유기도 출시됐단다. 특정 요금제를 사용하면 3G 통신 요금을 무제한으로 쓰게 해주는 통신회사도 있고 말야.”

“그럼 곧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오겠네요? 이걸 뭐라고 하던데…. 유비커? 아닌가, 유비코? 유비코딱지?”

“유비쿼터스!! 에고, 단어를 좀 정확히 알면 안 되겠니? 어쨌거나, 와이파이나 3G의 발달로 곧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유비쿼터스 세상이 오게 되는 건 맞단다. 핸드폰은 물론 자동차, 디지털카메라, 심지어는 집에 있는 가스레인지와도 시간 공간 구애 없이 연결될 수 있는 세상 말이야. 그렇게 되면 굳이 회사에 가지 않고 집이나 기차, 버스 같은 곳에서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이용한 스마트워크가 가능해지겠지. 얼마 전에는 10명 중 3명 정도는 회사가 아닌 곳에서 스마트워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나라에서도 발표를 했단다.”

순간, 태연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에에엥? 정말요? 나라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발표했다고요? 그럼 아빠도 집에서 근무할 수 있겠네요?”

“뭐, 안될 것도 없겠지.”

“와, 만세, 만세!!! 그럼 저도 학교 안 가고 집에서 스마트공부 할래요. 하루 놀다가 선생님께서 스마트폰으로 수업하자고 하시면 아빠가 대신 공부해주시면 되잖아요. 아싸, 유비코딱지 세상 만세!!”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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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 2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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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 2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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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0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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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14: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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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2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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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성출혈열 백신을 찾아낸 의학자, 이호왕 [제 1238 호/2010-10-25]


#1. 1차 세계대전 중(1914~1916년) 영국군 1만 명이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당시에도 러시아군과 일본군 1만여 명이 집단 괴질에 걸렸다. 일본과 러시아에서 각각 인체실험까지 강행했지만 병원체를 찾지 못했다.

#2. 1950년 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 일대에서 유엔군 600여 명이 집단 괴질에 걸려 사망했다. 정전 이후에도 괴질은 계속되어 1954년까지 철원, 포천, 김학 등에서 3,000여 명의 미군 환자가 발생했다.

이 괴질의 정체는 1930년대 말부터 알려진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1942년에야 비로소 ‘유행성출혈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유행성출혈열은 야외활동이 많은 농민, 군인에게서 많이 발병하며 세계적으로 매년 약 50만 명이 감염되는 병이다. 이 병은 발병 이후 특효약이 없어 사망률이 7%에 이른다.

특효약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예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병원체와 면역체를 발견하고 예방백신을 개발한 사람은 한국의 의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이호왕 박사다. 그가 만든 예방백신이 없었다면 이제까지 유행성출혈열로 목숨을 잃는 사람의 수는 꾸준히 증가했을 것이다.

‘한국의 파스퇴르’라 불리는 이호왕 박사는 1928년 10월 26일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났다. 옛날 어른들은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점을 봤는데 이호왕 박사는 어른이 되기 전에 죽는다고 나왔다. 집안 어른들은 일부러 이호왕 박사를 ‘장수돌이’라고 불렀고, 그래서인지 대학까지 별 탈 없이 건강하게 다녔다.

이호왕 박사는 1954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내과의사가 되길 원했다. 그 당시엔 6‧25 직후라 뇌염,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 환자가 넘쳐났는데, 내과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염병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대학에서 미생물학을 공부하다가 일본뇌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본뇌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 1년에 6,000~8,000명이 감염되어 그 중 3,000~4,000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호왕 박사는 1959년 한국으로 돌아와 일본뇌염 연구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1960년대 중반 일본에서 일본뇌염 백신이 개발되면서 환자수는 급격히 줄었다.

일본뇌염이 극복되면서 이호왕 박사는 5년 간 연구했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연구과제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 1969년부터 본격적으로 유행성출혈열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유행성출혈열의 원인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군인에게서만 발견되던 병이 민간인에게도 발견되기 시작해 그 심각성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이미 유행성출혈열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많았고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태였다. 이호왕 박사 역시 연구를 시작하고 처음 5년 간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 ‘형광항체법’을 도입해 연구하면서 회복기 환자에게는 급성환자에게 나타나지 않는 항체들이 대량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기간이 길어지며 위기도 찾아왔다. 이호왕 박사 연구팀은 연구를 위해 등줄쥐 3,000여 마리를 잡아 일일이 조사하며 특이한 항원을 찾아내는 작업을 했는데, 연구원 중 한 명이 동두천 송내리에 쥐를 잡으러 갔다가 유행성출혈열에 걸려 죽을 뻔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 박사는 포기하지 않고 2년여 간 병원체를 찾다가 우연히 쥐의 폐에서 특수한 항원을 발견했다.

드디어 1976년, 이호왕 박사는 유행성출혈열 병원체를 발견했다. 한탄강 주변에서 서식하는 등줄쥐의 폐조직에서 바이러스를 발견했기 때문에 ‘한탄바이러스(Hantaanvirus)’라는 이름을 붙였다. 등줄쥐는 우리나라 쥐의 90%를 차지하는 종으로 병원균을 옮기는 역할을 한다.

이호왕 박사는 이렇게 발견한 바이러스로 진단법을 만들고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서울에서 한탄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하지만 이 때 야외에서 연구하던 연구원과 실험실에서 바이러스를 분리하고 조직배양을 하던 연구원 8명이 유행성출혈열에 걸렸다. 이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안전한 연구 환경을 제공해 주는 문제가 급선무로 떠올랐다. 이호왕 박사는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백신을 개발해야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해졌다.

1981년부터 한탄바이러스 예방백신을 만드는 연구에 몰두한 그는 1989년, 비로소 백신 만들기에 성공했다. 이 예방백신은 임상실험을 거친 후 1991년부터 ‘한타박스(Hantavax)’라는 이름으로 시판됐다. 그 결과 최근 한국에서의 출혈열 환자 수는 2,000명에서 500명으로 감소했다.

한편 이호왕 박사는 연구에만 소질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한국 정부로부터 유행성출혈열 연구비가 전혀 지원되지 않자,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미국국립보건원(NIH)에 연구 계획서를 제출해야 했다. NIH는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곳. 연구계획서는 영어로 체계적으로 써야 했고 연구비를 지원 받으면 일 년에 한두 번 보고서도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이호왕 박사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유행성출혈열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그 후 30여 년 동안 유행성출혈열 연구비는 NIH에서 지원받았는데, 그간 제출한 연구계획서와 보고서만 해도 40여 편에 이른다.

이호왕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내 유전자는 실패를 해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유전자인 것 같다. 내가 연구자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유전자를 갖고 있어 계속 연구를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호왕 박사처럼 병원체를 발견하고, 그 진단법과 더불어 예방백신까지 개발한 연구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 연구기간 동안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은 그의 열정이 결국 많은 사람들을 무서운 전염병으로부터 구해낸 것이다.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의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이호왕 박사에게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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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아기, 2010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제 1237 호/2010-10-25]


“원하는 머리카락 색깔은 갈색이고 키는 175㎝ 이상인 남자 아기로 낳게 해주세요. 저처럼 당뇨병은 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원하는 아기를 얻을 수 있을까. DNA를 이루는 네 가지 염기 아데닌(A)·구아닌(G)·티민(T)·시토신(C)에서 이름을 딴 영화 ‘가타카(GATTACA)’에서 부모는 원하는 유전형질을 갖게끔 조절한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킨다. 이렇게 태어난 ‘맞춤형 아기’는 좋은 직업을 얻고 안락한 삶을 살아간다. 반면 시험관 시술이 아닌, 정상적으로 태어난 ‘신의 아기’는 ‘유전적으로 열등하다’고 하여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다. 가타카는 시험관 아기의 부정적인 면과 유전자 결정론을 묘하게 결합시킨 영화다.

그런데 10월 5일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시험관 아기의 아버지’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로버트 에드워즈 명예교수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여했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수많은 부부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불임 치료의 길을 열었다”고 에드워즈 교수의 업적을 평가했다. 에드워즈 교수와 함께 시험관 아기 기술을 개발한 패트릭 스텝토 박사는 1988년 사망해 수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시험관 아기 기술이 생겨난 때를 이야기 하려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9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한 부부가 있었다. 부부 모두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뒤늦게 아내의 나팔관이 막혀 수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당시 생리학자이던 에드워즈 박사와 부인과 의사였던 패트릭 스텝토 박사를 찾았다.

에드워즈 박사와 스텝토 박사는 여성의 난소에서 꺼낸 성숙한 난자와 남성의 정자를 작은 시험관 속에서 인공 수정시켰다. 수정란은 시험관 안에서 세포분열을 거듭했고, 여러 번 세포분열한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했다. 그리고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덤 종합병원에서는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기는 예정일보다 20여 일 일찍 제왕절개수술을 통해 태어났다.

아기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건강하게 자라 2004년 결혼한 그는 3년 뒤 시험관 수정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현재 32세인 루이스 브라운은 영국에서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난 그해 10월 인도에서 두 번째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1980년 호주에서 세 번째 시험관 아기가 세상의 빛을 봤다. 미국에서 난자의 과배란을 유도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시험관 아기는 점차 보편화됐다. 한국에서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팀의 도움으로 1985년 10월 12일 첫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지금까지 300만 명 이상이 시험관 시술을 통해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상은 ‘인류 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된다. 이 점에 초점을 맞추면 이번 수상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오늘날 아이를 갖지 못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불임환자가 2002년 10만 6,887명에서 2006년 15만 7,652명으로 50%가량 늘어났다.

불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환경호르몬·스트레스·잦은 음주 등 다양하다. 가령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려면 정액 1mL 안에 2,000만 개 이상의 정자가 있고, 그 중에서 활발하게 운동하는 정자 수가 60%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은 정자의 활동성을 낮춰 불임을 일으킨다. ‘정상 정자’라고 해도 정자가 나가는 길(정관)이 막혀있으면 불임의 원인이 된다. 난자의 배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나팔관이 막혀 있어도 아이를 갖기 어렵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현대의학의 기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2008년 시험관 아기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며 “30년 뒤에는 인공 정자, 난자, 자궁으로 100세 노부부도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구승엽 교수는 “시험관 아기가 지금이야 보편화됐지만, 처음 나올 당시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혁신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시험관 아기가 전 세계적인 불임률을 높일 것이란 주장도 있다. 정자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시험관 아기로 아이를 얻으면 당장은 인구증가율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는 또 다시 불임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결과적으로는 불임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영화 가타카에서처럼 맞춤형 아기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현재 산부인과에서는 체외 수정으로 얻은 수정란의 유전정보를 검사해 정상적인 수정란만 자궁에 착상시키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PGD)’이 쓰이고 있다. 부모가 갖고 있는 유전병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법이 오·남용되면 맞춤형 아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시험관 아기가 전 세계 수많은 불임부부에게 희망의 빛이 됐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에 박수치는 것과는 별개로 앞서 언급한 시험관 아기의 ‘그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시험관 아기에 열광할 때 가타카가 그리는 ‘우울한 미래’는 더 빨리 다가올지 모른다.

글 :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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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신 파랑새 사과문고 64
김소연 지음, 김동성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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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표지의 애기씨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내가 참 좋아하는 김동성 작가의 그림이다. 세 편이 동화가 실려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가 표제인 '꽃신'이다. 기묘사화를 배경으로 집안의 화를 입은 애기씨가 절에 숨어 지내다가 몸을 피하느라 먼 길 떠날 옷차림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맞바꾸게 되는 꽃신과 짚신.  

처음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기씨라고만 생각해서 심퉁이 나버린 아이였다. 헐벗은 옷차림과 벗은 발이 더욱 시리다. 그렇지만 곧 마음을 열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꽃신을 만들어주는 아이. 

 

비단 꽃신보다 더 소중한 민들레 꽃 짚신 되겠다. 눈 내리는 겨울에도 민들레는 저 모양새를 하고 있나? 암튼, 곱고 또 곱다. '기묘사화'라는 사건을 끌어당겼지만 그저 배경으로만 나올 뿐 '역사'동화로 치부할 필요는 없겠다. 전혀 아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이야기 '방물고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덕님이. 돼지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서 돼지 밥을 얻으러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덕님이는 장돌뱅이 홍석이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 앞에서 잘 보이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만 보이게 되어서 속상한 덕님이다. 

 

기다리던 홍석이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서둘러 상 치우고 나서는 상처입은 덕님이 모습이 애처로웠다. 사건과 사연이 많아 어머니 잃고서 더 막막해진 덕님이, 그러나 시골 인심 따뜻하고, 상도와 정도를 아는 사람들 덕분에 덕님이는 문제 없겠다. 그 자신도 단단하고 말이다.  덕님이의 새 인생을 보듬어줄 존재는 이제 돼지 한 마리가 아니라 '방물고리'다.

 

똑똑하긴 했지만 사람 마음은 잘 헤아리지 못했던 홍석이도 덕님이를 통해서 마음이 좀 더 넓은 사내로 거듭났다. 뒷모습이 벌써부터 듬직해 보인다.  

세번째 이야기는 '다홍치마'
천주교 박해로 유배 온 선비님께 글공부를 배우게 된 천민 숯장수 큰돌이가 주인공이다. 이번 이야기의 배경이 되어준 사람은 정약용인데, 이번에도 설정만 가져왔을 뿐 역사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곤란하다.  

 

그렇지만 의기로운 선비로서의 모습은 정약용 이름 석자에 부끄럽지 않다.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아내의 낡은 다홍치마에 그림을 그린 선비님. 암수 다정한 새 두마리는 백년해로하길 바라는 아비의 다정한 마음이다. 선비와 큰돌이의 우정, 스승 제자 사이의 마음, 그리고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까지, 예쁜 마음들이 가득한 동화였다. 그림도 곱고 글도 곱다. 동 작가의 '명혜'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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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25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동성의 그림이 너무너무 좋아요~^^

마노아 2010-10-25 21:42   좋아요 0 | URL
저두요~ 김동성 작가님의 그림이 모두 좋아요.^^

후애(厚愛) 2010-10-25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신 정말 좋은 책이에요. 그림도 좋구요.
행복한 한주 되세요~ ^^

마노아 2010-10-25 21:42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아요. 후애님도 한 주 즐겁게 시작하셔요~

bookJourney 2010-10-25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지요?!
역사적인 설정에서 소재를 찾은 동화를 읽을 때마다 "이게 사실일까? 허구일까?"를 한 번 짚어보게 되는데, 저희 아이도 그런가봐요. 이 책 읽으면서도 동화의 사실 여부에 대해 질문을 하더니, <<직지>>를 읽을 때에는 꽤 진지하게 "아, 금속활자가 이렇게 만들어졌어요?" 하더라구요. 종종 헷갈려요. ^^;

마노아 2010-10-25 21:43   좋아요 0 | URL
오오, '직지'도 흥미로워요. 예전에 특집 드라마 '직지'도 잘 되었다고 하던데 보지는 못했어요.
저는 책으로 만나야겠네요. ^^ 얼른 검색해 봐야겠어요. 유후~

순오기 2010-10-2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쁜 마음들이 돋보이는 동화였어요~ 그림에 마음을 빼앗겨도 흡족하고요.^^

마노아 2010-10-25 23:48   좋아요 0 | URL
글도 좋고 그림도 좋고, 참 예쁜 동화예요. 좋은 이야기책이었어요.^^

같은하늘 2010-11-0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예쁜데다 이야기 마저도 예쁜 책이군요. 찜~~

마노아 2010-11-02 00:08   좋아요 0 | URL
마음에 꼭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