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페이퍼에 글을 쓰는 건 일년도 더 지난 것 같다. 그냥 아침에 눈을 떴는데 문득, 알라딘에 글 한 번 써야지 싶은 생각이 불현듯!
얼마 전 야곱에게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박은태 막공을 가지 않겠냐고 메일을 보냈었다. 야곱이 바빠서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 무렵의 나는 진짜 머리에 불붙을 것 같은 상태여서 이 불을 식혀줄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더랬다. 사연 많은 지난 반년이었다.
굵직하게 떠오르는 큼직한 사건은 수학여행 하루 전에 우리 반 숙소가 취소되었던 것. 각 반이 모두 따로 가는 수학여행인지라 숙소도 내가 구했는데 이 집에서 같은 날 중복 예약을 잡아놓은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예약한 곳이 배정되고 우리 반이 최소되는 초유의 사태 발생. 와, 그게 출발 전날 오후 4시 반이었다. 하늘이 노래졌지만, 기어이 다른 숙소를 구했고(심지어 더 좋았고!) 무사히 다녀왔... 다고 하기엔 고생을 많이 했다. 마지막 날에 넘어져서 무릎 까진 학생 학부모 민원까지 해서 여러모로 맘고생을....;;;;
전주한옥마을은 소규모로 여행 가기 좋은 곳으로 보인다. 단체여행은 비추. 일단 방음이 전혀 안 되어서 주변 숙박객께 개민폐. 뛰쳐나가려는 아해들 지키느라 거의 뜬눈은로 밤을 지새우는데 나에게도 몹쓸 짓! 그래도 단체로 한복 입고 졸업사진 찍었는데 그게 또 꿀재미! 기왕이면 머리도 같이 만져주는 곳을 추천한다. 사진이 천지차이가 남!
수학여행 가기 직전에 엄마가 암 판정을 받으셨다. 건강검진 받고, 재검진 받으라는 통보를 받고, 그리고 다시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유방암 3기. 사실 엄마는 30년도 더 전에 자궁암 수술을 하셨었고, 칠십대에 접어든 지금은 치매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암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흔한 질병이었건만 사실 우리는 그랬다.
초반엔 가여움과 안쓰러움이 지배했고, 오래지 않아 현실적인 문제들로 복닥였다. 많이 예민하신 분이고 집 떠나면 잠을 잘 못 이루려서 의사가 말리는 데도 무리해서 퇴원하시고, 그래서 탈 나서 응급실 가시고, 일주일씩 재입원하고... 가슴에 주사 바늘 꽂기 위한 장치를 삽입했는데, 이게 계속 탈이 나서 세 번 재시술하고는 기어이 제거했다. 혈관 잘 안 잡히는 체질인데 3차 항암부터는 계속 손 혈관에 주사를 꽂고 있다. 3주 간격으로 진행되는 항암이 내일로 5차 들어간다. 8차 예정 중이고, 그 다음엔 수술, 그리고 방사선 치료 순서다.
지금은 치료비의 5%가 본인부담(노짱 고마워요!)이라 그래도 치료를 받고 계시지만, 아무 손 못 쓰고 돌아가신 아빠 생각도 수시로 나서 마음이 자꾸 가라앉는다. 병원비보다 사실 밥값이 더 많이 든다. 사람 입이 제일 무서움!
이 모든 현실적인 문제들과 기타 감정적인 문제들을 종합해 본 결과 이사를 결정했다. 그래봤자 3층 살다가 2층으로 내려온 거지만. 3층에서 6년 사는 동안 살림도 늘었고, 나 없이 엄마 혼자 지내면서 엄마 살림도 늘었고, 그래서 그 살림을 합치기 위해서 벽 하나를 부쉈다.
원래 비어있던 공간을 피아노 학원으로 만들면서 합판으로 벽을 세웠고, 우리가 이사오면서 살림집 쪽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텄었던 터였다. 그랬던 공간을 추가로 트는 작업을 했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살다살다 벽도 부수고 이제 시멘트 공구리까지 하는 것 아니냐며 우리끼리 농담도 했다. 사실 벽있던 자리 시멘트 부었어야 했지만 도배 선에서 중단했다. 우리가 작업한 게 지난 주인데 알다시피 가장 더웠던 한 주!
딱 방 한칸만 내려오는 거였지만 견적이 30만원이었다. 아씨, 큰짐은 옷장이랑 침대 하나 뿐이고 나머진 모두 책인데 30은 너무 과해 보였다. 벽 부수는 것도 우리가 했는데! 이런 심정으로 짐을 날랐는데, 아아....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이었어. 고작 책이 아니었으니까.
거의 일주일에 걸쳐 짐이 내려왔고(온 가족이 다 도와줄 줄 알았지만 혼자 나른 날이 더 많아..ㅜ.ㅜ) 하룻동안은 가구 재배치를 했다. 기존의 내 방은 서향이어서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정말 최악의 위치에 있었지만 오로지 장점은 넓다는 것 하나였다. 방 하나가 7.5평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60% 수준으로 방이 줄어들면서 저 책들을 방에 다 수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곳곳에 책장을 배치하는 생쇼를 했다. 어제는 만화책만 먼저 수납을 했다. 만화책은 본 것과 안 본 것으로만 나누면 되는 거여서 비교적 간단했다. 오늘부터는 장르별 재배치가 필요하다. 도저히 안 읽을 것 같은 책들은 과감이 정리하기로 주먹 꼭 쥐고 결심했다. 어차피 더 꽂을 데도 없다.
여전히 한복 열심히 입고 있다. 이사하면서 옷을 꺼내지 못해 반바지에 면티 입고 엄마 병원 모시고 다녀왔는데, 그게 몇 달 만에 처음 입어보는 비한복이었다. 나조차도 참 어색... 지난 주말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뭐라도 하나 지르고 싶었는데 다행히도! 한복집들이 모두 휴가를 갔네! 캄 다운! 진정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문화생활로 푸는 게 나의 오랜 습관. 특히나 7월은 가장 바쁘고 가장 덥고 가장 정점을 찍은 달이었다.
내 문화달력을 가득 채운 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7월 보너스를 몽땅 관극에 털어넣은 듯.
직장에서 머리에 불붙게 일하고, 병원 들러서 엄마 살펴보고, 이어서 공연장으로 달려가고, 이삿짐 열심히 나르다가 달려가고의 반복이었다. 좋은 작품을 만나 극 속에 푹 빠져들었던 건 감정적으로 충만한 경험이었고, 동시에 그래야할만큼 감정에 치이는 날들이었다.
지난 토요일은 맘마미아2를 봤는데, 이 신나고 경쾌하고 밝은 영화를 보면서 폭풍오열을 했다. 와, 재밌는 영화 보면서 우는 건 영화 속 장면에나 나오는 거였는데 내가 시전을 하네. 내가 그렇듯이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 법이고, 그러니 이렇게 마음을 다치는 일들은 자주 있을 테지만, 내 나름의 처방전이 있으니 조금은 다행이랄까.
짐 정리가 끝나면 바로 개학할 것 같다. 휴가다운 휴가를 못 보내지만(사실 매 여름마다 그렇긴 했다) 내 휴가는 공연장! 일찌감치 박은태를 보내서 안타깝지만, 아직 류정한이 남아 있다! 그리고 전동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