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산하 - 김구, 여운형, 장준하가 말하는 한국 현대사
정경모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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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년도 더 전에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이 겪었을 충격이 눈에 선하다.  이미 많은 사실들이 밝혀진 가운데 더는 숨어서 이 책을 보지 않아도 되는 이 시점에서도 충격적인 책으로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못내 아프고 안타깝다.

이승만, 박정희 등에 억울한 죽임을 당했던 우리의 민족 지도자 여운형, 김구, 장준하 선생님이 구름 위에서 시국을 걱정하는 역할로 등장하는데 어찌 보면 황당한 이 설정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진지하게 연출되고 있다.   나아가 그들이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들의 오판들에 대한 소탈한 반성과 통한도 같이 보여준다.  물론 이는 저자의 생각과 판단이 그들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지만, 그분들이 정말로 저승에서 우리나라의 지금 모습을 보고 있다면 똑같은 말을 하셨을 거라는 짐작이 들만큼 자연스럽고 또 온당한 지적들로 읽혔다.

그러나 기막힌 것은, 이미 5,60여 년전에 돌아가신 그분들의 입을 빌려 우리 현대사를 지적하는데, 또 작가가 이 책을 쓴 지 20년도 훨씬 지났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때의 그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을 아직도 살고 있다.  그들을 죽였던, 그들의 죽음에 동조자였고 방조자였던 자들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를 내린 채 영향력을 발산하고 있는 오늘인 것이다.  그들의 더러운 거래가 올곧이 드러났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사회적 강자이고, 그들의 후예가 그 뒤를 이어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숨은 악행은 또 얼마나 될런가.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제목 참 잘 지었다고 감탄도 했다.  그 찢겨진 산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여전히 벌어진 상처로 힘겨워하고 있음에 동시에 서러운 마음도 들었다.  어느 때면 이 강산에 진정한 자유와 치료와 안식, 위로가 깃들 것인가.  그 날을 만들기 위해 더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은 재방송하듯이 여전히 망언을 일삼고 있는데, 우리 역사 교육의 현주소를 생각하며 혀도 차 보고...;;;;;; 답답하지만 한숨만 쉬고 있어서도 안 되겠다.  역사는 결국 정을 향해서 달려나가는 힘을 지녔으니까.  단, 그 속도를 빠르게 밀어주는 힘이 우리에게 요구되지만.

쉬운 책은 아니다. 내용을 어렵게 풀어낸 것은 아니지만 현대사의 기본 줄거리를 알고 있어야 책이 제대로 읽힐 것이다.  통사류로 대강을 파악한 뒤 이 책을 만날 것을 권한다.  그 만남이 꽤 인상적이다. 단, 가슴이 많이 아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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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 낯선 조선 땅에서 보낸 13년 20일의 기록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3
헨드릭 하멜 지음, 김태진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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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릭 하멜과 그의 동료 선원들은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조선 땅에 표류하고 만다.  그들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힘(태풍, 풍랑) 앞에 무릎 꿇으며 말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 왔듯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살길을 모색한다.  제주도에서 도망치려고도 해보았고, 청나라 사신에게 손을 뻗어보기도 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회를 노린 그들은 마침내 13년 만에 조선 땅을 떠나 일본의 나가사키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도 시련은 끝나지 않지만, 결국 그들의 인내와 도전은 조국 땅을 밟는 결실로 되돌아 온다.

작품 속에는 그들보다 앞서 표류한 네덜란드 인 벨테브레도 나온다.  그는 수십 년 간을 조선 땅에 머물면서 귀화하여 모국어를 잊을 지경에 이르렀다. 공과를 떠나서 그는 하멜 일행만큼은 조선 땅을 떠날 노력을 덜 했다고 보여진다.  긴 시간이 걸렸고, 일행 모두가 함께 떠나지 못했지만, 인고의 시간을 견디어 낸 하멜 일행 등은 끝내 원하는 곳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기회'란 '늘' 오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오는 것이고,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자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서양 세력이 우리나라에 처음 문을 두드렸을 때,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이었고 보다 예의를 갖추고 있었을 때 조우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는 것이지만 우리 역시 언젠가는 오지만 늘 오지는 않는 그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속이 탄다.

이 작품은 하멜이 13년 간의 밀린 월급을 받아내기 위해서 쓴 글이지만, 목적이야 어떻든 우리로서는 귀중한 자료에 해당한다.  제3의 입장에서 들여다 본 조선의 생활상을 21세기의 우리가 보다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지 않은가.

책이 몹시 얇은데, 그렇다고 단숨에 읽을 만큼은 아니다. 좀 더 눈여겨보면서 공부하듯이 읽히는 재미가 있다.  그럼에도 너무 두꺼워 지레 지치게 하는 맛이 없어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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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 전2권 세트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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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천 음악 : 이승환 5집 "애원" (가사를 염두에 두면서 들을 것)

추천 만화 : 박희정 "호텔 아프리카"

모두들 너무 떠들썩 해서 괜히 심드렁하게 책을 펴들었다. 마치 '얼마나 대단한 지 한 번 읽어봐 주겠어' 라는 심정으로... 책을 덮고, 그 자만했던 마음이 미안하고 이렇게 내게로 와 준 책이 고마워 찡-한 느낌에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시간 일탈 장애라는 판타지적 소재를 갖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지극히 고전적인, 그리고 영원한 주제를 다룬 이 책은, 떠미는 것도 없이, 강요하는 것도 없이, 올곧이 그 진솔함으로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사랑'이라고 하는 말이 진부하지도 가식적으로도 보이지 않고, 가슴을 울리는 절절함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독자에게 있어 최고의 선물이었다.

너무도 다양하고 이색적인 재미가 많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인데, 웬만한 걸로는 눈물 한방울 안 흘리고, 감동도 없다 하고 괜히 안티짓이나는 하기 일쑤인데, 그 건조한 감정을 갖고 사는 메마른 우리에게 '일생에 걸친 기다림=사랑'을 보여준 두 주인공의 '삶' 이 너무도 먹먹하여 참으로 오랜만에 눈물도 흘려보았다.

마치 거대한 퍼즐의 조각 하나하나씩을 짜맞춰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과거와 미래 현재가 중첩된 시간의 전개는 흥미와 재미를 떠나서 독자에게 그들의 운명을 선고하는 것 같아 절박한 긴장감마저 갖게 한다.

영화 '나비효과'에서도 시간을 이탈하여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주인공이 나오지만, 그가 바꿔버린 운명은 그가 원했던 숙명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같은 자리를 맴돌며 오히려 더 나락으로 빠질 뿐이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 시간 일탈 장애를 겪고 있는 헨리는 '나비효과'의 주인공보다 소극적일지언정 훨씬 겸손하다.  그는 바꿀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무리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  닥쳐올 미래가 끔찍하고 감당하기엔 벅찬 시련이 몰려와도 절망 속에 허우적거리기 보다 그 안에서 숨쉴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 애를 쓴다.  재빨리 도망칠 수 있게 달리기를 연습하고 자물쇠 따는 법, 소매치기, 심지어 적절한(?) 폭력까지도 익히는 그의 모습에,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밀 수 없는 것은 그에게는 치명적인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심지어 그는 과거의 자신에게 찾아가 그 기술을 가르치고, 미래의 딸을 위해 영상으로 남겨놓는 주도면밀?까지 보여준다.) 노력하고 애쓰지만 그에게 닥쳐온 미래란 너무 가혹했지만.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그의 운명은 그가 만들어 간 운명인 것도 사실이다. 

그가 클레어와 현실의 시간에서 만난 것은 클레어가 그를 알고 지낸 지 14년이 지난 후(1991년)였지만, 그녀가 그를 만날 수 있는 필연을 준비한 것은 미래에서 온 그가 알려준(1989년) '시카고'라는 단서가 큰 몫을 해냈다.  그는 이미 14년 전1977년)부터 그녀와 만날 조건을 만들어 온 것이다.  또 친구 고메즈가 미래에서 주식으로 큰돈을 번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주식 정보를 귀띔해 주지만, 그것은 그가 주가가 오를 종목을 알려주었기에 닥쳐오는 미래의 결과이다.  그에게는 미래와 과거가 시간과 공간의 구분을 떠나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삶에는, 그리고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삶은 '원인'과 '결과'과 순서 없이 뒤섞여 있다.  원인이 곧 결과이고, 결과가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 모두의 만남은 곧 숙명이고 운명이 된다. 

사람이 미래를 모르고 살면 불안할 수는 있으나 불행하지는 않다고 홍세화씨의 글에서 본 기억이 난다.  역사 교육의 문제를 얘기하면서 나온 화두였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미래'를 안다는 것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보며 오싹해지는 서늘함을 느꼈다. 

그렇게 본인의 의지와 아무 상관 없이, 또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미래의 '진실'에 늘 무방비 상태의 헨리는 힘없는 약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헨드릭 박사를 설득해 내었고, 치료에 응했으며, 본인은 실패했을지언정 딸에게만은 희망을 주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런 그의 노력의 결과가, 그가 버겁다고만 느끼게 했던 시간 여행을 앨바에게는 '재미'를 주는 여행으로 느끼게 한 것이 아닐까.  그가 딸을 위해서 준비한, 그가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선물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재미로도, 막연하게나마 누구나 '타임머신'으로 과거든 미래든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 심심풀이 상상조차도 꽤 미안해질 만큼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진지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단 한번도 서두르지 않고.(그래서 1권에서 아주 가끔 지루하기도 했지만) 고른 호흡을 유지하는 작가의 솜씨는, 첫 작품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섬세해서 2권에 이르면 오히려 가빠지는 호흡으로 다음 장을 넘기기 힘들어하는 내가 약오를 지경이었다.

배달 받은 책 2편에 제본 오류가 있어서 8장이 누락되는 바람에 클라이막스 앞에서 좌절한 경험이 나를 아프게 했지만...;;;; (책 다시 오기를 못 기다리고 교보문고에서 재빨리 8장을 읽어주는 센스ㅡ.ㅡ;;;;) 오히려 그렇게 한템포 쉬어갈 수 있어서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결과가 좋으니 과정도 좋았다는 망각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왜 제목이 시간 여행자의 '아내' 일까 생각했다.  주인공은 헨리이고, 시간 일탈 장애를 겪는 것도 그이고, 그로 인해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만큼 비중이 있지만 조금 더 부수적인 역할을 한 아내 클레어가 제목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책을 다 덮고 알 것 같았다.   헨리는 '사랑해'라는 한 마디로 그의 아내에 대한 마음을 모두 표현해낼 수 있었지만, 그 '사랑'을 받고 또 그 이상으로 내준 클레어에게는 '사랑해' 라는 말만으로는 그 마음이 다 표현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매번 예고 없이 사라지고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 남편을 향한 끝없는 '기다림'이 요구된다. (호텔 아프리카에서 아델라이드가 남편과의 짧았던 행복과 긴 기다림을 회상하며 울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그러나 또 동시에 헨리가 그 위험천만한 시간 여행 중에서도 계속해서 현실로 돌아올 수 있고, 또 돌아가고프게 만드는 것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의 존재감이다.  나중에 그녀가 헨리의 오랜 부재를 버티게 하는 힘도 장차 만날 수 있는 헨리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은 몹시 아이러니하며 또 필연적이다.  > 그녀에게는 결국 "자신=남편"이었고, "그녀의 삶=남편의 삶"이었다.  그래서 동시에 그녀에게는 "사랑=기다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을 온전히 완성시키는 것은 클레어의 대가 없는 '기다림'인 것이다.  아마 결과를 알고 다시 태어난다 할지라도, 그녀는 같은 삶의 과정을 밟아나가리라.

작품의 엔딩에 나오는 영상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면(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녀가 그토록 오래도록 기다려온 남편과 재회할 때의 그 표정, 주변 배경과 그녀의 달라진 모습까지도 모두 세밀하게 상상을 해본다면, 이 슬프고 감동적인 작품을 우리는 박수를 치면서 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조금은 긴장이 되고 또 기대가 된다.  기네스 펠트로의 분위기는 클레어와 잘 맞아떨어질 것 같다.  몹시 섬세해야 할 이 작품을 감독이 얼마나 훌륭한 요리로 만들지 궁금하다.  혹여 작품의 묘미를 반감시킬까 조금 걱정도 되지만, 감독도 똑같은 감동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바 믿고 기다리는 게 좋을 듯 하다.

작품에서 또 한가지 좋았던 점은, 미국인들의 생활, 그들의 삶, 문화, 가족 등등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 이것 역시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가 몸 담고 있는 그 종이 예술의 맛보기도 흥미로웠음은 물론이다.

덧붙여, 표지 그림도 참으로 따스하고 이뻤다.  겉표지에서 한지의 느낌이 났는데, 지극히 서양적인 책에서 동양의 향기를 느꼈달까.

정말정말 오랜만에 300% 만족의 책을 만나 먹지 않고도 배부른 뿌듯함이 넘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접하기를 바라며...

그러나 절대로 그런 장애를 겪는 사람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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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hwlove 2006-03-2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글을 맛깔나게 쓰시네요~ 리뷰 보고 반해서 님 서재로 바로 놀러왔어요^^;
저도 마노아님처럼 알라딘에 들어오면 지름신때문에 잔뜩 긴장하는데 오늘은 님 덕분에 저지를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쿨럭... ㅡㅡ;;

뭉치미미 2006-03-29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 글 읽고 이 책이 너무 읽고 싶어지네요~

마노아 2006-03-29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부할 수 없는 지름신의 방문이 있죠^^;; 페퍼민트님 서재에도 다녀왔는데, 제가 즐겨본 책도 보여서 반가웠어요~ 역시 좋은 책은 두루두루 공감을 일으키는가 봐요^^

마노아 2006-03-2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월바라기님, 이름이 무척 독특해요. 발음이 이쁘네요. 시간 여행자의 아내, 진짜 강추에요~ 꼭 읽어보세요^^
 
운명의 순간들 - 다큐멘터리 한국근현대사
박영수 / 바다출판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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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매 순간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우린 많은 갈등을 겪으며 심사숙고 끝에 혹은 충동적인 감정에 의해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의 결과가 나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작은 일이라고 한다면 후회도 기쁨도 내 안의 울타리 안에서 조용히 울릴 테지만, 그 선택이 만약 이 나라를, 이 민족을, 이 세계를 뒤흔든다면 어찌 하겠는가.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중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와 가장 가까웠던 시기, 즉 근현대사 속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그 파장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미치게 할 이들이기에 그 중요성이 사뭇 강조된다.  오늘은 삼일절인데, 그런 날에 더더욱 생각나게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결정적 선택의 순간, 운명의 순간들을 포착한 책이 바로 이 "운명의 순간들"이다.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그 주도자였던 김옥균의 암살 장면부터 책은 시작하는데,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극적 긴장감이 있었다.  뿐아니라 명성황후의 시해 장면도 그렇거니와 고종 황제와 순종 황태자의 커피 잔 속에 독약이 들어 있었던 장면 등등, 저자는 일반 교양서답게 쉽게 쉽게 설명을 해나가고 있다.  물론, 그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와 역사적 중요성이란 한없이 깊지만.  그리고 부록처럼 문화사 혹은 풍속사도 같이 곁들여 설명하는데 무거운 정치 이야기에 약방의 감초 같은 분위기를 잘 돋워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1998년인데, 그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던지, 혹은 저자의 시각이 그러했던 것인지 상당히 우익의 입장에서 좌익을 바라보는, 즉 우익을 옹호하고 좌익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별 다섯 개가 별 네개로 떨어진 것은 그 때문.)

대략 8년 전의 글이니 오래 되기는 했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가 '반공'은 아니었을 터인데 조금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종종 눈에 들어오는 오타가 좀 실망스럽기도 했다.

근현대사의 많은 사건들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으니, 책 끝에 부록처럼 용어 설명을 남겼다.  이 부분은 글씨도 작아서 백과사전을 보는 기분이었는데, 앞서의 쉬운 설명에 비하면 상당히 딱딱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것까지 불만으로 삼으면 오히려 내가 삐뚤어진 편이 될 것이다^^;;;)

쓴소리도 몇 개 했지만 대체로 좋은 책이었다고 감히 말해 본다. 일단은 책의 집필 목적에 성공했으니까. 쉽게 쓴 대중 교양서. ^^

살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많은 선택의 순간, 그 선택의 결과를 우리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눈앞의 이익이나 혹은 나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으로 역사 앞에, 민족 앞에, 그리고 스스로에게 죄인이 되지 않는 우리를 소망한다.  땅은 물려 받았을지언정 두고두고 매국노 소리를 듣는 이완용과 그 후손같은 꼴을 다시 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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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ED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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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음악 - 이승환 5집 "붉은 낙타"

 

출간 소식을 듣고 많이 기뻤다.  이쯤 기다렸으면 새 작품이 나올 때가 됐을 텐데... 하며 중얼거리던 참이었다.  처음에 읽고 바로 꽂혔던 레벌루션 No.3 바로 뒷 이야기여서 더 기대가 되었다.  읽은 지 시간이 지난 터여서 스피드를 읽으며 앞 작품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드물게 여자, 여고생이다.  더 좀비스의 일원보다도 어린 고1의 여학생. 명문 세이와 여고의 평범하다면 평범한 주인공은, 가정 교사로 알고 지냈던 언니의 자살로 뜻밖의 사건에 휘말린다.  그녀가 이 사건에 휘말린 것은 그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생각했던 까닭.  그 생각을 알려주려고 만난 아야코 언니의 동문 학생 나카가와를 만나고 난 뒤 괴한의 습격을 받고, 그 습격 장소에서 주인공 가나카는 더 좀비스의 정예멤버(?)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순신의 멋진 대응이 있었으니... 이렇게 멋진 녀석을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의 조력자로만 남겨두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인내(?)도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주인공이 되어 말이 많아지면 매력이 덜해질 수도 있겠지만...^^

전작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신나는 모험과 적당한 긴장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일본문학을 많이 접한 것은 아니지만,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흔히 재일 교포 몇 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한(恨)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독특함이다.  억누르는 슬픔보다 신나게 터지는 울음보 끝의 희열이랄까?  작품은 엄청 쉽게 읽히고 또 금방 읽어나갈 만큼 속도감도 있고 시원시원한 문체이지만, 절대로 가볍기만 하진 않다.  가끔 경구처럼 나오는 문장들도 그렇거니와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때로 몹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성장 소설 쪽에 낄 테지만 그 독자층이 결코 청소년층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내가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났을 때가 이미 학생이 아니었던 것처럼.  사실, 많이 부럽기까지 하다.  객기라도 한 번 부려보며 살았어야 했는데 아까워... (붉은 낙타 가사 중...)의 기분이랄까.  주인공 가나카가 자신의 한정된 혹은 닫혀진 세계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나오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서두르지도 않았고, 무책임하지도 않았다.  발레든 복싱이든 공부든,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함을 결코 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더 좀비스의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꾹 참아 누른다.  그녀 자신이 그들만큼 비상할 수 있는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  날기 위해서, 더 높은 곳을 달리기 위해서 그 정도 희생 혹은 인내는 필요한 거니까.  사실 그녀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것일 수도.. ^^

아마도 작가는 앞으로도 더 좀비스의 이야기를 더 쓸 수도 있겠다.  그들이 이제 졸업의 시기를 맞이했지만 그들의 그 꺾이지 않는 젊음과 모험심이 여기서 멈출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들을 계속 만나보기를 나도 소망한다.  이번 작품 스피드는 레벌루션 No.3보다 덜 무겁고, 플라이 대디 플라이 보다 덜 진지하다.  그렇다고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사실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소녀편이라고 할 정도로 내용이 약간 비슷하긴 하지만, 그 나이 여고생의 심리를 꽤 잘 묘사한 것 같아 공감이 잘 되었다. 

옥의 티라면 증정품으로 준 가방이, 가방이라고 하기엔 좀 뭣 한...;;;; 뭐 주니까 안 받는 것보다 나쁘지 않지만... 가방이라고 표현하기엔 좀 거창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그림은 이뻤다. 아무튼 공짜니까^^ㅎㅎㅎ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은 매번 신선하며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이번 작품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테니 읽기 전에 고민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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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2006-02-25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년이 좀 길긴 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기대를 갖게 해주는 작가죠 . 리뷰 잘 보았습니다.

마노아 2006-03-03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작품은 부디 2년까지 안 기다려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