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합창' 주인공들 "16년후 지금 그들은…."
[스포츠서울 2006-10-19 10:11]    

[스포테인먼트 ㅣ 임근호기자] 뚱뚱한 라우라는 버릇처럼 "너무 낭만적이야"를 읊조렸다. 부잣집 딸 호아키나는 언제나 잘난척으로 일관했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 시릴로는 그래도 호아키나가 좋다며 짝사랑에 빠졌다.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하이메는 축구를 좋아했고, 마리오는 작은 체구지만 '깡' 좋기로 유명했다. 뿐만 아니다. '촉새' 발레리아는 온통 장난끼로 가득했고, 깜찍한 카르멘은 가난하지만 밝은 미소로 사랑받았다.    

라우라(힐다 차베즈), 호아키나(루드위카 팔레타), 시릴로(페드로 비베로스), 하이메(조지 그라닐요), 다비드(요셉 브리치), 카르멘(플로르 구롤라), 발레리아(크리스텔 크리스보), 마리오 (가브리엘 카스타논). 지금 세대들에겐 다소 낯선이름이다. 하지만 적어도 1990년을 살아간 사람들에겐 너무도 반가운 이름. 여기에 천사같은 미소를 지닌 히메나(가브리에라 리베라) 선생님까지 이야기하면 십중팔구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16년전 안방극장의 사랑을 독차지한 인기 외화 시리즈 '천사들의 합창'. 주인공 '천사'들이 다시 한 교실에 모였다. 교실을 떠난지 16년 만이다.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을 10여년의 세월. 과연 이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최근 멕시코 한 방송사에서 '천사들의 합창'에 등장했던 8명의 천사들과 히메나 선생님을 한자리에 모아 지난 16년의 세월을 되돌렸다.

방송을 보면 이들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개구지다. 왁자지껄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모습도 똑같다. 물론 겉모습은 변했다. 히메나의 허리 정도 오던 꼬마들이 지금은 한뼘 이상 크다. 어디 키 뿐인가. '새침떼기' 호아키나는 섹시한 금발미녀가, 그녀를 짝사랑하던 '순진무구' 시릴로는 능구렁이(?) 아저씨가 됐다. 게다가 전학생 다비드는 반쯤 벗겨진 이마에 턱수염이 수북하다. '말광량이' 발레리아는 수다스러운, '뚱보' 라우라는 넉넉한 아줌마다. '선생님' 히메나는 살이 많이 찐 모습. 그러나 천사같은 미소만은 그대로다.

8명의 꼬마 천사들. 지난 16년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우선 '히메나'를 맡은 리베라는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수많은 방송과 영화에 출연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호아키나'역의 팔레타도 마찬가지. 폴란드 태생인 그녀는 20대 초반에 결혼한 뒤 지금까지 배우로 활동 중이다. 가장 인기있는 배우는 '카르멘' 역으로 나온 플로르 구롤라. 할리우드와 멕시코를 넘나들며 멕시코 국민배우로 사랑받고 있다. 할리우드 출연작은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함께 나온 영화 '콜래트럴 데미지'.

반면 '발레리'를 연기한 크리스보는 지난 95년 이후 연예계에서 은퇴했다. '하이메'를 연기한 크라닐로나 '다비드' 역의 브리치, '시릴로'를 맡은 비베로스 등은 '천사들의 합창' 이후로 아예 다른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다.

한편 10여년만에 '천사들의 합창' 주인공을 다시 만난 네티즌의 반응은 뜨겁다. 대부분 반갑다는 반응 일색. 한 네티즌은 "가끔씩 로우라는 어떻게 변했을까. 호아키나는 얼마나 예쁘게 자랐을까 상상했다. 어릴적 이상형이던 히메나 선생님도 항상 궁금했다. 그들을 10여년 만에 다시 볼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며 마치 오랜만에 동창생을 만난듯 흐뭇해했다.


<사진=동영상 포탈 유튜브에 올라온 '다시 만난 천사들의 합창 주인공들' 화면 캡쳐>

- 색깔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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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20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아했던 드라마다. 고등학교 때였던가? 중학교때였던가? 선배가 나더러 라우라라고 불렀다....;;;

marine 2006-10-20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어렸을 때 젤 예뻤던 마리아 호아키나가 젤 낫네요 히메나 선생님은 너무 뚱보가 되버렸어요...

마노아 2006-10-20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어렸을 때 모습이 남아있어요. 확실히 마리아가 유독 이뻤죠^^

BRINY 2006-10-20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좋아했는데, 저 드라마~

마노아 2006-10-2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이 방울방울 열려요^^

비로그인 2006-10-20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에게 라우라는 좀 너무했다..근데 어릴때 모습 남아있는건 라우라 뿐이네요.

마노아 2006-10-2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모도 그렇지만 목소리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닐까, 방금 생각했습니다.^^;;;
전 대체로 어릴 때 모습 조금씩 남아있는 것 같아요. ^^
 

 http://www.ytn.co.kr/_ln/030201_20061018125157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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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19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여자, 가만 있을 리가 없지.
사오정, 오륙도... 허헛...;;;;;;;
 

학교 스포츠, 수업은 없다
[MBC TV 2006-10-19 21:30]    
[뉴스데스크]

● 앵커: 다음 뉴스입니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운동부 선수들 가운데 상당수는 학생이라기보다는 거의 운동하는 기계와 같은 생활을 매일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체육 특기자로 진학하기 위해서 수업과는 전혀 담을 쌓고 때로는 구타까지 감내하는 학생들.

먼저 김희웅 기자의 보도를 함께 보시죠.

● 기자: 서울의 한 중학교 야구부.

감독이 공을 집어던지며 선수들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경기에서 졌을 때는 물론 연습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감독에게 수시로 구타를 당했다고 말합니다.

● 인터뷰: 심하게 패고 좀더 심하면 발 가지고 얼굴 때리고 명치 때리고...

못 버틸 정도로 맞아가지고...

● 기자: 자기 자식 맞는 것을 알면서도 학부모들은 상급 학교 진학에 지장을 줄까 봐 항의조차 못 합니다.

● 인터뷰: 진짜 부모로서는 볼 수 없을 정도예요.

왜 이야기 못 하냐면은 애들이 나중에 고등학교 갈 때 지장줄까 봐.

● 기자: 고등학교 농구부.

오전 11시 반, 4교시 수업시간이지만 선수들은 체육관에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 인터뷰: 얘네는 학교수업을 듣는 시간이 사실은 냉정히 따지면 낭비죠.

● 기자: 어쩌다 수업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저 빈 자리를 메울 뿐입니다.

● 인터뷰: 운동부 학생 가질 알아요?

● 인터뷰: 잘 모르는데요.

왜?

● 인터뷰: 그냥 학교에서 잠만 자서...

● 인터뷰: 선생님들이 내버려둬요?

● 기자: 이처럼 수업은 포기한 채 종일 운동에만 매달리는 이유는 오로지 대학진학 때문입니다.

지난 97년 대학입에서 체육특기자에 대한 최저학력 기준이 사라진 이후 선수들은 사실상 수업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 인터뷰: 내신이 대학가 데 기준도 정해진 것도 없고...

공부하는 시간에도 차라리 몸 관리를 위해서 잠을 잔다든지 ...

● 기자: 중고등학교 운동선수 729명에 대한 평균 성적 조사 결과 중학생은 53점, 고등학생은 46점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운동선수는 거의 전부가 학년 석차 80% 이하로 최하위권이었습니다.

코치나 학교 당국은 오로지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선수들을 대학에 보내는 것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 인터뷰: 수익자가 대학이 1번인데, 대학을 못 보다 하면 강사나 선생을 쓸 이유가 없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엘리트 체육입시학원이라는 겁니다.

● 기자: 진학을 위해 운동에 모든 걸걸 수밖에 없는 운동선수들의 교육 현실,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되풀이되지만 상황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희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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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1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학교에는 체조부가 있는데 꽤 성적이 좋은 편이다.
학기 초에는 한 학급에 너무 어려보이는 학생이 있어서 몇년을 일찍 들어온 건가??? 뭐 이런 상상을 했는데, 체조부였던 것이다. (실제로 중1 체조부원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체격과 얼굴을 가졌다.)
이 학생이 특히 예쁜 것은, 경기 일정과 훈련 때문에 수업을 자주 빠지지만 수업에 참석하게 되면 단 한번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조는 것도 본 적 없고 잡담을 하지도 않고 딴짓도 하지 않는다. 앞에 앉든 뒤에 앉든 다른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수업을 듣는다. 그러니 성적과 상관 없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선수들이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근데 저 기사... 왠 오타가 저리도 많은가..ㅡ.ㅡ;;;;

비로그인 2006-10-1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때도 수업에 안들어가죠.신문선이 원래 고대 갈려고 했는데 고대가 구타가 심하다고 해서 연대로 바꾸었는 연대도 마찬가지..도서관에 책보러 갔다고 선배한데 뺨맞았다고 했어요.
이제는 체육특기자가 체육계열학과만 입학가능한데 몇년전까지 법학,신방 골라서 갔는데 수업에 안들어와도 평균학점 줘야하니 교수 열받죠.

마노아 2006-10-19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나다에서는 운동선수도 기본 학점을 이수하지 못하면 유급뿐 아니라 경기 출전 정지 먹는다고 예전에 동계올림픽 중계 듣다가 아나운서가 하던 말이 생각나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한숨이 많이 나와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뭘까요?

비로그인 2006-10-2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고대 나온 친구가 연고전때 지면 그 팀은 당일날 학교가서 개패듯이 맞는다고 하던데요.학우가 아니라 운동기계죠.1년내내 못해도 연고전 이기면 감독이 자리지키고..외국에서는 시험도 보고 운동도 하니깐 스포츠스타가 영웅인데 한국에서는 사회무능자가 되죠.그나마 대학가도 프로라도 가면 다행이지.
체육특기도 수능이 40이상인데 이승엽이 37.점인가해서 한양대 떨어지고 삼성 갔는데 그해에 그 규정 없앴죠.

마노아 2006-10-2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하장사 마돈나에 보면, 아버지가 권투 선수였는데 부상으로 은퇴하고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는데 술에 쩔어 가족들을 엄청 패는 사람으로 나와요. 운동하는 것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는데, 그게 길이 막힌 순간 진짜 사회 부적응자처럼 되어버린 거죠. 이승엽에게 그런 일이 있었군요...;;;;

비로그인 2006-10-20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문에 의하면 한양대 야구부에서 합숙하던 이승엽이 구타가 심한거 보고 일부러 그랬다는 말도 있어요.그해에 이승엽말고도 다른 운동선수들도 40/200점 규정때문에 못간게 있어서 폐지..이승엽은 고등학교때 지금같은 스타는 아니었다고 하던데요..대학안가서 성공한 케이스죠.

마노아 2006-10-20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종에,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네요. 그것도 '노력'이 가져다 준 행운이겠죠. ^^
대한민국 남자들은 축구보다 야구에 더 열광한다던데 담뽀뽀님도 그런가 봐요.^^

비로그인 2006-10-20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구를 더 좋아하는데요. 야구는 이런 뒷이야기들을 좋아해서 야구판이 인생같고, 축구는 보는거 좋아하는데 해외축구만 봐서...중학교때 체육선생님이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게임이라고.,도루를 예로 드시데요.

마노아 2006-10-20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고등학교 때 체육샘이 국가대표 야구선수였거든요. 머리 좋아야 야구한다고 엄청 강변하셨어요. 체육샘이라고 무식하다고 욕하는 소리 듣고는 열 받아서 방학 내내 실용한자 1800자를 몽땅 외어오셔서 수업 시간 내내 '가'자만 몇 십개를 쓰셨던 기억이 나요. 유치한 면이 많았지만 참 좋았던 분인데... 생각나네요^^

marine 2006-10-20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재밌는 체육샘이었네요^^ 그런데 제가 이과라서 한자를 잘 안 써서 그런지 몰라도 실용한자를 읽는 거 말고 쓰기까지 하려면 꽤 어렵더라구요

마노아 2006-10-20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버에서 검색하니까 야구선수란 이름은 안 나오고 학교 학생들이 올린 사진만 뜨네요. 애들 교복 입고 허옇게 귀신 화장한 모습으로요^^;;;
 

[쿠키뉴스 2006-10-07 13:35]

[쿠키 생활] 최근 생후 1개월 된 유아가 경련을 일으켜 응급실을 찾았다. 검사 결과 ‘흔들린 아이 증후군‘으로 진단됐으나 가족들은 아동학대를 부인했고 환자는 상태가 좋아져 퇴원했다. 이후 생후 8개월째 다시 내원했을 때는 발달장애와 우측 상지마비가 있었다. 결국 아버지에 의한 아동학대로 확인됐고 아버지는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어 가족들과 별거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로 했다.

◇원인=어른의 머리 무게는 자기 체중의 2%지만 유아는 자기 체중의 10%. 유아는 어른에 비해 머리가 훨씬 무겁고 머리를 지탱하는 목의 근육도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머리를 가누기 어렵다. 뇌와 뇌 사이 혈관도 덜 발달돼 손상받기 쉽다. 두개골과 뇌 사이는 척수액으로 가득 차있고 그 사이로 뇌혈관이 지나간다. 아이를 심하게 흔들면 머리를 가누기 힘들어 충격이 그대로 머리에 전달된다. 두개골 속 뇌가 딱딱한 두개골에 부딪치면서 주위 혈관이 찢어져 피가 두개골과 뇌 사이에 고이면서 뇌출혈이 일어난다.

◇증상=흔들린 아이 증후군의 증상은 보채고 토하면서 몸이 처진다. 심할 때는 경련을 일으키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진단에 필요한 전형적인 세가지 특징은 경막하출혈(뇌출혈), 뇌부종, 망막출혈 등이다.

◇예방=아이가 우는 건 불편하거나 무엇이 필요하다는 점을 표현하려는 유일한 방법이다.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기를 원할 수도 있고 너무 덥거나 너무 춥고 아플 수도 있다. 때때로 그들 자신의 긴장을 풀어 주기를 원한다. 아이가 우는 시간은 나이나 건강, 체질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아기가 울면 우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아 가볍게 흔들어 줄 수 있다.

그래도 울음이 그치지 않으면 아이를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몇분 정도 울게 내버려 둔다. 그동안 보호자는 음악을 듣거나 기분 좋았던 일을 생각하면서 걸을 수도 있고 심호흡을 반복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이를 달래보고, 그래도 계속 울면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의사를 찾아 가는 게 좋다. <도움말 민기식 한림대성심병원 소아과 교수>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경기일보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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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1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후 85일된 둘째 조카가 너무 예뻐서 안게 되면 꼭 흔들어 주었는데....;;;;
나한테만 오면 울었던 게 그래서일까? 훌쩍...ㅡ.ㅜ

하늘바람 2006-10-1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모교실에서는 흔들어주라는데요 너무 세게 흔들면 안된다는 거겠죠

마노아 2006-10-1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동작이 좀 컸었나봐요. 언니가 머리 흔들린다고 그러지 말라고 많이 그랬거든요.
살살 흔들어줘야겠어요. 자동 진동 그네도 내가 사줬는데, 그거 태우면 울고, 누가 안아주면 좋아라 해요. 근데 내가 안으면 울어요...;;;;;

가넷 2006-10-1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ㅋㅋ;; 자동진동 태우면 다 운다더라구요. ㅡ ㅡ; 울 조카도 그렇구요.ㅎㅎ;

마노아 2006-10-19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잠들고 나면 태워준답니다. 아니 비싸게 주고 샀는데 이 무슨.ㅠ.ㅠ
 

 

 

 

 

제목이 참 운치 있다.  데일리안의 기사가 더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옮겨 본다.

***

[데일리안 이준]

우리는 종종 역사를 시간성의 영역에만 묶어둔다. 그렇게 추상의 영역으로 들어선 역사는 연대순으로 조직된 사건의 나열로만 구체화될 뿐, 이미 현실에는 자리하지 않는 존재로 탈색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역사 역시 시·공간의 영역에 존재한다.

특히 공간으로서의 역사는 시간과 직접 맞부딪친 상흔을 두려움 없이 드러낸다. 파괴되고 낡은 모습으로, 때론 ‘부재不在’ 그 자체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는 관념의 영역에 머물던 역사를 ‘동궐(東闕, 창덕궁과 창경궁을 모두 이르는 말로,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 붙은 이름이다)’이란 현장으로 불러낸 책이다.

조선 왕조사 연구의 권위자 한영우 교수와 우리 문화재 촬영에 일생을 바친 사진가 고故 김대벽 선생이 함께했으며, 열화당과 효형출판이공동 제작했다. 일반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공간까지 카메라로 담아내고, 사라진 건물은 〈동궐도(東闕圖, 국보 제249호)〉를 통해 되살렸으며, 〈동궐도〉 전경을 덧붙여 옛 지도를 들고 직접 궁궐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최근 일반에 공개된 후원後苑을 누비는 이 역사 기행은 결국 이곳에 “수많은 생령들이 우리처럼 먹고 자면서 살고 갔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많은 사람이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로 경복궁을 꼽지만, 정작 국왕들이 가장 오랫동안 머문 장소는 바로 창덕궁과 창경궁이다. 경복궁이 정궁正宮이기는 했으나, 태종의 ‘왕자의 난’이 일어난 비극의 무대였으므로, 후대 왕들은 그곳을 기피했다.

또 북쪽의 백악산白岳山과 서쪽의 인왕산仁王山에 노출된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과 창경궁은 깊은 숲에 가려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후원 덕분에 왕족의 집으로 더 사랑받았다.

이렇게 조선 왕조의 중심지였던 동궐에서는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우선 창덕궁의 돈화문敦化門을 지나 인정문仁政門으로 향해보자. 이곳은 임금의 즉위식이 치러진 공간으로, 연산군을 비롯하여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여덟 임금이 왕이 되었다.

즉위한 공간은 같았으나, 그 뒷모습은 사뭇 달랐다. 반정反正으로 쫓겨난 이가 있는가 하면, 역대 왕 가운데 가장 오래 재위한 이도 있고, 망국의 과정을 직접 지켜봐야 했던 이도 있다.

지금은 사라져 <동궐도〉로만 확인할 수 있는 궁도 있다. 바로 중희당重熙堂으로 창덕궁의 건물 가운데 가장 크고 멋들어졌으며, 넓은 마당에는 풍기風旗, 해시계, 측우기까지 놓여있었다. 정조가 편전으로 사용하기도 한 중희당에는 과학을 중시하고 조선의 문예 부흥을 이끈 그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다음은 성종의 효심이 탄생시킨 궁궐, 창경궁으로 가보자.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은 출입을 위한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임금이 일반 백성과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영조는 1750년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 이곳에서 몸소 백성의 의견을 물었고,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해 가난한 백성에게 쌀을 직접 나누어주었다.

또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明政殿 옆에 자리한 문정전文政殿은 사도세자의 목숨이 스러진 장소다. 이곳 앞뜰에서 스물여덟의 세자는 뒤주에 갇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한편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선에 자리했던 낙선재樂善齋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족이 머물렀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순종純宗이 통한의 세월을 보냈고, 영친왕英親王의 부인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1989년까지 살았으며, 2006년 8월 작고한 마지막 황세손 이구李玖의 빈청殯廳이 이곳에 세워졌다. 본래 국상國喪을 당한 왕후와 후궁의 처소로 사용되며 단청조차 하지 않은 이 검박한 집은, 망국의 슬픔에 찬 왕족의 마지막을 함께한 동반자였던 셈이다.

이제 동궐의 속살, 후원으로 향해보자. 북한산과 응봉鷹峯에서 뻗은 9만여 평의 이 왕실 정원에는 한때 100여 개 이상의 누각과 정자가 자리했으나, 현재는 누樓 열여덟 채, 정자 스물두 채만이 남아있다.

유독 정자의 규모가 작고, 시골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가草家와 농막農幕 형태가 많은 까닭은 자연 경관을 위압하지 않으면서 자연에 포근하게 안기려는 소박한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히 후원의 북쪽 끝에 자리한 옥류천 일대는 널찍한 바위와 폭포, 정자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선경仙境을 연출한다. 그래서 이곳의 취한정에 머물던 숙종은 아름다운 봄밤에 취해 “온 뜨락의 꽃그림자는 봄밤에 머문 달이요, 정원 가득한 솔 소리는 밤에 듣는 파도라네.”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인 떠난 옛집에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는 이 기행이 책으로 묶이기 직전, 동궐 곳곳을 프레임 속에 담아내던 김대벽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2006년 9월 18일).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우리를 슬픔으로 이끌지만, 그의 마지막 사진들은 여전히 말하고 있지 않은가. 소멸의 숙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추억하는 이가 있는 한 영원을 기약할 수 있다고.

이제 역사의 시·공간 속에 진정한 ‘조선의 집’으로 되살아난 동궐에 들면,자식을 기르고 부모를 공양하며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삶을 살아가던 왕족 일가뿐 아니라, 투병 중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던 그의 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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