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점심 시간에 문자가 띵동!  왔다.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 부르르가 아니라 띵동이라고?

다급히 확인해 보니 벨소시 모드인 것이다.

헉!  이게 언제 벨소리로 바꼈지?  분명 아침에 나올 때 핸드폰을 꼭 매너모드로 바꾸고 나온다.  집밖에선 항상.

그런데 벨소리 모드인 것이다.  나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부재중통화가 두통 있었던 까닭.

그 말은, 나 없는 사이 교무실에 내 핸드폰 벨소리가 두차례나 울렸다!라는 것 아닌가.

이런 민폐와 경우 없음이라니...;;;

마구마구 황당해하며 당황해 하는데, 옆선생님이 벨소리 좋았다고 하신다.

아, 그랬나요? (기분 좋아진다.)

더 듣고 싶어졌는데 끊어져서 섭섭했다고, 그런데 또 다시 벨이 울려서 좋았더라고.

우헤헤헷, 그 노래는 이승환 "반란" 앨범의 유일한 신곡 "외면"이었다.  이 가을에 참 어울리는 곡이지.

그래도 조용한 곳에서 시끄럽진 않았냐고 하니, 그 옆의 공익요원이 시원하게 한마디 해준다.

이 '프린트'의 소음에 절대 못 미치던걸요!

그 문제의 프린트란, 이 학교가 원래 여중이었는데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는데, 그 전에 있던 여중시절부터 쓰던 프린트다.

프린트를 작동시키는 순간 무겁고 시끄러운 기계음이 교무실을 진동시키는데, 누가 인쇄 눌렀냐고 서로 민망해하는 단계다.(물론, 인쇄를 안할 수는 없지만...;;  가끔 페이퍼나 리뷰가 너무 길면 인쇄해서 읽는다. 눈 아파서... 대표주자. 바람구두님.ㅡ.ㅡ;;;;)

하여간, 그 프린트와 비교를 해보니 나의 벨소리는 애교였다기에 다행이다... 가슴 쓸었다.

두분의 배려에 감사! 그리고 노래 칭찬에 행복!

그 노래 가사는 이렇다.

외면

외로움은 예외없이 금세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나를
아무렇게 버려둔다 알아채선 안되는 나를
독하게 감추고 거기 서 있다

누가 나만 외로운건 아니라고 말해줘
모두 용감한척 하고 있는 걸 거라고
두려워 행복해 보이려 하는 거라고
그대 눈빛이 흐려져 날 보지 않게 되면
내 삶은 가혹한 마음의 독방에서 나오지 못한답니다

사랑하니 외로운 난 서글프게 더 서러우니 참 우습다
우두 커니 그냥 있다 서투르게 웃었다간
참았던 눈물이 쏟아질테니

누가 나만 외로운건 아니라고 말해줘
모두 씩씩한척 하고 있는 걸거라고
두려워 행복해 보이려 하는거라고
그대 가슴이 스러져 날 찾지 않게 되면
내 삶은 가혹한 마음의 독방에서 나오지 못한답니다

아무렇지 않은가요 그리움이 없나요

그대가 날 쉬이 찾게 여기에 있을게요
날 봐요 그대여 제발 나를 봐줘요
나 그대 사랑합니다
   

덧글. 레이저 프린터 12만원이면 괜찮은 것 하나 사더만..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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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2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 노래죠?

마노아 2006-10-2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환이요^0^

내이름은김삼순 2006-10-2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ㅋㅋ 이승환 노래~~!
마노아님 맞죠??ㅎ
저도 강의도중 이런적이 몇번 있는데 진짜 민망해지더라구요,
1학년때 영어쌤은 그 벌로 제게 심부름을 시켰던,,ㅋ

마노아 2006-10-20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순님~ 맞아요. 제가 페이퍼에 이승환이라고 적어 놓았는데^^ㅎㅎㅎ

물만두 2006-10-2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바람구두님이 눈에 띄어서 그걸 못봤어요 ㅡㅡ;;;

마노아 2006-10-21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헷, 아는 이름이 툭! 튀어나왔죠^^;;;

마노아 2006-10-21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핫! ^^;;; 그 정도 수고야 좋은 글을 읽는데 기꺼이 감수해야죵^^
 
 전출처 : 해콩 > 한자를 포기할 수 있을까

http://www.hani.co.kr/section-021005000/2006/10/0210050002006101306300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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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잡는 이그노벨상 2006 [제 513 호/2006-10-20]
“사진을 최소 몇번 찍어야 눈 감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
“딱따구리는 왜 두통에 시달리지 않을까?”

처음에는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주제의 연구가 노벨상을 탔다면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기발한 상상력과 이색적인 발명으로 세상을 즐겁게 한 괴짜들에게 주는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의 엄연한 연구논문 주제다.

이그노벨(Ig Nobel)상은 미국 하버드 대학의 유머 과학잡지인 ‘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의 발행인 마크 에이브러햄이 1991년 제정한 상으로, ‘다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업적’을 남긴 과학자에게 주는 패러디 노벨상이다. 에이브러햄은 전세계 사람들이 보내오는 연구 논문들을 살펴보다가 너무나 ‘엉뚱하고 기발한’ 연구 결과들에 매료돼 이 상을 제정했다.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지는 ‘소다 팝(병 탄산음료)’을 발명한 가공인물 이그나시우스 노벨(Ignacius Nobel)에서 그 이름을 땄다. ‘이그노벨(Ig Nobel)’은 ‘고상한’을 뜻하는 영어 단어 ‘노블(noble)’의 반대말로 ‘품위없는’을 뜻하는 ‘이그노블(ignoble)’과 상통한다.

이그노벨상의 취지는 독특하면서 상상력 넘치는 아이디어들을 치하하고 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수상 분야는 매년 바뀌는데 물리학, 화학, 의학, 생물학 등이 기본적으로 포함되고 문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같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도 상을 준다. 10개 분야에서 10건의 연구가 선정되는 것이 원칙이나 특별한 경우 한 분야에서 복수 시상도 한다. 상금도 없고 수상자들은 자기 돈으로 비행기삯을 내고 시상식에 가야한다. 매년 10월 초 발표되는 노벨상에 앞서 하버드 대학 샌더스 강당에서 수여된다.

올해 이그노벨상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기지가 번뜩이는 10명의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이그노벨 수학상을 받은 호주의 피어스 반스와 닉 스벤슨은, 단체 사진을 찍을 경우 눈 감은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려면 최소한 몇 장을 찍어야 하는지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내는 실험을 했다. 눈 깜빡임은 빛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촬영 순간에 눈을 감는 사람들은 세상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다. 이들의 계산에 따르면, 20명 이하가 카메라 앞에 서 있고 조명 상태가 좋다면 사람 수를 3으로 나눈 수만큼 촬영하면 된다고 한다. 단 조명이 안 좋을 땐 2로 나눈 수만큼 셔터를 눌러야 한다. 눈 깜빡임 사이의 간격과 눈 감는 지속 시간 등을 기준으로 독특한 공식을 뚝딱 계산해낸 이들은 아마도 이 방면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남을 것 같다.

영국의 하워드 스테이플턴은 고주파 10대 퇴치기 ‘모스키토’를 발명해 평화상을 수상했다. 10대들에게만 들리는 고주파 소리를 흘림으로써 조용한 식료품 가게와 쇼핑몰에서 고함을 지르거나 욕설을 퍼부으며 어슬렁거리는 불량 청소년들을 모기 쫓아내듯 몰아내 쇼핑몰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게 그에게 주어진 수상 이유이다. ‘모스키토’는 현재 전국의 매장과 지방 정부, 경찰, 일반 주택 등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부리로 나무를 수도 없이 쪼는 딱따구리는 사람으로 치면 시속 25km로 초당 20회 정도 얼굴을 벽에 박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 미국의 이반 슈왑 박사는 이렇듯 쉴 새 없이 나무를 쪼아대면서도 두통을 앓지 않는 이유를 규명해 조류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슈왑 박사는 그 이유를 “스펀지 형태의 두꺼운 두개골이 딱따구리의 뇌를 보호해 주는 데다 나무를 쪼기 1000분의 1초 전에 눈을 감아 눈알이 튀어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딱따구리의 연구자답게 딱따구리 모자를 쓰고 이번 시상식에 참가했다.

미국의 심장전문의 프랜시스 페스미어 박사는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난치성 딸꾹질을 치료한 공로로 의학상을 탔다. 페스미어 박사는 항문 손가락 마사지가 신경을 자극해 심장박동을 늦출 뿐 아니라 딸꾹질도 멈추게 한다는 사실을 의학보고서에 발표했다. 대단히 창의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는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이런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역시 괴짜다운 소감이다.

손톱이나 날카로운 물질로 칠판을 ‘끼익~끼익’하며 긁는 소리가 왜 소름끼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다 그 긁는 소리가 침팬지의 경고음과 유사하다는 원리를 규명한 린 핼펀 박사와 랜돌프 블레이크 등은 음향학상을 공동으로 받았다.

이 밖에 쇠똥구리가 ‘똥’을 선택할 때 까다로운 기준이 있다는 내용의 연구, 말라리아를 옮기는 학질모기가 사람의 발 냄새와 림버거 치즈 냄새에 똑같은 정도로 끌린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 등 유머러스하면서도 일상적인 사고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의 논문도 수상 대열에 끼었다.

역대 수상자 중에는 한국인 수상자도 있다. 향기 나는 정장을 개발하여 1999년 환경보호상을 받은 권혁호씨, 1960년 36쌍에서 시작해 1997년 3600만쌍까지 합동 결혼시킨 공로로 2000년 경제학상을 수상한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그 주인공들이다. 올해는 아쉽게도 한 명도 선정되지 않았다.

이그노벨상 담당자 마크 에이브러햄에 따르면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저자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학술지 논문이 연간 1만 편”이라고 한다. 언뜻 사소하거나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거기에 ‘쓸모의 가치’가 숨어 있다.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으나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엽기적 쓸모’에 나도 한번쯤 도전해 보는 것 또한 의미 있지 않을까.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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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2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금도 없고 수상자들은 자기 돈으로 비행기삯을 내고 시상식에 가야한다....재밌네^^ㅎㅎㅎ

비로그인 2006-10-20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요일이 다들 바쁜가봐요.어제 18위였는데 한개도 안올려서 30위권 밖으로나갈줄 알았는데 19위네요...

마노아 2006-10-20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켜본(?) 바로는 토요일이 가장 적게 올라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일요일은 다음날이 심사니까 몰려서 올라오구요^^ 전 서재 순위 밀렸어용. 뉴페이스가 두명 등장했던 걸요^^
 


운명처럼 언젠가 써야했던 소설 『리심』, 소설가 김탁환

- 김탁환
게재일 : 2006-10-19 조회수 : 331
글 / 김정희candy@yes24.com
원고지 삼천 매 분량의 장편 소설 『리심』을 출간한 김탁환을 만났다. 작가의 말에서 그가 밝힌 것처럼 『리심』은 그가 20년 동안 배우고 익힌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작품이며, 작가 김탁환에게 있어서 하나의 장이 끝남을 의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리심』은 스케일이 크다는 점, 역사에서 잊혀진 비범한 여인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누구보다도 넓은 세상을 만났고, 많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조선을 벗어날 수 없었던 ‘리심’을 되살리려고 김탁환은 중세와 근대, 계몽과 신비, 동양과 서양, 제국과 식민지를 꼼꼼히 살폈고, 그녀의 발자취를 좇아 일본, 프랑스, 모로코로 답사를 떠났다.

운명처럼 언젠가 써야했던 소설 『리심』

『리심』을 출간한 김탁환
김탁환에게 『리심』은 언젠가 써야했던 소설이었다. “십 년 전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인데, 그때는 돈도 없고 공부할 양도 많기 때문에 능력이 안됐어요.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3년 전쯤 이제는 써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7~8년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들을 쓰면서 소설 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리심과 빅토르 콜랭이 갔던 장소들을 답사할 수 있을만한 시간과 돈도 준비되었다.

불어로 씌어진 리심과 빅토르 콜랭에 대한 자료는 찾는 데에는 20년 지기 정지용 박사의 도움이 컸다. 그밖에도 많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리심』은 태어났다. “역사 소설 작가는 여러 전문가들과 산학 협동을 해야 합니다. 제가 산이고 여러 전문가들이 학이 되는 셈이죠. 서로 co-work를 하지 않았으면 작품 하나를 쓰는 데 엄청나게 시간을 많이 걸렸을 겁니다. 『방각본 살인사건』과 같은 ‘백탑파’ 시리즈도 안대회 선생과 정민 선생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2~3년에 한 권씩 쓰는 것이 힘들었을 거예요.”

고전문학을 전공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답사는 예전에 대학원에 있을 때 했던 답사가 도움이 됐습니다.” 학교 다닐 때 같이 공부하던 동기들이 지금 연구자들과 교수가 되었다.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계속 찌르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한문구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친구들에게는 물어보면 단번에 대답이 나와요. 누구에게 물어보면 그것을 안다, 나의 노하우는 그것이죠.”

역사소설에 대해 독자들이 가지는 편견. 자료만 찾으면 쓰는 것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리심』의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바람이 없다면 단 1밀리미터도 나아가지 못한다. 자료와 답사는 이야기의 튼튼한 바탕을 마련하는 기초공사일 뿐이다.

리심에 대해 씌어진 자료, 그녀가 남긴 글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얼마 안 되는 기록들이 그녀가 빅토르 콜랭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일본과 프랑스와 모로코에 있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을 알려줄 뿐이다. 그녀가 왜 궁궐에 들어와 무희가 되었는지, 빅토르 콜랭과 왜 파리로 떠났는지, 떠나고 나서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녀가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에 절망했는지, 왜 조선으로 다시 돌아왔는지, 그리고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 모든 이야기의 빈 곳들은 그가 상상력으로 촘촘히 직조한 것들이다.

김탁환이라는 소설가 만들기

그는 해방 이후 고전문학을 전공한 사람 중 유일한 소설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했지만 소설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군복무였다. “스물여덟 살까지 나는 고전문학 연구자, 그 중에서도 대하소설 연구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건 취미였죠.” 그가 즐겨 읽었던 소설가들은 스티븐 킹, 존 그리샴, 무라카미 하루키. 스토리가 강한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소설보다 평론으로 먼저 데뷔를 했다. “그때 나는 한국 소설의 미래가 암담한 것이 몇 가지 측면이 있는데, 스토리가 너무 약하다는 점이 그 중 한가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 문학성이라는 것이 문체에만 있고 스토리에는 없다, 스토리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는 스토리가 강한 소설, 20대들의 문학청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를 다룬 소설,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들의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고 평론을 썼다. “그런데 아무도 안 써요.(웃음)”

그러다 고향 진해에서 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와 멀어지니까 아무도 공부하라는 사람도 없고, 시간은 많고. 대학원에 있을 때는 하루가 11시쯤 시작되어서 대충 있다가 저녁이면 술 마시다가 끝나는데 군대는 아침 일곱 시에 하루가 시작되거든요. 일곱 시 반에 출근해서 저녁 여섯 시에 퇴근. 해군 교관으로 생도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데 수업이 일주일에 아홉 시간밖에 안 돼요. 그 나머지 시간은 근무지 이탈을 하면 안 되니까 계속 연구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어요. 그때 연구실에서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열심히 책을 읽던 때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소설 읽기가 지겨워 쓰기 시작했다. 습작으로 쓴 단편들이 책 한 권 분량 정도가 되자 지도교수였던 양귀자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그 때, 양귀자 선생님은 그에게 ‘소설가가 되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제가 쓴 비평도 소설적이었대요. 분석은 별로 안하고, 몽상을 많이 하고, 문장은 계속 우기고. 감동 잘하는 영혼이니까 소설이 더 맞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고향인 진해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쓰게 된다. 그 작품이 바로 첫 장편소설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다.

써도 써도 끝나지 않았던 『불멸의 이순신』

첫 작품을 쓰고 난 후, 역사소설가 김탁환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킨 『불멸의 이순신』을 썼다. 『불멸의 이순신』은 그에게 ‘소설가’로서의 기본 훈련을 확실히 시켜준 작품이기도 하다.

『불멸의 이순신』은 분량이 무려 원고지 사천오백 매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길어질 것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쓰다보니 사천오백 매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장편소설이 된 것이다. “2년 정도 습작을 했는데, 써도 써도 이야기가 끝이 안 나는 거예요. 이순신의 이야기니까 이순신이 죽어야 이야기가 끝나잖아요. 그런데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이순신이 죽으려면 한참이 남았죠.(웃음)”

제대 말 『불멸의 이순신』을 위해 답사를 다니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계획은 일주일이었지만 답사지에 가면 새로운 정보를 듣고, 좀더 많이 보고 싶다는, 제대로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답사 기간과 비용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답사를 하는데, 저 섬에 이순신이 배를 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들어가 보고 싶잖아요. 그런 데 하루에 배가 두 번 밖에 안 들어가고 오늘 배는 이미 다 떠났다. 그럼 하룻밤 자고 내일 들어가는 거죠. 숙박비에 배 빌리는 것에 돈이 들어가죠. 고생은 많이 했지만 답사를 제대로 배웠어요.”

『불멸의 이순신』이 한참 잘 써질 때는, 새벽 다섯 시까지 밤을 꼬박 새워 글을 썼다. 그렇게 밤을 새운 밤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새벽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지금까지 써 온 이야기를 고민했다. “그렇게 이야기 때문에 혼자 새벽을 앓았던 때, 그 때가 제가 소설가가 된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김옥균, 홍종우, 리심과의 만남

1998년『불멸의 이순신』이 출간된 후, 그는 리심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조선왕조 오백년’ 사극을 쓴 신봉승 선생이 『불멸의 이순신』을 읽고 그를 작업실로 초대했다. 신봉승 선생은 꼼꼼하게 답사를 다닌 흔적이 역력한 그의 작품을 칭찬했다. “그것은 굉장히 가치 있는 작업이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을 보니 너는 이 길을 계속 가라, 그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에게 ‘개화기’를 꼭 소설로 써볼 것을 권했다. “김옥균, 홍종우, 리심, 이런 애들 이야기가 재밌다, 나중에 꼭 써봐라, 그러셨어요. 당신은 1981년에 벌써 ‘리심의 비련기’라는 사극을 쓰셨죠.” 처음 들었을 때부터 욕심이 나는 소재였다. 그렇지만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일단, 개화기를 알아야 하고, 리심이 갔던 일본과 프랑스, 모로코에도 직접 가봐야 한다. 그는 ‘리심’에 대해, ‘개화기’에 대해 글을 쓰기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이 잘 아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해 개화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황진이』를 시작으로 ‘백탑파’ 시리즈까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내려오는 작업을 한 거죠. 그렇게 코스대로 밟아오니까 한 십 년이 걸렸네요.” 『리심』으로 개화기까지 내려온 그가 지금 작업하는 것은 해방공간의 이야기다. “나는 단군부터 현재까지 다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고, 그렇게 하고 있는 거죠. 『리심』은 나에게 필연이었어요.”

자기 삶의 근거를 스스로 만들어 간 여자, 리심

『리심』은 대부분의 조선 여성들이 규방만을 삶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던 시절, 최초로 일본, 프랑스, 아프리카까지 나아간 궁중 무희 리심과 그를 사랑한 프랑스 외교관 빅토르 콜랭의 이야기이다. 시대를 앞서나간 비운의 여성과 그를 사랑한 외국인. 얼마든지 달콤하고 화려하게, 낭만적으로 포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도적으로 낭만을 걷어냈다.

“파리가 멋있긴 했지만, 황인종들은 밖으로 나다니지도 못하고 원숭이 취급을 받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어요.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았던 리심의 삶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을 거예요. 그 당시 황인종인 조선 여자가 일본과 프랑스, 모로코에 갔을 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리얼하게 드러내고 싶었어요. 콜랭과 리심의 관계에서도 약간의 낭만은 어쩔 수 없었지만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리심은 파리에서 외로웠고 조선에 돌아와서는 더 외로웠다. 파리에서는 단 한 명의 조선 여인이었고 조선에서는 일본과 프랑스, 모로코를 두루 돌아다니며 신문물을 보고 새로운 지식을 가진 단 한 명의 여성이었다. “리심은 자기와 같은 식으로 살아본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사람입니다. 전범이 없는 거예요. 리심은 철저하게 혼자였다는 거죠.”

자기 삶의 근거를 스스로 만들어갔던 여자, 고독하면서도 자긍심이 높은 여자가 바로 리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삶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삶에는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게 있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 있어요. 리심은 아무리 불어를 잘해도 프랑스 시민이 될 수 없고, 개화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어도 조선에서는 성공할 수 없어요. 그게 리심의 비극이죠.” 시대는 그녀를 극한으로 내몬다. 전 세계를 돌아보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의 공기를 맛본 그녀를 다시 궁궐이라는 새장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 그 극한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그렇듯, 그녀는 영웅적인 죽음을 선택한다.

쓸 수 있는 것과 쓰고 싶은 것

『리심』 중에서 두 번째 권이 가장 쓰기 힘들었다. 3인칭으로 서술하던 1권, 3권과 달리 2권은 리심의 눈과 목소리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중간에 서술방식을 바꾼다는 건은 대단한 모험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는 항상 쓸 수 있는 것을 쓰다가 갑자기 쓰고 싶은 것을 쓰게 돼요.” 쓸 수 있는 것과 쓰고 싶은 것은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쓸 수 있는 것을 쓰지만 예술가는 쓰고 싶은 것을 쓰려고 하는 상승욕망이 있다. 쉽게 말하면 욕심을 낸다는 뜻이다.

“기록을 보면 리심이 파리와 마르세이유, 사하라 사막에 있을 때 뭔가를 썼다고 하거든요. 그것을 살리고 싶었어요. 리심의 한계와 리심의 편견과 리심의 선입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깨닫고, 후회하고 이런 것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여성의 목소리로 1인칭 소설을 쓰는 것은 이미 『나, 황진이』에서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기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리심이 간 곳에 그도 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리심』을 영화화하기로 한 영화사를 찾아갔다.

“이건 규장각에서 자료 찾고 유학생들에게 부탁해서 책을 사와서 상상력으로 쓸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내가 가서 리심이 걸었던 길을 걷고, 리심이 앉았던 벤치에 가서 앉고 리심이 살았던 집에 가서 그 벽을 만져보고 이래야 쓸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영화사에서 취재경비를 대서 한 달 동안 일본, 파리, 마르세이유, 모로코, 사하라 사막을 돌았어요.”

답사의 과정에서 그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리심의 깨달음의 지점을 체크하는 것이라고 했다. 리심이 이걸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조선에 있는 무엇과 닮았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것을 유추해야 했다. “중세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사이에 낀 존재가 양쪽을 비교하는 감각,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이 골치 아팠어요.”

스토리텔러에서 스토리디자이너를 꿈꾼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역사 소설가’로 기억하지만 그는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에 묶일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 그는 인물과 그 인물의 삶에 관심이 있어 그것을 소설로 써왔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인물이 있어요. 그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 자료들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그것이 나의 소설인 것 같습니다.”

또, 소설이라는 장르에도, 조선 시대라는 배경에도 묶일 생각이 없다. “저는 스토리텔러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것들을 역사 소설이라고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각각 다른 장르를 실험한 소설들입니다. 『나, 황진이』는 고백록이고 『리심』은 약간의 멜로, 『불멸의 이순신』은 정통 전쟁물이고 ‘백탑파’ 시리즈는 추리소설이고, 『부여현감 귀신 체포기』는 동양적인 환상을 포스트모던하게 그려냈죠.”

예술가로 그는 형식 실험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형식 실험을 할 생각이다.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농담』 같은 작품은 형식 실험을 한 소설이지만 그것을 몰라도 재미있고, 알면 더 재밌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미적인 체험을 주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것, 이것이 예술가의 운명이니까 형식 실험은 포기할 수 없는 거죠.”

이야기 창작자인 스토리텔러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이야기를 기획하는 스토리디자이너를 꿈꾼다. “스토리디자이너는 단순히 작품을 창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체를 관장하는 사람이에요. 이야기가 어떻게 기획되어서 독자에게 가는가, 그것을 연구하고 집행하는 하는 사람이죠. 이전의 소설가들이 창작자로서 스토리텔러에 충실했다면 앞으로는 기획력이 중요시되는 스토리디자이너로서의 자질이 더 필요할 겁니다.”

스토리 기획자로 가장 필요한 자질은 세상의 고민과 자신의 고민이 맞닿는 접점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스토리디자이너에 가장 걸 맞는 작가로 마이클 클라이튼이 있습니다. 마이클 클라이튼은 작품을 쓰기도 하지만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ER'도 만들죠. 나는 소설가고 시나리오도 쓰고, 내 작품으로 지금 ‘황진이’라는 드라마를 만들고 있지만 그런 스토리 제공자로서 기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토리 디자이너, 기획자로서 일하고 싶습니다.”

******

그래 24에서 퍼왔어요. 김탁환씨는 수염을 기르고 좀 더 중후한 이미지가 느껴지네요. 더 젊었을 때는 좀 기름져 보였는데...;;;;;

리심, 읽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이 글을 보니 또 궁금해집니다.

매번 궁금해서 읽고, 그리고 2% 부족해!를 외쳤지만 이번에도 역시 궁금해집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자신감은 좋아 보여요. 그게 지나치면 자만심이 되지만, 그만큼 노력했다는 거니까 그 노력엔 박수를 보내야죠. 그런데 리심도 영화로 만드나 보군요. 오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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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20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김탁환씨의 소설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아래 주소의 페이퍼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654530

치유 2006-10-2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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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노아 (mail)

버릴 것은 버리자. 채울 것은 채우자.

마노아 2006-10-20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그림자님. 반갑습니다. 김탁환씨에게는 늘 일정량 정도의 관심은 있어왔지요. 소개해준 페이퍼 저도 읽어볼게요~
배꽃님, 하핫, 감사해용^^
 

[week&쉼] 화제의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 만나다
[중앙일보 2006-10-20 06:32]    

[중앙일보 김현기] "어휴, 추워라."

17일 저녁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의 한 맨션. 자신의 와인 셀러를 보여주겠다는 말에 "그래도 만화작가인데 와인이 있어 봐야 작업실 옆쪽에 조금이겠지" 했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10평가량의 네 벽면이 온통 와인투성이다. 실내 온도는 16도에서 18도로 유지되게끔 24시간 에어컨을 돌린다. 월 12만 엔가량의 유지비가 든다고 한다. 마룻바닥과 화장실에도 와인이 넘쳐났다. 걸어다니기가 힘들 정도다. "한 3000개 되려나요."

공전의 히트를 이어가고 있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의 저자 아기 다다시(亞樹直). 알고 보니 '아기'는 두 사람이었다. 그것도 친남매 사이다. 필명을 하나로 할 뿐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이었다. 집도 5분 거리라 1주일에 3~4일은 같이 만나 와인을 마시며 스토리를 구상한단다.

인터뷰 내내 속사포처럼 내뱉는 두 사람의 와인 예찬은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어떻게 해서 와인 만화를 쓰게 됐나.

누나(48) : 몇몇 와인 관련 만화가 있었지만 주인공 중심이고 와인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신의 물방울'처럼 주인공이 와인인 만화는 없었다고 본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도구일 뿐이다. 내가 와인에 홀린 것은 로마네콩티에서 만든 '에세조'를 마신 이후다. 와인 안에 작품이 있음을 느꼈다. 그 스토리를 끌어낸다면 충분히 만화가 될 수 있으리란 느낌이 들었다.

동생(44) : 예전부터 와인을 마시긴 했지만 수집가가 돼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은 10년 전부터다. 서로 다른 와인 안에 있는 드라마와 메시지를 이야기로 표현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신의 물방울'을 보면 고급 와인보다 1000엔~3000엔대의 비교적 저렴한 와인이 많이 등장한다. 이유가 있나.

누나: 처음 와인을 마시는 이들이 1만 엔이 넘는 것들을 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와인에 입문할 때는 저가의 것을 먼저 사 마시는데 그게 맛없으면 와인을 포기하게 된다. 와인의 세계를 넓히고자 하는 게 나의 욕망이므로 저가 와인 중에서도 훌륭한 것을 발굴해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발견하기까지는 여러 실패가 있었다(웃음). 동생과 1000개 정도는 실패한 것 같다. 쫙 잔을 나열해 조금씩 마시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치우고 다시 다른 종류의 와인을 마시는 작업의 반복이었다.

동생: 처음부터 100만 엔짜리 와인은 없다. 맛이 소문나고 하면서 많이 찾게 돼 그렇게 될 뿐이다. 장래에 100만 엔이 될 법한, 하지만 지금은 싼 와인들이 분명히 있다. 와인의 최초 조건은 가격이 아니라 품질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하나.

동생: 무엇보다 맛이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단순해선 안 된다. 단지 맛보다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복잡한 세계가 그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역시 빈티지(생산 연도)가 중요하다. 즉 천(天), 지(地), 인(人)의 절묘한 조화가 필요하다. 날씨만 좋아선 안 되고 비옥한 토양, 그리고 험한 조건에서도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 내려는 인간의 노력이 가미돼야 진정한 와인이다. 예컨대 수확철에 비가 오면 포도밭에 비닐을 씌우는 미국 와인은 생산 연도가 별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는 자연의 섭리 그대로 맡기는 편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오키모토 슈)와는 어떻게 협의를 하나.

동생: 우리 남매가 원작안을 건네면서 이미지를 요구한다. 그러면 그쪽에서 가져온 것을 보고 고치는 작업을 같이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한국의 윤석호 감독 작품을 좋아해, 주인공 중 한 명인 토미네 잇세(와인 평론가)는 '겨울연가'의 주인공 배용준씨를 모델로 해 달라고 했다. 윤 감독의 '봄의 왈츠'가 일본어판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최지우씨와 이영애씨의 팬이기도 하다.

누나: 책에 나오는 인물 중 2명이 실존 인물이다. 간자키 시즈쿠(주인공)와 같은 직장에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에 푹 빠져 있는 혼마는 바로 이 건물(기치조지 도큐백화점) 지하에 있는 와인숍 매니저다. 또 7권에 와인스쿨의 강사로 나오는 사이토도 실존 인물이다. 주인공 간자키의 특기인 디켄팅은 세계 소믈리에 대회에서 3등을 한 인물의 기술을 보고 착안한 것이다. 현재 도쿄 롯폰기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책을 보면 프랑스 2001년산 와인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12사도 중 제1 사도로 선정된 와인도 2001년산 샹볼 뮤지니였다. 어떤 특징 때문에 선택하게 됐나.

동생: 세계적인 와인 거장 '로버트 파커'는 2002년산 샹볼 뮤지니에 훨씬 높은 점수를 줬지만 우리는 2001년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 아까 이야기한 '천.지.인'의 조화는 바로 2001년산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2002년보다 2001년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믿고 있다. 파커는 마시기 좋은 와인을 높게 평가하고 우아한 와인에 대해선 좀 짠 것 같다.

-지금까지 마신 와인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와인을 들라면.

동생: 이런 이야기하기가 좀 억울하기도 하고 인정하기 싫지만, 가격이 100만 엔짜리라…(웃음). 1985년산 로마네콩티에 버금가는 것은 없다고 본다. 85년산을 마시기 전에 다른 빈티지 세 종류를 마셔본 상태였지만 85년산을 마시는 순간 모두 잊고 말았다. 딱 한 잔 마셔봤지만 조그마한 잔 안에 있는 와인의 향기가 떨어져 앉아 있어도 바로 전달돼 왔다. 입을 대는 순간 녹아웃이었다. 딱 그 한마디다. 100점 만점의 완벽한 살아 있는 와인이었다.

-한국의 독자들과 와인 애호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누나: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면서 한국인은 일본인에 비해 감성이 풍부하고 정이 깊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한국 요리 중 와인에 어울리는 것이 있으면 꼭 알려 달라. 갈비나 파전 같은 게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동생: 실은 이건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건데 조만간 '신의 물방울'에 '한국편'을 등장시키려 한다. 주인공이 뭔가의 이유로 인해 한국을 찾아 와인을 묘사하는 대사를 착안해 내는 내용이 될 것 같다. 한국 독자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란 측면도 있다. 한국에서 이 만화를 드라마로 하자는 이야기가 여럿 들어와 검토 중이다. 실은 누나나 나나 한번도 한국에 가보질 못했다."

도쿄 글.사진=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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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20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이 쓰는구나...

Koni 2006-10-20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매가 함께 작가 일을 한다니 존경스럽네요. 난 동생과 만날 싸우는데... ^^

마노아 2006-10-2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언니한테 맨날 당하는데.ㅡ.ㅜ

비로그인 2006-10-2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혼자라서 외롭게 살아가는데.

마노아 2006-10-20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롭게'가 아니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