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사는 주부 김 모씨(37)는 최근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한 뒤 씁쓸한 기분으로 미용실 문을 나서야 했다.
매주 화요일 오후 1시 전에 오는 손님에겐 6만원인 파마 요금을 4만4400원으로 할 인해 준다기에 찾아갔는데 미용실측은 신용카드로 계산하려는 김씨에게 현금으로 낼 것을 요구했다.
할 수 없이 현금을 낸 김씨는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2 6%나 깎아줬기 때문에 현금영수증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금영수증까 지 발급해 주면 손님은 할인혜택과 소득공제 혜택을 이중으로 받게 돼 거의 40% 가 까운 할인을 받게 되는 셈이다. 그럴 수는 없지 않느냐"는 훈시까지 들어야 했다.
현금영수증제도가 도입된 지 2년이 되어가지만 일부 현금영수증 가맹점들의 횡포가 여전하다. 이런 가맹점들은 대개 요금할인제를 시행한다며 미끼를 던진 뒤 소비자 들에게는 할인받는 대가로 현금으로 지불할 것을 요구하면서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 부하고 있다.
이들은 소비자들에게 할인에 따른 이득을 얻는 대신 소득공제로 얻게 될 이득은 포 기하라고 종용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자신들은 할인액만큼 매출 손해를 감수한다 는 점도 덧붙인다.
이 때문에 점포 주인과 소비자가 승강이하는 모습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항변해 보지만 결국엔 할인혜택과 현금영수 증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고 만다. 이 같은 일은 음식점에서 가구점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가구점을 찾은 주부 이 모씨(42)는 책꽂이 값을 30% 할인받으면서 현금영수증은 받지 않기로 '타협'했 다.
가구점 주인은 매출을 누락해 세금을 덜 내는 혜택을 얻고 이씨는 상당한 할인혜택 을 누리므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라는 그럴 듯한 설명도 들었다.
최근 제주도에 놀러간 회사원 박 모씨(32)도 중문관광단지의 한 대형식당에서 비슷 한 경험을 했다.
현금으로 계산하면 20%를 할인해 준다는 말에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그건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박씨는 할 수 없이 신용카드로 식사비를 내고 식당을 나왔다.
부산에 사는 최 모씨(31)는 남천동 한 곱창음식점에서 식사비를 내려다 주인과 말 다툼을 벌였다.
최씨는 "현금으로 내면 할인해 주겠다고 해서 현금을 냈더니 현금영수증 발급은 안 된다고 해 따졌다"며 "현금영수증 발급은 당연한건데 주인이 오히려 화를 내 기분 이 매우 나빴다"고 했다.
국세청은 현금영수증 제도가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이를 비웃기 라도 하듯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손쉽게 법망을 빠져 나가고 있다.
이들 가맹점은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 금액만큼 매출을 누락한 뒤 매출 누락분에 상 당하는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탈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금영수증 제도가 소액 현금거래의 과세표준 양성화를 목적으로 도입한 것이지만 허점은 여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국세청 전자세원팀 관계자는 "할인과 상관없이 현금으로 지불하면 가맹점은 무조건 현금영수증을 발급해 줘야 한다"며 "현금영수증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소 득세와 부가가치세를 탈루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국세청 인터넷 홈페이지(www.taxsave.go.kr) 등을 통해 영수증 발급을 거부한 가맹점을 신고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보다 감소하긴 했지만 올해 상반기 에만 7086건의 발급 거부 신고가 들어왔다.
국세청은 영수증 발급을 거부하는 가맹점에 대해 두 차례 적발 때까지는 행정지도 를 한 뒤 3차 적발부터는 세무조사 선정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는 식으로 영수증 발 급을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현금영수증 가맹 대상은 연간 매출 2400만원 이상 사업자들이지만 의무는 아니다.
[진성기 기자 / 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