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은 이집트형일까, 그리스형일까? [제 525 호/2006-11-17]
오래간만에 신발 가게에서 구두를 골랐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왼발에 맞추면 오른발이 허전하고, 오른발에 맞추면 왼발은 너무 빡빡하다. 매장 직원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그렇다고 한다. 희한하게도 왼발과 오른발은 손에 비해 양쪽의 차이가 크다.

지난 2003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세진 박사가 한국인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왼발이 오른발보다 평균 0.6mm 더 길다. 0.6mm은 작은 차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나 어디까지나 평균이 그렇다는 이야기. 왼발과 오른발 길이가 1~2mm 정도 차이 나는 발을 흔히 볼 수 있고, 사람에 따라서 10mm나 차이 나는 발도 있다. 왜 왼발이 오른발보다 더 큰 사람이 많을까?

이유는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많기 때문이다. 오른손잡이는 왼발이 오른발보다 더 힘이 센데, 손과 달리 척수에서 신경이 한번 교차가 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왼발이 몸을 지탱하고 힘을 쓰는 역할을 하다보니 오른발보다 더 길어졌다고 추정한다.

혹시 축구를 잘 하는 사람은 “난 오른손잡이라서 오른발로 슛을 하고, 드리블하니 오른발이 더 세지 않나”하는 의문을 가질 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멀리뛰기를 할 때 어느 발로 구르는 지 생각해 보라. 오른발이 공을 차고 드리블하는 동안 왼발은 온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묵묵히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발 길이가 차이 나는 것처럼 발가락 길이도 사람마다 다르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벽화와 조각을 보면 이집트인은 엄지발가락이 둘째발가락보다 길고, 그리스인은 반대로 둘째발가락이 엄지발가락보다 길다. 따라서 엄지발가락이 둘째발가락보다 긴 발을 이집트형, 짧은 발을 그리스형, 같은 것을 스퀘어형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집트형이 60%로 가장 많고, 그리스형은 7%, 스퀘어형은 33%이다. 세계적으로도 이집트형이 가장 많은데 이는 엄지발가락의 중요성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손에서 엄지손가락이 가장 중요하듯, 발에서도 엄지발가락은 발의 균형을 잡고,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때문에 육상 선수들은 엄지발가락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 따로 연습을 하기도 한다.

우리 몸을 지탱하고 이동시키는 발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양쪽 발이 차지하는 뼈의 개수를 모두 합하면 52개. 양손이 차지하는 뼈의 개수가 54개이니 우리 몸의 뼈 206개 중에서 손과 발이 차지하는 뼈가 절반이 넘는다. 따라서 발은 손만큼은 아니지만 무척 섬세한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

또 손과 마찬가지로 제곱미터 당 수천 개의 말초신경이 존재해 감각이 매우 발달한 기관 중 하나다. 특히 촉각에 대해서는 손가락 끝보다 더 민감하다. 발이 손보다 간지럼을 더 많이 타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우리가 발을 훈련하지 않아서 그렇지, 양손을 잃어 발로 손을 대신하는 사람을 보면 문을 열고, 키보드를 치고, 그림을 그리며, 음식을 먹는 등 손이 하는 거의 모든 행동을 발로 대신할 수 있다.

게다가 발을 구성하는 20개의 근육은 촘촘히 연결돼 있어 웬만큼 강한 압력도 쉽게 분산시키도록 돼 있다. 성인이 하루 종일 걸을 때 발에 실리는 무게를 모두 합치면 1000톤에 달한다. 평생 20만~40만km를 이동하고, 3억번을 굽혔다 펴도 발은 끄떡없다. 이런 내구성은 발 근육의 쿠션 장치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발은 우리 몸에서 가장 천시되는 기관 중 하나다. 얼굴 씻은 물로 발을 씻지, 발 씻은 물로 얼굴을 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얼굴을 관리하는 수고의 10분의 1만 발에 투자해도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 중 자신의 발에 맞는 신발을 잘 골라 신는 것이 가장 큰 투자가 될 것이다. 지나치게 높은 하이힐은 서양판 전족(纏足)이나 다름없다. 하이힐을 오래 신으면 엄지발가락이 눌려 변형되고 관절이 상한다. 그리고 가끔 사랑하는 가족의 발을 정성스럽게 씻어주자. 발은 촉각이 가장 잘 발달한 기관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도 가장 잘 전달된다. (글 : 김정훈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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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17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재밌다! 난 이집트형
 

생물교과서 ‘오류’ 투성이
[한겨레 2006-11-17 01:12]    

[한겨레]
확인안된 내용들 버젓이
생명공학 불확실한 내용
학계 “교과서 게재 안돼”

“다음은 복제 송아지인 영롱이의 출생 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영롱이의 핵과 세포질에 있는 유전자는 어느 소의 유전자와 동일한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연구 진실성 위반 사건이 터진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상당수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와 참고도서들에는 황 전 교수가 체세포 핵이식 방식으로 복제했다는 ‘복제 송아지 영롱이’를 여전히 기정사실로 기술하고 있다.

16일 <한겨레> 취재진의 조사 결과, ㅈ출판사가 올해 고등학생용으로 발간한 검정 생물2 교과서 제5단원 ‘생물학과 인간의 미래’에는 ‘핵치환’을 설명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에 국내 최초로 복제 송아지 ‘영롱’이가 태어났다”라고 기술돼 있다. 이어 “영롱이는 복제양 돌리와 유사한 방법으로 태어났다. 그 뒤 국내 최초의 한우 복제 송아지 ‘진’이도 태어났다”고 적혀 있으며, 영롱이의 탄생 과정을 그린 도표도 실려 있다. 또다른 ㅈ출판사도 내년 판매용으로 최근 출간한 참고서에 ‘핵이식’에 대한 풀이와 문제에서 영롱이를 소재로 사용하고, 영롱이 사진까지 실었다.

그러나 영롱이는 황 전 교수가 논문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체세포 복제 진위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 교과서에 사실인 것처럼 싣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조사한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영롱이의 복제 진위는 세포를 공여한 ‘엄마’ 소가 이미 죽은 상태여서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와이티엔>은 황 전 교수의 의뢰로, <문화방송> 피디수첩팀은 황 전 교수 쪽에서 시료를 넘겨받아 각각 전문기관에 분석을 맡겼으나 모두 ‘판독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올해 초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황 전 교수와 관련된 내용들을 모두 삭제했으나, 영롱이 부분은 수정·보완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이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조은희 조선대 교수(생물교육과)는 “생명공학은 사회 수용 과정에 논쟁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에 교과서 내용은 정확하고 공정하게 기술돼야 한다”며 “영롱이처럼 확인이 안 되는 불확실한 부분을 교과서에 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른 생물 교과서에도 잘못된 내용들이 담겨 있지만 해가 거듭되는데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한 검정 생물1 교과서는 “1996년 우리나라에서 모유 성분인 락토페린을 생산하는 젖소 ‘보람’이가 탄생했다. (중략) 보람이는 사람의 락토페린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보람이와 유사한 원리로 빈혈 치료제를 만들어내는 돼지인 ‘새로미’도 탄생했다. 새로미는 빈혈 치료제를 함유한 젖을 다량 생산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그러나 ‘보람이’와 ‘새로미’는 둘 다 수컷으로 이들 물질을 생산할 수 없다. 더욱이 이들 형질전환 동물의 후손들에서 만들어진 생리활성 물질의 양은 상업화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이미 2002년 결론난 상태다.

또다른 생물2 교과서는 “2001년 11월, 마침내 인간 배아 복제가 성공했다고 발표되었다”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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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17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헛, 다시 찍을 '돈'이 부족했나? ㅡ.ㅡ;;

짱꿀라 2006-11-1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오류투성일까요. 걱정됩니다. 크는 아이들 어떡하라고요. 정확해야 할텐네요. 웃음이 뭍어나는 하루가 되세요.

마노아 2006-11-1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물교과서뿐이 아니죠. 국정교과서인 국사는...대략난감이에요..;;;;
산타님도 웃음이 피어나는 하루 보내셔요^^
 
가자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스라엘에서 성장한 프랑스 작가가 쓴 탓인지, 이 책은 영화같고 지극히 소설같은 전개를 취하면서도 또 지독하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17세 소녀 탈은 어느 날 자기 옆집이 테러 공격을 받게 되자 그들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도 평화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 한통을 쓴다.  병 속에 담겨진 편지를 가자에서 군복무중인 오빠를 통해 바다에 띄워달라는 것.

오빠는 바다 대신 모래 위에 병을  꽂아 놓았고, 그 편지는 가자에 사는 20세 청년 나임의 손에 들어간다.

탈이 남긴 메일 주소로 2주 뒤에 나임은 메일을 보내어 그녀의 치기어린 행동을 양껏 비웃는다.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든 돌아온 답장에 탈은 기뻐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무시당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계속 메일을 보낸다.  끝끝내 무답장으로 일관해 오던 나임도, 탈이 95년에 암살된 이자크 라빈의 이야기를, 그때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느꼈던 절망에 대해 진실되게 이야기하자 끝내 답장을 보내게 된다.  여전히 빈정거렸지만 적어도 그녀가 편지를 보내는 진실된 마음은 인정한 것.

그렇게 둘 사이에 이메일을 통한 편지가 계속 오간다.  탈은 자신의 꿈인 영화감독에 관한 일을, 또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남자친구, 학교 이야기 등을 정감있게 얘기하지만 나임은 자신의 나이도 가족도, 무엇 하나도 제대로 얘기하지 않는다.  이제는 답장을 보내긴 하지만 오픈 마인드는 소원해 보인다.

그러다가, 팔레스타인 쪽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한다.  탈은 혹시라도 나임에게 문제가 생겼을까 봐 애태우고, 꽤 시일이 지나고 나임은 자신이 무사함을 알린다.  내내 차가운 듯 표정을 감추지만, 사실 나임은 끊임없이 그녀를 떠올리며 거기에 휘둘리는 자신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이스라엘의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 받는 사실이 알려질까 봐 늘 두려울 수밖에 없고 이메일은 확인하는 즉시 지워버린다.  심지어 그녀가 보낸 그녀의 사진마저도.

그리고 이제 정반대의 사건이 터진다.  이스라엘쪽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했는데, 사고 지점에 그녀가 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을 알았던 나임은 걱정으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몇번이나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야 답장이 왔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 현장에 있었지만 화는 면했던 탈은, 그러나 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이미 넋이 나가 있는 터였다.

평화를 갈망했던 그녀는 '테러'의 진면목을 눈으로 확인하고서 그들이 그토록 원한다 하여도 너무나 멀 수밖에 없는 현실의 평화를 실감하며 절망하고 만다.  이제 그녀를 위로하고, 그녀에게 희망을 북돋아 주는 것은 나임의 몫이 된다.

두 사람은 채팅을 하면서 좀 더 마음을 열게 되고, 탈은 가족들의 도움으로 혼란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그런데 여기서 일종의 반전이 생긴다.  그녀는 두 사람이 우연히 알게 된 사이라고 믿었는데, 어느 정도는 강제력이 동원된 사이였다.  오빠는 그녀의 편지를 먼저 읽어보았던 것이고, 편지가 든 병을 일부러 적당한 지점에 꽂아놓고 누군가가 집어가기를 지켜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임이 편지를 읽는 것까지도 목격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일종의 우연이었다고 한다면 둘 사이의 필연은 그 다음에 밝혀진다.  바로 나임과 탈은 이미 오래 전에 서로 알고 있었던 사이라는 것.  나임이 이스라엘을 체험하고자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이스라엘인으로서 팔레스타인인 자신에게 열린 마음을 보여주었던 이가 바로 탈의 아버지였고, 나임은 그녀의 집에서 자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탈의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던 것이다.(헌데 이름을 알고도 왜 몰랐을까???)

이제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나임은 더 큰 꿈의 실현과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려고 캐나다로 출발한다.  출발 직전에 탈에게 마지막 메일을 보내면서 답장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3년 뒤 로마에서 보자고 한다.  로마의 휴일의 그 장면처럼.

엔딩 부분은 상당히 작위적이어서 식상한 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작품은 별 다섯을 후히 주고도 남는다.  그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재 모습을, 과거를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음이고, 그들의 골깊은 감정과 상처가 또 얼마나 큰지를 현실적인 수치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곳에도 우리와 똑같은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이 있고, 학교와 선생님, 학생들이 있는데,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와 너무도 다르다.

나임의 어머니는 그를 낳으면서 더 이상 회임이 불가능하게 되었는데 가자에서 거의 유일할 외동아들이라는 그의 설명이 안타까웠다.  (요즘같은 시대에도 '죽음'의 위협 때문에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는 현실이라니, 얼마나 끔찍한가.)

테러를 직접 목격한 뒤 울부짖는 탈의 얘기 중, 그곳에 사는 그들조차도 그렇게 막연하게 느끼는데, 고작 텔레비전이나 신문기사, 아니면 그것도 접하지 않는 전세계의 그 누구가 그들의 공포와 절망을 피부로 느낄까... 아닌 게 아니라 그건 바로 우리의, 나의 이야기이지 않은가.

내게 이 책이 더 가슴에 와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은, 비슷한 시기에 읽은 한 페이퍼 때문이었다.  이라크 현지를 다녀온 지기님의 3년 전 글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아플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참고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00091)

인간은 희망 없이 살기는 너무도 나약한 존재다.  때로 그 희망은 절대로 성취할 수 없는 머나먼 것이기도 하다.  허나,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한, 포기될 수 없는 한 인간은 버틴다.  그리고, 그를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희생하기 시작할 때 희망은 한걸음씩 다가온다.  작품 속 탈의 아버지가 30년을 노력하고도 달라지지 않는데 포기하지 않냐라는 딸의 물음에 "30년이란 시간은 기나긴 역사 속에서 보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란다"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어쩌면, 그 모든 수고로움의 대가와 열매는 당대에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본인에게는 너무나 소원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건 어찌보면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테러라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 막연하고도 추상적인 '희생'과 '평화', '희망'을 바라는 것은 너무도 태만하고 또 오만한 부탁같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포기하랄 수가 없다.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했지만, 미래를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작가는 분명 그들의 미래가 탈과 나임의 바람대로 평화를 향해 더 다가가는 시대라고 믿고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그리고, 이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지역구도로 갈라져 있는, 그밖의 여러 대립으로 나눠져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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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cm에 40kg, 패션모델 거식증으로 사망 충격
[팝뉴스 2006-11-16 11:50]

브라질 출신의 21세의 패션 모델이 지나친 다이어트에 따른 거식증 부작용으로 사망, 충격을 주고 있다고 16일 주요 외신이 브라질 언론을 인용, 보도했다.

아나 카롤리나 레스톤이라는 이름의 21세 모델은 거식증으로 인한 신장 질환 등으로 치료를 받던 중 증세가 악화되면서 최근 병원에서 사망했는데, 레스톤이 마른 모델을 선호하는 패션 산업계의 희생양이라는 것이 언론들의 설명. 즉, 172cm에 40kg이라는 앙상한 몸매를 유지했던 레스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이어트를 계속 했고, 결국 거식증에 걸려 목숨까지 잃었다는 것.

40kg 체중의 레스톤은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몸이 너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등 체중 조절에 강한 집착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패션 모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카롤리나의 사망 소식은 깡마른 여성 모델을 선호하는 모델계의 관행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최근 영국 스페인 등의 국가에서는 지나치기 마른 패션 모델을 무대에 세우지 말자는 주장이 여성 단체 등에 의해 제기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거식증 모델의 사망이 이 같은 운동의 기폭제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 언론들의 보도 내용.

(사진: 거식증에 따른 부작용으로 사망한 21세 패션 모델 레스톤의 모습, 브라질 언론의 보도 화면)

김정 기자 (저작권자 팝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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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16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어트가 사람을 잡는구나..ㅠ.ㅠ

마노아 2006-11-1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이신 님, 님의 말이 맞아요. 우린 해당사항이 없어요...;;;;;

marine 2006-11-17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불쌍해요 그런데 거식증도 일종의 정신병이라 본인도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단지 다이어트만으로 그렇게까지 안 먹지는 않을 것 같네요

마노아 2006-11-17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적 질병같아요. 이 사회가 그것을 미의 기준으로 요구하니까 과도한 스테르스를 받는...ㅠ.ㅠ
 

[일다 2006-11-16 19:27]

남편: 샘 성적표가 왔는데 알아? 미적분이 F야.

(I just saw that Sam got an F in calculus.)

부인: 알아요. 성적표 봤어요.

(I'm aware, Jack. I get a copy of his report card too.)

10월 4일 MBC에서 방영한 외화 <투모로우>에 나오는 대사다. 원어인 영어 대사를 보면 남편과 부인 사이에 존대나 하대가 없지만, 우리말로 더빙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반말을 하고 부인은 존댓말을 하는 관계로 바뀌어버렸다.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의 모임인 ‘외화다시보기모임’에서 이처럼 TV외화에서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언어 성차별을 모니터링 해 결과를 보고했다. 이 모임은 지난 9월 9일부터 10월 29일까지 약 2개월간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된 영어권 외화 27편을 대상으로 원어와 더빙 대사를 비교했는데, 그 결과 상당 수가 성차별적 더빙을 하여 방송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장 빈번한 예는 위의 사례처럼 남녀가 부부관계나 연인관계로 등장할 때, 남성이 반말을 하고 여성이 존댓말을 하는 경우다. 모니터링 대상 영화들 중 남녀가 연인 또는 부부로 등장하는 영화는 15편인데 그 중 80%에 해당하는 12편의 영화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견됐다.

남녀 커플이나 부부 사이에서만 아니라, ‘악당’과 여성들과의 관계에서도 여성들이 존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더빙을 한 사례들이 많았다고 지적됐다. ‘외화다시보기모임’은 특히, 영화 속 나쁜 캐릭터인 ‘악당’을 향해 주인공(남성)을 비롯한 모든 남성들이 반말을 하지만, 유일하게 여성들만 존댓말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회적 계급이 다른 경우에서조차, 성별에 따라 존대와 하대를 하는 등 성차별적인 더빙이 이루어졌는데, 그 사례로 영화 <파프롬 헤븐>에서 백인 집주인 여성은 흑인 정원사 남성이나 흑인 가정부 여성에게 존대를 하지만, 백인 집주인 남성은 정원사와 종업원을 비롯한 누구에게나 하대를 하는 것으로 더빙됐다.

‘외화다시보기모임’ 회원들은 이 같은 외화더빙 모니터링을 통해, “원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대와 하대가 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차별적인지 알 수 있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또한 “성차별적 의식에 기반한 번역”이 성차별 의식을 더욱 확산시키고, 우리 사회에 차별적인 언어사용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Copyrights ⓒ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윤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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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16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모래시계가 방영되던 십여 년 전에는 박상원이 아내 조민수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이 어색하다며 남편은 반말을 하게 둬야 했다는 기고가 올라왔었던 기억이 난다. 허헛..;;;

마노아 2006-11-1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서로 존댓말 쓰는 부부가 종종 보여요. 저의 지인은 서로 존댓말 쓰는데 남 앞에서는 서로 반말해요^^;;;; 남 앞에서 존댓말 쓰기 어색하다면서요^^;;

marine 2006-11-17 0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진짜 그런 기고가 있었어요? 황당 그 자체네요
존댓말 반말에 민감해지지 않으려고 해도 모르는 사람에게 반말 들으면 정말 신경질이 확 올라와요 번역해 놓은 거 볼 때도 마찬가지구요

마노아 2006-11-17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때 어느 신문에서 '옥의 티'라는 말투로 지적하더라구요. 전 나이 많다고 상의(?)없이 먼저 반말 쓰면 그것도 기분 별로더라구요. 서로가 성인인데 말예요. ㅡ.ㅡ;;

딸기 2006-11-17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택시 타면 기사아저씨가 반말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도 내가 손님이고 성인인데
언제 봤다고, 다만 여자라고 반말을.... 내가 30대 남성이었으면 반말 안 했겠지요.

마노아 2006-11-1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런 경우도 있죠. 학생들도 남자 선생님은 일단 기세에 눌리고 들어가는데 여샘은 좀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