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국회에 계류된 지 2년 만인 30일 본회의를 통과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기간제(계약직) 노동자의 고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이들 법안으로 85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규모나 고용불안이 개선될지는 의문이며, 파견법의 경우 오히려 개악됐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기업들은 아무런 규제 없이 해마다 계약을 반복하며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를 쓸 수 있었다. 내년 7월에 비정규직 관련 법이 시행되면, 최대 2년까지만 고용할 수 있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이 안은 6개월, 1년, 1년 11개월 등 기간의 계약직을 사람만 달리해 같은 업무에 반복 고용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또 정규직 전환에 부담을 느낀 기업이 2년 안에 비정규직들을 무더기로 해고할 가능성도 높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사유가 있을 때만 비정규직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유 제한’을 비정규 보호 방안으로 주장했었다.
파견허용 업종은 현행 26개 업무를 유지하기로 했다. 애초 정부는 ‘파견업종 전면 확대’를 법안에 담았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의 강력 반발로 무산됐다. 파견노동자의 경우 2년 이상 초과해 근무하면 사용사업주(원청고용주)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보다 약화된 조항이다. ‘고용의제’는 법률적으로 이미 고용계약 관계가 맺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강력한 규제 장치인 데 반해, ‘고용의무’는 사업주가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과태료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무허가 파견이나 도급을 위장한 파견 등 불법파견 노동자도 2년의 고용기간이 지났을 때만 사용사업주가 고용의무를 갖게 된다. 다만 건설, 의료, 유해·위험 업무 등 파견 절대금지 업무에 파견된 노동자는 기간에 상관없이 즉시 ‘고용의무’를 적용받게 된다. 사업주가 이를 어기면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아울러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회사 내의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도록 명문화한 것은 진전된 내용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법에 ‘어디까지를 차별로 볼 것인가’ 하는 기준이 불분명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밖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요구해 차별을 인정받으면, 사업주는 노동위의 시정명령을 따라야 한다. 이를 어기면 최고 1억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된다. 차별 시정을 요구한 노동자에게 보복 조처를 한 때는 2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법안은 이 조항을 일률 적용하면 중소기업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상시고용 300명 이상’ 기업과 공공부문은 내년 7월부터 시행하되 ‘100~299명 기업’은 2008년 7월부터, 100인 미만 기업은 2009년 7월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노동부는 비정규직 법안 법제화가 완료되는 대로 △차별시정위원회 설치 △파견 허용 업종 정비 등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하위법령 제정 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실제 비정규직 법안 통과 뒤 정부와 경영계, 한국노총 등은 오랜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한국노총은 “2년 가까이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가 30만명이나 늘어나는 등 심각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며 “미흡하나마 법안이 통과된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만 비정규직 고용을 허용하는 ‘기간제 노동자 사용 사유 제한’ 조항 등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번 법안은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비정규직을 합법화하고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맹비판했다.
아울러 이번 법안의 통과는 지난 9월 ‘노사관계 로드맵’, 이날 발표된 ‘노사발전재단 설립’과 함께, 노사정 관계가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계속 굴러갈 가능성도 보여줬다.
김소연 이정애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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