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하여

몸짱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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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13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깨가 떡 벌어졌구만. 오늘의 유머 펌

짱꿀라 2006-12-1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둘기가 건강해 보이는구면요. 몸짱 정말 굿이네요. 헤헤~~~~

마노아 2006-12-14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라클레스 비둘기예요^^ㅎㅎㅎ

프레이야 2006-12-14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징그러워요 ㅜㅜ 발도 무지 무서워요.

마노아 2006-12-14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발톱이...ㅠ.ㅠ 정말 무서운 비둘기.;;; 예요.ㅠ.ㅠ
 

비타민C를 불로초로 믿었던 사나이 [제 536 호/2006-12-13]
‘노르웨이에서 온 해괴한 모욕’

1954년 화학결합의 이론을 정립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응용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라이너스 폴링(1901~1994)이 1962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전한 미국 ‘라이프’지의 기사 제목이다. 당시까지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은 마리 퀴리에 이어 그가 두 번째다. 그만큼 폴링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미국에게 커다란 영광이었으나 미국 정부와 언론은 폴링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도대체 폴링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그의 첫 번째 노벨상은 당연히 그의 연구업적으로 받았다. 그는 1920년대 말 완성되고 있던 새로운 양자역학의 개념을 활용해 원자 오비탈의 혼성화(hybridization)와 공명(resonance) 등 화학결합의 핵심적인 개념을 정리했다. 예를 들어 탄소 원자가 가지고 있는 4개의 원자가 전자는 둥근 모양의 2s 오비탈에 2개가 들어가고, x와 y쪽을 향한 아령 모양의 2px와 2py 오비탈에 각각 1개씩 전자가 들어간다.

이때 만약 에너지가 낮은 2s오비탈의 전자 중 하나가 에너지가 높은 2pz 오비탈로 올라가면 2s, 2px, 2py, 2pz 오비탈에 각각 1개씩의 전자가 들어가는 상태가 된다. 그 결과 이들 4개의 오비탈들은 서로 수학적으로 혼합돼 새로운 4개의 ‘혼성 오비탈’을 형성한다는 것이 폴링의 생각이다. 이를 ‘sp3 혼성 오비탈’이라 부른다. 이 개념을 사용하면 유기화합물과 전이금속 화합물의 모양을 매우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에게 주어진 노벨 화학상도 이 공로가 인정된 결과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노벨상은 반전․반핵 평화운동으로 받았다. 1950년대 폴링은 연구활동 뿐 아니라 세계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핵실험을 제한하자는 청원운동을 벌였다. 이런 노력은 1963년 8월 5일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부분 핵실험 금지 조약’ 체결로 이어졌고, 노르웨이의 노벨 평화상 위원회는 이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반면 미국 정부는 폴링의 이런 노력이 미국의 국익을 침해한다고 생각했다. 냉전시대 소련과 군비경쟁을 하던 미국으로선 반전․반핵 평화운동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국 정부의 냉담함은 폴링을 매우 힘들게 했다. 1952년 영국 왕립학회가 주관하는 DNA 관련 심포지엄의 연사로 그는 초청받았지만 미국 국무부는 여권 발급을 거부했다. 만일 폴링이 이 심포지엄에 참석해 왓슨과 크릭처럼 럿셀과 프랭클린이 제출한 DNA의 X선 사진을 보았다면 그가 DNA 구조를 먼저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1990년의 한 인터뷰에서 폴링은 왓슨과 크릭이 DNA구조를 해명한 방법이 오래 전에 자신이 단백질의 알파 나선형 구조를 밝힐 때 사용한 바로 그 방법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애석히 여겼다.

이후 폴링은 2년 이상 국제학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심지어 1954년 폴링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을 때도 국무부는 폴링을 수상식에 참석토록 허락할 것인지에 관해 논란을 벌인 끝에 여권을 발급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폴링은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평화운동에 참여했다. 1957년부터 폴링은 아내인 아바 폴링과 함께 대기 중 핵실험 금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또 강연을 통해 대기 중 핵실험이 수백만의 생명을 방사능에 노출시킨다며 대중을 설득했다. 이 운동으로 1958년 미국인 2000여명을 포함, 49개국 1만1000여명의 과학자가 서명한 청원서가 만들어졌다. 폴링은 이것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출했다.

이처럼 굽힐 줄 모르는 폴링의 신념은 서서히 사람들을 움직였다. 1962년 폴링은 미국 정부가 핵실험을 재개한 것에 항의해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바로 그날 저녁에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초대한 노벨 수상자와의 만찬에 참여해야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다행스럽게 이날 폴링을 초청한 케네디 대통령은 그를 비난하는 대신 자신의 의견을 계속해서 표현하라며 그를 격려했다.

마침내 1963년 8월 5일 미국과 소련은 모스크바에서 대기권 내, 우주공간 및 수중에서 핵무기 실험을 금지하는 조약을 체결했고, 이 조약은 그 해 10월 미국, 영국, 소련의 비준에 의해 발효됐다. 비록 지하 핵실험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고, 위반사항에 대한 사찰을 명시하지 않은 제한된 의미의 조약이었지만, 이는 핵무기의 규제에 관한 최초의 국제협정이었으며 폴링의 지속적인 투쟁의 결실이었다.

정부의 정치적 압력, 연구비 지급 중단의 위협, 다른 과학자들의 질시, 정부에 맞서는 매국노라는 낙인, 나아가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대중의 비난은 과학자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시련이었다. 그럼에도 폴링은 꿋꿋이 견뎌냈다. 훗날 폴링은 “내가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나를 지탱해준 것은 나를 존경의 눈길로 보던 아내였다”며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그의 아내를 꼽았다. 그에게 아내인 아바 폴링은 자신의 내조자이자 평화운동의 실질적인 동료였던 것이다.

평소 놀라운 기억력과 상상력으로 유명했던 폴링은 논리적인 접근보다 자신의 타고난 직감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문제 해결 방법을 “가정을 이용해 진실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확률론적 방법’이라고 불렀으나 때로는 그의 주장이 너무 자신의 영감에만 의존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말년에는 확실한 근거도 없이 비타민C가 감기와 암에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며 매일 엄청난 양의 비타민C를 복용했다고 한다. (글 : 서금영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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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현실문화 / 2006년 1월
절판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어른들은 모른다. 아이들이 사실은 너무나 슬퍼서 그냥, 하늘과 바람과 달 같은 것에 '행복해 해버린다'는 것을. 강원도의 아람이나, 충청도의, 전라도의, 경상도의, 이 나라 농촌과 섬에 사는 수많은 아람이들이 사실은 너무나 슬퍼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냥, 너무나 작은 것들을 가지고 행복해 해버리지 않고 진정으로으로 명실상부하게 행복해 할 날은 언제 올까.-31쪽

아이는 그런 와중에 끝없이 엄마 저어 오네에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서 '엄마 저어 오네에'하고서 우는 아이들은 지금 끝없이 '개인적으로' 불행할 뿐이다. 그리하여 이 나라는 지금 그런 아이들을 ㅂ고서 끝없이 '개인적으로 가슴 아파'하면 그만인 사회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33쪽

농촌이 변했다고 한탄하는 자들을 보았다. 저희들은 변하고 변하고 하루에도 골백번은 더 변하면서 농촌은 그대로 있으라고, 어떻게 농촌 인심이 그러냐고, 어떻게 농촌 풍경이 그러냐고 하는 자들. 자기들은 고추 한 그루 키워본 적 없으면서, 농촌에 놀러가 아무 밭에나 들어가 툭툭 고춧대 분질러 가며 고추 따가는 사람들. 고추는 따 가도 좋으나 고춧대는 분지르지 말라는 농부의 말에, 그가 그랬다. 농촌 인심 한번 고약하다고. 고약한 것이 누군데, 도리어 적반하장이다. 농촌은 그리하여 이 시대의 죄 없는 죄인이 되었다.-62쪽

손씨는 장애인문제의 열쇠는 그들에게 없는 능력을 억지로 짜내어 적응하고 자활하도록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는 지원이라고 말한다. 장애의 종류에 따라서 부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전반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100쪽

1987년 6월 10일.
전 국민의 함성이 거리를 뒤덮었다. .....
....
그때 우리는 누구도 서로에게 타인이지 않았다. 아무도 스스로를 '나'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그저 '우리'임을 확인했다. 대열 밖에서, 물주전자를 들고 울산 주리원 백화점 앞거리를 달리던 노점상 아저씨도, 하이힐 위태롭던 각선미의 여인도 모두 '우리'였다.
......................
아스팔트는 기억할까.
18년 전 모두 하나가 되자며 어깨를 걸고 내달렸던 발자국의 주인들을. 현대자동차 로고 선명한 작업복들을 기억할까.
18년 전 관리직과 생산직이 다르게 받아들어야 했던 차별받은 식판을.
정규직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을까. 다르게 입혀진 비정규직의 저 차별받은 작업복을.-127-128쪽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내일이다.-130쪽

거짓말쟁이 세상은 다시 가르친다. 눈을 낮춰라, 그래서 공대 졸업생이 직업전문학교에 다시 입학한다. 그러나 정부산하 기관인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의 그 직업 전문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도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비정규직이다.
-145쪽

사람들의 삶을 온통 임시적인 상태로 만들어놓고 사회의 안정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고용을 더욱 유연화해야 한다는 궤변만이 계속되고 있다. '근로복지'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의 비정규직 노동자 이용석 씨의 죽음은 희극이 된 우리 시대의 비극을 상징하고 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살아있는 자들의 찢긴 일상 위에 건설하려는 발전된 나라는 도대체 어떤 모양의 것일까.-147쪽

그들, 피부색이 다른 그들은 두 개의 문을 나서야 한다.
우선,
그들은 출입국관리소에 자진 출두해 자신이 난민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관문인데 매우 좁다.
법무부로부터 난민 판정을 받더라도 또 하나의 문을 열어야 한다. 취업이다.
그들에게 두 개의 문은 벽이다.-174쪽

한국은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난민을 인정해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2000년까지 단 한 명도 수용하지 않았다. 2001년 2월 에티오피아 출신 1명, 콩고 출신 1명에게 난민 지위를 준 것이 처음이다. 난민 신청은 당사자에게 일생일대의 결단이다. 난민 신청을 하는 이국인들은 대부분 불법체류자이어서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수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또 스스로 난민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당사자의 진술말고는 특별한 증거가 없을 때가 많다. -190쪽

외국인정책에 관한 한 한국은 아직 폐쇄적이다. 이주노동자와 난민이 한국의 개방성을 가늠할 수 있는 예민한 리트머스 시험지다. 출구만 활짝 열어놓고, 입구는 막아버린다면, 한국이 그토록 외치는 세계화는 불구적 세계화다. 미성숙한, 배타적인 세계화다. 국경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니다. 국경은 출입구로 바뀌어야 한다. -191쪽

그들에게 노동은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그 일의 성격이 남자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는 주어진 일이 비교적 분명하고 명분 있어 ㅂ이는 반면, 촌여자에게 노동은 그 경계가 불분명하고 명분을 따지는 면에서도 남자에 견줘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남자가 궂은 일 마다 않고 일하면 먹고 살려고 애쓴다는 말을 듣기 쉬워도, 여자가 그렇게 하면 서방 잘못 만나 팔자 사납다는 말을 듣거나, 너무 억척스럽지 않느냐는 가당찮은 말을 듣기 쉬운 현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206쪽

나는 이 나라 '옛날 부모'들의 양식이란, 다름 아닌,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임을 알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서양에서 말해지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아니던가. 서양에서야 가진 자들에게나 요구되는 그 정신을 우리나라는 이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여기고 있었지 않은가. 말 그대로, 사람이니까. 아무리 큰 부잣집이어도 흉년에 곳간 문 열지 않는 부잣집은 공동체 내에서 사람다운 사람의 집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아무리 잘 배운 사람이라도 자기보다 못 배운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을 배운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힘이 센 놈이 힘 약한 놈을 괴롭히면 그는 이미 '사람 새끼'가 아니었다. -235쪽

요즘 아버지들은 자식에게 카드 주며 '인생을 즐기라'고 가르치는지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쳤던 것이 아닌가. 힘 약한 사람 괴롭히지 마라, 서로서로 돕고 살아라. 사람 간에 흐르는 정, 인정이야말로 전쟁과 가난으로 점철된 험난한 세월을 살아내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일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보다 가난하다 싶으면, 나보다 약하다 싶으면, 나보다 못났다 싶으면 일단 아래로 보고야 마는 저 철면피를 우리는 어디서 누구한테 배워왔단 말인가. 요체는 언제나 '빨리빨리' 요 빨리빨리의 숨은 뜻은 경제발전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돈' 뿐이었던 세월이 가난한 사람, 장애인, 힘없는 사람들을 내쳐놓고 나 몰라라 하는 '후안무치'를 가르쳤던 것일까.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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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한꺼번에 너무 많은 영화를 보는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럽다. 런닝타임이 너무 길면 세시간에 걸쳐서 보아야 하거나, 다음 시간 이어서 보라고 하고 나만 못 보고 나오기 때문에, 비교적 짧게 끝나는 애니를 골랐다.  M님의 강력 추천으로 고른 작품은 "별의 목소리"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성우와 음악 빼고는 모두 혼자 작업했다고 놀라워 한 감독인데, 별의 목소리는 분량이 아주 짧다.  25분 정도?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미래의 시간.  우주를 항해할 수 있는 기술을 이미 가진 상태다.  미카코와 노보루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  그런데 미카코가 국제 연합군의 선발 멤버로 선발되고 목성으로 떠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진다.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휴대폰의 메시지이지만, 너무나 먼 거리로 인해 미카코가 보낸 메시지는 일년이 지나서 도착하는 수준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그리워 하지만 물리적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이제 다시 기지를 출발하는 미카코는 도착하는 데에 8년이 걸리는 메시지를 보내고, 그 메시지는 8년이 지난 뒤 지구에 있는 노보루에게 도착한다. 24살이 된 노보루에게, 열 다섯의 미카코가...

그 메시지가, 참 아련하게 들렸다.  기약할 수 없는 만남, 도착한다는 확신도 없이 보낼 수밖에 없는 외로움과 그리움. 

고운 영상과 애틋하게 남는 메시지들, 짧은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감동적인 작품이었는데....

다 끝나고 보니 학생들이 모두 자고 있었다..ㅠ.ㅠ 이봐... 고작 25분이었다고...

워낙 산만한 상태에서 보았던지라 한 번 더 보고 리뷰를 올릴 생각이었는데.... 오늘 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때문에 모아서 페이퍼로 쓴다. ^^;;;

핑계를 대자면, 주변에서 자꾸 말 시켜서 대사를 이어서 보지 못하고, 너무너무 시끄러워서 집중도 못하고, 나 자신이 너무 졸려서 자꾸 졸고...ㅠ.ㅠ

흑흑... 그래서 다 보고도 무슨 내용인지를 잘 모르겠더란 말씀....;;;;;

게다가 그림이 비슷하네... 해놓았지만 정작 같은 감독이라는 걸 알고 화들짝 놀라버림...;;;;

제대로 감상한 것은 작품에 나오는 바이올린 연주와 엔딩에 나온 노래.

노래 정말 좋았는데... 작품에 대해서 할 말이 별로 없다.  이런 송구한 일이 있나...ㆀ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아니 깨어날 수 없는 사유리를 보며 유시진의 '마니'가 떠올랐다.

꿈이 없는 잠, 잠이 없는 꿈...? 아무튼 이 비슷한 소제목이 있었는데...

그나저나 '분단'  '연합국' 이런 단어들은 몹시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그러나 생각을 이어갈 단서가 내게 너무 없다.  대체 뭘 본 거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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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2-13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보다는 별의 목소리 평가가 더 좋았다죠..
그리고 별의 목소리 안에는 신카이 마코토의 처녀작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라는 단편도 들어있답니다..^^

마노아 2006-12-13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5분도 안 되는데 참 좋더라구요. 흑백화면도 그렇고 나래이션도 좋구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단편에 매우 강한 것 같아요. ^^
 

올해 3일 연휴 네 번 있었던 것과 비교돼…추석 5일 그나마 '위안'

내년 달력엔 연휴가 없네한 해가 저물어가면서 내년 달력을 뒤적이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지만 올해와 달리 줄어든 연휴로 적지 않게 실망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주말 앞·뒷날과 공휴일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주말이 낀 1월 설 연휴(28~30일)를 제외하고도 5월 5~7일(5일 어린이날 금요일), 7월 15~17일(17일 제헌절 월요일), 12월 23~25일(25일 성탄절 월요일) 등 3일 연휴가 네 번이나 있었다.

특히 추석의 경우 주말과 샌드위치 공휴일, 추석 연휴 등이 겹치면서 공무원과 대기업의 직장인들은 9월 30일~10월 8일 최장 9일의 연휴를 맞아 이 기간 해외여행 노선이 동나는 등 여름 휴가에 버금가는 황금 연휴를 보내기도 했다.

반면 내년에는 3일 연휴가 2월 설 연휴(17~19일) 단 한번에 불과하다. 이후 8월까지는 국경일이 주중에 끼인 탓에 3일 연휴가 전혀 없어 직장인들은 '인내의 행군'을 겪어야 한다.

다소 위안거리라면 올해 추석 황금 연휴에는 못 미치지만 추석 연휴 3일이 주말과 이어지면서 9월에 5일의 연휴(22~26일)가 생긴다는 점이다.

회사원 김모(34) 씨는 "건강보험료 요율이 내년에 6.5% 인상되는 등 지갑은 점점 얇아지는데 직장 생활의 희망인 연휴는 줄어 의욕이 조금 떨어진다"고 푸념했다.

국제신문 배성재 기자 passion@kookje.co.kr /노컷뉴스 제휴사

*위 기사에 대한 모든 법적 권한 및 책임은 국제신문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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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누가 페이퍼 안쓰나 했더니 님께서 쓰셨군요.
저는 넘 좋아요.
살림하는 아줌마는 명절 연휴 길면 죽음이거든요.

마노아 2006-12-13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누군가에게는 펑펑 노는 날이 되기도 하지만 일하는 사람은 너무 힘들잖아요.
전 아르바이트 할 때 명절 제일 싫었어요. 남들 놀 때 일하는 거 서럽잖아요^^;;;

비로그인 2006-12-13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르바이트할때도 싫겠군요.
저도 제 생각만 했네요.
저는 시댁에서 나오면 그 길로 해방인데 명절내내 식당이나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말 힘들것같네요.

마노아 2006-12-13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직장인들은 가끔 그런 휴식을 바라면서 힘을 얻고 하니까..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짱꿀라 2006-12-13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사람들 북적 거릴 때가 낫지 않나 싶네요. 올 설날은 휴가가 짧아서 별로 놀지 못한다는게 저는 마음이 아프네요.

마노아 2006-12-14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12년 동안인가 휴일이 계속 주말에 낀다면서요^^;;; 저주받은 휴일이라고 작년에 말들 많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