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의 전설
미하엘 엔데 지음, 비네테 슈뢰더 그림,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만세를 부른 책!  일단 미하엘 엔데의 이름만 듣고도 호감 백배지만, 그림을 펼쳐드니 그의 환상 문학에 딱 걸맞을 분위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직 세상에 천사와 악마가 있다고 믿던 때의 이야기라고 책은 시작을 알린다.  애인의 배신과 아버지의 파산으로 세상에 회의를 품게 된 젊은이는 성스런 책들을 공부하며 진리를 찾기 위해 열중하지만, '자신의 모든 책이 지푸라기처럼 덧없는 것'이라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글을 읽고는, 책을 덮고 모든 것을 뒤로 한 뒤 떠나버린다.  그후 어느 외딴 골짜기에서 영원을 구하는데 전념하는데 어느 날 꿈에서 불 소용돌이 가운데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곳에 머물라!  내가 여기서 너를 만나고 싶으니라."

젊은이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며 영원을 탐구한다.  그의 육신은 노쇠해졌지만 그는 더욱 성스러운 사람이 되어간다.  그곳에, 또 다른 사내가 하나 들어온다.  세상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던 사내는 도둑으로서 거친, 그리고 죄악에 쩔은 삶을 살아온 이다.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동굴 안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나게 된다.  성자의 무수한 노력 끝에도 거친 사내는 죄를 회개할 줄 몰랐고, 경건한 삶과도 여전히 멀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입장은 극적으로 역전된다.  지난 날의 꿈을 기억하며 성자는 보름달 밤에는 동굴 가까이 오지 말라고 사내를 내쳤고, 사내는 순종으로 이를 지켜낸다.  그러나, 성스러운 자에게만 성스러운 이가 보인다고 강변한 성자를, 점차 동물들이 멀리하는 것을 보며, 또 그에게서 신경질적인.. 전에 보지 못한 모습들을 보며 사내는 약속을 깨고 보름달 밤에 성자를 지켜본다.

성자는 그리폰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나타난 대천사 가브리엘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사내는 천사를 향해 화살을 날리고, 그가 쏘아 죽인 것은 한 마리 오소리에 불과했음을 두 사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성자는, 자신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함을, 그리고 사내로부터 크게 배웠음을 인정한다.

다분히 종교적으로도 읽히는 내용이지만, 그저 우리의 인생에 비추어 철학적으로 상기해 보아도 충분히 이해가 될 법한 이야기 구조였다.  몇 번이나 곱씹을 내용과 적저재적속에 알맞게 그려진 그림들은 이 책을 평범한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림의 색조라든가 분위기는 미하엘 엔데의 글만큼이나 몽환적이고 아득한 전설을 떠올리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세부 묘사는 몹시 사실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옮긴이의 말처럼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것이 그림책이라면,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러나 그림책을 아이들이나 읽는 책으로 생각한다면, 이 책은 그림책이 아니다."  그 말에 나 역시 공감한다. 성자의 깨달음을 속된 죄인이었던 사내의 변화를 깊이 새겨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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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9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하엘 엔데의 책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묻어나죠.
리뷰 잘 읽었어요.

마노아 2006-12-19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하엘 엔데의 그 신비한 분위기는 마력인 것 같아요. 엄청 매력적이죠. 감사해요^^

짱꿀라 2006-12-20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작년인가 읽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종교적 색채가 그리 진하게 배어 나오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제 기억으로는 한 사내의 삶의 변화가 아닌가로 기억을 하고 있는데 맞나 잘 모르겠네요.

마노아 2006-12-20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묘하게 비켜나가죠. 기인것 같으면서도 아닌 듯... 그 솜씨도 참 유려해요. ^^
 
타샤의 정원 - 버몬트 숲속에서 만난 비밀의 화원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출간되었을 때 꽤 관심을 가졌던 책이다.  도서관에 신청하고 기다리는 동안 몹시 기대했었는데 드디어 보게 되었다.

난 이 책의 이미지를 보고는 판형이 꽤 클 거라고 짐작했는데 뜻밖에도 표준 사이즈다.  사진이 많이 담겨 있어서 으레 클 거라고 짐작했던 것 같다.  A6 정도 크기라지만 사진을, 그녀의 정원을 있는 껏 자랑하는 데에 지면은 결코 작지 않다.

타샤는 독특한 사람이다.  30만 평이나 되는 정원을 손수 가꾸며 스스로도 1830년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믿고 있는 그녀는 21세기의 우리 눈에는 몹시 이질적으로 비쳐진다.

노동을 통한 정원 가꾸기를 신성시 하고, 맨발로 땅을 밟으며, 드레스에 가까운 고전적인 옷들을 실부터 직접 만들어서 옷감을 짜내고 그 다음에 옷을 짓는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도 1800년대의 집의 꼴을 갖추고 있다.  그 안에 있는 식기며 가구도 골동품 그 자체다.

그녀는 단순히 시간 많고 여유만만한 귀부인 같은 사람은 아니다.  삽화를 그려서 동화책을 만들고 그의 성공을 빌어 지금의 정원을 가꾸게 된 그녀는 그저 지혜로운 농부에 가까울 뿐이다.

이 책은, 타샤의 정원을 통해서 친구가 된 토바 마틴이 에세이처럼 지은 글이고, 사진은 리처드 브라운이 찍었다.  물론,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타샤와 그녀의 아름다운 정원이다.

아마도 원예를 좋아하는 울 어무이께서 타샤의 정원을 보게 된다면 비명을 지를 지도 모르겠다.  환상적인 곳이라고.

나는, 꽃이 아름답다고 여기지만, 그에 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타샤의 그림같은 정원은 진짜 '그림'보다도 내게 감명을 주지 못했다.  속단하는 것은 월권이지만, 나는 그녀의 정원이 지독히 고집스러운 자기만의 울타리로 보인다.

지극히 자유스럽게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엄격함이 숨어 있고, 원칙에 갇힌 갑갑함이 느껴진다.  그 안에 나무가 있고 꽃이 있고 흙이 있는데, 사람은 있는 걸까.. 나는 생각했다.  물론, 그녀는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부러워마지 않는 그런 삶을 사는 듯 보이는데, 나는 거기서 '안빈낙도'적 분위기는 읽지 못하겠다. 그녀가 그런 분위기를 내게 보여주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또, 내가 못 읽었다는 게 더 맞을 테지만.

지금,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도 읽고 있다.  타샤의 정원보다는 더 인간미가 넘쳐 보인다.  연이어 읽어서 맛이 더 떨어질까 저어했는데, 오히려 양념을 더 친 기분이다.  찍고 싶은 사진도 타샤의 정원보다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에 더 많아 보인다.  내가 심통을 부리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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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말고 행복한 사람,타샤 튜더 읽고 싶어지네요.
거기에도 그림 많아요?

마노아 2006-12-19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림 많아요. 저도 그 책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치유 2006-12-22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통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살수 있을까...생각하신것은 아닐런지요..
전 그랬거든요..어쩜 이렇게 늙어갈수 있는지...전 스케치를 보면서 참 부러웠어요..
우리 딸은 이 행복한 사람,타샤투더에 나오는 스케치는 다 따라서 그려보더구만요..
전 아직도 정원은 못 읽었답니다..

마노아 2006-12-22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이 이혼을 하셨잖아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 짐작에 이런 사람 곁에선 남편분이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짐작했어요. 김영갑씨가 결혼 않고 혼자 살았던 것처럼 너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 곁에선 다른 사람이 끼어들 자리가 없을 거라 여겼어요. 그림처럼 아름답고 멋지게 살고 있는 듯 보이는데 저는 숨이 막혔어요. 제가 심적으로 가장 안 좋을 때 읽어서 그럴 수도 있구요. 아마 좀 더 완숙해지면 저도 배꽃님처럼 타샤의 삶을 부러워할 지도 모르겠어요. ^^

마노아 2006-12-2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보슬비님~ 체코에 계신 분 맞나요? 알라딘 어느 이벤트에서 그렇게 본 것 같아요. 보슬비님도 해피 크리스마스~입니다^^
타샤튜더는 아흔이 넘는 나이까지 꼿꼿하게 자기 안의 성을 지키면서 살았는데 놀랍고 무섭고 그래요. 너무 견고해서 들여다보는 것도 맘이 편치 않았지 뭐예요. ^^;;;;
 

▲손발을 따뜻한 물에 담근다. 계속 차가운 물건을 취급하는 작 업을 한다면 자주 따뜻한 물에 담가야 혈관이 풀린다.

▲팔을 쭉 편 채 360도 계속 돌리면 피가 손 끝으로 몰려 혈관의 수축이 감소된다.

▲뜨거운 차를 마신다. 수은주가 떨어질 때는 뜨거운 차가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그 속의 설탕이 에너지원으로 이용된다.

▲헐렁하게 여러 겹의 옷을 입는다. 여러 겹의 옷을 입어 체온을 유지하는데 제일 안쪽에는 면으로 된 옷을 입는 것이 좋다.

▲매서운 추위에는 모자를 쓴다. 체온의 55%가 머리를 통해 방출 되므로 모자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벙어리 장갑을 착용한다. 손가락 장갑보다 열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추운 날에는 쑥찜손난로를 사용한다.

▲운전대에 덮개를 씌워 손을 따뜻하게 한다.

▲침대를 따뜻하게 한다. 대사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좋고, 양말 을 신고 자는 것이 좋다.

▲차가운 음식을 다룰 때나 냉장고 안을 뒤질 때는 장갑을 사용 하는 것이 좋고 차가운 컵을 잡을 때도 냅킨을 사용한다.

▲차가운 타일 위에 깔개를 깐다. 오래 서 있는 곳에는 깔개나 전기장판을 까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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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1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수면양말을 애용한다. 손가락 장갑 사용하는데 벙어리 장갑을 찾아봐야겠다. 왼손은 그럭저럭 버틸 만한데 오른손이 너무 차다. 아니 왜 둘이 다르지? ㅡ.ㅡ;;;

비로그인 2006-12-1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면 양말이 따로 있나요?
그런데 왼손과 오른손이 왜 온도차가 날까요?
병원가보셔야 하는거 아녜요?

마노아 2006-12-1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이 아주 보드랍고 가벼워요. 그리고 발목을 조이지 않아 착용감이 없거든요. 잘 때 신고 자도 하나도 안 불편해요^^
오른손이 더 찬 것은 아무스를 사용할 때 항상 책상 위로 올라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직장도 춥고, 집도 춥다는 얘기죠..ㅠ.ㅠ

비로그인 2006-12-19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른손만 결혼식때 끼는 얇은 면장갑을 끼고 지내면 안되나요?

물만두 2006-12-1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손발차가운 사람이 마음은 따뜻하다는 말을 생각하며 살아요^^;;;

실비 2006-12-19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집에 있으면 손발이 차서.. ㅠ 퍼가요~^^

마노아 2006-12-1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것도 하나의 방법 같아요. 오늘부터 써먹어야겠어요^^
물만두님, 그렇게 생각하니 위안이 되어요.T^T
실비님, 님도 같은 고민을...ㅠ.ㅠ

뽀송이 2006-12-19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손발이 거의...얼음잔에 가까워요!!
그래서...
겨울에는 되도록... 사람들과 손도 잘 잡지 않아요~(__);;;

마노아 2006-12-1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남의 손으로 제 손을 녹여요. 남들은 차갑다고 싫어하죠^^;;;
 

[오마이뉴스 강성관 기자] 매년 입시철이면 각 고등학교 교문에 등장하는 특정대학 합격 축하 현수막. 소위 '명문대학'에 몇 명이 합격했다거나 광주전남지역 최다 합격이라는 문구가 주 내용이다.

특정대학 합격을 얼마나 시켰느냐가 해당 고등학교로서는 자랑거리인 셈. 사실상 명문고라고 선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광주지역 학부모, 학생단체들이 '특정대학 합격 현수막을 반대하는 모임'을 결성하고 현수막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광주인권운동센터·참교육학부모회광주지부·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광주모임·학벌없는사회학생모임이 주축이 돼 최근 반대모임을 결성했다.

반대모임은 18일 성명을 통해 "입시학원에서야 교육이념과 상관없이 영리만을 목적으로 현수막과 전광판 등을 내세워 자랑을 한다지만 공교육 현장인 학교에서마저 이러헌 현수막을 내거는 것은 입시학원화하겠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반대모임은 "과연 이 현수막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학벌이나 점수에 상관없이 특기와 적성에 맞게 과를 선택한 학생들에게 상대적 패배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이 패배감은 성적에 대한 좌절감 그리고 자살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더 이상 억울한 희생양이 생겨선 안된다"며 특정대학 합격 축하 현수막 철거를 요구했다.

반대모임은 ▲해당 학교의 현수막 즉각 철거 ▲시교육청의 일선학교에 대한 철거 지시 등을 요구하고 "12월 31일까지 요구가 받아들여 지지 않을 경우 시교육청 규탄 집회와 해당학교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광주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형준씨는 "현수막을 보고 의식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학생들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소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러한 현수막을 내거는 것이 평소에 학교가 입시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학생들이 중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반대모임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수시 모집보다는 정시모집 때 더 많은 현수막이 내걸릴 것"이라며 "학교별 현황을 조사해 해당 학교에 현수막 철거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게릴라들의 뉴스연대 -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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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도 학교 열자’ 공부하고 밥도 먹게!
[한겨레 2006-12-18 20:21]    

[한겨레] 제때 챙겨주는 사람 없어 영양부실 더 문제
급식 절반이상 식권 배급…‘가난 악화’ 최악
‘학교 개방’ 꺼리는 교장들 참여대책 세워야

지난 15일 서울 행당동의 한 공부방에서 만난 김빛나(13·가명)양은 초등학교 6학년, 또래보다 키가 작았다. “키로 치면 우리반에서 제가 앞에서 2번쯤 될 것”이라고 김양은 얘기했다.

김양의 아빠는 술에 젖어 산다. 오토바이로 배달일을 하는데, 술을 하도 많이 마셔 2~3일만에 일자리에서 쫓겨나기 일쑤다. 얼마 전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몸져 누웠다. 엄마는 그런 아빠가 보기 싫어 가출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빠가 차려주는 밥상은 불규칙하고, “늘 맛 없고 별 게 없는 반찬만” 오른다. 공부방에서 먹는 한 끼가 하루 중 가장 든든한 한 끼다. 이날 공부방에선 오삼불고기와 김치, 어묵국, 감자튀김, 방울토마토가 반찬으로 나왔다. 김양은 꼭꼭 씹어가며 한 그릇을 쓱싹 비웠다. “먹을만큼만 퍼야 해요. 골라 먹어도 안돼요. 안 그러면 선생님께 혼나거든요.” 김양은 이곳 식탁에서 영양분만 얻어가는 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처럼 식사예절도 배워간다.

■ ‘결식아동’의 정의를 바꿔라= 보건복지부는 올해 겨울방학 결식아동 지원 대상을 24만명으로 잡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학기중 급식지원 학생수 52만6천명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친다. 복지부 아동복지팀 신현봉 사무관은 “교육복지 증진 차원에서 급식비 부담 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교육부와 복지부의 급식지원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복지부의 급식지원 기준은 ‘학기 중 지원 대상자’ 가운데 ‘급식지원이 필요한 아동’으로 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방학 중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아동들은 제외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역아동센터 등 현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새날지역아동센터의 최선숙 대표는 “요새 쌀이 없어서 굶는 아동은 그렇게 많지 않다”며 “한부모·조부모 가족 등의 아이들은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밥을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굶거나 영양적으로 불균형한 식사를 할 가능성이 높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지정 여건에 맞지 않아 오히려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할머니랑 둘이 사는 아이의 집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햄과 빵, 날짜 지난 우유, 과자 몇 개만 뒹굴고 있었다”며 “이런 아이들은 굶었다가 먹을 땐 폭식을 하게 되는 식습관 때문에 키는 작지만 몸무게는 더 많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고 얘기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결식아동이나 빈곤아동에 대한 본격적인 현황 조사가 없다. 덕성여대 사회복지학부 정익중 교수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차상위계층을 포함해 학대나 방임 등 여러가지 사유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끼니를 거르거나 먹는다 해도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100만명 가량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식아동을 단순히 언어적 의미로 ‘밥을 굶는 아동’이라고 정의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 방학 때도 학교를 열어라= ‘결식아동=밥을 굶는 아동’이란 정의가 바뀌면 급식지원 방법도 달라지게 된다.

복지부의 ‘아동급식 지원실적’을 보면 일반 음식점(식권·22%)과 식품권(30%) 제공을 통해 급식을 지원하는 것이 절반 이상이다. 특히 서울시 한 자치구의 경우 지원대상 어린이들에게 모두 식권을 제공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식권 등을 통한 급식지원 방식은 한참 예민할 나이의 아이들에게 가난이라는 ‘낙인’을 찍어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아이가 양질의 식사를 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식권 제공을 통한 급식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과 함께 밥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식사를 제공하는 통합적인 접근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결식아동 지원은 아이들의 식사 뿐 아니라 정서까지 보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이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은, ‘공부방’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에 퍼져있는 지역아동센터와 사회복지관이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그 수는 여전히 부족하다. 2006년 9월 현재 지역아동센터와 사회복지센터 등을 통해 급식을 지원받은 아이들은 모두 3만3659명으로 전체 16%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예산확보나 지원 문제 등이 있어 시설을 늘리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인프라인 ‘학교’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정 교수는 “시설이나 규모 면에서 지역아동센터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기관은 학교”라면서 “방학 중에도 학교가 문을 열어 학습 등 복지프로그램과 급식을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방학 중 학교에서 학습과 급식을 연계한 통합 프로그램을 검토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의 배상훈 방과후학교 기획팀장은 “수요자의 선택에 따라 방학중 4시간 정도의 학습 프로그램과 함께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배 팀장은 “식사는 학교장의 선택에 따라 학교 급식을 하거나, 인근 식당과 연계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방학 중 학교를 개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고 발생시 책임이 학교장에게 돌아갈 우려가 있어 학교장들이 참여를 꺼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 교수는 “학교를 활용하는 방안은 효과가 큰만큼 학교장들의 부담이 커지는 게 사실”이라며 “뜻 있는 학교장들의 참여폭을 넓힐 수 있도록 방학 중 학교를 개방하는 교장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관 합동 급식회의를 지속적으로 해왔던 국무조정실은 이달 중 방학중 결식아동 지원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회복지 걸림돌 된 ‘풀뿌리 민주주의’

가난한 지자체 재정분담 못해 예산 못받아
아동 대신 ‘표 가진’ 노인 챙기기 우선하기도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 사업이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된 뒤 사업내용이 악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00년 아동급식 사업을 시작한 이래, 2004년에 겨울방학부터 방학중 중식지원 대상자는 5만6천명에서 25만명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2005년 지자체에 사업이 이관된 뒤인 올해에는 지원 대상자 수가 24만명으로 다시 줄었다.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협의회 서울지부 백종훈 사무국장은 “경제상황이 악화돼 빈곤층은 오히려 늘어나는데 급식지원 대상자가 줄어든다는 게 말이되느냐”며 “교육인적자원부의 학기중 급식 대상자 명단을 바탕으로 각 지자체에서 선정하는 방학중 아동급식 지원 대상자는 사실상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등에 한정되기 일쑤”라고 볼멘 소리가 나온다. 지적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보건복지부의 ‘의욕’을 가난한 지방자치단체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자치구의 재정 사정과 상관없이 복지 사업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의 예산 분담률을 일정하게 정해놨는데, 이 때문에 빈곤층이 많은 지자체들은 국가 보조금이 주어진다 해도 사업 할 엄두를 못낸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열린 ‘고령친화모델지역 정책포럼’에 참석한 지자체 단체장들은 “정부가 사회복지 사업비를 획일적인 비율로 분담시키는 것이 문제”라며 “정부가 재정상황에 따라 분담금 비율을 조정하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건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일이 현장 방문을 하면서 결식아동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하는 것은 꿈도 못꾸는 형편이 된다.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끼니를 거를 확률이 높은 차상위계층 아이들이나 방임 아동 등은 방학중 급식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특히 수많은 복지 수요 중 아동 복지 문제가 후순위에 놓이는 것은 아동들에게 ‘한 표’ 행사 권리가 없어 자치단체장 등의 관심 영역 밖으로 벗어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서울 행당동 지역아동센터 ‘조이스터디’를 운영하는 신선영(47)씨는 “선출직 단체장들은 표심을 의식하기 때문에 한 표 행사권리가 없는 아동들에 대한 관심은 뒤로 밀리게 마련”이라며 “사회 고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지자체 실시 이후 가장 큰 수혜자는 노인들이 됐다”고 말했다. 덕성여대 사회복지학부 정익중 교수도 “고령화 문제 등에 대한 연구는 증가하고 있지만 빈곤아동, 특히 미취학 아동의 빈곤 실태에 대한 실태조사에는 비용 지원이 잘 안 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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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급식 당번하러가면 안 먹겠다는 아이들 먹이려고 애쓰게 돼요.
이렇게 밥 굶는 아이들에게 그 음식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하는데요.
푸드뱅크로 간다고 하지만 안타까워요.
누구에게는 남아돌고 누구에게는 모자라고.

마노아 2006-12-19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누구는 굶고 있는데 누구는 버리고 있으니 안타깝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