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FTA 가족우화

FTA란 것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합리적인 결정입니다.
경쟁력 없는 거 없애고,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해서
그걸로 세계분업에 동참하자는 말이니까요.

그런 말 뒤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건, 결국 농촌은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망해 없어질 거란 뉘앙스의 안타까움일 겁니다.

국가경제란 측면을 축소해서 가족경제로 환산해보면
이해가 좀더 쉬울 수도 있단 생각인데...
요즘 같은 핵가족 말고, 예전의 대가족을 떠올려보면 더욱 쉽게 이해가 될 듯 하네요.


대가족을 모두 먹여살리기엔 좀 빠듯하여
'자식들 죄다 대학 보내긴 어려우니 좀 싹수 보이는 자식을 대학에 보내자.'
이렇게 결정한 가족이 있었던 거죠.
만약 그 자식이 성공해서 돈도 잘 벌고, 그렇게 해서 다른 동생들도 먹고 살게끔
뒤도 봐주고, 가족들 부쳐 먹으라고 땅도 좀 사주고 그래서
시골에서 농사짓는 가족들도 먹고 살만 해지면 가장 좋은 거고,
그걸 경제학 용어를 빌자면 '분배'란 겁니다.

이때 정부란 집안 어른쯤 되는 거고 잘된 자식은 재벌쯤 되는 거고요.
그런데 이럴 때 가족 상황에서 잘 안 될 경우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축약될 수 있는데
하나는 그렇게 밀어준 자식이 대처에 나가 성공하는 게 아니라
술과 유흥에 빠져 소 팔고, 땅 팔아서 대준 돈을 다 날려 먹고 쪽박 차는 것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장남이라고 서울 사는 큰 아들놈만 예뻐해서
이 놈이 서울서 장가들고, 시골 본집엔 코빼기도 안 보이는 상황에도
서울 간 큰 아들놈만 찾고
(일단 봉제사해줄 놈인데 다가
잘 되면 나 몰라라 할 놈이 아닌 심성 고운 놈이라고 부모님은 철석같이 믿고 있는 거죠.)

나머지 자식들은 밥 굶든, 학교 못가든 개의치 않는 경우가 하나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서울 가서 성공한 큰 아들놈이 정말 못 되어먹은 놈이라
뒤를 봐준 아버지, 어머니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냐' 고 되려 큰 소리 치고
'가족이라면 지긋지긋하니 이제 나 좀 고만 괴롭히라' 고 하는 거죠.

이게 FTA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시겠다는 눈치없는 이라면 차암 하는 수 없지요.
이런 비유 별로 좋아 하지 않지만...

지금 아버지(정부)가 추진하는 FTA가 산업구조 개편과 관련이 있는 거고
그것이 경쟁력있는 사업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워서 이것으로 온 가족(국민)이
잘 살게 되는 첩경이라고 그렇게 단순하게 철석같이 믿고 있는 건...
가족 버리고 서울 가버린 장남에게 '용돈(세금) 받아서 나머지 가족들도 잘 살게(분배) 해줄께'
라고 말하는 무책임한 아버지와 똑같아요.

아버지는 점점 더 힘이 빠지는데다가 나머지 가족들도 내가 벌어서 내가 먹고 살고 싶은 거지
서울 간 형님이 옛따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 던져주는 용돈에 목 매고 싶은 가족이 어디있겠어요.

누구는 이걸 무임승차라거나 무노동무임금, 잘 나가는 큰 형님에게 와서
나 옛날 어릴 적에 형 월사금 대느라 나 학교도 못 가고 소꼴 베러 다녔으니
이제라도 장사 밑천하게 한 몫 떼달라고 와서 뗑깡 부리는 동생(노동자) 같다고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밍교...

* 이거 좀더 다듬어서 다음달 신문 칼럼에 꼭 실을 겁니다.(짤릴까요? 흐흐)
아무래도 FTA이야기만 연속으로 쓰면 누구처럼 FTA에 올인했다고 욕 먹을 듯 하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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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는 17인치인데 줄곧 1024*768 싸이즈로 쓰고 있었다.

양 옆으로 글자가 퍼져보이는 것 같아서 모니터의 버튼을 몇 개 눌러 보았더니, 권장 해상도가 1280*1024란다.

어머나, 그걸 여태 몰랐었네.

당장 설정을 고쳐보았다.

세상에,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스탠드를 켜지 않았는데도 화면이 밝다.

이럴 수가!

늘 작은 싸이즈로 보았기 때문에 옆쪽의 너무 넓은 여백이 아직 적응이 안 되지만, 일단은 기분이 좋다.

사진을 올릴 때도 늘 1024 싸이즈로 맞추었는데 더 크게 잡아도 될라나?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작은 해상도로 보시는 분들이 불편하겠지?

사진은 계속해서 1024로 가야겠다.

사소한 발견이지만 기분 좋다. 

당분간은 적응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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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04-13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사소한 발견이지만 그런거 안다는게 참.
저도 그런면에서는 늘 컴맹이어요

마노아 2007-04-13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발견이지만 기뻤어요. 적응하려고 지금 애쓰고 있답니다^^

비로그인 2007-04-13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도 19인치를 쓰는데.
예전에 장난 삼아 해상도를 잘못 건드렸다가....어마어마하게 커진 글씨를 보고 '헉'
했었던 기억이...(긁적)
아마 지금 상태에 적응이 되고 나서, 유난히 글씨가 큰 컴을 보게 되면 '후아후아' 하게
될 것입니다. (웃음)

마노아 2007-04-1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19인치면 엄청 크겠어요. 학교 컴퓨터도 조절을 해보려고 했는데 최대 해상도가 1024 버전이더라구요. 아직도 800쓰는 컴퓨터를 가끔 볼 때 정말 난감해지기도 하죠^^;;;
 
호문쿨루스 2
야마모토 히데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기분이 몹시 좋다.  1권만 보았을 때는 미심쩍었는데 2권까지 보고 나니 소장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미도 있거니와 아직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분명 '내적 치유'에 관한 감동이 물씬 묻어날 거란 짐작이 든다.

1권에서 '육감'을 발견한 주인공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채 헤매게 된다.  의뢰인을 만나 자신의 변화를 알려주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이 더 혼란스러운 그다. 

그에게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정상으로 보이고 어떤 이는 심하게 괴상하며 어떤 이는 아예 사람 자체가 안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그 사람들 사이의 유기적 연관성은 무엇일까?

전편에서 맞닥뜨렸다가 서로가 크게 놀란 야쿠자가 다시 등장한다.  그를 감싸고 있는 로봇의 정체는 무엇일까, 로봇 속에 감추어진 아이는 누구일까.  왜 아이는 낫을 든 채 손가락을 자해하며 그토록 겁을 먹고 있는 것일까.

주인공은, 상대방의 감추어진 이면만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연까지도 감지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연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과 그 속에 담긴 기억과 감정도 함께 건드린다는 것이다.



위 그림) 야쿠자 안에는 어린 아의 모습에서 자라지 못한, 로봇의 껍데기 안에 갇힌 자아가 오래도록 숨어 울고 있었던 것

주인공이 자기와 연관된 사연이 있는 사람에게서만 육감을 느끼는 것인지 혹은 다른 것이 더 있는 지는 뒷권을 더 살펴보아야겠다.

내용이 재밌기도 했지만, 글자가 많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권을 읽는 데에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  이제 7권까지 나온 것 같은데, 금세 읽고 오래도록 기다릴 생각을 하니 잠시 한숨이 나온다.  그렇지만 좋은 작품을 기다리는 것은 고문이 아니라 즐거운 기다림이므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이같은 작품을 엮어내는 작가의 상상력과 놀라운 솜씨에 감탄을 보낸다.  일본의 만화산업에 있어서의 경지는, 정말 부럽다라고 밖에는 말 못하겠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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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13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야쿠자 이야기'가 감동스러웠습니다. ^^
무엇보다 그림의 사실적 표현, 잘 구성된 연출력은 흡사 영화를 보는 것과 같죠.

마노아 2007-04-13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진짜 잘 그리는 것 같아요. 섬뜩할 지경이라니까요^^ 연출도 좋구요. ^^
 
대장부의 삶 - 옛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남자의 뜻, 남자의 인생
임유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품절


혹하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수묵의 느낌을 주면서 초록색의 그윽하면서도 은은한 칼라가 앙상한 나무의 뒤에서 여백의 미를 주고 있다.

왼쪽의 붉은 톤의 종이와 그 위의 무늬, 그리고 책 가운데에 나눔선에도 무뉘가 있고, 단락의 구분에 사용된 도장 무늬도 참 감각적이다.

왼쪽 바닥의 난이 고아한 느낌을 준다.

왼쪽 바닥의 단풍잎이 청명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책갑"
선비들은 책을 보관하거나 휴대할 때 이 상자를 사용했다. 이 책갑은 상자를 만든 뒤 능화판 무늬의 종이로 마감을 하고 띠를 둘렀으며, 대나무와 창살무늬를 각 면에 붙여 장식하였다. 열고 덮기 편하도록 뚜껑에 지승 고리를 달았다.

-이 책의 내용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사진들을 옮겨 본다. 전에 몰랐던 독특한 것들이 많이 눈에 띤다.

"시전지와 시전지판"
선비들도 편지를 시를 쓸 때에는 무늬를 넣은 시전지를 종종 사용했다. 초충, 화접, 석류, 매화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목판 시전지판에 무늬를 새겨 한지에 눌러 찍었는데 자기만의 고유한 시전지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갓집"
갓을 담아 보관하는 데 사용했다. 8각 양 태들이 위에 다시 8각 총모자들이를 올려 갓의 형태로 만들었다. 주칠에 장식을 둘렀으며 내부는 빨간색 종이를 발랐다.

-저 위에 올려놓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뚜껑이 열리는 것을 보니 안에다가 보관했나 보다.

"잡등"
종이에 그림을 먹이고 주름을 잡아 접어서 만든 팔각등이다. 바닥에 초를 꽂을 수 있는 장치가 있고, 뚜껑에 고리를 만들어 나무 손잡이를 연결하여 들고 다닐 수 있었다.

-등불 속에 불이 있겠거니 생각만 했지 촛대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빈약한 상상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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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04-12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디자인 좋네요

마노아 2007-04-12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참 예뻐요^^

비로그인 2007-04-13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옛날에도 상당히 '과학적이고' '실생활에 유용한' 물건들이 많이 있었던 것을
보면, 지금 사람들이 과거 사람들에 대해 갖는 '우월감'은 없애야 한다고 봅니다만.
지금 생활의 기록을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미래 사람들도 우리가 굉장히 '미개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
모든 '현재'의 물건들이나 생활 방식은 '과거'에서부터 발전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현재인'들은 '과거의 물건이나 생활 양식'을 보고 '아하-'하고 금방 이해하지만,
'미래의 물건이나 생활 양식'을 만약 보게 된다면 '뭐야, 저게-! 말도 안돼-!' 하고
'현재'의 기준으로만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 보통의 인간이라는 것입니다.(웃음)

마노아 2007-04-1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얘기가 맞아요. 우월감이라니 당치도 않죠. 미래의 물건에 대해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나올 것 같아요. 정말 올챙이 적 모르는 게 사람들이죠^^

비로그인 2007-04-1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인간은 우월감을 갖음으로 인해 자신이 커보이려는 만족감을 얻으려고 하죠.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우월감은 있습니다만.
대체로 쓸데없는 것들이 주입니다. (웃음)

마노아 2007-04-16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데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에 동감해요. 그리고 반성도^^;;;;
 

야마모토 히데오의 ‘호문쿨루스’는 기괴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오컬트적 기술과 현상으로 영적 능력을 지니게 된 주인공이 등장한다. 일본 만화의 무수한 퇴마사처럼 그 역시 사람의 몸에 붙은 괴물과 맞선다. 그런데 여느 작품처럼 초인적 힘으로 영적 괴물과 싸우지 않는다. 주인공 나카시가 지닌 능력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괴물, 즉 호문쿨루스를 볼 수 있는 것뿐이다.

인기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도 등장하는 호문쿨루스(homunculus)는 라틴어로 작은 인간이란 뜻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호문쿨루스는 인조인간 또는 복제인간의 의미였다. 중세의 연금술사이자 의사였던 파라켈수스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반면 이 만화에서 호문쿨루스는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억압이나 정신적 상처를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귀신 또는 귀신에게 몸을 빌려 준 사람이다. 주인공 나카시는 머리에 구멍을 뚫는 트리퍼네이션(trepanation·개공술) 수술을 받은 후 여섯 번째 감각(six sense)이 열리게 된다. 그 후 한쪽 눈을 감고 사람을 보면 기괴한 형상의 기호로 이루어진 괴물에게 몸을 빼앗긴 사람을 볼 수 있게 된다. 온몸이 로봇의 형상으로 보이는 야쿠자 두목, 모래알처럼 자잘한 문자로 보이는 탈선 여고생 등.

위기를 볼 수 있는 능력만 있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군중을 위협하는 위험도 아니고 그저 한 개인의 정신적 상처가 스스로를 위협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적 개념의 퇴마사인 나카시가 이 괴물과 싸우기 위해 찾아낸 방법은 일종의 상담치료법이다. 자신도 경험했던 비슷한 일화를 이야기해 줌으로써 상대를 특수한 고립의 상태에서 해방되게 돕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귀신 들린 사람을 위한 멘터 같기도 하다.

만화가 야마모토는 작품을 통해 늘 인간의 두 얼굴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반된 모습, 겉모습과 다른 성격, 나와 다른 분신 등을 이항 대립 관계로 내세운다. 그리고 둘의 경계에 선 자가 동질성이라는 깨달음을 찾도록 한다. 타인의 정신적 상처나 괴물을 복제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문쿨루스라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너의 상처가 내게도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자극적이고 잔혹하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그간 국내에 소개되지 못했다. 야마모토는 일본 문화계의 숨은 진주를 찾던 영화감독 이규형의 칼럼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초기 작품인 ‘신·노조키야’와 ‘고로시야 이치’를 소개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작가의 만화는 너무 잔혹하지만 그런 것이 흉이 되지 않을 만큼 재밌다’이다. 그리고 이런 만화가 출판되고 더군다나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영화로까지 제작되는 일본 문화에 대한 경외감을 표했었다. 그 작가의 최신작이 국내에서 동시 발매되고 있는 셈이니 우리 만화계의 표현 수위와 독자들의 눈높이도 달라진 셈이다.

박석환 화평론가


입력2007.02.10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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