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하드가 나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설마 정말 복구가 안 되겠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거대한 데이터들이 한순간에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질 거라고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 형부는 나의 망가진 하드 때문에 동분서주하셨다.
집에 들러서 하드를 빼가지고 회사 컴퓨터에서 작업을 해봤는데 실행 실패. 다시 집으로 돌아와 우리집 컴퓨터로 돌려보았지만 모터가 돌아가지 않았고, 용산으로 가는 길, 시위로 인하여 차가 너무 막혀 형부 집에 차를 두고 버스로 다시 이동.
용산에서 수리가 가능하겠느냐 문의를 했더니 보수 비용만 55만원이랜다. 그리고 수리하고나서 데이타 복구가 가능한 지는 장담할 수 없단다.
다른 집으로 가보았단다. 거기서는 아예 복구할 생각을 말라고 했단다.
그래서 결국, 새로 교체할 하드만 장만해 가지고 돌아오셨다는 것.
전화로 그 과정을 들으면서, 결국 울고 말았다. 그건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복구가 가능하다고 했으면 그 돈을 들여서 복구를 했을까. 당장은 돈 없어서 못했겠지만, 언젠가 하겠다고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돈이 없어 못 고치는 것도 슬픈 일이지만, 돈이 있어도 못 고친다는 것 역시 비극이었다.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지난 2000년 여름부터 사용하며 누적되어온 나의 데이터들.
가장 아까운 것은 역시 소설이었고, 그 다음은 지인들과 나누었던 만남의 흔적이었다.
내 폴더 중에는 '창고'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담긴 것이 있었는데, 그들과 나눈 이메일 대화 백업이라던가, 그들과 전해 주고 받은 축전이라던가 카드, 혹은 시 등이 담겨 있었고, 손수 그린 그림 파일들도 다수 있었다. 혹시라도 이메일 계정에 문제가 생길까 봐 꼬박꼬박 백업을 해 놓았건만, 그 백업 저장소가 이렇게 아작이 날 거라고 어찌 예상을 했을까ㅠ.ㅠ
오늘 아침에는 mp3플레이어에 곡을 담을 수가 없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녀야한다. 씨디의 음질이 훨씬 훌륭하지만, 가끔 씨디로 구할 수 없는 파일들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몹시 난감하고 슬픈 일이다.
하여간, 그렇게... 지난 8년 간의 내 기억과 추억과 공부와 노력의 과정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혹시라도 수년 뒤 기술이 아주 발달해서 내 데이터들을 복구시켜 준다면 정말정말 다행일 테지만, 아무튼 지금은... 굿바이다.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하나 어쨌든 이것은 '자료'이고 '데이터'일 뿐인데, 살아있는 생명의 스러짐은 얼마나 큰 충격과 고통과 슬픔을 동반할 것인가. 살아있다와 살아있지 않다의 사이가 너무도 순식간에 뒤바뀌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