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사진, 너도 뽀샵 처리했다며? [제 595 호/2007-04-30]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2호가 한반도를 촬영한 사진이 지난 4월 9일 공개됐다. 눈길을 단연 끌었던 건 평양시 사진이었다. 685km 상공에서 찍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피사체가 또렷했다. 평양시 대동강변에 있는 북한의 식당인 ‘옥류관’ 인근의 영상은 도로 위 차량까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위성사진을 찍는 건 사실 간단치 않은 일이다. 지상을 촬영하는 위성은 대부분 아리랑 2호처럼 700km 안팎의 상공을 난다. 추락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초속 7.8km로 지구 주위를 돌아야 한다. 서울-부산 간 거리보다 1.5배 이상 먼 거리에서 총알의 10배로 이동하며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얘기다. 우주 공간의 변수와 촬영 과정에서의 지상 조건이 사진 품질에 커다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위성사진 촬영에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건 이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숨을 참고 반 셔터를 누르거나 촬영된 영상을 이미지 편집소프트웨어로 다듬는 것처럼 위성 사진을 찍을 때에도 비슷한 노력이 필요하다. 위성사진을 잘 찍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과학자들이 좋은 위성사진을 얻기 위해 내놓은 근본적인 처방은 자세제어시스템(ACS, Attitude Control System)이다. 위성에 생긴 진동을 완화하는 장비다. 위성에는 매우 얇고 넓은 태양전지판이 달려 있어 위성 내부에서 작은 움직임만 일어도 요동이 커진다. 강렬한 태양빛을 받아 태양전지판이 변형돼도 진동이 생긴다. 우주 공간에는 공기 저항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발생한 진동은 수 분간 이어진다. 진동이 생기면 촬영지점을 카메라가 정확히 겨냥할 수 없다. 흔들리는 위성 탓에 서울을 찍으려다 대전을 찍을 수도 있다.

ACS를 구성하는 장치인 ‘휠’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 위성 내부에서 일종의 추 역할을 하는 휠은 진동이 발생하는 반대편에서 균형을 잡는다. 진동을 서서히 소멸시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세제어는 휠이 맡는다. 이밖에 소형 로켓을 분사해 자세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공기가 가득 찬 풍선의 입구를 놓으면 추진력이 발생하는 원리다. 비교적 큰 자세교정이 필요할 때 사용된다.

ACS의 또 다른 구성 요소인 ‘별추적기’는 위성이 자세를 바꿀 때 기준점을 제시한다. 우선 위성항법장치(GPS)로 다른 위성과 교신하거나 지상에서 궤도를 추적한 데이터를 전송받아 현재 위치를 파악하면 별자리를 기준으로 위성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정하는 것이다. 양치기가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는 것과 같은 원리다. 별자리는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위성을 개선하려는 노력과는 별개로 찍힌 영상을 실제에 가장 가깝게 수정하려는 노력도 있다. 위성이 건물이나 자동차 바로 머리 위에서 영상을 잡지 못하면 실제 모습과는 다른 촬영 결과가 나오는데 이 때 촬영물을 실제 상황에 맞게 조금씩 옮기는 것이다. 사전에 수집한 촬영지점의 측량 결과와 다른 위성이나 비행기가 찍은 사진이 활용된다. 다양한 데이터를 비교 분석해 왜곡된 사진을 실제에 가장 가깝도록 수정하는 것이다. 사용 목적에 따라 색깔을 바꾸거나 높이 데이터를 입력해 입체감을 넣기도 한다.

위성이 찍은 부분적인 사진을 이어 붙이는 ‘모자이크’ 기술도 있다. 기술적으로 위성이 한 번에 찍을 수 있는 사진의 폭은 15km에 불과하다. 가로 폭이 400km에 달하는 한반도 전체 사진을 얻으려면 위성이 우리 머리 위를 수십 번 오가며 촬영해야 하는 것. 여러 장의 천을 이어 붙여 옷을 완성하는 것처럼 부분적으로 촬영된 영상을 접합해 광범위한 지역이 담긴 사진을 내놓는 것이다.

‘모자이크’는 넓은 지역을 볼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이지만 촬영 과정에서 지상의 조건이 달라지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아리랑 2호는 하루에 지구를 14바퀴 반 도는데 그 동안 지구도 자전하기 때문에 같은 지점을 다시 지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찍어야 할 위치에 왔을 때 날씨가 안 좋으면 촬영이 힘들기 때문에 다음 기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심할 경우는 수개월 전의 사진끼리 서로 모자이크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따라서 인공위성을 많이 보유한 나라는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지역을 한꺼번에 촬영하는 방법을 쓴다.

위성으로 더 나은 사진을 얻으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연구진은 카메라가 장착된 부위와 구동기를 분리해 진동을 줄이려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카메라 기술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아리랑 3호의 해상도는 70cm를 점 하나로 인식하도록 개발이 진행 중이다. 현재 운용 중인 아리랑 2호는 1m를 점 하나로 인식한다. 한반도를 바라보는 ‘눈’이 어디까지 밝아질지 궁금하다. (글 : 이정호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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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3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그 '눈'이 어떻게 사용되어질 것인가.

마노아 2007-04-30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어떻게' 사용되어질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죠..;;

비로그인 2007-04-3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는 개인적으로 걱정되는 미래가 보입니다만.
뭐- 언제나 그렇듯. 잘 알아서 해결하겠지요. (긁적)

마노아 2007-04-30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래를 보시는 엘신님, 힘좀 써 주세요. 지구인들에게 따끔한 경고가 필요해요.;;;

비로그인 2007-04-3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핫.
만약 제게 절대적인 힘이 있다면, 이 지구 싹쓸어 버릴지도 모릅니다만? (웃음)
'창조의 신'보다 '파괴의 신'을 택할 확률이 높은 놈입니다, 저는. (긁적)
평범한게 천만다행이죠. (웃음)

마노아 2007-04-3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어보셔요. 지구의 운명을 손아귀에 쥔 두 소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구가 내 손아귀에 있다면...오옷, 상상으로도 짜릿해요(>_<)

 
 전출처 : 딸기 > 마노아~~

이런 이런... 이렇게 선물을 많이!

나는 저렴한 책 한권 보내줬는데 이렇게 선물을 많이 주면 어떡해~~

땡큐땡큐 ㅠ.ㅠ

여우비는 딸이랑 재미나게 읽을께. 같이 보내준 것들도 매우매우 고맙게 잘 쓸께.

담엔 꼭! 맛난거 사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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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30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누는 기쁨을 아시는 분들~ 멋집니다.(웃음)

마노아 2007-04-30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엣, 고마워요^^
 
바빠요 바빠 - 가을 도토리 계절 그림책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 / 보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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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끌고, 엄마와 마루는 뒤에서 밀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 심지어 참새마저도 아주 바빠요.

마당 가득 널려있는 빨간 고추. 넓은 마당이 낯설어요.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 벼. 허수아비를 보니 오즈의 마법사가 떠오르네요.

손에 손을 이어서 옮겨지는 볏단. 함께 일하는 땀방울이 참으로 값져요.

마루는 할머니의 입에도 곳감을 쏘옥 넣어주네요.
착한 마루.

할아버지는 막걸리 한사발을 드시고 계신가 봐요.
인심만큼이나 넉넉하고 맛좋은 김장 김치일 테죠.

시골집에 있는 광...
시간이 익어가는 느낌의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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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3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림이 참 정겨워요.
곳감...어릴 때는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2개까지는 잘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저는 딱딱한 단감이 좋습니다. (쓰읍-)

마노아 2007-04-3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곶감도 맛있고, 단감도 좋은데 홍시는 먹기 불편해서 안 좋아해요. 좀 더 나이들면 좋아할 지도^^;;;;

비로그인 2007-04-30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홍시는...먹기도 불편하고....너무 달아서...(단 것을 잘 먹는 주제에)

마노아 2007-04-30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 것을 좋아하지만 적당히 단 것을 좋아해요. 너무 단 것은 부담시려..;;;
 
바빠요 바빠 - 가을 도토리 계절 그림책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 / 보리 / 200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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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 사는 마루네 집은 가을이 오면 엄청 바빠져요.

할아버지는 옥수수를 말리느라고, 할머니는 참깨를 터느라고 바빠요 바빠.

뿐이던가요?  고추도 말려야죠.  마루는 그 옆에서 닭을 쫓아야죠.

들판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 참새들은 낟알을 쪼아 먹느라 바쁘고, 마루와 허수아비는 참새를 쫓느라 바빠요. 바빠!

온 들판에 벼 이삭이 출렁이면 마을 사람들은 벼를 베느라고, 마루는 벼를 나르느라고 바쁘지요.

감나무에 감이 빨갛게 익으면 아빠는 감을 따고, 할아버지는 주워 담고, 엄마랑 할머니느 곶감을 만드느라고 바쁘답니다.

우물가에서는 아줌마들이 김장을 하느라고, 아빠는 김칫독을 묻느라고, 마루는 동네방네 김치를 나르느라고 바빠요, 바빠!

부엉, 부엉, 부엉이가 우는 밤, 할머니는 콩을 고르느라고 바쁘고, 마루는 새근새근 자느라고 바빠요.

우리네 시골 마을의 가을 풍경을 화면 가득 알차게, 풍성하게 담은 책이에요.

고된 노동에도 사람들의 표정은 풍성한 추수로 미소가 머금어져 있구요. 나누어 일하고 나누어 먹는 그 손길에 정이 뚝뚝 묻어나요.

참새도 닭도, 다람쥐도 생쥐도 떨어진 알곡 주워 먹기 아주 바쁘지요.

그네들을 내쫓는 눈길에는 원망보다 즐거운 놀이가 느껴져요.

참 고운 우리네 풍경이지요. 지금도 시골에 가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요?  이렇게 온 가족이 삼대 이상 모여사는 집이 있을까요.  추수를 하면 쏟아부은 노력이 다 보상이 될까요.

책은 참 아름답고 정겹고 따스한데, 실제 우리네 시골 풍경이 이런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런 풍경은 이제 책 속에서만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어요.

아름다운 전통을 담은 우리네 삶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할 텐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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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4-30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엊그제 우리 딸과 계절그림책 봄 편을 보았는데, 이런 우연의 일치가... 방가방가 ^^

마노아 2007-04-3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언니! 뭔가 통했어요. 이 시리즈 참 좋아요^^

네꼬 2007-04-30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리즈 좋아해요. (특히 "바빠요 바빠"는 제목부터 좋죠!) 다만 동물과 식물의 세밀화는 멋진데... 사람이... 좀 덜 정확해(?) 보인다는... -_- (제 눈에만 그런가요!)

마노아 2007-04-3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그림 그리신 분이 좀 그런 경향이 있어요. 식물과 동물들은 오히려 정확해 보이는데 사람은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듯 보이죠^^;;;;

딸기 2007-04-30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봄 편에서는, 어린아이가 아줌마처럼 보이기도...

마노아 2007-04-30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핫, 맞아요. 그런 그림 있어요^^ㅎㅎㅎ
 
 전출처 : 파란여우 > 미국산 쇠고기의 방문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왔다. 뼛조각이 발견되는 상자만 반송하겠다는 조건이었는데, 1차 검사 결과 전량 통과한 모양이다. 신문에서 발표한 대로라면 다음주 중에는 시중에 'Made in USA' 도장이 박힌 붉은 쇠고기가 동네 마트까지 진출해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식품관련 업체에서 대형 트럭 몇 대분으로 공장 창고에 비축하는 일이 시행되겠다. 내가 친구와 절교 직전까지 관계를 악화하면서 반대한 한미 FTA는 솔직히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친구가 주장한 것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다시 한 번 제2의 도약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지만 내 주장은 다르다. 도약의 기회, 국민 소득 증대, 경제 발전 다 좋은데,


1)왜 이리 서둘러서 공청회 한 번 없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며

2) 식량을 내주고 자동차를 얻어서 소득은 증대할지 몰라도 식량전쟁이 집문을 부수고 쳐들어오면 어떡할거냐, 그 땐 자동차의 엔진이나 문짝을 뜯어 찌개를 끓이고 삶아 먹어야 하는가?

3)그런고로 식량은 곧 주권이며 생존이다


라는 내 의견에 친구는 중상류층답게 이젠 한 국가의 고유 먹거리를 찬양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로 일관했다. 말이 안되는게 1차 생산자인 농촌의 몰락을 눈앞에 두면서 수출로 먹고 사는 국가, 자동차 산업과 IT산업을 키워야 힘을 얻을 수 있는 세상, 식량은 이제 다국적 혼합체일 뿐이다. 라는 논리로 1차 생산자를 절망의 늪에 밀어 넣은 국가와 전형적인 도시 중상류층인 내 친구의 '메트로폴리탄의 경제 원칙'이다. 농촌의 사망을 매일 접하는 이 땅에서 '농촌 구조 조정' 하는 발언을 하던 노무현 대통령과 '식량의 다국적화'라는 무서운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외치는 내 친구는 모두 이 땅의 사람들이다.

 

 

 

 

책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지만 아무렇지 않게 '식량의 불가피한 다국적화 사업'을 주장한 친구에게 위의 책들을 권했다. 읽을 것인지 안 읽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중, [굶주리는 세계]와 [쌀과 민주주의]는 직접 사줬다. 그 친구가 내가 준 책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해도 최소한 제목만은 기억할 것이다. 제목을 기억하면 한번쯤은 자신의 풍요로운 밥상이 세상의 모든 밥상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는 깨달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우리는 폭력의 세기에 여전히 살고 있다. 그것도 밥상을 차리는 과정에서 폭력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거대 다국적 기업이 장악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는 물 부족으로 몇 년간 신음을 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초원위의 대규모 농장에서는 드넓은 초원 위로 스프링클러 수천 개가 물을 뿜으며 돌아간다. 케냐정부는 '국가의 경제발전, 국민의 소득증대 향상'을 위하여 다국적 기업과 손을 잡았다. 결과는, 가뭄과 식수 고갈이며 농촌의 몰락과 도시 서민의 영세민화가 누떼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화의 폐단을 케냐까지 가서 찾지 않아도 내 집 앞을 지나가는 곡물사료트럭에서 확인한다. 미국의 곡물회사 카길사의 사료트럭은 하루에도 너댓번은 동네를 왕복한다. 축협에서 지원하는 지역자체 곡물사료 공장이 있지만 카길사는 최저가 공급으로 영세 축산농가를 공략하고 있다. 사료가격은 축산농가의 이윤과 직결되는 문제다. 밥상을 차리는 쌀값의 영향관계와 동일하다. 내가 염소 농장을 집어치운 이유는 한마디로 완전 '개털'식의 대차대조표에 절망했기 때문인데, 여기서 한 가지를 공개한다. 그러니까 2년 전인 2005년 아직 직장인이던 시절에 퇴직 후 염소농장을 계획한 것은 염소공급가격이 지금처럼 바닥이 아니었다. 다 큰 염소일 경우 보통 마리당 20만원이던 시절, 그 이전에는 비정상적인 가격인 50만원까지 호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20만원까진 아니었어도 15만원은 받았다. 큰 이익은 아니지만 손해 보는 장산 아니다. 그럭저럭 공과금 납부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사 먹는 수준은 된다. 큰 욕심 없이 안빈낙도로 살겠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우리 집 염소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염소가격은 절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으며 드디어 절벽으로 나뒹굴었다. 보통 6개월 정도 성장한 염소가 7만원이라는 '껌 값'이 되고 말았다.


7만원이면 중상류층의 내 친구가 하룻저녁에 별 다섯 개 호텔에서 사 먹는 스테이크 한조각과 프랑스산 30년짜리 와인 한 병 값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나는 7만원을 손에 쥐기 위해 6개월 동안 염소 사료와 볏단을 사 먹이고,  팔이 떨어져 나가라 축사를 청소하고, 기생충 약과 설사약을 먹여야 한다. 6개월 동안 내 노동의 대가와 염소 한 마리의 생명가치를 합한 것이 7만원이다. 식량의 다국적화, 오픈아이즈(열린 눈)으로 세상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 친구가 백화점에서 50% 할인 가격으로 구입했다는 샤넬 투피스 한 벌 값의 1/10에 불과한 7만원. 나는 맑스 신봉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좌파도 아니지만 인간의 삶은 '계급'으로 결정된다는 논리를 부정할 수 없다. 친구와 나는 '돈'으로 갈린 '계급'의 차이가 뚜렷하다. 그러나 이것은 나와 내 친구의 사적인 영역으로 그치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발표되고 난 이후 한우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300만원 하던 송아지가 지금 150만원으로 떨어졌다. 더 떨어진다. 송아지 값의 하락은 축산농가의 감소를 불러 올 것이다. 사료 값은 결코 떨어지지 않을 테니 거미줄에 매달린 배고픈 거미의 심정으로 얼마나 더 많은 축산농가의 대출이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우는 그동안 왜 고공행진을 했던가. 실질적으로 소득이 증가한 계층은 한우농가가 아닌 유통업자다. 그들이 1차 한우 생산자로부터 사들인 쇠고기를 최종 소비자의 시장바구니에 담길 때까지 중간에서 취한 엄청난 유통증가 비용은 200%에 달한다. 미안하지만 이것보다 적은 수치는 결코 아니다. 한우 농가는 축사에 소 숫자가 증가했지만 '6시 내 고향'에서 보여주는 잘살고 근심 걱정 없는 '박정희식의 농촌 쇼'에 유린당하고 있다. 농가의 어두운 얼굴은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할 수 없는 비인기종목이다. 그렇다면 왜 유통업자들은 중간에서 막대한 폭리를 취하는가. 그들의 이유를 들어보자. 유통관리비가 많이 든다. 는게 이유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몇 백%의 이윤을 취하면서 저 막연하고 모호한 설명을 이해하라는 말이다.


정부는 몰랐을까. 몰랐다면 귀먹고 눈 먼 정부이며, 알았다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자 범죄 방조죄가 성립된다. 국민의 목구멍에 밥숟가락 넘기는 일을 방해한 것이 범죄 아니면 무엇인가. 미국이 그토록 집요하게 쇠고기 문제에 집착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한우 가격이 비싸므로 싼 미국산 쇠고기로 공략하면 100% 시장 장악에 성공한다. 유통업자의 폭리와 정부의 무사 안일한 자세 앞에서 축산 농가의 미래는 더욱 장막이 짙어 보인다. 그동안 한우 유통가격을 조절하지 못하고 소비자에게 비싼 가격으로 공급했던 대가는 곧 한 폭의 잔인한 그림으로 펼쳐질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으면 된다고 단세포 발언을 하던 일부 국민들도 시간이 흐르면 곧 미국산 쇠고기를 시장바구니에 집어넣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안전'문제다. 즉 미국산 쇠고기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키워지고 생산되어 포장을 완벽하게 처리한 후 내 장바구니에 담겨진 것인가. 이 문제 제기는 지난번 MBC의 충격적인 미국 축산 산업 현장을 취재하면서 대중화로 불거졌다. 미국산 쇠고기가 먹는 사료와 약물, 환경과 도축과정을 충격으로 접한 후 다소간 시간이 흘렀다. 서민들은 '그것은 지옥의 풍경이었다'로 흥분했었지만 곧 그들의 밥상 위에는 바로 그 공포의 쇠고기가 오른다. 다시 방법을 찾는 통로로 들어가 보자. 애국심에, 민족의 단결심에 호소하는 일도 약발이 다 했다. 대안이 없을까.....농촌은 생계 걱정으로 밤마다 불면을 염병처럼 앓고 있다. 축협 같은 직접 연결 시스템이 '페어 트레이드'를 가동해서 유통업자의 막대한 이윤폭리를 차단하고, 소비자 단체에서는 지속적이고 현실적인 아이템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나와 네가 1차 생산자의 식량문제가 인간의 주권이자, 생존권임을 인식하는 일이다. 제발, 국익을 위해서 1차 생산자가 희생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말이나 삼가자. 뿌리 없이 열매 맺는다는 사기를 치지 말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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