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에 책을 신청했다.

 

 

 

 

박노해씨의 책으로 전쟁과 재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실상을 보여준, 그의 구호활동이 담긴 책이었다.  여러 목록 중에 유독 이 두 책이 교장선생님의 우려를 샀다는 게 재밌는 일이다.

도서관 담당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이 책 신청해도 되겠냐며 탐탁치 않게 여기셨다는 것.

이 책이 어떤 책이냐고 물었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아마 거기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분께 중요한 것은 '이름값'이었으니까.

이름값 하니 또 떠오른다. 몇 주 전에 컴퓨터실의 컴퓨터를 교체하기 위한 회의가 있었다.  똑같은 사양이라면 값이 훨씬 더 싼 중소기업 제품을 쓰자고 했지만, 우리의 장/감님들은 삼성 아니면 엘지를 고집하셨다.  결국 행정실장님이 엘지를 선호한다는 이유로 엘지로 낙찰...;;;;;

이름값... 여러 군데서 등장한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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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2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이 의외로 이름값을 고집하시지요.
어렵게 살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더 실용적이실것같은데요.
저 책, 보고 싶네요.

마노아 2007-06-29 14:21   좋아요 0 | URL
그 이름값이 과장되고 왜곡되어질 때가 있다는 것에 문제점이 있지요. 아름다운 '이름값'이면 좋을 텐데 말예요.
 



 
매미는 왜 땅속에서 17년을 기다릴까? [제 621 호/2007-06-29]
 

“맴 맴, 찌∼르르르.”
무더운 여름날 애틋하게 우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경적을 울리는 듯 요란하다. 매미가 세상 밖으로 나와 온 숲을 메아리치며 울어대는 이유는 짝짓기 위해서다. 수컷 매미는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복부에 발달한 발음기관으로 소리를 내서 운다. 전에는 주로 낮에 활동했지만 최근 ‘신세대 매미’는 낮밤 없이 구애한다. 도시의 불빛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올 여름 매미의 소음으로 가장 걱정되는 곳은 미국의 중서부 지역이다. 미국 중서부에는 17년마다 수십억 마리의 어마어마한 매미 떼가 기습한다. 올해가 바로 17년째 땅속에서 꿈틀대던 매미 떼가 땅 위로 올라오는 해다. 17년마다 올라온다고 해서 ‘17년 매미’라고 부른다. 수컷 매미 한 마리가 내는 소리는 믹서기 소음에 맞먹는 70∼90dB(데시벨, 소리 크기의 단위). 수십억 마리가 단체로 울어대는 소리는 가히 공포영화를 방불케 한다. 17년 전인 1990년에 시카고에 등장한 매미 떼는 유서 깊은 음악제마저 취소시키는 등 큰 소동을 일으켰다. 매미의 비밀을 살펴보자.

여름에 세상 밖으로 쏟아지듯 나온 매미는 달콤한 사랑을 한 달 정도 나눈 뒤 생을 마감한다. 수컷은 암컷과 짝짓기를 한 뒤 죽고, 암컷은 알을 낳고 죽는다. 적당한 나뭇가지를 하나 선택한 뒤 가지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암컷이 그 속에 알을 낳으면, 몇 주일 지나 알은 애벌레로 부화한 뒤 먹이를 찾아 땅으로 내려와 땅속 40cm 정도에 구멍을 파고 자리를 잡는다. 그곳에서 나무뿌리의 액을 빨아 먹으면서 오랫동안 애벌레로 지낸다.

지구에는 3000여 종의 매미가 서식한다. 주로 아프리카의 사하라사막 북쪽과 아시아 온대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우리나라에 많은 참매미와 유자매미는 5년을 주기로 지상에 나온다. 우리나라 매미 유충에 비해 17년 매미가 땅 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매우 길다. 놀라운 사실은 정확히 17년을 채운다는 사실이다. 빨리 자란 애벌레라도 절대 먼저 땅 위로 올라오는 법이 없다.

미국의 남부에는 13년을 주기로 성충이 되는 ‘13년 매미’와 7년을 주기로 하는 ‘7년 매미’도 있다. 오랜 시간마다 한 번 등장하는 주기 매미들만 살고 있어서 미국 사람들은 매미 소리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기간이 정확히 13년, 17년이기 때문에 다음에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5년, 7년, 13년, 17년의 주기를 보니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이들 숫자는 모두 소수(素數)다. 여기서 소수란, ‘1과 자기 자신으로 나누어지는 수’를 뜻한다. 매미에게 14, 15, 16, 18 주기는 없다. 매미는 왜 소수를 주기로 등장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매미의 이 전략은 종족 보존을 위해서다. 매미가 13년, 17년이라는 정확한 주기를 지키는 것은 일종의 인해전술이다. 매미의 천적은 너무나 많다. 새, 다람쥐, 거북, 거미, 고양이, 개 심지어 물고기까지 매미를 잡아먹는다. 이들 천적에 맞선 대응은 ‘남겨진 자의 생존’이라는 방식이다. 비록 천적에게 잡혀먹더라도 수십억 마리나 되는 매미를 한꺼번에 다 잡아먹을 수 없다는 계산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다 모든 매미가 물밀듯 동시에 세상에 등장하는 것이다.

또 천적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장 패턴을 천적의 성장 패턴과 달리해야 했다. 13년, 17년 같은 소수를 주기로 하면 천적과 마주칠 기회가 적어진다. 예를 들어 매미의 주기가 5년이고 천적의 주기가 2년이면 천적과 만날 기회는 10년 마다 온다. 매미의 주기가 17년이고 천적의 주기가 3년이라면 51년이 돼야 만날 수 있다. 주기가 소수인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주기가 짧았다가 점점 길어져 현재의 17년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매미처럼 처음에는 주기가 3년이었다가 천적과 만나자 5년, 7년으로 주기를 늘렸을 것이다. 그것도 부족해지자 다시 13년, 17년으로 주기를 늘렸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17년이라는 숫자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된다면 19년 매미가 나오게 될 것이다. 결국 천적의 수명이 몇 년이건 간에 소수로 이루어진 성장 사이클이 안전장치로 놓인다.

자연의 신비는 늘 우리를 경탄케 만든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매미의 인내가 보상받을 때가 됐다.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곧 시작될 17년 매미의 구애소리는 시끄럽겠지만 앞으로 2024년 여름이 돼야 다시 들을 수 있다. 17년을 기다려야 하는 미국 매미에 비해 자주 나올 수 있는 우리나라 매미들은 행운인 것 같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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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6-2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라운 자연의 힘!

무스탕 2007-06-2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에 티비에서 보니까 하루살이 유충은 물속에서 2년을 살다 물 밖으로 나와 하루만 살다 죽느다는군요. 하룻동안 번식만 하고 죽는거에요..
그걸 보면서 왜 전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을까요..? -_-;

마노아 2007-06-29 10:45   좋아요 0 | URL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더라도 그 하루가 생의 전부로 알고 치열하게 살테죠? 인간은 인생이 끝없이 이어졌다고 믿고 함부로 살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내일 당장 죽을 것을 안다면, 오늘 하루를 얼마나 치열하게 소중하게 살겠어요. 뭐, 남의 얘기가 아니죠^^;;;

비로그인 2007-06-29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깊은 글입니다. 마노님의 댓글 역시 지당한 말씀입니다.

마노아 2007-06-29 18:20   좋아요 0 | URL
지당당당~ ^^;;;;

비로그인 2007-06-30 10:37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핫 !!!!

마노아 2007-06-30 18:50   좋아요 0 | URL
코코코^^;;;
 

갤러리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듯 김훈의 문장은 독서하는 눈길을 오랫동안 멈추게 한다. 안개 낀 차밭을 휘어 감으며 조용히 그리고 묵직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을 바라보는 심정이 되곤 한다. 김훈의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위대한 무엇과 대면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새삼 말을 말답게 하는 작가의 소명을 떠올리게 한다.

원고지와 연필, 그리고 지우개를 사용하는 언어의 장인. 원고지와 대면한 그의 모습에서 불상을 조각하는 장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칼의 노래』『현의 노래』『강산무진』 그리고 『남한산성』까지… 자기만의 소설 미학을 완성하고 있는 김훈을 만났다. 그는 작업실에서 연필을 깎으며 글을 쓰고 있었다.

“작업실은 언제 마련하셨어요?”

“이쪽으로 온 지 이삼 일 정도 돼요. 집에서는 일을 잘 못해요. 인기척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김훈의 작업실에는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가지런히 놓인 선글라스(계절별로 쓰는 것이 다르단다). 조그만 칠판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글이 쓰여 있었고, 책상에는 작은 구식 저울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 다 쓴 몽당연필을 올려놓는다.



“선글라스가 왜 이리 많아요? 네 개나 있네요!” “모두 용도가 달라요. 계절별로 쓰는 선글라스가 따로 있거든요.” 제일 위 은색 테두리 선글라스는 겨울에 쓰는 거다.

“칠판에 왜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라고 쓰셨어요?”

“군대 있을 때 총을 매일 닦고 조이고 기름치라고 배웠어요. 그래야 그 총이 오래가고 녹이 안 슬고 제대로 기능을 하죠. 군인에겐 총이 생명이니까. 하루를 엄정하게 관리하자는 뜻인데… 군대 다녀온 지가 35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저걸 써먹고 있네요.”

“조인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흔들리지 않게. 문장도 그렇게 조여야 하지요.”

“책상 위에 저울은 왜 올려놓으셨어요?”

“이 저울은 할아버지 소지품이에요. 한의사셨던 할아버지가 한약재의 무게를 재기 위해 이 저울을 사용하셨는데, 난 몽당연필을 올려놓지요. 몽당연필이 쌓이면 이 저울이 내려가요.”

작가들은 항상 글을 쓰는 것, 소설을 쓰는 것은 무척 지루한 작업이라고 고백한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 식 소설 쓰기’를 권하고 -정해진 책상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글이 써지든 안 써지든 앉아있는 것-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은 만년필 잉크를 확인해가며 글을 쓴다. 어쩌면 김훈도 쓰는 만큼 늘어나는 몽당연필 때문에 기울어지는 저울을 보면서 지루함을 이겨내고 다음 장을 쓸 힘을 내는 것일지도….

“여전히 원고지에 연필과 지우개로 소설을 쓰시나요.”

“네.”

“연필은 몇 자루 정도 쓰셨어요?”

“연필이 수도 없이 들어가죠. 몇 장 못 써요. 없어지는 것보다 깎아서 없어지는 것이 더 많아요. 참 아까워요.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연필이 독일산이네요? 독일산이 좋은가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 이 질감이 익숙해져서….”

“작업은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하시는 편인가요?”

“그렇게 하면 참 좋을 텐데. 저는 아침에 작업실에 와서 책상에 앉으면 한 장이나 반 장 정도 쓰면 그날 일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내가 알아요. 오늘은 안 되는 날이구나 싶으면 나가서 놀죠. 그런 날은 앉아 있어봐야 일이 안 되니까. 오늘은 되는 날이다 싶으면 하루 종일 앉아서 쓰지요.”



그는 연필로 글을 쓴다. 원고지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가며. 다 쓰고 남은 몽당연필은 저렇게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저울은 소설가 김훈의 할아버님이 쓰시던 거다. 김훈의 할아버님은 한의사셨다.

“주로 뭐하고 노세요?”

“(갑자기 목소리가 밝아지면서)저는 노는 날은 들에 나가서 혼자 뛰어놀아요.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들판이 많이 나와요. 좋아요.”

“혼자 노는 걸 좋아하세요?”

“죽 혼자 놀았어요. 들판 뛰어다니고, 등산도 혼자 다녀요. 여럿이 다니면 시끄럽고 내 계획에 따라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안 따라오는 놈도 있고 모이라 하면 잘 안 모이고.”

“소설가로 사는 건 어떠세요? 노는 것만큼 재미있으신가요?”

“혼자서 하니까 아무런 구속이 없잖아요. 그것이 참 좋아요. 자기가 자기를 단속하고, 자기가 자신을 규율해 나가야 하니까 철통 같은 자기 규율을 해나가야 하지요. 그것이 매우 힘들어요. 나같이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는 나가서 놀고 싶지요. 이것을 견디고 자기가 자신을 다스려 나가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먹고사는 건 어떠세요? 요즘 글 써서 밥 먹고 살기 힘들다던데요.”

“저는 겨우 먹고살아요. 책 팔아서 약간의 수입이 생기잖아요. 그 수입을 가지고 다음 책 나올 때까지 버티면 되니까…. 책이 나오면 또 약간의 수입이 생겨서 다음 책 나올 때까지 살고,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고 갈 때가 되겠죠. 그러면 가면 되겠죠.”

마이 페이스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소설가다. 그는 영화도 잘 안 보다고 했다. 왜 안 보느냐니까 ‘답답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 흐름에 상관없이, 세상 사람이 뭐에 관심을 가지는지 신경 쓰지 않아 낙후되어도 좋다. 시대의 뒷전이 되어 그저 혼자서 재미나게 들에서 노는 게 좋다고. 그런 그의 낙후성이 부러웠다.



김훈과 자전거 미니어처. 그리고 그의 책 『남한산성』

“어느덧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네요,『남한산성』은.”

“내가 옛날부터 역사를 배경으로 하자고 생각한 것이 세 편이었어요. 이순신, 우륵, 남한산성. 이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쓰지 않을 예정이에요. 『칼의 노래』 이순신, 그 사람은 영웅이죠, 영웅. 군사적인 영웅이죠. 『현의 노래』 우륵은 예술의 영웅이고. 한 사람은 무기를 든 영웅이고, 또 한 사람은 악기를 든 영웅이죠. 남한산성은 영웅이 아니고, 치욕의 역사지요. 영광의 반대. 내가 쓸 건 다 썼어요.”

“병자호란에 끌리신 이유가 있나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했어요. 성안에는 일만 명 정도의 군사가 있었고, 45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있었고, 간장이 220독이 있었고, 약간의 화약이 있었고…. 적은 20만 명. 청나라 태종이 이끌고 온 가장 우수한 군사들이 성을 둘러싸고 있었어요.

완전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47일을 버텼는데 성안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싸우자는 사람도 있고, 빨리 나가서 항복을 하자는 사람도 있고, 주전, 주화. 아무 얘기도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오늘은 이 말 했다 내일은 저 말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성을 일찌감치 빠져나가 달아나는 사람도 있고 오늘은 끝까지 싸우자고 했다가 다음 날 달아나는 사람도 있고, 성 밖에도 성 안으로 들어가야 살 수 있다고 해서 성 안으로 들어오는 자도 있고, 자살하는 자도 있고,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람도 있고… 별놈이 다 있지요. 난 그 다양한 모든 인간에게 다 그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한 거죠. 나름의 정당성과 내적 필연성이 있는 것으로 봤고, 또 그것을 드러내려고 했죠. 총체적인 비극의 전체적인 모습을 들여다보려 한 거죠.”

“소설 속 인물 중 공감이 가는 인물이 있는지요.”

“저는 작가의 말에 밝혔지만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김상헌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주전파, 군사적 현실을 망각한 사람.”

“칸은요?”

“아주 무서운 리더죠.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던 부족들을 통일하고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서 청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명을 청으로 바꾼 무서운 리더. 힘 자체.”

“선생님은 그런 절대적인 힘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신가요? 권력이 아니라 힘 자체.”

“좋아한다기보다는 이십 세기가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악의 모습. 그러나 근원적으로 회피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왜 악인가요?”

“그것은 남의 자율적 삶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발로 부수고 밟아버리고… 남이 남으로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지금과 그때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외양은 달라졌지요. 하지만 다르지 않죠. 본질적인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한미 FTA 도 그렇죠. 그때나 지금이나 악한 시민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죠. 더불어 그들과 싸우면서, 그들과 더불어 시달리면서 저항하면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어요. 그러한 세계사의 고통을 해결할 길이 없잖아요. 그렇게 시달리면서 지지고 볶으면서 그럴 수밖에 없지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그는 매일 칠판에 적어놓은 이 문구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인조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설에서 인조라는 인물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모든 국면을 다 들여다보는 그런 인물로 그리려 했어요. 뚜렷한 행동이나 말이 없는, 언질로만 알 수 있는 베일 속의 인물. 인조는 비극적인 상황을 자기 몸으로 정리한 사람이에요. 올바른 삶의 길을 간다고 할 수 있지요. 그 이외에는 길이 없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가 살아야지요. 그런 결단을 내린 인조가 훌륭했다기보다는 삶의 길이 그러한 거죠. 인조는 그 길을 간 것이고요.”

“그때의 리더와 오늘날의 리더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강한 외세와 더불어, 그들과 싸우면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조국의 운명이 갑갑한 것이죠. 앞으로도 그러할 텐데… 홀로 살 수는 없는 거예요. FTA라는 것도 그런 것이겠죠. 싸우면서 또 함께 어려운 것이죠. 하지만 피할 수는 없는 거죠.”

“약한 나라의 숙명이네요.”

“우리는 어쨌든 어떤 시대가 되었든 살아남아야 하는 거예요. 살아남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운명 속에는 영광과 자족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치욕과 굴종도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다 합쳐가면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거죠.”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았다. 현실을 이야기할 때면 느껴야 하는 갑갑함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한신처럼 바짓가랑이 아래로 기어가는 치욕만큼은 아니지만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모욕과 타협, 변명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분위기를 바꿔볼 생각으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번 소설은 문장이 짧아진 듯한데요.”

“문장이라는 것은 소설의 주제에 맞게 문체를 변형해 나가는 것이지요. 저는 사실 긴 문장을 썼는데 이번에는 짧은 문장을 썼지요. 물론 여기서도 긴 문장, 아주 긴 문장도 있죠. 긴 문장과 짧은 문장 사이에서 리듬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지요.”

『남한산성』을 집필하시는 데에는 얼마가 걸렸나요?”

“준비한 것은 3년 전인데 쓰는 것은 7개월 정도. 매우 더뎠어요. 『칼의 노래』는 오래전부터 준비를 했지만 거의 두 달 만에 쓴 거거든요. 『현의 노래』는 한 달 만에 썼고요. 이것은 일곱 달이 걸렸으니까 나로서는 엄청 힘이 든 거죠.”

“왜 힘이 많이 드셨어요?”

“우선 기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고 등장인물이 많았어요. 인물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그려놔야 하니까.”

“이번 작품 만족하시나요?”

“저는 소설을 끝낸 후에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교정도 안 봐요. 출판사에 갖다주면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가끔 책이 내 앞에 있으면 보는데 한 줄 읽어보면 아, 이게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썼을까 싶어요.”

“선생님 단편도 좋아하는 독자가 참 많은데요. 단편에서 다루시는 소재와 장편에서 다루시는 소재가 참 다른 것 같아요.”

“분량이 짧으니까 수다를 떨 길이 없는 거죠. 글을 아껴서 써야 하잖아요.”

“단편 쓰는 것 재미있으세요?”

“단편은 생각보다 재미는 있어요. 원고지 100장에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지만 성공하기가 참 어렵지요. 그리고 그것은 돈이 안 돼요. 단편소설 하나에 팔십 만원, 5만 원은 세금으로 떼요. 전 단편 하나 쓰는 데 석 달 걸려요. 아무 일도 안 하고 구상에서 탈고까지…. 그러면 그것 쓰는데 내 비용이 들어가요. 취재 다니고 자료 수집하고 담배 피워야 하고 원고지랑 연필을 사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십 원도 안 준다는 거잖아요. 할 수가 없죠. 좋아도 쓸 수가 없어요. 먹고살 수가 없으니까. 문화의 기초라고 하는 문학하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가 없다면 그것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그는 시무룩하다. 셔터를 누른 후 뷰 파인더를 들여다 보고, 자못 어두운 얼굴로 “화난 표정 같아요”라고 말을 하고, 다시 카메라 너머에 있는 그를 보니, 그가 웃고 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


예전 한 강연회에서 왜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에 그는 ‘밥벌이’라고 짧게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단지 ‘밥벌이’를 위해서 글쓰기라는 지루한 노동을 견디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쓰기는 그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영원히 그곳에 수렴되기만 하는 아득한 치욕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무릅쓰고 오늘도 작업실에 앉아 모호한 언어와 씨름을 하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다. 그리고 그렇게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달려드는 작가를 통해 독자는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리라.

인터뷰 / 김정희, 글 / 류화선

출처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1&cont=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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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6-2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마노아 2007-06-29 09:51   좋아요 0 | URL
앗, 로쟈님이닷! ^^

stella.K 2007-06-2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읽었는데...

마노아 2007-06-29 12:53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도 보셨군요. 유명세 덕분인지 인터뷰가 참 많아요. 대체로 중복되는 내용이 많은데 아랫부분 인터뷰 내용은 신선했어요. ^^
 

이번에 당첨된 것은 사실 콘서트는 아니고 전시회다.



게다가 장소도 가까워서 더 반갑다.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하니 이번 주는 힘들겠다.

전시회 기간 내에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는 걸까?

요 며칠 행운이 쏟아지고 있다. 드팀전님 이벤트 당첨! 멜기세덱님 이벤트 당첨! 서평단 도서 당첨!

우헤헷, 거기에 모차르트 전까지.

비올 때 절대로 비 맞지 말아야지. 머리 벗겨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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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7-06-2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발표 봤어요. 축하해용~ ^^*
편안한 시간에 좋은 구경 하고 오세용~ ^^*

마노아 2007-06-28 18:15   좋아요 0 | URL
헤엣, 무스탕님 덕분이에요~ 이런 게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거든요^^

마늘빵 2007-06-28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나는 아직 연락없던데;;;
이거 되면 메일로 오는거죠?

마노아 2007-06-28 18:35   좋아요 0 | URL
전 문자로 와서 홈페이지 들어가서 확인했어요^^ 메일로는 연락이 안 왔네요.

물만두 2007-06-28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아요. 가발 요즘 잘 나와요=3=3=3

마노아 2007-06-28 23:08   좋아요 0 | URL
으헤헷, 요샌 몇달에 한 번 벗는 반영구 가발도 있다던데6^^

하늘바람 2007-06-29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려요 부럽당

마노아 2007-06-29 08:57   좋아요 0 | URL
히히, 감사해요^^
 
식객 6 - 마지막 김장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이번 이야기에는 자잘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

큰 제목은 마지막 김장인데, 아무래도 워낙 오래된 전통음식인지라 할 이야기가 좀 더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작품 속에서는 김장김치를 하면서 식구들이 모여 가족애를 다지고 우리의 맛과 멋을 살린다!라는 취지를 강조하는데, '며느리'들에게 김장김치가 얼마나 고역일까 생각하며 큰며느리의 주장이 나쁘진 않게 보인다.  그러나 또 사서 먹는 김장 김치란 게, 편하기는 하겠지만 고유의 맛이 아닌 규격화되고 획일화된 것이어서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 음식의 맥은 이어야겠고, 귀찮고 힘든 것은 싫고... 참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작품 속에는 퇴사당하고 집안에서 가장의 권위가 사라진, 그래서 주눅들어 어깨가 무거워진 가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이고 여전히 안타까운 사회문제라고 하겠다.

과메기라는 생선은 이름만 들어보았지 어떤 맛인지도 모르고, 얼마만큼 유명한지도 몰랐던 내게 과메기 이야기는 제법 흥미로웠다.  포항에 내려간 한기자가 오매불망 원하던 서울행을 포기할 만큼의 맛이라니, 내 상상으로는 얼마만큼의 환희를 준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한기자가 마지막에 다음 겨울을 기다리며 전통적인 방법으로 과메기를 완성시키겠다고 하며 묘사한 구절은 몹시 인상 깊었는데, 운치 있다라는 말이 잘 어울리겠다.

여기는 8.000m는 허영만 화백이 직접 K2를 다녀온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들을 바탕으로 구성했는데 짧지만 알찬 구성이었다. 도저히 음식을 먹고 소화시킬 수 없을 만큼의 높은 지대에서 돌아가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상상한다는 것, 어쩐지 짠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었다.

빙어 이야기는 진수와 성찬의 소소한 싸움과 화해의 과정을 그렸는데, 나름대로 둘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생으로 먹는 빙어가 나로선 끔찍하게 느껴지는데, 맛을 모르는 나의 무지함의 소치일 테지..;;;

대게 승부는 이번 편에서 가장 재밌게 본 이야기이다.  '대결'이 나오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대게의 그 탐스러운 맛이 절로 연상이 되어서 더 공감이 갔던 듯 싶다.  마지막에 대게 라면이 사진으로 나왔는데, 국물이 얼마나 얼큰할까를 상상하며 역시 군침을 삼켰다. 엄청 고가일 테지만, 그래도 맛은 제대로 보장해주지 싶었다. 

나의 직장동료는 한약으로 식욕을 억제해서 다이어트 중인데, 3주 동안 500g만 빠지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맛의 즐거움을 억제한 그녀에게 이 책을 보여주고 싶다.(그러다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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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L 2007-07-0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주 동안 500g 이면... 환불하셔야 하는건가요 ㅎㅎ

마노아 2007-07-03 14:5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만 때려치우라고 권하고 싶어요.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