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쓴 대니얼 고틀립은 심리학자이면서 가족문제치료 전문가이다.  그러나 또 동시에 그는 척추손상으로 전신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전문상담가로서 4년 째 활동하고 있던 서른 셋 젊은 나이게 사고를 당했고,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날아간 듯한 충격에 빠져 지내기도 하였다.  그 후 아내와의 이혼, 가족들과의 사별로 많은 아픔을 겪은 그는, 둘째 딸의 아들 샘이 자폐아 진단을 받으면서 또 다시 수렁 속에 빠지는 듯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장애와 싸우며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가꿔온 것처럼 손자 샘 역시 자폐를 이기고 삶을 지혜롭게 꾸려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이 편지를 샘이 읽고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박사는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옛 이야기 들려주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 어떤 비바람을 맞았는지, 그리고 다시 열매를 맺어 새로운 싹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저 듣기 좋은 잠언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인생경험에서 알게 된 처연하고도 진솔한 이야기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적시고도 남음이 있다.  지금도 계속 자폐와 싸우며 날마다 조금씩 자라가고 있는 샘 역시 할아버지의 그 마음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기를 나 역시 소망해 본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누군가의 도움을 끊임 없이 필요로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가혹하기도 하며 서럽기도 한 형벌이다.  그러나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박사의 가르침대로, 그들은 몸과 마음이 다친 것일 뿐 영혼이 병든 것은 아니니까.  그것을 그들 자신이 먼저 인지하고 당당해질 수 있어야 한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본 성분은 자신에게 이미 있다는 것을 알고, 믿고, 또 의지하는 것 역시 자신의 몫이다.

박사는 샘에게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샘의 부모가 샘을 키우는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당부도 꼼꼼하게 적어놓았다.  아이의 말에 귀기울여 줄 것, 아이의 싸움을 자신의 싸움으로 만들지 말 것 등등은 바다 건너 서로 다른 대륙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좋은 충고가 되고 있다.

샘의 그리고 우리의 하루하루가 소비적인 것이 아닌, 충분히 생산적인 시간들로 채워질 수 있는 지혜를 박사는 책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때로 눈시울을 적시며, 때로 부끄러운 반성과 함께 박사의 메시지들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활자가 크고 줄간격이 넓어서 책이 금세 넘어간다.  표지의 소박하고 따뜻한 느낌의 그림도 이 책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읽고서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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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절판


유대의 가르침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그 아기를 찾아간다는구나. 그리고 그 아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다 알려주시고는, 손가락으로 아기 입술을 지그시 누르며 "쉬"하고 말씀하신단다. 하나님은 그렇게 아기와 비밀을 간직하자는 약속을 하는 거야. 네 얼굴을 보면 코 바로 아래 부분, 윗입술 위에 움푹 들어간 자리가 있지? 인중이라 부르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지문이 남아있는 자리, 하나님과 네가 한 비밀 약속의 흔적이다.
-27쪽

샘,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냥 다른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명심해라. 네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34쪽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노여움이 치미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상대방이 없으면 내가 살 수 없다고 느끼는 관계라면, 그들은 감옥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가 아니다.
-41쪽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몸속에 다 있습니다. 필요한 영양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스스로 알아서 상처를 치유하죠."
의사의 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몸의 상처가 그렇게 치유된다면,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 것일까? 아기들이 태어날 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를 지니고 태어난다는 옛 예언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도 우리 안에 다 있을 것이다.
-55쪽

한 소년이 성경을 공부하고 있었다.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끙끙대고 있는데, 선생님이 탐스런 사과 하나를 손에 들고 다가와 말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은 이 빨간 사과 한 개에 다 담겨 있단다. 갖고 싶지 않니?"
소년은 벌떡 일어나 사과를 움켜잡으려고 손을 뻗쳤다. 그러나 손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펄쩍 뛰었다. 하지만 키 큰 선생님이 들고 있는 사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높이 뛰었다. 뛰고, 뛰고, 또 뛰고...... 그러나 매번 빈손ㄴ이었다.
미친 듯이 뛰던 소년은 녹초가 되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고는 움켜쥔 두 손을 자기도 모르게 벌려 앞으로 내밀었다. 가지런히 모은 두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들고 있던 사과를 소년의 손바닥 위로 툭 떨어뜨렸다.
-82-83쪽

누군가 빨리 와서 날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은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때로 그것은 곧바로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이 아닐 수도 있다. 그걸 받아들이고 싸움을 멈추자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99쪽

정신건강을 연구하는 많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간이 느끼는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이 부끄러움이다. 그들 말이 맞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게 되어 있다. ‘경명’을 당했다는 이유로 너무나 많은 폭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경멸이 진정한 원인은 아니다. 어떤 사람의 시선이나 말, 혹은 행동에서 스스로가 느낀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하는 게 오히려 맞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창피한 부분을 드러내면, 스스로 따돌림을 받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103쪽

샘, 네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감추고 싶은 부분이 드러나면 수치심을 느끼는 것처럼,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수치심을 치유할 수가 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마음의 자유는 그럴 때 얻게 되는 것이다.

-104쪽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역사라고 해서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용기를 갖고 맞선다면
그런 역사는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

-116쪽

샘, 네가 갖고 있는 문제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너와 내가 아무리 ‘원해도’ 네가 느끼는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통으로부터 도망갈 수도 없다. 하지만 네가 네 자신에게서 벗어나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네가 상상했던 것보다 네 그릇이 훨씬 더 크고 멋있다는 것을.
-131쪽

난 어머니가 나선 것이 만족스러웠다. 나를 위해 싸워서가 아니라, 날 믿고 내 이야기를 들어준 게 뿌듯했다. 어머니는 내가 도움을 요청한 후에 도움을 주었다. 당신 혼자 알아서 판단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 싸우되, 그것을 당신의 싸움으로 번지게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아들을 믿고 이해하는 차원이었다.
-154쪽

샘, 네가 엄마 아빠를 생각해주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가족이 서로를 보살펴주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도 흔치 않다. 하지만 부모의 짐을 네가 대신 짊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면, 그러니까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자기 몫의 삶을 누리지 못하면, 그건 자기 영혼을 저당잡히는 것과 같다. 부모가 자기 영혼을 저당잡히면 그 이자는 고스란히 자녀들이 갚아야 할 빚이 되고 만다.

-156쪽

샘, 부모는 언제나 부모일 수밖에 없고, 자식은 언제나 부모의 인생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식과 부모는 서로 보살펴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보살피는 방법은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드리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스스로를 잘 보살피는 것이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그 아이들도 자기 미래를 행복하게 내다본다.
-160쪽

랍비인 내 친구가 알려준 것인데, 성경에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번역된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은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여행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여행이기도 했던 것이다.

-163쪽

벼랑으로

"벼랑으로 오렴!"안돼요...... 무서워요."
"벼랑으로 오라니까!"
"안돼요...... 떨어지잖아요."
"벼랑으로 와!"
마침내 벼랑으로 가니, 그가 나를 밀었네.
나는 날아올랐네.
-166쪽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기쁨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아라. 혼자 알아내는 것보다 함께 발견하는 기쁨이 훨씬 큰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알고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이의 곁을 지키는 존재를 넘어,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지키는 존재가 될 수 있다.
-171쪽

네가 자폐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자폐증이 곧 너는 아니다.
-193쪽

우리에게 붙여진 ‘꼬리표’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한테 말조차 걸지 않거나 우리를 믿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척추손상으로, 넌 자폐증으로 단지 남들과 모습이 다르고 행동하는 방식이 다를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노마가 내게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다. 샘, 우리 이렇게 말하자.
"할아버지는 몸에, 저는 마음에 사고를 당했어요. 하지만 우리 영혼이 다친 건 아니에요."

-193쪽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누군가와 친밀한 시간을 보내며 그 사람의 이야기에 누구보다 더 귀기울여 들어주었을 때, 그로 인해 어떤 사람이 이전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하루는 의미 있는 하루다. 그럴 때 나의 하루가 생산적이었다는 느낌이 들고, 그런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게 된다.
-199쪽

모든 아픔은 과거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전에 무엇을 가지고 있었든, 예전에 어떤 존재였든 관계없이 말이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고통을 낳는다. 사람들은 고통이 빨리 사라지지 않으면 스스로를 탓한다. 고통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자신이 강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또 자기가 애초에 너무 나약했기 때문이라고,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상처는 그렇게 치유되는 게 아니다. 상처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다. 상처는 그 자체의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아무는 것이다.
-209쪽

네가 입은 상처가 아무리 깊더라도, 그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네 안에’ 있다.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고통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보살펴주면 된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212쪽

네 이력서가 성공의 잣대가 된다 하더라도, 네 영혼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부나 명예가 아니라 누군가를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사랑하는 성인으로서의 책임 말이다.
샘, 사랑하거라, 어제보다 조금 더!

-224쪽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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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KBS에서 추석 특집 낙산사 선사 음악회?

하여간 그런 프로를 했었는데, 마지막 무대를 장사익씨가 장식했다.

어찌나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시는지, 감탄에 감탄! 지금도 찔레꽃 향기를 듣고 있는데 아까 들은 라이브가 훨 멋졌다.

나중에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장가가게 된 친구녀석이 짐정리 하느라 그 집에 맡겨둔 내 만화책들을 차에 싣고 왔다.

침묵의 함대, 해피, 슬램덩크, 바사라, 그밖에 낱권.... 32+23+25+10+5=95

대략 100권에 해당하는 책.  몇 주 전에 사둔 MDF박스를 세칸 비워뒀는데 우격다짐으로 집어넣었다.

그거 올리다가 바퀴 의자 위에 올라갔는데 의자가 미끄러져서 떨어졌다. 흑....ㅠ.ㅠ

팔이 다 쓸려버렸다. 무릎도 멍들고... 엉엉... 아프다..ㅜ.ㅜ

넘어지면서 소리가 요란했고, 몰래 만화책 숨기던 중이었기 때문에 엄마한테 한소리 듣겠구나 걱정했는데,

엄마는 상처가 크지 않다고 다행이다고 하셨다.(물론 만화책 얘기도 하셨지만.)

어쨌든 쪼오금 뭉클했다.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얘길 들어보니 예단은 양가 부모님 옷 한벌씩 해주는 선에서 끝내고 서로 안 주고 안 받기로 했단다.

예물도 커플링 하나씩에 신부 가락지 한벌 해주는 것으로 끝냈다고.

현명한 선택이었노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준비에 속한다.

 

녀석의 소개로 서울역에 Book Off란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월요일쯤에 같이 가보기로 했는데 죄다 일본어로만 쓰여 있음 어쩌지?

좋은 만화책을 좀 건졌음 좋겠다.  음반도 모두 일본 것만 있으려나?

 

저녁에 언니랑 본 얼티메이텀을 보기로 했다.

우훗~ 와방 기대 중(>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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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2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장사익에서 내 감상은 스톱, 정말 작은 거인이야요! 광주공연에서 보고 홀딱 반했던 사람...
애들 아빠가 가족나들이 갈때마다 '찔레꽃'을 어찌나 방방 틀어댔는지...우리 애들 귀막고 난리쳤는데, 헉~ 어느 날부턴가 가족이 합창모드로 소리높여 부르고 있는거예요.ㅎㅎ~ 그래서 우리가족의 주제곡이 되었다지요 아마!

마노아님, 엉덩이가 얼마나 아플지 느낌 팍팍 ~옵니다. 쓸린 팔은 또 어째요~~ㅠㅠ
우리아들녀석에게 중계방송했더니, 만화책에 부러움 UP~~~~ ^*^

마노아 2007-09-22 23:46   좋아요 0 | URL
직접 보셨군요. 와우, 라이브로 들었다면 감동 백만배일 것 같아요.
저도 찔레꽃 열심히 연습해서 나중에 현장에서 들을 때 따라 불러야겠어요^^
엉덩이는 전혀 안 아픈데 오른쪽 팔이 아직도 쓰라려요. 살껍질이 다 일어나버렸어요. 흑...ㅜ.ㅜ
만화책은 많아서 좋지만 내놓고 못 봐서 서글퍼요. 크흑....ㅠ.ㅠ

Mephistopheles 2007-09-2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분 아드님은 어디서 뭘하시는지 요즘 안보이시더군요...

마노아 2007-09-22 23:46   좋아요 0 | URL
아드님 이름 공개됐나요? 관현악단에 있다는 것 말고는 모르겠어요.
아드님이 가수하면 노래 엄청 잘 할 것 같아요^^

Mephistopheles 2007-09-26 15:08   좋아요 0 | URL
헉..저는 조롱달님하고 잠깐 착각을 했습니다..
조롱달이라는 분도 국악하시는 분인데 아들은 조관우랍죠..^^

마노아 2007-09-26 17:54   좋아요 0 | URL
우왓! 조관우 아버님 이름이 조롱달이에요? 엄청 독특한 이름이군요.
아드님 창법은 국악과 거의 상극이네요^^;;;

BRINY 2007-09-22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ook off서울역점은 우리나라 중고도서도 취급해요. 일본원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구요.

마노아 2007-09-22 23:47   좋아요 0 | URL
오홋, 울 나라 도서도 있군요. 다행이야요. 일본책은 봐도 몰라요. 너무나 머나 먼 외계어..;;;;;
 
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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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내가 좋아하는 많은 지기님들이 극찬했던 그 책. 
관심을 가진 책에서 꼭 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것은 어느 분의 서재에서 본 한 구절 때문이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를 사랑한 적이 없는데 누구에게 그를 죽일 권리가 있는가라는 허탈한 질문과 함께.

 
   

책을 펼쳐 보니, 먹먹하고 막막한 인생은 저 이 한사람 뿐이 아니었다. 너무도 많은 목숨들이 먼지처럼 사라져간 노동 현장.
잃어버린, 아니 처음부터 갖지 못한 그들의 권익, 이땅 수많은 노동자. 모르고 살았지만 나 역시 그 중의 한 사람.

가난이 싫고, 차별하는 아버지가 싫고, 열심히 돈 벌어 동생들 뒷바라지도 하고, 못다한 공부도 다 하리라 청운의 꿈을 품고 강화에서 부산으로 갔던 김진숙씨. 십대의 그 나이에 세상의 강퍅함을 온 몸으로 받아낼 그 때에도, 자신의 남은 인생을 노동운동에 바치게 되리라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말못할 핍박이 해일처럼 밀려올 거라곤, 그분 역시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운명처럼 숙명처럼 안게 된 노동운동 덕분으로, 누군가는 권익을 찾기 위해 투쟁을 하고, 연대만이 살길이라며 두 손 맞잡고 힘을 보태었을 것이고, 이렇게 책 한권으로 그 마음들을 짐작해 보는 사람들도 있게 되었다.  그 눈물과 그 희생, 그 열정 모두에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나였다면 못했을 거라고, 착잡한 변명과 함께......

수출 강국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 그 이름의 견고한 성을 지키기 위해 너무도 많은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했다.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살이거나 본인부주의로 죽었다고 치부되고 말았던 기막힌 목숨들,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부당해고가 이어지고, 복직은 너무나 소원하고, 단식투쟁 끝엔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바라보며 다시금 져버리는 목숨들.  그리고 그 가난이 대물림되고, 가진 자는, 자본은 여전히 승승장구, 죄를 짓고도 옥살이 한 번 안하는 이 나라.  노동자의 희생의 역사 속에 이 나라 현대사가 고스란히 맞물려 있다.  그리고 그때 피눈물 흘렸던 이들의 자녀들은 다시금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시간을 되밟고 있다.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이야기임을, 정규직의 미래가 곧 비정규직임을, 연대만이 곧 살길임을, 애석하게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하며, 그들의 생존싸움이 나의 불편함보다 하찮게 여기며 살고 있다면, 당신 역시 이 땅의 무지한 죄인.

뉴스를 보다 보면, 얼마만큼의 사실과 진실이 보도되고 있는 것인가 궁금해진다.  신정아 사건이 한참 뜨면서 정몽구 사건은 잊혀져 가고, 그와 비등한 사건들은 모두 잠재워져 갔다.  수년 전 연예인 X파일이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할 때에는 민주노총이었던가... 한참 파업 투쟁이 있을 때였는데 뉴스에서 쏙 사라졌었다.  의도적인 부풀림, 눈속임 속에서 더 중요한 이야기들, 더 급한 문제들이 잊혀져 간다.  소말리아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선원들처럼.

아끼고 아꼈던 사탕 한알이 독극물 검사까지 받아야 하는 간첩의 공작물로 치부되던 안기부 그 시절 이야기가, 사실은 지금도 음지에서 생존하게 만들어 주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는 나라. 대선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경제강국으로 만들어 국민소득 4만불로 올리겠다고 큰소리 탕탕 치고 있지만, 그의 화수분 주머니는 문제삼지 않는 민주 대한민국.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경제'만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이 나라의 눈 먼 사람들. 갑갑하고 서글프고, 그리고 챙피해지기까지 하는 우리 사는 세상.

그 안에서, 그래도 희망 꽃피우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막연한 기대를 갖기에는 산재해 있는 문제들이 너무 커서 어설픈 웃음마저도 지어지지 않는다.  한미FTA라는 묵직한 이름 한 방이면 그대로 게임 끝일 것 같아서.  그렇게 걱정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는게 더 한심해서, 책을 덮으며 한숨과 함께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이런 세상을 살았다고, 그 세상이 지금도 이어진다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책이라도 쥐어주고, 뉴스 한자락에서도 뼈있는 이야기 한자락 더 보태기라도 하면, 내 부끄러움이 조금은 줄어들까.  그것으로 내 부채감이 가벼워질까.

묵직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지만, 저자의 글솜씨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슬픈 사연들에 이런 감탄사를 붙이는 게 미안하지만, 정말 명문장이었다고, 심장을 뒤흔드는 여운을 내내 전달해 주었다고... 눈물 한 방울 아니 흘릴 수가 없었다고, 사족처럼 붙여본다.

이 책을 알게 해준 바람구두님, 선물해 주신 조선인님 감사합니다. 꾸벅(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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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7-09-2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오늘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했었는데...(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썼나 읽어보고 있었지요) 님의 글을 읽으니 그냥 관둬야 할까,하는 생각이 살짝 드네요. 한가위 잘 보내세요^^

마노아 2007-09-22 17:14   좋아요 0 | URL
엄훠, 무슨 말씀이세요. 느티나무님의 느낌을 어서 전달해 주세요(>_<)
느티나무님의 한가위도 풍성함 그 자체이기를, 몸과 마음이 다 채워지는 명절을 기원해요~

2007-09-22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2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법천자문 2007-09-2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연대만이 살 길이라니 지금 고대는 완전히 무시하시는 건가요??

마노아 2007-09-22 18:43   좋아요 0 | URL
미안해요. S대도 눈에 안 들어오고 있어요(>_<)

프레이야 2007-09-2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람구두님과 글샘님의 소개로 이 책을 샀지요. 어서 읽고 또 한번 아파야겠어요.
편히 살면서 사회적 감수성이라도 무뎌지지 않으려면요.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신
마노아님의 글 잘 읽었어요.^^ 위의 Parvati님 댓글이 ^^

마노아 2007-09-22 20:33   좋아요 0 | URL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되기 위해서 무뎌지면 안 되겠어요.
좋은 지기님들 덕분에 좋은 책도 만날 수 있으니 우린 참 복받았어요^^

홍수맘 2007-09-24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보면 맘이 무거워질까봐 자꾸 미뤄지게 되더라구요.^^;;;
이젠 챙겨봐야겠어요.
추석 잘 지내세여. ^^.

마노아 2007-09-24 09:09   좋아요 0 | URL
저도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읽기를 잘한 것 같아요.
홍수마님도 추석 잘 보내셔요. 보름달 보며 소원 꼭 비시구요^^

순오기 2008-08-0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m님이 4만이벤트로 원한 책이라 주문하며 땡스투~ 다시 알라딘에서 구매해요.^^

마노아 2008-08-04 07:26   좋아요 0 | URL
벌써 알라딘 구매로 돌아오신 거야요? 대단한 알라딘 사랑^^ 땡스투 고마워요~
 
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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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정말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처럼 처절한 가책 끝에 자살이라도 했을까. 국민의 대표로 국회에도 들어가고 정부 요직에도 들어가고 언론에도 들어갈 만치 그들은 개과천선한 걸까. 그들이 반성하는 말이나 사죄하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도대체 누가 그들을 용서한 걸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음지에서 번뜩거릴 필요가 없어졌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를 거치면서 그 눈빛들은 당당히 합법화되었으니까. 세상이 달라졌다고 얼마나 좋아졌냐고 믿어버리는 꼭 그만큼씩 그들은 자란다. 우리 머릿속에서 우리 가슴속에서 우리 눈 속에서.
-32쪽

회사 옥상에 높다랗게 붙어 있던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큰 간판이 언젠가 ‘수출강국’으로 바뀌어도 전혀 강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그 간판 아래 짓눌린 채 버려진 배추 잎사귀처럼 누렇게 시들어 가고 있었다.
-39쪽

더군다나 나는 어쩌자고 겨우 열아홉 살이었던 것이다. 순진하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라기보단, 무력했다. 무력하기 짝이 없다 보면 타협하게 되고, 타협에 길들여지다 보면 그게 사는 요령이라고 믿게 된다. 인간임을 끊임없이 부정당하다 보면 스스로 부정하게 되고, 오로지 연명하는 일이 지상 과제이자 존재 이유인 이들에게 인간의 품위와 계급적 자존감이란 깨달을수록 성가신 일일 뿐이다.

요즘 십대들이 무섭다지만 그때 십대들이 더 무서웠다. 먹고사는 일에 목숨 걸었던 그 무서운 십대들이 결국은 독재를 유지시켰던 균주였고 지금도 먹고살게만 해 준다면 인권이나 환경이나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건 삽시간에 나발이 되고 마니까.
먹고 살기 위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넘어간 일이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죽고 싶도록 부끄러웠으나 내가 무슨 힘이 있냐는 체험과 타협한 일은 오죽이나 많았겠는가.
-53쪽

출근을 재촉하는 그들의 처진 어깨가 오늘은 서글퍼 보이지만, 묵묵히 침묵의 강을 건너는 그들에게서 나는 거역할 수 없는 희망을 읽는다. 굴종의 강을 건너 본 사람만이, 그 강물이 다디단 꿀물이 아니라 빠져 들수록 깊디깊은 오욕의 수렁임을 안 것이기에......
-92쪽

아들만 둘을 낳은 부모에게 "자녀가 몇입니까."라고 물으면 "아들 둘입니다."하지만 반대의 경우엔 "딸만 둘입니다."한다지 않던가. 어쩌면 이 문제는 사상이나 운동성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본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107쪽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그 천금같은 사람들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한 웃음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고,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111쪽

노동 해방은 하루아침에 오는 것도 아니고 자본가들이 우리에게 베푸는 것은 더더구나 아닌, 우리가 투쟁으로 쟁취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이 땅 천만 노동자의 조직적 단결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염원이 하나가 되어 마침내 올려졌던 전노협의 깃발.
적들은 당신으로부터 그 깃발을 빼앗으려 했지만 당신은 죽음으로 기필코 그 깃발을 지켜 내셨습니다.
-116쪽

박창수 열사는 1981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배관공으로 입사하여, 1987년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으로 1990년 7월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에서 93% 찬성이라는 신화적인 지지를 얻고 당선됨으로써 그동안의 어용노조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듬해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산하 부산지역노동조합총연합 부의장으로 선출되었고, 대우조선노조 파업과 관련, 3자개입 혐의로 구속되어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구치소 안에서 의문의 부상을 입고 안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이틀 만에 병원 마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1991년 5월 6일). 그때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안기부의 전노협 탈퇴 압력에 저항하다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나 노태우 정권은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 벽을 부수고 열사의 주검을 탈취, 부검 후 ‘자살’이라고 발표하여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장례식은 최초의 전국노동자장으로 치러졌으며, 박창수 열사의 죽음은 그해 노동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118쪽

21년 된 노동자의 임금이 105만 원, 세금 떼면 80만 원, 그마저도 가압류로 12만 원.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늙은 노동자가 88일을 애원해도, 청와대․노동부․국회의원 누구 하나 코빼기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120쪽

애비 잘 만난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강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 책봉받는 나라.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님으로 재계 순위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님이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님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님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사장님이 재계 순ㅇ뉘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 억씩 빼돌리고, 한 달 수천만 원을 써도 재산이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 한 달 100만 원을 벌겠다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순이익 수백 억이 나고 주식만 가지고 있으면 수십 억이 배당금으로 저절로 굴러들어오는데, 2년치 임금 7만 5,000원을 올리겠다고 크레인까지 기어올라 간 그 사내가 얼마나 불가사의했겠습니까?
-121쪽

비자금으로, 탈세로 감방을 살고도, 징계는커녕ㄴ 여전히 회장님인 그들이 보기에, 동료들 정리해고 막겠다고 직장에게 맞서다 해고된 노동자가 징계 철회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100만 원 주던 노동자 잘라 내면 70만 원만 줘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겠습니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백 명이 달려들다가도 고작해야 석 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 품으로 돌아오는데, 그게 또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
‘조선강국’을 위해 한 해 수십 명의 노동자가 골반 압착으로, 두부 협착으로 죽어 가는 나라. ‘물류강국’을 위해 또 수십 명의 화물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자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 도시 대구, 전자 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들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 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쉰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참으로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섭습니다.
-121쪽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 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고스란히 되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123쪽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 놓고 아빠를 기다린 용찬이. 아빠 얼굴을 그려 보며 일자리 구해줄 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혜민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동지 여러분!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3년 10월 22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탄압 규탄 전국대회’에서
-123쪽

2002년, 한진중공업에서는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650명의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파업이 시작되었다. 회사는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김주익 지회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20명의 임금, 주택, 노동조합비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가압류를 함으로써 생활에 고통을 주는 동시에, 이들을 사법 당국에 고소, 고발하였다. 검찰과 경찰은 10월 1일 김주익 지회장을 포함한 여섯 명의 금속노조, 지회 간부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김주익 지회장은 높이 35미터의 85호 크레인 위에서 회사 측에 대화를 촉구하며 129일을 버텼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10월 17일 회사와 싸움을 계속할 것을 유서로 남긴 뒤, 재벌의 노동자 탄압에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뒤이어 10월 30일 15시 50분,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던 곽재규 열사가 85호 크레인 근처의 4도크에서 투신하였다.
-124쪽

준하야.
너마저 이런 세상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통일을 향한 발걸음들이
아직도 간첩이 되고 빨갱이가 되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평생을 일해도 집 한 칸 지닐 수 없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평생을 일만 해 온 애비들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잘리고
하루에 서른 여섯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밖에는 도무지 할 게 없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비정규직이라는 차별과 서러움의 이름을 수번(囚番)처럼 달고 살다가
그마저 쫓겨나 1년을 넘게 천막을 치고
그 천막에서 사계절을 맞고 보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세상에 남겨졌던 유일한 거처였던 그 천막마저 뜯겨 나간
어느 날 아침.
천막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빈자리에 무릎이 꺾인 채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어야 하는
이런 세상을 너한테마저 물려줄 순 없지 않겠느냐.
비정규직은 울고 정규직은 잔업과 성과금에 영혼을 파는
오로지 이 두 가지의 선택이 네 미래가 되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어린 자식들은 애비를 잃고 늙은 부모들은 자식을 잃는
이런 세상은 이제 끝내야 하지 않겠느냐.
-129쪽

IMF 시기에 김대중 정부가 한국중공업을 두산그룹에 헐값에 매각하면서 이름이 바뀐 두산중공업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2002년 노조 간부 여든아홉 명을 징계해고하고, 65억원 손해배상 청구, 노조원 재산 가압류 신청 등을 단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스물두 명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22년 동안 두산중공업에서 일해 왔던 배달호 열사는 두산의 부당 해고와 징계에 맞서 싸우다가 2002년 7월 23일 구속, 9월 17일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으나 모든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당했다. 노무관리 대상자로 회사의 감시를 받던 중, 생계를 담보로 회사에서 노조 활동 중단 각서를 요구하자, 2003년 1월 9일 가족을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회사 안 ‘노동자 광장’에서 분신했다.
-136쪽

길은 걷는 만큼 줄어든다. 이 길도 언젠가는 끝나게 될 것이고, 우리는 머잖아 우리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예전의 우리는 이미 아닐 것이다. 한나라당의 압승이라는 게 맹목적인 초종의 결과라는 것도 알게 됐고, 월드컵 경기장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고, 50만 원의 보상금을 받고 그 터전에서 쫓겨났던 철거민들의 눈물 위에 지어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축구공을 농락하는 선수들의 현란한 발재간보다는, 다섯 살부터 하루 300원의 임금을 받고 공을 만들다가, 강한 본드의 영향으로 일곱 살에 두 눈을 실명한 인도 소녀 소니아의 노동에 우리는 주목하게 될 것이다.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은 희망의 가치를 모른다. 좌절해 보지 않은 사람은 다시 서는 일의 거룩함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2006년 5월 31일 부지매 촛불 문화제에 참석한 뒤 조수원 열사를 추모하며
-141쪽

조수원 열사는 대우정밀에 입사, 병역 특례자로 편입되어 4년 6개월을 복무하던 중 노조 편집부장을 맡았다가 1991년 6월, 복무 만료 6개월을 남기고 해고되어, 병역 특례자의 신분을 박탈당했다.
1993년 마포 민주당사에서 38일 동안 단식 농성을 했고, 대우 그룹으로부터 1994년 5월 27일 복직 합의를 받아 냈다. 그러나 정부는 병역 문제가 복직 합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병역 특례 해고자들에게 입대할 것을 요구했다.
‘정든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어머니,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간절한 소망을 말하던 조수원은 1995년 12월 15일 새벽, 부당 징집을 거부하며 민주당 서울시 지부에서 목매어 세상을 등졌다.
-142쪽

돈만 있으면 판검사도 사고, 국회의원도 사고, 장관도 사고, 대통령까지 사 버리는 나라, 이 공화국은 누구의 공화국이란 말입니까?

-145쪽

산다는 게 날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전쟁임을 그땐 몰랐습니다. 목숨 부지하고 살아남는 게 얼마나 힘든 세상인지 그땐 참 몰랐습니다.
전쟁은 60년 전에 끝났다는데 날마다가 전쟁인 사람들. 1년에도 수십 명이 길바닥에서 개구리처럼 터져 죽고, 전쟁 때도 자살은 없었다는데 2002년 이후 죽어 간 예순 여섯 명 중 25%가 자살인 기가 막힌 사람들.
열사도 되지 못했던 개죽음들로 고속도로마다 스프레이 자국으로 남겨지는 사람들. 보릿고개 넘어선 지가 언젠ㄴ데 하루 한 끼는 물배로 채우는 날도 많다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보릿고개를 아직도 꾸역꾸역 넘고 있는 사람들.
-146쪽

죽어야만, 누군가 목숨을 바쳐야만 문제가 해결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동지 여러분! 비정규직은, 노동자도 되지 못하는 사람은 죽어도 안 됩니다. 분노가 조직이 되지 못하는 현실, 통곡조차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 모여 있는 잠시 동안은 동지지만 흩어져 이랗는 대부분의 시간은 적이 되고, 경쟁 상대가 되는 현실.
죽은 사람을 묻어 줄 용기나 결단이 없다면 죽은 시체의 미숫가루를 훔쳐 목숨을 부지하는 전쟁 같은 삶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2005년 10월 1일 김동윤 열사 정신 계승 촛불 문화제에서...
-147쪽

화물운송 노동자는 일명 지입제라는 ‘차량위탁관리’ 형식의 불평등 계약에 따라, 책임은 사업자처럼 무한으로 지고, 권리는 노동자처럼 침해받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2005년, 고유가와 어려워진 경기로 김동윤 열사도 이미 1,200만 원의 부가세 체납자가 되었다. 그해 추석을 앞두고 경유가 인상분에 대한 유류 보조금 환급이 있었는데, 환급 과정에서 세금과 과태료 등 미납자의 보조금을 압류키로 하였다. 김동윤 열사도 6개월 만에 환급받은 유류 보조금 420만 원 전액을 세무서에 압류당했다. 장시간의 노동과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극심한 압박 속에서, 2005년 9월 10일 오전 10시경 부산 신선대 부두 정문 앞에서 유가 보조금 압류 현실에 분개하며 분신, 죽음으로 화물 노동자의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148쪽

이제 아무도 기적을 말하지 않을 때
온몸으로 기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우리가 단지 역사를 추억할 때
스스로 역사가 되어 가는 사람들.
서러움이 뭔지를 알려거든 그들을 보라.
우리가 잃은 게 뭔지를 알려거든 그들의 눈빛을 보라.
연대를 말하려거든 100일째 펄럭이는 천막엘 가 보라.
우리들의 미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몹시 궁금하거들랑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그들을 보라.
-149쪽

정규직의 적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자본입니다. 우리가 맞장을 떠야 할 건 약자가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사시미 칼을 든 깡패입니다.
자본의 발밑에 짓밟혀 파들파들 떨고 있는 민들레를 한 번 더 짓밟은 게 아니라 그 발을 치워 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 너희도 시험 쳐서 소나무가 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민들레에게 숨 쉬고 씨앗 흩날릴 영토와 햇볕을 나눠 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 숨쉬고 씨앗 흩날릴 영토와 햇볕을 나눠 줘야 합니다. 민들레가 죽어 가는 땅에선 어떤 나무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살아나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들이 승리해야 우리가 지켜질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칼날엔 눈이 없습니다.
-154쪽

적개심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닌, 그 순결한 꿈이 이루어지는 봄이길. 부디 저 고운 영혼들이 꽃보다 먼저 환해지는 봄이길. 봄마저 쟁취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그런 봄이 부디 저들의 것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2006년 2월 23일 부산지하철 매표소 비정규 해고노동자 고용승계 쟁취 결의대회에서
-157쪽

그때 우리는

봄이 오면 피어나는 게 꽃들뿐이었겠는가.
봄이 오면 되살아나는 게 나무들뿐이었겠는가.
꽃보다 먼저 피고 나무보다 먼저 일어서던 사람들.
그때 우리는 기적이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으나
서 있으면 멈추는 게 아니라 넘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던
그때 우리는 기적이었다.
함께 해야 강해진다는 걸 거리에서 배웠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야 대오가 전진할 수 있다는 걸
스크럼을 짜며 저절로 알게 됐던
그때 우리는 기적이었다.
-158쪽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야 했고
차마 묻을 수 없는 천금 같은 사람들을 땅에 내려놓으며
그들을 죽인 세상과 결코 타협하지 말자 맹세했던
그때 우리는 분노조차 희망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늙어 가기 시작했고
분노하는 일에도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기 시작했다.
뛰는 것보다 걷는 게 편하고 걷는 것보다는 차를 타는 게
훨씬 편하다는 자본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서 있는 것보다는 앉아 있는 게 편하다는 걸 알면서는
오래 앉아 있으려면 큰 집이 필요할 거라는
자본의 유혹을 믿기 시작했다.
-160쪽

민들레에게 올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낮추는 게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집니다.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만으로는 봄을 알 수 없습니다.
민들레가 피어야 봄이 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에 처음 민들레는 기다리는 봄. 이 설렘을 동지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2006년 3월 11일 부산지하철 매표소 해고 노동자 고용승계 쟁취 3차 결의대회에서
-163쪽

신입사원이 들어와도 비정규직이니 환영식도 없고 수시로 잘려 나가니 환송식을 할 수도 없는 수많은 현장들. 아무도 노 젓는 법을 나누지 않고 친구의 노를 몰래 부러뜨려 놓아야 내가 강물을 건널 수 있다고 믿었던 자들은 결국 그 강의 끝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망망대해로 이어져 혼자 탄 뗏목으로는 난파할 수밖에 없다는 걸 처음엔 잘 몰랐습니다.
제일은행 노동자들이 잘릴 때 주택은행 노동자들은 시금치를 무치거나 아이의 장남감을 고르는 일이 더 중요했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잘릴 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대부분 잔업을 하거나 축구를 보고 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먼저 잘릴 때 남성 노동자들은 이제 시집이나 가라고 농담처럼 말했고 형님들이 잘릴 때 동생들은 ‘헹님은 인자 낚시도 실컷 댕기고 땡잡았네.’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웃으면서 했던 똑같은 말을 울면서 듣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219쪽

아이들은 꿈을 잃어 가고 선생들은 영혼을 잃어 가는 학교에서 중간고사 끝난 나른한 봄날의 4교시, 선생님께 첫사랑 이야기를 조르는 아이들도 더는 없을 테고 그 아이들에게 진달래를 불러 주는 친구 같은 선생님도 더는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을 상대로 첫사랑의 황홀한 꿈을 꾸는 아이들도 없을 테고 선생님들은 더 이상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221쪽

학번을 얘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묘한 울타리 같은 게 느껴진다. 끼리만의 울타리. 학번이란 말에선 기득권의 냄새가 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학번이 가지는 울타리는 참으로 견고하다.
-224쪽

부모 잃고 가난한 숙부 집에서 어려서부터 갖은 노동을 하며 매질을 밥으로 욕을 반찬으로 자란 사람. 숙부의 집을 나와 식모살이를 하던 집에서 열네 살 때부터 주인아저씨와 아들의 몸뚱아리 밑에 밤마다 번갈아 깔렸다던 사람. 온종일 이어진 숙모의 부지깽이 매질보다는 차라리 그 짓이 나았다던 사람. 남이 해주는 밥은 징역 살면서 처음 먹어 본다던 사람. 공범이 돼 버린 정부에게서 받은 머리핀 하나가 세상에 태어나 받은 유일한 선물이었다던 사람.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았다던 사람.
내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던 날. 두고 온 딸내미 이름을 수백 번도 더 명토박으며 그 아이를 꼭 찾아 봐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던 사람. 진숙 씨는 아는 사람 많으니까 꼭 탄원서를 꼭 좀 넣어달라던 사람. 천 명쯤 서명을 받으면 나라에서 살려주지 않겠냐던 사람.
윤수가 죽던 날, 그도 죽었다. 짤막한 신문 기사를 통해 그의 형 집행 소식을 접하면서야 탄원서를 넣어주겠노라던 도무지 지킬 길이 없어져 버린 그 약속이 생각났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를 사랑한 적이 없는데 누구에게 그를 죽일 권리가 있는가라는 허탈한 질문과 함께.
-248-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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