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7 - 도망가는 당태종 김정산 삼한지 7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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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 편의 부제를 붙이라고 한다면 "헤어날 수 없는 늪, 고구려"라고 하겠다.

양제의 수나라를 쫑내고 당나라를 실질적으로 세운 주역, 당 태종!  양제를 맘껏 비웃었던 그였지만, 양제의 잘못을 고대로 따라가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바로 요동정벌에 뜻을 둔 것이다.

빌미는 연개소문이 주군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았다는 것인데, 그 자신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밀어내다시피 해서 정권을 잡은 전철을 보건대, 감히 남의 집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할 입장이 아니었지만, 그가 누군가.  그 잘난 중원의 대 천자가 아니시던가.  자신이 거병을 하는 '대의'를 조서에 담았는데,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조서 자체는 명문장이었다.(쿨럭!)

그러나 알 사람은 다 안다.  그의 거병이 문장에 적힌 대로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한 쓸데 없는 자존심이었다는 것을, 수양제가 수백만 대군을 일으키고도 실패한 원정을 자신이 30만 대군으로 능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만심.  그간 패배를 모르고 살아왔던 그의 전적이 그 허영심에 부채질을 하였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려줄 위징도 이미 없었으니, 당 태종은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발을 디밀고 만 것이다.  수 양제처럼.

한편, 요동에 전운이 감도니 백제와 신라도 자연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백제 의자왕이 즉위한 직후 40여 성을 빼앗긴 신라로서는 국운이 기울고 있는 이때 일종의 정치적 쇼가 필요했다.  이때 나서준 것이 김유신!  그는 백성들을 철저히 훈련시켜 자력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병사로 키워냈다.  제 나라를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의지들이 모여서 각각의 백성들을 훌륭한 병사들로 탈바꿈 시켜놨으니... 이것이 곧 신라의 힘이고 훗날 통일의 원동력이 된 것이리라.  로마가 용병을 쓸 때부터 거대 제국 로마가 무너지기 시작한 예를 들어서도 알 일이다.

태평성대로 무뎌지고 배에 기름이 차버린 백제를 보자니, 꼭 조선이 떠올랐다.  건국 후 200년 동안 외침이 없자 무기고의 창칼엔 녹이 슬고, 막상 임진왜란이란 왕대박 전쟁이 터지자 초반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그 모습.  평화가 안이함을 불렀고, 게으름이 패망을 불러들였다.  앞서 얘기했던 로마의 끝마무리처럼...

정변으로 황제가 된 당태종 이세민.  역시 정변을 일으킨 연개소문을 곱게 보지 않았다.  자신의 정변은 '대의'고 그의 정변은 천인공노할 '쿠데타'로 몰아버리는 그의 인식이란,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었었다. 

항복하는 고구려 장군들, 하나같이 패전의 원인은 막리지 연개소문에게 있다고 둘러대니, 아마 승리했더라면 제 공이 가장 크다고 했을 위인들이다.

안시성에서 내세운 배수진은, 이세민의 치부를 까발려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만든 것.  이세민을 형제 죽인 무도한 놈이라고 욕을 하고 나니, 그와 싸우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성주 양만춘이 정말 똑똑한 인물이다.  조선의 영조가 선왕이었던 경종 형님을 죽였다는 독살설에서 벗어나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제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것처럼, 이세민으로서는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으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 (물론, 자신이 자초한 것이다. 누가 고구려 건드리라고 시켰던가!)

그래도 이세민은 확실히 수양제와 달랐다.  그는 패배를 인정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요동정벌의 실패를 인정하고 돌아가는 길, 비단 백필을 선물로 내민 것은 마지막 남은 허세 한자락이었으니, 그 정도는 애교라고 할 수 있겠다.

짐작했던 것보다 안시성 싸움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지 않았는데, 여하튼 그들이 요동을 지켜준 것은 값진 승리임을 부정할 수 없겠다.

신라 선덕 여왕은 여임금으로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슨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모두 여자 임금이 보위에 있는 탓이라고 입방아를 찧어대니 그 스트레스가 오죽했을까.  그러니 그 입들을 막아보고자 황룡사라는 거대 사찰을 지었던 것.  그러나 그런 것은 모두 미봉책일 뿐이었다.  신라의 골품제가 성골 임금만을 요구했으니, 뒤를 이은 것은 승만 공주 진덕여왕.  그녀 역시 50이 넘어서 임금이 되었는데, 당나라의 반응이 재밌었다.  선덕여왕 때와 달리 재빨리 그녀의 임금됨을 인정해주는 외교정책!  요동정벌 실패의 쓰라린 교훈이 당나라의 외교방침을 바꾼 것이리라.  곁에 있는 동맹국, 괜시리 성질 건드리지 말자!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이제 전체 분량의 2/3 정도 읽은 셈이다.  남은 이야기에서 삼한 통일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싶다.  김춘추가 진짜 주인공으로 나설 차례고, 김유신이 그 뒤를 받쳐줄 때가 왔다.  계백의 이야기도 더 들어야 할 것이고, 고구려와 백제의 쓰라린 패망도 보아야 할 테지.   보채지 않고 따라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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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지 6 - 새로운 영웅들 김정산 삼한지 6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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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시대의 인물들이 하나둘 죽고 새 시대의 인물들이 역사의 주역이 되었다.

진평왕의 뒤를 이어 선덕여왕이 즉위했고, 백제 무왕이 죽고 의자왕이 즉위했으며,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통해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보위에 앉혔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유명한 황제 태종이 치세를 펼치고 있었다.

연개소문의 정변은 사실 말 그대로 쿠데타이긴 하지만, 그의 쿠데타에 대해서 손가락질을 심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앞서 영류왕의 황당한 정치 노선 때문이었다.  그는 너무나 저자세 외교로 일관해서 당나라의 웃음을 샀고, 고구려의 기상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뿐이던가.  임금된 자로서 우리나라 잡수시오~도 아니고, 봉역도를 갖다 바치질 않나, 진대덕이라는 첩자가 들어와 나라 땅을 두루 살피며 지도를 만들고 있는데도 극진히 대접해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군사 훈련을 시켜 국경 수비에 만전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장성을 십수 년간 쌓게 만들어 백성들의 원성과 공분을 샀다.  뿐아니라 당나라에 잘 보이느라 태자를 직접 인질로 갖다 맡기기까지 했으니, 그가 과연 한나라의 임금이라고 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을 따름이다.

당시의 시대 분위기가 외교적 관행으로서 중국을 상국 대접해 주던 것은 알고 있지만, 수/당 교체기의 혼란기를 틈타 국익을 좀 더 내세울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에도 잡지 못했고, 오히려 철저하게 굽신거리고 나왔으니, 전왕 때의 살수대첩 등이 황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니 연개소문 같은 성정의 사람들이 그런 그를 가만히 두고 보는 게 오히려 수상할 따름이다.  정변까지 일으킨 연개소문의 고구려가 장수하지 못하고 왕조가 멸망한 것은 애석한 일이나 영류왕을 향해서 애도의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확실히 그의 정변이 성공할 수 있었고, 또 가능했던 명분은 민심의 이반이었다.  백성의 마음이 이미 떠난 군주에게 나라의 안녕이 있을 까닭이 없다.  수양제가 대운하를 만들고 고구려를 세차례나 침공한 끝에 멸망한 것이나, 조선 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끝내 자리에서 쫓겨났던 것도 같은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었다는 것을.  또 속전속결로 쿠데타를 성공시킨 모습은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의 거사가 실패한 것과 대조적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일을 준비하면서 머뭇거림은 그대로 실패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아버지 무왕의 뒤를 이어 의자왕도 신라로부터 강역을 넓히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의 진짜 목표는 당항성이었지만 대야성을 먼저 친 것은 '성동격서'의 전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머리는 잘 썼는데, 문제는 지나침에 있었다.  당시 장군 윤충은 성주 김품석과 그 아내 고타소의 목을 신라로 보냈는데, 고타소가 김춘추의 딸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는 원래부터 사이가 나빴던 신라와 백제 사이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수로 만들어 버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과하면 모자람 만 못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또 이때 신라를 등지고 백제로 귀화하는 인물들도 있었으니, 그때마다 그들의 이반 명분이 되어주는 것은 '골품제의 폐해'였으니, 그놈의 뼈다귀 신분제가 나라를 잡는 꼴이라 할 수 있겠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일화를 어떻게 진행시킬지 자못 궁금했었다.  천관녀의 출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알고 싶었는데, '제사장이'의 민며느리란 설정은 최근의 학계의 시각과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흔히 이야기 속에서 김유신의 이 에피소드에서 그의 나이 약관의 청년마냥 묘사되었지만, 당시 김유신은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때였었다.  작품 속에선 그의 혼기를 놓친 나이와 김춘추의 딸 지소를 처로 맞이하는 부분을 꽤나 설득력 있게 진행시켰는데, 신라의 결혼 풍습 등등이 지금과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위화감 느끼지 않게,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넘어가는 매끈함을 보여주었다.

이제 다음 이야기에서는 고구려에 사신으로 간 김춘추의 활약상이 펼쳐질 듯 보인다.  토끼와 거북이 일화가 어떻게 나올지 역시 기대가 된다.

책의 맨 마지막 부록에서는 당태종의 뒤를 받쳐준 명신 열전이 이어지는데, 이토록 충성을 다하고 간언을 서슴지 않는 신하들이 있었으니 태종이 성군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하다 싶었다.  그러나 호부 아래 견자 없다고 했는데 당 고종은 왜 그 모양이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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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지 5 - 여왕시대 김정산 삼한지 5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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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서는 3편과 같은 굵직한 싸움이 등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등장해서인지 더 살갑고 가깝게 느껴졌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우정을 뛰어넘은 큰 포부가 보기 좋았고, 그들도 인간인지라 늘 영웅의 풍모가 지닌 것이 아니라 때로 인간적인 실수도 하고 스스로 자만을 떨다가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보희의 꿈 사건은 워낙 유명한데, 김춘추의 용모가 그렇게 박색일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단순히 보희가 운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문희의 선견지명이 따라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화랑세기를 살펴보지 않은 채 삼국사기만 참고했더라면, 김유신이 여동생을 화형시키는 생쇼(!)를 하는 대목에서 김춘추를 나무라는 이가 '선덕여왕'이었겠지만, 이 작품은 화랑세기를 참고한 결과 당시의 연배가 아직 '공주'시절일 때를 제대로 짚어내었다.

또 김춘추가 몰염치하게 문희를 나몰라라 한 것이 아니라, 김유신과 작당을 하고 덕만공주가 신라인과 가야인을 두루 포용할 인재인지를 떠보는 시험장으로 만든 것은 작가의 재치가 여간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전개라고나 할까.

김유신이 고구려군과의 싸움에서 보여준 면모는 가히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승리를 이뤄낸 사서의 기록에 의지해서 이만큼의 현장감을 보여준 것은 작가의 필력 덕분이리라.  적어도 용장 이상은 되고도 남음을 독자들은 작품을 통해서 공감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화포'가 등장한 적이 있는데, 화약이 발명된 것이 그로부터 몇 백 년 뒤의 일이므로 '화포'라는 표현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 화포가 내가 아는 그 화포가 맞다면 말이다.

또 작품 속에서 백제 무왕이 사비가 너무 막힌 곳이라 다시 웅진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가 흔히 국사책에서 배우기를 '웅진'은 방어에 유리하나 외부 진출이 어려워 사비로 수도를 옮겼다고 했기에 어느 쪽 의견이 맞는 것인지 혼동이 왔다.  실제로 무왕이 웅진으로 갔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시 사비로 돌아온 것은 사실인데 두 지역의 형세에 대한 설명은 작품 속에서 미진했거나 혹은 혼동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택기루'란 이름이 등장했는데 드라마 '서동요'에서 신라에서 백제로 넘어온 첩자의 이름과 같아서 깜짝 놀랐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드라마 작가가 차용해서 쓴 것일 텐데, 실제 사택기루의 연배는 무왕의 할아버지뻘이니 조금 웃음도 나왔다.

김춘추와 연개소문, 그리고 성충은 모두 당나라에서 지기로 지낸 사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각자 고국에 돌아가서는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되어야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무왕은 아들 의자와 풍에게 질문을 던져서 그들의 의중을 떠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의자의 주장은 왕실의 권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 풍의 주장은 원칙을 지켜 옳고 그름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풍의 주장이 옳게 느껴지지만 임금 장은 오히려 의자의 손을 들어준다.  정치의 비정함과 무정함이 눈에 보이는 대목이었다.

이번 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성충이 무왕을 만나서 간하는 부분이었다.  335페이지의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대왕께서는 초원에서 풀을 뜯는 남의 짐승들을 모두 죽이고 내 집 소와 양들로만 초원을 채우려 하십니까?  
   

원론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소름이 돋는 부분이기도 했다.  모두가 국경을 앞세워 창칼로 경계를 하고 서로 땅을 차지하지 못해 안간 힘을 쓰고 있지만, 서로 창칼을 내려놓고 두 손을 맞잡고 사이좋게 지낸다면 피차에 피흘릴 일이 없을 터인데, 인간의 욕심이 하 무섭고 허무하기만 하다.  이는 고대의 역사에만 접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깨달음을 주는 메시지라고 하겠다.

그러나 저런 혜안을 가진 성충도 훗날 의자왕 대에 이르러서 충언을 알아듣지 못하는 군주와 함께 백제의 몰락을 목도하게 되니 역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삼한지를 읽으면서 그저 옛 이야기 듣듯이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을 통해서 오늘날에까지 통하는 깊은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덧글)천관녀에 대한 얘기가 나오다 말았는데, 김유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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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보다 더 많은 사람 구한 과학자, 파스퇴르! [제 659 호/2007-09-26]
 

역사적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을 뽑는 투표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나폴레옹을 제쳐 놓고 파스퇴르(1822~1895)를 뽑았다. 그들에게는 유럽 전체를 누빈 나폴레옹도 영웅이지만, 수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킨 파스퇴르가 더욱 진정한 영웅이었던 것이다.

1880년대 ‘세균 사냥꾼’으로 불리는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와 로베르트 코흐의 등장으로 인류의 전염병과의 싸움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파스퇴르는 탄저균을, 코흐는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발견하고. 특정 세균이 특정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과학은 종종 우연한 사건으로 발견된다. 당시 유럽은 탄저병과 콜레라가 돌던 시절이었다. 파스퇴르의 실험 보조원은 실험용 닭에게 콜레라균을 주입하는 것을 깜빡 잊고 있다가 며칠 후에 주사했다. 신기하게 닭은 죽지 않았고 오히려 콜레라균에 저항력을 갖게 되었다. 이 현상을 놓고 파스퇴르는 며칠 동안 약해진 균이 닭에게 병을 일으키지 못했고, 오히려 닭이 항체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고 추정했다.

그는 우연한 발견을 놓치지 않고 연구해 병균의 독소를 약하게 한 액체를 만들고, 그것을 예방 주사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백신이다. 후에 광견병 백신도 만들어져 지구에서 광견병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추방시켰다. 그의 나이 62세 때이다.

파스퇴르는 의사가 아니면서 의사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한 과학자다. 파스퇴르가 사망한 1895년까지 약 2만 명의 환자가 백신 치료를 받았는데, 그 중 사망한 사람은 고작 100명 이하였다. 이후 전염병의 원인과 치료법 연구가 계속 쏟아져 현재 세균은 항생제라는 ‘창’으로, 바이러스는 백신이라는 ‘방패’로 막아내고 있다.

파스퇴르는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세균학자다. 1822년 프랑스 동부의 쥐라산맥에 있는 ‘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무두장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시절의 파스퇴르는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다.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장래 미술학과 대학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소년 시절 그는 부모나 친구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 주된 관심사였다. 소년시절에 그린 부모의 파스텔화가 지금도 남아 있다.

그의 학문적 열정이 일깨워진 것은 당시 최고 학교였던 고등사범학교 시절이다. 거기서 당대의 대화학자 뒤마의 강의를 듣고 감격해 화학 연구에 몰두하기에 이른다. 물론 파스퇴르는 화학보다도 미생물학 업적으로 더 유명하지만 그것은 파스퇴르의 미생물학적 업적이 너무 뛰어나서일 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파스퇴르의 첫 연구는 주석산 결정을 분리하는 화학연구다. 그 결과 24살의 젊은 나이에 당시 과학자들이 풀지 못하던 주석산의 정체를 밝혔다. 그리고 1854년 릴대학 교수로 있을 무렵 ‘포도주가 너무 빨리 산성화돼 와인의 맛이 변질되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한 알코올 제조업자의 부탁을 받고, 발효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된다.

그는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는 통과 일으키지 않는 통을 현미경으로 조사해 발효를 일으키는 주체가 효모임을 발견했다. 또 효모와 함께 다른 세균이 사는데 이들이 와인 맛을 변하게 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들 세균을 없애기 위해 파스퇴르가 고안한 방법이 유명한 ‘저온 살균법’이다. 60~65℃에서 저온 살균 처리하면 다른 세균이 죽어 맥주나 포도주가 상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는 프랑스의 양조업자들의 위기를 해결해 줬다.

그 때부터 파스퇴르는 미생물학에 몰두했다. 1860년부터 그는 ‘생물은 축축한 진흙에 햇빛이 비칠 때 우연히 발생한다’는 ‘자연 발생설’과 치열한 싸움을 전개했다. 파스퇴르는 미생물은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용액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의 학설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이를 증명한 ‘백조 목 플라스크의 실험’은 아주 유명하다. 그는 백조의 목처럼 S자 모양의 길고 가는 곡선의 플라스크를 만들어 그 안에 고깃국을 넣었다. 용액을 끓인 뒤 구부러진 목 부분에 물을 채워 외부로부터 생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더니 오래돼도 고깃국이 상하지 않았다. ‘자연 발생설’이 잘못된 이론임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파스퇴르의 인생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주석산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쓴 1848년에는 어머니가 죽었고, 5명의 딸 중 3명을 잃었다. 소르본대 화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1868년 그는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의 고통을 겪게 됐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연구에 전념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탄저병 백신 접종 연구는 모두 이 후에 이루어진 일이다.

파스퇴르는 애국자로서의 명성도 높다.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독일)이 전쟁을 시작했다.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가 기갑부대를 동원해 파리를 포위해 승리하자 양국 간에 휴전 협정이 조인되고, 프랑스는 독일에 배상금을 지불했다. 당시 파스퇴르는 미생물학 업적으로 프로이센의 본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상태였다. 그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학위를 돌려준다. 그리고 프랑스 맥주가 독일 맥주보다 더 맛있게 하도록 연구에 매진했다고 한다.

프랑스 국민은 조국을 위해 힘을 다한 파스퇴르에게 감사하여 그를 위해 파스퇴르 연구소를 세웠다. 1888년에 세워진 파스퇴르 연구소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미생물 연구소다. 그는 이곳에서 전염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다가 72세의 일기로 조용히 숨을 거뒀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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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9-2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배변문화에도 지대한 공을 세우신 분이시죠..

마노아 2007-09-26 17:54   좋아요 0 | URL
한때 그 이름을 많이 애용하기도 했었지요^^;;;

비로그인 2007-09-27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파스퇴르의 업적 및 일대기를 간략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문득,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독일보다 더 뛰어난 맥주를 만들겠다고 노력했던 그의 의지대로,
프랑스 맥주의 맛이 과연 어떤지 궁금해졌습니다. (웃음)

마노아 2007-09-27 17:53   좋아요 0 | URL
프랑스 와인도 아니고 '맥주'라니, 어감상 굉장히 어색해요. 정말 어떤 맛일까요?
국산 맥주 맛도 잘 모르지만 궁금합니다^^;;;

비로그인 2007-09-28 09:08   좋아요 0 | URL
혹시....향수맛이 난다거나 하면...저는 거품 물고 쓰러질겁니다. =_=

마노아 2007-09-28 10:18   좋아요 0 | URL
으캬캬캬, 엘신님다운 상상입니다^^
이거 진짜 궁금해집니다. 먹어본 사람이 누구 있을까요?

비로그인 2007-10-01 14:04   좋아요 0 | URL
나중에 꼭 같이 가서 먹어봅시다~ (어느 세월에~ ㅋㅋ)

마노아 2007-10-01 14:13   좋아요 0 | URL
캬캬, 거기까지 가면 우리 와인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ㅎㅎㅎ

비로그인 2007-10-02 01:25   좋아요 0 | URL
아, 그럼, 꼬냑 지방에 가서 원산지 꼬냑을 꼭 마셔보고 싶습니다. ^^
식후에 마시는 그 미지근한 꼬냑을요~

마노아 2007-10-02 09:39   좋아요 0 | URL
오홋, 미지근한 꼬냑이 더 맛있는 건가요? 전 꼬냑이라는 이름을 만화책에서만 보았거든요.
저도 같이 그 맛이 궁금해집니다^^

비로그인 2007-10-02 15:58   좋아요 0 | URL
네. 꼬냑은 자신의 손바닥 체온으로 덮여 마시는 미지근한 포도주입니다.
시중에선, 양주집에서 팔지만요.

마노아 2007-10-02 23:34   좋아요 0 | URL
꼬냑은 혹시 화이트 와인인가요? 저번에 모차르트 전시회를 갔을 때 테이스팅한 게 꼬냑이었던 것 같아요. 전 레드 와인을 마셨지만 같이 간 친구가요^^;;;

비로그인 2007-10-03 02:03   좋아요 0 | URL
그....꼬냑은...위스키입니다만. =_= (긁적)
위스키는 크게 증류수로 만든 것과, 포도로 만든 것이 있어서, 저는 단지 재료 기준으로..;;
음...와인이나 꼬냑이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기준에선 물론 '포도주'가 맞긴 합니다만..
알코올 도수에서 엄청난 차이가..^^;
위스키이기 때문에 보통 35~40도 이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말해놓고 보니 꼬냑도 '외국산'이니까 '양주'가 맞으니까 거기서 파는게 맞긴 한데..
크앙-!! 왜 이렇게 횡설수설이냐!!! ㅜ_ㅜ

마노아 2007-10-03 09:55   좋아요 0 | URL
커헉, 꼬냑은 위스키였어요?
음, 무식이 탈탈 드러나는 순간..ㅡ.ㅡ;;;
엉엉, 몰라몰라몰라, 하여간 그때 본 화이트 와인은 향이 참 좋았는데,
꼬냑은 아니군요. 위스키 미워요..ㅠ.ㅠ
 
물웅덩이 킨더랜드 뉴 자연스쿨 73
그레임 베이스 글.그림, 고수산나 옮김 / 킨더랜드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다양한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선사해주는 책이다.

물웅덩이가 오른쪽 페이지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웅덩이의 크기가 줄어든다.

당연히 물의 양도 줄 수밖에 없다.

처음엔 숫자 1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숫자 10까지 다양한 동물들의 숫자가 늘어난다.

저자는 케냐와 탄자니아 지방의 사파리에서 이 작품을 구상했는데, 처음 의도와 달리 다양한 대륙의 다양한 동물들을 소개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과 인도, 남/북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등 여러 지역에서 사는 특색있는 동물들이 작품 속에 들어와 있다.

물웅덩이가 자꾸 줄어드는 모습에서는 환경에 대한 경각심도 함께 일깨워준다.  무조건 퍼쓰기만 하면 유한한 자원은 끝내 줄어들고 고갈될 수밖에 없는 필연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러나 자연의 힘은 놀라워서 마침내 말라버려 땅이 갈라진 것까지 확인했지만, 그래서 동물들이 모두 떠나버렸지만, 비가 내리고 빠르게 물웅덩이가 다시 생겨버리자 동물들은 다시금 그 주변으로 모여들어 자신들의 낙원을 이룩한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그 낙원을 상상해 보며, 같이 들어 있던 퍼즐을 맞추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퍼즐 판이 있었는데, 언니가 집에 두고오는 바람에 그냥 바닥에 대고 맞춰보았다. 조각이 커서 쉽게 맞출 수 있지만, 그래도 은근 시간 걸리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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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2007-09-26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를 위해 찜했던 책인데 사진을 보니 구입해야 할 것 같네요~

마노아 2007-09-26 11:06   좋아요 0 | URL
그림을 사진처럼 잘 그렸어요. 조카가 좋아할 거야요^^

침흘린책 2007-10-0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그림 찾기는 다 하셨어요? 곳곳에...아래에 작게 그려진 동물들이 숨어있는걸 찾는 재미도 쏠쏠하죠~

마노아 2007-10-02 09:40   좋아요 0 | URL
숨은그림 찾기도 있다는 것을 책 돌려준 다음에 알았어요. 언니한테 다시 들고 오라고 해야겠음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