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노벨생리의학상 ‘유전자 적중 쥐’ [제 670 호/2007-10-22]
 

어떤 동물에서 특정 유전자 하나만 쏙 빼버릴 수 있을까? 그것도 일부 세포가 아니라 그 생물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에서 말이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 동물에서 빼버린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유전자가 없는 동물을 정상 동물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나타날 테니 말이다.

유전자 하나를 맘대로 빼내는 기술을 개발한 생물학자들이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바로 미국의 마리오 카페키(70·유타대), 올리버 스미시스(82·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와 영국의 마틴 에번스(66·카디프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카페기, 스미시스 교수는 ‘유전자 적중’(Gene targeting)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 적중 생쥐’를 만들었고, 영국의 에번스 교수는 배아줄기세포로 이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켜다. 이들이 고안한 방법을 살펴보자.

특정 유전자를 없애거나, 다른 유전자로 바꿔치기하는 기술은 오래 전에 개발됐다. 병충해에 강한 작물이나 비싸게 팔리는 단백질을 만드는 식물 같이 유전자를 변형하는 ‘유전공학’이란 단어는 일반인에게도 생소하지 않다. DNA를 다루는 기술로 우리는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유전자를 집어넣기도 하고 빼내기도 한다.

그동안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은 매우 다양하게 발전했다. 그러나 그건 미생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거나 적어도 시험관에서 키울 수 있도록 만든 동물 암세포를 대상으로 했다. 이들은 매우 빨리 번식하기 때문에 즉각 반응을 확인할 수도 있고, 실험도 간단하다. 그러나 이 기술을 동물에 적용하려고 할 때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누가 1조개가 넘는 동물의 모든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를 빼낼 수 있겠는가.

따라서 동물을 대상으로 특정 유전자를 빼내려면 전체 세포 수가 적을 때, 즉 배아 상태일 때 교체하는 수밖에 없다. 유전자를 맘대로 조작하는 유전공학 기술과 배아줄기세포기술을 정교하게 결합해 탄생한 것이 이번 노벨상의 주제인 ‘유전자 적중 쥐’다.

먼저 없애기 원하는 유전자(‘A유전자’라고 하자)와 비슷한 ‘가짜 유전자’가 담긴 DNA 조각을 만든다. 진짜를 가짜로 바꿔치기하기 위해 짧은 DNA 가닥을 만드는 것이다. 그 다음 쥐의 배반포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해서 여기에 가짜 유전자가 담긴 DNA를 넣고 전기 충격을 가한다. 이렇게 하면 일부 배아줄기세포에 DNA가 들어간다. 그리고 들어간 DNA의 가짜 유전자가 A유전자와 바뀌게 된다.



이젠 배아줄기세포 중에서 A유전자가 없는 세포만을 골라내야 한다. 가짜 유전자 DNA 조각이 모든 세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들어갔다 해도 모든 가짜유전자가 A유전자와 바꿔치기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골라낸 배아줄기세포들은 모두 A유전자가 없는 세포들이다.

골라낸 배아줄기세포들을 미세피펫을 사용해 쥐의 배반포에 주입한다. 그리고 어미 쥐의 자궁에 배반포를 착상시킨다. 배반포는 어미 쥐의 자궁에서 아기 쥐로 자란다. A유전자가 없는 배아줄기세포도 함께 섞여 자라기 때문에 결국 태어난 쥐에는 A유전자가 없는 세포와 정상세포가 섞여있게 된다. 두 종류의 세포로 돼 있기 때문에 이 쥐를 ‘키메라 쥐’라고 부른다.

태어난 키메라 쥐의 수컷이 정자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자라면 정상 쥐의 암컷과 교배시킨다. 키메라 쥐는 두 종류의 정자를 만든다. A유전자가 있는 정자와 없는 정자다. 정상 쥐의 암컷이 만든 난자와 A유전자가 없는 정자가 만나면 염색체의 절반에 A유전자가 없는 새끼 쥐가 탄생한다. 중학교 시절 배웠던 생물을 상기해 본다면 난자(A)와 정자(a)가 만나 유전자형 Aa인 쥐가 나오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단계다. 유전자형 Aa인 쥐끼리 교배하면 유전자형 AA, Aa, aa인 쥐가 나온다. 이중 aa가 바로 우리가 원하는 몸 전체의 세포에 A유전자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쥐다. 이들은 A유전자를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상 쥐와 비교해 A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는 실험에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유전자형이 aa인 생쥐끼리 교배시키면 항상 유전자형 aa인 생쥐가 나오기 때문에 두고두고 실험에 쓸 수 있다.

현재까지 약 500개 유전자에 대해 유전자 적중 쥐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대부분 암, 당뇨병, 치매 같은 질병과 연관된 유전자를 없앤 쥐다. 과학자들은 서로 자기가 만든 유전자 적중 쥐를 교환하며 질병 치료를 위해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데 필수적인 유전자를 발견하면 그 유전자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치료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유전자 적중 쥐는 뇌 활동을 밝히는 데도 사용된다. 우리나라 신희섭 단장이 이끄는 학습 및 기억현상연구단은 유전자 적중 쥐로 신경세포의 칼슘 농도를 조절하는 유전자들이 학습과 기억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연구단은 쥐의 신경세포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포스포리파아제C(PLC)를 생산하는 베타1 유전자를 제거하자 그 쥐는 대대로 간질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자 미로 찾기를 잘 못하게 되거나, 공포감을 더 많이 느끼는 결과도 얻었다. 이처럼 유전자 적중 쥐는 유전자와 뇌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데도 도움을 준다.

최근 노벨상은 그 업적이 단회성에 그치지 않고 많은 영향을 준 연구결과에 부여되는 경우가 많다. 또 최근에는 개인보다 공동 연구를 통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공동 팀에게 부여되는 예가 많다. 다른 과학자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창의력을 배가시키는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매년 10월 열리는 가을 잔치에 우리나라 과학자가 호명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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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2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놈프로젝트 연구과정 중
어떤 유전자가 어떤 형질을 발현하는지, 즉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데에 아주 중요한 기술이겠습니다.
이런 기술이 현실화 되기 전에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유전자 지도작성에서 표지유전자로 사용했었지요.
마노아님은 과학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하하


마노아 2007-10-22 16:06   좋아요 0 | URL
과학에 그닥 관심이 없었는데 '과학향기'가 쉽고 재밌게, 대중적으로 만들어져서 애독하고 있어요. 한사님은 과학도신가요? 이과계열은 분명한데^^;;
 

 

"가...가...이제 어두워 질테니까"

일본 드라마 백야행 1화를 편집해서 만든 자작뮤비입니다

 

***

드림팩토리 최은혜님 작품.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노래 탓인지 몹시 절절할 것 같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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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10-2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봤어요. ㅠ.ㅠ
윽~. 아침에 이런 가슴 찡한 무비를 보다니......
저도 님의 같은 느낌이예요.

마노아 2007-10-22 13:18   좋아요 0 | URL
노래가 애절하죠. 웬만한 영상들은 다 짠하게 남을 것 같아요.
예전에 황진이 영상도 참 좋았는데... ^^

무스탕 2007-10-2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이것 참..
노래 탓인가요 영상 탓인가요..
한마디로 말하기 거시기 한 뭔가가 있어요!

마노아 2007-10-22 16:07   좋아요 0 | URL
뭔가 끈끈하게 잡아끄는 느낌이 있지요. 백야행도 같이 궁금해졌어요. ^^
 
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공중그네, 인더폴의 이라부와 마유미짱이 다시 뭉쳤다....기보다는, 다시 이야기로 묶였다.

여전히 엽기적이고 철없는 소년 마냥 순진무구한 이라부는, 고민을 가득 안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문제점들을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혹은 괴롭히기로) 해결해 준다.  섹시 간호사 마유미는 이번에도 육감적인 그녀의 몸매와 또 거침 없이 툭툭 내뱉는 시니컬한 대사로 의뢰인(환자)들의 눈길을 끌고 아픈 데를 콕콕 찌른다.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어져 있는데, 은퇴할 나이가 한참 지난 78세의 구단주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강박 증세를 보이게 된다.  이라부가 툭 내던진 해결법은 '생전 장례식'

기자들과 늘 말썽이 일고 신문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스캔들 메이커였지만, 막상 그의 생전 장례식은 누구보다도 엄숙하게 또 정감 있게 진행된다.  젊은이들에게 아직도 어필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 새롭게 기운 차리는 그의 모습이 힘차 보였다.

안퐁맨은 테크날로지에 너무 물들어 있어서 히라가나를 까먹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증세로 이라부 신경정신과를 찾아온다.  이라부와 유치원 아이들과 신나게 카드 놀이를 하면서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갖는데, '혼자만 이기면 놀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어린아이들의 세계뿐 아니라, 자신의 사업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  워낙에 잘 나가는 그였지만 그제서야 '겸손'을 배우게 된다.  그에게 발톱을 가득 세우던 사람들도 젊은이의 예의바른 인사에 모두들 마음이 녹아지니, 이라부는 그저 놀아주기만 하고도 환자의 고민을 해결해 준 셈이다.

세번째 이야기는 44의 나이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배우였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외모와 몸매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게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에 불안해 하는 그녀.  그래서 튀김 한조각에도 벌벌 떨고, 지방을 섭취한 순간 바로 운동을 해서 태우지 않으면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는 강박증을 보인다.  이라부는 무심코 '살을 좀 쪄보는 게 어때?'라고 말을 하고 여배우는 자신처럼 초조함에 살벌한 일상을 사는 다른 여배우를 지켜보면서 심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화려해 보이는 연예계의 이면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면장 선거'

도시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섬 주민들의 치열한 선거전.  금품 수수와 상대방 비방 등등 법을 뛰어넘는(혹은 상관치 않는) 육탄전이 전개된다.  여기에 '아빠'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두 달간 다녀가게 된 이라부.  아버지 병원과 권력(?)의 힘으로 명사가 되어버리는데... 여기서도 그가 무심코 귀찮아서 던진 한마디로 치열한 선거전은 페어플레이로 돌변하니, 이라부는 흥신소를 하나 차려도 될 정도다.

그는 다만 신나게 놀고, 내키는 대로 할 뿐이지만, 그처럼 솔직하게,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적은 세상인지라, 우리는 오히려 등장 밑이 어두운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 그래서 이라부의 특별 처방법은 유쾌하고 신난다.

아마도 공중그네를 먼저 보지 않았더라면 이야기가 훨씬 더 재밌게 느껴졌을 테지만, 아무래도 비슷한 사건들과 비슷한 해결법, 또 똑같은 캐릭터가 반복되다 보니,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조금 떨어진다.  그래서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시리즈를 접한 사람들에게선 별점이 조금 박하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이라부식의 인생관이 꽤나 매력적으로 보이니, 지친 도시 생활에서 조그마한 활력소가 되기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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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10-22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터폴>과 <공중그네> 이후 이 책을 볼까말까 고민하다 그냥 살짝 넘겼어요.
활력소가 많이 필요한 지금 이 책으로 충전해 볼까봐요. ㅎㅎㅎ

마노아 2007-10-22 13:19   좋아요 0 | URL
공중그네를 워낙 재밌게 보았더니 인더폴이 약하더라구요.
면장선거는 좀 시간이 흐른 뒤 보아서 그나마 나았어요^^;;;;
그치만 이라부의 엉뚱 엽기 발랄은 꽤 즐거워요~
 
열하광인 - 하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2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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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탑파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이젠 이명방 차례다. 해결은 화광 김진에게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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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에 이어 세번째 백탑파 시리즈다.  그리고 시리즈의 완결이기도 하다.

이제야 지금까지 읽었던 세편의 시리즈가 모두 이명방이 한참 나이든 뒤 매설가의 자리에서 쓰게 된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시점으로 자주 나오긴 했지만 의금부 도사 이명방이 매설가가 될 거라곤 생각을 못했던지라 놀랍고 신선했었다.

언제나 사건은 그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였지만 이번만큼 긴박하게 사건이 돌아간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연쇄 살인범으로 지목된 인물이 바로 이명방 자신이었으니까.

의금부에서 생활한지 십오 년이다.  이제 그도 꽤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 되었고 줄줄이 거느린 나장들도 많다.  이 정도 누명 쯤은 가볍게 벗을 것만 같았다.  하루의 말미를 주면 진범을 잡아오겠노라며 탑전에서 아뢸만큼 그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그러나, 곧 벽에 부딪힌다.  진범은 따로 있었고, 그는 여전히 살인범의 오명을 쓴 채 몇 시간 남지 않은 목숨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화광 김진의 활약이 눈부셨다.  김진이 나타나면 작품 전체에 꽃 배경이 촤르륵 펼쳐지고 꽃 향기도 물씬 나면서 이야기 분위기도 한층 밝아진다.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명방 대신 그가 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해 줄 거라는 일종의 '믿음'이 있는 것이다.

한참 줄달음을 치던 이야기는 김진이 도착하면서 대전환을 준비한다.  그리고 앞서 이명방이 추론했던 모든 단서들이 무로 돌아가면서 원점에서 재시작한다.  독자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이번 이야기에선 정조의 메세지와 박지원의 메세지가 매 장마다 앞머리를 장식했는데, 서로가 너무도 완고히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지만, 고문과 패관소품을 아끼는 그들의 입장이 결국 완연히 다른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백탑파 서생들은 고문을 강조하며 소품을 버릴 것을 강조하는 임금의 생각에 반대하고 또 처음부터 자신들을 총애했던 그 마음도 실용의 측면에서만 판단하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다.  오로지 종친 이명방만이 임금의 총애에 의심을 달지 않으려 애쓴다.

사실, 그 후 200년도 더 뒤의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정조가 일으킨 '문체반정'의 의미와 파급 효과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작가가 이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고 거기서부터 세 시리즈가 나오긴 했지만 작가의 설명도 사실 충분치 않다.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렵다.)

나로서는 당시 노론 일문의 독재를 막기 위한 어떤 정치적 계산도 포함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역시도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내가 평소 생각해왔던 정조의 이미지보다 많이 차갑고, 그리고 무섭게 그려진 것은 사실이라는 것.  그래서 한편으로는 백탑파 서생들처럼 정조의 반응들이 나 역시 섭섭하게 느껴졌다.  워낙에 똑똑한 군주라는 것은 잘 드러났지만 인간미는 잘 보여지지 않는... 그것이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정조의 인상이라면, 또 독자로 하여금 서운한 감정까지 느끼게 했다면 작품 속 캐릭터로서 꽤나 입체감 있게 그려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역사적 인물인 까닭에 저머다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는 것은 역시 무시할 수 없겠지만.

추리 소설답게 사건을 잘 얽었고, 막바지에 이르러 풀어놓았지만, 김진 한 사람의 일장 연설로 답을 끌어내기에는 끝심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의 설명에 100% 납득도 가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다 해도 의금부 친국 장면 등등은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일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이명방의 고초가 무섭고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또한 김진이 굳이 과거시험이 끝난 직후를 진짜 살인범을 파헤치는 해결의 장으로 삼은 이유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상대가 임금이라 할지라도 할 말은 꼭 하는 김진의 성정을 잘 드러낸 에피소드였다.

<북학의>를 읽을 때 청나라에 대한 열망과 감탄이 너무 지나쳐서 자국에 대한 애정을 거의 느낄 수 없었는데, 오히려 이 책에서 표현되어지는 백탑파 서생들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탑전을 향한 충정과, 그리고 민초를 향한 애정에 있어서도 충만함을 느꼈으니, 실제 그들이 썼던 저작물에서보다도 더 인간적인 느낌으로 독자를 향해 달려온 셈이다.

흥미진진했던 시대 배경으로 보건대,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어도 좋겠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할 것.  백탑파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내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을 것이다.  그들이 한 평생을 달렸던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 그 안에서 크게 쓰임 받을 뻔했던 인물들, 그리고 그 이상으로 큰 족적으로 남은 그들의 자취들... 아름답고 멋지게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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