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방울이 잠수함 잡는다!? [제 674 호/2007-10-31]

군사 전문가들은 현대전에서 가장 무서운 군사 무기 중의 하나로 잠수함을 뽑는다. 잠수함이 무서운 이유는 상대방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은밀성에 있다. 은밀하게 숨어 한 명씩 정확하게 사살하는 저격병처럼 잠수함은 은밀하게 숨어서 적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그러나 이 무서운 잠수함에게도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작은 공기방울이다.

잠수함이 다른 무기에 비해 은밀성이 뛰어난 이유는 잠수함이 깊은 바다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물 밖이라면 망원경이나 레이더로 먼 거리에 있는 적을 탐색할 것이다. 하지만 깊은 바다는 다르다. 수심 150m 정도만 들어가도 태양빛이 전혀 도달하지 않고 오직 어둠만이 존재한다. 물 밖에서 적을 탐색하는데 유용하게 쓰던 망원경이 무용지물이 된다.

적의 비행기와 함정을 낱낱이 드러내는 레이더는 어떨까? 레이더의 기본원리는 전자파를 발생하여 반사되어 오는 파를 분석함으로써 적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하지만 물속에서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는 쉽게 산란돼 버린다. 레이더 역시 물속에서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물건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처럼 물속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은 자연적인 ‘스텔스기’인 셈이다.

현재 잠수함을 찾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소리’ 뿐이다. 사실 이는 잠수함을 찾아내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잠수함이 깊은 바다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잠수함은 이런 면에서 박쥐를 닮았다. 박쥐는 어두운 동굴에 살며 시력이 거의 없지만 어두운 밤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 박쥐가 초음파를 내뿜을 수 있고, 초음파가 반사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민감한 귀를 가진 덕분이다.

잠수함도 마찬가지다. 영화 ‘U-571’이나 ‘붉은10월’ ‘유령’ 같이 잠수함이 등장하는 영화에는 헤드폰을 낀 군인들이 뭔가를 열심히 듣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잠수함의 귀가 돼 어둠 속에서도 주변 환경을 알게 해 주는 ‘소나’(SONAR, SOund Navigation And Ranging)를 조작하는 장면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바다 어느 곳에서는 소리에만 의존하는 잠수함의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잠수함들은 상대방을 찾기 위해 귀를 최대한 크게 열어 놓으면서 동시에 상대방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신의 소리(소음)가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온갖 기술을 동원하고 있다.

잠수함에서 나는 소음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나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 등이 잠수함의 소음이 된다. 그러나 잠수함에서 가장 중요한 소음원은 바로 프로펠러다. 잠수함이 움직이려면 프로펠러를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잠수함이 움직이는 한 끊임없이 소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소나 전문가들은 프로펠러 소리만 듣고도 그 잠수함의 국적, 종류 같은 필요한 정보를 모두 얻어낼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잠수함은 때로 동력을 끄고 해류를 타고 이동하거나 멈춰서 작전을 수행하기도 한다.

영화 ‘붉은 10월’에 나오는 최신예 핵잠수함은 다량의 핵탄두를 탑재하기도 했지만 (아직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최신예 추진기로 움직이기에 소음이 없어 ‘무적의 무기’가 됐다. 반대로 말해 프로펠러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잠수함 전력에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왜 프로펠러가 돌 때 소음이 날까? 그 이유는 프로펠러가 돌 때 주위에 생기는 공기방울 때문이다. 이 현상을 공동현상(cavitation)이라고 부른다. 프로펠러가 고속으로 회전하면 주변의 유체 속도는 증가한다. 그리고 속도가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한다는 베르누이의 법칙에 따라 프로펠러 주변의 압력은 낮아진다. 압력이 점점 낮아지다 포화압력보다 낮아지면 프로펠러 주변의 물은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게 된다. 물이 수증기로 바뀌며 공기방울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프로펠러 주위에 생긴 수증기는 터지면서 큰 소음을 발생시키고 잠수함의 존재를 노출시킨다. 심지어 수증기가 터지면서 프로펠러 표면을 거칠게 만들거나 프로펠러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공동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프로펠러를 개발해서 완벽한 ‘스텔스 잠수함’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러시아 과학자들은 잠수함의 골칫거리인 이 공기방울을 이용해 무기를 만들었다. 바로 공동현상을 이용한 어뢰다.

어뢰는 잠수함이 다른 적 잠수함이나 군함을 공격할 때 쓰는 무기다. 물속에서 움직이는 어뢰는 물 밖의 미사일이나 함포보다 훨씬 느리다. 잠수함이 어뢰를 피하는 장면이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어뢰의 느린 속도 때문이다. 그런데 공동현상을 이용해 느린 속도 문제를 해결한 ‘쉬크발’(Shkval)이라는 초고속 어뢰가 등장했다. 속도가 무려 300노트(550km/h)에 이른다고 하니 일반 어뢰(약 50노트)에 비해 6배나 빠르다.

쉬크발은 일반 어뢰와 달리 뒤쪽으로만 연소가스를 분사하지 않는다. 뒤쪽으로 90%정도의 가스를, 앞쪽으로 10%정도의 가스를 분출한다. 이 앞쪽으로 분출되는 10%의 가스는 앞쪽에 있는 물을 밀어낸다. 덕분에 이 초고속 어뢰는 일종의 공기방울에 둘러싸여 물의 저항을 덜 받고 공기 속을 진행하는 미사일과 같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다.

지금까지 공기방울로 발생하는 소리에 골치를 썩어 온 잠수함이 이제 공기방울을 이용한 초고속 어뢰까지 대비해야 될 처지가 됐다. 이쯤 되면 ‘공기방울이 잠수함 잡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글 : 유병용 ‘과학으로 만드는 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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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0-3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다큐멘터리에서 과산화수소를 발생시키는 어뢰가 잠수함 선체 내부의 녹과 반응했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보여주는 프로가 있었는데.(그 사고로 전원 사망) 그때 그 프로그램이 생각나네요.^^ 물론 사고 후 러시아에서는 과산화수소를 발생시키는 어뢰를 전량 폐기해버렸다더군요.^^

마노아 2007-10-31 22:10   좋아요 0 | URL
와, 치명적이군요. 전원 사망이라니 무섭습니다. 하긴, 잠수함이라든가 어뢰라든가, 그런 무기 자체가 위험하고 무서운 것들이지요...;;;
 
뿌리 깊은 나무 2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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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전하의 전쟁은 반대하는 자들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와의 싸움이었다. 발목을 잡는 과거를 떨치려는 싸움이었고, 한 몸 안위에 만족하며 주저앉으려는 현재와의 싸움이었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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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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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취 : 고려의 부흥을 꾀하는 승려들의 비밀결사체. 나중에 '땡초'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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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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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 지 꽤 된 책을 오랜만에 펼쳐든다.  세종이 특히 아꼈던 집현전 학사들의 의문의 살인 사건.  거기에 얽히고 설킨 오랜 피흘림.  그리고 숨겨왔던 주상의 큰 뜻...

사건을 떠맡은 사람은 비천하다고 늘 손가락질 받기 일쑤였던 어린 겸사복 채윤.  사민 정책으로 북쪽 땅에 둥지를 틀었던 부모님을 여진족 손에 잃고 오로지 복수의 신념으로 전쟁터에서 성장한 청년.  그 청년을 김종서 장군이 거두어 주상께로 보냈다.  더 크게 쓰일 만한 재목이라고.

겨우 문맹을 벗어난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는 채윤이지만, 그랬기에 선입견 없이 사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의문의 마방진, 또 의문의 금속 활자.  이런 표식만 가지고도 채윤은 살해된 사람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오행에서 비롯된 순서임을, 그리하여 다음 희생자 역시 예고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천한 겸사복 혼자서 어찌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의심이 가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를 취조할 수 있는 자격이 되지 않았고, 사건에 도움을 받고자 청하여도 거절당하고 욕먹는 것이 부지기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윤은 포기하지 않았다.  또 다른 살인이 있을 것임을 아는데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작품을 읽는 재미는 채윤이 찾아가는, 또 풀어가는 수수께끼 같은 흔적들에 있었다.  살해 장소와 살해 방법으로 유추해 낸 오행과 마방진의 숫자 해법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고, 향원지, 경회루 등등에서 드러나는 '천원지방'의 정신이 아찔한 흥미를 돋운다.  세자빈과 말 못하는 궁녀 소이가 나누는 대화법은 이두를 닮아 있으며 한글 창제에 일종의 실마리를 제공하니 그 역시 신선한 정보를 제공해 준 셈.

20년 전 조정을 피바다로 물들였던 금서 '고군통보'에서 비롯된 사건을 파헤치다 보면 그 정점에 최고 권력자 주상이 있고, 이를 둘러싼 양 진영의 목숨을 건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가 익히 들어온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니, 최만리, 성삼문, 정인지, 이개, 정초, 박연, 장영실 등이 그 주역들이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들의 업적들이 편한 방구들에서 절로 나온 것이 아닌, 시대와의 '투쟁'의 결과였다는 것은 자랑스럽게 읽힌다.

그러나, 책은 흥미로운 소재와 설정을 100% 효과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  강단 있고 똑똑한 겸사복 채윤의 캐릭터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을 것 같건만, 녀석이 목숨 걸고 달려드는 그 의지에 '설득력'이 제공되지 않는다.  그가 말 못하는 궁녀 소이를 마음에 두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다.  전혀 절실해 보이지 않았건만 어느 순간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순진 청년이라니, 좀 뜬금 없는 전개였다.  학사들의 죽음을 파헤치고, 그 속에 녹아 있는 음모들을 풀어나갈 때면, 그 기막힌 해법에 감탄을 자아내고 고개를 끄덕여야 하겠건만, 문장 속에서 추리 소설의 장점으로 작용할 긴장감은 그닥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작품이 시작할 때마다 핵심 주제와 내용이 짧은 문장으로 먼저 소개되는데, 진행되는 내용의 흥미와 관심을 더해주기 위한 설정이겠지만, 오히려 떨어지는 긴장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세자빈이 축축된 것이 정치적 음모에 의한 희생양이란 설정도 역사적 사실에 위배되는 것으로 느껴져 나로서는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절대 그럴 리 없어!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당시 세종이 죄없이 쫓겨나는 세자빈을 보호하지도 못할 정도라고 생각하기는 더 싫다.

집현전의 중심 인물들은 이 무시무시한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별로 없어 보이고, 오히려 쉬쉬하며 덮으려는 느낌이 강했다.  성삼문의 거의 일방적인 채윤에 대한 호의도 그닥 와닿지 않았고, 죽음을 바로 눈 앞에서 겪어 놓고도 공포나 두려움 따위도 읽히지 않았다.  한 마디로, 작품은 '문장력'의 힘을 거의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말 못하는 소이를 통해서 음운 구조를 연구하고, 발성 기간의 모양을 본떠서 한글의 글자들을 창안해 내는 장면들은 우리 글의 과학성을 전달하는 데에 요긴하게 쓰였다.  경복궁의 각 전각과 건물, 연못, 호수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그 모양새와 이름에 깊은 뜻이 새겨져 있다는 것도 아름다운 깨우침이었다.  세종과 그의 집현전 학사들이 격물치지에 힘쓰며 새 시대를 열고자 얼마나 애썼는 지도 독자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몇몇 구절에서 보이는 비문과 오타가 약간씩 옥의 티로 자리한다. 적재적소에 포진되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부호와 그림 등은 고마운 도우미였는데, 간혹 오류도 있었다.  1편에서 왼팔뚝에 문신이 있다고 하면서 묘사된 그림은 오른팔이 들어가 있었고, 2편 23쪽엔 '24'절기를 '24개월'이라고 표시하였다.   61쪽의 눈에 띄었다는 '띠다'로 고쳐야겠고, 84쪽의 '말에 부딪친'의 문장에는 '채윤의'라는 행위 주체자가 빠져 있다.  159쪽, '<고군통서>의 행방을 알고 싶다면 아미산에서 기다리겠다'라는 문장은 '기다려라!'라고 해야 문맥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290쪽 '여인을 난전을 벗어나'는 '여인은'으로 고쳐야겠다.

몹시 오랜만에 읽은 추리 소설이었는데, 나의 취미 없음 탓인지 기대만큼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다음 작품 '바람의 화원'은 내가 사랑하는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자못 기대가 된다. 그치만 기대 때문에 재미가 떨어지면 곤란하니 '적당히' 기대하고 다가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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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53
존 버닝햄 글, 그림 | 이주령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7월
구판절판


1971년도 작품으로 존 버닝햄의 초기작이다.
확실히 훨씬 뒤에 나온 작품들에 비해서 풋풋한 느낌이 더 진하게 들었다.

왼쪽 그림에는 단색을, 오른쪽 그림에는 원색 컬러를 입혀서 강렬한 대비를 주었는데,
글씨가 큼직해서 아이들이 보기에도 적당하다.

강가에 사는 검피 아저씨는 조각배를 하나 갖고 있다.
처음엔 아이 둘이, 그 다음엔 토끼가, 이어서 고양이와 강아지가, 뒤를 이어 돼지와 양이, 거기에 닭과 송아지, 염소까지 합세하여 신나게 뱃놀이를 한다.

이들은 올라탈 때 말썽을 부리지 않겠다고 철썩같이 약속을 했지만, 배 위에 올라서는 이내 그 약속을 저버린다.

염소는 뒷발질하고, 송아지는 쿵쿵거리고, 닭들은 파닥거리고, 양은 매애거리고, 돼지는 배 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개는 고양이를 못살게 굴고, 고양이는 토끼를 쫓아다니고, 토끼는 깡충거리고, 꼬마둘은 싸움을 하고...
결국 배가 기우뚱 움직이면서 모두들 물 속으로 풍덩 빠지고 만다.

하지만 검피 아저씨는 화를 내는 법이 없다.
오히려 모두들 강둑으로 올라가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사이 좋게 몸을 말렸다.
뿐아니라 검피 아저씨의 집에 초대 받아 모두 한자리에 둘러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신다.

존 버닝햄의 그림에는 표정 없이 모두 똑같은 얼굴이지만 그들이 웃고 있음을 독자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 놀러오라는 당부와 함께 모두를 보내는 검피 아저씨. 그 넉넉한 마음이 구수하고 아름답다. 이런 한적한 여유로움, 너그러움, 자연과 함께하는 삶... 아름답고 멋지다. 글씨도 크고 그림도 멋져서 조카가 좋아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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