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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그락 샬그란 샬샬 - 삼척 서부초등학교 35명 어린이 시 ㅣ 보리 어린이 26
이무완 엮음 / 보리 / 2012년 11월
평점 :
어린이들에게 동시를 가르치며 그들의 서툴지만 순수한, 그래서 더 매력적인 시들을 묶어놓은 책들이 좋다.
비슷한 사례로 할머니 할아버지 되어 늦게 배운 한글로, 마음 속 이야기 조그맣게 풀어놓은 시집들도 참 좋았더랬다. 이 책은 앞의 경우에 해당한다.
쑥 - 이경한
쑥 먹어 보니 쓰다.
쑥쑥 자랐으면 좋겠다.
쑥 만져 보니 보드랍다. (19)
음률까지 맞춰서 기막히게 표현했다. 아이들은 교실이 아닌 뒷동산에서 혹은 학교 가는 길목 어딘가에서 쑥을 관찰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이들의 선생님이고 교재다.
전나무 - 김형진
전나무는 튼튼하다.
나뭇잎이 뾰족뾰족 돋아났다.
내가 안으면 닿지 않는다.
내가 전나무처럼 컸으면 좋겠다. (41)
전나무 옆에서 한없이 작던 이 아이가 지금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나무를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져 있을 테지. 그래도 여전히 나무도 보고 하늘도 보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주영이 동생 - 황서영
아침에 오면서
주영이 동생 민영이를 보았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나는 민영이 보고 아는 체했습니다.
민영이는 나를 보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생각하니 섭섭합니다. (47)
나라도 섭섭했을 거야. 그렇지만 이렇게 말 못했겠지. 솔직한 너의 마음이 기특하네.
학교와 집 - 황서영
집까지
걸어가면 10분이 걸리고
뛰어가면 5분이 걸린다.
하지만
학원 갔다가 오면
세 시간이 걸린다.
미술
발레는 지트
영어는 이투 영어 학원
피아노는 참소리 피아노 학원
우리 집이 참 멀다. (53)
그래도 발레 피아노 미술이 차라리 낫다. 지금은 국영수 학원을 다니고 있지 않을까.....ㅜ.ㅜ
돌 - 이지훈
농구대 아래 돌은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아주 단단하게 잠이 들었다. (65)
이런 구석구석에까지 눈길이 머물고 생각이 미치다니,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싶다.
네 눈은 필시 아주 깊을 것만 같아.
86쪽 각주에 '하늘은 푸르다'를 '파랗다'로 고쳐주는 부분이 있다. 푸르다는 초록빛이나 연둣빛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란다. 나무와 들은 푸르고, 하늘은 파란 거라고. 오마나. 몰랐다. 푸른 하늘 은하수는 파란 하늘 은하수로 고쳐 불러야 하는 거구나. 이래서인가?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왔을 때 보통 파란불 들어왔으니 건너라고 표현하지 않던가. 표현이 서로 섞여서 혼용되나 보다. 그나저나 푸른 하늘 아쉽네.
홍시 - 오서현
학교 오는 길에 감나무를 봤다.
감나무에
감이 주황색 물렁감이다.
홍시 같애서
조거 하나 따 먹어 봤으면 했다.
홍시는 살살 쪼개서 후 먹는다. (115)
살살 쪼개서 후~ 먹는다에서 그림이 그려지듯 풍경이 살아났다.
아, 그 홍시 나도 먹고 싶네...
좋은 선생님이시다. 주머니를 흔들며 나는 소리를 듣고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맞춰보라고 하니 아이들이 그 소리를 흉내낸 게 시집 제목이다. 샬그락 샬그란 샬샬... 하하핫, 주머니 속에는 열쇠가 들어 있었다.
귀여운 아이들, 아이들처럼 귀엽고 멋진 선생님!
어려서부터 시를 가까이 했던 아이들, 직접 시를 쓰며 자연을 관찰했던 아이들은 지금 고등학생이 되어서 어떤 감성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래도 조금은 덜 팍팍한 고딩이 되어 있지 않을까, 사춘기가 혹시 조금은 덜 요란했을까... 하는 근거 없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