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린느와 쥬네비브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8
루드비히 베멀먼즈 지음,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장 자끄 상뻬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래도 유럽색이라는 게 은연중 나타나는 것일까?
프랑스 파리의 오래된 기숙사에는 열 두명의 꼬마 숙녀들이 있다.  이 중 마들린느는 클라벨 선생님을 어떻게 놀래킬까 고민하였는데, 다리에서 떨어져 강물에 풍덩 빠지는 바람에 조용한 수녀님이신 클라벨 선생님을 제대로 놀라게 해드렸다.  모두들 발을 동동 굴릴 때 나타나서 용감하게 마들린느를 구해낸 것은 바로 개 한 마리였으니... 이 고마운 개에게 아이들은 '쥬네비브'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쥬네비브는 몹시 똑똑했고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클라벨 선생님이 불을 끄고 나가시면 서로들 쥬네비브를 끌어안고 자겠다고 싸움이 시작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해마다 5월 1일이 되면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보러 기숙사에 오신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부모님들은 개와 같이 아이들이 있는 것이 몹시 못마땅해 쥬네비브를 내쫓고 만다.  가엾는 쥬네비브.  아이들과 수녀님이 내내 찾아보았지만 쥬네비브의 간 곳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날 밤, 클라벨 수녀님은 기숙사 밖에서 쥬네비브를 찾아낸다.  아이들은 서로 또 쥬네비브를 차지하겠다고 싸우는데, 이제 당분간 그렇게 싸울 일은 없을 듯하다.  쥬네비브가 새끼 강아지를 열 두 마리나 낳았기 때문이다.


꽤 오래된 책인데 따스한 느낌의 정겨운 그림체가 맘에 들고, 기숙사 문화라던지, 수녀님이 선생님으로 계신다든지 하는 것 등에서 프랑스 사회의 문화를 짐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와는 다른 모습들을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NA에 난 상처를 수리하라! [제 721 호/2008-02-18]
 


생명체는 세포 속의 DNA에 자신의 생체 정보를 보관한다. 긴 DNA 가닥에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4가지 염기가 촘촘히 붙어 있는데 이들의 순서가 바로 생체 정보다. 사람의 세포 하나에 들어있는 염기쌍의 개수는 약 30억개. 염기 순서에 담긴 정보로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모든 생명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DNA 염기 순서가 종종 헝클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가끔 있는 일이 아니다. 세포 하나당 하루에 무려 1만 곳의 DNA에 손상이 생긴다. 이런 손상이 누적되면 돌연변이가 일어나 세포의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심하면 죽거나 암세포로 바뀌게 된다. DNA가 이렇게 많이 손상되는데도 생명체가 멀쩡히 살아있는 건 왜일까? 바로 손상된 DNA를 수리하는 ‘DNA 수리공’이 있기 때문이다.

DNA를 수리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염기 하나를 회복시키는 ‘염기 절단 수리’(Base Excision Repair, BER), DNA가 복제할 때 생기는 오류를 회복시키는 ‘미스매치 수리’(MisMatch Repair, MMR), 감마선 같이 강력한 자극으로 DNA 양쪽 가닥이 파괴됐을 때 쓰는 ‘이중 가닥 파손 수리’(Double Stand Break Repair, DSBR), 그리고 일반적인 손상을 회복시키는 ‘뉴클레오티드 절단 수리’(Nucleotide Excision Repair, NER)가 있다. 이중 외부 자극으로 생기는 오류는 주로 ‘NER 수리팀’이 맡는다. 최병석 KAIST 화학과 교수가 이끄는 ‘손상 DNA 회복시스템 연구단’을 통해 ‘NER 수리팀’의 활약을 살펴보자.

우선 DNA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DNA는 두 가닥이 지퍼처럼 연결돼 있는 모양이다. 한 가닥의 염기는 다른 가닥의 염기와 상보적으로 결합한다. 아데닌은 티민과, 구아닌은 시토신과 각각 수소결합으로 연결된다. 수소결합은 약한 결합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 쉽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

약한 결합 탓에 DNA는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 만약 보관 역할만 필요했다면 DNA 대신 외부 공격에도 끄떡 않는 화합물에 생체 정보를 기록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포는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수시로 DNA에서 해당 부분을 꺼내 그 정보를 전령 RNA에 복사하고 도로 집어넣기를 반복한다. 정보를 보존해야 하는 안정성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편리성을 모두 만족하기 위해 DNA가 생체 정보를 저장하는 화합물로 선택된 것이다.

DNA를 공격하는 대상은 다양하다. 자외선, 화학물질, 활성산소 등은 DNA를 공격해 염기 순서를 뒤바꿀 수 있다. 이들은 DNA 중에서도 특별히 약한 곳을 찾아 공격한다. 공격받은 DNA 부위는 통째로 떨어져 나가거나 염기가 뒤바뀐다.

최 교수팀은 특별히 티민이 연속해서 나오는 부위가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염기 순서가 ‘티민-티민’이면 같은 가닥의 티민 두 개가 서로 결합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DNA 구조는 뒤틀리고 원래 아데닌과 결합하는 티민이 엉뚱하게도 구아닌과 결합하게 된다. 염기쌍 순서가 뒤바뀌는 것이다.

DNA가 공격받으면 세포는 즉각 ‘DNA 수리공’를 동원한다. 이중 ‘NER 수리팀’은 DNA에 문제가 생긴 부위가 있으면 그 주변까지 통째로 잘라낸 다음 복구한다. 마치 살이 곪았을 때 그 부위만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까지 충분히 도려낸 뒤 싸매는 것과 같다. NER 팀에는 20~30개의 단백질이 속해 있다.

‘NER 수리팀’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DNA에서 손상된 부위를 찾는 것. 최 교수는 이 과정을 “울창한 숲에서 비틀어진 나무 하나를 찾는 것과 같다”라고 설명한다. XPC라는 단백질이 이 과정을 담당한다. XPC는 손상된 부위를 빠르게 찾기 위해 염기 하나하나를 확인하지 않고 DNA 구조를 확인하는 방법을 쓴다. XPC는 DNA를 더듬다가 정상이 아닌 구조를 만나면 달라붙는다. 최 교수팀이 DNA에 일부러 비정상 염기를 집어넣어 구조를 뒤틀리게 만들었더니, 뒤틀리는 정도가 심할수록 XPC가 더 잘 붙었다.

그런데 XPC는 DNA가 정상적으로 잠시 변형을 일으킨 부위에도 달라붙는 문제가 있다. 만약 이런 부위까지 치료한다면 낭비일 뿐 아니라 정상적인 생체 반응을 방해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RPA와 XPA라는 단백질이 있다. RPA와 XPA는 복합체를 이룬 뒤 XPC가 달라붙은 부위를 살펴 잠시 변형된 것인지, DNA가 손상된 것인지를 파악한다. DNA가 손상된 부위라면 RPA-XPA 복합체가 달라붙으며 복구가 시작된다.

그 뒤 TFⅡH라는 단백질이 복구를 명령하면 XPG와 XPF-ERCC1 단백질복합체는 잘라낼 DNA의 길이를 결정하고, 손상된 부위 주변의 DNA 가닥을 자른다. DNA 중합효소가 잘려나간 부위에 올바른 순서로 염기를 채워 넣는 것으로 복구는 종료된다.

만약 DNA 손상이 너무 커서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세포는 자기 스스로에게 ‘자살’할 것을 명령한다. 암세포로 바뀌어 주변의 다른 세포까지 악영향을 주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세포자살 기사 바로가기

최 교수팀은 NER에 관여하는 단백질 복합체의 3차원 구조를 알아내고, 이들이 DNA를 수리하는 메커니즘을 밝히고 있다. 큰 그림은 그렸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NER에 관여하는 수십 개에 달하는 단백질 중에 구조와 역할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암의 직접적인 발병 원인이 DNA 손상인 만큼 이를 해소하는 ‘DNA 수리공’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DNA 수리공의 원리를 응용하면 개인별로 특화된 암 원인을 제거할 수 있어 부작용 없는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L.SHIN 2008-02-18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세포자살' 명령이라니.
뭔가 어쩐지..숙연해지는.. 재밌어요! 나중에 또 읽을거에요.^^

마노아 2008-02-18 22:00   좋아요 0 | URL
인체의 신비라니까요. 근데 다시 읽자니 머리가 아파요. 너무 어려운 단어들....@.@;;;

L.SHIN 2008-02-19 10:15   좋아요 0 | URL
그래서 나중에 다시 읽겠다구요 ㅋㅋ
사실은 이 글...중간부터 물에 밥 말아먹듯 후르륵 넘겨 버렸다는..( -_-)

마노아 2008-02-19 12:57   좋아요 0 | URL
프후훗! 이래서 조선말은 끝까지 제대로 들어야 한다니까요^^ㅎㅎㅎ
 

안녕하세요? 건축과 만화를 맡고 있는 구본준 기잡니다. 
15일로 예술의전당이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문화예술 창달, 국민의 문화향수 어쩌구 저쩌구하면 지겨우실터이니, 예술의전당 20년에 얽힌 뒷이야기나 잠깐 들려드리려 합니다.

사실 이런 초대형 문화공간에는 늘 그 시대의 문화코드가 담기며, 당대 여러 사람들과 얽힌 에피소드들이 생겨납니다. 우리의 예술의전당도 마찬가지랍니다.

 

예술의전당2.jpg
 


# 나도 알고보면 문화적인 대통령이야-전두환 문화 3종세트
 
1982년, 전두환 정권은 새로운 기획을 합니다. 총칼로 국민을 죽여가며 집권한 군사독재정권은 시뻘건 핏빛으로 물든 자신들의 얼굴을 화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화’를 골랐습니다.

앞서 전두환 정권은 대중문화에서 섹스와 스포츠와 스크린(영화)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돌려 정치에 관심 갖지 않게하는 ‘3S 정책’을 폈었습니다. 그 다음 작업으로  흔히 고급문화라고 하는 분야에서도 뭔가 있어보이고 자기네들 치적처럼 될 것을 만들고자 한 거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은 늘 건축을 선호합니다. 굳이 멀리 찾지 말고 청계천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두환 정권은 이런 건물 짓기 좋아하는 속성이 더욱 강했습니다. 그래서 문화적인 뭔가를 남기자며 문화부처가 추진하는 3대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잘 아는 천안의 독립기념관,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서울의 예술의전당입니다.


 
# 뚝섬은 달동네가 보이니 아니되오-서초동으로 가게 된 사연
 
빛나는 머리로 무지막지한 생각을 가차없이 실현하는 전두환 대통령은 앞서 독립기념관을 기획한 팀에게 예술의전당 기본 기획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라고 해도 초대형 시설이 들어설 곳이 쉽게 뚝딱 생길리 없지요.


기획팀이 처음 서울시에 달려가 땅좀 주세요, 해서 제안받은 첫 부지는 경희궁터, 그러니까 옛 서울고등학교 자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좁아 제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번째로 찾은 곳이 서울 서초동 정보사 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 정보사가 얼마나 무소불위의 힘을 지녔는지 40대 이상들은 다 아시죠? 그런 정보사에게 땅을 내놓으라고 했으니 당연히 퇴짜를 맞았죠. 

실무팀은 다시 새 땅을 골랐습니다. 한강 푸른 물결이 바라보이는 뚝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진희 당시 장관이 퇴짜를 놨다고 합니다. 뚝섬에서는 바로 강북 한강가 저소득층 밀집지역이 눈에 들어와서 안된다는 거였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에 수많은 외국인들도 올텐데 창피하지 않겠느냐, 그런 이유였다고 당시 참여했던 한 실무자는 전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3전4기로 찾아낸 곳이 지금 예술의전당이 들어선 서울 서초동 우면산 자락입니다. 당시 허허벌판, 말죽거리의 중심지에서도 벗어난 곳, 8차선 남부순환도로만 씽씽 달리는 우면산 기슭에 갑자기 예술이 몰려가 전당을 차린 사연입니다.

 

예술의전당 미술관.jpg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 건축가 선정부터 파란, 거장들을 누른 김석철의 스타탄생
 
국가대표 문화공간을 짓는 일이니 설계를 국내외 최고 건축가들끼리 시합을 붙이는 현상경기로 뽑았습니다. 당시 한국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과 김중업은 물론 외국 유명 건축가까지 참여한 경기에서 우승자는? 건축가로선 약관에 가까운 40살의 소장 건축가, 김석철 현 명지대 교수였습니다.


최종 세 후보까지 오른 설계안은 나중 당선된 김석철, 그리고 한국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 그리고 미국의 한 건축가의 것이었습니다. 사실 80년대까지 한국 건축계는 두 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두 김씨인 김수근과 김중업 두 양반이 꽉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어떻게 둘 다 떨어졌던 것일까요?

 

당시 예술의전당쪽이 제시했던 공간배치 프로그램은 앞 도로쪽으로 건물들이 나와 있도록 배치하는 컨셉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수근, 김중업의 안은 그런 규정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독창적인 생각대로 갔습니다. 지금 예술의전당을 보시면 도로쪽으로 건물들이 있고 그 뒤로 넓은 공간이 나오며 산쪽으로 다시 시설들이 이어지는 식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지요. 김수근의 안은 앞에 개방 공간을 배치하고 뒷쪽 산쪽 경사를 따라 건물들이 들어서는 구도였습니다. 반면 김석철의 안은 마스터플랜의 의도를 정확하게 따른 것이었습니다.

 

김수근과 김중업이란 두 거장에게 모두 배운 유일한 건축가인 김석철 교수는 두 스승을 이기고 사상 최대의 문화공간 프로젝트를 따내며 건축계의 스타가 됐습니다.

잠시 샛길로 빠지자면, 김석철 교수에 대해 동창인 이헌재 전 부총리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 전합니다. "석철이가 천재인 줄 알았는데, 석동이를 만나보니 더 천재더라"는 이야깁니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이 김석철씨의 친동생입니다.

 

예술의전당 음악분수.jpg
예술의전당의 주요한 자랑거리인 `세계음악분수'. 건축가 김석철씨가 설계한 것으로, 가로 43미터, 세로 9미터 수조에 노즐 800여개 수중등 500여개를 달아 음악에 따라 물줄기가 춤추며 여러가지 효과를 연출한다.


 

 
# 우리 것이 좋은 것이니 갓과 부채를 올리거라
 
모든 대형 프로젝트가 그렇듯 예술의전당도 계획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김석철의 디자인도 크게 바뀌게 됩니다.  

고위층에 계신 어느 분이 홀연히 “한국 땅에 짓는데 한국 전통적 이미지를 넣어야 한다”고 하시는 바람에, 예술의전당은 갑자기 한국적 디자인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음악당은 부채 모양으로, 오페라하우스는 갓 모양이 됩니다.

한 건축평론가는 “양복 입고 갓쓰고 도포 입고 중절모 쓴 꼴”이라고 평하더군요. 평가는 모두의 몫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평가해보시죠.

 

예술의전당1.jpg
왼쪽이 갓모양으로 만든 오페라하우스, 오른쪽이 부채모양 음악당이다.
 


# 애초 찬밥이었던 음악, 예술의전당을 음악의 전당으로 바꾸다
 
지금 예술의전당은 사실상 클래식 음악의 전당입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당시 첫 구상은 지금같은 클래식 음악 중심 문화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애초 벤치마킹 모델은 70년대 후반 세계 문화계에 충격을 준 파리 퐁피두센터였고, 시각예술과 자료관을 중심으로 하며 소규모 음악 공간들이 딸리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처음 추진됐습니다. 5공 정부는 당시 방송광고공사에 이 새 문화공간 사업을 검토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공사는 부랴부랴 여기저기 아이디어를 찾은 결과 프랑스통인 한 인사로부터 퐁피두형 공간 아이디어를 접수해 발의를 했지요.


그러나 이후 음악계에서 강하게 오페라하우스 설립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봤잖느냐, 세계 선진국들은 오페라하우스가 다 있다, 우리도 이제 제대로 된 오페라하우스 하나 만들자, 는 의견이었습니다. 반대도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무슨 오페라를 얼마나 하냐고 오페라하우스냐, 는 반발이었습니다.


논란 끝에 간신히 결국 오페라하우스는 막차로 건립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을 열고나자 예술의전당 여러 공간들 중에서도 가장 수요가 많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음향이 너무 안좋다는 거.

반면 애초 예술의전당 계획에서 구상됐던 소규모 음악공간들은 대중 접점도 적고 사용빈도도 적어 지금은 존재감이 별로 안느껴지지요. 결국 오페라하우스를 짓기로 한 게 옳았던 셈입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jpg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전경.


 

 
# 각하, 터널부터 뚫고 지어야 한답니다
 
 예술의전당은 원래 올림픽의 해인 88년이 아니라 아시안게임이 열린 86년에 개장할 예정이었습니다. 공사가 2년 늦어진 것은 예술의전당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설계안을 받아든 예술의전당쪽은 서울시에 건축 협의를 하러 갑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니 당연히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심의 불가’ 판정이 나왔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 하고 알아보니 예술의전당이 들어설 부지에 일찌감치 터널 공사 계획이 잡혀 있었던 겁니다.


천하의 무지막지 전두환 대통령이 추진하는 사업인 덕에 그나마 절묘한 타협 아이디어가 채택돼 공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터널 공사는 도시 계획 전체에 따라 잡혀있지만 당장 뚫는 것은 아님. 예술의전당은 무조건 각하의 임기에 지어야 함. 그렇다고 예술의전당 먼저 지으면 나중 그 밑으로 터널 못뚫음. 그래서 나온 방안이 먼저 예술의전당 들어설 부지 밑으로 터널부분을 뜷어놓고 그리고 예술의전당 짓고, 나중에 터널 뚫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먼저 예술의전당 들어설 지하에 80미터짜리 터널을 뚫었습니다. 그 뒤 예술의전당이 착공됐습니다. 그러나 터널 뚫는 데만 2년이 걸렸고, 결국 예술의 전당은 아시안게임 대신 올림픽의 해에, 간신히 올림픽 전에 열어야 한다는 청와대의 엄명으로 음악당만 먼저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대통령은 빛나던 분에서 물기운 강한 분으로 바뀐 뒤였습니다.

예술의전당 때문에 미리 80미터만 먼저 뚫어 놓았던 희한한 운명의 터널이 바로 지금의 우면산 터널입니다.


 
# 조용필이고 뭐고 오페라하우스는 안되…, (퍽! X 퍽!) 그럼 공연하세요ㅜ.ㅜ
 
새천년을 앞둔 1999년, 예술의전당은 모처럼 진보적인 기획을 하나 내놓습니다. 조용필씨가 새천년 맞이 연말 12월에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하는 기획이었습니다.

그냥 콘서트가 아니라 극장에서 하는만큼 뮤지컬 식으로 구성하는 새로운 공연을 하자고 예술의전당에서 조용필씨에게 제안합니다. 들어본 조용필씨,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당시 예술의전당 기획은 한국 대중음악이 팝음악을 누르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고, 그런 기여를 한 최고 가수는 당연히 조용필씨니 그런 ’아티스트’를 무대에 세우자, 는 지극히 문화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획팀은 걱정도 컷습니다. 오페라의 최고 무대이니 성악계가 반발할까 하는 우려였죠. 그리고 예상대로 이 계획을 발표하자 성악계는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지금이야 대중음악계 원로 톱스타들이 대형 극장 무대에 서지만, 당시만해도 ’순수 고급 클래식’의 공간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이나 예술의전당에 대중음악가수들에게는 좀처럼 개방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성악계의 반발에 이번에는 우리의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여론은 너무나 예상대로 가왕 조용필의 편이었고, 그 덕분에 예술의전당의 과감한 기획은 성사되었습니다. 이후 조용필씨는 2005년까지 해마다 예술의전당에서 연말 콘서트를 했습니다.

 

그러나 조용필 이후로는 예술의전당은 다시 다른 대중음악인들에게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nawy_2057_hnlee6.jpg
우리의 슈퍼스타 조용필. 클래식과 팝의 구분이 점점 사라지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 저기, 지휘 좀 대신 해주실래요?-사상 유례가 없었던 지휘자 공수대작전
 
2001년의 일입니다. 런던필하모니오케스트라, 줄여서 런던필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휘자는 그 유명한 쿠르트 마주어. 1927년생이니 당시 74살의 노지휘자였습니다. 협연자는 장영주. 공연은 2회 짜리였습니다.

그런데 첫날 공연 도중 사고가 터졌습니다. 지휘를 하던 마주어의 팔이 뚝하고 아래로 처지고 맙니다. 갑자기 그의 몸에 이상이 왔던 겁니다. 거의 제정신이 아닌 마주어는 간신히 공연을 마무리한 뒤 바로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직행합니다.

그럼 남은 다음 공연은? 당연히 지휘 못하죠.

 

예술의전당 기획팀은 기절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밤새 마주어급의 세계적 지휘자를 대타로 물색하는 대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서울은 밤이지만 유럽은 낮이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여기 코리안데요, 세계적 지휘자로 지금 아시아에 계신분 누가 있나요, 여기저기 물어본 끝에 3명이 아시아에 있다는 것이 파악됐습니다. 훗날 KBS교향악단 지휘자로 왔던 드미트리 기타옌코,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의 볼프강 자발리쉬, 그리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필하모닉의 유리 테르미카노프였습니다.


이중 기타옌코는 알아보니 이미 다른 나라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여차저차해서 유리 테르미카노프가 급박한 예술의전당쪽의 사정을 듣고 착하게도 무대에 서주기로 합니다. 다행히 유리가 지휘하는 상트페테르부르그필하모닉은 일본 순회 연주중이었는데, 중간에 하루 일정이 비어있었습니다.

유리 테미르카노프는 부랴부랴 새벽 일본 나고야에서 비행기를 타고 낮 12시에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번갯불에 콩볶듯 교향악단과 연습, 그리고 숨돌릴 틈없이 그날 저녁 공연을 합니다. 세계적 지휘자답게 급하게 대타로 선 무대를 훌륭히 선방해준 그는 그 다음날 새벽 다시 서울에서 일본 삿포로행 비행기로 일본에 건너가 공연을 잘 마쳤습니다.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세게적인 지휘자를 대체해 공연한 경우는 무척이나 드문 일입니다. 전화위복이었을까요, 이 일로 세계 공연계에서 예술의전당은 대처능력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섭외에 응해준 착한 유리 테르미카노프는 그 인연으로 뒤에 상트페테르부르크 필을 이끌고 2차례 내한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예술의전당이 20주년을 맞은 올해 11월 12일과 13일, 다시 한번 상트페테르부르그필이 온답니다. 지휘자는 당연히 유리 테르미카노프죠.

 

예술의전당4.jpg
본 사진은 유리 테르미카노프나 쿠르트 마주어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만 음악당 내부를 사진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 예술의전당에서 받아왔습니다.


 

 
# IMF라 공연료를 못드립니다-그럼 절반이라도 주실래요?
 
1997년 봄, 예술의전당은 영국 국립극장인 로열내셔널시어터의 연극 <오델로>를 다음해인 98년 2월에 서울에서 공연하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연출자는 샘 멘데스. 어디서 들어본 듯 하시다구요?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그 샘 멘데스 감독입니다. 사실 이분은 부인이 더 유명한 편이죠. <타이타닉>의 통통한 히로인 케이트 윈슬렛에게 장가를 갔거든요.


그런데 그해 겨울,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강타합니다. 원화가 폭락하면서 1파운드가 1400원에서 3000원으로 뛰어올랐습니다. <오셀로>를 기획한 예술의전당이 황당해집니다. 예산을 1억5000만원~2억원 사이로 잡았는데, 외환위기 때문에 환율을 계산해보니 3억원을 훌쩍 넘기게 된 겁니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답이 안나와 결국 예술의전당쪽은 정말 창피함을 무릅쓰고 공연을 못하겠다고 통보합니다. 이런 국가대표급 공연장에서 갑자기 공연 취소는 신용에 치명상을 입게 되어 절대 피하는 일이지만 그만큼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겁니다.


이번엔 영국국립극장이 황당해집니다. 영국국립극장은 98년 2월 한국 예술의전당만이 아니라 그 전에 중국 찍고, 한국 찍고, 다시 일본찍는 3개국 순회공연을 잡아놓았던 겁니다. 한국만 중간에 비면 자기네도 미칠 노릇입니다. 영국국립극장쪽은 결국 개런티를 절반으로 깎아 주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계약 당시 한국 환율 부담대로 하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마음을 곱게 쓰면 복이 오는 법. <오델로> 공연이 대박을 칩니다.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은 살판이 났던 시절입니다. 똑같이 달라로 돈을 받는데 한국 돈으로 바꾸면 소득이 2배로 늘어나게 되니까요. 돈이 많아지면 문화적이 되지요. 이 사람들이 <오델로>한다니까 안오던 연극에 몰려왔습니다. 당시 <오델로> 관객 중 외국인 비율이 무려 30%였습니다. 12회 공연이 전회 매진됐고, 예술의전당쪽은 만세를 불렀습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jpg
사람 얼굴 모양으로 디자인한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 날아간 지하도로, 튀는 육교, 어떻게 했든 여전히 불편한 진입로
 
원래 예술의전당 건설 계획에는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 예술의전당까지 지하도로 연결하려 했다고 합니다. 지하도 공간에는 쇼핑몰도 입주시킬 계획이었는데, 공사비 문제로 취소가 되었답니다. 예술의전당을 차없이 가는 시민들은 결국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남부순환로를 불안감을 느끼며 건널목으로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남부터미널쪽에서 예술의전당으로 가는 중간쯤에 2004년 이상한 육교가 그나마 들어섰습니다. 왜 육교가 이상하냐면 무려 55억원이나 들여 만든 ‘아트 육교’이기 때문입니다. 남부터미널 부근 부지가 개발되면서 개발 주체가 지어 기증한 육교인데,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이란 건축가가 설계한 ‘작품’입니다. 강선으로 상판을 잡아당기는 사장교 육교죠.

 물위의 사장교는 보셨겠지만, 땅 위의 사장교는 못보셨죠? 남부순환로를 가다가 산쪽에 비스듬히 뉘운 유리 구조물이 있고 거기서 연결되는 육교가 바로 그 육교입니다.

엄하게 육교가 들어서주긴 했는데, 여전히 예술의전당 가는 길은 걸어서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차로 오란 이야긴가요?

 

아트육교1.jpg
아트육교2.jpg
조명발을 받을 때 훨씬 나은 서초구 우면산의 `아쿠아 아트 육교'. 이 아트육교는 군인공제회가 55억원들 들여 지어 서초구청에 기부채납한 것이다. 프랑스의 건축디자이너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이 디자인했다. 잘리콩은 기(氣)와 풍수에 관심이 많은 건축가로 “남산의 화기(火氣)가 지나는 우면산의 에너지를 도시로 전달하는 배관, 구멍과 같은 상징적인 역할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라면서 “기를 통과시키되 불의 기운을 낮추기 위해 물이 흐르는 터널 형태로 만들었다”고 디자인의 의도를 설명했다.

 

 

# 그리고 갖가지 기록들
 
20년 동안 예술의전당에서 한 공연과 전시를 합치면 1만3879건입니다. 총 관객은 지금까지 2780만명. 일렬로 세워 인간띠를 만들면 지구 한바퀴(4만6286㎞)를 돌 정도며, 서울과 부산을 50회 왕복할 길이랍니다. 올해 안에 3000만명을 넘을 것 같습니다.

관객이 많이 든 공연물은 주크박스 뮤지컬 선풍을 일으킨 <맘마미아>였습니다. 2006년에 76일 107회 공연해 20만7514명이 들렀습니다. 전시부문은 기록이 더 셉니다. 지난해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오르세미술관전>이 42만9000명을 동원했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예술의전당에 있는 서울서예박물관이 세계 유일의 서예 전용 전시장인 거. 서예전시로 최다관객은 2002년 <조선왕조어필전>이 세웠던 7710명이었습니다.
 
예술의전당이 오래 해온 간판 프로그램은 ‘교향악 축제’입니다. 전국 각지 유수 교향악단이 총출동하는 최대의 클래식 잔치입니다. 1989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이 교향악축제에 가장 많이 참가한 지휘자는 누구일까요?
정명훈? 아닙니다. 지금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박은성 감독이랍니다. 17회 참가. 2위는 16회 참가한 부천필의 지휘자 임헌정 교수입니다.
 교향악축제에서 가장 많이 협연한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씨로 조사됐습니다. 11번 협연. 그 다음은 5차례 협연한 피아니스 김용배, 김대진, 이경숙씨 세분입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예술의전당-앰블럼.jpg
예술의전당이 20주년을 맞아 도입한 엠블럼. 슬로건은 "예술의 전당과 함께 뷰티풀 라이프"라고 한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8-02-16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축은 그 시대의 사상과 예술과 시류를 담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 예술의 전당이 지어진 시기가 어떠했는지는 설명 안해도 아실꺼에요..^^
그냥저냥 위정자의 구색맞추기용 건물이에요.시간이 지나 시민들의 공간으로 조금씩 탈바꿈하고 있긴 하지만 저리 불손한 의도로 지어진 건축물은 대한민국에 질리도록 많답니다.^^

마노아 2008-02-16 22:57   좋아요 0 | URL
그렇게 시대의 사상과 예술과 시류를 담고 있는 많은 것들이 현재도 진행중이겠지요.
복원될 숭례문도, 절대 무산되길 바라지만 진행되고 있을 대운하라든가 기타 등등이요.
기사 재밌게, 씁쓰레하게 읽었어요. 그나저나 기자분이 딸기님 오빠분이어서 더 눈이 가기도 했답니다6^^

순오기 2008-02-17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끄덕이며 읽었어요. 뭐든지 밀어부치면 되는 대한민국?이 좀 난감하군요.ㅠㅠ
예술의 전당에 가본 건 두번 뿐이군요.
'그리스로마신화전'과 '세잔느에서 반고흐까지' 그나마 방학중에 친정 갔다 광주촌넘인 우리 애들을 위한...^^

마노아 2008-02-17 15:42   좋아요 0 | URL
예술의 전당에서 오르는 무대와 전시회를 아꼈는데 어쩐지 좀 배신감이 들기도 해요.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관의 압력이 너무 큰 대한민국 같아요.
공연계는 더 한심하다는...ㅜ.ㅜ

bookJourney 2008-02-17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의 전당은 위치부터가 일반 서민과는 거리가 멀지요. 교통편이 어찌 그리 불편한지 ... ㅠ.ㅠ
이 글을 읽고 나니 더 심란해지네요.

마노아 2008-02-17 20:20   좋아요 0 | URL
지하철 타고 마을 버스 타고 꾸역꾸역 가야만 했죠. 진짜 자가용 가진 사람들 위주의 위치선정이에요.
게다가 표값은 늘 어쩜 그리 비싼지, 귀족의 전당이라니까요..ㅡ.ㅡ;;;;

2008-02-17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8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8 0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8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08-02-2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군요.
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마노아 2008-02-20 14:04   좋아요 0 | URL
서민들에게도 예술이 산 너머가 아닌 날을 고대해요. 우리 모두의 유산이 되기를... ^^
 

 
◈껌을 삼키면 몸에 나쁜가?
껌이 몸속에 축적될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소화기관에서 분비되는 소화효소가 대부분의 음식물을 분해하고 설사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아도 대변으로 배설된다. 하지만 껌을 삼키는 것이 해롭다는 보고도 있다. 미국 올랜도시 데이비드 밀로이 박사의 보고에 따르면 한 4살 남자 어린이와 또 다른 4살 여자 어린이는 하루에 5~7개의 껌을 삼켰는데 두 어린이는 심한 변비로 고생했다. 18개월 된 한 여자 어린이는 기침을 하며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워 병원에 찾아 왔는데 껌과 몇 개의 동전이 뭉쳐서 식도를 막고 있었다. 껌을 삼키는 것이 반드시 몸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소화기관이 좁은 어린이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L.SHIN 2008-02-1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동전은 왜 먹었대...ㅡ.,ㅡ

마노아 2008-02-18 23:1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껌만 신경쓰느라 동전은 생각 못했네요^^ 주의력도 좋으신 루드 에쓰님!

L.SHIN 2008-02-19 09:56   좋아요 0 | URL
오옷~ (>_<) 칭찬 받으면 부끄부끄~
저도 껌을 많이 삼켜 봤지만 괜찮던걸요. 동전은 삼키면 안돼잉~

마노아 2008-02-19 10:15   좋아요 0 | URL
컥, 껌을 많이 삼켰단 말입니까?! 루드 에쓰님은 풍선껌을 귀엽게 불 것 같아요^^
 



 
과학 ‘팍’ 도사 - H양 입 냄새 고민상담 [제 720 호/2008-02-15]
 


Q. 전 고민이 있어요.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저와 대화를 할 때마다 자꾸 고개를 옆으로 돌려요. 그 친구도 제게 호감이 있는 것 같은데 제 말에 집중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속이 상해요. 저를 무시하는 이 친구를 어쩌면 좋죠? (서울 용산에서 H양)

A. 구취제거제를 사용하거나 자주 이와 혀를 닦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있던 호감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입 냄새는 삐져나온 코털과 비슷해요. 자신은 잘 모르지만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은 쉽게 알아채죠. ‘비호감’의 단계를 넘어 혐오감을 줄 수도 있어요. 가장 큰 문제는 이를 알아차리더라도 그 자리에서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죠. 그래서 미리 예방하는 방법을 추천해드리고 싶군요.

먼저 데이트는 오후가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 안이 말라있는 경우가 많아요. 침은 입 속 세균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데 입이 말라 있으면 세균 활동이 왕성해지죠. 침은 세균을 씻어내고, 리소자임이나 락토페린 같은 성분이 들어있어 세균을 없애주기도 합니다. 입 속 세균 중 혐기성 세균은 단백질을 분해해 입 냄새의 원인이 되는 황화수소(H2S) 가스를 만드는 주범이죠.

전날 밤 양치질을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면 입 냄새는 정말 최악일 것입니다. 정 믿지 못하시겠다면 손등에 침을 바른 뒤 냄새를 맡아보세요. 입 냄새가 심하면 침에서도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자신도 모르게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려버렸다면 일단 물부터 한잔 드세요. 입안이 어느 정도 촉촉해지며 침 분비가 왕성해집니다. 그 뒤 양치질을 하면 입 냄새가 대부분 사라집니다. 이때 혀까지 깨끗하게 닦으세요.

입 냄새를 없애겠다고 입으로 숨을 쉬는 경우도 있는데 황화수소 가스가 빠져나가 잠깐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입 안이 마르기 때문에 입 냄새는 더욱 심해집니다. 특히 겨울에는 공기가 건조해 입 냄새가 더 심해질 수도 있어요.

데이트를 할 때 입 냄새가 걱정된다면 커피는 멀리하는 편이 좋아요. 꼭 드셔야겠다면 크림이나 우유를 넣지 않은 블랙커피나 아메리카노를 추천합니다. 커피는 약한 산성을 띄고 있습니다. 커피 특유의 시큼한 맛은 여기에서 비롯되죠. 그런데 입 속 세균은 약한 산성에서 활발해집니다. 만약 크림이나 우유를 섞은 커피를 마시면 활발해진 세균에 단백질이란 먹이 덩어리를 공급해주는 셈입니다.

간혹 아침에 나는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모닝커피를 드시는 분이 있는데 사실 별 효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죠. 밤새 입 안이 말라 세균이 많은 상태에서 영양분을 공급해준다면 입 속은 순식간에 황화수소 가스로 가득 차겠죠. 차라리 커피보다 물을 마시는 것이 입 냄새 제거에 효과가 있답니다. ‘모닝녹차’나 ‘모닝야채’도 좋아요. 녹차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입 냄새를 제거하고, 야채를 먹어도 입 냄새가 없어진답니다.

데이트를 할 때는 구강청정제도 가져가세요. 구강청정제에 있는 멘톨이나 페퍼민트 같은 향료 성분이 입 냄새를 가려줍니다. 또 일부 구강청정제에 섞인 알코올은 세균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죠. 하지만 입 냄새를 없애겠다고 오랜 기간 구강청정제를 사용하면 위험해요. 입 속에는 입 냄새를 만드는 세균 외에도 구강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세균이 있는데, 이 세균들이 사라지면 입안이 헐고 피가 나는 ‘진균증’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도 입 냄새가 사라지지 않으면 병원에 가보는 편이 좋습니다. 입 속 세균이 만드는 입 냄새 말고, 충치나 잇몸, 코, 목의 염증으로도 냄새가 나기 때문이죠. 입을 막고 코로 바람을 내뿜어도 입 냄새가 나면 코나 목의 염증 때문일 수 있습니다. 병원에 있는 구취측정기(halimeter)의 관에 바람을 불면 입 냄새가 어떤 부위에서 얼마나 나는지 알 수 있어 원인과 치료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입 냄새가 심하다면 빨리 원인을 찾아 없애는 편이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인간관계에도 도움이 됩니다. 연인 관계에서는 필수지요. 달콤한 분위기에서 첫키스를 하다 남자친구가 당황할 수도 있어요. 웃을 일이 아니랍니다. 여배우 비비안 리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찍을 때 클라크 케이블의 입 냄새 때문에 키스신 도중 기절했다는 일화도 있으니까요. (글 : 전동혁 과학칼럼니스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8-02-15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스신 도중 기절했다면 상대방이 정말 당황했겠네요

마노아 2008-02-16 10:31   좋아요 0 | URL
저 고등학교 때도 비비언 리가 키스신 찍고 나서 토했다는 둥 소문이 많았던 기억이 나요^^ 정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