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 -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안세홍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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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였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지원금을 내년 전액 삭감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했다가 몇 시간 안 되어서 번복했던 일이. 그런 식으로 삭감했던 예산이 한 두 개는 아니지만 그 모든 것들에서 공통점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에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해방이 되고도 조국이 살뜰하게 보살펴주지 못한 그들을 사진작가 안세홍이 찾아다녔다. 그가 방문한 곳은 중국. 전쟁이 끝났음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그곳에 살아야 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다닌 것이다. 세월이 흘러 이주한 곳을 못 찾기도 했고, 이미 돌아가신 분도 계셨다. 그렇게 재차 방문이 가능했던 여덟 할머니들의 육성을 사진과 인터뷰로 담아냈다. 


이수단 “이 사진 한 장밖에 없어. 유일한 가족사진이야.”
김순옥 “어디메로 도망을 쳐, 잡히면 죽어요.” 
배삼엽 “일주일 동안 거기서 피가 나대요. 아프고 붓고 걷지도 못했수다.”
김의경 “꽃이 피어오르는 걸 끊어낸 거지.”
박대임 “밤에는 잠을 안 재워. 그 짓을 안 하면 밥도 안 줘.”
현병숙 “혼은 조선에 가 있어요. 꿈을 꿔도 조선 꿈이지.”
박우득 “갈 수만 있다면 고향에 가고 싶어요.”
박서운 “나이가 원수라……. 인자 여기가 고향이여.”


목차만 보고도 짠해진다. 사진도 같이 보자. 



지구 반대편도 얼마든지 오고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건만, 이분들의 물리적 거리는 여전히 멀다. 그리고 아마 그들이 기억하고 있던 고향과 현실의 모습은 물리적 모습 뿐아니라 심리적 간극이 더 클 것이다. 




저렇게 속아서 온 분들을 '자발적으로' 간 거라고 우기는 사특한 것들이 있다.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당신은 조국의 말을 잊어버린 게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조국은 당신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듯합니다...ㅜ.ㅜ



주름 가득한 얼굴에 젊을 때의 모습이, 흔적이 그래도 느껴진다.



한복 입고 사진 찍는 게 소원이라던 할머니를 위해 안세홍 작가님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할머니, 소원 이루셨어요.ㅜ.ㅜ



고향 말과, 고향 노래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달래주었을까. 동시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불러왔을까.



이래서 할머니들은 젊어서 불임이 많았다. 이분들의 인생을 얼마나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던 것인가. 그런데 아직도 사과 한마디 못 받고 있다. 인정도 안 한다. 징글징글하다.



그 시절에 바람 난 남편을 향해 이혼을 선언한 대찬 여인은, 홀로 아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았건만, 이토록 무참한 일을 당하고야 말았다. 국가는 이분들에게 어떻게 속죄할 것인가.



떨어져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다. 반가운 마음도 육신의 고단함이 받쳐주질 못했다. 할머니는 사흘 만에 중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미국 군인도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서로 적군인데?? 헐!



가난이 원수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건 이 나라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어렵게 국적을 회복해서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그것이 더 큰 상처가 되어서 중국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그 서운함과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한국의 가족들만 나무랄 수도 없다. 그들 모두가 피해자다.



사진전이 무사히 열릴 수 있도록 힘을 보탠 깨어있는 시민들도 분명히 있었다. 일본에서도 말이다. 


현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생존자는 47명에 불과하다. 이 숫자가 줄어드는 가속도가 더 붙을 것이다. 


언제 후원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아무튼 위안부 피해자 소녀 이야기 '귀향'이 곧 영화로 올라간다고 시사회 안내 메일을 받았다. 이런 민간 차원에서의 움직임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좀 더 영향력 있고, 영양가 있는 활동을 보고 싶다. 제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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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선집 - Human Vol.1-14
최민식 지음 / 눈빛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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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 모음집이다. 무려 55년의 사진 인생을 정리한 두꺼운 책이다. 거기에 선생의 인생과 철학이 잘 드러난 글도 함께 추려서 에세이로 엮었다. 사진을 들여다 보면 이 책이 왜 '휴먼'인지 느껴졌다. 인간을 향한 선생의 따뜻한 시선이, 신뢰가 뭉클하다.


인간적 관심과 삶의 진실에 대한 추구는 나의 전 생애 사진 작업을 통틀어 일관된 것이었다. 나는 사진을 통해 좀더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휴머니즘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 보려는 신념으로 사진을 해 왔다. -18쪽



아이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이, 환희가 느껴진다. 너로 인해 이렇게 행복했단다! 1968진주, 1990부산



얼굴 가득한 해맑음, 호기심, 한가지를 향한 집중력까지! 이 똘망똘망한 눈망울들! 1978부산, 1963부산, 1986부산, 1966부산


바람만 불어도,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음이 터지던 마냥 즐거운 시절! 가진 게 적어 오히려 더 풍족했던 어느 한때... 1983부산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이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지상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서로가 책임져 주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 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61쪽



1992부산, 1991부산


어쩐지 좀 세 보이고, 어쩐지 좀 당당해 보이는 느낌의 이 언니. 그런데 왜 헤어지기 직전의 연인으로 보일까?

90년대의 드레스는 저렇게 풍성하고 장식 많은, 부케도 화려하게 늘어지는 게 유행이었다. 어느 순간에 심플하고 세련되게 바뀌었을까? 2000년에 결혼한 내 친구의 부케도 저런 느낌이었다. 


진리를 찾는 구도자, 자비와 자애로움을 몸소 보여주는 미소... 1996네팔, 1985부산



땟거리도 없던 시절에도 배움을 향한 목마름에 더 갈증냈었지. 서로서로 돌봐주며 이끌어주던 형제 자매들. 누가 봐도 붕어빵. 부산 1960, 1995



상궁마마같은 올림 머리, 그래도 드레스는 다소 심플해졌다. 저렇게 싱그러운 아들 달 낳고서 행복하게 해로하기를! 1996부산, 1988부산


나의 진짜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사진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사진이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로를 용서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어떻게 사랑을 가르쳐 주었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288쪽


사진 발표의 수단으로서 나는 전시보다는 사진집을 선택하며, 그것도 흑백사진이 주류를 이룬다. 사진집이라면 하나의 주제를 차분히 검토하는 시간과 그것을 충분하게 묘사하는 공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된 의미로 하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 그것을 통제하여 같이 놀고 교향곡처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은 결국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442쪽

음원이 아닌 'CD'로만 앨범을 발표하려고 하는 나의 공장장님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일본을 여행 중인 친일 고관들의 부인들이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한일병합'에 찬성한 매국관료들이 부부동반으로 근대화한 일본을 견학한다며 방문했다.



훈춘사건으로 처형된 농민들

 

양팔이 잘린 농민 변씨

북간도 화룡현의 어느 마을에서 일본군의 방화로 마을 전체가 불타던 중에 30대의 변씨라 불리는 농민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쳤다. 그때 일본군이 군도로 변씨의 양팔을 내리쳤다. 필로 물든 땅에 쓰러지기 직전의 변씨를 뒤에서 보고 있던 선교사가 찍었는지, 이 한 장의 사진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이강훈의 증언)


이렇게 지켜낸 조국에서 역사는, 역사 교과서는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 


진실은 위대하다. 거기에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고, 억압과 거짓의 신전을 무너뜨리는 신비한 힘이 있다. 사진에는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 -155쪽



사격훈련 중인 일본 경찰의 부인들


무섭다. 진심 무섭다.


평안북도 위원에서 훈련받는 경찰관 부인들

 

두만강 하류 훈춘 건너편 신아산에서 경찰관 부인회의 권총사격 훈련



윤봉길 의사의 관은 육군 묘지와 공동묘지 사이의 쓰레기장에 방치돼 있었다. 관 위에 십자가 같은 나무가 있었고 이미 백골화한 유체를 가네자와 의학생인 주씨가 알코올로 닦고 머리카락, 양복, 구두와 함께 수습해 고국으로 송환하였다.



마음이 아파와서, 사실은 제일 처음 찍은 사진을 제일 마지막에 실어본다. 두 손 모은 저 아이의 기도를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소박할 것 같은, 그렇지만 간절했을 게 분명한 그 바람이 이뤄지는, 그런 평화로운 세상을 잠시 상상해 보며 마무리 짓는다.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너무 폭력적이고, 너무나 무자비하며 부도덕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이 유지되는 게 이 세상이 소멸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으면... 그것이 모두에게 공감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성공한 인생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행위이다.

 

사진이 지니고 있는 힘이 가장 잘 발휘되는 것도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이다. 인간은 역사의 소산인 동시에 역사의 창조자이며, 스스로 자기 운명에 도전한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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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1 - 조운선 침몰 사건 백탑파 시리즈 4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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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조선 후기 정조 연간, 전국의 조운선이 동시에 침몰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임금은 홍대용과 의금부 도사 이명방에게, 그리고 꽃에 미친 사내 화광 김진에게 이 일을 파헤치라 명을 내린다. 아무리 험한 바다라 할지라도 어떻게 똑같은 시기에 배들이 한꺼번에 침몰할 수 있을까. 그것도 세곡을 실은 조운선만! 누가 봐도 음모가 있는 사건이었다. 필시 세곡을 빼돌린 자들이 있으리라. 그러나 권력과 비리의 카테고리는 너무도 실한지라 아무에게나 일을 맡길 수 없다. 임금이 이들에게 일을 맡긴 건 그들이 부정을 파헤칠 만큼 명석하고 또 정직한 자들이라는 걸 알고 있기도 하거니와, 여차하면 잘라내고 입 씻을 만큼의 세력붙이라는 것도 한몫을 차지했다. 그런 게 또 권력의 비정한 속성이리라. 


이미 열녀문의 비밀, 방각본 살인 사건, 열하광인 등 '백탑파' 시리즈는 캐릭터들에 생명력을 부여하며 장수한 전력이 있다. 거기에 덧붙여 이 책이 나오게 된 지난 해 4월 16일의 사고는 작가를 더 책찍질 했음이 분명하다. 


호학 군주 정조와, 지음 홍대용, 그리고 명민한 김진과 우직한 이명방은 각각의 성정에 맡는 대사와 활동들로 독자를 즐겁게 했다. 



별 하나가 빛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둠이 깔려야만 하는지를, 어떤 이들은 가르쳐 주어도 알지 못한다. 



이미 있었던 끔찍한 사고를 거울 삼아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차원에서 예방을 해왔다. 무릇 국가란 그런 일을 해내는 조직이다. 그래야 마땅하다. 그게 정상이다.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 티끌만한 사실도 바다에 가라앉아선 아니 될 것이야. 명심하렷다!


이렇게 단호한 목소리를 내는 군주가 우리도 필요했다. 민주공화국에서 본인이 군주인 줄 착각하는 지도자는 있는데, 헤아려 품고 지키려드는 백성은 이곳에 없구나.


작품이 시작할 때 76년 만에 도달하는 혜성을 관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때 김진이 평생 품어온 여인의 이름이 소개된다. 그 여인이 1권 253쪽이 되어서야 등장한다. 하핫, 오래 기다렸다. 등장한 두 명의 여인들은 조선의 평균치 여성들 같지 않았고 톡톡 튀는 발랄함이 있었다. 그야말로 '소설'다웠다. 괜찮은 캐릭터들이었지만, 그 캐릭터들을 소모하는 방식은 다소 진부했다. 내가 늘 염려하는 '용두사미' 진행처럼. 


작품 1권은 무척 재밌게 읽었다. 특히 기대치 않았던 백동수의 등장은 '두둥' 음향 효과가 들릴 지경이었다. 


부딪혀서 침몰한 게 아니라고 단언할 때는 천안함이 떠올랐고, 불법 증축한 배에서는 당연히 세월호가 떠올랐다. 작가의 의도적인 배치였으리라. 그런데 작가는 그 '사건' 이후라고는 밝혀도 세월호의 'ㅅ'자도 꺼내지 않는다. 꼭 그렇게까지 입을 닫아야 했을까? 누가 봐도 거기서 시작한 이야기임을 알게 썼음에도? 


작가의 선택이니 존중하자. 1권을 더 재밌게 읽었고, 2권은 다소 김이 빠지긴 했다. 사건의 부피를 많이 키웠는데 다소 맥빠지게 마무리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부러 2권이 아닌 1권에 리뷰를 쓴다. 1권은 분명 별 다섯의 재미를 충분히 주었으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법! 분명 목격자들이 있을 것이다. 거짓을 언제까지 저 바다에 가라앉힌 채 숨죽이고 살지는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진실이 떠오를 것이다. 그걸 기다리는 게 몹시 힘들지만, 반드시 그 끝을 볼 거라고, 봐야만 한다고 다시 힘주어 얘기해 본다. 그게 진실의 힘이고 속성이고 의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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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5-11-10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탑파 시리즈 신작이 진작에 나와있었군요! 알라딘 마법사가 왜 이걸 추천안해줬는지!

마노아 2015-11-12 13:28   좋아요 0 | URL
얼마 뒤 개봉하는 조선마술사도 원작이 김탁환이더라구요. 이분은 저작권 수입 엄청나겠어요. ^^
그래도 백탑파 시리즈가 가장 애정이 가요.^^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 제1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62
김진희 지음, 손지희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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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인 동우는 등교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염라대왕 앞에 불려간다. 그런데 동우가 당한 사고는 저승사자의 실수 때문이었다. 이승으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그러려면 '노잣돈'이 필요하다. 가까운 사람에게 노잣돈을 급하게 빌려야 했는데 하필 그 대상이 같은 반 친구인 준희다. 준희는 약골 녀석으로 동우가 툭하면 '삥' 뜯는 왕따의 대상이었다. 일단 살아 돌아가는 게 중요했으므로 노잣돈을 빌렸는데, 이걸 갚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돈'을 준다고 해서 저승사자의 장부에 기록된 빚이 줄지를 않는다. 게다가 누구한테 설명할 수도 없고 마감일(49일)은 다가오고, 동우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이 작품이 훌륭한 건 '가해자'가 주인공이 되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가해자의 심리가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괴롭힐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일을 해내는 그 뻔뻔한 맨 얼굴을 보게 된단든 것이다. 이건 참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성악설'이 맞는 게 아닐까 싶은 사람들이 뉴스에서 심심찮게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일상 생활 속에서도, 게다가 어린아이의 얼굴로 그런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을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이런 학생들이 종종 나온다. 누가 봐도 명백한 가해자. 그런데 본인은 '장난'이었다고 한다. 용인 벽돌 투척사건처럼 그 동기가 의심스러운 사례 말고, '진심으로' 본인은 모르는 가해자들이 있다. 그래서 상담이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하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락 윽박지르고 싶어지지만, 얼척없게도 정말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동우 같은 아이들이 있다. 이 작품에선 그런 동우가 노잣돈을 갚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어떤 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했는지 스스로 알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동우는 항상 자기 입장에서 생각했다. 급식 당번일 때 자기가 좋아하는 맛있는 반찬을 준희에게 듬뿍 담아주면서 노잣돈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했다. 하지만 준희는 고기 반찬을 싫어했다. 동우 입장에선 어떻게 고기를 싫어할 수가 있어! 싶지만, 그건 자기 기준이다. 친구들과 축구할 때 팀으로 껴주고 생색 좀 내려 했는데 준희는 뛰어노는 걸 안 좋아한다. 조용히 책보는 걸 더 좋아한다. 누군가는 그렇다. 그런 다양성이 있다는 걸, 서로의 취향이 다르다는 걸 동우는 처음으로 알아차리고 또 인정하게 된다. 뭐, 다양성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 국정교과서를 만들려고 하는 그런 나라에서 동우같은 아이가 나오는 게 별로 이상하진 않다만...;;;;


준희뿐 아니라 친한 친구들과의 관계도 삐걱거린다. 지금껏 해왔던 나쁜 습관들, 나쁜 행동들이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왔다. '억울한' 게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알아차릴 순간들이 온다. 동우가 갚아야 할 노잣돈은 참으로 많았다. 다행히 아름다운 결말을 도출해 내지만 동우처럼 저승 구경 좀 하고 노잣돈 좀 갚아야 할 아이들은 동우 주변에도 더 있었다. 동우와 같은 바람직한 결말이 동화 속에만 있지 말고, 제발 현실 세계에도, 무엇보다도 나쁜 어른들에게도 생겼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저승사자는 뭘 하나. 저 인간들 좀 안 잡아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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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페의 어린 시절
장 자크 상뻬 지음,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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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뻬 할아버지의 인터뷰집이다. 1932년생이니까 벌써 여든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에너자이틱 하신 분! 늘 유머 넘치고 위트 있는 그림을 그리니까 이 사람의 유년 시절은 햇볕 찬란한 기운이 가득할 것 같았는데, 그에게서 듣는 어린 시절은 무척 불우했다.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상뻬. 양아버지는 그나마 좋은 사람이었지만 알코홀릭. 엄마와 새아빠는 어마어마하게 부부싸움을 했고, 그때마다 불안하고 불행했다고.


술취해서 돌아온 양아버지가 엄마를 때려서 양아버지한테 대들었더니 엄마한테 더 욕먹고 이틀 동안 창고에 갇힌 일도 있었다. 학대받던 어린 아이 상뻬.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반감인지 행복한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행복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그림 말이다. 짠한 마음이 든다. 


소박한 부분에서 행복을 느꼈던 일도 이야기했다.


집에 라디오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고장이 나서 낙담했죠. 그러다가 부모님이 대판 싸우시던 어느 날인가, 일부러 그런 건 어닌데 좌우지간 팔꿈치로 쳤는지, 라디오를 떨어뜨렸어요. 그랬더니 다시 작동을 하지 뭡니까. 아, 그때 그 행복감을 상상도 못할 거예요. -55쪽



손에 잡히는 건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아무거나 다. 이웃집 아줌마들은 <콩피당스>, <누ㅡ 되> 같은 잡지들을 정기 구독했더랬어요. 그런 주간지 덕분에 언제부턴가 틀리지 않게-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다르더군요-맞춤법을 구사하게 되었죠. -69쪽


역시 독서의 힘!



최저 임금이 옛날 프랑으로 만 프랑이었어요. 그런데도 내가 처음 받은 월급은 고작 7천2백 프랑이었죠!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걸 어머니께 드렸죠. 아들이 학업을 계속 이어가지 못한 것에 대해, 아들이 기어이 일을 하겠다고 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낀 어머니는 대단한 격려의 말을 해주시더군요. <내 그럴 줄 알았다. 네가 일을 하지 않을 경우 내가 받게 되는 가족 수당에 비해 많지도 않은 액수잖니.> 당연히 실망했죠. 월급봉투를 받아들고 자랑스럽게 뛰어왔는데 말입니다. -84쪽


하아, 이 어머니... 진심으로 미워진다.ㅜ.ㅜ



L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그림을 보여 주었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S 그럼요! 양아버지 상뻬 씨의 평이 기억납니다. 일요일 오후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쉬지 않고 그렸어요. 아버지가 어떤 그림을 보시더니 <이거 괜찮구나> 하셨어요. 공을 막으려는 골키퍼 그림이었죠. 아버지가 < 이 그림에는 움직임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요. 가슴은 불룩하고 배는 홀쭉하게그렸거든요. 그런데 난 멍청하게도 <아니에요, 그런 건 상관없다고요>라고 대꾸했지요. -86쪽



술만 안 드시면 그나마 양아버지가 제일 나은 사람..ㅜ.ㅜ



L 유년기는 욕망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당신에게도 특별한 욕망이 있었나요?

S 아,그야 물론이죠. 자전거를 갖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보다도 특히 평온한 가정을 갖는 게 소원이었지요. -113쪽


절박하고 절실하게 들린다.



어머! 그런 당부를 하고 외출한 거야? 



역시 환경의 힘! 이 아이는 자라서 '하늘을 걷는 남자'가 될 거야!















아, 완전 빵터졌다. 너무 리얼해!!!


상뻬 아저씨! 계속해서 작품 생활해주세요. 장수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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