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알 -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 이야기
가브리엘 벵상 지음 / 열린책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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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뱅상의 글 없는 그림책이다. 

황량한 벌판에 거대한 알이 하나 놓여 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알 곁으로 다가왔다. 알은 흥미로운 구경거리였고 모두의 관심거리였다. 사람들은 알 주변에 도시를 세웠다. 크레인을 이용해서 알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단까지 만들었다. 케이블 카가 알 정상까지 이어져서 사람들을 보다 쉽게, 빠르게 실어 나르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알을 '정복'했다. 히말라야 정상을 밟듯이 알 꼭대기에 깃발도 세웠다. 마치 그곳이 미개척지이고, 깃발을 꽂는 자가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알'이었다. 그러니 알을 낳은 어미 새가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어미 새가 돌아왔다. 거대한 알을 낳을만큼 더 거대하고 장대한 날개를 펼치고서. 어미 새의 입장에서 인간들은 모두 귀찮은 불청객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알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어미 새는 한동은 알을 품고 있다가 다시 날아갔다. 먹이를 구하러 갔을지도 모른다. 그 사이 알을 깨고 새끼 새가 태어났다. 새끼라지만 사람들 입장에선 거대한 생명체다.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적'이라고 단정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기를 앞세워서 거대하지만 새끼인 새를 공격했다. 어린 생명체는 숨을 거두었다. 인간들의 승리는 잠시 뿐일 뿐이었다. 어미 새가 되돌아왔을 때, 새끼의 죽음을 알아차렸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새가 하나 뿐이었을까. 거대한 새 무리가 떼로 몰려와서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되어 또 거대한 새가 태어난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인간들의 욕심과 폭력이 스스로를 어떻게 망치는 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더군다나 색 없이 연필로만 그린 그림책이다. 그림도, 이야기의 힘도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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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생각하는 개구리
이와무라 카즈오 글.그림, 김창원 옮김 / 진선아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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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만난 생각하는 개구리 시리즈다. 표지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는' 개구리가 있다. 현실에서 내 가족이 이러고 있으면 너무 답답할 것 같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하고 하루종일 사색하고 엉뚱한 질문만 해대면....

그렇지만 세상에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누구도 좀처럼 궁금해하지 않는 것들에 의문을 품으며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야 된다고 본다. 그래야 세상이 좀 더 풍성해지지. 


생각하는 개구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계속 한다. 눈앞에 펼쳐진 길은 누구의 길인가. 그 길을 지나가는 이들의 길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좋은 곳에 간 거라고 생각했다. 좋은 곳은 어떤 곳일까? 또 물었다. 좋은 친구가 있는 곳이 아닐까? 하고 생쥐 친구가 말해줬다. 다시 물을 차례다. 좋은 친구란? 마음에 드는 친구라고 생쥐가 말했다. 와, 현명한 대답이네. 마음에 드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니까.


얼굴과 마음에 대해서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도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생쥐의 입을 들여다보며 마음이 어둡다고 개구리가 말했다. 개구리의 입안을 들여다보며 생쥐는 마음이 밝다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어두운 마음도 밝은 마음도 '바닥'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은 좀처럼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언뜻 겉으로 내비치는 게 전부가 아닐 때가 많다. 마음은, 그러니까 마음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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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맛본 똥파리 그림책이 참 좋아 20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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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작가의 수채화 그림을 보는 줄 알았다. 연꽃 위에 앉아 있던 큰오빠 개구리와, 개구리가 몸담고 있는 연못의 녹빛이 너무 싱그러워서, 그 초록빛의 그라데이션이 너무 고와서 연신 감탄했다. 다른 올챙이들보다 조금 일찍 알에서 깨어난 덕분에 큰오빠가 되어버린 개구리. 기다란 혀로 똥파리를 휘리릭 잡아낸다. 수없이 많은 동생들이 배고프다며 달려든다. 한번식 혀로 휘감아 파리를 잡아주면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수없이 많은 올챙이들. 쉴새 없이 파리를 잡던 큰오빠 개구리는 그만 지치고 만다. 본인도 배고팠을 텐데, 어른들 일 나가시고 혼자 남아 동생들 보살피느라 제 욕심이나 제 욕망은 채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던 큰오빠 개구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제목처럼, 꿈에서 똥파리를 맛본다. 그런데 이 똥파리가 보통 똥파리가 아닌 것이다. 꿈속이니 무엇인들 못할까! 치킨 맛, 군만두 맛, 떡볶이 맛, 순대 맛, 소시지 맛, 도넛 맛, 요구르트 맛, 꿀떡 맛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아주아주 신기한 맛이었다! 게다가 꿈속에서 본 동생들은 하나같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꿀잠을 자고 나니 큰오빠 개구리는 새힘이 불끈불끈! 동생들은 다시 배고프다며 달려들지만 새롭게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었다. 대상이 '개구리'지만 이걸 사람으로 바꾸면 보릿고개 시절의 장남이나 장녀가 떠오르는 이야기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집 식구는 무려 아홉이나 되었는데, 집안 살림에 하루 해가 짧았던 터라 어린 나를 업어 키운 건 큰언니였다고, 지금도 자주 얘기 듣는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이지만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니도 어리고 나는 더 어렸던 그때의 울 언니는 나를 많이 예뻐했을 것 같다. 그냥 내 생각이다. 백희나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은 약했지만 그림이 환상적으로 예쁘고,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깃거리였다. 역시 백희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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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 바닷마을 다이어리 1 바닷마을 다이어리 1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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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본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참 좋았더랬다. 원작을 사야겠다 생각하고 검색을 해보니 내가 이미 두 권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부제 아래 개별 제목이 더 커서 몰랐나보다. 6권까지 다 모으고 지난밤과 지지난밤에 잠들기 직전에 읽었다. '빨간책방'에서도 아주 좋았다고 이동진과 김중혁 작가가 칭찬을 많이 했는데 역시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놀라운 건 영화 캐스팅이었다. 만화를 찢고 나왔나! 정말 절묘한 캐스팅이었다. 큰언니가 영화보다 만화 쪽이 좀 더 '센' 느낌이긴 한데, 영화의 배우도 온순한 느낌이어서 그렇지 연기는 단호했다. 둘째 셋째 언니랑 넷째는 진정한 만찢! 심지어 축구부 친구마저도! 놀랍다.


둘째 딸이 일곱 살에 헤어진 아빠는 15년 만에 주검으로 다시 만났다. 헤어져 있던 시간이 너무 길어서인지 슬프지 않아서 슬퍼진 둘째 딸의 고백. 그러나 슬프지 않을 리가 있는가. 기억은, 함께 했던 기억과 추억과 감정은 결국 되살아난다. 

재미난 것은, 아빠가 떠난 이들 자매의 엄마와, 그 아빠가 떠나게 만들었던 둘째 부인이 아니라 현재의 셋째 부인의 성격이 닮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미 죽어서 등장하지 않은 두번째 부인, 스즈의 친엄마도 비슷한 성격이었을지 모르겠다. 서로가 안 맞아서 헤어졌지만 결국은 같은 성향의 사람에게 빠지는 것. '연애의 온도'에서 김민희와 이민기도 그렇게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지 않던가. 그래서 아빠 닮은 남편을 만나고 그런 걸까? 그건 좀 싫지만.


세번째 부인에 대한 묘사는 적나라했다.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과하게 울고, 슬픔을 직면하지 못하고, 그래서 어른이지만 어린 아이에게 책임을 미루기도 하는... 비슷했던 엄마에게 지쳤던 큰언니는 그 바람에 웃자랄 수밖에 없는 스즈의 아픔을 알아봤다. 그래서 먼저 손내밀 수 있었고, 간절함과 절박함이 더해 스즈는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이복 언니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떠나려는 기차를 앞두고 가겠다고 말하던 그 아이, 마침내 울 수 있었던 그 아이, 제 나이를 찾아 아이처럼 엉엉 울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사람이 죽으면 참 많은 것이 드러난다고 극중 한 인물이 말했다. 사람들이 고인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누가 슬퍼하는지... 그렇게 그 사람의 온 생애가 드러난다. 물론, 정승집 개와 정승이 죽었을 때처럼 객관화가 안 되는 죽음들도 있지만.


아버지는 너무 좋아서 몹쓸 사람이라고 큰언니는 정리했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자꾸 울 아버지 생각나네.... 연인 관계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두루 좋은 사람이 자신의 연인에게는 가혹할 수 있다. 사랑은 나에게 집중하길 원하고 내가 최우선이길 언제나 바라게 되니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내 남친이거나 남편이라면... 어휴....;;;


하지만 세상에는 몹쓸 사람이면서 나쁜 사람도 아주 많으니까...;;;;;


1권 끝에 작품의 배경이 되는 바닷마을의 지도가 나와 있다. 작가 정유경은 28을 쓸 때 가상의 도시 화양을 스케치북에 지도를 그려가며 구상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실제 마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구체화가 작품을 써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참 따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사람 냄새 가득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선택한 이유를 알겠다. 색깔이 닮았다. 봄볕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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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3-0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하지 못하고 억누르려고 해도 그 감정은 이미 내 깊은곳에 침잠되어 있어요.. 그래서 슬퍼요..

마노아 2016-03-01 20:53   좋아요 0 | URL
요즘은 과거에 있었던 소소한 사건들과 감정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되살아나서 자주 놀라요.
그렇게 의식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어느 틈에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네요. 보통은 슬픈 기억이 더 선명해서 아프기도 합니다.

2016-03-01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1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6-03-05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요시다 아키미가 가마쿠라에 살아서 언젠가부터 요시다 아키미의 작품은 가마쿠라 배경이 많아요. 슬램덩크의 무대도 가마쿠라랍니다

마노아 2016-03-05 22:25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어쩐지 고장에 대한 애정이 팍팍 묻어 있었어요. 슬램덩크까지! 더불어 관심이 솟아납니다.^^
 

새학기 시작이다. 

곧 도서관에서 새책 신청을 받겠지. 

도착까지는 오래 걸리겠지만 아무튼 책을 사준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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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포 1
에스토 에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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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플레이빌 Scene Playbill 2016.1
sceneclub 엮음 / 시어터플러스(월간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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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제442호 2016.03.05
시사IN 편집부 엮음 / 참언론(잡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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