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주가 필요한 당신, 계영배로 마셔라~ [제 1139 호/2010-07-05]


#1. 2010년 6월 28일 오후 10시, 월드컵 경기가 열리고 있는 남아공의 넬슨만델라 경기장에서는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16강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캐스터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경기를 중계했고, A사의 직원 몇몇은 맥주집에 모여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캐스터 : 아….골이네요~ 저걸 놓치나요!
이 과장 : 시작하자마자 골을 내주다니. 마셔~

캐스터 : 박주영 슈웃~~. 아~~골대 맞고 나옵니다.
김 대리 : 에잇, 한 잔 해~

캐스터 : 슛~~골~~!! 이청용, 이청용 동점골!
해설자 : 아~~좋습니다~!!!”
최 대리 : 캬~ 됐다, 됐어! 그대로 계속 밀고 나가는 거야~~(꿀꺽꿀꺽)

캐스터 : 슈웃~ 아, 아깝네요!”
해설자 : 네~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죠.”
일동 : ......(꿀꺽꿀꺽)

(심판 : 경기 종료 휘슬을 분다.)
캐스터 : 경기 끝났습니다. 우리 선수들 정말 잘 싸웠습니다만….
이 과장 : 끄윽, 여기 한 잔, 아니 한 병 더~~.

#2. 같은 시각, 월드컵 응원 열기를 취재하고 있는 김영배 기자의 리포트다.
김 기자 : 안녕하십니까? 시청 앞 서울광장에 나와 있는 김영배 기자입니다! 이곳에서 한국의 16강전 경기를 관람하는 시민들을 취재해 봤는데요. 관중들은 골을 넣었다는 기쁨에, 혹은 골을 넣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연거푸 맥주잔을 들이켰습니다.

인터뷰 남 : 역시, 월드컵 하면 치킨에 맥주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김 기자 : 이렇게 한 두잔씩 들이키시다가는 내일 몸이 안 좋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남 : 뭐, 괜찮습니다! 내일은 일요일 아닙니까. 하하

김 기자 : 비록 한국은 16강전에서 패했지만, 이제껏 잘 싸워준 태극전사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시청에서, 김영배 기자였습니다! (저도 맥주 한 잔 주세요~~)


<계영배의 모습 사진제공 : 동아일보>

과유불급(過猶不及). 무엇이든 정도를 지나치는 것은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월드컵을 관전하며 술을 마실 수는 있지만, 과음은 피해야 할 적(敵). 본인의 의지만으로 술을 절제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의지가 약하다고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여기 과음 예방을 위한 술잔, ‘계영배(戒盈杯)’가 있기 때문이다.

계영배는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여기에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는 신비의 잔이다. 고대 중국에서 하늘에 정성을 드리는 제천의식을 위해 만들었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됐으며,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계영배 만들기]
1.준비물 : 종이컵, 중간 부분에 주름이 있는 빨대 1개, 고무찰흙, 칼, 고무 밴드
2. 빨대의 주름진 부분을 구부리고 컵 길이의 8/10정도로 긴 쪽 빨대를 자른다.
3. 컵의 바닥에 빨대가 들어갈 정도의 십자형 구멍을 칼로 만든다.
연필을 넣어 빨대가 쉽게 들어가도록 구멍을 조금 넓힌다.
4. 종이컵 안의 구멍에 길이가 좀 더 긴 빨대를 꽂는다.
길이가 짧은 빨대 끝은 종이컵 밑바닥에서 살짝 떼어둔다.
구부린 빨대가 벌어지지 않도록 고무 밴드를 살짝 감아준다.
5. 물이 새지 않도록 컵 안쪽, 구멍을 통과한 빨대 부분에 고무찰흙을 붙인다.
6. 물을 부어본다.



이제 종이컵으로 만든 계영배에 물을 따라보자. 물을 빨대의 높이보다 적게 따르면 컵은 새지 않는다. 하지만 물을 빨대의 높이보다 높게 따르면, 그때부터 물이 밑바닥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바로 ‘압력’에 있다. 물을 빨대의 높이보다 적게 따를 경우, 종이컵 내의 수압과 빨대 내의 대기압이 같기 때문에 물이 새지 않는다. 하지만 물을 빨대보다 높이 따를 경우, 컵을 채운 수압이 빨대 속의 대기압보다 커져, 물이 종이컵 밑바닥과 연결된 빨대 끝까지 빨려 들어간다. 이로 인해 물이 컵 밑바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줄줄 새던 물은 컵 안쪽에 있는 빨대 끝 부분에 이르러서야 흐름을 멈춘다. 따라서 계영배에 술을 따를 때 욕심을 부려 적정선을 넘길 경우, 오히려 한 모금 밖에 마실 수 없게 된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컵인가.

계영배는 과음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린다. 이번 기회에 계영배를 통해 절제의 미덕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글 : 과학향기 편집부

※ 과학향기 제507호 ‘과음을 경계하는 잔, 계영배(2006년 10월 6일자)’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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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7-05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전에 스펀지에서 봤는데요, 너무 갖고 싶습니다.^^
(저딴 종이컵 말고요, 언젠가는 진짜 도자기? 사기로?로 만든 계양배를 사서 사람들을 초대해놓고 술을 한 가득
따라서...으흣, 당황해하는 사람들 모습을 상상하는데 왜 이렇게 신이 나죠? ㅋㅋㅋ)

마노아 2010-07-06 00:03   좋아요 0 | URL
허접한 종이컵 말고 진짜 계영배를 갖게 된다면 무척 근사할 거예요.
이걸 보는 사람들은 모두들 마법의 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으하핫, 악동 엘신님 발동 걸렸어요.^^ㅎㅎㅎ

꿈꾸는섬 2010-07-05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울 남편에게 필요할 것 같아요.ㅋㅋ

마노아 2010-07-06 00:03   좋아요 0 | URL
이런 것 필요한 사람들이 아주 많을 거예요.^^ㅎㅎㅎ

루체오페르 2010-07-0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예전부터 정말 많이 들어봐서 알지만...
아직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계영배 ^^;
저도 언제 꼭 써보고 싶습니다.ㅎㅎ

마노아 2010-07-07 20:44   좋아요 0 | URL
이런게 생기면 누구든 인증샷을 올려서 만 사람의 부러움을 사는 겁니다.^^ㅎㅎㅎ

따라쟁이 2010-07-07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절주도 필요하고 계양배도 필요하고 ㅠㅠ

마노아 2010-07-07 20:44   좋아요 0 | URL
저는 절주는 필요없고 절식이 필요해요..ㅜㅜ

같은하늘 2010-07-07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예전에 TV에서 보았는데...
종이컵으로 실험을 할 수 있다니 방학때 할 놀이가 하나 생겼군요.^^

마노아 2010-07-07 20:45   좋아요 0 | URL
아이와 함께 해볼 수 있는 실험이 꽤 많이 소개되곤 해요.^^
 


수세식 화장실은 언제 발명됐을까? [제 1138 호/2010-07-05]


죽은 자들에게는 국경도 시대의 구분도 없는 법. 저승에서 여러 시대의 사람들이 모여,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며 수다를 떨고 있다.

“죽고 나니 먹는 즐거움이 사라진 것은 슬프지만 화장실 갈 일이 없는 것은 좋네요. 똥오줌 없으니 천국이 이리도 깨끗하겠지요.”

중세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이 말했다. 그러나 로마의 귀족으로 살았던 이가 말을 받아 친다.

“길거리에 똥오줌을 마구 버려 전염병에 시달렸던 미개한 당신들이야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 우리 로마인들처럼 목욕과 화장실에 대해 깊은 식견을 가진 이들은 생각이 다르다오. 남겨진 유적을 봐도 알겠지만, 우리는 이미 1세기경에 아테네에 68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고대한 공중화장실을 만들었지. 게다가 거의 모든 공중화장실이 수세식이었다오. 분뇨가 흐르는 하수구를 각이 지지 않게 만들어서 악취도 별로 없었소. 그야말로 아름답고 장엄했지. 나중엔 1백석이 넘는 거대한 화장실을 만들기도 했다오. 우린 하루 종일 그곳에 앉아 신선한 공기를 쐬며 정치나 경제 문제를 의논했지. 사실 그 순간만큼 집중이 잘 되고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때가 있나 말이요.”

“에구머니, 부끄럽지도 않나요? 모두 모여서 엉덩이를 내밀고 정치를 토론했다니.”

로마시대 얘기는 20세기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15세기에 이동식화장실로 인기를 모았던 이가 말을 받았다.

“볼일 보는 걸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라오. 나는 그 덕분에 이동식 화장실을 만들어서 크게 인기를 모았지요. 내가 살던 시대까지도 자기가 앉아 있거나 걸어가던 장소에다 일을 봤어요. 누구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을 봤지만, 아는 사람을 만나면 곤혹스러운 일이긴 했지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동식 화장실입니다. 커다란 망토를 두르고 배변용 양동이를 가지고 다니다가 볼일 볼 사람이 있으면 재빨리 망토로 가려주고 돈을 받았지요. 아주 커다란 망토라서 절대 밖에서 보일 일이 없었지요. 암, 그렇고 말고요.”

“어이쿠, 세상에 그런 일이 사람들이 오가는 큰 길가에서 있었다는 건가요?”

“물론이죠. 망토를 이용한 이동식 화장실은 19세기 후반까지도 유럽의 대도시에서 볼 수 있었답니다.”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던 시대에 살았던 게 정말 행운이군요. 길 가다 망토 속에서 똥을 눈다니, 생각만 해도 낯이 뜨거워져요.”

20세기 인이 수세식 화장실을 예찬하자, 영국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수세식 화장실이라면 우리 영국인의 공이죠. 1956년에 우리 영국의 존 해링튼 경이 최초의 현대적인 수세식 변기를 고안했으니까요. 윗부분에 물통이 있고, 물을 흘러가게 하는 손잡이와 배설물을 분뇨통으로 흘러가게 하는 밸브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냄새가 엄청나다는 단점이 있었지요. 1775년 또 다른 영국인, 시계 제조자이자 수학자인 알렉산더 커밍이 새로운 변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배수파이프를 U자 모양으로 구부러지게 해서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냄새를 차단하기 위한 물을 저장한 겁니다. 이게 지금까지도 모든 수세식 변기에 사용되는 부분이죠.”

영국인의 말을 듣고 20세기 인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변기뿐 아니라 세면대와 싱크대에도 트랩(trap)이 있어 배수관이 U자나 P자 모양으로 하고 있다. 이 구부러진 부분은 하수구 냄새가 역류하고 벌레가 올라오는 것을 막아준다. 그런데 물은 어떻게 구부러진 관을 통과해서 흐르는 걸까?

화장실의 물탱크는 사이펀의 원리에 의해 작동된다. 사이펀관은 압력 차이를 이용해 물을 위쪽으로 흐르게 한다. 사이펀 관이 물 표면보다 아래에 있으면 수면에 작용하는 대기압으로 액체가 밀려 올라간다. 물은 관을 따라 올라가 굽은 곳을 돌아 다른 쪽 끝으로 떨어진다. 일단 물이 사이펀관을 돌아 다른 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공기의 압력 때문에 남아있는 물이 관을 따라 계속 흐르게 되는 것이다.

“편하게 사용만 했지 정작 화장실의 원리는 모르고 있었네요. 수세식 화장실은 물을 내리면 저절로 물이 적당히 차오르잖아요.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거나 잠그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걸까요?”

“그건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겁니다. 물 내리는 밸브를 아래로 누르면 지렛대의 원리에 의해 물탱크 바닥에 있던 구멍의 마개가 위로 들어 올려집니다. 물탱크의 물은 수압과 중력에 의해 변기로 내려오지요. 물이 빠져나가면 물탱크의 수압이 낮아지면 수압이 높은 급수관의 물이 물탱크로 들어와서 다시 차게 됩니다. 물탱크의 수압과 급수관의 수압이 같아질 때까지 물이 들어오게 되지요. 때문에 물탱크는 급수관보다 항상 위쪽에 있게 됩니다.”

“간단한 듯 하면서 정말 효과적인 방법이네요.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인생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어요.”

“하하 그렇죠. 1778년 발명가 조지프 브라마가 밸브 장치가 개선된 변기를 내놨는데, 1797년까지 6천 개가 팔릴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이야말로 현대적인 생활의 증거죠!”

“나도 다시 태어난다면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시대에 태어나고 싶구려!”

고대와 중세 사람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 그때 날카로운 눈을 한 과학자가 입을 열었다.

“수세식 화장실은 인류가 생각해낸 가장 미개한 발명품 중 하납니다. 수세식 화장실 보급 초기에 런던은 식수원이었던 템스강으로 오물을 흘려보내, 식수염이 오염되고 하수관으로 오물이 역류하는 등 문제가 많았습니다. 콜레라 같은 수인성 질병도 만연했죠. 도시의 상하수도 설비를 정비해 문제가 개선되는 듯 했고 수세식 화장실은 널리 전파되었지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입니다.

수세식 화장실에서 한번 물을 내릴 때 사용되는 물의 양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13리터~15리터, 절수형이라고 해도 6리터 이상입니다. 하루에 5번만 화장실에 간다 해도 70리터에 가까운 물을 오물을 씻어내는 데 쓰게 되는 겁니다. 오물을 물에 녹여 흘려 보내니 수질 오염의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게 되는 물인데 말입니다. 수세식 화장실이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다가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어리석은 발명품인 것입니다.”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던 농부가 그제야 말을 시작했다.

“농사를 지어보면 똥이 얼마나 귀한 거름이 되는지 알 텐데. 잘 모아 삭혀서 거름으로 쓰면 똥이 아니라 보배가 되는 걸 모르고 말이야.”

과학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저는 이렇게 저승으로 오게 되었지만, 지금 인간 세상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의 대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전통 농경사회의 방식대로 미생물을 이용해 똥과 오줌을 발표시켜 비료로 만드는 자연발효 화장실도 한 방법이겠지요. 물을 사용하지 않는 화장실, 오물을 압착해서 말린 후 살균하는 방식, 변기에서 배설물을 즉시 냉동시키는 방식, 전기 연소 장치로 오물을 먼지로 태우는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이 연구되고 있답니다.

수세식 화장실을 칭송하던 이들이 다들 숙연해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인간 세상에서는 여기저기서 쏴아~쏴아~ 폭포수처럼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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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7-0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75년 또 다른 영국인>>>1975년이겠지???

꿈꾸는섬 2010-07-0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글이에요. 수세식 화장실이 생겨난 배경부터 재미있는 대화글이네요. 그런데 결국 수질오염의 주범인거잖아요. 새로운 방식의 화장실로 발전하긴 해야할텐데 깨끗했으면 좋겠네요.^^

마노아 2010-07-06 00:04   좋아요 0 | URL
화장실의 역사... 이런 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재밌을 것 같아요. 깨끗한 화장실과 깨끗한 물, 우리 모두의 바람이에요.^^

같은하늘 2010-07-07 02:18   좋아요 0 | URL
<화장실의 역사>라는 책 있어요. 아이들 책도 화장실 관련해서 있었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나네요.
이눔의 기억력이라니... ㅜ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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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현은 언젠가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광고인이 되기 위한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문학적인 소양입니다."
박웅현은 처음 만난 날에도 이 말을 했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때 창의력이 필요한 거고 그 창의력을 위해서는 인문학적인 소양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출판사 열린책들 홍지웅 대표도 같은 말을 했더라고요. 좋은 출판인이 되는 조건도 인문학적인 소양이라는 겁니다."
공감이 된다. 인문학이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구체화된 결과물이고,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예술이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50쪽

광고는 시대 읽기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껌 광고에서부터 기업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광고에 필수적이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광고는 공감대가 없고, 공감대가 없는 광고는 존재 이유가 없다. 시대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준다는 측면에서 전혀 히까닥하지 않은 광고를 하는 나에게 영양제가 되어준다.(중략)
광고는 또한 사람 읽기다. 갓난아이부터 파파 할머니까지 모든 사람들의 바람과 현실, 희망과 절망을 가능한 한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과 진솔한 대화를 할 수가 있고 진솔한 대화가 있어야 그들의 마음은 열린다. 광고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깃 분석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땀을 투자하는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고 그때 보이는 것이 전과 같지 않은 존재다.
-52쪽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어릴 때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 걷는 데 천재가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누구도 넘어지면서 일어나라는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려고 해서 이룬 일이다. 실패를 하고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은 그 실패마저도 즐겁다. 성공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운 기회였기 때문이다.
에디슨식으로 말하면 천재란 2,000번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며, 창의성은 2,000번 실패한 뒤에 얻을 수 있는 빛과 같은 것이다.
-151쪽

"광고주가 일에 대한 토론을 하다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내가 돈을 내는 사람인데 이렇게 마음대로 못한다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 나는 박사 학위도 가지고 있으며 이 길로 들어서서 나름대로 성공해온 사람이다. 이러는데 ‘박사’라는 말이 딱 걸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저는 박사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광고 만드는 일에만 22년 동안 전심전력으로 일했습니다. 일과 진심으로만 이야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했죠. 분위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싸늘해졌죠."
-257쪽

광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래서 전쟁터가 된다. 광고주는 광고 제작 책임자와의 관계를 환자와 의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호텔에 든 고객과 호텔지배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로 보면 박웅현의 생각이 옳을 때가 많다. 그것은 광고라는 결과물이 가지는 성격 때문이다. 대개의 문화 상품들은 그런 속성이 있다. 아무리 공동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해도 누군가 한 사람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어떤 것이 어떤 이유로 ‘좋은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적당한 말이 바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이다.
-258쪽

불리한 전쟁을 시작합시다.
적이 우리보다 수만 배쯤
강하다고 생각합시다.
우리에겐 식량도
무기도 부족하고 여론도 시간도
우리 편이 아니라고 생각합시다.
가장 용맹한 백곰마저
얼음 조각 위에서 죽어갔으며
돌고래의 함대는
해변에서
전멸을 당했다는
불리한 전황들을 직면합시다.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시작합시다.
거실에도 자동차에도
버젓이 들어와 번지고 있고
서서히 지구의 온도를 높여가는
적들과 싸워나갑시다.
그들의 야유와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새까만 씨앗들이
겨울을 견디어내듯
조금씩 이겨나갑시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쟁을 시작합시다.
e-편한세상 극장용 광고 <북극곰>
-265쪽

박웅현은 꼭 윤리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옳은 광고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기업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뿐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가치지향적인 광고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그가 ‘사람을 향하지 않은 기업은 성공할 수 없고’ 기업들 역시 ‘더 좋은 가치가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기업이 그것을 잊고 있다면 논쟁을 통해서라도 알려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광고주에 대한 자신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 고집까지가 박웅현의 광고에서 발견되는 창의성을 만들어낸 요소다.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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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5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5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 동네 미자 씨 낮은산 작은숲 12
유은실 지음, 장경혜 그림 / 낮은산 / 201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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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이유정으로 유쾌함을 선사했던 유은실 작가님의 책이다. 장경혜 작가님의 그림은 처음인데 이 작품의 분위기를 너무 잘 반영해서 조금 아팠달까. 

식구도 일가친척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미자씨. 낡은 옷차림에 후줄근한 인상. 동네 아이들의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빼앗아 먹는 철없는 어른 미자 씨는 '미자' 혹은 '아줌마'로 불리는 아가씨. 

그런 미자 씨가 좋은 일을 해 주고 치약 한 상자를 받았다. 사우나 용으로 무려 60개나 들어있었다. 치약을 슈퍼에 갖다 주고 외상값을 갚고 싶었지만 사우나 용이어서 그러지도 못했던 미자 씨는 슈퍼 아줌마한테 8개나 내주고 말았다. 도둑 맞는 느낌이 들어서 눈물이 핑 돌것 같았던 미자씨. 슈퍼 아줌마 나쁘다고 생각될 무렵, 작가님은 소박한 반전을 마련해 주니, 미자씨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솟는다. 이 책에서는 줄곧 그런 즐거움이 있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속 마음, 속 뜻, 속 이야기.  

미자씨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외롭고 가난한 어른이었다. 반면 주인집 조카 성지는 까칠하고 똑똑한 척을 하며 신경질도 잦았지만 역시 외롭고 외로운 아이였다. 치약을 큰엄마에게 갖다 드리고 칭찬 받은 것이 기뻐서 치약 하나 더 얻고 싶은 마음의 아이, 미자씨가 귀찮지만 마을 회관 컴퓨터를 이용해서 치약으로 할 수 있는 일 10가지를 뽑아 오기도 했고, 동태 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법도 알아오기도 하였다. 성지 덕분에-사실은 작가님 덕분에-모기에 물렸을 때 치약이 요긴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미자씨가 부식 차 장수에게 마음이 있어 아침 식사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무척 귀여웠지만 가난한 살림살이와 옷차림이 오래오래 밟혔다. 뿐이던가, 그렇게 준비한 그녀의 식사 대접이 시작도 되기 전에 벽에 부딪쳤을 때는 안타까움을 넘어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맛없는 것도 '보통'이라고 말해서 긍정 마인드를 가질 줄 알았던 미자씨. 다시다 살 돈은 없지만 라면 스프를 조금씩 모아서 양념으로 쓸 줄 아는 알뜰한 미자씨, 순대 소금을 비밀 양념이라고 뻐기던 유쾌한 미자씨. 그러나 현실은 좋아하는 남자에게 밥 한끼 같이 먹자고 말할 수 없는 처지, 일손 필요할 때나 상대해주는 동네 아줌마들, 외로운 아이 성지만이 상대해주는 어른 미자씨.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미자씨처럼, 독자도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이 안타까운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도 있으니까.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 어린이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기대하는 건 촌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참 먹먹하다. 어린이 친구들은 이 책을 읽고서 어떤 느낌을 받을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다. 어쩌면 미자씨의 마음을, 성지의 마음을 너무 어린 친구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도 아이들의 가슴에 남아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면서 되살아나 깊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  

미자씨에게도 사랑이 필요하다. '어른' 미자씨에게도 위로가, 다독임이, 칭찬이 필요하다. 미자씨는 어디에나 있다. 미자씨가 보이지 않는다면,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 속이 너무 포화상태여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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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4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4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 나무 - 그림으로 보는 자연의 경이로움
신여명 옮김, 토머스 로커 그림, 캔더스 크리스티안센 글 / 두레아이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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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의 야곱과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이번엔 중요한 마무리가 남아 있었고, 그 고마움에 대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다독하는 야곱이 읽지 않은 책을 고르기는 늘 쉽지 않았다.
이 책 읽어보았냐고 미리 물어보는 건 김빠지는 일.
그래서 고른 책이 이 책이다.
출간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그림책이다 보니 부러 찾아서 읽는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았고, 설사 이미 알고 있는 책이라 해도 받았을 때 기분 좋을 거란 생각을 했다.
물론 나도 눈독만 들였을 뿐 미처 보지 못한 책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도박이었다.

온통 그림만 있고 글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나무와 그 배경이 되어주는 하늘을 반복해서 그린 그림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날씨의 변화에 따라, 또 해 뜰 무렵과 해질 무렵 등등,
같은 자리에 있는 같은 대상임에도 조건이 변함에 따라 그림의 모습이 변해간다. 개인적으로는 별무리가 걸려있는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불멸의 연인에서 호수에 누운 주인공의 배경으로 호수에 비친 별들이 온통 반짝이던 그 로맨틱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진을 고해상도로 찍어서 더 자세히 보여주고픈 마음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이 책을 궁금해하는 마음이 줄어들 것 같아서,
부러 작게 편집했다.
이런 그림은 직접 손에 들고서 펴보아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각각의 그림은 오른쪽에 들어가 있고, 왼쪽 페이지에는 해당 그림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질문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맨 뒤에 부록처럼 나와 있다.
어린이 책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이런 설정이 나쁘지 않지만,
나로서는 조금 아쉽다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뭐랄까, 이런 말을 모두 생략하고 올곧이 그림만 보여준 채 그 그림으로 다 설명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물론, 그쪽이 훨씬 불친절한 작품이 될 테지만, 그래도 감동은 갑절이 되지 않았을까.
자연의 경이로움도 대단하고 감동적이지만,
마음 속 '하늘 나무' 한 그루 심는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내 마음 속 하늘 나무. 그리고 누군가의 하늘 나무가 되어주는 나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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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7-03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나무에 사계가 있네요.
자연의 경이로움이란......

마노아 2010-07-03 09:49   좋아요 0 | URL
그 앞에선 겸손해져야 해요.
늘 감탄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자연이에요.^^

2010-07-03 0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3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7-03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이쁘네요. 하늘 나무.

마노아 2010-07-03 09:48   좋아요 0 | URL
하늘 나무라는 닉네임을 써도 좋겠어요. 참 마음에 들어요.^^

같은하늘 2010-07-07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이쁜 책이네요. 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