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요일에 벼르고 벼르던 미루고 미루던 '영국 근대 회화전'을 다녀왔다. 사실 나의 원래 목표는 '퓰리처상 수상전 도록'이었는데, 그거 사러 다시 가기엔 너무 먼 예술의 전당인지라 영국 근대 회화전 도록을 사서 거기에 들어있는 평일 관람권을 얻었다. 그렇지만 날짜 계산 실패로 퓰리처상 수상전은 끝나버렸고-때문에 도록도 못 샀고-나는 새로 산 도록을 보지도 못하고 전시회도 못 가고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 며칠 뒤면 전시회도 끝나고, 수영가는 날짜랑 명절 날짜 빼면 갈 수 있는 날이 지난 목요일 밖에 없어서, 감기로 목이 완전히 간 상태에서 켈록이며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후아, 서론 길다.  

2. 몸은 고단했고, 내가 원했던 전시회도 아니었고, 여차저차 아무 기대도 없던 나는, 그랬기에 기대 이상으로 재미나게 전시회를 볼 수 있었다. 역시 도록으로 보던 것과 진품을 보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한 시간 정도 짧은 관람이었는데 무척 흐뭇해져서 나왔다. 그래도 혹시 미련이 남아서 퓰리처상 수상전 도록 남았냐고 이 건물 저 건물 돌아다니며 물었지만 당연히 없고, 데스크에 물어봐도 역시 없다고 한다. 검색해 보니 '10월 1일 이후 대구 전시장(대구국립박물관) 내 아트샵 혹은 10월 10일 이후 온라인(www.millemall.com)에서 판매가 재개될 예정입니다.'라고 한다. 대구 쪽으로 전시회가 옮겨 가는구나. 온라인 구매는 역시 배송료가 붙겠지. 두고두고 후회되는 대목이라니까.ㅎㅎㅎ 

3. 많이 걸었고,  돌아오는 내내 서서 왔고, 컨디션도 영 나빴고... 그래서인가? 목요일에는 갑자기 오른발 둘째 발가락에 쥐가 나더니 풀리지가 않았다. 금요일에는 내내 맛사지를 했는데도 소용이 없다. 다시 하루를 묵혔더니 좀 나아졌다. 왜 이런담? 고친 샌들은 바닥에 본드를 붙이고 아주 작은 못을 네 귀퉁이에 박아놨는데 걸을 때 그 못자국이 발바닥에 감지된다. 마치 완두콩 공주가 된 기분이다. 곧 샌들 신기 민망한 즈음이 닥쳐올 테니 버텨야지. 내년엔 신을 수 있을까?  

4. 오늘은 시험 문제 출제하느라 늦게까지 남아있다가 5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백화점에 들러서 상품권을 구매할 생각이었는데 내려놓고 보니 내가 내리려던 곳이 아니었다. 현대 백화점에 갈 생각이었는데 한 정거장 더 간 것. 거기도 롯데 백화점이 있는지라 그럼 여기서 사야겠다... 생각했지만, 아뿔싸! 상품권은 카드를 안 받지. 은행을 찾아야 했다. 나의 주 거래 은행은 신한은행. 그런데 주변에 국민,우리,외환,기업은행이 다 보이지만 신한 은행만 없다. 언니한테 연락해서 검색해 달라고 하니 두 정거장 밑에나 있다고 한다. 우이띠...  

5. 가만히 보니 길 건너에 하나 은행이 보인다. 퇴근 전에 월요일 결제 때문에 돈을 이체해둔 게 생각이 나서 그리로 향했다. 신한은행은 무통장 무카드 거래만 했기 때문에 캐쉬 카드가 없는데 때마침 잘 안 쓰는 하나은행 캐쉬카드가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365코너에 들어가서 힘차게 카드를 밀어넣었건만 뱉어놓는다. 이용할 수 없다나? 자세히 보니 보안카드다. 내게는 타은행에서라도 돈을 뽑을 캐쉬카드가 한 장도 없었다. 하아... 

6. 그래서 다시 버스를 환승해서 두 정거장 밑까지 내려오는데 내 앞에 내리던 여자가 내 발을 밟고 지나갔다. 아씨, 이번 주만 발 밟힌 게 벌써 세 번째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오늘은 짜증이 마구마구 솟고 있었기 때문에 내리는 그 여자를 잡아 당겨 이봐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안 참으면 어쩌겠는가. ㅠ.ㅠ 그냥 비명이라도 지를 걸. 그랬담 돌아보았을 텐데... 

7. 은행에서 돈을 찾아서 한 정거장 밑의 현대 백화점으로 향했다. 10층. 상품권 코너에 손님이 많다. 천만원어치 사면 상품권 30만원 짜리 서비스로 준댄다. 우에에엑! 지친 나는 의자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에 손님이 일어서자마자 어떤 노부부가 와서 새치기를 한다. 아아, 나는 정말 주저앉고 싶었다. 오늘 일진 왜 이래! 

8. 힘겹게 상품권을 구입하고, 부랴부랴 버스를 환승해서 집으로 향했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퍼뜩 생각났다. 편의점에 알라딘 택배 도착해 있다는 것을... 무겁고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켜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알바는 갈 때마다 택배 찾으러 왔다는 내 말을 못 알아 들어서 엄한 것들을 집었다가 놓았다가 한다. 게다가 상자 내줄 때 박코드 찍는 것을 못해서 번번이 실패한다. 두번 찍고 엔터 치라니까...-_-;;; 결국 오늘도 박코드 못 찍고 그냥 들고 나왔다.  

9. 집에 와서 상자를 뜯는다. 얼라, 그저께 도착한 책이 또 있다. 왜 그러지? 아뿔싸. 두 번 주문했다.ㅜ.ㅜ 요새 정신머리가 이렇다. 나사 풀린 것 마냥 실수가 잦다. 게다가 나를 슬프게 한 또 하나의 책... 


보리에서 행사를 하고 있는데 현대사 포스터를 준다는 것을 나는 '현대사 연표'로 알아듣고는 당장 급하지도 크게 궁금하지도 않은 책을 먼저 구입했다. 받고나서 보니 그냥 포스터. 나 이거 붙일 벽도 없는데....  

 

 

10. 어제 슈퍼스타 K2를 기어이 끝까지 다 보고 자느라 안 그래도 쾡해진 눈이 더 쾡해졌다. 감기도 아직이고, 컨디션도 영 저조하다. 그렇지만 오늘 도착한 이 책을 보고 급 방긋! 

생각보다 두껍다. 원문이 차지하는 양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더 두꺼워졌나보다. 야금야금 읽으면서 솟아오른 혈압을 더 뜨겁게 달궈주리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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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9-1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이러죠???ㅠㅠ
댓글 길게 달았다가 뭘 잘못 눌렀는지 사라져버렸어요,,ㅠㅠㅠ
아후,,,암튼 다른 날이 올거에요~~~. 연휴 지나고부터는 님께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어요~.같은 책을 두 번이나 주문하면 정말 화나죠!! 그 심정 알아요,,,한 주에 발을 세 번이나 밟히다니!!! 소리라도 지르시지~. 마노아님 너무 착해요~.ㅠㅠ제가 님의 수호천사라도 되어 드리고 싶어요,,ㅠㅠ

마노아 2010-09-19 10:48   좋아요 0 | URL
아아, 아까운 댓글이에요.(>_<)
머피의 법칙인가? 싶을만큼 뭔가 좀 안 맞는 날이었어요. 나의 삽질은 나날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았어요.^^;;;
남의 발을 밟으면 감촉이 느껴질 텐데 왜 다들 그냥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면 누가 잡아먹나..ㅜ.ㅜ
나의 수호천사 나비님! 오늘 전통무늬 주머니에 나비 수놓은 것을 보고 님을 생각했어요.^^

책가방 2010-09-19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이번주에 천원짜리를 두번이나 주웠답니다.
일부러 살피고 다닌것도 아닌뎅..ㅡ.ㅡ

살다보면 이런날도 있고 저런날도 있는 법이죠 뭐..^^

마노아 2010-09-19 10:48   좋아요 0 | URL
오오오, 그런 날이 저도 어여 오기를 바라겠어요. 불끈!!

sslmo 2010-09-19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슈퍼스타 k2 못봤어요.
볼려고 별렀는데...어디서 하는지 찾을 수가 없더군요.(에궁,바보~)

제가 요즘 이 문장을 여기저기서 사용할 기회가 생기네요.
Tomorrow is another day~!

마노아 2010-09-19 10:49   좋아요 0 | URL
mnet에서 하는데 이게 케이블 몇 번인지 모르겠네요. 27번 아니면 28번 같아요.
예전에 폴포츠 등등, 이런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사람들 노래에 별로 감동을 못 받았는데 이들이 올라오는 과정을 함께 겪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어요. 이번엔 되도록 방송을 보고 있는데 정말 내일같이 안타깝고 기쁘고 응원하게 되더라구요.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하겠어요!!

무스탕 2010-09-19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연휴를 막 즐겁게 지내시려고 미리 액땜하셨나봐요.
그런데 발 밟힌건 짜증나네... -_-+
전 왼쪽 발목이 아픈지가 두 달이 넘었는데 이게 아팠다 안 아팠다 그러니까 병원가기도 뭐하고.. 아플땐 바쁠때라 갈수 없고 시간이 있을땐 아프지 않고.. 에잉~~~

마노아 2010-09-19 22:41   좋아요 0 | URL
제가 6월에 그놈의 훌라후프 하다가 무릎이 아팠는데 아직도 아파요. 누가 고질이라 그래서 잔뜩 겁먹고 있어요.ㅜ.ㅜ 애초에 아프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게 맘처럼 되어야 말이지요.^^;;;;

2010-09-19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0-09-20 07:55   좋아요 0 | URL
저는 특별히 어디 가는 곳은 없어요. 거의 집에 있을 것 같아요.
보름달이 뜰 걸 대비해서 비상소원(?) 몇 가지 대기시켜 놓을 생각이에요.
하핫, 휘영청 밝은 달이 떠주기를 고대합니다.
님도 메리 베리 해피 추석이에요~

후애(厚愛) 2010-09-20 0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을 갖고 계시는군요.^^
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재밌어요. ㅎㅎ

마노아 2010-09-20 07:57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 연휴 때 야금야금 읽어줄 생각이에요. 잔뜩 기대하고 있어요.^^ㅎㅎㅎ

순오기 2010-09-23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마노아님 일상은 파란만장이라니까요,
읽으면서 웃기도 하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공감도 해요.
비상소원을 빌 수 있도록 둥근 보름달이 꼭 떠오르길 빌게요.^^

마노아 2010-09-20 13:08   좋아요 0 | URL
나 홀로 시트콤을 찍는 기분이에요.^^;;;;
오늘은 학교에서 급우울해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건 뭐 말도 할 수 없고 아주 답답해요.ㅜ.ㅜ
둥근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간절히 빌어야겠어요.^^
 
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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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장 비극적인 세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사도세자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 못지 않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소현세자에 대한 연민도 적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그 아비 영조에 대한 분노는 사람들에게 그리 크게 읽혀지지 않지만 소현세자의 아비 인조에 대한 분노는 꽤 읽혀진다는 것. 물론, 그 부자가 살아있을 적의 역사적 배경을 알았을 때의 일이지만.  

남한산성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많은 책들이 나왔다. 남한산성을 주제로 뮤지컬이 올려졌고, 소현세자를 주제로 역시 뮤지컬이 만들어졌었다. 워낙 비극적이었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아서 다른 매체로 만들어졌을 때 전달력이 좋았을 것이다. 최근에는 드라마에서 그 배경으로도 자주 접했다. 이준기 주연의 일지매에서, 강렬한 음악과 함께 다가웠던 추노에서도 임금은 인조였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왕이 된 그의 즉위 명분, 즉 광해의 폐위 명분은 명백했다. '재조지은'. 광해는 재조지은-나라를 다시 일으켜 준 은혜. 즉 임진왜란 때 파병해준 것-을 배신했기에 마땅히 그 자리에서 떨어져 나가야 했고, 인조는 재조지은을 기억하고 받드는 왕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인조는 광해의 외교 정책과 반대 방향으로 나갔고, 그것은 곧 그를 왕으로 만들어준 자들의 공통된 명분이기도 했다. 시작이 그러했기에 그들은 치욕적인 패배와 항복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이후의 역사는 그렇게 반동적으로 흘러가야 했다. 거기에 세자의 비극이 있었다.  

조선의 대신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명과 청의 전투는 무의미했다. 소식이 멀어 전황이 늦어서가 아니라, 어차피 지고 이기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명이 이겨도, 져도 그들은 명을 받들 것이다. 숭정이 사라져도, 그들은 숭정을 이을 것이다. 성현의 뜻이 거기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입지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광해를 쳤던 대의가 모두 거기에 있었다. 임금의 반정은 명의 재조지은을 잊은 광해를 내몬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임금의 자리가 거기에 있었으니, 임금이 수백 번 수천 번 적의 황제 앞에서 이마를 찧는다 하더라도, 임금이 명나라를 받들어 임금이 되었던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임금을 임금의 자리에 올린 자들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적에게 굴복한 것은 치욕이 될 것이나, 또한 원한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명을 등지면 남는 것이 없었다. 광해를 치면서 씨를 말리듯 내몰았던 광해의 정파가 다시 일어선다면, 그들에게 돌아올 것은 한때 광해의 정파가 그러했던 것처럼 멸문과 죽음뿐이었다.– 160쪽
세자는 임금의 아들이었다. 임금이 그들에 의해 임금이 되었으니, 세자도 그들에 의해 세자가 되었다. 세자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기원의 말처럼 세자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세자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세자는 적의 땅에서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었다. 적의 땅에 머물며 낮과 밤마다 홀로 삭였던 고독이 조선의 땅에 돌아와서는 고독을 넘어 슬픔이 되었다.
그러한데, 임금은 나를 위해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정녕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 161쪽  

어린 나이에 정묘호란을 겪었다. 그때 임금인 아비는 강화로 파천했고, 세자였던 그는 분조를 이끌고 남쪽을 뛰어야 했다. 그 역시 난리 통에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분조를 이끌며 눈부신 활약을 보였던 광해가 그로 인해 아비 선조의 견제와 노여움을 샀다는 것도 바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병자호란의 패배 뒤에 인조가 청의 황제 앞에 무릎을 꿇던 자리에 소현도 있었다. 그도 무릎을 꿇었고, 적국에 볼모로 가야 했다. 마땅히 임금이었던 아비의 책임이 가장 크고, 그래서 가장 미안해할 사람도 그이지만, 그는 임금이었다. 임금인 그는 미안해하기 보다 부끄러워 했고, 부끄럽기 때문에 분노했고, 그리고 미워했다.  

임금인 아비보다 뛰어난 아들은 아비의 정적이 되기 일쑤였고, 임금의 마음을 아는 자들은 그 마음을 파고들기 바빴다. 소현이 병자호란의 난리로 볼모로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그의 온화한 성품을 볼 때 그는 무던히 다음 임금의 자리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보다 호전적인 성격의 봉림보다 소현의 성품이 사대부들에게도 더 임금 자리에 적합했을 것이다.  

물과 불같이 다른 성격을 가진 두 형제는 먼 이국 땅에서, 그것도 치욕을 안겨준 적국의 땅에서 설움과 눈물을 삼키며 힘겹게 살아남았다. 청에서 내리는 무리한 요구들을 적당히 받아쳐야 했고, 그곳에서 험한 세월을 사는 백성들도 지켜야 했다. 청에서 나오는 소리와, 명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잘 파악해야 했고, 조선 땅에서 임금의 밭은 기침 소리에도 촉각을 기울여야 했다. 어느 곳이든 편한 곳이 없었다. 임금은 임금대로 피곤했고, 세자는 세자대로 다급했고, 백성은 백성대로 비참했다.  

이 책은 세자가 죽기 전 마지막 2년을 다루고 있다. 심양에 볼모로 끌려가서 7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세자는 4년 차와 7년 차에 고국을 잠시 방문할 수 있었다. 어린 원손이 대신 볼모로 도착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돌아간 고국은 낯설었다. 아비는 차가웠고, 대신들은 하나마나한 답답한 얘기들만 반복했다. 세자가 침을 맞은 뒤 곤히 잠든 아버지의 곁을 지키면서 어릴 적 따스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장면이 눈물겨웠다.  

임금이 몸을 돌려 누웠다.여윈 몸의 등뼈가 세자를 향해 드러났다.
울거라. 네 몸에 울음이 가득할 것이다.
세자에게 울라 하고 돌아누운 아비의 등이 흔들렸다. 상께서 울고 계셨다.   – 176쪽  

정말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며 같은 시절을 추억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건 소설적 장치이겠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리 애틋하게 꿈을 꾸고 눈물을 흘렸어도 아비에게 아들은 정적이었다. 그렇게 권력은 부자 사이에도 나누지 못할 무서운 것이었다.  

작품이 참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청나라의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들. 그들 유목민족의 특성을 잘 보여주었고, 그들 간의 전투와 그들이 치르고 있는 전쟁의 살벌함도 모두 보여주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세자와 봉림의 두려움까지 낱낱이.  

세자가 심양에 들었을 때 날씨는 이미 초여름의 더위로 익어 있었다. 은근히 계절이 다가오고, 또 은근히 계절이 지나가는 조선과는 달라 북방은 모든 것이 급하고 뜨거웠다. 유목하며 살던 사람들은 무엇이든 머문 자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계절을 쫓아 달리고, 계절을 피해 달렸다. 가다가 먼저 있는 자들이 있으면 치고, 그 자치를 차지했다. 그것이 그들의 피의 뜨거움이었다. 봄에 이르러 파종하고, 가을에 이르러 수확을 기다리는 조선 사람들의 일처럼 그들에겐 전쟁이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하늘이 그들을 그런 땅에 보내었던 것이다. – 204쪽
“누구나 영원히 적입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걸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년 전, 조선은 그걸 몰랐습니다. 조선의 적이 청뿐만 아니라 명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셨어야 했습니다.– 312쪽  

누르하치의 아들이며 중원을 끝내 정복한 섭정왕 도르곤이 세자에게 건넨 말이다. 동갑내기 두 사람 중 하나는 중원을 차지하며 천하의 주인을 선포했고, 다른 하나는 그 나라에 볼모로 붙잡혀 있는 가련한 처지였다. 도르곤의 입을 통해서 나온 국제관계의 저 명약한 진리가 오늘날에는 다를까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그때 조선이 떠받들던 명나라만큼 어떤 나라를 섬기고 있는 것인지...  

조선이 청을 향해 오랑캐라고 업신여기며, 명이 무너진 뒤에도 오래오래 '북벌'을 소리 높여 외치며 말뿐인 싸움을 계속할 때에도 청은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실체를 경험한 세자가 그들의 힘에, 역량에 압도되지 않았다면 그거야말로 그가 세자로서의 자격을 잃는 순간이 아닐까. 자신들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인정하였을 때, 비로소 배워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들을 겸허히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이 강화도 조약으로 강제 개방 당하기 232년 전이었다. 조선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는 기회였다. 이미 놓쳐버린 기회니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만, 돌아온 세자가 어찌 죽었고, 세자의 처가가, 그리고 가여운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떠올린다면 비극은 점점 커다랗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렇게 아들과 그 일가족을 모조리 죽여버린 임금의 이름은 인조였다. 어질 인(仁)을 쓰는 인조.  

9년 간의 볼모살이를 끝내고 영구 귀국한 세자는 두달 만에 급사한다. 그의 사인이 독살이었던 것은 사관조차도 부정하지 못했던 일. 그의 죽음의 진짜 배후가 누구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가 그렇게 죽고 봉림이 임금이 된다. 효종이다. 효종의 10년 치세도 평안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도 석연치 않다. 그렇게 조선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작품이 몹시 흡인력 있었고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사로잡는 힘을 느꼈는데, 그럴수록 마음이 답답했다. 그저 소설로 읽혀지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작가의 고백도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김인숙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한 것 같은데 점점 더 기대가 되는 작가분이다. 특히 문장이 마음에 들었는데 조용히 강한 느낌이었다. 다만 '만상' 캐릭터의 말투는 조금 아쉬웠다. 그를 자주 천 것이라 강조했는데 그의 말투는 양반님네들 말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밖에 소현과 봉림, 석경과 흔, 막금이와 도르곤 등 다른 캐릭터들은 모두 훌륭했다. 만상은 캐릭터가 입체적이었지만 말투만 옥의 티였을 뿐.  

요새는 사극들의 소재가 워낙 다양해지다 보니 언젠가는 소현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중국 말을 넘어 청나라 말을 구현하긴 힘들겠지만 소재로서의 매력은 충분히 느끼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김훈의 남한산성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늘 봐야할 책이 미어터지는 나로서는 밑줄긋기나 한 번 다시 스윽 쳐다보고 말았지만. 그래도 더불어 떠오르는 다른 책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이 책은 나중에 다시 찬찬히 만나볼 생각이다. 어쩌면 오늘 작성해 놓은 밑줄긋기가 그때에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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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활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from 그대가, 그대를 2011-08-12 21:52 
    누구라도 영화 제목을 보면弓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자막을 보니 活로 뜬다. 이중적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하면 되겠다.영화의 시작은 인조반정에서 출발한다. 한 때는 촉망받던 무인 집안이었지만 광해군을 따랐다는 이유로 이제는 역적의 집안이 되어 남이와 자인은 쫓기는 몸이 된다. 아버지는 절친이 있는 개성으로 두 아이를 보내고 칼을 받는다. 신궁이었던 아버지의 활은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맡겨진다. 아버지의 최후를 기억하는 남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다락방 2010-09-17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 워낙 역사에 무지하고 해서 읽을 생각이 안들더라구요. 마침 오전에 마노아님의 밑줄긋기 보고 재미있나요? 라고 물으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리뷰가 올라와 있네요. 별 다섯개로.

아 또 제 학창시절이 원망스러워요. 마노아님같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던 그 학창시절이요!
아니, 전 마노아님 같은 선생님을 만났어도 여전히 역사를 잘하지 못했을 것 같긴 해요. -_-

마노아 2010-09-17 15:25   좋아요 0 | URL
이 책 무척 재밌게 읽었어요. 특히 감성이 마음에 들었어요. 최근에 병자호란 수업을 해서인지 좀 더 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선생님도 중요한데 결국 본인의 호오가 가장 영향력 있는 것 같아요. 저 학교 때 정말 이상한(상당히 미화시킨 표현) 역사 선생님도 여럿 있었거든요.ㅎㅎㅎ 선생님을 좋아했어도 끝내 못했던 수학도 생각나고요. 더더욱 못했던 영어도 생각나요. 털썩!
불행한 세자들 뒤에는 꼭 나아쁜 임금들이 있더라구요. 읽으면서 막 울컥했어요.(>_<)

마녀고양이 2010-09-17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현 세자 이야기 너무 가슴아파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독살도 당하고.
봉림대군 역시 마찬가지였죠?

참.... 암울하고 답답한 시대예요. 역사란 거의 그렇지만 말이죠.

마노아 2010-09-17 15:26   좋아요 0 | URL
효종의 죽음도 상당히 의혹이 많아서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요.
아비의 업보를 자식이 엄하게 받은 경우 같아요.
역사의 비극이에요.

무스탕 2010-09-17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마노아님의 리뷰만큼 재미있을까 싶어요.
아.. 소름 쫙쫙 끼치고 피부에 찰싹찰싹 와 닿는 리뷰에요.
글고, 빨리 읽어보도록 하지요. 이 책 :)

마노아 2010-09-17 22:34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이 책은 표지부터 카리스마가 팍팍 풍기는데 세자의 고독과 슬픔이 표지에서부터 뒷장 표지까지 전율이 일도록 느껴져요. 문장의 무게가 역사의 무게처럼 다가와요. 저는 강추입니다.^^

순오기 2010-09-17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가 소현을 잘 살려낸거 같아요. 남한산성의 문체와 닮은 점도 있고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지 기대되는 작가에요.

마노아 2010-09-17 22:34   좋아요 0 | URL
김훈의 흡입력은 너무 강렬해서 언제나 잔영처럼 남아 있어요.
이 책은 그 정도로 미학적인 문장은 아니더라도 정서적으로 감동이 많았어요.
저도 정말 기대가 되어요.^^

sslmo 2010-09-18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국사선생님이신가 봅니다~
전 참 어려워하는 부분인데 말이죠.

개인적으로 자음과 모음 책은 잘 안 읽는데,읽어보고 싶은 걸요~^^

마노아 2010-09-18 16:14   좋아요 0 | URL
자음과 모음 책이 어떤 특성을 가졌나 싶어 출판사 이름으로 검색해 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막 궁금해져요.^^ㅎㅎㅎ

2010-09-19 0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9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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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 황제에게는 생존하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고, 역시 생존하는 형제들이 있었다. 적은 여전히 야만이라 대통을 미리 정해두는 법도가 없었으니, 생존하는 모든 황자들과 대왕들이 황위 계승의 자격을 가졌다. 그리하여 모반도 정변도 아닌, 모반보다 더하고 정변보다 더한 싸움이었다. 모두가 모두를 죽일 수 있었고, 가차 없이 그렇게 할 태세였다. 누구도 죽이려 하지 않는 자도 죽을 수 있었고, 죽지 않으려고 몸을 낮출 데까지 낮춘 자도 죽을 수 있었다.

-21쪽

새 황제가 났으니 그들은 다시 전쟁을 준비할 터였다. 전쟁은 일상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으나, 섭정왕의 포부가 크니 전보다 더 큰 전쟁이 될 게 틀림없었다. 조선은 그들의 적의 축에도 끼지 못했으나, 성가신 후방임에는 틀림없었다. 뒤를 걱정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전쟁 때마다 그들이 조선의 출병을 요구하는 것은 조선의 군대가 힘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후방을 비워두기 위해서였다.

-97쪽

꿈을 믿는 자들이란 꿈이 필요한 자들일 터...... 만상은 밤마다 깊은 잠이 들어 흉몽이고 길몽이고 꾸지 않았다. 더 높이 올라갈 데도 없었고, 더 낮은 데로 떨어질 데도 없었다. 그는 가장 낮은 바닥에서 뒹굴어 간신히 그 낮은 바닥을 기어 나왔을 뿐이었다. (...) 높이 오를 수 있는 자는 높이 있는 자들이었다. (...) 그의 꿈은 그저 오래 살아남는 것뿐이었다. 밤마다 잠이 깊어 해몽이 필요한 꿈 같은 것은 뀌지지도 않았다.

-98쪽

세자가 강 건너 청의 성도에 있으니, 강 가까운 곳의 백성들은 세자를 먹여살리는 일에 자신들의 뼈를 깎았다. 달마다 올라가는 세자의 삯찬에, 대신들의 녹봉에, 쇄마에, 날이면 날마다 동원되는 군역까지 의주부의 백성들이 적에 볼모로 있는 세자로 인하여 헐벗고 굶주리고, 목숨이 죽어나갔다. 전쟁에는 한 목숨 잃으면 그만이었으나, 전쟁 뒤끝에는 살아남은 목숨들이 더욱 고되었다. 오래 살아 그 모든 것을 다 목격한 늙은이들의 울음이 그래서 더욱 장하였다.

-145쪽

명이 그의 적이었다면, 그리고 적이 그의 편이었다면, 세자에게도 그 전쟁에 대한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바라보며 두려운 것이 아니라, 두려운 것을 깨고 부수고자 저들처럼 눈알이 붉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자는 바라볼 뿐이었고, 바라보며 두려울 뿐이었고, 그 두려움이 비루하여 환멸을 견딜 수 없음이었다.
응전하는 명의 장수들은 장했으나, 그들의 나라는 이미 비루했다. 숭정은 황제로서의 위엄을 이미 잃어, 아침이면 이자를 죽이고, 저녁이면 아침에 이자를 죽인 저자를 죽이라 하는 식이라고 했다. 조선은 명에서 멀고, 또한 저들에 의해 육로와 해로가 모두 끊겨 조선에까지는 가지 못하는 명의 참담한 소식들이 세자의 관소에는 속속 들어왔다.
-157쪽

봉림은 종군했던 전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낯빛이 차가워 세자라도 쉽게 말을 건넬 수가 없는 지경이곤 했었다. 봉림이 보았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세자는 이때에 알았다. 그것은 말로 전해질 수 없는 것이며, 글로도 적어 올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명이 끝났습니다. 미천한 최래는 외칠 수 있었으나, 세자는 말할 수 없었다. 봉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적의 땅에서, 그야말로 너무 오래, 모든 것을 보았다. 그들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사람은 세자, 한 사람은 대군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160쪽

조선의 대신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명과 청의 전투는 무의미했다. 소식이 멀어 전황이 늦어서가 아니라, 어차피 지고 이기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명이 이겨도, 져도 그들은 명을 받들 것이다. 숭정이 사라져도, 그들은 숭정을 이을 것이다. 성현의 뜻이 거기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입지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광해를 쳤던 대의가 모두 거기에 있었다. 임금의 반정은 명의 재조지은을 잊은 광해를 내몬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임금의 자리가 거기에 있었으니, 임금이 수백 번 수천 번 적의 황제 앞에서 이마를 찧는다 하더라도, 임금이 명나라를 받들어 임금이 되었던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임금을 임금의 자리에 올린 자들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적에게 굴복한 것은 치욕이 될 것이나, 또한 원한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명을 등지면 남는 것이 없었다. 광해를 치면서 씨를 말리듯 내몰았던 광해의 정파가 다시 일어선다면, 그들에게 돌아올 것은 한때 광해의 정파가 그러했던 것처럼 멸문과 죽음뿐이었다.
-160쪽

세자는 임금의 아들이었다. 임금이 그들에 의해 임금이 되었으니, 세자도 그들에 의해 세자가 되었다. 세자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기원의 말처럼 세자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세자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세자는 적의 땅에서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었다. 적의 땅에 머물며 낮과 밤마다 홀로 삭였던 고독이 조선의 땅에 돌아와서는 고독을 넘어 슬픔이 되었다.
그러한데, 임금은 나를 위해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정녕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161쪽

상은 오래 아프셨다. 보위에 오른 후 반란과 전쟁이 끊이지를 않아 심화가 병의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노여움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몸속 깊은 곳의 농증이 되었다. 상이 스스로 보위에 오를 때 소망이 없으셨겠는가. 그러나 소망은 적에게 짓밟히고, 능욕은 사관의 기록으로 역사에 남았다. 기록이 새로운 영광으로 채워질 날은 보이지 않고, 적의 내부를 깊이 알 수 없어 보위는 늘 위태하게 여겨졌다. 아프지 안혹, 세월을 어찌 견디실 수 있으실 것인가. 의관 하나 곁에 두는 일조차도 들고 일어서 가타부타 하는 대신들이 임금은 지겨웠다. 대신들이 삿되다 하는 의관을 부러 곁에 두고, 삿된 의관이 사술로 혈을 맘껏 찾으라고 벗은 몸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심화가 마음을 닦는 성현의 도리만으로는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세월이 임금의 소망을 넘쳐서 흐르니, 임금의 세월이 임금의 것이 아니었다.
-173쪽

임금이 몸을 돌려 누웠다.여윈 몸의 등뼈가 세자를 향해 드러났다.
"울거라. 네 몸에 울음이 가득할 것이다."
세자에게 울라 하고 돌아누운 아비의 등이 흔들렸다. 상께서 울고 계셨다.
-176쪽

상소를 읽고 상소에 답하는 일로 임금의 하루가 새고 저물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욕은 오래 남았다. 궁이 정한 기운을 받는 자리에 있지 못하니 창경궁과 창덕궁을 버리고, 법궁인 경복궁도 버리고, 다른 궁으로 이어하시라는 상소가 또 난데없이 올라왔다. 대신들이 임금의 말을 받아, 백성들이 너나없이 곤궁한 이때에 새로운 궁으로 이어 운운한 자를 파직하시라는 상소를 다시 올렸다. 삿된 상소를 임금께 바친 승지도 파직하시라 했고, 그 상소를 올려 바쳤던 승지도 자신을 파직하시라 했다. 심화가 더쳐 다시 침을 맞으니, 삿된 침은 이제 그만 맞으시라, 또 상소가 올라왔다.
"경들의 뜻이 가상하다."
상이 답하셨다.
"가상하나 그만하라. 너희들이 나를 임금으로 보느냐!"
마침내 상이 참지 못한 말을 내뱉어 언로에 막힘이 없는 간원들이 다시 벌떼처럼 일어섰다.
몸에 가득한 울음은 임금의 것이었다. 누구도 누구를 위해 대신 울어줄 수 없었다. 세자가 임금의 곁에 있었으나, 임금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177쪽

세자가 심양에 들었을 때 날씨는 이미 초여름의 더위로 익어 있었다. 은근히 계절이 다가오고, 또 은근히 계절이 지나가는 조선과는 달라 북방은 모든 것이 급하고 뜨거웠다. 유목하며 살던 사람들은 무엇이든 머문 자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계절을 쫓아 달리고, 계절을 피해 달렸다. 가다가 먼저 있는 자들이 있으면 치고, 그 자치를 차지했다. 그것이 그들의 피의 뜨거움이었다. 봄에 이르러 파종하고, 가을에 이르러 수확을 기다리는 조선 사람들의 일처럼 그들에겐 전쟁이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하늘이 그들을 그런 땅에 보내었던 것이다.

-204쪽

"성 밖에를 나가보았느냐?"
"아바마마께서 밖에 계시니 제가 안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가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리 말하더냐?"
"......제가 그리 알았습니다."
세자의 눈빛이 쓸쓸했다. 원손의 말에 거짓이 없었다. 누구도 원손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나 원손이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스스로 그것을 알았을 터인데도 누가 귀에 대고 꽝꽝 소리를 질러대는 것 같았을 것이다. 원손의 자리란 것이 그런 것이었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 가장 먼저 배우는 일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겹겹이 쌓여 마침내 남는 것이 없었다.
-206쪽

임금은 늘 전란 중에 있었다. 피와 군사의 목숨으로 보좌를 얻은 임금에게 세월은 피와 군사의 목숨으로 되갚았다. 광해를 몰아냈던 자들이 다시 광해를 세우겠다고도 했고, 적에게 무릎 꿇은 임금을 상으로서 받들 수 없다고도 했고, 적에게 당한 굴욕과 적을 향한 원한이 임금을 향한 굴욕과 원한이 되었다고도 했다. 임금 대신 새로이 보좌에 올릴 자들의 이름으로 폐주인 광해부터 시작하여 무수히 많은 종친들이 거론되었다. 역모의 고변이 올라왔을 때 임금이 가장 먼저 물은 것은 누구냐는 것이었다. 역모를 일으킨 자가 아니라 역모를 일으키려던 자들이 추대하려고 한 자의 이름이었다.

-214쪽

적의 땅에서 사는 동안 수도 없이 본 것이 바로 역모였다. 역모가 역심을 가진 자들에게서 일어나지 않고 역모를 필요로 하는 시절에 의해 일어났던 것이다. 필요치 않은 모가지들이 역모에 의해 남김없이 잘려나갔다.

-222쪽

역모에 세자의 이름이 오르내렸다고 했다. 그 진위가 어떠하든 간에 조선의 임금이 자신의 아들을 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어느 임금에게 적이 아닌 자식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 수위가 역모에 이를 정도로 높아졌으니, 세자의 입지가 더할 수 없이 위험한 정도에 이르렀음은 분명한 일이었다.

-224쪽

틈은 어디에서나 벌어진다. 손톱 밑에 찔린 가시 하나 때문에 온몸이 썩을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세자는 믿을 만한 자였다. 청에 굴복하는 마음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기다림을 아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믿을 만하나 그래서 두려운 자였다.

-224쪽

산해관이었다. 장성이 시작되는 곳이었고 중원이 시작되는 곳이었으며 죽음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누르하치부터 시작하여 도르곤에 이르기까지 자들이 이곳에 이르기 위해 수십 년 동안의 전투를 멈추지 않았다. 죽어나가는 자들이 들판의 거름이 되고, 산 자들이 다시 전쟁의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여자의 배를 부르게 했다. 아들은 다시 전쟁에 나가고, 딸은 전쟁에 나갈 아들을 낳기 위해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는 법을 일찌감치 배웠다.

-274쪽

"누구나 영원히 적입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걸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년 전, 조선은 그걸 몰랐습니다. 조선의 적이 청뿐만 아니라 명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셨어야 했습니다."
-312쪽

(작가의 말 중)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이 있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복할 당시의 기록들, 그 격변의 시기의 기록들을 중국 학자들이 조선왕조의 기록에서 빌려다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기록 문화는 그야말로 놀랍다. 경의를 금할 수가 없다. 너무나 냉정하여 너무나 무한한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있다.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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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임석재 지음 / 대원사 / 1999년 10월
구판절판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팔작지붕은 정면에서 볼 경우 근엄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측면에서는 펄럭이는 듯한 경쾌한 감흥을 자아낸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측면에서 보면 한껏 들뜬 소녀의 몸짓 같은 활성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다만 에너지가 너무 넘쳤달까. 무거운 지붕을 받치기 위해서 보조 기둥의 도움이 필요해졌다. 조금 덜 날개를 펴고 기둥이 없어졌다면 더 멋있지 않았을까?

개심사 범종각은 한국의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휜 나무를 다듬지 않고 휜 채로 네 귀퉁이에 사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저렇게 휘고 뒤틀어진 나무도 기둥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여긴 발상 자체가 멋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훌륭한 자태를 뽐내는 개심사 범종각!

갑사 대웅전 기단은 크고 작은 돌들이 불규칙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쌓아져 있다. 주먹만한 돌에서부터 3~4미터씩 되는 큰돌이 정형적 규칙을 거부하며 제멋대로 쌓아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불규칙 속의 질서가 강하게 느껴진다.

규격을 벗어났음에도 질서와 규칙이 엿보인다. 부조화 속의 조화. 자유로우면서도 응축된 힘이 느껴진다.

종묘의 바닥에 깔린 돌길. 살아있는 왕이 정사를 펼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품석은 생략되었다. 길도 세 겹이 아닌 외겹. 어쩐지 겸허해지는 느낌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적 여정을 보여주는 종묘의 돌길.
종묘는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멀리 있지도 않은데...

광활한 평지에 곡선을 그리며 돌아가는 왕릉이 길은 왕이 살아왔던 인생 여정을 상징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망자의 여정인 왕릉의 길은 교만하지 않은 편안한 곡선으로 완만하게 나 있다.

영릉의 길은 완만해 보인다. 세종의 치세 기간 사건이 없었던 게 아니지만, 그래도 조선 중후기의 임금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느껴진다. 훨씬 역동적이었고 긍정의 에너지가 넘쳤지만 그 후대 임금들의 검은 오로라가 너무 짙어서 그리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빡빡함 그 자체. 서양 건축에서 사각형 공간은 모서리를 모두 폐쇄해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준다. 우리의 한옥이 모서리를 열어두어 덜 짜임새 있게 느껴지지만 보다 투명하고 개방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위에서 들여다봐서 그런지 사진 속의 건물들은 너무 답답해서 숨이 턱 막힌다.


아무래도 우리 건축물 이야기는 좀 더 재밌게 보았는데 서양 건축물 쪽은 덜 관심이 가서 사진도 우리 쪽 사진이 훨씬 많다. 그래봤자 모두 여섯 장이지만.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 재미는 덜했다. 우리의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짚어준다는 기획 의도는 좋았는데 그 접점이 생각보다 덜 맞아 떨어졌다. 아귀가 맞는 느낌보다는 그냥 나열하는 느낌?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보게 된 것은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 힘들어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오래 끼고 읽었다. 다 보니까 속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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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9-16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개심사 범종각보고 웃었던 기억이 나요.^^ 옛날 사람들의 건축물은 정말 대단해요.^^

마노아 2010-09-16 23:49   좋아요 0 | URL
직접 보고 오셨군요. 실제로 보게 되면 막 유쾌해질 것 같아요. 묘한 여유같은 것도 생길 것 같고요.^^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임석재 지음 / 대원사 / 1999년 10월
구판절판


왜 그랬을까. 나무가 없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나무 찾고 다니기가 귀찮아서 그랬을까. 둘 다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휜 나무를 기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휜 나무도 곧은 나무와 조금도 다름없이 기둥으로써의 구조 역할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휜 나무는 보기에 불안해 보이거나 흉해 보인다는 생각은 인위적 질서 중심의 서양식 가치관이 들어온 이후에 생긴 판단 기준일 것이다. (...) 한국의 전통 건축에는 뒤틀리고 휜 나무가 그대로 기둥과 대들보로 쓰인 예들이 많이 있다. 곧은 놈은 곧은 대로, 또 휜 놈은 휜 대로 편견이나 차별 없이 다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기막힌 평등사상을 이러한 한국 기둥은 얘기해주고 있다.

-41쪽

목구조는 수많은 부재들끼리 서로 의존하는 절묘한 균형력을 기초로 세워지기 때문에 한번 잘 짜여지기만 하면 돌덩이보다도 더 단단한 구조적 안정성을 갖는다. 이 위로 육중한 지붕이 묵직하게 눌러주면 목구조는 완강한 결속력을 지니며 수천 년을 버틸 수 있게 된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 장엄한 지붕이 무겁게 느껴지기 보다 차분한 안정감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지붕이 단순한 짐이 아니라 이처럼 아래쪽의 구조체를 도와 일체가 되기 때문이다. 목구조는 화재나 전쟁 등 인재(人災)에 약한 단점이 있긴 하지만 반면에 부재들 사이의 상호 균형력을 갖기 때문에 지진에는 가장 유리한 구조 방식이기도 하다.

-55쪽

홍살문은 왕릉의 영역이 시작됨을 알린다는 점에서 사찰의 일주문에 해당된다. 홍살문의 높이는 일주문이나 솟을대문보다 높으나 단주 두 개만으로 이루어지는 매우 단순한 구성을 보여 준다. 이때 두 개의 단주 사이 꼭대기 부분에 열두 개의 살대가 더해지며 그 중앙에는 태극 마크가 붙여진다. 살대는 법도의 곧고 바름을 상징했는데 이것은 곧 나라와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또한 열두 개의 막대기는 열두 간지(干支)를 상징하기도 했다. 살대의 중앙에는 천지의 운행 원리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태극 마크가 붙여짐으로써 인간사 열두 간지의 순회를 다스리는 천하 일인 왕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서원에서처럼 왕과 나라의 권위를 상징하지 않을 경우 살대는 열두 개가 아닌 열 개가 쓰이기도 한다. 서원의 정문 앞에 홍살문을 세웠듯이 살대는 종종 솟을대문이나 서원의 내문 등에 쓰이기도 하였다.

-127쪽

서양 건축은 한국 전통 건축만큼 남향을 중시하지 않았다. 자연의 혜택을 누리기보다는 인간의 의지와 기술로 이것을 해결하겠다는 현실적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양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건축은 어차피 땅 위에 인간만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렇다면 굳이 자연의 조건에 얽매일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그보다 인간의 존재 의지를 표현해줄 다른 요소를 더 중시했다. 낭만주의가 유행하기 전까지 서양 건축에서 자연은 그 속에 안기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손으로 개조해야 되는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서양 건축에서 햇빛을 일부러 피했을 리는 없다. 다만 그들이 아무 곳에서나 일광욕을 즐기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햇빛을 취하는 방식이 직설적이라는 데 차이가 있는 것이다.

-140쪽

당간지주는 돌이나 철로 만들었기 때문에 고찰들이 난리통에 불에 타 사라진 와중에도 지금까지 남아 백제나 신라 때의 유구한 불교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고찰의 전각들이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한 경우가 대부분인 가운데 당간지주는 확실히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유구임에 틀림없다.

-185쪽

궁궐의 돌길은 살아있는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 이러한 직선의 이미지는 종묘에 오면 다소 변화가 나타난다. 종묘는 선대왕들의 위폐를 모시고 이곳에서 왕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기 때문에 삶의 영역과 죽음의 영역 사이의 중간 단계에 해당된다. 종묘사직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하여 일직선의 곧은 돌길이 놓였지만 살아있는 왕이 정사를 펼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품석은 생략되었으며 길 자체도 세 겹이 아닌 외겹으로 이루어졌다. 돌 색깔이 유난히 어두운 이유는 제사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종묘의 돌길은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적 여정을 상징한다.

-191쪽

왕릉의 돌길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망자(亡者)의 여정이기 때문에 인간적 교만을 상징하는 직선보다는 자연의 일부로 귀속되는 곡선으로 처리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능 자체가 둥근 반원의 곡선 형태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곡선 길이 더 잘 어울린다. 이처럼 왕릉의 돌길은 곡선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왕이 살아왔던 삶의 여정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나간 삶의 여정은 곧 망자의 여정과 동의어로 해석될 수 있다.

-194쪽

서양 전통 건축에서 모서리는 메워지고 봉합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정의되었다. 그래야 기하학적 완결성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서양 전통 건축에서는 모서리가 딱 맞지 않으면 입이 벌어져 바람이 새듯 불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곧 이상적인 공간은 두 개의 벽체와 천장이 만나는 모서리가 직각으로 반듯하게 맞아떨어져 물샐틈없이 정밀하게 짜여지는 경우이다. (...) 이 밖에도 모서리가 잘 봉합된 서양 전통 건축의 공간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여기는 서양의 생활 방식에 잘 맞는 긍정적인 측면을 갖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공간의 느낌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서양 전통 건축의 이러한 모서리 처리는 공간을 불투명하고 폐쇄적으로 만들면서 한국 전통 건축과 큰 차이점을 갖게 된다. (...) 특히 서양 전통 건축의 경우 돌이 주재료라는 점은 건물의 불투명성과 폐쇄성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249쪽

이에 반해 한국 전통 건축의 사각형 공간은 모서리가 조금씩 열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모서리가 열려 있는 사각형 공간은 엉성하고 짜임새가 덜할 지는 몰라도 공간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만들어준다. 투명하고 개방적인 공간은 편안한 느낌으로 발전하며 이 모든 느낌들은 그대로 한국 전통 건축의 사각형 공간이 갖는 특징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리고 나무와 창호지가 주재료라는 점은 이러한 투명성을 배가시켜 준다.

-252쪽

한국 전통 건축의 사각형 마당은 네 면이 건물로 둘러싸이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인간의 감각 기능이 주변 환경을 편안하게 인식하는 한계를 잘 지키는 범위 내에서 마당의 크기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거기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건물과 건물이 만나는 모서리가 적당히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틈새인 것이다. 한국 전통 건축의 사각형 마당 공간은 이처럼 틈새를 천시하거나 잊지 않고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는 섬세한 매력이 있다.

-253쪽

모서리가 열린 투명한 사각형 공간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 전통 건축의 단점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어 왔다. 사람은 누구나 방해받지 않고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은데 한국 전통 건축에서는 분명히 사람이 남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된다. 특히 서양식 생활 방식에 익숙해진 최근에 이러한 시각은 이제 우리의 일반적 생각이 되어버렸다. 특히 한옥에서 한번이라도 자본 사람은 밖에서 나는 조그만 벌레소리와 바람소리마저도 너무 크게 들리는 통에 신경이 민감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현상들은 현대인들에게 전통 건축을 점점 더 낯설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국 전통 건축의 투명한 공간은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을 높여주는 기능을 갖는다.

-256쪽

뒤집어 이야기하면 한옥의 불편한 점으로 지적된 이런 사항들이 바로 내․외부 공간 사이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는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에 해당되는 내용들이다. 모든 방 사이의 거리가 짧고 이동이 간단한 서구식 주택에 비해 같은 집안인데도 부엌에서 안방까지 가기 위해서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하며 산 넘고 강 건너듯 먼 거리를 움직여야 하는 한옥의 공간 구성은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체가 하나의 독특한 건축적 특징일 수 있다. 겨울에 춥다는 말은 그만큼 외기와 내통이 잘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프라이버시 보호가 안 된다는 말은 거꾸로 한옥에서는 그만큼 간접 의사소통이 잘 된다는 것을 의마히가도 한다.
-308쪽

나무로 지어지면 내구성이 떨어진다지만 가회동, 옥인동, 돈암동 등 서울 시내 여러 곳에는 아직도 수십 년 된 한옥이 아무 문제없이 거뜬히 서 있다. 멀쩡한 집이 무너지는 경우는 오히려 콘크리트로 지은 집이며 아파트 재건축에서 볼 수 있듯 한국에서 콘크리트의 물리적, 사회적 수명은 20년을 채 넘기기 힘드니 나무보다 나을 것이 없다. 최근에 캐나다 통나무집이 마치 낭만적 전원을 즐길 만한 여유가 있는 상류층의 상징인 것처럼 과대 포장되어 유행하면서도 같은 나무집인 우리 한옥은 여전히 불편하고 재래적인 것으로 보려는 편견은 변하지 않고 있다.
-308쪽

한옥은 나무와 창호지로 지어지기 때문에 방안에 있더라도 다른 사람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간접 의사소통 방식에 의해 느낄 수 있다. (...) 이에 반해 프라이버시 보호도가 높은 폐쇄적인 방 속에 혼자 있다 보면 다른 사람의 존재는 한동안 관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방 속에 혼자 있던 기분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져서 사람을 마주치는 일 자체가 싫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투명한 공간을 갖는 한옥을 버리고 폐쇄적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 가족 사이에 대화가 줄어들고 이웃 사이에 멀어지게 된 이유이다.

-319쪽

서양의 전통 건축에서 건물의 내부는 전적으로 사적 공간이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벽은 불투명하고 둔탁하게 폐쇄되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개인사였기 때문에 외부에 노출되면 안 되었다. 20세기 현대 건축은 한마디로 콘크리트와 철골이라는 새로운 기계 산업 건설 방식을 이용하여 전통 건축을 대체할 수 있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공간을 창조하려던 작업이었다. 이러한 20세기 서양 현대 건축이 완성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동북아시아의 투명 공간이었다.

-321쪽

서양 현대 건축가들도 부러워하며 모방했던 한국 전통 건축의 대표적 특징이 정작 한국의 일반인들로부터는 버림받았다. 전문 건축가들이 한국 전통 건축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은 내용이 건물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불편을 초래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생활 방식과 사고 방식이 서구식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한옥이 지닌 장점은 장점으로서 작용하지 않는 반면 단점은 크게 부각되어 한옥이 사라지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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