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고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제 1225 호/2010-10-11]


지난 추석 귀경길 서울 톨게이트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이 등장했다. 고향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청양고추와 고추볼펜이 함께 담긴 세트를 선물하는 행사가 벌어졌던 것. ‘맵기로 유명한 청양고추를 먹고 졸음운전을 막으라’는 의미였다. 청양고추는 다른 고추보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capsaicin)’ 성분이 6배 정도 많아 한 토막만 먹어도 졸음을 쫓는 데 효과적이라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사실 고추의 캡사이신은 세균이나 곰팡
이, 바이러스, 새,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방어물질이다. 그래서 이 성분은 졸음 방지뿐 아니라 통증을 완화시키는 연고나 소화장애 치료제에도 사용된다.

캡사이신이 우리 몸에 들어간 직후에는 강한 자극을 준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통증전달 물질이 분비되는 것을 막아 진통 작용을 한다. 이 점을 이용한 캡사이신 연고는 당뇨병이나 류머티즘성 관절염의 통증을 완화한다.
처음에 이 연고를 바르면 화끈거리고 따갑지만 2~3일 후부터는 통증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매운맛은 위를 자극한다고 아는 사람이 많지만 소량의 캡사이신은 위 점막을 자극하지 않고 위염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 위염 같은 질환의 원인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감염된 위 점막 세포의 염증을 고추에서 추출한 캡사이신이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내과 이용찬 교수는 2007년에 이런 내용의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헬리코박터’에 발표하기도 했다.

캡사이신이 항암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서울대 약대 서영준 교수팀은 피부암 세포를 주사한 쥐에게 캡사이신을 발라 캡사이신의 항암 효과를 증명했다. 캡사이신을 바르지 않은 쥐는 100% 피부암에 걸렸지만, 캡사이신을 바른 쥐는 60%만 피부암으로 발전했던 것. 이 연구결과는 2003년 ‘네이처’에 실렸다. 미국에서는 전립선암 세포를 가진 쥐에게 캡사이신을 주사해 암세포의 80%가 줄어들고 종양이 축소된 실험결과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 매운맛 성분이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건국대 생명공학과 이기원 교수팀이 연구한 결과, 캡사이신이 암 유전자를 활성화시키고, 이것이 암 발생에 중요한 단백질 발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암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암 연구(Cancer Research)’ 2010년 9월호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연구팀은 캡사이신이 최루탄의 원료로 이용되고, 염증이나 지극을 유발시키는 물질이라는 데 주목했다. 정상세포에서 캡사이신이 암을 억제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는 없었던 것이다. 또 기존에 밝혀진 캡사이신의 항암효과들은 모두 암세포를 대상으로 실험했던 결과였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연구팀은 쥐를 이용해 캡사이신이 정상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그 결과 캡사이신이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라는 단백질을 활성화시켜 염증을 유도하고, 피부암을 일으켰다. 원래 캡사이신은 TRPV1 단백질이라는 수용체를 통해 진통제로 이용돼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서 피부암 발생과정에서 캡사이신이 EGFR 단백질과 결합돼 암 발생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캡사이신을 다량으로 주입했을 경우 암 억제 물질인 TRPV1 수용체의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캡사이신이 EGFR 단백질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확인됐다. TRPV1 단백질 같은 암 억제 물질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의 경우 캡사이신을 다량 섭취했을 때 암 발생이 훨씬 많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없이 캡사이신만 단독으로 주입했을 때는 암이 발생하지 않았다. 캡사이신이 암 발생을 촉진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발암물질은 아니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만 보고 고추 섭취를 피할 일은 아니지만 과도하게 매운 고추를 많이 먹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전했다.

비록 캡사이신이 암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캡사이신의 장점이나 고추 자체의 영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캡사이신은 여전히 몸속 지방을 분해하고, 장내 살균 작용을 하며, 식욕도 좋게 한다. 젖산균의 발육을 도와 김치에도 이용된다.

고추에는 비타민 C를 비롯해 비타민 A, 비타민 P(바이오 플라보노이드) 같은 각종 비타민도 풍부하다. 풋고추 하나에 들어 있는 비타민C는 귤의 2배, 사과의 30배 정도 되는데, 비타민C는 피로회복과 괴혈병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또 비타민A는 호흡기 계통에 대한 감염에 저항력을 높이고, 야맹증과 냉방병을 예방하는 데 좋다. 비타민P는 노화를 막는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며, 비타민C가 파괴되지 않도록 돕는다.

결국 캡사이신도 항상 위험한 것만은 아니고, 고추 자체에도 유익한 영양성분이 많다. ‘캡사이신이 암을 촉진한다’는 결과 한 줄이 아니라 이런 결과가 나온 맥락을 살펴야 한다. 고추뿐 아니라 다른 천연물도 각각의 성분이 특정 질병에 대해 각각 다른 작용을 해 기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새겨야 할 것은 천연물의 성분을 이용한 기능성식품이나 화장품, 신약 연구에 있어서 각 성분이 다른 질병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살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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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정원에서 리네아의 이야기 1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지음, 레나 안데르손 그림, 김석희 옮김 / 미래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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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도 지나치게 만들만큼 보고 싶었다는 모네의 그림. 리네아에겐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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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요일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됐다. 무척 바빴다. 일도 바빴지만 개인적인 일로 마음이 허해서 무엇도 일이 잡히질 않았다. 이럴 때는 오히려 바빴던 게 더 약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월요일에는 직원 산행대회가 있었는데 중간에 통행제한을 하고 있었다. 사체가 발견되어 현장 검증 중이라나. 5년 전에 묻은 사체가 뒤늦게 발견되었단다. 작년에도 우린 같은 코스로 움직였는데 그때 우린 시체 위 어디를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비가 많이 와서 사체가 발견된 것일까? 누군지 불쌍하다. 

2. 인간인지라 실수가 많은 건 인지상정. 고사 본부에 앉아 있다보면 다양한 사례가 잡힌다. 우린 1교시에 3학년이, 2교시에 1학년이, 3교시에 2학년이 시험을 보는데 1교시 3학년 시험을 볼 때였다. 같은 보기가 두 개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1,3번 답이 같고 2,4번 답이 같다. 얼씨구! 이런 경우는 드문데. 편집교사를 호출했는데 아직 출근 전이란다. 헉... 그래서 좀 바쁘게 뛰었다. 아무튼 수습은 했다.  

3. 다음 날, 또 다른 신고가 들어왔다. 보기가 1.2.3.4.4.5로 여섯 개란다. 이것도 꽤 드문 케이스! 게다가 문제는 답이 4번.ㅎㅎㅎ 역시 편집교사를 찾았는데 송이 따러(드시러?) 부 전체가 지방으로 이동 중이란다. 헉! 그래서 같은 과 다른 교사를 찾았는데 이미 시험 감독 중. 그래서 또, 바쁘게 뛰어야 했다.   

4. 1학년 학생 하나가 얼마 전 가사 실습 중에 접시를 깼는데 오른손 손가락 인대가 나갔다. 그래서 시험을 치르기 힘들다 해서 도서관에서 혼자 시험을 보게 했다. 추가 시간 10분 더해 주고. 그런데 도서관 선생님이 부서 협의회 나갔을 때 감독 교사가 없어서 방송실에서 보게 했다. 시험 대기 선생님이 대신 감독을 했는데 대뜸 들어오자마자 자기네 부서(거긴 5층)에 가서 시험을 보면 안 되겠냐는 거다.(장난하나...-_-;;;) 아무튼, 아이를 맡기고 나왔는데, 그 후 시험이 종료되고서 방송이 나오질 않아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알고 보니 감독 들어가신 샘이 애 시험 보는 동안 컴퓨터를 사용했는데 그 바람에 셋팅해 놓은 게 꺼져서 방송이 전혀 나가지 않은 거다. 다행히 듣기 과목은 아니었지만 여튼....;;; 근데 이게 다 인간이니까 나올 수 있는 실수 맞던가? ㅡ.ㅡ;;;; 

5. 수요일에는 부서 회식이 잡혀 있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모였는데 울 감님이 친히 와인을 준비하신 거다. 그래서 와인 잔을 빌리고(대여료 1만원!) 직원을 불러서 와인을 따 달라고 내밀었는데 이 와인은 물병처럼 돌리면 되는 와인이었다. 게다가 큼직한 글씨로 '가.정.용'이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인원도 많아서 병아리 눈물 만큼만 받아 마시는데 울 모두 챙피챙피...;;; 게다가 맛없..;;;; 

6. 어제는 과별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그러니까 시험 기간 중에는 전체 모임, 부서별 모임, 과별 모임, 동호회 모임, 학년 모임 등등의 일정이 잡혀 있는데 어제는 우리 과 모임이 있던 날. 5명 중에서 두 분이 자녀 운동회로 불참, 국어과에서 한 분이 더 참여하셔서 넷이서 움직였다. 원래는 국립중앙박물관 '황남대총'을 보러가려고 했는데 거기 가고 싶어했던 두 분이 빠져서 연행로로 대체했다. 조선 시대 사신들이 지나가던 그 길을 그대로 밟는 것이다. 광화문을 출발해서 서대문 찍고 홍제 지나서 지축에서 밥을 먹었다. 메뉴는 아구찜. 급식에서는 늘 콩나물밖에 없는 아구찜을 먹어서 아구가 이렇게 살이 많은 고기라는 걸 처음 알았다! 파주에는 생각 이상으로 볼거리가 참 많았다. 우리는 약간 노선을 벗어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용미리 마애 석불. 고려시대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석불 처음 보았다. 관촉사 은진미륵불 크기와 비슷할까. 거의 18미터에 육박한다. 남자와 여자일 거라는데 정겹다. (클릭하면 커집니다.) 

파주 삼릉(공릉, 순릉, 영릉)도 갔는데 시간 관계상 공릉만 들렀다. ㅎㅎ 

율곡제를 한다고 해서 자운 서원까지 볼 줄 알았는데 시민 회관이 금요일이고, 율곡제는 토요일이라고 해서 못 들어가게 했다. 6시 마감이라는데 우리가 20분 전에 도착했으니 20분 동안이라도 보겠다니까 또 막는 거다.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그래서 6시까진 나오겠다고 하고 들어갔다. 자운서원은 못 보고 율곡 이이의 가족 묘만 보고 왔다.  

7. 파주에 오면 꼭 들르라는 또 다른 감님의 당부가 떠올라, 우리는 헤이리로 방향을 잡았다. 헤이리 예술 마을에 집을 지었는데, 이게 작품인 거다. 유명 작가의 건축물인데 덕분에 여기저기서 장소 섭외가 들어오는 지경.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 집'도 여기서 찍었다 한다. 집에 와서 다시 찾아보니 정말 그 집이다. 가구며 인테리어도 손 안 대고 그대로 찍었다. 손댈 것 없는 작품이란 소리지... 

 

근처 식당에서 곤드레 덮밥을 먹었는데 뒤쪽으로 이주헌씨가 앉아 있었다고 감님이 나중에 말씀해 주셨다. 얼굴을 못 봤네. 아까비...  

파주에서의 긴 여정을 마치고 집에 오니 거의 12시다.(수영 못 갔다.ㅜ.ㅜ) 덕분에 슈퍼스타 K2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짐작한 결과가 딱 들어맞았다. 아마도 맞춘 사람 많을 거다.. -_-;;;

8. 아침에 건강 검진을 받았다. 기본 검사라 별 다른 건 없었다. 단백뇨가 있다는데 피검사 결과가 나와야 확실히 알 것 같고... 시력 검사 결과 양쪽 다 2.0이 나왔다. 라섹 수술하고 2년이 조금 못 되었는데 화들짝! 이렇게 좋다니! 

9. 갑자기 시간이 생긴 친구가 서울로 놀러왔다. 명동에서 만나 밥 먹고 차 마시고 좀 걸었다. 덕수궁에 가려고 지하보도를 다 건넜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입장료가 있을 줄 알았는데 기쁘게도 무료였다. 1층에서 황남대총 전시회를 보았다. 경주에서 발견된 가장 큰 무덤인데 남분이 먼저 세워지고 나중에 북분을 연결해서 세웠다. 남쪽이 왕의 무덤이고 북쪽이 왕비의 무덤이다. 정확히 어느 왕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부장품이 대단했다. 역시 신라는 황금의 나라! 좀 더 신분이 높았던 왕비의 무덤이 높이도 더 높고 부장품도 훨씬 훌륭했다. 왕비 쪽이 금이면 왕 족은 금동... 뭐 이런 분위기.ㅎㅎ 해설까지 곁들여서 설명을 들으면 더 좋을 것이다. 다른 전시관에 무덤도 재현해 놓았다고 하는데 저질 체력의 나는 여기만 보고는 힘들어서 나와버렸다.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 10월 말까지 전시다. 

 

입구에 금관 쓰고 사진 찍을 수 있게 해뒀는데 저게 생각보다 무겁다. 저 주춤한 자세를 보라지...

10. 오늘 친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무척 우울했을 것이다. 언제나 큰 위로를 주는 친구는 이번에도 무너져버린 내 마음을 잘 다독여 주었다. 아무 것도 현실을 바꿀 수 없지만, 마음 한줌의 보탬이 설움을 달래 주었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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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0-09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여왕님 같으시네요^^ .근데 저 금관은 어느 시대것인가요?

마노아 2010-10-10 14:43   좋아요 0 | URL
신라요~ 황남대총이 경주에 있는 신라 무덤이거든요.
거기 입구에 포토 코너에 금관이 있었어요.^^

순오기 2010-10-0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일상은 다행이 마노아님 개인의 파란만장은 없군요.^^
한가지 짐작되는 거 빼고는... 라섹 수술 효과가 좋은데 난시는 어렵겠죠?
밤 12에 돌아왔다니 일정이 길었네요~~~~ 황남대총 전시 궁금하고요.

마노아 2010-10-10 14:44   좋아요 0 | URL
사이사이 몇 개 있었는데 다 적을 수가 없어서 뺐어요.
웃음코드가 있으면 차라리 쓰겠는데 너무 화나고 짜증나는 일들은 가끔 쓰기도 힘들 때가 있어요.^^
저는 난시가 있긴 했는데 심하지는 않았어요.
수술은 자신의 눈 상태를 먼저 검사 받고서야 가능 여부를 알수 있으니까 난시가 있더라도 마음이 있다면 일단 검사를 받는 게 좋아요.^^

2010-10-10 0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0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10-10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마노아님 더 젊어 지셨어요. 나이를 거꾸로 먹는게야.....
근데 감님은 대체 누굴 지칭하시는건지 아 궁금해...장님이 아니고요?

마노아 2010-10-10 18:21   좋아요 0 | URL
장님이 아니고 감님이요.ㅋㅋㅋ
핸드폰으로 찍은 거라서 화면 상으로 일그러져 보였는데 컴으로 옮겨 보니까 그래도 비교적 잘 나온 것 같았어요. ㅎㅎㅎ

2010-10-10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0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3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0-10-1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대학생같은 미모의 선생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 (새삼스럽게 인사 ;;;)
얼마전에 저도 건강검진 받고 1.5/1.0 나왔다고 자랑질했었는데 2.0이시라니, 털푸덕 ^^;


마노아 2010-10-11 14:17   좋아요 0 | URL
그날 컨디션이 괜찮았던 건지 계속 유지가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평생 가져본 적 없는 좋은 시력이어서 저도 화들짝 놀랐답니다.^^;;;

무스탕 2010-10-1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에 정성이 안과에 갔을때 혼자 시력측정판을 보고 측정을 해 봤더니 여전히 1.0은 나오더군요.
근데요, 이게 노안이랑 별건지 스스로 느끼기엔 분명 잔글씨 안보이고 책을 읽을때도 예전같지 않은데 어째 시력엔 변화가 없는건지.. --a 하여간 아직은 괜찮구나.. 혼자 토닥였다지요 ^^
석불이 정말 웅장해요. 저런건 직접 가서 봐야하는데 말이에요. 용미리라니 그닥 멀지 않으니 꼭 기회를 만들겠어요!
줄줄이 달린 댓글대로 어째 날로 젊어지십니까?

마노아 2010-10-11 14:22   좋아요 0 | URL
여전히 시력 좋으세요. 눈도 건강한 무스탕님! ^^
아하핫, 동안계의 지존 무스탕님께 그런 말을 듣다니 쑥스럽습니다. ^^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웅장한 석불이 있으니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좋겠어요.
찾아보면 우리 주변에 이런 곳들이 많이 있겠지요.
그런 곳들 잘 찾아서 다나ㅣ고 싶어요. ㅎㅎㅎ

자하(紫霞) 2010-10-12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의 요즘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가.정.용 와인에서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걸요~

마노아 2010-10-12 12:43   좋아요 0 | URL
술도 마시기 전에 미리 화끈! 했답니다. ㅎㅎㅎ

sslmo 2010-10-1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학교 선생님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었어요?
전 저 사진보고 학생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금관을 쓰셨어도,여왕이라고는 몬 불러드려요.
공주마마 같아요,이쁘셔요~^^

마노아 2010-10-13 20:22   좋아요 0 | URL
핸드폰은 셀카가 주기능이고 통화가 부기능 같아요.ㅎㅎㅎ
핸드폰으로 찍으면 뽀샤시하게 나와요. 아하하핫^^ㅎㅎㅎ

2010-10-14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4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9
김준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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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만나기 힘든 재밌는 책이었다. 포복절도하는 그런 웃음과는 종류가 다르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터뜨렸겠구나... 생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목에서 이미 알렸듯이 이 책은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이다. 책장을 열면 일단 컬러풀한 춘화 몇장이 독자를 기다린다. 수위는 다소 낮지만(좀 더 높았다면 모두 랩핑되어 출간될 운명이었다 한다.) 준비 없이 맞닥뜨리면 움찔! 놀라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제목도 뜯어보면 발그레~ 해질 수 있으니 이런 때를 위해서 북커버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맨 껍데기 그대로 보길 바란다. 이제 이런 책을 본다고 부끄러워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게다가 표지가 제법 잘 빠졌다. 문학동네 문학전집의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고전문학전집도 비슷한 컨셉으로 간 듯하다. 내게는 좋은 선택이다.  

이 책에는 모두 11권의 패설집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만 추려서 담아냈다. 당연히 시대는 조선 후기의 작품들이다. 정확한 연대와 작가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략적인 유추는 가능했다. 이야기들은 대체로 짧았고, 원문을 같이 실었으며 한자어의 해석을 각주로 달았다. 무려 650쪽이 넘는 긴 책이지만 읽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편이다. 각 잡고서 진중하게 읽을 게 아니라 편안하게 들춰보면서 쿡쿡쿡 웃으면 이 책에 딱 어울리는 반응이라 하겠다.  

읽으면서 주로 '데카메론'을 떠올리게 했다. 흑사병과 같은 극단적인 배경도 없고, 한정된 공간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도 아니건만, 권위 부리는 양반들과 속세에 관심없어 보이는 승려들을 조롱과 해학의 대상으로 삼은 탓일 게다. 수도사들이 승려로 대체된 그런 느낌이다. 귀족들이 양반으로 뒤바뀌고.  

그런 이야기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하나의 탈출구 역할을 해줬을 거라고 짐작하면 꽤 통쾌하기도 한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시대적인 한계 때문인지 여전히 권위의식이 넘치는 것은 쓴웃음을 짓게 했다. 이를 테면 양반 하나가 상놈을 괴롭혀서 그가 이야기에 빗대어 양반을 조롱한 것에 대해 패설집을 엮은 이의 촌평이 이렇다.  

양반이라는 세력만 믿고 상놈을 농락하다가 이런 능욕을 당했으니 후회해도 할 수 없지. 다시 말해보자. 비록 복수심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어찌 이다지도 억세고 모진가. 장비의 성난 모습을 가탁하여 마초에게 할 욕설을 곧바로 양반에게 퍼부었구나. 표독은 극에 달했고, 보복은 너무 심하구나. -135쪽 

가재는 게편, 초록은 동색인 꼴이다. 본문에서 상민이 조롱하는 대목은 사실 그리 심하지도 않건만.  

뿐아니라, 똑같이 책임이 있어도 여자 쪽에 좀 더 박하다는 느낌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싸움에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숙종이건만 300년 이상을 '암탉'의 탓으로 돌리고도 굳이 바로잡지 않는 관행의 느낌 말이다. 다음 기록을 보자.  

손은 그녀를 때렸고 발은 그녀를 찼고 양물은 그녀를 찔렀으니, 미워하려면 모두 미워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지금 이 여인은 그중 때리고 찬 것만을 미워하고, 자신을 찌른 것에는 오히려 기뻐했다. (...) 만약 찌르는 것이 은혜가 되어 그렇게 한 것이라면 바늘이나 송곳과 같은 것들도 은혜라 여기며 기뻐할 것인가? 손과 발로써 한 것은 미워했고, 양물로써 한 것은 사랑하였으니 이 여인의 애증의 편벽됨이 심하다고 하겠구나. -146쪽 

바늘과 송곳에 비교하다니, 이제 가당키나 한가. 댁이야말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꼬집어 주고 싶다. 흥! 

<성수패설>에서 '욕됨을 무릅쓰고 색을 탐하다'에서는 상놈의 아내를 탐한 양반과, 그 양반에게 욕설을 퍼부은 자에 관한 재판이 나온다. 지아비가 있는 여인에게 입을 맞춘 것은 어떤 죄인지 대전통편에 쓰여 있지 않고, 양반을 모욕한 죄는 법전에 쓰여 있으니 세 차례 형장으로 때려 먼 곳으로 유배를 보내야 한단다. 결국 파렴치한 양반은 상놈의 목숨을 손아귀에 쥐고 자신의 욕정을 채운다. 이런 대목은 몹시 울컥하게 만드는 부분인데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대전통편은 18세기 말 정조 때에 편찬된 법전인데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는 시민 혁명이 일어났다. 조선의 신분 해방은 그보다 한 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다. 이 이야기가 조선 '후기'로 한정되어 있는 것을 고려할 때, 그보다 더 앞선 세대의 이야기라면 부조리와 불합리함은 더 심하지 않을까? 혹은 임진왜란 이전이라면 오히려 사회 분위기가 덜 경직되어 있을까? 역자의 바람대로 다른 세대의 이야기 묶음도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 각자 다른 시대 분위기를 엿보고 싶다.  

비슷한 시기에 떠돌던 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다른 패설집에 섞여 들어가기 쉬웠기 때문에 비슷하거나 거의 똑같은 이야기도 꽤 자주 등장한다. 중국에서 전해진 이야기 몇 편은 이미 알고 있던 것도 있었다. 중국 배경의 그 이야기들을 내가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영화 '음란서생'에서 인기 작가로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은 양반이었다. 양반을 조롱거리로 삼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엮고 전파시킨 인물들 중에는 그들 지식인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또 구한말에 엮여진 책들은 암울한 시대에 민중들의 애환을 달래줄 해우소의 역할로서 기꺼이 글재주를 쏟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기꺼이 그런 작가들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고전문학전집'이란 타이틀은 자못 무겁기도 하고 어려울 것도 같은 느낌이지만 막상 접해 보면 몹시 대중적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아직 '한중록'과 이 책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 두 권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다른 책들에 대한 기대도 크다. 깊어가는 가을에 고전과의 만남이라니, 제법 운치있지 않은가? 게다가 '성 소화 선집'이라니, 어쩐지 반항하는 기분도 들어 통쾌하기까지 하다. 은밀할 것 같은 이야기들, 시원스럽게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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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08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미있겠는데요?
이거이거,, 이 책도 장바구니에 들어가야하나? ㅠㅠ

마노아 2010-10-09 08:23   좋아요 0 | URL
11월 30일에 마녀고양이님 장바구니가 어찌될지 궁금해요. 거기 총 몇 권 얼마치의 책이 담겨있는지 맞추는 퀴즈라도 내야겠어요.^^ㅎㅎㅎ

이매지 2010-10-08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 후기였으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ㅎㅎ
그나저나 예나 지금이나 여자에 대해서는 참 박한 것 같아요~

마노아 2010-10-09 08:25   좋아요 0 | URL
고려였으면 더 화끈한 얘기가 나왔을 것 같아요.^^
거기선 여자에게 좀 덜 박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ㅎㅎ

2010-10-10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9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9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0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0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2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를 워낙 재밌게 읽어서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에 대한 기대가 자못 컸다. 워낙 전작에서 받은 충격이 컸기 때문에 이 작품에 깃들어 있는 여러 상징에 대한 놀라움의 크기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서양 문명에 대한 이해가 의미 심장하게 읽혔다.  

원작 자체가 길지 않기 때문에 영어판과 독일어판, 그리고 우리말 번역을 다 싣고도 대부분은 문장 속의 숨은 의미에 대한 해석에 할애되었다. 그런 까닭에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늘어지는 기분은 드는 편이다. 저자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워낙 많다 보니 가지치기를 꽤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로 '콩쥐팥쥐'가 있듯이 이 소녀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왔다. 그 옛 이야기를 먼저 프랑스의 샤를 페로가 수집했고, 그로부터 100여 년뒤 그림 형제가 다시 손을 보았다. '신데렐라'라는 이름은 원작 어디에도 나오지 않지만 우리에겐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다. 까닭은 영어 발음 탓이다. 프랑스어 '쌍드리옹'의 뜻이 '그을음'인데, 이걸 영어로 번역할 때 '씬데르스'라고 썼고, 그게 '씬데뤨라'가 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부드러운 발음의 '신데렐라'로 둔갑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이 기막힌 운명의 주인공 여아의 이름은 '재투성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단순히 발음만 유사한 '신데렐라'라고 부르면 그 의미에 담겨 있는 여러 상징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갖고 있는 슬픔과 역경, 고난의 크기 같은 것 말이다. 다만 우리가 그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연상시키는 것이지, 처음 그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으로서는 신데렐라에게서 '재투성이'의 느낌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이 책의 제목이 바로 나온다. 

샤를 페로 작품과 그림 형제의 작품은 스타일이 조금 다르다. 그림 형제 작품에는 '무도회'란 낱말이 나오지 않고 '혼인잔치'가 대신한다.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작품은 샤를 페로 이야기인데 이 책은 그림 형제 작품을 최종적으로 따르고 있다. 구박받던 아이가 홀로 슬픔을 달래었던 곳은 어머니의 무덤 가였다. 의붓 언니들이 옷이며 진주, 보석 등을 원할 때, 홀로 어린 가지를 원했던 재투성이 아이. 아이는 그 나뭇가지를 어머니의 무덤 위에 심었고(이를 '무덤가'로 번역한 우리나라 작품을 저자는 성토한다), 자신의 눈물로 나무를 키웠다. 그리고 날마다 세 번씩 나무 밑에 가서 울고 기도했다. 그때마다 새하얀 새 한마리가 그 나무 위로 날아왔고, 소녀가 바라는 말을 할 때마다, 새는 소녀에게 그것을 떨어뜨려주곤 했다. 

그녀는 의붓 언니들과는 영 다른 것을 가리켰다. “집으로 돌아오실 때 모자에 부딪히는 어린 나뭇가지.”
재투성이와 두 의붓 언니는 이렇게 달랐다. 의붓 언니들이 저자에서 파는 물건을 바란 데 반해, 재투성이는 자연이 키운 것을 바랐다. 그것도 아버지 모자에 부딪히는 것을. 바라는 게 무엇인가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의붓 언니와 재투성이는 바라는 게 달랐기에 사는 것도 달랐다. 그러니 삶을 갈무리한 것도 다를 터. – 113쪽    

왕의 아들('왕자'가 아니라 굳이 '왕의 아들'이라고 꼬박꼬박 명시한다)을 위한 혼인잔치에 가기 위한 준비물도 바로 그 나무 위 새에게서 얻어냈다. 첫날의 잔치에선 금과 은으로 된 옷과 비단으로 수놓은 신발을 내려주었고, 두번째 날은 전날보다 더 당당해 보이는 옷을, 그리고 하일라이트가 될 마지막 날에는 '빛나는' 옷을 입었다. 그리고 이때 신은 신발은 온통 금으로 되어 있는 신발이었다. (요정 할머니나 유리 구두 등은 샤를 페로 원작 버전에서 만날 수 있다.) 

온통 금으로 된 옷과 신발이라니, 기분에는 새하얀 드레스와 유리 구두보다 뭔가 격조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건만, 저자는 '황금'에 대한 서양인들의 집착(?)이 남달랐음을 강조한다.  

우리 문명도 금을 귀하고 특별한 것으로 다루긴 했지만, 서양인들만큼은 아니었던 듯하다. 황금률, 황금시대란 말에서 보듯 그들은 가장 좋은 것, 아니 이상적인 것을 황금으로 표현했다. 심지어는 이러저러한 물질을 금으로 바꾸는 일, 즉 잡스런 성질을 바꾸는 일에, 숱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기꺼이 바쳤던 게 그들의 문명이다. (...)덧없고 허망한 이 세상에서, 변치 않고 언제나 제 꼴을 지켜가는 모습을 그들은 금에서 본 것이다. 또한 ‘금’의 독일 말 골드가 ‘빛나다, 반짝이다’에서 왔으니, 그들은 금과 빛을 한 동아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빛이 나오는 바탕인 하늘을 나는 새가, 금 옷과 금 신발을 재투성이에게 내려준 점이 이 말에 힘을 실어준다. – 105쪽


우리에게 흔히 '신데렐라'는 '콤플렉스'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되면서 왕자님 하나 잘 만나서 인생역전을 시키는 사람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원작 속에서 재투성이 아이는 의붓 언니들보다 미모롭지도 않았거니와, 고난과 역경을 감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한몫 더해준다. 이 부분은 좀 길지만 인용해 보겠다. 

‘재’는 사람을 착잡하게 한다. 그 색깔이 그렇고, 촉감이 그렇다. 잿빛은 맥아리가 없다. 출렁임도 없고 잔잔한 흐름도 없다. 그렇다고 검은 색과 닮지도 않았다. 검은 색은 모든 것을 무화하여 ‘없음’을 오히려 세게 내세운다. ‘없음’을 통해 ‘있음’을 알리는, 기막힌 역설을 검은색은 알고 있다. 잿빛은 다른 색을 고스란히 빨아들이지도 못한다. 튕긴다는 점에서 잿빛은 있다. 그렇다고 다른 색에 힘 있게 맞서지도 못한다. 없다고 할 수밖에. 있는 듯 없는 듯, 잿빛의 꼴이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그곳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게 잿빛은, 눈빛을 잃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있는 늙은이다. – 119쪽

‘재의 수요일’은 가톨릭, 루터교, 성공회가 다 치르는 절기다. 지금은 진탕 먹고 노는 날로 변질되었지만, 본래는 육적인 것을 다 끊는다는 뜻을 가진 카니발(사육제) 다음 날, 즉 예수님이 했던 광야에서의 40일간 금식을 기억하기 위한 사순절의 맨 첫날이 ‘재의 수요일’이다. 이 날 크리스천은 머리에 재를 바른다. 두덴에서 나온 말 뿌리 사전에 따르면, ‘재는 덧없음, 슬픔 그리고 속죄의 상징이다’고 나와 있다. 또한 독일어에 ‘재를 머리에 뿌린다’는 굳어진 말(숙어)이 있는데, 매우 후회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재’의 이런 상징성은 서양 문명의 받침돌들인 그리스·이스라엘·로마에 다 들어 있다.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 시대부터 몸에 재를 뿌리거나 재 위에 앉음으로써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을 드러내 보였다. 로마인들은 새해를 정갈하게 시작하려고 새해 첫날, 재로 목욕을 했다. – 122쪽

잿빛은 사실 우리 문화가 천 년도 넘게 품었던 색이고, 지금도 지긋이 품고 있는 색이다. 불교의 입김 속에서 그랬고, 장자의 날개 속에서 그랬다. 스님들은 잿빛 옷을 걸치고 살아왔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그분들은 잿빛 옷을 벗지 않는다. 불기 없는 재, 탈 것 없는 재로 살다가, 드디어 몸조차 재가 되어 회신멸지한다. – 133쪽

재투성이가 키운 개암나무는 순전히 개인적인 나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독일 민족을 이루고 있는 게르만족과 켈트족에게 민속적인 의미를 갖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 사전에 보면, 개암나무의 문화적인 결이 잘 나와 있는데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개암나무가 액막이 특성을 가진 것으로 여겼다. 그것으로 뱀이나 마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재투성이가 개암 나뭇가지를 어머니 무덤 위에 심은 것이다. 또한 로마에서는 휴전 협정이나 평화 협정을 논의할 때 이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로마, 영국, 독일에서 이 나무는 행운과 풍성한 열매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신부는 결혼식 때 개암 열매를 담은 바구니를 선물 받았다. – 154쪽  


이렇게 풀어내 보니 재투성이 이야기는 보통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말이 '동화'라고 번역하는 탓에, 또 너무나 오래 그런 의미가 관행으로 되어버린 탓에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전락해 버렸지만, 원어에서의 메르헨은 그저 작은 이야기일 뿐, 동화도 민담도 아닌 것이다. 물론, 어리기만 한 아이들에게 서양의 문명과 그 원형에 대해서 떠드는 건 무척 곤란하다.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원작을 무분별하게 훼손하는 것은 당연히 곤란하다. 바른 번역과 해석을 바탕으로 하되 어렵지 않은 이야기로 풀어주어야 한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이야기의 원류를 찾아보는 재미를 주는 것도 꽤 소중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청소년 이상의 사람에게 좋은 길잡이 책이 될 것이다. '콤플렉스'라는 단어로는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어느 소녀의 진실된 이야기와 진정성에 마음을 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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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08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갖고 싶은 욕망이... 그런데
집에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가 1-3권까지 세권을 다 사놓고, 아직 읽지 못 했다는 사실이 생각나버렸어요.

오래 전해진 이야기일수록 생각거리가 많아지나 봅니다.

마노아 2010-10-09 08:29   좋아요 0 | URL
그 책에 대한 언급도 살~짝 나오긴 합니다.^^
'원전'을 읽는 재미가 꽤 컸어요. 원서로 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갈망도 커지지요.
그치만 저는 훌륭한 번역을 기다리겠어요.^^ㅎㅎㅎ

비로그인 2010-10-0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이야기읽라 짐작했어요.
백설공주-가 아니라 아 뭐지, 눈처럼 흰 아이!-에 이어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었어요. 난 바다에게 이 책을 읽어주곤 해요.

마노아 2010-10-09 08:29   좋아요 0 | URL
헤에, Jude님의 시선을 끌줄 알았어요. 바다는 이런 이야기도 듣는군요. 바다가 마구 부러워요! 제대로 된 조기교육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