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녹이는 ‘탄소 검댕’ 아세요? [제 1232 호/2010-10-18]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하이디. 그녀는 오늘 할아버지와 목동 피터와 함께 소풍을 떠났다. “졸졸졸졸 흐르는 요롤 레히디요 레이디효 레히디히리~” 하이디가 부르는 흥겨운 요들송 박자에 맞춰 걷다 보니 어느덧 산 정상에 닿았다. 저 아래 작게 보이는 마을과 꼬불꼬불한 강줄기가 하이디의 눈에 들어왔다. 하이디는 자신이 정말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해졌다.

신이 나서 재잘거리는 하이디나 피터와 달리 할아버지는 묵묵히 걷기만 한다. 조금만 올라가면 빙하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마디 던져준 게 고작이다. 할아버지는 원래 무뚝뚝한 사람이니까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이렇게 함께 소풍을 나서준 것만 해도 어딘가.

“하이디, 피터. 이제 다 올라왔구나. 저기 보이는 게 빙하란다.”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눈을 돌린 하이디와 피터는 깜짝 놀랐다. 하얗게 반짝이는 빙하가 있어야 할 자리에 회색의 거무튀튀한 바위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할아버지. 빙하가 어디에 있다고 그러세요? 저건 그냥 바위처럼 보이는데요?”
“네! 저기 보이는 건 회색이잖아요. 빙하는 원래 흰색 아니에요? 그리고 원래 빙하는 더 커다란 거 아니에요? 생각했던 것보다 좀 작은데…. 그냥 바위죠?”

아이들이 실망한 표정을 보였지만 할아버지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다. 마치 득도한 노인처럼 빙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던 그가 입을 떼고 말을 시작했다.

“나 어릴 땐 저것보다 크긴 했지. 산 중턱까지 빙하가 내려와 있었으니까 말이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빙하가 있는 풍경이 참 멋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너희 말처럼 회색의 빙하만 남았구나. 빙하 위에 거무튀튀한 찌꺼기들이 날아와 앉은 탓이지.”
“거무튀튀한 찌꺼기요? 그게 뭔데요?”

하이디는 과묵한 할아버지가 말을 시작한 것이 반가웠다. 혹시라도 또 조용해질세라 질문을 재촉한다.

주변에서 날아온 먼지와 나무, 석탄, 석유를 태울 때 나오는 오염물질들이지. 이런 찌꺼기(검댕, black carbon)가 빙하에 들러붙으면 열을 반사하지 않고 오히려 흡수하게 된단다. 그러면 빙하가 빨리 녹게 되지. 여기 알프스뿐 아니라 그린란드와 히말라야 산맥에서도 이런 찌꺼기들이 빙하를 점점 줄어들게 한단다.
“아~ 그럼 빙하가 시커먼 바위처럼 보이는 게 찌꺼기들이 쌓여서 그랬던 거군요. 빙하가 바위처럼 보일 정도니깐 이런 찌꺼기가 엄청 많이 날아오나 봐요. 주변에 공장도 없는 것 같은데. 다 어디서 온 거지?”

피터가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평소에 염소 말고는 관심도 없더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나 보다.

해마다 바람에 날려온 소량의 찌꺼기들이 빙하 위에 쌓이고 그 위에 눈이 쌓이는 일들이 반복된단다. 여름이 되면 눈과 얼음은 녹아버리지만, 찌꺼기들은 녹지 않고 계속 쌓이게 되지. 찌꺼기들로 이뤄진 층이 두꺼워지는 거야. 그런 현상이 반복되다 보니 빙하에 회색 천을 씌운 것처럼 된 거란다. 그래서 너희들이 처음에 빙하를 보고 바위라고 생각한 거야.”
“그렇게 빙하 위에 자꾸 찌꺼기가 쌓이면 빙하가 더 빨리 녹겠네요. 듣자 하니 지구가 자꾸 더워진다고 하던데…. 앞으로는 알프스에서 빙하를 못 볼 수도 있어요?”

울상을 짓는 하이디. 그녀를 향해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인다. 그리고 조금 전의 초연한 표정으로 하이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빙하가 사라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지구는 과거 100만 년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했었거든. 지구 환경이 변하면 우리 인간들은 좀 혼란스럽겠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잖니. 마치 이 할애비가 피터처럼 꼬마였다가 어른이 되고 늙은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빙하가 녹아버리는 건 싫어요. 염소 떼를 몰다 고개를 들었을 때 멀리 보이는 하얀 산봉우리가 얼마나 예쁜데요!”
“지금처럼 거무튀튀한 빙하 말고 하얗게 반짝이는 빙하가 되면 덜 녹을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할아버지가 좋은 말로 타일러도 서운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하이디와 피터. 빙하가 녹지 않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나선다.

“음. 페루 안데스 산맥에선 빙하가 녹는 속도를 늦추려는 시도를 하긴 한다더구나. 그런데 그게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서….”
“와! 정말요? 어떤 일인데요?”
산 정상을 흰색으로 칠하는 일이란다. 흰색은 빛과 열을 반사하니까 산을 흰색으로 칠하면 온도도 낮아지고 빙하도 더 천천히 녹게 할 수 있다는 원리지. 그러면 결국에는 사라져가는 빙하를 복원할 수도 있다는 거고. 세계은행은 이 생각에 20만 달러를 지원했고, 페루 남부 아야코초 지역에 안데스 산맥 3개 정상을 중심으로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하이디는 신이 났다. 자신도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피터가 말을 가로챘다.

“산 정상을 흰색으로요?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 근데 흰색 페인트로 산을 색칠하려면 힘이 많이 들겠죠?”
엄밀하게 말하면 흰색으로 색칠을 하는 게 아니라 흰색의 석회수를 뿌리는 것이란다. 물론 이 방법이 지구 온난화의 완벽한 대책이 될 수는 없겠지. 이 할애비 생각엔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빙하가 녹는 걸 안타까워하는 것도 사실 우리 인간의 관점이니까 말이다.”

할아버지가 말을 마치고 산 아래 풍경을 내려다봤다. 하이디와 피터도 할아버지를 따라 산 아래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과 초목을 쳐다본다. 할아버지가 ‘자연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풍경 속에 있었다. 하이디와 피터는 빙하가 모두 녹아버린 자연과도 친하게 지내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시 요들송을 불렀다. 이 모습을 지켜 본 할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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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장바구니 이벤트,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어떤 책을 담아볼까 출판사 이름으로 정렬을 해보았는데, 일단 표지 때문에 흔들린 책들이 많았다. 감각적인 표지가 구매에 미치는 영향, 무시 못할 게다. ^^ 

  

 

 

 

 

 

 

마음 같아서는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으로 쫙 깔고 싶었다. 책장에 곶혔을 때의 포스도 그렇거니와 앞표지의 블랙과 컬러풀함의 조화가 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제인 오스틴의 '설득'은 턱선과 목의 일부만 보여줬을 뿐인데도 관능미가 주르륵 흐른다. '오만과 편견'을 읽은 건 참으로 오래 전인 중학교 시절. 여름 방학이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가 책을 덮었을 땐 날이 샜다는 걸 알고 당황해 했었다. 얼라, 벌써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제인 오스틴을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더블린 사람들도 꽤 오래도록 내 보관함에 있었다. 고백하자면, 다른 출판사의 책이었는데 표지 때문에 갈아탄 경우다. 나도 내가 이렇게 표지를 밝힐 줄 몰랐다. ㅎㅎㅎ 

순교자는 제목이 부담스럽긴 한데 한국계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재미작가 김은국의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무시 못하겠다. '순교자'라는 제목이 부담스러운 건 내가 가스펠 '어찌하여야'를 부담스러워하는 거랑 똑같은 거다. 그렇지만 책 소개를 조금만 읽어보면 이런 걱정은 기우라는 걸 알 수 있다. ^^ 

전부다 세계문학전집으로 골라서 시커먼 포스를 풍기고 싶었지만 산뜻한 표지의 책들도 눈길을 확 잡아끈다. '브리다',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악마와 미스프랭, 다섯 개의 산, 11분까지가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 넘버 원은 피에트라~ 지난 해 읽은 '승자는 혼자다'는 읽어서 나쁘지 않았지만 아주 좋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버릴 만큼 마음에서 멀어지지도 않았다. 신간이 나오면 여전히 관심이 간다. 게다가 저 표지! 누가 떠올랐나 하면 '로빈후드'에서 여자 주인공. 반지의 제왕 엘프 여왕... 이름이... 케이트 블란쳇!(검색하고 왔다..;;;) 우아하다. 자아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라고 하는 걸 보니 최근에 쓴 작품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출간 20년된 작품이다. 그래도 고루하진 않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정미경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다. 늘 관심 작가이기만 했다. 이참에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저 새빨간 표지가 그 마음을 지폈다는 건, 당연하다. 제목도 예쁘다. 아프리카 대륙 북부 어느 사막에서, 저 별들을 보고 싶어했는데, 보지 못하고 돌아온 시간이 떠오른다. 구름이 많이 꼈었다. 재수도 없지...ㅜ.ㅜ 책속의 아프리카의 별은 어떤 건지 알고 싶다.^^ 

5권 골라봤다. 모두 합해서 51,300원. 이렇게 보고 있어도 막 배부르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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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10-10-1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여기저기서 이벤트 페이퍼가 ㅎㅎㅎ
마노아님 꼭 당첨되세요! (네가 뽑는거냐? ㅡㅡ;;) ㅋㅋㅋㅋ

마노아 2010-10-16 14:54   좋아요 0 | URL
앗, 저는 방금 키티님 서재에서 나왔는데..^^ㅎㅎㅎ
30분 전에 문학동네 책이 하나 도착했는데 당첨되면 더 사랑해줄 거예요. ㅎㅎㅎ

sslmo 2010-10-1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저랑 하나도 안 겹쳐요~

하지만,마노아님 취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이벤트 괜찮은 걸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한 뼘쯤 가깝게도 만들어 줄 수 있네여~^^

마노아 2010-10-16 20:53   좋아요 0 | URL
저도 방금 양철나무꾼님 서재 다녀왔는데 저랑도 하나도 안 겹쳤어요.ㅎㅎㅎ
이런 이벤트는 참가하는 재미가 참 커요. 여기저기 구경하는 것도 재밌구요.^^

세실 2010-10-1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다도 읽고 싶었는데 금액이 맞지 않아 취소 했답니다.
만약 이벤트에 당첨되면 감사의 마음으로 구입하려구요. 연금술사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마노아 2010-10-16 20:53   좋아요 0 | URL
금액을 저 범위 안에 맞추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연금술사는 좀 더 나이 먹고 나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요.^^

다락방 2010-10-16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어오다가 마지막에 '재수도 없지'에서 그만 뿜어버렸어요, 마노아님. ㅎㅎ


토요일밤, 잘 보내고 있어요?

마노아 2010-10-16 22:27   좋아요 0 | URL
많고 많은 날 중에 그날 구름이 많이 낄 건 뭐람.. 원래 무지 하늘 맑은 나라인데 말이에요.ㅜ.ㅜ

오늘은 도망자와 함께 한 날이었어요. 재방송을 쭈우욱 봤는데 이나영이 참 예뻤어요.ㅎㅎㅎ
지나치게 마르면 오히려 통통한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나영은 예쁘게 말랐어요. 와방 부러워요!

2010-10-17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7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10-10-17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의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를 했지만 쟁쟁한 경쟁자들로 인해 오그라 듭니다. ㅠㅠ
핫팅^*^

마노아 2010-10-17 21:39   좋아요 1 | URL
참여의 재미도 제법 커요.ㅎㅎㅎ 누가 될지 참 궁금합니다. 우리 같이 행운을 기대해요~

꿈꾸는섬 2010-10-17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골라 놓으신 책들도 탐이 나네요. 당최 왜 이리 좋은 책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아프리카의 별, 저도 보고 싶어요.^^

마노아 2010-10-18 11:53   좋아요 1 | URL
아프리카의 별은 표지도 예쁘지만 제목은 더 예쁜 것 같아요.^^ㅎㅎㅎ

후애(厚愛) 2010-10-18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분들 모두 당첨이 되면 좋겠어요.^^
주말 잘 보내셨지요?

마노아 2010-10-18 11:54   좋아요 1 | URL
행운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참 궁금해요. 그분 장바구니의 책도 궁금하고요.
평범했던 주말 보냈어요. 다시 한 주가 시작되네요. 우리 힘차게 열어가요~

순오기 2010-10-20 0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그 사막에서 '여우'를 봤으니, 재수가 없는 건 아니었어요.^^
문학동네 이벤트로 알라디너들의 즐거운 비명이 들려요.ㅋㅋ

마노아 2010-10-20 09:17   좋아요 1 | URL
맞다! 여우 친구는 만났으니 재수가 있긴 했어요. 으하하핫^^ㅎㅎㅎ
 
심야의 FM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사이코패스에게는 무엇이든 동기가 되고 변명이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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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0-16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일 독서마라톤 끝나면 보려고요~
예고편 봤는데, 나는 이런 류의 영화를 안 빼놓고 봐 왔더라고요.^^

마노아 2010-10-16 12:59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순오기님이 스릴러 물을 꽤 많이 보신 것 같아요.^^ㅎㅎㅎ

sslmo 2010-10-16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스릴러물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잘 보는 데 말이죠.
시각적 자극엔 한없이 약해요.
밤잠을 설쳐요~ㅠ.ㅠ

마노아 2010-10-16 16:58   좋아요 0 | URL
책은 괜찮은데 영상은 힘들다는 거죠?
초반에 몇 컷은 바로 화면 돌리게 만들었는데 몇 컷 빼고 나면 괜찮아졌어요.
'악마를 보았다'가 너무 독해서 조금 면역이 된 것도 같아요.^^;;;
 
세계 도서관 기행 - 오래된 서가에 기대 앉아 시대의 지성과 호흡하다
유종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2월
구판절판


지중해를 향해 16도 기울어진 원반형 지붕은 '거대한 해시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건물 일부가 물속에 잠기도록 하여 바다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지중해의 영원한 일출'을 상징하는 것. 피라미드와 동일 재질로 짓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아스완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쌓은 원형 성벽. 성벽을 빙 둘러 새겨진 세계 120여 종의 다양한 문자, 커다란 구에 줄이 새겨진 천체관측관. 유니크한 외관을 자랑한다.

이 책의 첫 부분을 장식했던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편을 읽으면서 무척 많이 웃었다. 좋은 책을 소장하기 위해서 거의 몰염치로 일관했던 그네들의 작태가 밉기보다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모았던 장서들이 자주 소실된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고대의 영광은 오늘날에도 저렇게 멋지게 재탄생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화강암 벽면에 새겨진 문자는 고대 상형문자에서부터 설형문자, 갑골문자, 음악 기보법, 컴퓨터와 유전자 코드, 바코드까지 모든 문자가 망라. 우리 한글 '세', '월', '강', '름', '의', '관'의 여섯 글자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월이 좀 이상하게 보인다. 이건 흡사 어린 아이에게 한자를 써보라고 하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름'은 어떤 까닭으로 저기에 새겨진 간택 글자가 되었을까? 늠름하다... 뭐 이럴 때의 '름'일런가?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화강암으로 만든 외벽에 세계 120여 개의 문자를 새겨놓았다. 자세히 보면, 우리 한글도 보인다. 물 속에 있는 풀은 고대 종이의 원료로 사용되었던 파피루스다. 지하 16미터, 지상37미터, 11층인 이 구조물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내부가 완전히 탁 트여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다. 소통과 조화를 상징하는 것.

내가 찍어온 고대의 신전 벽면이 떠오른다. 룩소르 마지막 날에 다녀왔던 어느 신전의 상형문자가 무척 깊게 새겨져 있어서 인상깊었었다.

이 책은 읽으면서 호기심을 끄는 대목이 무척 많았는데 경쟁 도서관에 질투를 느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피루스 수입을 방해해서 페르가몬 도서관이 양피지의 대량 생산화에 도리어 성공하는 대목도 그 중 하나였다. 뭐랄까.. 이건 좀 쌤통 기분...

'한번 이 도서관에 들어온 귀중서는 절대 나갈 수 없다'는 대영도서관의 의지가 엿보이는 조형물. 책에 족쇄를 채워놓았다. 상징은 훌륭하지만 행보는 괘씸하다. 그곳에서 보관하고 있는 도서가 남의 것이라 해도, 그것이 약탈의 결과라 할지라도 절대 내줄 수 없다!라는 선포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대영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외규장각 의궤 <<기사진표리진찬의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것 중 한 권이 영국으로 흘러들어간 것. 영국의 한 상인이 프랑스인으로부터 10파운드(약 2만 원)에 사서 기증한 것이라 한다. 매매 당시 책의 가치를 몰랐을 것이다. 흥!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를 앞서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 프랑스가 소장하고 있는 것은 하편으로, 상편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TGV고속철도 기술 도입 건으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 해프닝도 소개해 주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얘기를 나눈 당사자가 당시 도서를 내줄 수 없다고 울며불며 시위를 했던 도서관 여직원이었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구텐베르크 성경. 1454년에 독일 마인츠에서 인쇄된 라틴어 성경으로, 1쪽에 42행씩 인쇄하여 '42행 성경'이라고도 일컬어진다. 당시 성직자와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을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성경 인쇄본을 소장하고 있는지 여부가 세계적 도서관을 평가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정도로 희귀한 고서적이다.

500년도 더 된 인쇄물인데, 지금 눈에도 아름다워 보인다. 그때도 성경책은 깨알같은 글씨로 눈을 피곤하게 했군...

도스토예프스키가 지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육필 원고. 시간에 쫓겨 집필하다 보니 난삽하기 그지없다. 다빈치 보는 것 같다. ㅎㅎㅎ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비교해준 부분도 좋았다. 두 사람의 행적은 무척 드라마틱했는데, 좀 더 금욕적이고 좀 더 자애로워 보였던 톨스토이 쪽이 더 마음이 쓰인다. 그런데 러시아 국민들은 도트소예프스키를 더 인정해 주는가 보다. 전 세계적으로 그런 편일까?

세계에서 가장 높게 지어진 대학인 모스크바대학의 본관 전경. 아름다운 건축물은 흔하지만, 이토록 압도적인 건축물은 쉽게 만날 수 없다. 건물 7개가 크기만 다를 뿐 모양은 같고 모두가 크렘린을 향하고 있다. 혹자는 "스탈린의 모든 것이 유죄라 하더라도 모스크바대 건물만은 무죄"라고 말할 정도로 인상적인 마천루. 건물 높이는 183미터. 첨탑 57미터까지 포함하면 240미터.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별의 크기는 직경이 9미터에 무게 12톤.

사진이 흔들려서 웅장한 위압감을 감소시켰다. 압도적이다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자체가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사람을 위축시키니까. 그런 면에서 정조의 규장각은 참 운치 있다. 장서 규모의 차이는 물론 비교가 안 되겠지만...

전 세계에서 출판된 수많은 고르바초프 관련 출판물들. 한국어판 서적도 눈에 띈다. 그러나 러시아에 고르바초프는 없다. 저자는 열 곳의 도서관을 탐방하면서 과거 황제들과 레닌, 스탈린, 옐친, 푸틴, 메드베데프의 족적은 수없이 접했지만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국민과 권력에 의해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것. 오직 자신이 만든 재단 안에서만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고르바초프재단은 '고르바초프의 섬'이나 다름없었다. 잭 캔필드 글이었던가? 어떤 소년이 전 세계의 유명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어서 답장(?)을 수집한 게 있는데 고르바초프의 서명을 자신에게 되팔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서방에서는 인정을 받지만 고국에서는 외면받는 팔자라니... 이것도 참 슬픈 일이다.


기부 문화가 발달한 미국. 뉴욕공공도서관에 비치된 기부함에 달러 지폐가 가득하다. 우린 보통 동전이 가득한데...


맨해튼 한복판에 자리 잡은 뉴욕공공도서관의 전경. 영화 투모로우에서 살인적 강추위가 뉴욕을 엄습할 때 시민들이 피해 들어간 곳. 그렇다면 책을 불태운 바로 그곳?? 게다가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결혼식 촬영 장소. 실제로 결혼식장으로 고가에 임대되고 있다. 도서관에서의 결혼식이라니, 이렇게 낭만적일 수가 있을까. 그렇지만 고가 임대는 낭만과 좀 거리가 멀구나!

한국점자도서관. 밀레의 이삭 줍기를 점자화한 페이지. 손으로 읽는 그림이다. 당연히 짐작 가능한 부분인데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공간 부족도 큰 문제. 새 책을 제작하려면 기존 자료를 버려야 할 지경이란다. 점자 인쇄기가 공간을 많이 차지한단다. 작업실과 출판사는 인근 건물에 흩어져 있는 지경. 미처 눈돌리지 못하고 신경 써보지 못한 부분들이다. 점자 책은 물론이요, 오디오 북도 더 많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는 어느 님이 떠오른다.

한라도서관. 앙증맞은 어린이자료실의 원통형 신발장이 싱그럽다.
제주도의 인구 대비 도서관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밖에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무척 많았는데 모두 다 가볼 수 없는 대중들에게 눈으로나마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웠다. 가볼 수 있는 수지 느티나무 도서관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수지 사는 친구가 있는데 친구 집에서 가까운지 알아봐야겠다. 그 집에 다녀올 때 함 들러보고 싶어서...

그 나라의 과거를 알려면 박물관에 가보고, 미래를 알려면 도서관을 가보라고 했던가. 각 나라의 도서관을 소개받다 보니, 그 나라의 책에 대한 가치관이 들여다 보인다. 도서관으로 인한 자부심 또한 모두가 뒤지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측도 우리나라의 다 쓰러져가는 초가에도 책만큼은 있어서 놀랐다지 않은가. 우리도 예부터 공부 욕심은 또 뒤지지 않았지...

제법 많은 나라들을 돌며 좋은 도서관을 소개해 주었다. 심지어 가깝지만 가장 멀기도 한 북한의 도서관까지. 저자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도서관장도 아니었는데 훗날 이렇게 소개할 일이 생기다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 같다. 책쟁이로 살아야 하는 운명, 저자에게 딱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도 더불어 즐거움을 얻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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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진만 보고도 황홀해지는 도서관들
    from 그대가, 그대를 2014-03-23 17:49 
    도서관에 구경을 갔다. 크게 눈에 띄는 게 없어서 돌아나올 즈음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이 책을 발견하고 눈에서 광채가 났다. 가슴에 끌어안고 나와서 대출을 신청했더니 대출불가 도서란다. 헐... 안타까움을 남기고 돌아나오려는데 사서 선생님이 특별히 일주일 빌려주겠다고 하셨다. 대출 불가 도서라서 바코드도 안 찍고 갖고 나왔다. 음하하핫! 절대로 한동네 사는 사람이라는 특혜를 받은 게 아니다!1995년에 배스베인스는 1914년 발견된 새뮤얼 피프스의 장서
 
 
전호인 2010-10-14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네요.
입이 쩍 벌어져요. ㅋㅋ

마노아 2010-10-14 23:11   좋아요 0 | URL
대리만족이 큰 책이었어요.^^

2010-10-15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5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0-10-1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책 완전. 당장 가져야겠어요!! 사진도 넘 잘 보고 가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참 궁금했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원고도 넘 신기해요. 이 책 아무리 봐도 넘 좋네요!

마노아 2010-10-16 10:02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었는데 잘 고른 것 같아요. 조금씩 읽어서 오래 걸리긴 했는데 무척 재밌었어요.^^

순오기 2010-10-1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 프랑스 도서관이나 박물관이든 세계에서 도적질해온 온갖 것들로 꾸며 놓고...ㅜㅜ
테제베 건은 우리 정부가 보기 좋게 당한 해프닝~

오~ 마지막 신발장 너무 귀엽네요.^^

마노아 2010-10-16 13:0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규모 면에서는 세계의 도서관에 견주기 그렇지만, 저런 아기자기한 멋도 꽤 시선을 끌었어요. 고속철도건이랑 외규장각 도서는, 어휴... 정말 어처구니 없어요.ㅜ.ㅜ

2010-10-18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0-10-16 13:56   좋아요 0 | URL
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고칠게요.^^ㅎㅎ

꿈꾸는섬 2010-10-17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멋진 책이네요.

마노아 2010-11-11 10:29   좋아요 0 | URL
앗, 댓글을 한참 뒤네아 봤어요.^^;;
 
신부이야기 2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9월
구판절판


앞표지보다 화기애애 정감 넘치는 뒷표지가 더 마음에 들어서 찍어보았다.
시골에서라면 이런 풍경이 지금도 연출될까? 굳이 저 초원까지 가지 않더라도?모두들 무언가를 하고 있고 지루해 하지도 않고 힘들어 하지도 않고, 뭔가 참 만족스런 모습을 만족스럽다.

이번 이야기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다. 뒷모습이 섹시 그 자체!
저 탐스런 머리칼도, 질끈 묶은 두건도 모두 가슴을 왈랑거리게 한다.
그런데 이 아가씨, 성격도 무척 재밌다.

빵굽는 가마에서 만난 솜씨 좋은 아가씨인데 겉으로는 무척 무뚝뚝해 보인다. 그렇지만 속내는 무척 열정정이고 적극적인 성격. 나름 혼기가 찼지만 몇 번 딱지를 맞고 무척 의기소침해 있다. 아미르와 마친가지로 참 순진한 아가씨.
직접 구운 빵을 아미르에게 선물로 주자, 아미르도 그 자리에서 사냥을 해서 답례를 한다. 아, 멋진걸!

그렇지만 이 평화로운 마을에 분쟁이 생겨버리니...
아미르의 친정에서 정략적 이유로 이미 시집 보낸 아미르를 다시 데려가려고 한다.
꼬마 신랑의 활약이 눈부셨는데, 저렇게 달려오는 자세로 저 팔을 잡아서 저렇게 끌어올리는 건,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꼬마의 힘이 아무리 세다고 해도 말이다. 방향이 좀 어긋난 게 아닐까. 나잇 앤 데이즈에서 탐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스페인에서 오토바이 탈 때처럼 서로 마주보고 앉는다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이야기의 가장 멋있었던 장면!
전쟁이라고 부르면 과하지만, 마을과 마을 단위의 분쟁에서 아미르의 오빠가 모처럼 무재를 뽐내던 장면. 무뚝뚝해서 말은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아미르를 데려가는 걸 원치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앉은 채로 당할 수는 없으니 실력행세를 했는데, 활쏘는 저 완벽한 자세! 모리 카오루의 '엠마'는 무척 정적인 느낌의 그림이었는데 이 작품은 모든 게 역동적이다. 작품 분위기에 따라서 그림의 느낌이 달라지는 게 보기 좋다.

뒤늦게 꼬마 신랑의 매력에 어쩔 줄 몰라하는 새신부 아미르.
잠시 어정쩡한 분위기도 금세 저렇게 예쁜 분위기로 바꿔버렸다.
신랑 몸보신에도 적극적이다.
아직도 여전히 소꿉장난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꼬마 신랑... 금방 자랄 테지?

종종 등장해서 분위기를 업 시켜주는 꼬마 아이들!
이렇게 예쁜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보았던가!
녀석들은 새로 등장한 외지인이 그저 신기하고, 그래서 새로운 놀거리가 생겼다는 것이 기쁠 뿐이다. 얼른얼른 자라거라!

아유 귀여워라!
초판 인쇄에는 1편과 마찬가지로 특별 선물이 들어 있다.
이번엔 투면 필름이 아니라 작품속 장면 세 컷을 누런 두꺼운 종이에 인쇄를 했는데, 그림이 여러 장 들어가 있으니 이 쪽 선물이 더 마음에 든다. 저 치렁치렁 늘어진 옷감들을 보시라. 다음 주제가 눈에 보인다.

꼬마 숙녀 티레케는 매를 흠모한다.
어려서부터 혼수 준비를 하는 이곳 마을 사람들답게 티레케도 바느질 솜씨를 뽐내지만 주제가 너무 한정되어 있다.
새신부 아미르의 것도 살펴보지만, 역시나 너무 씩씩하다.

가마터에서 만난 손재주 좋았던 아가씨는 어떻던가!
음식 솜씨와 바느질 솜씨는 별개였던 것!
솔직한 아가씨, 또 울컥해서 와락 소리를 지른다. 귀엽다.

꼬마 아가씨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가슴의 볼륨 때문에 입체감이 더 살아난 거겠지만 그림 안에서 모성애가 느껴진다. 따뜻하다.

할머니의 할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대를 이어온 솜씨 자랑이 대단하다.
누구는 열 살에 벌써 반짝반짝 빛나는 창의성을 보였지만,
누구는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솜씨인지라 착한 마음씨로 대신했다.ㅎㅎ
증조 할머니의 위트가 대단하다. 절대 긍정의 여인!

굳이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꽤 활약을 선보였던 영국인 스미스 씨.
이제 다음 편에선 그의 여정이 좋은 소재가 될 것이다.
무척 엉뚱해 보이는 이 모험심 많은 사나이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자못 기대가 된다.
연재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은 것은 그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일까?
이렇게 섬세한 문양들을 스크린 톤으로 붙이지 않고 일일이 수작업을 해내다니, 그것도 즐겁게 해내는 작가라니, 천상 만화가다. 그러니 독자도 느긋이 가디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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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10-1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작업이 필요한 작품이에요. 모리 카오루님, 완전 존경합니다. 꾸준히 나와줘서 무척 좋습니다.

마노아 2010-10-14 23:11   좋아요 0 | URL
작가님 명인의 대열에 들어선 것 같아요. 정말 존경스러워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