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남지 않은 달력이 시간의 매정함을 보여준다. 

절대로 멈춰주지 않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쉬워하기보다 인정하는 늦가을을 보내자. 

어쨌든 결실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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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365- 주제별로 매일 한 권씩 2000년대 좋은 그림책
학교도서관저널 <그림책 365> 선정위원회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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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문-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
마크 코타 바즈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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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홀리스 우즈의 그림들 (문고판)
패트리샤 레일리 기프 지음, 원지인 옮김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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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사람들
피터 스피어 지음, 이원경 옮김 / 비룡소 / 2021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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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야, 목욕은 이제 그만! 비룡소의 그림동화 126
존 버닝햄 글 그림, 최리을 옮김 / 비룡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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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의 책들을 살펴보면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만의 순수한 세계가 자주 그려지곤 했다. 지각대장 존에서 선생님은 존의 지각 이유를 매번 믿지 않았지만 존에게는 지각 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사연들이 있었다. 존 버닝햄의 세계에선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도 못된 아이가 아닐 수 있고, 소외된 이도 소외되지 않은 주체로 그려질 수 있었다. 이 책은 '셜리야, 물가에 가지 마!'와 짝을 이루는데, 역시나 엄마의 잔소리와는 별개의 세상에서 나름의 세계를 구축해 둔 셜리의 목욕 이야기가 진행된다.  

 

표지의 그림부터 심상치 않다. 꽃밭 위를 춤추듯 달려나가는 저 기사는 혹시 돈키호테?  

 

표지를 열면 나오는 첫 그림이다. 하수관 주변의 풍경이 남다르다. 트럼프 카드가 깃발처럼 걸려 있고, 모험이 이루어질 성이 보인다. 하수관 끝에는 말타고 달려가는 기사도 보인다. 저 기사는 토끼? 어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거나 쉽게 찾을 수 없는 세상이 이제 펼쳐질 차례다. 

 

목욕 준비를 해주고 있는 엄마의 잔소리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있다. 그림 속 캐릭터의 표정이 대체로 무표정하다는 것이 존 버닝햄 그림의 특징이기도 한데, 엄마도 셜리도 모두 인형같은 얼굴이다. 표정은 말이 없지만, 정황이 모든 걸 대변해 준다. 아이가 지나치게 커 보인다는 게 다소 흠. 사실, 존 버닝햄 그림은 '예쁜' 맛으로 즐기는 게 아니므로...^^ 

 

엄마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하지만 어떤 어조일지 상상이 간다. 고저 없이 잔잔할 것이고, 아이가 듣는지 마는지는 확인도 않은 채 해야 할 리스트를 줄줄이 뽑고 있는 느낌이다. 체중계의 저울이 지난 번 체크했을 때보다도 더 오른쪽으로 기울었다면 표정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목소리 톤도 좀 더 높아질 것이다. 아직까지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분명 기분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 포문이 얼마나 과격한가와 상관 없이 셜리는 이미 쏜살같이 배관을 통해서 자신만의 세계로 달려 나가는 중이다. 두고 온 빗과 주사위(?)와 비누 등은 중요치 않다. 새로운 세계가 셜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장난감 오리 배는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낙원으로 인도했다. 푸르른 나무와 풀 뜯는 젖소 등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렇지만 평화로운 세계에도 위기는 닥치는 법! 

 

나름 '폭포'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고, 들판의 기사들이 위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셜리에게 이 정도 위기는 그저 모험 수준! 

 

가여운 건 엄마 입장이다. 아이의 세계를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고, 함께 해 주기에 어른의 세계는 너무 복잡하고 갑갑하다.  

엄마의 고백대로 아이를 따라다니며 어질러 놓은 걸 치우는 것 말고도 엄마의 일은 지나치게 많다.  

같이 놀아주고, 그 지저분한 상태를 참아낼 수 있는 엄마는 차라리 대인배랄까.  

비록 내가 엄마가 되어보진 못했지만, 저 셜리가 자라서 엄마가 된다면 셜리의 엄마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래도 다행히 셜리가 스트레스 꽉 채운 아이가 되지 않고 저렇게 동화같은 세상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이다. 아이의 저 모험을 엄마가 이해해 준다면 더 좋을 텐데... 권정생 선생님의 '랑랑별 때때롱'에서는 그런 부모님이 나온다. 아이들이 겪고 온 신비한 세상에 대해서 부정도 하지 않고 허튼 소리라고 면박도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부모님. 정말로 믿는지 안 믿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의 세계를 무참히 짓밟지는 않는 멋진 부모님이셨다.  

 

아이의 모험이 신날수록 욕조 주변은 어지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셜리의 엄마는 화내는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서로 다른 세상을 다녀왔기에 교차점도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한 타협(?)이다.  

다음 번 목욕할 때에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세계가 또 다시 평행선을 긋지 않고 좀 만났으면 좋겠다. 셜리야, 목욕은 얼마든지! 라고 말해도 좋다면, 그것이 서로에게 인상 찌푸릴 일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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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2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버닝햄도 존버닝햄이지만,
마노아님 진짜 이쁘셔요~
사진의 하얀 클립이 뭔가 한참 쳐다봤어요.
마노아님,참 이쁘다~^^
(나도 사진 찍을 때 참고 해야지~~~힛.)

마노아 2010-10-29 23:50   좋아요 0 | URL
아하핫, 효과 준 것 뿐이에요.^^ㅎㅎㅎ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________^*)

자하(紫霞) 2010-10-30 22:19   좋아요 0 | URL
클립이 효과예요?
저도 뭔가 한참 쳐다봤어요~
사진 잘 나오게 하는 마노아님만의 비결인가? 생각했어요~

마노아 2010-10-30 23:48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프로그램 기능에 있어요.
'포토 스케이프' 쓰거든요.
포토샵보다 훨씬 간편해서 자주 이용해요.^^

같은하늘 2010-11-01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잘 지내셨나요? 방가~~
여기저기 그림책 마니아들의 존 버닝햄 행진이군요.^^
포토스케이프 기억해 둘께요.

마노아 2010-11-02 00:11   좋아요 0 | URL
저는 존 버닝햄 한 권에 헬렌 옥슨버리 한 권으로 마무리 했어요.
이미 읽은 책은 다시 안 보게 되어서요.
포토 스케이프는 무료 프로그램이니까 함 써보셔요~
 
울지 마, 꽃들아 - 최병관 선생님이 들려주는 DMZ 이야기
최병관 글.사진 / 보림 / 2009년 5월
품절


비무장지대의 한겨울 모습이다.
사진이 아니라 판화나 그림 같다.
한폭의 멋드러진 설경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스며있는 역사의 흔적은 아프기만 하다.

산등성이 따라 이어지는 남북의 철조망이다.
오른쪽 산등성이를 따라가는 철조망은 남한의 것,
왼쪽 산등성이를 따라가는 철조망은 북한의 것이다.
이 철조망이 끝도 없이 이어진 것만 같아 서글프다.

철조망 위에 피어 있는 눈꽃은 아름답기만 한데,
아름다워서 더 시린 풍경이다.
동해 바닷가에서 서쪽 임진강 어귀까지 총 249.4km.
길고도 긴 철조망이다.

철조망 왼쪽이 비무장지대다. 잔디밭처럼 바뀌어버린 풍경.
누구라도 다가오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나무를 모두 없애고 말았다.
숲은 사라지고 민둥산만 남은 풍경이다.
산도 춥고 아팠을 것이다. 그후로 내내...

군사분계선 위에 세워진 판문점의 회의장.
영화 덕분에 유명해진 건물.
저 작은 건물조차도 남북으로 갈리어 있다.
그림자조차도 숨이 막힌다.

백암산에 있는 <비목>기념비.
1964년 한명희라는 청년이 이곳 군부대에서 근무하다가 녹슨 철모, 돌보지 않은 돌무덤, 썩어 가는 나무 묘비 등 산기슭에 널려 있는 전쟁의 아픈 흔적들을 만났다. 그리고 고향의 보고 싶은 얼굴을 두고 외로이 숨진 젊은이들의 넋을 달래려 한 편의 시를 쓴다.
우리에게 노래로 더 많이 익힌 <비목>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감시를 위해 철조망에 꽂은 돌멩이다.
물기를 머금은 것이 한 마리 물고기처럼 당장이라도 헤엄칠 듯 예쁘기만 한데, 그 안에 사려 있는 의미는 무섭기만 하다.
돌멩이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누군가 철조망에 다가온다고 알아차릴 신호,
작은 숨소리, 조금의 틈새도 허락되지 않는 비무장지대였다.

철조망을 따라 켜 놓은 등불이다.
얼핏 보면 예쁘기만 한데, 지새우고 있는 것이 긴긴 밤이 아니고,
밝히고 싶고 내보이고 싶은 것이 찬란한 별이 아닌 것을...
이곳의 풍경은 아름다울수록 더 서럽기만 하다.

비무장지대 건너편에 있는 북한의 초소다.
북으로 오라는 '월북 환영' 그림이 한숨을 베어물게 한다.
월북도 아니고, 납북도 아니고, 방문도 아닌, 그저 우리 모두의 땅이 되어야 하는데...

경기도 파주의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대성동 마을이다.
군사 분계선에서 40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마을.
북쪽 깃대 높이 160m로 세계에서 가장 높고,
남쪽 깃대 높이 100m로 결코 낮지 않은 키.
내세우고 경쟁하는 못난 마음이 아프다.

지뢰밭에 피어난 코스모스.
금년 가을엔 코스모스 하나를 길에서 보지도 못하고 지나는 중인데,
뜻밖에도 책 속에서 저 청초한 모습을 만났다.
뒤에 '지뢰'라는 글자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떨기 코스모스의 조화라니...
이게 우리의 모습이구나...

아랫쪽은 단풍이 예쁘게 물들었건만 북쪽에는 고운 단풍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화전을 일군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사람은 오가지 못하는 철조망 아래에 꽃들이 예쁘게 머리를 내밀었다.
흰금강초롱꽃, 복주머니란, 투구꽃, 패랭이꽃, 산오이풀, 갯메꽃이다.

포격으로 부서진 담벼락에 어지러운 낙서들이 보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절절한 한 마디가 가슴에 맺힌다.
정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까?
우리의 소원이 맞다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 미움과 불신을 모두 극복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그 날이 어여 왔으면...

녹슨 철모에 피어난 들꽃이 처량맞게 예쁘다.
묵념을 해야 할 것 같다.

비무장지대 지도다.
붉은선이 북방한계선, 파랑선이 남방한계선, 그 사이 자주색이 군사 분계선이다. 저 사이 폭이 4km구나.
이런 금따위 모두 사라질 그 날이 어서 왔으면...

그때까지, 울지 마 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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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0-10-2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니 군대시절 생각이 나네요.
저는 강원도 철책선에서 복무했어요.
먼 거리에서 고배율 망원경으로 북한군의 동태를 살피기도 했지만,
대부분 아무것도 없는 철책선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지요.

경치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곳이었는데,
실제로 철책선 안으로 들어가면 온갖 지뢰들이 깔려있기 때문에,
그 경치를 구경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지요.

마노아 2010-10-28 23:18   좋아요 0 | URL
경치 하나는 끝내주게 좋건만 실제로는 위험천만 무자비한 곳이라니, 참 서럽고 아파요.
감은빛님은 닉네임만 보면 자꾸 여자일 거라고 상상되는데, 군대 이야기를 들으니 확실히 남자 분이란 인식이 드네요.^^

같은하늘 2010-11-0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만으로는 정말 멋진 곳인데,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네요.

마노아 2010-11-02 00:10   좋아요 0 | URL
이산가족상봉 끝나면서 오열하는 분들 보면, 참 힘들어요.ㅜ.ㅜ
 
누가 말을 죽였을까 - 이시백 연작소설집
이시백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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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냄새 구수한 연작 소설집이다. 작가 자신은 경기도 수동면 광대울 산중에 살고 있지만 작품의 배경은 충청도 어느 마을로 설정해 두었다. 진한 사투리가 어찌나 눈길을 사로잡는지, 그 말투와 어감을 살려 읽다 보면 천천히 넘어가는 책장에 애가 닳기까지 했다. 충청도 사람들이 말은 느려도 성질은 급하다는 얘기가 이해가 되는 기분이랄까. 

11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각각의 주인공들은 서로 한 마을 사람들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난 이야기의 조연이 이번 이야기의 주연이 되고, 이번 이야기의 엑스트라가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그런 구조. 그래서 하나도 허투루 넘길 이야기가 없다. 마을 사람들의 관계도를 머릿 속에 그려보면서 책을 읽는데 단순히 풍자 소설로 읽기에는 갑갑할 때가 많았다. 작품 속에서도 곧잘 등장하는 FTA의 내용상, 일단 농촌은 버린다는 얘기 아니던가. 널뛰기하는 배추값을 보며 느꼈듯이, 농촌의 내일은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인다. 도시에 사는 내 눈에도 답답한데, 거기서 흙냄새 맡고 사는 분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조우' 편에서 그 내용이 나온다. 아버지 닥달해서 서울로 떠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도시로 가서 그 살벌한 세계에서 어찌 살아남을지는 아들 역시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어떡해서든 살아보겠다고 유기농, 비육우, 생태마을, 산촌마을에 정보화마을까지... 온갖 사업에 앞장 서서 발품도 팔아보았지만 결실은 없어 꼴만 우스워지기 일쑤였다.  

답답한 농촌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들을 순진하기만 한 사람으로 그려내지도 않는다. 지난 해에 같이 근무했던 어느 선생님은 서울 아이들에게 온갖 정 다 떨어져서 고향으로 발령을 받아 내려갔는데, 시골 인심도 못지 않다고 한탄을 하셨다. 으레 기대하는 순진한 눈망울은 아니더라는 것. 왜 아니 그럴까 싶다. 작품 속 인물들도 앞의 말 다르고 뒷의 말 다르고, 남의 등 처먹는 일도 서슴지 않고 표리부동할 때가 많았다. 시골이나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이 세계'를 사는, 또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세상 속 풍경이지 싶다. 더불어 새마을 운동 시절의 진한 향수에 젖어 독재자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이건 풍자가 아니라 현실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 작품이 또 심각하기만 하냐면, 그건 또 아니다.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과, 그 안에서 엉키어 있는 인간들의 욕심 사나운 모습 사이사이 해학적인 면모도 짙게 드러난다. 제 차가 진흙 구덩이에 빠졌는데 말쑥한 양복에 흙묻을까 멀찌감치 구경하는 교감 샘과, 그 양반 대신 논두렁에서 고생하던 인물이 넘어지면서 교감의 넥타이를 잡아채어 같이 흙물 뒤집어쓴 장면은 깨가 쏟아지기까지 했다. 환경운동가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농촌 문제에 나섰던 것이 사실은 짜고 치는 게임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대목은 너무 씁쓸해서 한숨이 나온다. 모두 다 그렇진 않겠지만, 그런 운동가들이 선한 의도까지 똥물을 끼얹고 있으니... 

가장 최고의 엔딩은 마지막 편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였다.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엔딩의 소설들이 있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가 그것이다. 마지막 한 줄이 소름 돋도록 만드는 명 엔딩 장면을 가졌는데, 이 책도 마지막 대사에서 띠용~ 소리가 나도록 만드는 대미를 갖추었다. 울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해학과 풍자와 비판과 아이러니가 다 겹쳐진 완벽한 마무리! 

추천사에서도 강조하지만, 이 책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이시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입담꾼에 대한 입소문은 왜 이리 더딘겨? 라고 고개도 갸우뚱해 본다. 마지막으로,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의 한 대목 옮겨본다. 씁쓸하면서도 즐거운 책읽기였다. 

"피차 양반이여. 거기두 잘헌 거 웂어. 해병대 아니라 특공대라두 으른은 으른인겨. 아무리 삼강이 무너지구, 오륜이 사까닥지를 치는 시상이라 혀두, 아즉까정 우리게는 위아래 장유유서가 번듯허구, 예의범절을 목숨츠럼 여기는 청풍명월의 예향인겨. 근디, 얼굴 모르는 타관 뜨내기두 아니구, 뻔히 집안 으른들끼리 장에서 만나믄 허리 꺾구 서루 절 나누는 처지에, 멕살잽이를 허는 건 또 어느 나라 군대 벱이여?" -53-54쪽 복(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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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27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짜고치는 고스톱에 광분하는 편이라서,망설였는데 말이죠~
그래도 별 다섯이라니...성석제나 이기호의 연장선상 정도로 보면 되려나요?

마노아 2010-10-27 23:12   좋아요 0 | URL
이기호 책은 보지 못했고요, 성석제의 재기 발랄함보다는 약하지만, 보다 진중했어요.
어느 분 추천을 무심코 발견해서 읽게 되었는데 무척 좋았땁니다.^^
 
이만큼 컸어요! 웅진 세계그림책 115
루스 크라우스 지음, 헬린 옥슨버리 그림,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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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큰 조카가 초등2년이 되자 더 이상 4-7세용 책을 구입하지 않는다. 둘째 조카가 5살로 자라고 있지만 둘 다 활용하기 힘든 책이라 여겼는지 아무래도 그 연령대 책은 마다하고 있다. 그런 구분에 보다 자유로운 나는 아직도 4-6세 용 책들이 더 좋다. 글밥은 적어서 마음에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는 내용은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렇게 구입해서 좋은 4-6세용 책. 어쩌면 0-3세 용으로도 나쁘지 않은 책이랄까. 

스무 살 넘어가고부터는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하고 원했던 적이 없는 듯하다. 해마다 빨라지는 시간을 체감하며 아쉬워할 뿐. 그렇지만 아이들이야 어디 그렇던가. 떡국을 무리해서 많이 먹어가면서까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자라고 싶어한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아이는 아직 작기만 하다. 강아지, 병아리들도 모두 작다. 아이는 3등신에도 못 미치는 크기로 그려져 있다. 날은 아직 추운 계절이고 아이의 옷차림도 두툼하다. 따뜻한 봄날이 오면 아이도 부쩍 자라 있을까? 

 

나무에 새싹이 돋고 땅에 풀도 자랐다. 헛간 옆에는 꽃이 피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조잘조잘 묻기 바쁘다.  

"병아리도 클까요?"
"강아지도 클까요?"
"그럼 나도 커요, 엄마?" 

그때마다 엄마는 물론이라도 답해 주셨다. 아이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낮이 점점 길어졌고, 밤은 점점 짧아졌다. 풀도 쑥쑥, 꽃도 쑥쑥, 나뭇잎도 쑥숙 자라는 것 같건만, 우리 모두 조금씩 자라는 것 같은데, 아이는 자기만 자라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날이 더워져서 두꺼운 옷은 옷 상자에 담아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다시 날이 추워지면 입어야 할 옷들. 품에 안겨 있었던 강아지는 확실히 눈에 띄게 자라 보인다. 아이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흙을 밟고 땅을 매만지며 꽃들에 둘러싸인 전원의 풍경. 그 속에 엄마도 있고 강아지도 있고, 아직도 빨리 자라고픈, 혼자만 뒤쳐진 것 같아 애가 타고 있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다시 묻는다.  

"엄마, 나도 컸어요?" 

한결같은 엄마의 대답, "그럼. 물론이지." 

 

뜨겁고 강렬하던 여름도 지나고 울긋불긋 나뭇잎들이 옷 갈아입는 가을이 왔다.  

병아리들은 자라서 닭이 되었고, 강아지도 자라서 개가 되었다.  

모두들 한 뼘씩 자랐는데 홀로 크지 않은 것 같아 속이 상한 아이.  

엄마가 그리 장담을 해주었건만, 아무래도 아이에게는 눈에 보이는 증거가 필요한가 보다.  

눈에 보이는 증거, 드디어 찾을 때가 왔다.  

 

추워진 계절에 맞추어 여름에 집어넣었던 옷을 다시 입어 보았는데... 

이럴 수가! 옷이 작다! 바지가 꽉 끼고 길이도 짧아졌다. 웃옷 역시 마찬가지!  

새옷 장만해야 할 걱정을 엄마가 할지 안 할지 아이는 모른다. 그런 걱정은 아직 아이에겐 이른 법! 

아이는 그저 제가 자랐다는 사실만이 중요하고 기쁘다. 폴짝 폴짝 재주를 넘을 만큼! 

 

한 해를 기다린 보람이 있었으니 아이의 기쁨이 큰 건 당연하다.  

이제 더는 키가 자라지 않을 나이가 된지도 강산 한 번 변했고, 늘어나는 체중만 걱정이건만, 그래도 자라고 싶을 때를 많이 만난다. 그것은 마음의 키, 관용의 키, 너그러움의 키, 지성과 양심과 상냥함의 키 등등. 자라고 싶은 마음 자리는 아직도 무한대이다. 무엇으로 마음의 키를 재어서 이만큼 컸다고 기뻐하며 재주를 넘을 수 있을까. 아직도 이 모양이냐고 발만 안 굴러도 사실은 다행인 셈.  

지난 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키를 내내 생각했다. 아마도 평생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마음의 키. 어떤 영양분을 주고 어떤 운동을 시켜서 키워내야 할지는 자신만이 아는 일. 키재는 그 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하며 살아야겠지. 표지 속 저 아이처럼 저렇게 즐겁게 반응할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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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츄리 2010-10-2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참 이뿌네요

마노아 2010-10-27 14:46   좋아요 0 | URL
그림이 참 정겨워요.^^

순오기 2010-10-2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사랑스런 녀석, 정말 키가 많이 자랐네요.^^
마음의 키를 키우는 일은 아마 평생동안 해야될 듯해요.

마노아 2010-10-27 23:13   좋아요 0 | URL
평생 숙제가 많아요. 내일로 미루면 안 되는, 날마다 해야 하는 숙제예요.^^

같은하늘 2010-11-0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동그란 얼굴의 아이~~ 누구의 그림인지 알 수 있어요.^^

마노아 2010-11-02 00:09   좋아요 0 | URL
한 눈에 확 들어오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