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66 호/2010-11-29
 

펭귄의 조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남극대륙의 아델리펭귄 루카리는 자못 심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젊고 패기 넘치는 펭귄 한 마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남극에 있는 우리들이야 아직 그럭저럭 살만하지만, 다른 곳의 펭귄 친족들은 사정이 말이 아니래요. 남아프리카 케이프 주(州)에 살고 있는 케이프펭귄은 유조선이 흘리고 다니는 기름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죠. 뉴질랜드의 노란눈펭귄은 인간이 들여온 육식 포유류에게 생존을 위협받고 있어요. 남극에 산다고 우리가 안전한 것도 아니지요. 이제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생존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거야 이미 우리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무슨 수가 있겠어요? 알다시피 지구는 인간들이 좌지우지한지 오래지요. 우리가 모여서 얘기해본들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펭귄은 ‘새’라는 겁니다. 날 수 있는 새 말입니다!”

선언처럼 젊은 펭귄의 말이 울려 퍼지자, 루카리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곧 펭귄 무리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가 새인 건 맞긴 맞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기러기처럼 날아서 서식지를 옮기기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저렇게 영양가 없는 소리는 알에서 나오고 처음 듣네.”

대놓고 무시하는 펭귄들도 있었지만, 생존의 위협을 몸으로 느껴봤던 펭귄들은 몸에 바짝 붙은, 이제는 날개라고 할 수 없는 지느러미를 흔들며 나는 시늉을 해보았다. 펭귄들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우리가 과연 날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날 수 있었던 과거가 있긴 있었던 걸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우리의 조상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어요. 이젠 오히려 인간들이 펭귄에 대해 우리들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지경입니다. 여러분, 펭귄의 색을 알고 계신가요? ‘몸의 색깔은 인간의 턱시도처럼 흑백이다’ 라고 알고 계시지요? 하지만 우리 조상 펭귄 중에는 불그스름한 깃털을 가진 것도 있답니다. 아쉽게도 그걸 밝혀낸 것조차 인간입니다만.”

붉은 털 펭귄이라고? 세상에…. 펭귄들은 이제 젊은 펭귄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젊은 펭귄은 최근 미국 텍사스주립대 연구진이 사이언스지에 보고한 3억 6천만 년 전의 펭귄 화석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가장 덩치가 큰 펭귄은 키가 122cm에 이르는 황제 펭귄이지요. 하지만 이번에 페루 파라카스 국립자연보존지구에서 발견된 펭귄 화석을 연구한 결과, 키가 150cm나 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름은 ‘물의 왕’을 뜻하는 `잉카야쿠 파라카센시스(Inkayacu paracasensis)’로 붙여졌다고 합니다. 깃털의 색은 불그스름한 갈색과 회색으로 지금의 우리와는 꽤나 달랐지만, 우리처럼 힘차게 수영할 수 있는 지느러미 발과 촘촘한 깃털은 하늘을 나는 것보다는 물속으로 잠수하기에 적합한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이 조상님은 우리보다 더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갔을 테니, 잠수도 더 깊게 했을 것 같습니다.”

귀 기울여 경청하던 펭귄무리에서 호기심 많은 어린 펭귄이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 3억 6천만 년 전이면 엄청나게 오래 전이지요? 그때 살던 조상님도 우리처럼 물속으로 잠수해 물고기를 잡아먹었다면, 우리 펭귄은 애초에 하늘을 날 수 없었던 것 아닌가요? 저는 우리가 새랑 닮긴 했어도 새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요.”

박식하기로 소문난 늙은 펭귄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인간들이 우리를 한 때 물고기 취급했다는 얘기가 생각나는구나. 물론 인간들도 우리를 보자마자 별다른 연구 없이도 날지 못하는 ‘새’라는 걸 알았지. 하지만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물고기’라고 우기기도 했단다. 우리 펭귄을 물고기와 연관 지은 것은 대게 단백질 섭취 때문이었어. 새가 아니라 물고기라면 “금요일에는 고기를 입에 대서는 안 된다”는 로마가톨릭의 교리를 거스르지 않고도 당당히 새 고기를 먹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1800년 무렵에 인간들은 펭귄을 물고기와 새의 중간쯤으로 여겼고, 새로운 항로와 신대륙을 찾아 항해에 나선 이들은 펭귄들을 무지막지하게 죽였다. 1578년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은 마젤란해협에서 하루에 3천 마리 이상의 펭귄을, 1587년 토머스 캐번디시 경은 배에 실을 식량으로 도합 3톤의 펭귄을 잡아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밖에도 굶주렸던 수많은 항해 선원들이 펭귄 떼를 몰살했다.

“우리가 인간에 대해 경계심이 없고 무리 지어 살기 때문에 인간에겐 더 없이 사냥하기 좋았겠지요.”

펭귄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늙고 지혜로운 펭귄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이 한때 날았다는 흔적은 우리 몸에 또렷이 남아 있단다. 우리의 가슴뼈는 새들의 그것처럼 발달되어 있어. 가슴 근육이나 오훼골(척추동물의 흉부를 형성하는 뼈의 하나. 위팔뼈 위쪽 끝의 앞부분에 있으며 어깨뼈, 빗장뼈와 함께 팔 이음 뼈를 구성한다.) 위의 근육이 단단히 붙어 있도록 충분히 발달되어 있지. 또 꽁무니뼈도 우리의 조상이 날았다는 증거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면 어떤 새든 부채꼴로 늘어선 꽁지깃이 있지. 그 꽁지깃을 지탱하는 작은 꽁무니뼈가 있는데, 이것은 공기역학적 효과와 실용성 측면에서 꼬리뼈의 끝부분은 생략되어 작은 돌기모양의 뼈가 되어 버린 것이야. 우리에게도 바로 그 새와 같은 작은 꽁무니뼈가 있단다. 고도로 발달한 정교한 작은 골 역시 언젠가 우리 조상들이 순식간에 방향과 자세를 바꿔가며 고도의 조종 능력을 발휘해 하늘을 날았다는 증거란다.”

수천, 수만, 수백 만 년 전의 펭귄이 진화해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어 왔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까마득한 과거 언젠가 하늘을 나는 펭귄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천, 수만, 수백 만 년의 시간이 또 흐른 뒤 이 지구 어딘가에 마치 TV 광고 속 한 장면처럼 하늘을 힘차게 날아오르는 펭귄이 다시 등장하게 될까? 그런 날을 상상해 본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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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65 호/2010-11-29

나이 들면 입맛도 늙는다
“홍시입니다. 홍시 맛이 나옵니다.”
장금은 단맛이 나는 고기를 씹더니 대번 ‘홍시’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정 상궁은 방금 금영이 고기를 만들 때 ‘물엿을 썼다’라고 말해 흐뭇했던 마음이 싹 가셨다. 대체 저 아이는 어찌 ‘홍시’를 운운한단 말인가. 혹시 장금이란 녀석이 자신의 관심을 끌려고 엉뚱한 답을 말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정 상궁은 무서운 얼굴로 이유를 물었다.

“어찌 홍시라 생각하느냐?”
“예? 저는… 제 입에서는…,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장금은 맑은 눈망울을 굴리며 우물쭈물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했다’니 정말 맛을 보고 대답한 게 확실했다. 놀란 정 상궁은 굳었던 표정을 풀며 크게 웃었다.

“호오~ 타고난 미각은 따로 있었구나! 그렇지, 홍시가 들어있어 홍시 맛이 난 걸 생각으로 알아내라 한 내가 어리석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절대미각을 인정받은 장금은 궁중 최고 요리사로 자리 잡았고, 40년 넘게 전설의 절대미각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최근 장금에게 고민이 생겼다. 새로 왕위에 오른 젊은 임금이 자신이 만든 음식에 대고 짜다, 시다 불평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체 임금의 입맛이 얼마나 까다롭기에 절대미각 장금의 손맛에 넘어오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고민에 빠진 장금은 한 상궁을 찾았다. 한 상궁은 장금이 등장하기 전 수라상을 책임진 사람이다. 장금이처럼 맛에 일가견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 사신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마마님, 저는 어쩌면 좋아요. 새 임금님은 제가 만든 음식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입니다. 매번 수라를 받으실 때마다 짜다거나, 시다는 불만이 나오지 않은 적이 없어요. 다른 상궁은 다 맛있다고 하는데 임금님만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요.”

울상을 짓는 장금을 보고 빙그레 웃음 짓는 한 상궁. 다짜고짜 장금에게 나이를 물었다. 장금은 10살 즈음 궁에 들어와 40년을 넘게 지냈으니, 50이 훌쩍 넘었다.

“그 나이가 됐으니 혀도 나이가 든 게야.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는데 맛봉오리라고 멀쩡할 리가 있겠니?”
네? 혀도 나이를 먹는다고요? 마마님,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맛봉오리는 또 무엇인가요?”
“수라간을 나와서 서책을 좀 봤더니 맛에 대한 이야기도 있더구나. 거기서 본 건데 우리 혀에는 ‘미뢰(味蕾)’라고 부르는 맛봉오리가 있다고 해. 여기에는 맛을 느끼는 세포, 미각세포들이 있어서 맛을 느끼게 해준단다. 신맛과 쓴맛, 단맛, 짠맛을 느낄 수 있는 게 바로 이 세포들 덕분이지.
“그런데 나이가 들면 맛봉오리가 달라진다는 말씀이옵니까? 맛만 보고 홍시를 알아낼 수 있는 제 미뢰들이 늙어버렸다고요?”
“늙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이를 먹으면 맛봉오리의 크기도 줄어들고 숫자도 적어진단다. 보통 혀의 앞쪽에 단맛과 짠맛을 느끼는 맛봉오리는 기능이 떨어지고, 혀의 뒤쪽에 분포하는 신맛과 쓴맛을 느끼는 맛봉오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잘 기능한다고 해. 덕분에 나이 들수록 단맛과 짠맛은 잘 못 느끼고, 신맛과 쓴맛은 잘 느끼게 된단다. 이런 변화는 45세부터 시작되고 60대에 최고조에 달한다는구나.”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있나. 장금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느끼는 맛이 예전과 다르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조선 최고의 맛’을 자부했던 장금의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이를 살피지 못한 한 상궁은 계속 맛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다.

“맛에 둔해진다고 생각해보렴. 짠맛을 잘 느끼지 못하면 음식에 더 많은 소금을 넣게 되겠지. 그래서 상감마마께서 네 음식이 짜다고 여기셨을지도 모르겠구나. 또 나이가 들면 입과 입술 근육의 탄력이 떨어지고 침의 분비량도 줄어들지. 이런 것도 맛을 느끼는 데 영향을 준단다.
“노인들이 단 음식을 많이 먹고, 음식도 짜게 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병에 걸릴 수도 있겠네요.”
“그렇겠지.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먹는 습관을 더 잘 들여야 하는 거란다.”

장금이 한층 침울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야 장금의 표정을 눈치 챈 한 상궁은 빙긋 웃으며 장금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렴. 미각은 타고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 교육을 통해서 익혀지는 것이란다. 혀를 통해 직접 느낀 맛은 냄새와 함께 뇌에 남겨지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게 뭐겠니? 바로 기억이란다. 많이 먹어볼수록 미각도 더 섬세해지고, 맛도 더 잘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맛도 아는 만큼 느끼는 거란다. 너는 어려서부터 지금껏 많은 식재료를 맛보고, 음식도 만들었으니 그 기억이 모두 남아있을게다. 지금 상감마마의 까다로운 식성에도 곧 익숙해질게야.”
“네…. 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아지질 않습니다.”
미각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수분과 영양소가 풍부한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먹는 것도 도움이 될게야. 음식에 들어가는 소금과 설탕을 조절해서 맛봉오리가 상하는 것도 막아주고 말이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장금. 한 상궁은 50세가 훌쩍 넘은 제자가 아이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수라상에서 손을 뗄 때 느꼈던 감정도 떠올랐다.

“장금아, 나이가 드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란다. 너는 오랜 시간 동안 음식을 만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지식도 쌓지 않았니? 그게 다 나이가 들어서 가질 수 있는 능력이란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훗날 수라간을 떠날 때가 되면 나와 함께 음식에 대한 서책이나 보자꾸나. 책 속에는 우리가 음식을 만들며 보지 못했던 세상이 많단다.”

한 상궁의 따뜻한 표정을 보며 장금은 힘을 냈다. 홍시 맛을 알아낸 어린 장금이 음식과 맛 연구자로 다시 태어날 꿈을 품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감나무에 걸려 햇살을 받은 홍시 하나가 무척 탐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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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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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실물이 작은 책이었다. 가로 세로 모두 내 손을 쫙 폈을 때의 길이다.
표지를 들여다 보며 신기해 했다.
분명 모형을 만들어서 사진을 찍었을 텐데, 이렇게 디테일하게 주거지의 모습을 표현해 낸 것이 말이다.
물론 우리가 늘 살고 있는 공간이긴 하지만, 웬만한 관찰력과 주의력을 갖지 않고는 재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가운데 층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것은 반장 할머니인데 할머니의 정체가 뭔지 궁금하다.
쥐...일까?? 혹은 늑대???
그 아래층에 곤히 잠들어 있는 이는 고양이일까? 정확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들의 아파트를 둥근 보름달이 환히 비추고 있다.

아주아주 무더운 여름날 밤이었고,
그래서 잠도 잘 오지 않았고,
무엇도 할 수 없는 날이었다.
모두들 창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을 쌩쌩 틀고,
선풍기도 씽씽 틀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왼쪽 윗쪽으로는 슬며시 녹고 있는 달이 지상으로 뚜욱 뚝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쉬이 잠을 청할 수 없는지 술 한 잔씩 들이키기도 하고,
야밤에 공연 실황을 지켜보는 모습도 보인다.
베란다 밖으로 에어컨의 실외기가 보인다.
동영상이 아니라 확인할 수 없지만 아마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무더운 만큼 달이 녹는 속도도 더 빨랐을 터!
달이 녹아서 떨어지는 소리를 반장 할머니가 듣고 말았다.
어이쿠! 이러다가 모두 녹아 버리겠네!
할머니는 잽싸게 움직여 큰 고무 대야로 달방울들을 받았다.
받고 나서 보니 이걸로 뭘 할까 고민이 된다.
할머니는 노오란 달 물을 샤베트 틀에 나누어 담고 냉동칸에 넣어두었다.
안쪽에 전구를 넣고서 찍었는지 유난히 반짝이는 불빛이 정말 달빛을 담아둔 것처럼 보인다.

에어컨은 쌩쌩,
선풍기는 씽씽,
냉장고는 윙윙!
앗! 그렇지만 뭐든지 과하면 다치는 법!
전기가 팍! 나가고 말았다.
이렇게 더운 날에 전기가 나가다니, 앞이 깜깜한 노릇!
온 세상이 깜깜해졌는데도 반장 할머니 집에서는 밝고 노란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모두들 열을 지어 빛을 따라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문을 열고 달샤베트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아주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달샤베트!
신기하게도, 달샤베트를 먹고 나자 더위가 싹 달아나 버렸다.
그림 상으로도 모두의 쭈뼛 선 털의 느낌과 놀란 얼굴,
그리고 캄캄한 와중에 밝은 빛 덕분에 독자도 같이 시원함을 느낀다. 오싹~이랄까.

모두들 모처럼 선풍기와 에어컨 대신 창문을 활짝 열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한 꿈을 꾸었을까.
평화로운 밤이었다.
그런데...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
아, 저 친구들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달이 녹아버렸으니 옥토끼들이 대체 어디서 떡방아를 찧겠는가.
저 지친 얼굴이라니...
반장 할머니가 묘안을 짜낼 차례다.

할머니는 식탁 위에 놓아두었던 빈 화분에 남은 달 물을 부어주었다.
그러자 달처럼 환하고 커다란 달맞이꽃이 피어났다.
꽃송이는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고 예쁘게, 예쁘게 피어났다.
정말로 달맞이꽃이 이렇게 생겼나 찾아보니 비슷하다.
책 속의 달맞이꽃이 더 예쁘다.
내가 기억하는 달맞이꽃은 황미나 작품 '아뉴스데이'에서의 꽃인데 사진으로 보니 반갑다. ^^

달맞이꽃이니, 달을 맞아야 할 터!
새까만 밤하늘에 작은 빛이 피어나더니 점점점 자라나 커다랗고 노랗고 둥그런 보름달로 변신했다.
아, 맛있어 보이는 예쁜 달이다.
저 꽃잎 속에는 노오란 전구가 들어있을 것만 같은 눈부심이다.
이제 토끼들도 새 집에서 잘 살 것이고,
할머니는 긴 저녁 밤을 정리하고 달콤한 잠을 이룰 수 있을 테다.

달 샤베트라니,
아이디어가 정말 훌륭하다.
책의 맨 뒤에 이 책을 만들기까지 도움 준 사람들의 이름이 정리되어 있다.
책요정은 뭘 한 사람일까?
큰도움과 글도움, 제작도우미가 각각 다르다.
끊임없는 조언과 의논,현실적인 조언의 상대도 있다.
그림책의 영감과 응원을 준 이들이 있고,
힘솟는 케이크라니, 케이크 선물해준 분도 있나 보다.
육아와 집안일 큰도움을 주신 분도 있다.
모두들 이 책의 공로자다.

지구의 내일을 위해 콩기름으로 인쇄를 했고, 비닐 코팅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쩐지 광택이 덜하다고 느꼈는데 그런 깊은 의미가 있었다니...
파손과 더러움의 위험이 더 있다고 하나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다.
솜씨도 맵시도, 맘씨까지도 고운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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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2-12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이 책 참 예뻐요.
전 달 그림에 좀 환장을 하는 과 거든요.
저 점이 손톱만 했다가 점점 커져서 송편 같앴다가 보름달이 되는 저 과정 그림 참 예뻐요.
저 달맞이 꽃도,달맞이 꽃 속에 노란 전구가 들어 있을 것 같다는 님의 상상력도,다 이뻐요~^^

마노아 2010-12-12 10:15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달 나오는 그림책들이 모두 참 예뻤다는 생각이 들어요.
달이 변하는 모습은 참말로 매력적이에요. 어찌나 새침하고 복스럽던지요.
헤헷,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2010-12-12 0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2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12-1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마노아님의 포토리뷰에 큰 빚을 지고 있어요! 마노아님의 포토 리뷰를 보고 조카에게 사줄 그림책을 골라요. 그리고 이 책 그림이 참 좋아서 또 사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조카에게 줘야겠어요! 히히 (4개월된 조카인데..ㅎㅎ)

마노아 2010-12-12 14:29   좋아요 0 | URL
백희나 씨 책은 구름빵도 참 훌륭해요. 자매품으로 먼지깨비가 있어요.ㅎㅎㅎ
그것도 제 사진 들어간 리뷰가 있을 거예요.
타미를 위한 예쁜 그림책들이 운동장 열바퀴를 돌고 있어요.
그게 저도 막 신나요.^^ㅎㅎㅎ

BRINY 2010-12-12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책이 있었네요. 어린이가 아니지만 예쁜 것은 갖고 싶어지죠.

마노아 2010-12-13 00:26   좋아요 0 | URL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에 자연스럽게 호감이 가지요. 참 고운 책이에요.^^

같은하늘 2010-12-13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벼르고 벼르다 얼마전에 이 책 구입했는데,
책이 너무 작아서 살짝 실망했지만 그래도 좋아요~~~ㅎㅎ

마노아 2010-12-13 17:13   좋아요 0 | URL
책이 더 크면 환한 달빛이 더 찬란했을지도 몰라요.^^;;;

마녀고양이 2010-12-13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방울, 달샤베트, 달맞이꽃.. 어머, 이렇게 이쁜 어휘가.

진짜 달콤하네요. 그림책이나 마노아님의 글이나.

마노아 2010-12-14 00:53   좋아요 0 | URL
달달하니 달콤한 그림책이에요.^^
 
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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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 투표 결과를 기다리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대놓고 홍보는 못해도 브리 자를 들어 보이며 2번 찍자고 마구 꼬시던 나날들의 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 당선 확정 문구를 확인한 순간 눈물이 났다. 살면서 그렇게 정치인을 응원해본 적이 없었고, 지지하던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 그렇게 기쁠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그는 퇴임한 대통령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는 더 인기가 많아졌다. 5년 내내 너무 욕을 많이 먹어서 안쓰럽기까지 했던 그가, 이제 그 소박한 모습 그대로 고향 땅에 기대어 편히 살았으면 싶었다.  

그런데, 

2009년 5월 23일, 돌연 그가 죽어버렸다. 충격이었다. 그것이 자연사가 아니었고 사고도 아니었고 자살이었기 때문에 더 끔찍했다. 그가 죽음의 길로 떠나는 여정을, 국민들은 거의 생중계로, 실시간으로 맞닥뜨렸다. 고양이도 쥐를 사냥할 때 저리 구석으로 몰지는 않을 것 같은데, 불과 얼마 전까지 대통령 자리에 있었던 사람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몰아간 대한민국의 현실이 섬뜩하리만치 무서웠다. 무엇보다 그가 가여웠다.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흘렀더랬다.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울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죽음 앞에서 우왕좌왕했다. 그의 분향소에 꼬리를 물고 사람들이 찾아왔고, 국민장이 치러지는 동안의 그 수많은 인파, 그리고 봉하로 이어지는 추모 행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가 죽은 뒤에 많은 책들이 쏟아졌다. 생전에 준비하고 있던 책들도 있었고, 사후에 준비된 책들도 있었다. 많은 책들 중에서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 책이 나왔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생전에 원고 작업을 거의 해두었던 터였기에 '자서전'이란 이름이 무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출생해서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정치에 뛰어든 이야기는 '여보 나좀 도와줘'와 상당 부분 겹치지만 여전히 지루하지 않게 읽혔다. 그밖의 대통령의 자리에서 수행했던 많은 일들에 대한 고백과 퇴임 후의 이야기도 모두 그의 육성으로 들린다. 아직도 TV를 틀면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가난에 대한 설움을 온 몸으로 새기며 성장했던 인물이다. 대학을 가지 않고도 사법고시를 붙은 놀라운 이력을 가졌지만 그 무리 속에서는 여전히 미운 오리 새끼같은 존재였다. 판사가 되어보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고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알아서 굽실거리는 사람들, 안락한 생활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도 알았고, 나름 그 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부림사건'을 맡기 전까지는... 

고되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훌륭한 판검사 혹은 변호사가 되어 약자를 보호해주는 인물...은 아니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도 세속적인 가치를 아는 인물이었는데 독재 정권 하에서 죄없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죄인으로 둔갑하는 상황과 정면으로 맞닥뜨리자 그 안에 녹아 있던 연민이 폭발했다. 욱하는 성미가 있었던 그는 화끈한 느낌의 인권 변호사로 거듭났고,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동지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87년 6월이 되었다. 뜨거웠던 항쟁의 결과 대통령 직선제라는 열매를 거머쥐었지만, 그 단맛을 마신 것은 엉뚱하게도 노태우였다. 양김은 분열하였고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많은 피를 흘렸던 87년 항쟁이 그런 식으로 소화되는 것을 누군들 참혹한 심정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 와중에 김영삼 총재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는다. 그렇게 88년에 국회의원이 되면서 그는 정치인이 되었다. 연이어 청문회 스타로 발돋움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도 각인된 이름이 되었다.   

3당합당할 때는 또 어땠는가. 모두가 비겁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주먹 불끈 쥐고 "이견 있습니다. 반대 토론을 합시다."라고 외쳤던 인물. 이 장면을 나중에 TV에서 보면서 피가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쇼맨쉽이 아니라, 진정성,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되고 다시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많은 고개가 놓여 있었다. 그는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진절머리나는 지역구도를 타파하고자 가능성도 없는 지역구에서 몇 번이나 선거를 치렀고 대권에 도전하기 위한 경선 과정의 험난함도 만만치 않았다. 보수 언론은 또 얼마나 그를 뒤흔들어 놓았던가. 그때마다 '원칙과 소신'을 외치며 물러서지 않던 그는 마침내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해프닝도 참 많았다. 대통령 후보가 미국 한 번 방문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측근들이 불안해 했던 것이다.  

기나긴 논란 끝에 미국 방문 문제를 정리했다. "갈 일이 있으면 간다. 일이 없어도 한가하면 갈 수 있다. 그러나 바쁜데 일도 없으면서 사진 찍으러 가지는 않겠다." 갈 일도 없고 바쁘기도 해서 결국 미국을 가지 않은 채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이 일을 겪으면서 우리 나라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미국 앞에서 주눅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일수록 더 그랬다.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가 미국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것을 불안하게 여긴다는 근거 없는 불안감.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이런 것에 휘둘려 일도 없이 사진 찍으려고 미국에 가는 것은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187쪽 

버지니아 총기 난사 사건이 생각난다. 당시 살해범 조승희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기에 사람들은 그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에 무언가 불똥이 튈까 봐 전전긍긍했다. 오히려 이상하게 본 건 미국쪽이었다. 그 사건은 '그들'의 문제였지 대한민국의 일이 아닌데도 우리는 얼마나 비굴한 모습을 보였던가.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만날 때의 비교되는 사진이 오래오래 인터넷을 달구기도 했다. 슬픈 자화상이다.  

대통령 선거 전날 정몽준 의원이 후보 지지를 철회했었다. 하루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벌어진 날벼락이었다. 거기에 대한 이야기도 책 속에 언급되어 있다. 정몽준은 당시 권력분점을 문서로 보장받으려고 했다. 거절하자 구두 약속이라도 원했다. 마찬가지로 거절했다. 측근들은 비공개 약속이라도 해주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했지만 그것도 거절했다. 거짓 술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실패한 대통령이 되느니 차라리 실패한 대통령 후보로 남겠다는 게 그의 의지였다. 여전히 원칙과 소신이다. 남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격하게 들이대는 그의 기준 말이다. 

결국 후보 단일화는 되었고 같이 유세장을 돌았다. 나중에 들으니 정몽준은 둘이 유세할 때 다른 정치인을 단상에 올리지 않기로 양해를 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에서처럼 선거운동 마지막 날에 그동안 함께 수고한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정동영과 추미애 의원을 단상에 올렸다. 구겨지는 정몽준 대표의 얼굴. 이것이 폭탄의 뇌관을 건드린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아이러니. 그가 후보 지지를 철회한 것은 오히려 국민들의 뇌관을 건드렸다. 동정표가 쏟아진 것이다.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는 제목의 조선일보 1면 기사 역시 양날의 칼이 되었다. 참으로 극적인 순간들이었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야당과 보수 신문들의 협공을 받아야 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제목 아래 얼마나 닥달을 당했던가.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던 야당도 나빴지만 더 나빴던 것은 언론이었다. 

20년 정치를 하는 동안 언론과는 늘 불편한 관계였다. 정치인과 언론은 어느 정도 관계가 불편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신문들은 ‘특별하게’ 불편한 관계였다. 그들은 임기 내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했다. 나는 그 신문들과 끝없이 싸웠다. 그들은 몇 백만 부의 발행부수로 표현되는 막강한 미디어의 힘으로 나를 공격했다. 논리의 힘, 사실의 힘, 진실의 힘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싸움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무기로 쓰지 않았다. 국민이 언론과 싸우는 데 쓰라고 그 권력을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인의 권리, 시민의 권리만 가지고 싸웠다.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믿었기에, 패배했지만 끝까지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독재 시대 그 신문들은 국가 권력에 종속되어 있었다. 정부가 준 보도지침을 충실하게 따랐고, 그 대가로 여러 가지 특권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눈물겹게 노력하고 희생을 감수한 기자들이 그 시대 언론의 역사를 빛나게 했지만, 이 신문사들은 부당한 기득권의 성벽 안에서 정치 권력과 유착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정치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난 보수신문들은 시장 권력과 유착되었고 그 자신이 새로운 사회적 권력이 되었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언론 자유의 과실을 먹으면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권력이 된 것이다. – 276쪽

권위주의를 벗어던진 대통령은 근사하지만, 그가 내던진 권위를 엉뚱하게 그의 정적들이 겹쳐 입었다. 대통령이 만년필을 쓰지 않고 플러스 펜을 쓴다는 것까지 트집 잡아 비아냥대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난뱅이 상고 출신의 대통령이라니, 언감생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방해와 모략과 저주는 치열할 지경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의 모든 행보가 다 박수받을 만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어느 누구라고 그런 길을 갈 수 있을까. 양극화가 심화되었지만 그 한 사람의 탓으로 몰아붙이기에는 지나치다. 전 세계적 흐름이었으니까.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박정희 때부터 이미 준비했던 것이라고 한다. 서울, 정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지 않은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이라크 파병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의 이야기를 한 번은 들어보자.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서 파병한 것이다.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오류의 기록을 역사에 남겨야 하는 대통령 자리, 참으로 어렵고 무거웠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어쩔 수 없이 보내기는 했지만 최선을 다해 효과적인 외교를 했다. 애초 미국의 요구는 1만 명 이상의 전투병력 파견이었다. 청와대 안보팀과 국방부는 최소 7,000명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참모들이 파병 자체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론은 전투병 3,000명을 보내되 비전투 임무를 주는 것이었다. 이런 절충적 해법을 찾고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데서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파병 반대운동이 큰 의지가 되었다.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운동과 매우 비판적인 국민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도 이런 수준의 파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 245쪽

시민 한 사람과 대통령으로서의 선택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것이 일치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노력할 뿐. 그나마 시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저 정도 수준에서 그칠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더 크게, 더 많이 반대하고 그리하여서 그것을 지지 세력으로 만들어 주었더라면 조금 더 힘낼 수도 있었을 텐데, 국민의 책임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 대통령 때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았었다. 아무래도 '효과' 측면에서. 저들이 불안해 하고 있으니 먼저 신뢰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얘기에 한숨이 나왔다. 남북관계. 이렇게나 멀어져 버리고, 이렇게나 힘들어져 버렸는데... 과연 저 위에서 '정치'라는 것을 하는 인물들은 '평화'를 바라기는 하는 것일까? '평화'라고 쓰고 읽기는 '전쟁'이라고 읽는 것은 아닌지...... 

재임 시절, 그는 권력기관을 자신의 정보 기관으로 전락시키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었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야 마땅했고, 그랬기에 지켰다. 검찰 개혁을 위해서 애썼지만 검찰은 바뀌지 않았다. 과거 독재 정권 하에서 온갖 비리와 인권 탄압에 앞장섰으면서도 과거사 정리와 그에 대한 반성을 끝까지 거부했던 자들이다. 드라마 '대물'을 보면서 하도야 검사를 마구 응원하게 된다. 저런 사람이 검찰 안에서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서 내부로부터 개혁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서 국세청을 동원한 적 없고, 국정원을 움직인 일도 없건만, 그가 퇴임한 이후 그는 말도 못할 수모를 그들로부터 당해야 했다. 측극의 목을 죄어오는 것이 그로서는 더 큰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그의 임기 말년에 치러진 대선에서 우리는 못볼 꼴을 참 많이도 보았다.  

지난 시기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권교체와 같은 민주주의 가치, 역사의 정통성, 권위주의 해체, 법치주의의 실현, 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 그런 것들이 주제가 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반듯한 사회’를 주장했고 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떳떳한 국민, 당당한 나라’와 같은 가치를 선거구호로 내걸고 선거전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것이 잘못되었다”, “무엇을 바로잡고 발전시키겠다”, “무엇을 개혁하겠다”, 이런 것이 없었다. 국가의 주요 과제, 예컨대 남북관계나 평화 정책과 같은 문제들이 전혀 쟁점이 되지 않았다. 토론회에서도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고, 그렇게 진행은 되었지만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 없이 다 그냥 넘어갔다. “경제 잘하는 솜씨 좋은 대통령이다.” 이런 주장만 들렸다. 지도자의 도덕성 검증도 흐지부지 지나갔다.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와 역사의 중요 과제가 제출되고 국민과 함께 토론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새 정부가 그 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그런 과정이 아예 생략되고 말았다. – 292쪽  

대선 후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어떤 비리가 감춰져 있건 상관없이 무조건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오죽하면 그럴까... 라고 이해하기에는 용납이 되질 않았다. 사실, 묻고 싶었다. 그래서, 살림살이 많이 나아지셨나요?  

새해 예산안을 보고 기겁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후안무치일 수가. 형님 예산은 뭐고 영부인 예산은 또 뭔가. 밥 굶는 학생들 식비 하나 대주지 않고 강바닥만 파겠다고 하는 이런 나라를, 과연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환멸이 쌓이고, 불신만 높아가고, 좌절만 깊어간다. 그렇게 더 정치에 눈을 감게 만들고, 내 앞가림 하기에 급급하게 만드는 게 저들의 수작같은데, 그 수작에 놀아나지 않고 살기가, 너무 힘이 든다. 전직 대통령도 자살할 수 있는 미친 나라라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치솟는다.   

그가 죽었을 때, 그가 죽임 당했을 때, 분노와 두려움으로 오래오래 떨어야 했다. 꼭 그렇게 가야만 했을까, 원망이 들기도 했다. 그가 절망한 세상이 우리 모두의 절망 같아서 막막하고 먹먹하기만 했는데, 책을 보면서 오히려 조금은 기운이 난다. 그는 죽음 외에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지만, 그것이 완벽한 포기와 절망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이를 지니고 살았던 그는, 반칙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대한민국을 그런 믿음 위에 올려놓으려고 했다. 그 믿음이 국민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한, 노무현이 대통령일지라도 그 시대는 ‘노무현 시대’일 수 없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다 이루지 못했던 꿈을 마저 이루기 위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시민으로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가 그 꿈을 모욕하고 짓밟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그는 생명을 버렸다. 그가 생명을 던진 그 자리에,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의 꿈만 혼자 남았다.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이 그렇게 살아 있는 한, 그를 영영 떠나보내지는 못할 것 같다.– 351쪽

이 책을 정리한 유시민의 글이다. 그가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 그거 정말 우리 모두의 꿈 아니던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척이나 애썼던, 열정이 가득했던 한 사내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가 꿈꾸고 우리가 기대했던 '사람 사는 세상'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만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우리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던, 제법 괜찮았던 대통령을 한때 가진 적이 있었다. 참으로 순박하고 소박했던, 자연인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온통 피와 눈물로 얼룩진 현대사에 그런 인물 하나 새겨놓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지금은 고마운 기분이 든다. 그가 꾸었던 꿈을 함께 꿈꾸는 더 많은 사람들을 남겨놓았으니, 그는 할만큼 했다. 이제는, 부디 편히 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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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0-12-1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담스러운 책이에요. 올려주신 사진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집에 이저런 노무현 관련 책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책만은 가지고 있기가 겁나네요.그런 책이에요...

오늘은 그리운 맘에 반가운 맘으로 마노아님이 올려주신 사진과 글 밨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기막힐 노릇입니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아직 그 분이 이리 그리우니 어쩜좋습니까...

마노아 2010-12-11 10:42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부담스런 마음으로 사두고 한참을 못 읽었어요. 뒷부분까지 읽어나가는 동안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서거 직전 부분부터는 감정이 자제가 안 되더라구요.
'노무현이 없다'를 읽고 싶은데, 조금 더 기다려야겠어요.
이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꽤 오랫동안 지고 가야 할 부채 같아요.
무겁다고 말하기도 미안한 빚 말입니다.

프레이야 2010-12-1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진지하고 정성들인 리뷰 너무나 잘 읽었어요.
특히 이라크 파병 관련 인용글은 그분의 마음을, 눈물나게, 들여다보게 하네요.
참 진심과 전력을 다했구나, 느껴집니다.

마노아 2010-12-12 00:49   좋아요 0 | URL
정말 열심히 진심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는 게 슬퍼요. 이제라도 알아준다면 좋을 텐데, 소원한 일 같기도 하고요. 생각하면 늘 마음이 짠해져요.

2010-12-12 0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2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12-1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인용문 만으로도 울컥 해버려서 저는 아마도 이 책을 읽지 못할 것 같아요.

마노아 2010-12-12 13:32   좋아요 0 | URL
책을 읽기 전에 준비운동이 필요했어요. 일년도 더 지났고, 그 사이 많이 무뎌졌을 법도 하건만 착각이었어요. 앞으로도 쉽게 편해지지는 않을 거예요.

같은하늘 2010-12-1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분의 책을 여러권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사진집을 휘리릭~~ 넘기다 눈물을 흘린 후로는 그 분의 책을 다시 볼 수가 없어요. 책 속에 담긴 사진들이 뭔가를 얘기하는 듯 해서요.ㅜㅜ

마노아 2010-12-13 17:11   좋아요 0 | URL
영국에서는 다이애너비가 죽은 후 사람들이 많이 울어서 눈물에 의한 정화로 스트레스지수가 감소했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도리어 기막힌 죽음에 스트레스지수가 더 높아진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 책도 마음 아프지만 찾아보려고 해요. 도서관에서 대출은 안 되지만 열람은 가능할 거예요.ㅜ.ㅜ

Mephistopheles 2010-12-13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없다보니 그냥 쳐다만 보고 있는 지경입니다..^^

마노아 2010-12-13 17:12   좋아요 0 | URL
책꽂이에 꽂아두면 제목이 눈에 박히듯이 들어와요. 운명, 일까요..

섬사이 2010-12-13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읽기가 두려워요, 저는.
그 분의 책을 읽다가 볼썽사나운 제 모습과 마주치게 될까봐.

마노아 2010-12-13 17:12   좋아요 0 | URL
우리에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오래오래 마음에 담길 사람이에요.
 
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구판절판


내 인생의 실패는 노무현이 것일 뿐, 다른 누구의 실패도 아니다. 진보의 실패는 더더욱 아니다. 내 인생의 좌절도 노무현의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좌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이 진보의 모든 것을 망쳤다고 덮어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노무현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것도 옳은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노무현은 정의나 진보와 같은 아름다운 이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나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정의와 진보를 추구하는 분들은 노무현을 버려야 한다. 나의 실패가 모두의 실패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실패는 뼈아픈 고통을 준다. 회복할 수 없는 실패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 나는 이 고통이 다른 누구에겐가 약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쓴다.-36쪽

버림받은 사람은 도덕적 성숙을 이루기 어렵다. 자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자부심이 있어야 모범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시켜야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기화, 참여, 책임...... 대통령을 하면서도 늘 이런 것들을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했다.-58쪽

5공청문회는 1989년 들어 민정당의 거부로 중단되었다. 그러다 연말이 다가온 시점에서 마지막 절차로 광주특위와 5공빌특위 합동회의를 열어 전두환 씨를 증인으로 부르기로 여야 지도부가 합의했다. 그런데 합의의 핵심이 모든 질문을 서면으로 내고 전두환 씨가 일괄 답변하는데, 추가 질의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988년 12월 31일 합동청문회에 나온 전두환 씨는 증언이 아니라 일장연설을 했다. 광주학살 대목에서 그가 "정당한 자위권 발동"이라고 하자 평민당 정상용 의원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평민당 이철용 의원은 증언대로 뛰어가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민정당 의원들이 삿대질을 하고 맞고함을 지르면서 청문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통일민주당 지도부에서 "평민당이 과격 이미지를 다 뒤집어쓰게 생겼으니 얌전히 구경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민정당 의원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전두환이 아직도 너희들 상전이야!" 소란한 가운데 전두환 씨가 퇴장했다. 나는 통일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욕을 퍼부으면서 내 명패를 바닥에 팽개쳤다.-106쪽

3당합당은 두 가지 충격을 주었다. 첫째,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었고 영남은 보수 정치세력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가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 정치사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지역구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되었다. 둘째, 우리 정치를 통째로 기회주의 문화에 빠뜨렸다. 철새 정치의 수준이 달라진 것이다. 정치적 야심을 가진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려고 당을 옮겨 다니는 일은 그 전에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던 정치 지도자가 그런 일을 한 적은 없었다. 3당합당으로 인해 한국 정치는 적나라한 기회주의 문화에 휩쓸려 들어갔다. 소신도 원칙도 없이 국회의원 당선이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떼를 지어 보따리를 싸들고 이 당 저 당 돌아다니는 것이 별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116쪽

이때부터 20년 동안 나는 쉼 없이 싸웠다. 지역 분열주의에 맞섰고 기회주의에 대항했다. 내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내세웠던 구호 '원칙과 통합'은 이 기나긴 싸움의 핵심을 표현한 것이었다. 3당합당은 국갖거 분열이자 민주 세력의 분열이었기에, 분열에 가담할 수 없어서 통일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116쪽

87년 대통령 선거 때 두 지도자가 민주 세력을 분열시킨 이후, 그 분열을 치유하고 민주 세력을 통합하는 것이 모두의 과제가 되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이 그 반쪽을 들고 민정당과 합쳐 버리는 바람에 통합은 영원히 불가능하게 되었다. 한때 나의 영웅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은 '일그러진 영웅'이 되고 말았다. 나는 20년 동안 그가 만든 지역 분열의 정치구도와 싸워야 했다. 그가 만든 기회주의문화와 대결해야만 했다.-126쪽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씨는 원래 서로가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관계였다. 이회창 씨는 대쪽이라는 이미지로 김영삼 대통령의 초법적 국정운영에 반기를 들어 인기를 얻었던 사람이다. 그 두 사람으로 하여금 손을 잡게 만들었던 것은 대구와 충청도의 이반이었다. 그때까지 조선 건국 이래 600년 역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정권교체가 없었다. 권력의 편에 서야만 비로소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역사였다. 권력에 맞섰던 사람 가운데 패가망신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손들의 앞길까지도 막아 버렸다. 적어도 무사하게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권력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시비를 가리지 말고 납작 엎드려 살아야 했던 기회주의 역사가 무려 600년이었다. 결국 이회창 씨도 조순 씨도 권력에 줄을 서야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쪽으로 간 것이 아닌가.-140쪽

여당 소속이 되면서 예전에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재야와 야당 시절 정치는 주로 투쟁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권력과 싸웠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위해 정부와 싸웠다. 야권통합과 정당 민주화를 위해 분열주의, 기회주의와 투쟁했다. 그런데 여당이 되고 보니 전혀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국가와 국민을 위험에서 보호하는 일,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일이었다. 특히 법률과 제도가 미비한 상태에서 처음 겪는 갈등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합리적으로 풀어 나감으로써 새로운 모범을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그런 경험이 축적되어야 합리적 갈등 조정 시스템과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153쪽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의 해방과 통합을 위해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했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 현대사의 존경받는 위인은 왜 패배자뿐인가? 우리 역사는 정의가 패배해 온 역사라는 말인가? 정의가 패배하는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나는 남북전쟁 종식을 눈앞에 두고 했던 링컨 대통령의 두번째 취임 연설문을 읽으면서 '정의를 내세워 승리한 사람'을 발견했다. 링컨슨 선거에서 숱하게 떨어졌다. 대통령 재임중에는 누구보다도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노예제 폐지론자와 노예 소유자들이 모두 그를 공격했다. 인기도 없었다. 그러나 링컨은 내전에서 패한 남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남과 북을 선과 악으로 갈라치지도 않았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도 쓰지 않았다. 정의와 평화, 연방의 통합을 위해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자고, 모든 이를 사랑하자고 호소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노예제 폐지와 연방의 통합, 둘 모두를 이루었다.-160쪽

인터넷 세상에서 나는 '바보 노무현'이 되었다. 유리한 종로를 버리고 또 부산으로 가서 떨어진 미련한 사람. '바보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 이래 사람들이 붙여 주었던 여러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내가 바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눈앞의 이익보다는 멀리 볼 때 가치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당장은 손해가 되는 일이 멀리 보면 이익이 될 수가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처럼' 살면 나라가 잘 될 것이다.-161쪽

나는 변호사로서 국회의원으로서 늘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도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노사모는 30대 회사원이 많았고 학력도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었으며 사는 형편도 나쁘지 않았다. 자기네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었거나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를 지지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원칙, 진실, 정의, 그런 보편적 가치를 지지한 것이다.-165쪽

나는 이회창 씨를 분열주의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맹목적인 반김대중 정서와 영남 지역주의 선동을 핵심으로 삼은 그의 선거 전략을 좌시할 수 없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이 더욱 회복하기 어려운 동서분열의 덫에 걸려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또한 이인제 씨를 기회주의의 화신으로 간주했다. 그는 3당합당을 적극 지지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을 따라 민자당에 가서 노동부 장관을 하고 경기도지사도 했다. 1997년에는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해 이회창씨에게 지고서도, 이회창 후보가 아들 병역 문제 등으로 인기가 떨어지자 '경선 불복'을 하고 '국민신당' 후보로 출마해 3위를 했다. 그런 다음에는 야당을 하지 않고 여당인 민주당에 들어와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했다.-180쪽

선거캠프 안에서는 미국 방문 문제가 쟁점이었다. 모두들 하루라도 빨리 미국에 가라고 했다. 명을 내리기만 하면 미국 조야의 지도자들과 월가의 큰손들을 만나도록 주선하겠다고 했다. 한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미국을 한 번도 가 보지 않았고 비자조차 없다는 사실이 무슨 결격사유나 되는 것처럼 걱정했다.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미국에 가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누구도 딱 떨어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해도 한국 대선에 개입할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으니, 공해상에서 북한 화물선을 붙잡아 분쟁지역 불법 무기 수출 선박으로 몰아 안보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른바 '북풍공작'이다. 나는 미국 정부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고, 그런다고 해서 꼭 내가 손해를 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186쪽

기나긴 논란 끝에 미국 방문 문제를 정리했다. "갈 일이 있으면 간다. 일이 없어도 한가하면 갈 수 있다. 그러나 바쁜데 일도 없으면서 사진 찍으러 가지는 않겠다." 갈 일도 없고 바쁘기도 해서 결국 미국을 가지 않은 채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이 일을 겪으면서 우리 나라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미국 앞에서 주눅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일수록 더 그랬다.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가 미국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것을 불안하게 여긴다는 근거 없는 불안감.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이런 것에 휘둘려 일도 없이 사진 찍으려고 미국에 가는 것은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 방문을 대통령 선거 후로 미루었다.-187쪽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였다. 우리 역사에 그런 지도자는 없었다. 정말 오랜 기간 동안 독재와 싸웠다. 암살 위기도 겪었다. 구속당하고 연금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그래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민주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국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나면 그런 사람은 보통 투표를 할 필요도 없는 수준의 지도자가 된다. 건국의 아버지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 바츨라프 하벨, 레흐 바웬사 대통령이 모두 그랬다. 그것이 정상이다. -188쪽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6.10민주항쟁 이후 민주세력이 분열되었고, 냉전 시대 독재정권이 그가 마치 공산주의자인 것처럼 이미지에 덧칠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김대중 대통령을 민주주의 지도자가 아니라 친북인사 또는 용공분자인 것처럼 잘못 보았다. 게다가 호남인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과 지역감정까지 작용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국민의 지도자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해외에서 그런 것처럼 나라 안에서도 국보급 지도자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190쪽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쪽에,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 세력은 죽을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 나는 20년 정치 인생에서 이런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세력이 승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보수 세력은 조직이 매우 크고 강하다. 이념적으로 튼튼하게 결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의 결속력도 매우 강하다. 공동의 이익에 근거를 둔 네트워크를 감성적 네트워크로 재조직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어느 지역 어느 집단에서나 돈 많고 권력 있고 지위 높은 사람은 거의 다 보수의 네트워크에 가입되어 있다. 게다가 보수 세력은 인구가 많은 영남을 장악하고 있다. 큰 신문사, 큰 기업의 소유자, 큰 연구소를 모두 보수가 장악하고 있다. 법원, 검찰, 국정원 등 국가기관은 그 본질적 속성상 보수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라이온스클럽, 로터리클럽, JC(청년회의소) 등 경제적 여유가 있는 민간자생 단체와 지역사회의 소위 관변 단체들도 모두 보수가 우세하다. -204쪽

학술원과 각종 학회, 지식인 사회도 보수가 압도적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보수의 나라인 것이다.
반면 진보 세력은 지역으로 갈라져 있고 이념으로 분화되어 있다. 돈 있는 사람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단체가 별로 없다. 진보적 시민단체조차도 기업의 지원을 얻지 못하고 언론이 외면하면 힘을 쓰지 못한다. 튼튼한 정책연구소도 거의 없다. 그런데 보수의 나라에서 진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얕게 뿌리 내린 작은 나무에 너무 많은 과일이 매달린 형국이다. 두 차례의 대선 승리와 10년의 집권도 보수와 진보의 불균형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보수와 진보의 격차는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의 자산 규모 차이만큼이나 크다. 진보적인 대통령이라도 보수의 네트워크에 포위되어 고립당하면 힘을 쓰기 어렵다. 변명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는 그런 조건에서 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낮은 것도 같은 원인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데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4-205쪽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서 파병한 것이다.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오류의 기록을 역사에 남겨야 하는 대통령 자리, 참으로 어렵고 무거웠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어쩔 수 없이 보내기는 했지만 최선을 다해 효과적인 외교를 했다. 애초 미국의 요구는 1만 명 이상의 전투병력 파견이었다. 청와대 안보팀과 국방부는 최소 7,000명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참모들이 파병 자체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론은 전투병 3,000명을 보내되 비전투 임무를 주는 것이었다. 이런 절충적 해법을 찾고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데서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파병 반대운동이 큰 의지가 되었다.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운동과 매우 비판적인 국민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도 이런 수준의 파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245쪽

북한이나 미국보다 더 버거운 상대가 국내 여론이었다. 한국의 보수신문들은 미국 네오콘보다 더 강경했다. 한나라당은 한술 더 떴다. 야당이 국회에서 더 강한 압박과 실질적인 제재를 요구하면서 대통령을 비판하면 보수언론들은 그것을 머리기사로 다루어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했다. 그렇게 만들어 낸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대면서 또 대통령과 정부를 흔들었다.
만약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까. 북한에 대한 증오와 대결주의를 조장하는 정치인과 언론인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아무 대책도 없이 정서적 반감과 증오만 생산하는 그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북한과 미국 행정부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253쪽

20년 정치를 하는 동안 언론과는 늘 불편한 관계였다. 정치인과 언론은 어느 정도 관계가 불편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신문들은 ‘특별하게’ 불편한 관계였다. 그들은 임기 내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했다. 나는 그 신문들과 끝없이 싸웠다. 그들은 몇 백만 부의 발행부수로 표현되는 막강한 미디어의 힘으로 나를 공격했다. 논리의 힘, 사실의 힘, 진실의 힘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싸움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무기로 쓰지 않았다. 국민이 언론과 싸우는 데 쓰라고 그 권력을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인의 권리, 시민의 권리만 가지고 싸웠다.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믿었기에, 패배했지만 끝까지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독재 시대 그 신문들은 국가 권력에 종속되어 있었다. 정부가 준 보도지침을 충실하게 따랐고, 그 대가로 여러 가지 특권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눈물겹게 노력하고 희생을 감수한 기자들이 그 시대 언론의 역사를 빛나게 했지만, 이 신문사들은 부당한 기득권의 성벽 안에서 정치 권력과 유착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정치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난 보수신문들은 시장 권력과 유착되었고 그 자신이 새로운 사회적 권력이 되었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언론 자유의 과실을 먹으면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권력이 된 것이다.
-276쪽

언론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책임의식 부족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상관없다. 그러나 사회적 공론의 장을 열고 공정한 토론의 장을 여는 책임을 팽개쳐서는 안 된다. 정부의 언론 정책을 비판할 때에도 최소한 사실에 관한 정부의 주장은 함께 보도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에 대해서까지 정부의 주장을 봉쇄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말했더니, 그 말은 아예 소개도 해 주지 않았다.
언론은 시민의 권력이어야 한다. 시민을 대신해 정치 권력과 시장 권력을 감시하고 제어함으로써, 권력이 시민의 권리와 가치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그리고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차지하기 윟나 경쟁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도록 공론의 장을 관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보수신문들은 과거에는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거기에서 풀려난 다음에는 이 권력 저 권력과 유착하고 제휴했다.
-279쪽

나는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정치 권력입니까? 시장권력입니까? 시민권력입니까?"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소망을 가졌을 뿐이다. 제대로 된 언론이 시민 권력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그렇지 못한 언론은 시장 권력의 대리인이나 정치 권력의 대리인으로 그 본질을 드러내도록 투명하게 만들어 가는 것, 이런 정도를 바랐을 뿐이다. 이것이 잘못인가. 이것이 지나친 욕심인가. (...)
가장 막강한 권력은 언론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교체될 수도 없다.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 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복잡한 인과관계를 가진 것인데, 언론이 효과가 없다고 하면 정말로 효과가 없어지게 된다. 대통령과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당과 시민단체의 주장도 언론이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외면해 버리면 아무 힘도 쓰지 못하게 된다.
-280쪽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대결 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치가 발전하지 않은 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예가 없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제이다.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는 모두 최종적으로는 정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289쪽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독일식 권역별비례대표제가 제일 좋겠지만, 대도시에서 한 선거구에 여러 명을 뽑고 작은 도시와 농촌에서는 지금처럼 하나만 뽑는 도농복합선거구제라도, 한나라당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차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90쪽

지난 시기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권교체와 같은 민주주의 가치, 역사의 정통성, 권위주의 해체, 법치주의의 실현, 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 그런 것들이 주제가 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반듯한 사회’를 주장했고 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떳떳한 국민, 당당한 나라’와 같은 가치를 선거구호로 내걸고 선거전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것이 잘못되었다", "무엇을 바로잡고 발전시키겠다", "무엇을 개혁하겠다", 이런 것이 없었다. 국가의 주요 과제, 예컨대 남북관계나 평화 정책과 같은 문제들이 전혀 쟁점이 되지 않았다. 토론회에서도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고, 그렇게 진행은 되었지만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 없이 다 그냥 넘어갔다. "경제 잘하는 솜씨 좋은 대통령이다." 이런 주장만 들렸다. 지도자의 도덕성 검증도 흐지부지 지나갔다.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와 역사의 중요 과제가 제출되고 국민과 함께 토론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새 정부가 그 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그런 과정이 아예 생략되고 말았다.
-292쪽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와 검찰,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나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라고 조롱했다. 노무현의 인생만이 아니라 부림사건 변론을 맡았던 이래 내가 했던 모든 것을 모욕하고 저주했다.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 그리고 대통령직 5년을 포함한 정치 20년, 그 모든 것에 침을 뱉었다. 재판이 다 끝날 때까지 그런 일이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그들은 나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로 만들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 무엇인가를 도모했던 분들을 향해 말했다. 노무현의 실패가 진보의 실패는 아니라고, 노무현은 이미 정의니 진보니 하는 아름다운 이상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고. 노무현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으니 노무현을 버리라고.

-330쪽

(에필로그-유시민)
그는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다. 화려한 학력도 없었다. 힘 있는 친구도 없었다.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 반칙을 자행하는 자에 대한 분노,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열정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연민과 분노와 열정의 힘만으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처음에 혼자였던 그는 마지막에도 혼자였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높은 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그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끝없이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는 높은 곳에서 희열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만 기쁨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럴 때조차도, 함께 고통 받지 않으면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346쪽

그는 언론의 부당한 특권, 언론의 ‘조폭적’ 권력 행사, 언론인들의 오만에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도전했던, 단 하나뿐인 정치인이었다. 그가 비참하게 눌려 죽어 버린 이 나라에서, 앞으로 또 그런 도전을 감행하는 정치인이 나올 수 있을까?

-349쪽

2009년 5월 23일 아침 우리가 본 것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라 ‘꿈 많았던 청년의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1987년 6월항쟁은 우리 민주주의의 청춘이었다. 양김 분열과 3당합당,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거치며 모두가 중년으로 노년으로 늙어가는 동안, 그는 홀로 그 뜨거웠던 6월의 기억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살았다. 잃어버린 청춘의 꿈과 기억을 시민들의 마음속에 되살려 냈기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대통령을 마친 후에도 그는,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었다.
-350쪽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이를 지니고 살았던 그는, 반칙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대한민국을 그런 믿음 위에 올려놓으려고 했다. 그 믿음이 국민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한, 노무현이 대통령일지라도 그 시대는 ‘노무현 시대’일 수 없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다 이루지 못했던 꿈을 마저 이루기 위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시민으로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가 그 꿈을 모욕하고 짓밟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그는 생명을 버렸다. 그가 생명을 던진 그 자리에,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의 꿈만 혼자 남았다.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이 그렇게 살아 있는 한, 그를 영영 떠나보내지는 못할 것 같다.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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