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영화 10문 10답

Q1 최고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 

 인셉션 : 꿈에 들어가는 것도 놀랍지만 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이라니! 게다가 꿈 속에서 정보를 빼내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각을 심다니, 감독이 천재라는 것을 인증하고 만 영화였다. 일반 상영관에서 한 번 보고 아쉬워서 아이맥스에서 한 번 더 봤다. 그래도 아쉬웠다. 긴 상영 시간이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Q2 배우의 색다른 변신이 인상적인 영화

아저씨의 원빈. 대체로 보호받는 캐릭터를 연기했던 그가 작정하고 보호하는 역을 맡아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무지 멋졌는데도 여전히 모성본능을 자극시킨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꽃 미모 때문이었을 것이다.   

 

 

Q3 영화 속 최고의 커플 

엘 시크레토의 두 주인공. 포스터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화면에서 조금 아쉬웠는데, 영화가 끝날 때쯤 되면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용기있는 자 미인을 얻을 뿐 아니라 사랑도 쟁취할 수 있다. 마지막 용기를 내주어서 참으로 고마웠고, 기다려준 마음도 고마웠다. 서로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용기를 발휘해 주었으니 말이다.  


Q4 영화 속 최고의 패셔니스타

공기 인형의 배두나.  

인형 역이기 때문에 정말 인형같은 옷을 입고 활보할 수 있다. 메이드 복장이 너무 잘 어울렸다.  

길고 가는 팔다리. 배두나는 옷을 입어도 벗어도 아름다웠다. 같은 여자가 보더라도. 작품이 좋은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 

Q5 영화 속 최고의 패션 테러리스트 

 초능력자에서 강동원의 패션. 주구장창 단벌 패션인 것도 용납이 안 되고, 그 바람직한 허우대를 낭비한 느낌이어서 실망스러웠다. 사실, 영화가 배우의 비주얼 외에는 건질 게 없었기 때문에 실망이 더 컸을 것이다.  


 

 

Q6 영화 속 최고의 라이벌(적수)

이병헌과 최민식. 초반에는 둘이 제법 괜찮은 맞수이며, 이병헌이 적절하게 복수를 해줄 줄 알았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인간이 악마와 대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옥으로 같이 떨어질 뿐이다.



Q7 영화 속 최강의 액션 히어로

솔트의 안젤리나 졸리. 작품 속에서도 자기 같은 요원은 없다고 이미 말했다. 진정 천하무적. 어디에 갖다놔도 뭐든 다 해낸다. 사실, 그래서 좀 싱겁기는 했다. 2탄도 나올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게 된다. 아주 짧은 컷이라도 액션씬이 참 멋있었던 인물은 아이언맨2에서 스칼렛 요한슨이었다. 하지만 진짜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것!



Q8 이 영화의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속편이 나왔으면 싶은 영화 


절대적으로 인셉션!!





Q9 이 책은 영화로 한번 보고 싶다!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책

은교를 읽으면서 시나리오로 재탄생하면 무척 흥미진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극적인 반전과 숨막히는 긴장감 등에서 말이다.  

70 노인의 이적요 시인 역으로는 두 명이 떠올랐다. 안성기 씨와 문성근 씨. 두 분 모두 키가 180은 안 넘을 것 같긴 하지만, 연기력으로 커버가 가능할 것 같다. 서지우 역으로도 두 명을 생각했다. 류승룡과 이범수. 그리고 은교 역에는 서우가 떠올랐다. 17세 소녀 역이니 어려보이는 배우가 필요하고, 약간은 사람 홀릴 것 같은 천진함을 갖춘 배우랄까. 그나저나 미미 여사의 화차 영화화는 어찌 진행되고 있는 걸까???

Q10 이 영화에 이 배우는 미스캐스팅! 나라면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  

이끼에서 검사 역을 맡은 유준상. 사실 이끼는 캐스팅이 잘못 됐다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강우석 스타일의 코믹 영화로 만드느라 원작의 캐릭터와 너무 엇나갔다. 워낙 싱크로율 200%로 기대를 모았던 박해일을 빼고는 마음에 드는 캐스팅이 없었다. 이장도 그렇거니와 영지 역을 맡은 유선 씨도 결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지만 유준상 만했겠는가. 원작의 그 멋진 카리스마 박검사는 어디로 갔는지... 이런 역은 좀 더 날카로운 이미지가 필요할 것 같다. 누가 좋을까? 언뜻 떠오른 인물은 엄태웅이다. 쌍커풀이 없는 배우가 좋겠는데 엄태웅이 쌍커풀이 있던가??? 

**** 

여기까지는 10문 10답.  

그밖에 나의 2010년 올해의 영화들을 생각해 보았다.  

1. 올해의 영화 : 인셉션
2. 올해의 배우 : 서영희
3. 올해의 용두사미 : 트론-새로운 시작
4. 올해의 배신 : 초능력자
5. 올해의 수확 : 더 콘서트 
6. 올해의 감동 : 시, 인 빅터스
7. 올해의 러브러브 : 레터스 투 줄리엣
8. 올해의 복수 : 용서는 없다, 엘 시크레토
9. 올해의 웃음 : 하하하 
10. 올해의 눈물 : 웨딩드레스
11. 올해의 카리스마 : 대부 1.2 
12. 올해의 긴장감 : 언스토퍼블(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임에도 손에 땀이 맺혔다.)
13. 올해의 뒤끝 : 해결사를 누른 부당거래. 아주 착잡했다.
14. 올해의 살신성인 : 울지마, 톤즈
15. 올해의 발견 : 송새벽
16. 올해의 반짝반짝 : 크랙
17. 올해의 동심 : 맨발의 꿈
18. 올해의 눈요기 : 섹스 앤 더 시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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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2-2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아요, 난 올해 별로 좋은 영화를 많이 못 보고 놓쳤어요.ㅜㅜ
여기에서 내가 본 건 일곱 편 뿐이네요.

마노아 2010-12-27 15:46   좋아요 0 | URL
올해 본 영화를 다 상품으로 집어넣으면 너무 힘드니까 나중에 리스트를 뽑아볼까... 하다가, 생각해 보니 이미 리스트로 만들어놓고 하나씩 추가해 놓은 게 있어요. 그걸로 퉁쳐야겠어요.^^ㅎㅎㅎ
 
트론: 새로운 시작 - Tron: Legac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내용을 기대하는 건 실례. 아이맥스 3D 효과는 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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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12-22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광고만 보면 매트릭스처럼 신선한 충격을 받을거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봐요.
그래도 보고 싶은 영화에요 :)

마노아 2010-12-23 02:01   좋아요 0 | URL
저는 시사회로 보고 왔어요. 내 돈 주고는 보지 않을 테지만, 시사회로는 봐줄만 했어요. 근데 영화가 두시간 정도였는데 한 세시간은 앉아 있다 온 느낌이었답니다. 중간에 졸기까지...;;; 그치만 3D 효과는 아주 탁월했어요.^^ㅎㅎ

후애(厚愛) 2010-12-23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싶은 영화에요.^^
그런데 옆지기는 별로라고 하네요. ㅎㅎ

마노아 2010-12-24 02:03   좋아요 0 | URL
내용이 좀 허술해요. ㅎㅎㅎ
그래도 오락 영화로 나름의 장점이 있어요.^^

같은하늘 2010-12-23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하겠어요.ㅎㅎ

마노아 2010-12-24 02:04   좋아요 0 | URL
하핫,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ㅎㅎㅎ

2010-12-24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해마다 올해의 책이 있는 것처럼 올해의 드라마도 꼽아봤다. 2007년도에는 한성별곡을, 2008년도에는 일지매가, 2009년도에는 미남이시네요? 그리고 2010년에는 성균관 스캔들이 있었다. 원작이 워낙 유명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부러 방송 전에 보지 않았다. 원작을 능가하는 드라마를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이제 드라마를 먼저 본 나는 드디어 원작을 찾아 읽게 되었고 둘 모두 멋지다는 평범한 결론을 내려버렸다. 각자 매력 포인트가 다르긴 하지만. 

익히 알려진대로 이 이야기는 졸지에 성균관 유생이 되어버린 남장 여인 김윤희의 파란만장한 성균관 생활기이다. 그녀를 둘러싼 세 명의 남정네들과 함께 '잘금 4인방'으로 불리지만 이 책 1권에서는 아직 '잘금'의 ㅈ도 등장하지 않았다. 드라마에선 이선준이 김윤식의 실력을 알아보고 성균관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끔 다리를 놓았지만, 원작에서는 김윤희가 자청에서 사수 노릇도 하고 거벽 자리도 알아보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의 빈궁한 가세를 생각할 때 이쪽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굶어 죽나, 들켜 죽나 매한가지인 노릇이니. 

캐릭터들을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컸다. 드라마에서 뭘 극대화시켰는지, 어떤 점을 강조했는지 비교할 수 있고, 이 책에서는 어떤 점이 강점으로 드러나는지 찾아보느라 읽는 내내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먼저 이선준. 박유천이 연기한 드라마의 이선준은 워낙 법도를 중시하는지라 상당히 까칠했다. 김윤식과도 투닥거리고 으르렁거리는 장면도 초반에 꽤 많았다. 게다가 외관에서 보다시피 꽃미남이긴 하지만 육체파는 아니었다. 그런데 원작에서 묘사하는 이선준은 잘 생겼고 게다가 건장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무척이나 상냥한 사람이어서 처음 마주친 그 순간부터 이리 착한 사내가!라는 감탄사를 내놓게 했다.  

"모든 인간은 제가각 삶의 추를 가슴에 달고 있습니다. 추의 무게도 사람마다 제각각이지요. 나이가 어리다 하여 나이가 많은 이들보다 반드시 가벼운 삶의 무게를 지닌 것이 아니니, 눈물을 흘려선 안 된다는 법도 없습니다." -71쪽 

소과 초시에서 처음 만났는데 먼저 시권을 제출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이 내버리면 늦게 쓰고 있던 윤식이 초조해할까봐 배려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자신의 그런 배려를 포장하지 않고 자신이라면 그럴 것 같다고 말하는 겸손함까지. 기억나는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 나랑 같이 밥을 먹던 내 짝꿍은 무척 밥 먹는 속도가 느려서 빨리 먹던 나는 속도를 맞추느라 일부러 밥을 조금씩 남겨 놓았다. 미리 다 먹고 젓가락 내려놓으면 천천히 먹던 그 친구가 밥 먹을 때 불편할 것 같아서. 그런데 이 친구가 내가 일부러 천천히 먹는 것을 모르고 자기 밥 그만 먹겠다고 일어나는 게 아닌가. 아씨, 나는 밥 남길 생각 없었는데, 후다닥 먹어치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스윽 스쳐간다. 오래 됐지만 왠지 울컥! 

드라마에서 걸오가 처음 등장하는 씬이 참 멋있었다. 위험에 처한 윤희 낭자를 도와줬고, 험한 꼴을 볼까봐 눈을 가리고 상대를 제압했던 아주 멋진 장면! 많은 팬들이 거기서부터 걸오앓이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명장면이 원작에서 사실은 이선준의 것이었다. 오옷, 캐릭터가 차별화되니 이리 멋진 장면도 나눠쓰게 되는구나!  

윤희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은 사실 드라마에서 아주 멋지게 옷을 차려입었다. 훌륭한 원작 덕분이지만 그것을 시각화하고 입체적으로 만든 공로가 분명 있다. 그래도 주인공 윤희의 캐릭터는 아무래도 원작의 섬세함을 다 담아내지 못했던 듯하다. 뭐랄까. 그녀의 감정 곡선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양새가 정말 눈앞에 그려졌다. 내가 그녀였더라도 그랬을 것 같은 이심전심. 

초시 합격 발표를 보러 여자 옷 차림으로 나섰다가 이선준과 마주쳤을 때 재빨리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그 손길이 애처로왔다. 작아져서 팔목이 보이는 짧은 저고리, 상투를 투느라 짧아진 머리카락을 숨기느라 애써 선택한 새앙머리를 쓰개 치마로 급히 가리는 모습 등등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감추지 못한 낡은 치마의 빛바랜 색이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가난해도 의젓했던 윤희였지만 마음을 빼앗긴 상대 앞에서 아름답게 보이고픈 것은 당연한 욕망이니까. 

성균관에 들어가서 그녀는 내내 불안해했다. 여자인 것이 들통날까 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랬음에도 같은 중이방을 쓰는 이선준 앞에서는 자꾸 여자의 모습과 본능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그걸 다스릴 수 있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혹여 자신이 여자라는 것이 들통나면 그 불똥이 튈까 봐 이선준만은 제가 여자라는 걸 가장 모르기를 바라면서도, 그 앞에 여자로 설 수 없고 남자의 외피를 입고 있다는 것에 그녀는 자주 설움을 느낀다. 그러다가 윤식의 누이 윤희의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면 저도 모르게 선준 앞에서 그녀를 멋지게 포장을 하게 된다. 못하는 바느질 솜씨도 좋다고 떠벌리고 심성도 곱다고 제 입으로 자랑한다. 더불어 누이의 이름을 빌려 자신이 선준에게 느낀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은 슬프면서 아름다웠다. 아, 그 마음이 얼마나 요동쳤을까나.  

아직 1권만 보았기 때문에 몇 번 등장하지 않은 부용화 캐릭터는 진심을 잘 모르겠다. 양갓집 정숙한 규수로 나오는데 드라마에서는 깨방정 철딱서니 귀여운 아가씨로 등장해서 혹시 원작 소설도 그같은 본심이 있는 건지, 아님 정말 얌전한 처자인지 아직 모르겠다. 아무튼 부용화가 등장하는 바람에 윤희의 더듬이가 아주 예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남장을 하고 있어도 속이 여자인데 감까지 느려질 리가 없다. 더군다나 그녀는 이선준과 오래 함께 있을 수 없는 처지였다. 남장 노릇하고 있는 것도 그렇거니와, 집안을 생각한다면 과거에 급제하더라도 지방관 관직에 머물려 도성을 떠나 있어야 할 몸이었다. 그러니 매 순간 순간이 소중했고, 지금 이 순간을 방해받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싫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자신도 반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더욱! 그래서 일부러 서운하게 돌아서고, 그게 미안해서 다시 되돌아 보고, 그랬다가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더 큰 좌절을 느끼는 그녀는 천상 사랑에 빠진 처자. 이 책이 로맨스 소설이니까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미묘한 심리 묘사들과 상황 전개가 매끄럽고 자연스러워서 몰입감이 점점 커진다.  

드라마는 시각적인 요소를 위해 사실 고증에 있어서 많이 양보하거나 포기하고 넘어갈 때가 많아 보인다. 그런 면에서 책은 훨씬 더 당당하고 자유롭다. 이를테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밥상 없이 바닥에 전포 펼쳐 놓고 상을 대신하는 모습 등등 말이다. 드라마에선 모두 독상을 받았는데 성균관에서 그 많은 학생들에게 상을 제공하진 못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사실감을 부여하는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드라마에서는 정조 임금의 캐릭터와 박사 정약용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원작 1권에서는 정조의 출연 분량이 너무 적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처음으로 김윤식을 만난 장면에서 그를 다독이는 모습은 내가 기대하는 정조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너는 학문에만 전념하여 하루라도 빨리 대과에 급제해 나에게로 오라. 내 너의 미려한 용모를 기억하고 있겠노라." 

김윤식 행세를 하고 있는 윤희에게는 날벼락이고 사정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참 재밌는 장면이다. '나에게 오라'는 전제 군주가 할 수 있는 요구가 당당해 보였다. 그건 순전히 정조 임금을 향한 나의 편애에 기인한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더 좋다.  

아우 김윤식의 마음씀씀이도 잘 표현해 주었다. 누이가 성균관에 가 있는 동안 제가 여자 옷을 입고 누이 행세를 하겠다는 말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패였음에도 대견해 보였다. 때는 조선시대니까.  

초선의 캐릭터는 또 어떻던가. 아직 1권만 본 내가 드라마처럼 그녀가 숨겨진 살수일지는 알 수 없지만(현재까지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허영끼 많고 욕심도 많은 기녀임에도 나름의 품은 설움들과 진정성 느껴지는 연모의 감정이 잘 살아 있다. 이제껏 그녀를 칭찬하던 사내들이 늘 외모에 치중되어 말한 것에 비해 윤희가 그녀의 그림 솜씨를 칭찬한 것이 기뻤던 것이다. 양반들의 허세 쩌는 행동거지가 충분히 그려진다. 저보다 잘난 기생도 있을 수 있건만 어디 인정 한 번 해봤겠는가. 

드라마에서는 걸오가 한문으로 벽서를 썼는데 원작에서는 처음부터 언문으로 벽서를 썼다.  

"딴 나라 글자를 딴 나라 말처럼 엮은 시가 무슨 시겠냐? 시는 감정을 담는 그릇인데, 남의 글자로 무슨 감정을 얼마나 담는다고. 그건 우리의 감정이 아니다." -401쪽

왜곡된 우리의 영어 교육과 우리 말, 우리 역사에 대한 천시가 생각나서 한숨이 나왔다. 그런 마음이니 작가도 걸오의 입을 빌려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주인공 윤희가 미모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글씨에 재능이 있고 학문을 탐하는 마음을 가진 것도 반갑다. 그녀가 말한 대로 여인에게 배움의 기회가 닫혀 있던 시공간 안에서 비록 동생의 이름을 빌려서 하는 공부지만, 성균관에서 거관수학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목숨을 걸만큼 위험하기는 하지만 독자는 이미 그녀의 행복한 결말을 알고 있으니 걱정은 접자. 처음으로 갖게 되는 스승님이 가슴을 벅차게 하고,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동생을 위해 열심히 필사를 하는 그녀의 부지런하고 착한 손이 아름답기만 하다.  

로맨스 소설답게 유건의 끈 하나에도, 잠든 머리의 상투가 얼굴을 할퀴는 장면 하나에도 미묘한 떨림과 긴장감을 동반시킨다. 그모습을 연출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읽어내는 것이 즐겁다. 동시에 성균관 유생답게 학문과 정책을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장면도 근사하다. 노론과 소론, 남인, 게다가 무당무파를 주장하는 여림까지 한데 어우러진 그들의 뒤로 '탕평비'가 배경으로 서 있는 장면에서 1권이 끝난다. 당파 싸움이 치열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그것을 한껏 비틀고 사용해서 멋진 연출을 하는 작가의 감각이 눈부시다.  

"난 변화를 시키려는 게 아니라, 단지 비난만 하고 끝내는 무능은 저지르고 싶지 않을 뿐이오. 세상에는 완벽한 정책은 없소. 보다 나은 정책이 있을 뿐이지. 그러니 그 어떤 정책이라도 비난이 따를 수밖에 없소. 그 비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조선을 위한 정책을 알고 싶소. 진심으로." -249쪽 이선준 

"나라의 돈을 풀어 가난을 구제한다고 대수는 아니지요. 그저 돈만을 나눠 주면 이 나라의 백성은 모두 거지가 될 것이고, 그 돈으로 일거리를 만들어 준다면 이 나라의 백성은 모두 일꾼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는 농부들만 있는 게 아님에도, 가난을 구제하고자 나서는 방법이 죄다 거지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 (김윤희) 

"일거리를 만들어 준다고? 글쎄다, 이놈의 신분 아래에 묶여서는 그도 힘들지 않겠나? 누구나 천한 일거리는 하지 않으려고 할 터이니 말일세. 신분을 철폐하는 것도 문젤세. 지금 신분 철폐를 외치는 이들도 실상은 신분 철폐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신분 상승을 바라는 것이거든. 이름 없는 한낱 작은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제각각 서열을 만들고, 동네 어린 꼬마들조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위와 아래를 만들어 놓지 않는가. 지금의 신분 체계를 무너뜨린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또다시 새로운 신분제도를 만들어 위와 아래를 둘걸세. 그것이 본능이야. 만약에 돈이 곧 신분이 되는 세상이 오면 어떨 것 같나? 난 그것도 비참한 건 매한가지일 듯싶으이." (구용하) -419쪽 

시대적 배경을 18세기 후반으로 잡은 것은 아주 현명해 보인다.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있고 신분제도가 흔들리고 있는 때, 개혁의 꿈을 안고 있는 군주가 화합정책을 쓰려고 애쓰고 있던 그 모든 조건들이 작품 속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맘껏 뱉을 수 있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 2부에 해당하는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에서는 좀 더 매섭고 구체적인 정책 비판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로맨스는 빠뜨리지 않고.  

순식간에 읽었는데, 그래도 더 읽을 거리가 3권이나 남아 있어서 흐뭇하다. 오랜만에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재미난 소설을 만났다. 덕분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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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2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한 3,4년전에 읽었는데 인용하신 대사들을 보니 아주 낯설어요. 물론 임금이 멋지다는건 책을 읽으면서 알고 있었지만. 마침 어제 누군가가 성균관을 읽었다면서, 선준과 윤희의 대사가 너무 좋아서 제가 페이퍼를 썼을거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저는 성균관에 대한 페이퍼는 쓴 적이 없고,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읽고나서 바로 방출했었거든요. 아, 갑자기 돌려달라고 해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는데, 그렇다고 또 제가 다시 읽을것 같지는 않네요.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도 친구가 빌려준 지 일년이 다 되어 가는데 계속 그냥 두고만 있어요. 읽을 생각을 안하고. 하핫 ;

마노아 2010-12-21 17:38   좋아요 0 | URL
저 이거 읽으면서 막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막 꿈틀거렸어요. 하나의 세상을 창조시키는 멋진 작업이잖아요. 게다가 이렇게 사랑도 만들어내고 이뤄지게도 하고 아프게도 하고, 하여간 어찌나 감정이입이 되던지 부럽고 질투나고 막 신나고... 하여간 깔깔대며 읽고 있으니 엄마가 뭐가 그렇게 재밌냐고 한 소리 하셨어요.^^;;;
소설 두 번 잘 안 읽는 저니까, 아마 저도 두번씩 곱씹어 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일 바라는 건 드라마를 하나 더 만들어주는 거죠. 제일 힘든 바람이긴 해요.^^

같은하늘 2010-12-2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스~~~ 전 TV도 책도 보지 않았지만, 푹 빠져든다는 소문이...^^

마노아 2010-12-24 02:04   좋아요 0 | URL
하나만 본다면 드라마를 더 추천하겠는데, 드라마를 보면 애정이 생겨서 원작도 챙겨보게 되지 않을까요? ^^

섬사이 2010-12-2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전 우리 큰딸때문에 읽었어요.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까지요.
네 권의 책이 딸아이 친구들 사이를 돌다가
지금은 도서관 아줌마들 사이를 돌고 있지요.
작가가 <청나라 사신들의 나날>을 집필 준비중이라던데
딸아이와 함께 기대하고 있답니다. ^^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마노아님~

마노아 2010-12-24 13:07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은 한 번 돌면 되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릴 것 같아요. 거의 붐을 형성하잖아요.^^
와우, 청나라 사신들의 나날이 다음 작품이에요? 뭔가 집필 중이란 소린 들었는데 제목의 운을 맞췄네요.
캐릭터도 겹치는지 궁금해요. 아무튼 기대가 커요. 2권 읽고 있는데 무척 재밌어요.^^
섬사이님도 크리스마스 행복하게 지내셔요. ^^
 
학교 가는 길을 개척할 거야 사계절 웃는 코끼리 4
박효미 지음, 김진화 그림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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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늘 심심해를 외친다. 금방 싫증내고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종일 있다 보면 뭘 하며 즐겁게 놀아줘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많다. 요새 초등학생들은 어른들보다 스케줄이 빡빡해서 좀처럼 놀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은 놀고 싶어하고 재밌는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  

이 책 속의 주인공 민구는 학교 가는 길이 너무 지루하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달랑 10분 거리이고 가는 길도 하나 뿐이다. 초록 깃발을 든 녹색 아줌마를 건널목에서 두 번이나 마주쳐야 하는 것도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줌마들은 귀가 따갑게 소리치신다.  

"가운데로 똑바로 걸어! 한쪽 팔 높이 들고!"
"팔 높이 들어! 똑바로 걷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민구는 팔을 번쩍 들고 건너고는 있지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러다가 팔이 부러지면 어쩌나 엄한 상상까지 한다. 맘에 들지 않는 길을 꼭 갈 필요는 없다고 민구는 생각한다. 그래서 새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다.  

결심을 한 다음날, 민구는 가던 길이 아닌 빙 돌아서 가는 길을 선택했다. 덕분에 학교는 지각했다. 

그 다음 날도 민구는 어제 가지 않은 색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역시나 지각했다.  

연이어 지각을 하니 선생님이 잔소리를 하신다. 선생님이 알림장에 적어 보낸 등교지도 당부 때문에 민구는 엄마께 혼이 난다. 자신이 지각했다는 것도 모른 채 그저 새 길을 개척했다는 것에만 흐뭇했던 민구는 이제 하교할 때 새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한다.  

민구의 얘기를 들은 친구 은결이도 그 길에 동참하기로 약속했다. 아이들을 가장 매료시킨 것은 녹색 아줌마를 만나지 않는 거라고 하니, 봉사하시는 녹색 어머니께 죄송할 따름이다.^^;;;  

엄청나게 길치인 나는 늘 가는 길로 가도 학교 가는 길을 매번 헤매고는 했었다. 앞서가는 같은 학교 교복 입은 선배 언니들 꽁무니만 따라가다가 잠깐 공상에 빠지면 그걸 놓쳐서 두리번 거리기 일쑤였는데, 모든 길이 확실히 학교로 통하기는 했다. 시간은 좀 걸리기는 했지만. 민구처럼 긍정적인 생각은 못해봤다. 난 지각하는 게 두려웠으니까. ^^

 민구와 은결이가 친한 것처럼 민구 엄마와 은결이 엄마도 친하다. 민구 엄마가 민구를 데리고 은결이네 집에 찾아갔다. 엄마들이 이야기 나누실 때 두 사람은 재밌게 놀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 은결이는 피아노를 칠 수 있다고 자랑질을 하면서 시선을 끌어 보지만 두 아줌마는 건성으로 듣는다. 딴 것도 칠 줄 안다고 강조를 하고 나서야 두 곡을 연주한 은결이는 두 엄마들의 식상한 박수를 받는다.  

딱 한 시간만 놀다 가기로 했기 때문에 이제 두 아이는 마음이 바빠졌다. 서로 하고 싶은 놀이는 많지만 같이 하고 싶은 놀이가 많지 않았다. 곤충놀이 하고 싶은 민구와 인형놀이 하고 싶은 은결이는 결국 협상을 하게 된다. 제비뽑기로! 

하고 싶은 놀이를 각자 적어서 모자에 뽑기로 결정했다. 민구가 적은 놀이는 곤충놀이, 애벌레놀이, 탐험놀이, 공룡놀이, 물놀이. 그리고 은결이가 적은 놀이는 인형놀이, 학교놀이, 엄마아빠 놀이, 모래놀이, 카드놀이, 피아노학원 놀이다. 

서로의 관심사와 애정이 반영된 지극히 주관적인 놀이들이지만 아이들은 솔직해서 좋다. 서로 하지 않기로 한 놀이들이 걸리면 다시 제비를 뽑아서 결국 탐험놀이로 합의를 봤다. 하지만 이제는 민구가 엄마랑 돌아갈 시간...  

아이들은 언제까지라도 신나게 놀 수 있는데 벌써 해가 저물었다. 아쉬움은 다음 날로 미뤄야 한다. 

 낮 동안에 아이들은 모래 놀이를 했다. 열심히 구멍을 파서 함정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를 덮은 뒤 다시 모래를 덮어 깜쪽같이 속이는 것이 목표다. 민구와 은결이, 나중에는 지나가던 경빈이까지 합세한다. 아이들은 열심히 구멍을 팠고, 나름대로 그럴싸한 함정을 만들었지만 그 함정에 빠질 사람이 지나가질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마침 민구 엄마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억지로 함정 쪽으로 이끈다. 엄마의 발이 빠지긴 했지만 아이들이 파놓은 구멍이 그리 깊을 리도 없고 엄마를 어이 없게 웃게 하는 정도로 끝난다. 이제 아이들은 한 발씩 함정에 발을 집어 넣기도 하고 모둠발로 점프를 해서 그 안에 뛰어들기도 한다. 구멍을 파는 것도, 그 구멍 안에 스스로 빠지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된다.  

자칫 지나치면 위험해지거나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놀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그 놀이들을 통해 나름의 수위를 찾아갈 것이다. 오히려 이런 놀이의 맛을 전혀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불안하다. 잘 노는 아이들이 건강한 것이고, 그래야 그 아이들이 살아가고 개척해 갈 세상이 더 건강해질 것이 아닌가.  

전자게임만 상대하며 더불어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사회성이 망가지기 쉽다. 형제 자매와, 이웃과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놀고 건강하게 웃을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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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0-12-2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독특하고 얘기도 재미나요.ㅎㅎ
우리집 느림보 아들은 학교까지 5분 거리인데, 돌아갈 길도 없는데 왜 맨날 학교 끝나고 늦게 오는지 의문임... ㅜㅜ

마노아 2010-12-24 02:05   좋아요 0 | URL
아이들에게 학교 다녀오는 길은 탐험의 길 같아요. 참견할 것도 많고 상상할 것도 많고요.^^
 
식객 21 - 가자미식해를 아십니까?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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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북한 음식 취재를 위해 애써왔다는 것을 알지만, 잘 안 됐다고 알고 있었다. 본격적인 음식 취재는 다녀오지 못했지만 다행히 교류 차원의 방문은 다녀올 수 있었다고 한다. 입국신고 때 현금을 10원 단위까지 기재하는 것을 보고서 역시 남다르구나... 싶었다. 

 

추운 날씨 탓에 젓갈 사용이 적은 북한 김치인지라 슴슴한 맛이었다고 한다. 자극적이진 않았지만 청량감이 좋았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상상은 된다. 북한에서 '찌개'는 자작자작 졸여 먹는 음식인지라 우리나라 식 김치찌개를 먹고 싶으면 김칫국을 주문해야 한단다. '김칫국'이라고 하니까 웃기다.^^ 그밖에 칠색송어튀김과 회, 탕이 사진에 담겨 있다.  

101화는 설날 떡국이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이 출감하면 그때부터 몇 달 간 강력계 형사들이 아주 바빠진다고 한단다. 범죄 재범률이 너무 높은 우리나라 현실이다 보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번 이야기에선 성찬이가 무려 사기범으로 의심까지 받았다. 형사님 감 그렇게 떨어져서야...;;;; 

직업 특성상 형사라는 것을 밝히지 못해서 아빠 직업을 건달이라고 말한 에피소드에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정말 직업이 건달이면 건달이라고 말 못했을 것이다. 본인이 떳떳하니 위장 직업으로 건달이라고 둘러 말할 수도 있는 것. 그들의 애환도 애환이거니와 사회적 눈높이를 생각하며 왠지 착잡했다. 

사기꾼도 전문 지식을 활용하는 시대. 수험생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극성스런 학부모가 소비자로 있는 한, 그런 식의 사기 사건이 멈출 것 같지 않다. 물론 그걸 악용해 파는 놈들이 더 나쁘지만 내 아이만 앞세우고자 고군분터하는 부모 상도 결코 반갑지 않다.  

문헌을 바탕으로 재연된 조선시대 왕들의 식단을 사진으로 올려줬다. 기름진 육류 위주의 식단과 운동부족으로 평생 건강의 비협조를 받은 세종의 식단, 그리고 조선 왕조 최장수 임금 영조의 식단은 비교할 만하다. 그치만 이렇게 사진으로 봐서는 잘 구별이 안 간다.^^ 

식객에는 다양한 지식인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성찬이가 음식에 관하여 갖고 있는 지식도 그렇거니와 그밖에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필요한 지식들을 적재적소에 심어준다.  

이번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기꾼도 막 출소했을 때 먹는 두부의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 준다. 

교도소에서 나오면 벼르던 음식을 한꺼번에 먹고 탈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영양도 있고 소화도 잘 되고 배부른 두부를 1차로 먹는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흰 두부로 얼룩졌던 인생을 다 잊고 깨끗하게 새 출발하라는 액땜의 의미라고 한다. 두번째 의미만 알았는데 첫번째 이유의 타당성에 크게 고개가 끄덕여 준다.  

성찬이도 설명한다. 가래떡의 '가래'는 떡이나 엿같이 둥글고 길게 늘여 만든 토막이란 뜻이라 한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자루 달린 떡메로 무수히 쳐서 길게 만든 떡을 흰떡이란 한다. 이것을 얄팍하게 엽전같이 썰어서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후춧가루를 친 것을 떡국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엽전 모양 떡국을 통해 1년 동안 주머니가 풍성하기를 바란 마음이 읽힌다. '꿩 대신 닭'이란 말도 원래 떡국 국물용으로 쇠고기나 꿩고기를 썼는데 구하기 힘들 때는 닭을 쓰면서 생긴 말이라고, 깜짝 등장 인물 어느 교장 선생님이 전하신다. ^^ 

102화의 주제는 호떡인데 가장 슬픈 이야기였다. 노숙자들을 밀착 취재해서 내용을 전개했는데 서울역 꼬맹이 역으로 나온 이기창 씨 이야기는 실화라고 한다. IMF 이후 노숙자들이 말도 못하게 늘었는데 그 무렵부터 교회 등에서 요일을 정해 구제금을 나눠준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너무 인원이 많아 한 명당 200원이나 300원 정도로 제한한다고 하는데, 그런 곳들을 구역으로 묶어서 요일별로 순회를 돈다고 한다. 그걸 짤코스라고 하는데 하루 온종일을 다녀도 15,000원 정도. 다리 품 판 대가로는 참으로 적은 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끌어오리기 힘든 삶에의 재활 의지가 안타깝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고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이다. 어느 교회의 장로님은 교회가 작고 가파른 언덕에 있어서 일부러 내려와서 구제금을 나눠주는 모습을 담았는데 짠했다. 이런 겸손함이 모두에게 필요한데 말이다. 

 

어려서 서울역에 버려진 꼬마. 호떡 먹고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해서 내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노숙자 생활을 했다. 세상에서 호떡을 가장 좋아하는 사나이. 드디어 호떡 포장마차를 개업해서 호떡집 불난 듯이 장사가 잘 되고 있는데 기사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묻는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슬프냐고. 남자는 엄마가 하늘 나라에 계시다고 한다. 나를 찾지 않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라고. 엄마는 거짓말을 안 하시니까. 그런데 왜 기다리냐고 다시 물으니, 그건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리워하는 거라고 한다. 그리움으로 버텨낸 그의 인생. 그런데 반전이 생긴다. 생모가 나타난 것이다. 예상대로 기창 씨는 상봉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를 버티게 해준 건 엄마의 사랑을 의심치 않는 마음이었는데 본인이 정말로 버려졌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리움은 증오로 변한다. 그가 나중에라도 엄마를 용서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먼 발치에서 볼 수도 있겠지만, 모자가 진심으로 두 손 맞잡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가난이 원수고, 목숨이 참 모질다...  

103화는 가자미식해편. 

극 중 보광 레스토랑이라고 소개되는 등장 인물들의 허름한 아파트는 이미 2005년에 재개발되어 건물이 헐렸다. 작품 속에선 아직 살아있었는데 이젠 작품 속에서도 철거되는 운명으로 그려진다.

 

사람이 떠나고 난 자리에 그들의 회포를 알려주는 낙서가 남아버렸다. '철거'에 대한 이야기는 늘 가슴이 아프다. 철거될 공간에 살고 있던 사람 중에 더 나은 조건으로 만족스럽게 이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저마다 대개는 저리 눈물과 회한을 남기고 떠날 테지... 

이들의 이별 이야기와 분단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함경도 사람의 가자미식해 이야기를 잘 버무렸다. 문헌상으로는 조선시대 중엽에 식해가 등장했다고 하는데, 유목문화에서 농경문화로 접어들면서 부족한 단백질 섭취를 위해 생선을 저장, 발효시키면서 먹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고구려시대 때부터 먹지 않았나 얘기하고 있다. 뭐, 꼭 오래 되어야 더 훌륭한 맛은 아닐 테지만.  

104화 황태 편은 송천 물줄기를 화자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진행한다. 먼저 명태의 다양한 이름 소개부터 보자.  

명태는 바다에서 바로 잡아 젖은 걸 부르는 말입니다.
북어는 바닷가 세찬 해풍에 바짝 발린 것이고요.(말린... 아닐까?)
노가리는 새끼를 말린 것, 코다리는 물기가 약간 있게끔 꾸들꾸들 말린 것.
황태, 일명 노랑태는 덕장에서 겨울 내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말린 것.
찐태는 덕장에서 날씨가 따뜻해 물러진 황태, 백태는 덕장에서 날씨가 너무 추워
겉이 하얗게 변한 것, 낙태는 걸어놓은 덕장대에서 바람에 못 이겨 떨어진 것,
먹태는 안개가 잦고 햇볕을 덜 받아서 검게 마른 것, 깡태는 딱딱하게 마른 것, 
무두태는 대가리를 떼고 말린 것, 파태는 손상된 것.
이외에도 지방마다 조금씩 다른 말도 있을 겁니다. -226쪽 


황태의 원산지는 함경도 원산이라고 하는데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원산 사람들이 맛있는 황태를 만들기 위한 기후 조건을 찾다가 인제군 용대리와 평창군 횡계를 골랐다고 한다. 

황태 편은 작업 일기에 놀랐다. 그림 그리는데 고생을 너무 많이 한 것이다. 

 

저 한 컷을 무려 8시간 동안 그렸다고 한다. 오른쪽은 실물 사진. 손이 많이 가는 그림으로 보인다. 배경 담당 문하생에게 심심한 위로를....;;;;; 

저 그림 속의 황태가 14억 원어치라고 하니 놀랍다. 오늘 아침에 북어국 먹었는데...^^ 

105화는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 번 훼손된 바다가 다시 정화되려면 너무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사고친 놈들은 여전히 잘 살고 있고 애꿎은 어민들만 여전히 고생하고 있다. 연평도 주민들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ㅠ.ㅠ 

이번 이야기에서 그래도 미소를 짓게 하는 건 훌륭한 시민 세 사람 덕분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샘, 코빌, 나즈물. 자원 봉사하려고 한 달 동안 휴직을 했는데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아예 사표 쓰고 넉달을 이곳에서 봉사를 했던 분들이다. 게다가 이분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고 하니 부끄럽고 미안하고 고맙고, 여러 감정이 섞이고 만다.  

고국에 돌아가서도 봉사를 하고 싶다는 참으로 고운 마음의 사람들. 왜 방글라데시의 삶의 만족도가 높은지 알 것 같다. GDP 따위로는 환산할 수 없는 아름다운 마음씨다.  

식객은 음식 만화로서 음식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은 당연하고, 음식에 깃들어 있는 삶에 대한 희노애락을 잘 담아내고 있다. 더불어 사회 문제에도 귀를 기울이고 외면하지 않는 녹여내는 대단한 내공에 늘 감동받게 된다.  

이런 작가님이 계신 것은 독자에게 큰 복이다. 허영만 화백님, 앞으로도 오래오래 작품 활동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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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0-12-2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 이동도서에서 식객을 빌려보다 말았는데, 내일은 다시 책버스로 출동해 봐야겠어요.ㅎㅎ

마노아 2010-12-24 02:05   좋아요 0 | URL
식객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역시 저력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