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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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비록 정조를 편애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 책이 끌렸던 것은 제목의 정조가 아니라 '불량선비' 때문이었다. 불량식품이 꾸준히 인기를 끄는 것처럼 반듯할 것 같은 선비의 불량함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강이천은 표암 강세황의 손자다. 김홍도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강세황은 문인이면서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진 이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강이천은 조부의 손에서 길러졌는데 자연스레 자유분방한 가풍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특이사항으로는 태어나면서부터 한쪽 눈이 애꾸였고 종기 때문에 다리도 불편했다 한다. 어려서부터 총명해서 일찍이 정조의 눈에 띠어 실력을 보인 바 있고 성균관 유생 시절 학점도 좋은 편이었다. 북인 명가의 후예였던 강이천은 1797년 혹세무민의 죄로 유배형에 처해졌고, 1801년 신유박해 때 청나라에서 밀입국한 주문모 신부와의 연계성으로 재조사 받는 과정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했다.  

'혹세무민'이라고 명명한 그의 죄명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는 정감록 류의 진인을 기다렸고 조선이 곧 멸망하고 새 나라가 세워질 거라고 기대했다. 특유의 언변으로 사람을 끌어들였고 자금도 모으고 전국 규모의 비밀결사도 꿈꾸었다. 이쯤 되면 불량하다기보다 '불온'해 보인다. 그의 이상은 큰 그림이 그려지기 전에 발각되어 접혀졌지만 성리학 질서의 조선 사회의 전복을 꿈꾼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강이천 사건은 발생 당시 그 전모가 비교적 빨리 수습되었고 정돈되었다. 관련자들이 유배를 가는 선에서 끝내고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사실 확대시키지 않으려는 모종의 정치적 타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이천과 같이 회합을 가졌던 김건순이 같이 걸렸고, 김건순은 천주교에서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었다. 김건순을 처벌하자니 노론 명문가가 타격을 입고, 더불어 천주교를 많이 믿고 있던 정조가 키우는 남인 세력들도 같이 위험해졌다. 형평성에 어긋났지만 정조는 사건을 키우지 않음으로 인해 정치적 부담을 덜어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정조는 강이천이라는 인물이 가진 상상력의 크기, 그 몽상의 여파가 장차 큰 해일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제동을 걸기로 작정했다. 이른바 '문체반정'이다. 물론, 정조의 문체반정은 강이천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정조는 대대적인 '문화투쟁'을 기획/실시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소품은 글의 성격상 글쓴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더러 그런 마음을 글로 옮기다 보면 글씨체 역시 글의 내용에 상응하여 비뚤고 기울어지고 나부끼는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정조는 이런 풍조를 참지 못했다. -127쪽 

 일찍이 소품문을 경계했던 정조는 이제 아예 글씨체까지도 단속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시험에서 굵고 반듯하지 않은 글씨체의 글은 아예 받지도 않게 했던 것이다.

정조가 청산 대상으로 여긴 소품문의 특성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글의 형식과 내용 면에서 종래 선비들의 애호를 받아온 “고문”과 어떻게 달랐을까. 안대회 교수에 따르면, 형식 면에서 볼 때 소품은 고문에 비해 문장의 길이가 짧다. 구어를 많이 섞어서 사용한다. 그리고 고문과는 글의 구성 방법도 달랐다. 소재와 내용도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소품은 고문에서 불문율로 되어 있는 금기 사항을 무시했다. 사회적 소외와 개인의 비밀, 자질구레한 일상생활 등을 주로 다뤘다. 요컨대 생활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소품의 가장 큰 특징은 글쓰기의 주관성에 있다. 감성적인 글쓰기, 자기 고백적이고 감정이 듬뿍 담긴 주관적인 글이 소품의 대종을 이루었다. 자기 고백적인 산문의 출현, 이것이야말로 소품의 문학사적 기여였다. 소품을 좋아하면 자연히 성리학적 가치에서 멀어진다. 정해진 격식을 떠나 글쓴이의 눈으로 사물을 직접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가치의 다원화가 이루어진다. 중국에서 양명학파의 사상이 소품에 깊이 스며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고 정조는 바로 이 점을 두려워했다. 왕은 이단의 문이 한 번 열리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올 것이라며 걱정했다. -115쪽 

이 책에서는 '소품'과 같은 단어 정도는 독자가 이미 알 거라고 여긴 것인지, 아니면 찾아서 확인하라는 것인지 친절한 설명 같은 것은 없다. 소품은 산문류의 글쓰기로 받아들이면 적당하겠다.  

정조의 문체반정은 대중들이 정조라는 국왕에게서 기대하거나 혹은 설정해둔 이미지에서 꽤 벗어나는 검열의 칼이었다. 그에게 덧입혀진 개혁군주라는 이름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행적이었다. 그리하여 정조를 개혁군주라 부르고 그 시대를 르네상스라 부르는 것을 마땅치 않아 하는 이들에게는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무시무시한 증거물이 되곤 한다.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그런데 그가 살고 있던 시대와, 또 그의 삶의 궤적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한계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조선의 임금은 본시 권력이 약했다. 양반 개개인과 비교하면 왕 개인의 권력이 강하겠지만, 양반 전체로 묶어버리면 임금은 약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더군다나 그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사람이다. 즉위 전부터, 또 즉위하자마자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온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보수적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 아닐까?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성리학으로 무장해야만 하는 임금으로서 그의 사상적 한계는 뚜렷했다.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왕의 자리를 지킬 수도 없고, 왕으로서 개혁을 추진할 수도 없고 그가 소중히 키워내고 길러내고 밀어주던 인사들마저도 지킬 수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그에게 천주교와 접촉하고, 나아가 진인의 도래를 기다리며 왕조의 멸망을 내다본 강이천 같은 인물은 지극히 위험분자였을 것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예민하고 꼼꼼하고 치밀했던 국왕이 내민 카드는 그가 취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으로서는 최선이었다. 그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참에 원수 같은 노론을 쓸어버리겠다고 사건을 확대했으면 어땠을까. 그의 최후가 연산군을 닮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저자의 상상력은 무척 재밌었다. 역사의 소수자이며 그늘에 가려질 법한 인물을 재조명해서 거기에 얽힌 정치, 사회, 경제, 종교에 걸친 조선의 문화투쟁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으니까. 보통 역사학자들은 어떤 주제를 연구할 때 참고문헌을 일단 모두 읽고 조사한 뒤 작업에 들어가기 마련인데 본인은 미리 가설을 만들어 놓고 접근하는 습관을 가졌다고 한다. 관련 논문이나 참고도서를 다 읽는 것은 애초에 무리이므로 발상을 전환한 것이다. 하나의 아이디어로 보이는데 우려도 든다. 본인이 세워둔 가설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주관성이 많이 개입되지 않을까 하고. 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어떤 주장들에 자꾸 갸우뚱하게 되었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흔히 신유박해의 원인에 대해 당시 집권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천주교 신자가 많은 남인들을 제거할 목적으로 탄압을 했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시 남인은 어차피 권세가 약했고, 굳이 집권층인 노론이 천주교 박해 사건을 일으켜 남인의 일부를 처단해야 했냐는 것이다. 글쎄, 과연 그럴까? 이미 권력을 가진 자들이라고 해서 권력을 더 독점하려는 마음이 없을까? 숙종 때의 환국만 보더라도 한쪽이 권력을 잡으면 다른 한쪽이 재기하지 못하도록 있는 데로 밟아주던 것이 그들의 암묵적 룰이었다. 저자는 신유박해의 원인에 대해서 설득력이 약하다고만 해놓고 그러면 자신은 어떤 게 원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밝히지도 않았다.  

저자는 천주교가 평등사상을 전파했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는 말도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은 1789년이고, 그때 천주교는 프랑스 혁명의 적이었는데 그런 천주교가 조선에서 평등사회 건설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글쎄, 그게 왜 말이 안 되는지 이 문장에서 나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나폴레옹은 혁명의 격변기에 황제가 되려 했지만, 그의 정복 전쟁이 오히려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유럽에 퍼뜨리게 된 것처럼 역사의 아이러니는 얼마든지 있다. 이 책에서도 나온다.  

마테오 리치는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 중국에 선교사를 파견해주되 단순히 유능한 신부가 아닌 정말 탁월한 신부만 엄선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선교 대상인 중국인들이-정확히 말하면 중국의 고관대작과 황실 인사들이겠지만-유식하고 똑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에 파견된 초기 예수회 신부들은 하나같이 특출했다. 언어적 재능은 물론이고 인문과학적 박식함을 넘어 자연과학과 기술 또는 예술에 정통한 선교사들만 중국으로 건너왔다.
여기서 하나의 아이러니가 생겼다. 교황이 이끌던 서양의 천주교회는 과학과 근대에 대한 반동 세력이었지만 중국과 한국에서는 천주교가 기계문명의 애호자, 창달자로서 기능했다. -188쪽 

정조의 보수성을 얘기하면서 우리가 으레 역사상 뛰어난 인물들은 진보 성향을 띠기 마련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동의한다. '진보'라는 단어가 주는 시대적 과제가 또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곤 한다. 그런데 원래 '보수'라는 게 나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보수의 외피를 뒤집어 쓰는 반동이 나쁜 것이지 보수 자체를 욕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정조가 정약용이, 박지원이... 그들이 보다 진보적이어서 시대를 견인해 가는 훌륭한 바퀴가 되어주었더라면 더더더 좋았겠지만, 기대하는 진보성향이 부족하면, 그들은 더 이상 훌륭한 인물이 되지 않는 것일까?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그것을 성토하는 것은 좀 마뜩찮아 보인다. 심지어 정조의 문체반정이 고종의 개화정책의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소급하는 것은 지나친 침소봉대라 여겨진다.  

마찬가지로 강이천이 새로운 문화를 지향했으며 그것이 동정심과 자애가 가득한 세상이라고 본 것도 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추정해 본 강이천이 꿈꾸는 새 나라는 정치형태상 여전히 왕조 체제를 답습할 것이고, 차별적인 신분제 역시 폐지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새나라의 가치체계는 성리학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왕조 국가에 신분제도 그대로인데 성리학 지상주의만 벗어나면 그 나라는 새나라인가? 백성들도 그런 나라를 새나라로 여기고 기다리고 행복해할까? 내가 보기에 강이천은 '혹세무민'이라고 했던 그의 죄명이 그대로 들어맞는 그저 몽상가 쯤으로 보인다.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휴거설을 믿는 어떤 종교집단의 사람들이 재산을 다 처분했던 해프닝이 떠오른다.(강이천도 김신국에게 말세를 얘기하며 쓸데없는 곳에 돈을 쌓아두고 있으니 자금을 내놓으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수신이 되지 않는 사람이 평천하를 어찌 할까 싶었다. 책에서 소개된, 그러니까 강이천이 심문과정에서 보여준 행보 등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어떻게든 역적의 이름은 쓰지 않으려고 죄를 축소시키기 위해 얼마 전까지 동지였거나 자기 때문에 끌려들어온 사람들을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진다. 그뿐 아니라 김건순의 배교 과정도 몹시 실망스러웠다. 천주교에서 순교자로 추앙하는 인물이라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천주교와의 관계를 축소하거나 부인하기에 급급했다. 물론, 그에 대한 실망은 주문모에 대한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애초에 이 사건은 정조가 의도적으로 축소해 버려서 몇몇의 유배형으로 끝날 일이었다. 정조 사후 신유박해 때 무수한 천주교 신자들이 줄줄이 걸려들어간 것은 제발로 자수한 주문모가 관련자 명단을 죄다 불었기 때문이다. 조사 과정에서 고문도 받지 않은 주문모가 이름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게 끝장일 사람들의 이름을 다 댔다는 것은 도무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자의 추정대로 누군가에게 속거나 어떤 타협이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망이 가시지 않는다. 그의 무지나 혹은 무분별로 넘어가기에는 흘린 피가 과하기 때문이다.  

강이천의 사건을 계기로 정조가 예민한 촉수를 들어 문화투쟁을 벌였다는 저자의 가설에 설득력이 있다. 그 파급 효과까지는 쉬이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뭐랄까... 그런 기분이다. 정조에 대한 과도한 미화와 이상화에 대한 반발로 과하게 깎아내리는 인상? 그러니까 '빠'가 싫어서 '까'가 되는 그런 느낌. 속된 표현에 조금 죄송하지만...^^ 

어떤 부분은 몹시 재밌었고 또 설득력도 있었다. 그런 반면 또 어떤 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고 좀처럼 동의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와 접근은 반갑다. 다음 기회에는 정조와 이옥에 대해서 공부해봤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문체반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보는 거다. 

덧글) 책에 오타가 있다.  

191쪽 18세기 후반에는 한동안 신지식을 중시하는 사대적 흐름이 있었다는 것이다. >>>시대적 흐름이 맞는 것 같다.
226쪽 전에 배우던 육임 등에 관한 책을 무도 불살라버렸다고 합니다. >>>'모두'가 맞지 싶다.
329쪽 순조원년(1801)>> 순조는 1800년에 즉위했으니 1800년이 순조의 원년이다. 표기나 연도 둘 중 하나가 틀린 듯. 

264쪽은 무려 제본 불량이다. 



고작 저것 때문에 책을 교환해야 하는가? ㅠ.ㅠ 

좌우 여백이 너무 넓은 것도 흠이다. 보통은 북다트를 끼우면 글자가 가려지는데 끼우고도 공간이 남는다. 좌우 여백을 조금만 줄였더라면 종이를 많이 아꼈을 것이다. 책값도 조금 줄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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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 담백 군대 이야기
주호민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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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함께'를 무척 재밌게 보았기 때문에 주호민 작가의 다른 책들도 관심이 생겼다. 짬은 작가가 군생활의 경험을 만화로 옮긴 작품인데 아직까지는 지겨울 정도로 군대 얘기를 해대는 남자 사람이 주변에 없었던 관계로 호기심을 갖고 읽어 보았다. 유머의 한 소재로 나올 법한 과장된 이야기들은 없었고, 요즘의 군대(2002-2004년)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다니 그런 줄 알지 내가 어찌 확인하겠는가.)

 군에 입대하는 날부터 시작해서 제대하는 날까지의 과정이 1권의 내용이다. 작가는 애니메이션 학과 재학 중에 입대를 했는데 만화 그리는 솜씨가 있었던 터라 좀 더 리얼하게 군 이야기를 메모하고 기억했을 것 같다. 실제 보인이 보내고 받은 편지들과 온갖 사진들이 많이 실려 있었다. 주호민 작가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

 

 수류탄 얘기가 인상적이다. 확실히 영화에서 묘사되는 수류탄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안일했다. 그 무서운 무기를 말이다. 전날 흉몽을 꾼 병사들도 수류탄 투척의 열외로 둔다는 것은 그만큼 무서운 위력을 지녔다는 의미일 테지.

 

  훈련소 시절 구대장의 여친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준 덕분에 기합에서 제외된 이야기가 실렸다. 누군가 화장실 쓰고서 변기 물 안 내려서 막힌 바람에 벌어진 일이란다.ㅎㅎ 그림의 여자 참 예쁘다.  

물기 없는 건빵은 참 뻑뻑한 과자인데 그걸 기름에 한 번 더 튀겨서 설탕을 뿌려놓은 모습이다. 일일취사병이 되어 수고했던 날 취사병이 몰래 쥐어준 건빵이란다. 내무반에서는 엄청 인기가 있었을 테지? 사진으로도 맛나 보인다.

 

사진은 크기에 맞추어서 묶었기 때문에 내용의 순서와는 좀 차이가 있다. 작가는 자신이 훈련소 끝내고 이등병 되었을 때, 다시 일병, 상병, 병장 제대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시간 순서대로 진행시켰다.  

자대 배치 받았을 때 들고 온 휴지로 사랑받은 이야기! 

운전병이었던 작가는 불교도였는데 고참 때문에 생애 처음 교회를 가게 되었다. 무수히 모인 장병들 가운데 유일하게 처음 교회 와본 사람으로 간택! 그 덕분에 무려 3박4일 휴가증을 받는다. 투덜대며 참석했는데 뜻밖에도 행운의 주인공이 되어 돌아올 때는 다리가 후덜덜 떨렸다는 이야기가 실감 났다. 정말 대박 행운이다.  

그밖에 부대에서의 도전 골든벨에서도 당당히 1등이 되어 포상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성실이 가져온 행운일지도.^^

 

 아직 짬밥에 대한 이해가 적을 때 종종 하던 실수의 소개다. 혹한기 훈련 때 입을 스키파커가 너무 크고 지퍼도 올라가지 않고 게다가 모자도 없다는 한 마디에 떨어진 고참의 반응. "그럼 내가 입을까?" 

아, 할 말 없다. 다행히 모자는 건졌다 한다.  

그랬던 그도 병장이 되니 주머니에 손도 집어넣고 젓가락도 사용하고 팔도 식탁 위에 올린 채 식사도 할 수 있게 된다. 아, 군이란 이런 곳이구나!

 

삽질 얘기 재밌었다. a부터 z까지 모든 걸 다 삽으로 해결하다니! 게다가 겨울잠 자는 독사를 삽 한자루로 날려버리는 이야기는 삽자루에 경배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유적발굴 알바 시절에 삽질이 가장 힘들었는데 그때 군대 다녀온 선배들이 우리의 삽질에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슬며시 난다. 확실히 우스웠을 것이다.^^ 

소대장이 모처럼 자리 잡아줘서 쌀국수를 먹게 되었는데 그 소대장이 쌀국수를 엎었을 때 같이 있던 사병들이 돌씹는 표정이 인상 깊다. 차마 사병한테 얻어먹을 수 없어 쫄쫄 굶었던 소대장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을 때도 저들은 저런 표정을 짓는다. 주호민 작가 특유의 그림체인데 재밌었다. 

그밖에 '신과 함께'에서 매력적인 변호사로 나왔던 김자홍은 이 작품에서 보니 작가의 친한 친구의 본명이라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다른 작품들을 더 찾아보면 주변 인물 이름이 더 나올 지도... 

'짬'의 이야기들은 거창하지 않다. 군대하면 떠오르는 윤리적인 문제나 양심적 병역 거부 등의 심각한 얘기도 굳이 떠오르지 않을만큼 가볍다. 시간이 흐르고 자연스레 고참이 되고 자신이 겪었던 길을 고스란히 겪을 신참들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청년이 있을 뿐이다. 그런 그도 곧 사회로 복귀하게 되고 막막한 현실 앞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를 또 염려하게 된다. 이미 지난 일이니 가볍게 웃고 즐길 수도 있지만, 당시 그 시간을 겪을 때에는 얼마나 고생이었을지 짐작하게 된다. 아마도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면서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다. 나 때는~ 하면서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볼 때마다 재밌는 책 없냐고 묻는 울 형부도 재밌게 볼 것 같다. 씨즌2도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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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1-02-21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재미있어요. 우리는 가보지 못 한 곳이기에 호기심 발동~~
넘 오랜만에 들렸는데 잘 지내셨나요?

마노아 2011-02-21 14:27   좋아요 0 | URL
같은하늘님 오랜만이에요.^^
날씨가 완전 봄날인데 그래도 옷 얇게 입고 나가면 쌀쌀하더라고요.
이럴 때는 더 감기 조심해야 해요~ ^^

송도둘리 2011-02-2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얘기ㅋㅋ다시 가라면 안갈꺼면서 그런 얘기 뭐하러 하나 싶어도..막상 남자들끼리 모이면 또 신나게 서로서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신과 함께' 작가가 그린 만화군요. 독특하다 싶으면서도 재밌게 봤었는데 이 책도 재밌을 것 같네요.^^

마노아 2011-02-22 01:24   좋아요 0 | URL
정말로 남자들이 제대후 다시 군입대하는 꿈을 꾸게 될까요? ㅎㅎ
신과 함께가 더 재밌긴 했는데 이 책도 소소하게 재밌어요.^^

2011-02-21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2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들의 우울 - 아름다운 영국시리즈 3
하츠 아키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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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영국 시리즈 세번째 책인데 세 권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짧은 이야기들과 그보다 더 짧은 쉬어가는 코너(?)가 잘 어우러졌는데 진지함과 유머, 판타지와 호러의 분위기도 잘 섞여 있다. 

 

코넬리어스 애버딘은 독신남인데 늘상 연애운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본의 아니게 줄곧 해왔을 뿐이다. 부모님은 그런 그를 압박하기 일쑤. 마침 맞선의 상대는 쌍둥이 자매. 둘중 하나는 건지라는 분위기인데 그게 쉽지가 않다. 두 자매는 샴 쌍둥이 마냥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공언하는 사이. 한 명은 두 사람을 같이 차달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두 사람을 같이 아내로 맞아달라고 요청까지 하고 있다. 이거 이번에도 코넬리어스가 독신남 딱지를 떼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위 그림은 분위기가 맘에 들긴 했는데 가느다란 목에 비해 얼굴이 너무 커서 목 부러질 것 같은 위태로움을 느끼게 한다...ㅜ.ㅜ

 

쉬어가는 짧은 페이지 속에서 늠름하게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는 고양이 빌헬름. 빌헬름의 눈에는 요정도 보이고 귀신도 보이고 심지어 외계인도 보인다는 것! 나중에 작가 후기를 보니 이 모든 게 편집진의 요청이었다 한다. "이번에는 빌헬름과 판타지를, 빌헬름과 호러를, 빌헬름과 SF를!" 요구에 맞춰 작가 하츠 아키코는 나름의 센스를 발휘한 것! 요정이 마치 도깨비같이 생겼다. 귀엽다.^^ 

 

두번째와 다섯 번째 이야기에선 귀신을 봤다는 신고가 등장하고 그것을 파헤치기 위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애쉴리 교수와 아들 노먼인데, 아버지는 학구적인 연구파이지만 좀 덜렁거리고, 아들은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아버지보다 훨씬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편이다. 이후로도 쭉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 샷은 부분샷보다 늘 조금 더 부자연스럽긴 한데 그래도 정장을 입은 신사는 근사하다.  

지금보다 백년도 더 전의 시대를 배경이고, 더군다나 사교계와 귀족계의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다소 답답한 내용이 나올 것도 같은데 작가는 현명하게 그런 함정들을 비켜간다. 고리타분한 노귀부인들에게서 오히려 나름의 진보적인(?) 연애관도 찾는 재미를 주면서 말이다. 폭발적인 힘을 느끼긴 어려워도 소소한 재미가 가득해서 보는 동안 즐거웠다. 그런 게 하츠 아키코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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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창비 아기책
정호선 글.그림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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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 보드북이 아닌 게 유일한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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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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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남자의 등과 팔도 보인다. 흑백사진의 검은색 옷이어서 눈에 잘 안 보였던 것이다. 표지의 의도를 생각해볼 때 이 장면은 헤어지기 전 마지막 포옹이었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다소 간절함이 부족해 보이지만... 

이 책에 흥미를 보이게 된 것은 제목의 '이별' 때문이 아니라 부제의 '책 읽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적혀 있다.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이별을 왜 재음미해야하는지,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왜 책 읽기인지는 나중에 생각해보더라도 아무튼 이 책에서는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책들을 소개해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장 이별을 겪은 사람은 이런 글자가 눈에 들어올까 싶지만 이별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나같은 독자가 좀 더 이 책을 재밌게 볼 것 같았다.  

 

책은 친절하게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설명해 준다. 목차를 보면 이별의 전조와 실연의 정황을 말해주는 책들, 다음 단계인 부정과 슬픔의 정황을 말해 주고, 그동안 사랑에 대처했던 우리의 자세들을 헤집어 본다. 다음에 해야할 일은 분노하고 애도할 것,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을 말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여기까지 얘기하는 동안 언급된 서른 권이 넘는 책들과 몇몇 영화와 드라마 등이 있다. 못 읽은 것들이 더 많지만, 읽은 것들도 종종 끼어 있어서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재음미하며 추억하기에 좋았다.  

앞서 이 책은 이별 당사자보다 그저 책테라피에 더 호기심이 기울어진 내게 적합한 책이라고 얘기했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일으키는 내용들이 많았지만 이별이라는 감정의 파동을 너무 오래 전에 겪은 나로서는 간접경험이나 상상 그 이상으로 몰입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내 사랑이 너무 가볍거나 내 상처는 지나치게 얕아서가 아니라, 불행히도 양방향으로 같이 사랑한 기억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청춘 속 사랑은 나의 짝사랑이거나, 그의 나를 향한 짝사랑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숫자로 세면 많지 않지만 아무튼... 그래서, 읽으면서 나는 꽤 많이 속상했다. 사람이 한 번 뿐인 인생을 살면서 불같은 사랑도 해보고 폭풍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도 말려보고 그런 것들을 겪고 이겨내고 비로소 성장해가고 그래야 하는데, 내 인생의 폭풍우 같고 불같은 순간들의 핵심에는 남녀간의 사랑은 그닥, 없었던 것이다. 일부러 그랬던 것이 아닌데도 그런 기억만 갖고 있어서 나는 나의 이별을 무엇으로 슬퍼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애도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그러니 떠난 그를 향해서, 혹은 떠나온 나를 향해서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지내온 내 삶의 궤적에 대한 애도만이 도도히 흐를 뿐.

 

실연의 상징이기도 했던 급작스런 헤어컷, 혹은 머리스타일의 변신. 갑작스레 머리 모양을 바꿔본 적은 있지만 그것이 사랑 때문에, 혹은 실연 때문이었던 적은 없었다.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날이라기보다는, 별 일도 없는데 자신이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날이다.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집에 편안히 있으면서도 어쩐지 사회관계의 패자가 된 것 같은 열패감에 젖기도 한다.  -117쪽

 
   

그러니 이런 문장은 꽤 그럴 듯하다고 동의하지만 나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의 크리스마스는 늘 공연장에서 '환장 정신'으로 뭉쳐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유독 '외로운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을 가졌던 것까지는 부인하지 못하겠다. 내가 오늘 몹시 즐겁게, 아주 행복하게 멋진 공연을 즐겼다는 사실을 자랑할 누군가가, 혹은 같이 누려줄 사람이, 그도 아니면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기다리는 그런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 짙어진다는 것도 인정하겠다.  모두에게 보편적인 이별이 어디 있을까. 조금씩은 저마다의 경험에서 겹치는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 뿐이지. 그리고 그 작은 것만으로도 그 보편적 감정을 우리는 이해한다.  

언급된 책 중에서 좋았던 부분이 참 많았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읽으며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 정도의 상상력과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읽고 싶은 책으로 급부상했다. 잠깐 소개된 내용으로도 제목의 역설적 분위기가 충분히 그려졌던 것이다. 김애란의 '성탄특선'도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가 번뜩이는 도시의 성탄절에서 가난한 연인이 맞이한 그날의 특별하고도 불편했던 기억들에 연민을 느꼈다. 내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은희경의 소설이 많이 언급되었다. 막연히 내가 느끼던 분위기와 달라서 자못 놀랐고, 그래서 더 다가가보고 싶은 궁금증을 느꼈다. 신경숙을 상상했는데 정이현에 더 가까운 느낌? 읽어봐야 확실히 알 것 같다.  

노희경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몹시 재밌게 보았다. 대사가 가슴을 콕콕 찌르곤 했는데 이 책에서 언급된 것을 보고 나니 드라마 대본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충동도 인다.  

   
 

 ‘희망이 있느냐고…….’가 아니라, “희망을 믿느냐고…….”이다. 희망은 ‘존재와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불신’의 문제일 것이다. 희망을 조심스럽게 믿는 사랑과, 희망을 불신하는 위악적인 사랑, 그것의 차이는 얼마나 깊은가. -253쪽

 
   


희망이 존재와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불신의 문제라는 지적에 공감했다. 희망을 믿지 않는 자에게 희망이 있냐고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희망의 종류가 무수하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김형경의 '외출'도 특히 좋았더랬다. 영화 외출을 보았는데 당시 음향 사고가 있어서 대사가 잘 안 들렸다. 그것도 커졌다가 작아졌다가를 반복했는데 아무도 와서 조치해주지도 않고, 끝났을 때 사과도 없고, 당연히 환불도 안 된... 그런 열받는 기억만 남아서 그 영화의 엔딩이 이런 분위기였다는 것을 전혀 짐작도 못했다. 글자로 다시 확인해 보는 외출의 마무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괴로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던 영화의 잔재를 재포장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마웠다.  

책은 제목처럼 끊임없이 '이별'을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 닿아야 할 종착역은 '사랑'이었다.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실패를 완성해야 한다. 이별은 분명 관계의 실패이다. 이별이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고, 이별했지만, 실패는 없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별을 완성할 수가 없다. 이별은 도피해야 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완성해야 하는 중립적인 것이다. 누구나 이별할 수 있고, 누구나 이별 때문에 아프다. 그 실패의 아픔은 반드시 겪어내야 할 과정이다.  -193쪽

 
   


그러니 이 책은 이별한 당신을 위해서도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고, 사랑하고 있는 당신과, 사랑하고 싶은 당신 모두에게, 그리고 이별이 당연히 두려운 모든 사람에게도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객관식 시험의 정답이 아니니 일괄적용시키는 무식한 방법은 쓰지 않으리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별리뷰를 다 읽고 난 다음에는, 당신만의 이별 리뷰가, 당신의 이별지침서가, 사랑 안내서가 완성되었으면 한다.  

덧글) 약간의 오타가 눈에 띈다. 

66쪽 아이 그룹→아이돌 그룹

91쪽 삶을 마무리했는지 사이기 하나 단번에 알게 된다.→사이기?

220쪽 사랑의 시작은 끝이 있지만, 사랑의 시작할 수 있다는 긍정의 시작은→ 문장 어색. 사랑을...이 아닐지...

231쪽 “난 꽉 찼는데, 비어서 허허로운 것도 같았어.”→텅 비어서

260쪽 완서 씨는 만득 씨 곱단 씨→만득 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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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2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으면서도 이 책만은 읽지 않기를 바라는 이 마음...

마노아 2011-02-20 20:5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마음에 동의해요...

다락방 2011-02-20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애틋하게 이 리뷰를 읽다가(특히 마노아님이 환장정신을 언급한 부분과 관련된 외로움....) 마지막에 오타 지적 부분에서 웃어버렸어요. 아, 어째요. orz

마노아 2011-02-20 23:35   좋아요 0 | URL
항상 오타에서 멈칫!거리고 말아요.^^;;;
오늘 언니가 새로 들여온 천장의 옷 중에서 저한테 맞는 샤랄라 스커트를 한 장 발견했어요. 완전 꽃처녀예요. 그 옷을 입어본 순간 다시 외로워졌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