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람 2 - 미스테리심리썰렁물 시즌 3
강풀 지음 / 문학세계사 / 2009년 4월
구판절판


1편에서는 공포 쪽이 더 컸다면, 2편에서는 짠함이 컸다. 3편에서는 벅찬 감동이 따라오길 기다리고 있다.

반상회 총무님 댁 딸 수연이는 희생자 여선이와 같은 학교 여학생이다. 똑같은 교복을 입은 비슷한 또래지만 성격은 많이 다르다. 어려서 엄마를 잃고 학교도 2년이나 일찍 들어간 여선이는 무척 내성적인 아이였지만 수연이는 활달하고 재기발랄하며 예의바른 아이다. 누구라도 사랑할 그런 아이.
경비 할아버지께 급식으로 받은 단팥빵을 내밀고, 모두가 피해가는 전과자 출신 사채 아저씨께 오라이~를 외치며 차 빼는 것을 도와주는 아이다.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밥 먹고 다시 학원으로 가려던 찰나, 반상회 일로 신경을 많이 쓰시다 잠이 드신 엄마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엄마가 차마 가지 못한 이웃 집에 대신 반상회 소식을 전한다. 여선이의 새엄마는 수연이를 보며 순간 딸이 돌아왔나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매일밤 딸아이의 혼백을 보는 엄마니 오죽 놀랐을까. 아이와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서로가 어색하고 멋쩍어서 다가서지 못하던 시간이 지난 일 년이었다. 진정으로 엄마가 되어주지 못하고 아이를 잃은 것 같아 죄책감이 가득한 이웃에게 수연이는 가장 중요한 진실을 알려준다. 있는 그대로 엄마임을, 다른 게 엄마가 아님을 말이다.

이웃집의 수상한 남자를 의심하던 이들은 모두 한 가지씩 가정을 해본다.
그때 만약 내가 그렇게 했더라면....
여선이가 전화를 했을 때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비가 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더라면,
당연히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갔을 것이다.
그 밤에 아이는 납치를 당해 죽지 않았을 텐데...
야간 경비의 눈을 돌리기 위해 정문 쪽에 살면서 후문 쪽으로 오라고 전화를 했던 범인.
그때 후문에서 정문으로 옮겨가 확인을 했더라면...
우리 가게에서 사간 가방이 사체를 숨기는 데 사용된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더라면...

피자를 주문한 날짜가 희생자들이 살해당한 날짜와 겹친다는 사실을 경찰에 알렸더라면...
완력이 있는 2,30대 남자로 혼자 살고 면식범이라는 프로파일링에 해당되는 사내가 또 있다는 것을 알렸더라면...
그렇게 각자 의문을 품고 의심하는, 또 후회하는 한 가지씩을 했더라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 거라고...

오히려 잡힌 그 놈을 얘기하며 이제는 안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모두들 한 가지씩 생각해 보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희생자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헌데, 정말 끝일까?
놈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 여전히 살인을 꿈꾼다.
그리고 그 놈은 우리 주변에 있다.
당신도 바로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나와 놈은 1대1이지만, 모두의 힘을 더하면 다수 대 그 놈의 공식이 성립한다.

여선이의 새엄마가 마음을 다잡았을 때 눈물이 났다.
매일밤 혼백이 되어서 찾아오는 그 아이를 돌아봐준 것,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아이의 젖은 몸을 닦아주고 위로해준 것.
얼마나 무서웠냐고... 가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말해주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경찰서에서 용의자를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 형사는 친딸도 아니냐고 한 마디 했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아주 정중히 사과한다. 그 장면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무심코 드러나는 편견, 그리고 그 편견을 인정한 것, 진심으로 사과한 것 말이다.

경비실 표노인의 과거도 들어났다. 그가 좀 더 용기를 내주기를 바란다.
이제껏 짊어지고 온 죄책감을 덜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왔다고 믿어주었으면...

그나저나, 이 작품을 보고 나니 피자가 좀 무서워지려고 한다. 어제도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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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1-04-0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테리심리썰렁물...ㅎㅎ썰렁물이라니...재밌을 것 같아요.

마노아 2011-04-08 17:19   좋아요 0 | URL
자신이 내는 미스테리물을 '미스테리 심리 썰렁물 시즌' 몇이라고 명명하곤 해요.
오싹함과 감동을 늘 같이 주곤 하죠.^^

2011-04-08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8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8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9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1-04-09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금 이 만화를 통해 경비 업무의 본연의 사명에 대해 사색하게 됩니다. 흠...역시나 강풀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적 만화를 그리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볼 때마다 다시금 느끼지만 왠지 주변 사람들에 더 관심을 그리고 더 대화를 해야한다는 그런 느낌!!

마노아 2011-04-10 01:53   좋아요 0 | URL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현실 이상의 이야기를 해내는 작가님이어서 더욱 신뢰가 가요.
무서운 이야기를 할 때도 따뜻한 감동을 전해주시고요.^^
 
이웃 사람 1 - 미스테리심리썰렁물 시즌 3 강풀 미스터리 심리썰렁물
강풀 글.그림 / 문학세계사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강풀 작가의 '어게인'을 읽다가 뭔가 연결 고리가 맞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강풀 작가가 여름마다 내놓는 미스테리물은 아파트-타이밍이 뒤를 이었는데 어게인과의 사이가 붕 뜬 것이다. 찾아보니 '이웃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뒷 이야기를 먼저 읽은 것이다. 정확히 이어지는 내용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순서대로 읽는 것을 고수하는 나는 이웃사람을 일단 구입했다.  

첫 부분은 다음 연재 당시 내가 보았던 부분이다. 무척 흥미롭기도 했지만 무섭기도 해서 일주일씩 기다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완결 되면 보리라 결심했던 게 오늘에 이르렀다. 

 

한 여고생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여고생의 엄마는 아이가 죽은 후 일주일 동안 날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와 마주친다. 사고 당일 내렸던 비에 젖은 것처럼 흠뻑 젖은 모습으로 말이다. 챕터가 변할 때마다 제목이 저렇게 검은 바탕에 나열되어 있는데 기분 탓인지 글씨만 보고도 오싹함을 느낀다.  

범인은 같은 빌라 안에 사는 독신남이었다. 사건이 있던 날부터 사내는 뭔가 수상쩍은 행동을 했고, 이웃 사람들은 그 이상함을 조금씩 간파했다. 하지만 이렇게 큰일이 얽혀 있을 거란 짐작을 하기엔 무리였고, 이런 일에 나서서 오지랖을 부릴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는 사이 희생자는 늘어가고 이웃들은 점점 더 수상한 사내에게서 수상한 기척을 느낀다. 

 

경비 아저씨가 실종되고, 야간 경비가 고집하는 표노인이 사내의 수상한 점을 포착한다. 혼자 사는 남자 집에 수도 요금이 21만원이라니 당연히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표노인이 등장할 때마다 뒤에서 잔소리를 해대는 저 남자는 살아있는 사람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는 말을 걸고 표노인은 그와 말을 섞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고 야간에만 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이 사람도 뭔가 비밀이 있는 것만 같다. 

 

빌라에는 전과자도 살고 있었다. 사채업을 하고 있고 몸에는 문신도 새겨져 있고, 입도 아주 거친 이 사내가 제일 먼저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웃들이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남자, 남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분리 수거 제대로 해달라는 말에 순순히 쓰레기 봉투를 나른다. 물론, 반상회 총무 일을 보고 있는 아주머니는 겁에 질려서 사내의 저런 면모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표노인이 수도요금 문제를 얘기하러 집에 들었는데 사내는 대뜸 수도요금이 많이 나오면 '수상한 거냐'고 묻는다. 노인이 정정한다. '이상한 거'라고. 그렇다. 사내는 제가 찔리는 게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단어가 남다르게 나온 것이다. 도둑이 제발 저린 격. 

강풀 작가는 심리 묘사에도 늘 탁월했지만 이번 이야기에선 유독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이 그림이 그중 압권이었다. 

 

표노인이 돌아가는지 사내가 집 안에서 지켜보느라 생긴 그림자다. 표노인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좀 더 묘안을 짜낸다. 대담한 척하며 연쇄 살인을 하고 있는 사내도 어쩐지 저 노인께는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본다.  봉준호 감독은 디테일에 무척 신경을 써서 별명이 봉테일이라던데, 강풀 작가는 풀테일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림도 좀 더 신경 썼다는 느낌이다. 단순한 그림체지만 그 안에서 차별화를 두려고 애쓴 듯하다. 이만큼 성취했음에도 더더더 성장하는 작가라니, 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나와 내 가족, 우리 동네를 위협하는 이웃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동시에 그런 위험으로부터 서로를 지켜주는 이웃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중의적 의미로 이 제목을 썼을 것이다. 1권 만으로는 오싹한 기분인데 뒤에는 가슴 뭉클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훈훈한 결말이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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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4-08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즐겁고 행복하고 좋은 일만 가득한 주말 보내세요~ ^^

마노아 2011-04-08 12:44   좋아요 0 | URL
강풀 작가의 책은 언제나 추천이에요.
후애님의 주말 봄은 따뜻하고 아늑하길 바랄게요~

루쉰P 2011-04-09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재밌게 본 만화죠. 주변의 일상 속에서의 소재를 활용해 우리가 알고 있지만 명확하게 느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지적을 잘하는 만화를 그리는 것 같아요. 타인의 무관심이 살인자보다 더 무섭다는 심오한 사상!!

마노아 2011-04-10 01:49   좋아요 0 | URL
늘 느꼈지만 이 책을 보면서 유독 강풀 작가님이 보석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갈수록 빛이 나고 눈부셔요.^^
 

두 얼굴을 하고 있는 하나의 모습. 관련 책들을 모아본다.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
히로세 다카시 / 푸른미디어(푸른산) / 1991년 9월
4,500원 → 4,050원(10%할인) / 마일리지 220원(5% 적립)
2011년 04월 07일에 저장
절판
핵실험
원전을 멈춰라- 체르노빌이 예언한 후쿠시마
히로세 다카시 지음, 김원식 옮김 / 이음 / 2011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1년 04월 07일에 저장

원전
침묵의 함대 1
카이지 카와구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11월
3,500원 → 3,150원(10%할인) / 마일리지 170원(5% 적립)
2011년 04월 07일에 저장
품절
핵잠수함
체르노빌의 아이들 (반양장)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6년 9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11년 04월 07일에 저장
구판절판
체르노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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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많은 비가 아니지만 한 방울도 맞을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지게 만드는 비다.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내린다. 그럼에도 모두들 우산을 쓰고 있다. 어느 할아버지 한 분만이 용감하게 우산을 접고 걸어가신다. 저분이 좀 더 젊었더라면 조금 더 조심을 하셨을까?  

대학 때 수업을 듣다가 어쩌면 북한에 핵무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통일 되면 그건 우리 거 아니냐? 라는 교수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막연하게 그것도 나쁘지 않네... 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참으로 무책임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건 나중에 바람구두님 글을 보면서 깨달았다. 어떤 핑계도 변명도 먹힐 수 없는 절대 악. 그러니 원자력 발전소 역시 그만큼 무서워하고 경계하고 함께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 세계가 동시에...  

좀 길지만 꼭 봤음 싶은 기사 하나 링크 걸어본다. 더불어 관련 책들을 좀 꼽아보련다.

프레시안 기사 

히로시마. 어제 읽은 책이다. 그림책의 형식을 빌렸지만 일종의 사건 경위 보고서 내지 다큐를 보는 느낌이었다. 1945년부터 1997년까지 전 세계 주요 이슈와 핵 관련 사건들의 일지를 마지막에 실었는데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미국은, 정말 이 세계에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게다가 일본은 누구보다 원폭의 위험성을 제대로 직면했으면서도 왜 정신을 차리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늘 나쁜 결정을 내리고 그것으로 위험한 돈을 버는 사람은 소수인데, 그 사람들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하는 이런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가장 똑똑하면서 가장 멍청한 게 인간인 것 같다. 

저녁뜸의 거리. 만화책이다. 지금은 아마 절판일 것 같은데...  

히로시마에서 피폭 당한 소녀가 10년 후 죽음을 맞게 되는 이야기와 그녀의 조카 이야기가 같이 진행된다. 

세로 읽기가 조금 피곤했고, 연출 방식이 좀 혼란스럽긴 했지만 그네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그 정도 불편함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제목은 참 낭만적이건만....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 책은 구입해놓고서 도저히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기증을 했던 책이다.  

원폭 2세 환우였던 김형률 씨의 평전이다. 똑같은 아픔을 지녔던 원폭 1세 재일 교포로부터 일본에 구걸하러 왔냐는 극언을 듣고 충격으로 사망한 고인. 찾아보니 김곰치 씨의 '지하철을 탄 개미'에도 이 내용을 실었다고 한다. 읽기에는 이쪽이 덜 아플 것 같다.  

히로시마를 읽으면서 읽어야겠다고 여긴 책도 있다. 

맨발의 겐은 내게 흥미를 끄는 그림체가 아니지만 기꺼이 봐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의 육성이 생생하게 들릴 것이다. 더불어 평화에 대한 그 갈급함도 저릿하게 느낄 수 있을 테지. 
원폭 후유증으로 열두 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진 사다코. 소망을 담은 천 마리 학을 모두 접지도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어릴 때 곧잘 접곤 했던 천 마리 학에는 로맨틱함과 낭만만 있었는데 누군가에겐 이토록 절박한 사연이 있었던 게지... 

어릴 적에 인상 깊게 보았던 드라마로 '달빛가족'이 있었다. 거기서 가수 김승진이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하나같이 가사가 의미심장했다. 알라딘에서는 ost가 나오질 않네.  

 새끼 손가락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네
할아버지가 히로시마에 살고 계셨다네
내 왼 손가락은 태어날 때부터 한 덩어리로 붙어있었죠
언제나 주머니 속에 숨어 있는 나의 왼손
우우 우~ 우~ 우~ 우~ 

버섯구름이 피어 오를때 우린 무엇인지도 몰랐지
할아버지의 핏속을 통해 전해 내려온줄
내왼 손가락은 한덩어리 여서 제일 불쌍한 새끼 손가락
봉숭아 물한번도 못들이는 내손가락
우우 우~ 우~ 우~ 우~ 

내 왼 손가락은 태어날 때부터 한 덩어리로 붙어있었죠
언제나 주머니 속에 숨어있는 나의 왼손
우우 우~ 우~ 우~ 우~ 

버섯구름이 피어 오를때 우린 무엇인지도 몰랐지
할아버지의 핏속을 통해 전해 내려온 줄
내 왼 손가락은 한 덩어리 여서 제일 불쌍한 새끼 손가락
봉숭아 물 한 번도 못들이는 내 손가락
우우 우~ 우~ 우~ 우~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이 책을 보다가 분노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폰더 씨가 만난 인물 중에는 트루먼도 있었는데 그가 원자폭탄을 쓰기로 결정하면서 이는 어쩔 수 없는, 인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가식을 떠는 장면이 나온다. 맨 위에 소개한 '히로시마'에 보면 실제로 트루먼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1958.2
미국의 트루먼 전 대통령이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사용한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함. 히로시마 시의회가 이에 대해 항의함.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책은 히로세 다카시의 '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다. 구하지 못한 책인데 제목을 보고 더블이 동시에 생각났다. 알려졌다시피 존 웨인은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정복자'를 찍다가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영화 관계자들이 대부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는데 존 웨인만 미 정부가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2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그의 죽음에는 설이 있는데 그를 냉동보관하고 있는 중이라나 어쨌다나.  

박민규의 더블에는 바로 그 존 웨인이 천 년이 지난 뒤 냉동인간에서 깨어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천 년을 지연시킨 죽음이지만 그 끝은 천 년 전보다 더 허무하게 끝난다. 제목은 역설적이게도0 '굿모닝 존 웨인'이지만... 


내가 시미즈 레이코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바로 이 작품 '달의 아이'였다. 지극히 순정만화스런 제목과 그림체이고, 소재도 인어공주를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의 핵심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들어 있다. 충격적인 전개였다. 물론, 작품에서는 그 비극적인 사고를 비튼 결말로 바꿔버리긴 하지만 충격과 공포를 전달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초판본으로 갖고 있어서 애장판을 구입하지 않았는데 절판된 것을 보니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보관을 잘못 해서 책이 좀 휘었는데, 휘어진 책은 좀처럼 원형 복구가 되질 않는다. 아무리 두꺼운 책으로 눌러놓아도....  나중에라도 미련이 계속 남으면 중고책이라도 애장판을 구해볼지도...  

그러고 보니 시미즈 레이코는 이 작품 뿐아니라 월광천녀도 그렇고 비밀도 그렇고 매작품에서 '과학'적 소재를 다루며 그 득과 독을 함께 얘기하는 것 같다. 이번에 일본에서 지진 났을 때 작가님 무사하신지 걱정이 되었었다. 별다른 소식 들리지 않았으니 무사하시겠지.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읽었을 때에는 저자 히로세 다카시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몰랐다. 이번에 후쿠시마 사태를 겪으면서 책도 개정판이 나왔다.  

원전을 멈춰라. 내 장바구니에도 담겨 있는데 수일 내로 주문할 생각이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읽으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던 그 날 죽음의 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망쳤지만 끝내 죽음을 맞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발전소 책임자인 안드레이 세로프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렇게 절박하게 도망쳤지만 끝끝내 피할 수 없었던 죽음을 보면서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기형의 몸을 갖게 된 아이들의 사진을 자주 접했는데 임산부들에게는 차마 보여줄 수도 없는 지경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끔찍한 결말을 이미 확인했는데도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는 21기, 현재 추진되고 있고,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까지 더하면 34개란다. 국토가 좁기 때문에 단위면적 비율로 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에 속한다. 무섭고, 무섭다.  

사진이 또 뜨질 않는데 요 책은 만화 '침묵의 함대'다.  

 핵 잠수함을 소재로 했는데 가장 위험한 무기를 통해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게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사실은 그 배에 핵무기는 없었다. 작품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는데 처음에 읽을 때는 이런 내용을 일본 작가가 그려서 거부반응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시무시함을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더 호소력이 짙었다.  

정치적인 내용을 곧잘 다룬다고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작가의 '메두사'는 구입해놓고 몇 해 동안 보지 않은 게 생각이 난다. 책들이 꽂혀 있는 앞으로 또 다른 책들이 쌓여서 탑을 이루어서 기억도 안 하고 살았다. 어휴...;;;; 이 작품이 애니로도 있다는 건 방금 알았다. 볼 기회가 왔음 좋겠다.  

작품 끄트머리에 날짜 변경선을 따라 각각의 나라를 호명할 때 빛으로 호응하는 모습이 무척 감동이었다.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공통인 것 같아서... 순교자 같은 모습으로 함장은 죽고 말았지만, 그런 혁명같은 일이 만화속에서 말고 현실에서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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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핵폭탄, 원전, 방사능, 봄비조차 두려운...
    from 엄마는 독서중 2011-04-09 06:25 
    가뭄에 단비가 내리는데, 그 비가 무섭고 두려울 줄은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비 한 방울이라도 안 맞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지난 목욜 아침 노인복지관으로 한문공부를 하러 갔는데할머니들이 오늘 길에, 지렁이들의 떼죽음을 보았다며 놀라워 하셨다.비가 오면 지렁이들은 좋아하는데, 왜 그들이 길 위로 올라와 몽땅 죽어 있었을까?혹시 인체에 무해하다는 미세한 방사능 비를 맞고 죽은 게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했다.하찮게 여기는 벌레나 미생물조차도 자연에, 인
 
 
루쉰P 2011-04-0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프로필 사진 바뀐 것을 확인하려고 들어왔다가 또 리뷰가 올라와 있어서 읽고가요. 핵에 대한 책을 이렇게 모아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저도 북이 핵을 가지고 있으니 나중에 우리 것이 되겠지라는 핵 억지론에 포로가 된 적이 있었죠. 이 중에 한 권 사서 읽을려고 해요. 이런 이상한 세계에 살면서 더 깊이 바라보지 못하고 피하기만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리뷰를 보며 반성하고 가네요. ^^

마노아 2011-04-07 16:56   좋아요 0 | URL
하핫, 그림이 바뀐 게 맞군요. 이나중 탁구부는 궁금했는데 아직 못 봤고 낮비는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1권만 갖고 있어요. 아직 보진 못했지만 인상적인 그림이라서 단번에 알아보겠어요.^^
저도 저 중에 보지 못한 책들을 골라서 더 공부해 보려고 해요. 이상하고 위험한 세계에 살고 있으니 보다 부지런해져야겠어요.^^

루쉰P 2011-04-07 20:21   좋아요 0 | URL
제 외모와 직업과 '심해어'의 주인공이 싱크로율 91%에 육박하기에 뭐랄까 도플갱어를 보는 듯해 이미지 사진을 오랜만에 바꿨습니다. 이나중 탁구부는 혹시 여자분이란면 비강추이고 다만 낮비와 심해어는 읽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후루야 미노루라는 대 사상가의 작품이죠. 마노아님도 만화를 좋아하시는 듯 한데 저도 만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후루야 미노루 이 두 작가만을 유독 좋아합니다. 이상하고 위험한 세계를 그려나가는 힘이 후루야 미노루에게는 강합니다. ㅋㅋㅋ 그래서 읽는 이유도 있겠죠. 근데 지금도 부지런하신 듯 한데 역시나 리뷰의 최강자들은 쉬는 틈이 없으셔용.

마노아 2011-04-07 21:59   좋아요 0 | URL
심해어를 어디서 추천글을 보고 중고등록 알림을 설정해 놓았는데 아직까지 문자가 안 울리네요. 낮비로 먼저 충격을 받으면 새책으로 살지도 몰라요.^^;;; 이나중 탁구부는 제가 좋아하는 가수 이승환이 라디오에서 명작이라고 말한 것을 듣고 읽고 싶었는데 그때 당시엔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더랬어요. 얼마 지나 애장본이 나오긴 했지만요. 암튼 관심 가는 자가이긴 해요. 우라사와 나오키는 참 좋아하는 작가예요. 세상엔 읽을 것도 많지만 읽어야 하는 것도 많아요.^^

루쉰P 2011-04-09 02:31   좋아요 0 | URL
낮비와 심해어 모두 1권 처음 몇페이지에서 심오한 사상을 발산하죠. 낮비의 경우 하잘것 없는 인생을 보내는 청소원 주인공이 그 불만을 자신의 동료 안도씨에게 털어놨을 때 그의 명대사 정말 감동이죠. 웃음 속에 우울이 있는 것이 후루야 미노루 최신작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에요. 가수 이승환은 저도 좋아하는데 이나중 탁구부를 좋아할 줄이야...이나중 탁구부는 슬램덩크가 일본을 석권하고 있던 시절 등장해 유일하게 슬램덩크를 눌렀던 전설적 만화죠. 탁구부라는 말에 스포츠 만화가 아니냐는 오해들을 하는데 탁구는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성과 인생에 대한 고찰만 나오죠. 독서는 절대 스트레스 금물이에요. 전 제가 좋아하는 책 90%를 보다가 나머지는 추천으로 봅니다. 마음가는 대로 보세요. ^^ 그리고 혹시나 만화류 중에서 추천 명작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전 애니도 좋아하는데 'N.H.K에 어서오세요.'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이 두 만화와 애니를 최고의 작품으로 칩니다. 근데 점점 글을 쓰다보니 오타쿠 같은 냄새를 풍기네요. 아~ 죄송합니다.

마노아 2011-04-10 01:38   좋아요 0 | URL
오, 이나중 탁구부에 탁구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것은 몰랐어요. 성과 인생에 대한 고찰은 들어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도 이승환이 한 번 언급했던 만화네요. 아하하핫, 그런 쪽만 기억에 남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만화는 거의 리뷰로 남겼어요. 제 리뷰에서 제목만 훑어보셔요. 아마 취향이 많이 다를 거예요. 그래도 그 중에서 루쉰P님의 흥미를 끄는 작품이 있었으면 합니다.^^

개인주의 2011-04-07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 저런 무서운 노래가사가 있었군요.

마노아 2011-04-07 19:18   좋아요 0 | URL
유튜브에서 음악을 가져왔는데 자꾸 에러가 나네요. 이따가 다시 수정해야겠어요.^^;;;

sslmo 2011-04-07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들은 한덩치 하거든요.
"엄마, 큰 우산 쓰고 오랬어."하길래,
"그럴줄 알고 요 앞 슈퍼 파라솔 우산 하나 빌려놨어~"했답니다.

그래도 첫 봄비라고 생각하니...운치 있고 그렇습니다~^^

루쉰P 2011-04-07 20:22   좋아요 0 | URL
읽다가 빵 떠짐..ㅋㅋㅋ

마노아 2011-04-07 22:00   좋아요 0 | URL
아하핫, 파라솔 우산, 아주 훌륭한 선택입니다.
종일 비가 내렸는데 방사능 걱정만 아니었다면 봄기운을 흠씬 느끼며 반가워 했을 거예요.^^

2011-04-07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7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4-08 0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앞으로 닥칠 재앙을 인간이 책임질 수 있을지...
오만한 인간의 자멸의 길만 남은 거 같아요.ㅜㅜ

마노아 2011-04-08 01:37   좋아요 1 | URL
우리의 뒷세대는 무슨 죄로 이 재앙을 이어갈까 두렵고 미안하고 그래요.
지금이라도 돌이키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을 당장 해야할 텐데요.ㅜ.ㅜ

무스탕 2011-04-08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병원에 다녀왔는데 의사샘이 비를 맞고 횡단보도에 서 있더라구요 (병원 근처에서 흰가운을 입고 있으면 무조건 의사 -_-) 우산을 씌워줄까 하는 맘이 생기더라는..
신랑이 퇴근하고 와서 티비를 돌려보면서 야구를 안하네.. 그러길래 이 빗속에 누가 비맞고 야구를 하겠냐, 협회에서 강행하면 선수들이 파업할거라 그랬지요. 야구도 제대로 볼수 없는 불안한 세상.. ㅠ.ㅠ

마노아 2011-04-08 12:45   좋아요 0 | URL
그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이라면 의사가 아닐 것 같다는 의심이 무럭무럭...ㅎㅎㅎ
정말 불안한 세상이에요. 지구 한 바퀴를 돌든, 반바퀴를 돌든 어찌됏든 비켜갈 수 없는 노릇인데 말이죠.

꿈꾸는섬 2011-04-0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비는 정말 공포에요.ㅜㅜ
지금 당장 증상이 나타나는게 아니니 더 무서운 것 같아요.ㅜㅜ

마노아 2011-04-08 17:22   좋아요 0 | URL
경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무서운 시간을 살고 있어요. 봄이 왔는데 봄을 느끼기가 어려워요...
 
히로시마 - 되풀이해선 안 될 비극, 그림으로 보는 히로시마 이야기
나스 마사모토 지음, 니시무라 시게오 그림, 이용성 옮김 / 사계절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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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고학년 추천용으로 카테고리가 잡혀 있는 그림책이지만 어린이들만을 위한 책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어른이 먼저 보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그런 책이다.  

요즘처럼 우리나라에 방사능에 대한 관심과 공포가 고조된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책꽂이에 있던 이 책이 떠올랐다. 마음이 많이 무거워질 것 같아서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는데 심호흡과 함께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그 순간에 목숨을 잃었던 어린 소년이 영혼이 되어 다시 히로시마 창공을 날며 과거의 시간을 되짚어보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번째 그림은 1994년 8월 6일, 그러니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그때로부터 49년이 지난 시점에 찍은 사진을 참고해서 그린 것이다. 해발 580미터 하늘에서 내려다본 광경인데 굳이 그 높이에서 찍은 이유는 당시 투하됐던 원자폭탄이 터진 높이가 580미터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식민지와 점령 지역을 주황색 선과 면으로 표시했다. 보라색은 영국령, 분홍색은 프랑스령이다. 그밖에 네덜란드 식민지가 되어버린 인도네시아와 미국 밑으로 들어가버린 필리핀도 보인다. 온 세계가 전쟁통이었다. 그러니 세계 대전이라고 부를 만하다.  

전쟁 발발국이었던 이탈리아가 1943년에 항복을 했고, 히틀러의 독일도 1945년 5월에 무릎을 꿇었다. 일본만 남았다. 일본의 광기가 끝을 모르고 치닫고 있었지만, 과연 1945년 8월 6일 그 시점에, 원자폭탄이 아니었다면 전쟁을 끝낼 수가 없었을까? 트루먼과 히로히토는 그렇다고 수긍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보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보여주고 확인할 필요가 더 우선이었을 것이다.  

포츠담 회담을 시작하던 7월 17일 하루 전날, 뉴멕시코 주의 앨러모고도에서 첫 원자폭탄 실험이 있었습니다. 루스벨트의 뒤를 이어 미국의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포츠담에서 이 실험이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는 협상에 참가하는 트루먼에게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포츠담 선언이 발표된 7월 26일, 이미 두 개의 원자폭탄이 티니안 섬으로 운반되어 있었습니다. 트루먼은 하루 전에 이 폭탄들을 사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미국의 권력자들은 자기들의 힘을 온 세계, 특히 소련에 보여 주기 위해 전쟁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원자폭탄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에 들어간 비용과, 앞으로 이어질 연구에 들어갈 막대한 비용을 나랏돈으로 충당하는 일에 대해 국민들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 21쪽


20세기 초에 과학자들은 자연 방사 현상을 관찰하다가 원자핵이 커다란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불길하게도 핵분열 현상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9개월 전에 발견되었다. 원자폭탄 개발은 독일이 가장 먼저 시작했지만 그 성공은 미국과 영국의 몫이 되었다.  

 

자신의 이름이 역사에 남는다는 건 명예이지만, 그 이름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드는 데에 결정적 열할을 했다는 사실과 함께 기록된다면 그 명예는 치욕일 것이다. 많은 이름난 과학자들이 맨해튼 계획에 동원되었고, 원자폭탄 제작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게 중에는 이 무시무시한 무기의 위력과 폐해를 알아차리고 핵무기 규제에 애를 쓴 인물들도 다행히 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보이와 사흘 뒤 나가사키에 떨어진 패트맨의 단면도다. 앞의 것이 우라늄으로 만들었고 뒤의 것이 플루토늄으로 만들어졌다. 둘 다 만 단위의 무수한 사람이 죽게 만든 원흉이지만 히로시마가 먼저 원폭 피해를 입었고 사상자도 훨씬 더 많았기에 원폭에 대한 이미지는 아무래도 나가사키보다 히로시마 쪽이 더 강렬하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도 히로시마. 

이 책은 글이 꽤 많다. 당연하다. 그때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 주기 위해선 제시하고 설명하고 보탤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8월 6일의 사건 당일의 기록도 시와 분 단위로 자세히 담겨 있다. 맑은 날씨를 기록한 8월 6일에, 원자폭탄을 실은 폭격기 에놀라게이 말고도 폭발을 관찰하고 촬영하기 위한 두 대의 비행기가 더 따라갔다. 자신이 누른 버튼 하나에 수십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했다는 사실에 그 조종사는 어떤 마음으로 살까 안쓰러웠다. 그런데 뒤에 기록을 보니 31년 뒤에 폭격기의 기장 폴 티베츠가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에어쇼에 참석한 것을 보았다. 인간이 참으로 무섭고 끔찍하다. 하긴, 1975년에 일왕 히로히토는 “히로시마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원폭 투하는 당시 상황을 볼 때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라고 말을 했으니 더 붙일 말이 없다. 

 

폭탄이 터지고, 눈부신 섬광이 발생했다. 이어서 거센 폭풍이 도시를 집어삼켰고, 몇몇의 건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들이 모두 부서졌다. 사람들 또한 무참히 이리저리로 날아가 버렸다. 원폭 시험을 위해서 다른 폭격으로부터 제외되었던 이 도시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히로시마 상공 580m 높이에서 일어난 폭발은 1조4천억 칼로리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내뿜었습니다. 폭발 당시 폭심의 순간 온도는 섭씨 몇백만 도에 이르렀습니다. 폭발한지 0.1밀리초(1밀리초는 1,000의 1초) 뒤 지름 30m짜리 불덩이가 생겨났습니다. 불덩이의 바깥 온도는 섭씨30만 도에 이르렀습니다. 불덩이의 지름은 순식간에 500m로 커졌습니다. 불길은 10초 동안 눈부시게 타올랐습니다. 불덩이가 내뿜은 열선 때문에 폭심 근방의 온도는 섭씨3천에서 4천 도까지 치솟았습니다. 공중폭발로 생긴 충격파가 폭풍을 일으켰습니다. 이 충격파와 땅에서 반사되어 생긴 충격파가 합쳐졌습니다. 폭심 부근에는 폭풍의 압력이 평방미터 당 30t에 이르렀고, 이런 상태는 약 1분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재래식 폭탄이 폭발할 때 일어나는 폭풍의 압력이 겨우 몇 밀리초 동안 유지된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참으로 엄청난 위력입니다. – 46쪽  

저렇게 어마어마한 것이 터졌으니 사람이 무사할 리 없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후의 방사능 오염이다. 도시에 있던 사람들 뿐아니라 그들을 구하러 온 사람들까지 연이어서 방사능에 노출되고 목숨을 잃었다. 사건 당일 히로시마에 있었던 사람은 대략 35만 명 정도로 추정하지만, 이후 방사능에 오염된 사람은 무려 45만 명이나 되었다. 그들의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심지어 되물림 되고 있다.  

 

플루토늄의 반감기는 무려 24,000년.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누가 지었는지 이름도 기막히게 지었다.  

핵을 무기가 아닌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면서 지은 원자력 발전소가 전 세계에 대략 530여 개쯤 된다고 한다. 핵무기와 원자력 발전 때문에 방사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어림잡아 350만 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제 이 숫자는 지난 달을 기점으로 비할 수 없이 많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원자력 발전소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아니어도 결코 안심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변명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오스트리아의 실례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1978.11
오스트리아가 원자력 발전소 운영에 대한 국민 투표를 함. 그 결과로 오스트리아는 원자력 발전소 운영을 중단.
1986.9
오스트리아 정부가 이 나라의 유일한 원자로였던 츠웬텐도프 원자력 발전소를 해체하기로 결정. 이 발전소는 1977년에 완성되었으나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었다.

해마다 8월이면 히로시마에서 '히로시마의 날' 행사를 갖고 추모와 평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책에서는 그들의 행보와 달리 일본 정부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하고 무개념적인 핵정책이 소개되고 있지만 8월 6일의 끔찍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히로시마에서는 끊임없이 핵무기를 금지하고 방사능을 경고하는 메시지들을 보내왔다. 시장의 연설들은 얼마나 개념에 차 있던지.... 

1979.8
히로시마의 날 기념 연설에서 히로시마 시장이 “방사능 피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라고 말함
1991.8
히로시마 시장이 히로시마의 날 기념 연설에서 2차대전 기간 중에 일본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저지른 가혹한 범죄들에 대해 일본 전체를 통틀어 처음으로 공식 사과함. 히로시마 시장은 또한 히로시마가 전 세계의 핵실험 피해자와 핵 시설 관련 사고의 피해자들을 도와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
1997.8
히로시마 시장이 일본 정부에 미국의 핵우산에서 벗어나라고 처음으로 요구. 이러한 요구는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일본의 핵 정책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짐.

히로시마에서, 체르노빌에서, 그리고 후쿠시마에서 인류는 명부의 신과도 같은 무서운 물질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이 무시무시한 악의 정체를 포기하지 않고 감싸 안는다면, 같이 명부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인류가 그토록 멍청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어리석지만은 않을 거라고 한 줌 기대를 보태본다. 이렇게 평화와 희망의 등을 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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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4-07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비 온대요.
봄비가 반갑지만은 않은 것은 방사능을 잔뜩 머금고 오기 때문이라지요~ㅠ.ㅠ

플루토늄의 반감기, 무시무시한걸요~

마노아 2011-04-07 01:56   좋아요 0 | URL
언니가 제주도에 다녀오자고 했는데 다음에 가자고 했어요. 여기서 거기가 무슨 차이겠냐 싶지만 그래도 두려워요. 비도 두렵습니다. 어휴...ㅜ.ㅜ

루쉰P 2011-04-07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들르는 서재들에 마노아님의 댓글들이 보여서 한 번 놀러와 봤는데 이렇게 좋은 책 리뷰를 보게 돼서 감사하네요.^^ 핵에 대해 알고 싶어도 내 인생에 상관없어라는 굉장히 무서운 방관자적 입장에서 이런 리뷰를 보니 눈이 확 뜨이네요. 사실 지금 당장 내 목줄을 죄지 않으면 그것이 진정한 공포인지를 모르는 것이 제 습성인 것 같아요. 후쿠시마 같은 사태가 제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데 말이죠. 예전에 열심히 읽었던 <인물과 사상> 잡지에서 원폭피해자인 재일동포 분의 사투가 그려진 칼럼이 있었는데 정말 그 누구한테 탓할 수도 없고 오로지 피해만 입고 살아야 했던 그 사진 속의 재일동포의 눈매가 잊혀지지 않더라구요. 좋은 리뷰 정말 감사히 읽고 가요. ^^

마노아 2011-04-07 14:0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루쉰P님! 사람들이 대개 그런 것 같아요. 광우병 때도 그랬고 백두산 폭발 얘기 들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 방사능 비를 걱정하는 지금도 그렇고... 그때그때 세상에 종말이 온 것처럼 마구 걱정을 하다가 또 다른 큰 사건이 터지면 금세 잊거나 덜 급해지곤 하지요. 이렇게 위기감기 고조되었을 때 또 다른 중요한 무언가가 잊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해요.
예전에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책을 구입했어요. 원폭2세 김형률 씨의 평전이었는데 도저히 읽을 자신이 없어서 기증을 했거든요. 읽지 않고 보낸 그 책이 떠오르면서 고인께도 미안하고 여러 피해자들께도 죄송하단 생각이 들어요. 리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루쉰P 2011-04-07 15:5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제 삶을 봐도 그런 것 같아요. 뭔가 고민이 있을 때 세상이 종말 온 것처럼 난리를 치다가 또 다른 큰 고민이 터지면 또 우왕 하면서 전 고민을 잊어버리고 다시 반복...(-.-) 그래도 마노아님은 그런 문제들에 대해 이렇게 파악하고 계시니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흠...오늘도 배우고 가요. 완전 감솨...

마노아 2011-04-07 16:27   좋아요 0 | URL
모두들 비슷하게 사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소수의 분들이 계시고요.
얼라, 그 사이 대표 이미지가 바뀐 건가요? 그림이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