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 수요일에는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100회 특집을 다녀왔다. 연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진행을 했는데 이날은 그 학교 학생들의 졸업 사진 찍는 날이기도 했다. 덕분에 홀에서 밀려나 땡볕에서 줄을 서야 했다.협찬이 있었는지 입장할 때 간식도 주었는데 쁘띠젤이랑 맥스봉 소세지 하나. 으하핫, 백지연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걸...;;;;; 

백지연 책이 나온 건 그날 알았다. 피플 인사이드를 진행하면서 인터뷰를 가졌던 내용을 모았나 싶었는데 목차를 보니 그건 아닌가 보다. 인터뷰 쪽이었으면 더 읽고 싶었을 텐데 살짝 아쉽다. 

암튼, 밖에서 기다리다가 지나치게 광합성을 한 나머지 1부 첫 순서였던 인순이 씨가 나왔을 때 그만 졸고 말았다. 죄송해요. 그치만 전에도 라이브 곧잘 보았기 때문에 아쉽진 않았어요.^^;;; 

두번째 초대 손님은 장혁이었다. 설마 노래도 부를까 싶었는데 설마 노래를 부르더라. 잘 불렀냐고 묻는다면 그냥 연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출연하자 잠이 확 달아나는 눈의 즐거움으로도 극복하기 힘든 그런 느낌이랄까. 노래가 중반까지 갈 때까지도 그게 한국 노래인지 팝송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다..ㅜ.ㅜ 

느릿느릿한 말투로 성실하게 대답하는 장혁은 그야말로 모범생 같았다. 지나치게 피트된 옷을 입지 않았다면 영춘권을 보여주었을 텐데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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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5-1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바로가기 주소 클릭해서 들어갔더니 확실히 '쫄리' 신부로 돼 있네요.
이제 제대로 고쳤나 봐요~ 수고했어요, 투철한 신고정신은 상 받아야 해요.^^

마노아 2011-05-12 00:2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모니터 해상도가 큰가요? 바로 그렇게 보여서 놀랐어요.
저는 계속 '폴리'로 보이는데, 폴리의 비밀은 풀렸어요. 글자가 작으면 눌려서 저렇게 '폴리'로 보인데요. 미스터리 알라딘이 아니라 미스터리 한글이에요. 아님 미스터리 '워드'랄까요.^^

하늘바람 2011-05-1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지연은 정말 몸매 하나 타고 났네요 그냥 찍은 사진도 저리 예쁘다니요, 흑 부럽네요
와 콘서트를 다니시는 님 완전 부러워요
조용한 그림책이라 아주 궁금한데요
투철한 신고 정신 저도 배워야 하는데 말이에요

마노아 2011-05-12 00:29   좋아요 0 | URL
백지연이 처음 등장했을 때 다리가 너무 날씬해서 화들짝 놀랐어요.
제대로 연예인 몸매였답니다.
싱글인 저는 아무래도 가볍게 버닝을 하게 되네요.
조용한 그림책은 나중에 다시 빌려봐야겠어요.^^

2011-05-11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5-12 00:30   좋아요 0 | URL
완전 천재예요! 어떻게 알았어요? 실험을 해본 거예요? 아님 원래 알고 있던 것???
하여간 미스터리를 풀어줘서 고마워요. 모니터를 큰 사이즈로 바꿔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어요.ㅎㅎㅎ

책가방 2011-05-12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궁금... 마노아님은 뭐하는 분이실까요???
맨날 공장장님 뵈러 다니시고, 요리하시고, 수영하시고...

제게도 아직 폴리로 보이네요.ㅋ

마노아 2011-05-12 12:33   좋아요 0 | URL
아이 참, 저는 그냥 평범한 백수였어요. 3월과 4월은 일한 날이 일주일 가량밖에 안 되었거든요.
하도 갑갑해서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고 빵을 만들어봤어요. 결과는 좀 처참했지만요...;;;
수영은 작년에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는데 8월이라 너무 더운 나머지 고른 운동이었고요.
폴리의 비밀은 작은 서체와 볼드에 있었어요. 큰 모니터로 보면 '쫄'로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저도 여전히 폴리로 보입니다.^^;;;

버벌 2011-05-12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책가방님과 같은 생각을 했어요. 마노아님은 뭐하는 분일까요?
굉장히 많은 것을 하고 계시고, 읽는 책도 다양해요. 게으른 저로썬 상당히 부럽다는.

전 집과 직장 집과 직장 아주 가끔 약속
책. 스도쿠. 책. 스도쿠. 만화책. 책. 스도쿠 -> 야구시즌엔 스도쿠와 야구가 번갈아가면서.
(야구 시즌엔 몸 속 알콜치가 연속으로 최고치를 찍습니다.)
비는 시간을 위해 휘트니스 센터에 들르겠다 다짐만 몇년째.
비는 시간을 위해 취미를 갖자. 집 앞에 실용음악학원 방문해보자 다짐만 1년째.

저에게 힘을 주세요. ㅠㅠ

마노아 2011-05-12 12:35   좋아요 0 | URL
애석하게도 많은 것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건 일이 없어서 쉬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일이 있어도 공장장 쫓아다니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지만요.^^;;;;
내일은 수영을 가고 싶은데 회식이 있다네요.
아휴, 출근 3일째인데 회식을 빠질 수도 없고...;;;;
취미든 운동이든 스트레스를 받으며 할 수는 없잖아요.
기운을 내요! 할 수 있는 날이 꼭 올 겁니다.^^;;;

섬사이 2011-05-12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8세 백지영, 참.. 예쁘네요.
예쁜 백지영 보면서 쫌 우울해지는 거 정상이죠? ㅠ.ㅠ

마노아 2011-05-12 12:36   좋아요 0 | URL
백지영은 가수고요^^;;;;
암튼 백지연은 누구라도 부러워하게 만드는 인물이었어요.
어휴, 어떻게 관리하면 저렇게 될까요..ㅜ.ㅜ

섬사이 2011-05-12 12:44   좋아요 0 | URL
크헉, 이런 실수를!!
종종 샤갈을 샤넬로, 코렐을 코펠로 말하곤 하는 아줌마니까
이해해줘용~ ㅋㅋㅋ

마노아 2011-05-12 12:48   좋아요 0 | URL
샤갈과 샤넬, 코렐과 코펠은 지나치게 닮았어요.
저는 백지현인가? 싶어서 다시 검색하고 왔답니다.^^ㅎㅎㅎ

다락방 2011-05-1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pc 에서도 폴리로 보여요. ㅍ ㅗ ㄹ ㄹ ㅣ (<-일부러 이렇게 썼음. 쫄리로 보일까봐)

저 토요일도 삼겹살, 일요일에 오리, 화요일에 또 삼겹살. ㅠㅠ
전 제가 나가서 알아서 고기 잘 먹는데, 집에 오면 식구들도 모두 고기를 먹어대가지고 제가 고기를 쉴 수가 없네요. 이 가족들은 어째 먹었다 하면 고기를 ㅠㅠ

마노아 2011-05-12 12:38   좋아요 0 | URL
워드에서 9폰트 굴림체 볼드해놓고 쫄이라고 쓰면 '폴'이라고 보이는 걸 어느 분의 제보로 알아차렸어요.
한글에서 써보면 그렇게 안 보이는데 워드에서는 그렇게 보이네요. 알라딘에서 상품명 기재할 때 쓰는 양식이 워드 9폰트에 볼드일까요?
저는 폴리라고 보이니 왜 쫄리라고 우길까, 하고 생각하고, 알라딘은 쫄리라고 보이는데 왜 폴리라고 우길까, 이랬네요. 아, 생각하니 웃겨요.^^

내일 회식 있어서 고기 먹는다네요. 아, 벌써부터 뱃속에 기름이 끼는 느낌이에요...;;;;

pjy 2011-05-1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둘러 앉아서 ㅋㅋㅋ 안습공장장님^^;
가글 컵의 부재와 사기치는 커피자판기~1회용? 속옥에 우롱당하는 마노아님 ㅋㅋㅋㅋㅋㅋㅋ

"쫄리"와 "폴리"는 아무리 자세히 봐도 다르지 않습니다..이건 알라딘에서 표기하는 글자크기나 서체에 문제가 있는거 같아요^^;

마노아 2011-05-12 12:42   좋아요 0 | URL
아무리 울 공장장님이 작은 체구를 자랑해도 나의 애정엔 변함이 없어요. 주르륵...(그러면서 운다..;;;)
종이컵 없는 자판기는 오늘도 울컥이지만, 그 넘의 속옷은 오늘도 새거 하나 입고 왔어요. 좀전에 불만족 구매 확정을 하고 왔답니다. 여러모로 우롱당했어요...ㅜ.ㅜ

쫄리와 폴리도 저를 우롱했지요. ㅋㅋㅋ 어제는 심각했는데 오늘은 웃겨요.^^ㅎㅎㅎ

무스탕 2011-05-12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를 보면 채널을 돌리지 못하겠더라구요. 아, 어쩜 저렇게 말을 잘 하고 말을 잘 이끌어 낼까.. 싶은게요. 며칠전엔 흑인 아저씨랑 영어로 인터뷰를 하는데 어휴, 못하는게 뭡니까?! 그랬다니까요;;;

공장장님은 뭘 잡숫기에 저 나이에(!) 저렇게 기운이 넘친답니까? 혹시 마노아님이 맨날맨날 뭔가을 넣고 뭔가를 만들어서 보내주고 그러는거 아니에욧?! 밝혀보아욧! 그동안 '요리를 해 보았지' 라고 글을 쓰시면서 실은 30%만 밝히고 나머지 안 밝힌 70%에 공장장님이 일용할 뭔가를 만들고 그런거 아니에욧?!

저도 아직도 쫄리(ㅉㅗㄹㄹㅣ)로 보여요. 아무래도 컴터의 농간인가봐요.

마노아 2011-05-12 21:22   좋아요 0 | URL
퀸시 존스 말이군요. 저는 보지 못했는데 저때 녹화장에서 백지연이 퀸시 존스 이야기를 했었어요.
어휴, 이 여자는 똑똑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니, 뭇 여성들을 참 부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요.^^

울 공장장님이 팬들의 기를 빨아드시고, 팬들은 기운이 딸려서 비실비실 대는 게 아닐까 몰라요.
쫄리는 여전히 폴리지만, 사실은 쫄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 웃을 밖에도. 미스테리해요.^^ㅎㅎㅎ

건조기후 2011-05-13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쫄ㅉ리로 고쳐져 있어요. 익스플로러 상단 메뉴에 페이지-확대 해보시면 학실히 쫄ㅉ리로 나와요^^
어제 댓글 달려고 했는데 갑자기 딴 거 하다가 잊어버렸네요 하하; 글자 참 묘하긴 해요. 알라딘도 답답했을듯 ㅎ

마노아 2011-05-13 15:24   좋아요 0 | URL
아마 저랑 익스 버전이나 윈도우 버전이 다른 것 같아요. 그런 기능 없어요.ㅜ.ㅜ
없지만, 왜 저렇게 글씨가 보이는지는 이제 알고 있어요. 글자 정말 묘해요. 알라딘과 저는 서로 답답해 했죠.^^ㅎㅎ
 
히스토리아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고종석의 발자국을 먼저 읽고서 보다 앞에 쓴 히스토리아를 찾아 읽게 되었다.  

하루에 하나의 일들을 기술했으니 매일매일 한 장씩 읽게다는 각오였지만 애초에 1월 1일부터 읽기 시작한 게 아니니 잘 안 됐다. (난 원래 중간부터 읽지 않는지라...) 

아무래도 여러 차례 쓰고 난 뒤니 발자국 쪽이 좀 더 문장이 정제되어 있다고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히스토리아의 문장이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고종석의 문장은 깔끔하다. 진중권 느낌의 냉소는 아니지만 적당히 차가운 미소가 흐른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은 서늘하면서 아주 약간의 한풀이를 해준다. 이런 한풀이도 못한다면 그 억울함들을 어찌 할까. 

1월 22일 김상옥
한국의 자칭 ‘주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명예심이다. 그들은 친일을 외치던 그 입으로 해방된 조국에서 애국을 외치면서도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만큼 둔감하거나 교활했다. – 34쪽  

4월 22일 지구의 날
지구는 태양계에서 고등생물이 서식하는 유일한 행성이다. 그래서 ‘하나뿐인 지구를 사랑합시다’라는 구호는 상투적인 만큼이나 절실하다. – 126쪽  

4월 26일 게르니카 폭격
1936년 7월 프랑코가 이끄는 모로코 주둔군의 반란으로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세계 양심의 시험장이었다. 이 내전은 지식인 사회에서도 좌파와 우파를, 우파와 우파를, 좌파와 좌파를 분열시켰다. 예컨대 프랑스의 우파는 대개 프랑코의 반란을 지지했지만, 클로델이나 베르나노스 같은 가톨릭 작가는 파시즘과 스페인 교회를 비판하고 나섰다. 당초에 프랑코의 반란에 호의적이었던 모리악도 결국 공화파 지지로 돌아섰다. 좌파 내부에서도 스탈린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분열했다. 승리를 파시스트에게 돌아갔다. 양심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 130쪽  

5월 14일 조명하
그들이 자기 희생적 실천으로 노현한 그 열망이 없었다면, 우리의 해방은 훨씬 더 늦춰졌을 것이다. 이들의 반대편에는 일제에 대한 소극적 순응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른 이들이 있었다. 역사를 잊은 이에게 역사는 반드시 복수한다. 박정희 기념관이 세워져서는 안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다. – 148쪽  

6월 14일 스토 부인
노예 제도는 사람이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평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 노예 제도는 외국인 노동자나 혼혈인들을 멸시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고, 여성들을 깔보는 남성들의 마음속에 있고, 장애인들을 백안시하는 비장애인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것은 차이의 권리를 권리의 차이로 바꿔치기하는 우리들의 교활함 속에 있다. – 179쪽  

8월 27일 부전조약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속언은 군국주의자들의 금과옥조였지만, 전쟁 준비는 늘 전쟁으로 마무리됐다. – 256쪽  

9월 3일 호치민
호치민은 공식적으로는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의 지도자였지만, 그의 이름은 외세에 맞서 싸우는 남북 베트남 민중 전체의 단합을 상징했다. 남북을 통틀어 그런 지도자를 가져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부러워할 만한 점이다. – 263쪽  

9월 11일 아옌데
아옌데가 몸을 피했다면 목숨을 보전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피신을 권했다. 그러나 이 ‘노동자들의 대통령’은 조국의 민주주의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정했다. – 271쪽  

11월 2일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의 죽음은 참혹하다. 그러나 그 사실이 그녀가 형편없는 여자였다는 사실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명성황후 민씨의 죽음은 그보다 훨씬 더 참혹했지만, 그것이 민씨를 좋게 볼 이유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 325쪽  

11월 10일 창씨개명
장준하는 생전에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셋 있는데, 첫째는 오카모토 미노루, 둘째는 다카키 마사오, 셋째는 박정희”라고 말한 바 있다. 세 사람은 동일인이다. – 333쪽  

12월 6일 파농
그와 더 닮은 사람은 체 게바라일 것이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질병은 진료실에서가 아니라 사회 변혁의 과정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359쪽  

12월 14일 워싱턴
워싱턴은 1796년 3선 대통령으로 추대됐지만 민주주의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 367쪽

지금도 집에서는 하루에 한 장씩 넘기는 미니 달력을 쓰고 있지만,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고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었기 때문에 흥미 이상을 주지는 않는다. 매일매일 그렇게는 못하지만 '발자국'과 '히스토리아'를 동시에 넘겨가며 그날그날 있었던 역사의 자취를 가끔 밟아본다. 그때 그 일이 이 계절에 있었구나, 이 날은 여러 사람이 죽거나 태어났고, 역사적인 일들이 있었구나... 하며 한 번씩 되새김하게 된다.  

'발자국'에는 사진이 없는데, '히스토리아'에는 아주 작은 사이즈라도 사진을 실었다. 그 덕분에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이렇게 미남일 줄이야!하며 놀라기도 했다. 영화 '왕중왕'에서 예수님 역을 연기했던 제프리 헌터 느낌이었다.(앗, 찾아보니 이 배우 죽은 지 한참 지났네!) 

그렇지만 옥의 티가 있었으니, 바로 오타다. 

113쪽에는 4월 9일인데 4월 8일이라고 소제목부터 오타가 났다. 

338쪽 케플러 편에서는 두번째 줄에서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다. '한길에서급사했다'로 적혀 있다. 

351쪽 마젤란 해협 편에서 1921년으로 표기되어 있다. 1521년으로 고쳐야 한다. 

368쪽의 아이히만 사형 선고 밑에서 세 번째 줄의 '그러나'는 앞뒤 문맥상 어색한 접속사다. 

369쪽의 보스턴 차 사건에서는 1975년이라고 적었는데 1775년으로 고쳐야 한다. 

376쪽의 쳇 베이커 편에서 중간 즈음에 '쿨 재즈를 주도하며 베이커과 멀리건의'>>베이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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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1-05-10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 읽으셨군요. ^^ 후기작은 초기작보다는 못한 것 같아요. 이 책은 물론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요새는 뭐하시는지 모르겠네.

마노아 2011-05-10 12:15   좋아요 0 | URL
초기작이 더 좋단 말이지요? 문장이 깔끔해서 관심이 가요.
초기작도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요새는 아프님 서재에서 칼럼으로 만나게 되네요.
칼럼 말고 또 뭘 하시는지...ㅎㅎㅎ

sslmo 2011-05-10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을 참 좋아해서 그의 책들을 꽤 읽었는데...이 책은 아직이예요.
이 분의 <여자들>을 읽고...황인숙이 참 부러웠었는데 말이죠.
아니다, 황인숙 같은 사람을 친구로 둔 고종석이 부러웠나 보다~^^

마노아 2011-05-11 20:49   좋아요 0 | URL
여자들을 읽어야겠다고 보관함에 넣어놨는데 책장을 올려보니 저 그 책 갖고 있는 거 있죠...ㅜ.ㅜ
하마터면 두 권 살 뻔했어요....(>_<)

순오기 2011-05-1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는 '마음산책' 편집자가 봐야 다음 쇄 찍을때 고치겠군요~~~ ^^

마노아 2011-05-11 20:49   좋아요 0 | URL
오타 지적은 매번 리뷰에만 했는데 출판사에다가 줄기차게 메일을 보내볼까봐요.ㅎㅎㅎ

2011-05-11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2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1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1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새 이 노래를 자주 접하게 되어서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지식채널이 눈에 걸렸다.  

역시나 마음이 찌잉하게 울리게 된다.  

정말,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개인이 역사를 잊을 때  역사도 스스로를 잊는다. 

그러나 역사를 잊지 않는 개인들이 있을 때 역사는 스스로를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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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해보았지 2
요리를 해보았지 5
요리를 해보았지 7

깨찰빵과 핫케이크는 지난 4월 26일에 만들었으니 한참 전이다. 남아있던 믹스 가루를 다 쓰기로 결정, 두 번째 만들어보는 거라고 여유만만한 손동작으로 아주아주 대충 만들었다. 지난 번 만들 때 반죽이 손에 찰싹찰싹 달라붙었던 게 싫어서 그냥 숟가락으로 뚝뚝 떼어서 오븐 토스터의 쟁반 위에 올려놓았다. 귀차니즘의 대가는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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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지막 밀가루였어. 이제 밀가루 다 썼어. 끝이야! 

이제 그만 만들겠다는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만들려고 표시해두었던 북다트를 모두 회수했다. 

사실 그 사이 빵만들 때 쓰려고 크림치즈를 위한 기프티콘도 사뒀지만 야금야금 다 써버렸고 

노래처럼 제빵도 나에겐 좀 무리인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과학향기 보고서 만든 빨대 피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고(그럼에도 다현양이 좋아라 하면서 가져갔다.) 

어제는 여름용 옷들을 꺼내어서 입어보는데 왜 그리 위아래 안 어울리는 옷들만 입냐고 엄니께 핀잔을 들었다.  

나에게 미학이란 없는 것인지... 

그래도 어린이날 기념 퍼머를 한 조카는 예쁘기만 하다. 우리집에선 공통으로 예쁘다고 한다.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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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11-05-0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마지막 편인가요 ㅜㅜ 아쉽네요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나중에는 다른 나라 요리에 도전해보세요!!! ㅎㅎ

마노아 2011-05-09 15:22   좋아요 0 | URL
엄니가 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다음에 다시 도전할 때는 비쥬얼도 꼭 업그레이드를 시키겠습니다.ㅎㅎㅎ

paviana 2011-05-0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웃어도 되나요?
밀가루 다 썼다고 하면 어머니도 용서해주실거에요.ㅎㅎ

마노아 2011-05-09 15:22   좋아요 0 | URL
지금 엄니 오셨어요. 저 떨고 있어요...;;;;;;

다락방 2011-05-0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마지막 편이라니 ㅜㅜ 아쉬워요 ㅠㅠ

근데 저기 '냄비 모카 스펀지 케이크' 말이에요...어쩜 저래요? 네? 도대체 왜 저지경이냐구요!!!!!

마노아 2011-05-09 15:47   좋아요 0 | URL
게다가 그 넘의 밀가루 하얀 가루 건져내다가 쟁반도 태웠어요. 그것도 방금 들켰어요..ㅜ.ㅜ

따라쟁이 2011-05-09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먹여줘요~! 마지막은 안되요~!
하지만 어머니께 혼나드리는건 대신 할 순 없어요

따라쟁이 2011-05-09 16:01   좋아요 0 | URL
핫케잌에서 완전 빵터져서 미친년처럼 막 웃었어요

마노아 2011-05-09 16:12   좋아요 0 | URL
이렇게 공동체 정신이 부족해서 제가 이 시리즈를 계속할 수가 없어요.
맛없는 빵을 같이 먹어주는 식구가 없어서 안 되겠어요.ㅋㅋㅋ

무스탕 2011-05-0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녕 마지막회 인가요? 그동안 마노아님의 식구들을 괴롭히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던 시리즈는 막을 내린건가요?
다음에 한층 업된 시리즈 기대하겠습니다. ㅋㅋㅋ

마노아 2011-05-09 16:12   좋아요 0 | URL
섣부른 기대는 큰 화를 부를 수 있습니다.
다음 시리즈가 '노래를 해 보았지'이면 어쩌려구요.ㅋㅋㅋ

hnine 2011-05-09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분기 마지막이라는 말씀이시지요? ^^

마노아 2011-05-09 16:12   좋아요 0 | URL
아아, 진정한 용자! 이번 분기라니, 대단하십니다.ㅎㅎㅎ

이매지 2011-05-0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편이라니요! ㅎㅎㅎ
일단 빵을 만드시면 제가 시식을 담당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즌 2 기다리고 있을께요 ㅋ

마노아 2011-05-09 21:39   좋아요 0 | URL
아하하핫, 분기에 시즌까지... 이 열화와 같은 성화를 어찌하면 좋을까요...(>_<)

pjy 2011-05-09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에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몰래보다가 빵터져서 눈물 납니다~~
푸하하하하하 >.< 어쩜, 저랑 이케 하는짓이 쌤쌤인지요~
댓글도 왜이케 웃깁니까 ㅠㅠ
팥 스펀지 컵케잌은 정말 안습비주얼^^; 저런 색깔의 음식은 빵으로 취급을 하지 않는다~ 가슴아프지만 사실입니다 ㅋㅋ이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맛도 중요하지만 모냥도 겁나게 중요합니다ㅋㅋㅋㅋ
모카 스펀지케잌은요~ 첨도 아니시면서 어쩌다가@ㅅ@; 건져내다가 쟁반도 태우고~~
그렇죠! 쉽게 포기가 안되는거죠~ 뭐라도 건져보겠다는 굳은 의지가 시리즈를 만드는겁니닷!
홧팅♥

마노아 2011-05-09 21:41   좋아요 0 | URL
만드는 내내 비주얼이 훌륭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좀 나았던 단호박 케이크는 그릇에서 분리가 안 되어서 숟가락으로 퍼먹기도 했으니까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것은 진리입니다. 훌쩍....;;;;
쟁반은 잠깐만 올려놓고 접시로 빵을 옮기려던 찰나였는데 밀가루 건져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태워먹었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답니다. 털썩!

레와 2011-05-09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회라니 믿을 수 없어요. ㅡ.ㅜ
박력분 밀가루 보내드릴까요? 엄미가 싫어하실까? ㅡ.ㅜ



마노아 2011-05-09 21:41   좋아요 0 | URL
엄니가 밀가루가 없다는 걸 두 번이나 확인하셨어요.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셨나봐요. 트허...;;;;;

섬사이 2011-05-09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마지막 편이라니 너무 아쉬워요.
조카의 웃는 얼굴이 마노아님 웃는 얼굴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마노아 2011-05-09 21:41   좋아요 0 | URL
오, 조카 이야기가 처음으로 나왔어요. 아무도 얘기 안 해줘서 민망한 나머지 사진 내리려고 하던 찰나였어요.ㅎㅎㅎ

버벌 2011-05-0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상하게 빵 보다도..... 뒤에 배경으로 나오는 책에 더 관심이.. ㅎㅎㅎㅎㅎㅎ

마노아 2011-05-09 21:43   좋아요 0 | URL
헤헷, 역시 알라디너답습니다.
뒤의 책은 창비세계문학전집이랑 민통선 평화기행, 은유로서의 질병이에요.
한 장도 못 읽은 책들이랄까요...ㅜ.ㅜ

순오기 2011-05-0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포기하면 아니되옵니다아~~~~~~~~ ㅋㅋㅋ
달인이 되고 명장이 되기까지는 엄청난 단련이 필요하다고요.
hnine님 말씀처럼 이번 분기 마지막인 줄 알겠습니다.^^

마노아 2011-05-09 21:43   좋아요 0 | URL
한 한달 쉬면 엄니께서 저의 만행을 다 잊어주실까요?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음 시즌을 꼭 재고해 보겠습니다.
일단 시간이 필요해요. 망각의 시간이... ㅎㅎㅎ

... 2011-05-09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다른 요리책 또 사셔서 또 실험(?) 하실거잖아요, 그렇죠? ㅎㅎ

마노아 2011-05-09 22:27   좋아요 0 | URL
호곡, 울 언니한테 요리책 쉬운 거 없냐고 물어본 것 어떻게 아셨죠? 무서븐 사람들!!!

웽스북스 2011-05-10 23:04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한접시 요리' 추천합니다~

마노아 2011-05-11 20:50   좋아요 0 | URL
점점 판이 커질 것 같은 불길함이 솟구쳐요.ㅎㅎㅎ

책가방 2011-05-10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랑 저랑... 한없이 웃었네요...ㅎㅎㅎㅎㅎ (내일 쉰다고 여태 안자고 있답니다.)
진짜 재밌는 분이라며 (요리를 해보았지)시리즈랑 (삐뚤어질테다)시리즈를 모두 봤답니다..ㅋ
빵.. 더 만들었으면 좋겠다네요..^^

제 딸도 졸업사진 찍는다고 친구랑 가서 파마를 하고 왔는데... 완전 망했다고 난리네요..ㅋ
엄마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걸 왜 아직 모르는건지...

마노아 2011-05-10 12:14   좋아요 0 | URL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니 울 엄니 말씀처럼 빵을 그만 만들어야 되겠어요.ㅋㅋㅋ
저만의 주방이 생기면 눈치 안 보고 맘껏 만들겠는데, 그러면 또 먹어줄 사람이 없어서 만들기 쉽지 않겠어요.
날마다 저 수준의 음식을 먹으면 병 걸릴지 몰라요...;;;;;

sslmo 2011-05-10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쉬워요~
저 박력분 보내드릴 준비 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이번 분기 아니고, 이번 달 마지막으로 하면 안 되겠는지요?ㅠ.ㅠ

마노아 2011-05-11 20:48   좋아요 0 | URL
트헛, 이번 달이라굽쇼! 점점 세지는 주문들입니다.^^ㅎㅎㅎ
안 그래도 마지막회라고 쓰면서 양철댁님의 박력분 어쩌냐... 그랬어요.^^

무해한모리군 2011-05-1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맛나보이는데요!
점점 잘하시는듯 한데 마지막 연재라니요!!!

마노아 2011-05-11 20:48   좋아요 0 | URL
너그러운 휘모리님! 제 눈에도 고슴도치 짓을 못하겠는데 훌륭한 마음씨입니다.^^ㅎㅎㅎ

like 2011-05-2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께 밀가루 없애려고 부침개 계속 부치셨나봐요~ㅎㅎ
원래 오븐없이 냄비, 밥솥에 케이크 만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꼭 가족들에게 말하세요!

다음 요리연재도 기대중입니다.^^

마노아 2011-05-23 13:31   좋아요 0 | URL
난 중력분 쓰지 않는데도 불안감을 느끼셨나봐요. 연짱 세 번 부챔기를 부치시다니..ㅎㅎㅎ

아앙, 금요일에는 팬케이크를 굽는다고 부스럭거렸더니 엄니께서 뛰쳐나오시더군요.
대체 뭐하는 거냐고...ㅜ.ㅜ
아, 엄니의 불안이 잦아드는 날을 기약해야겠어요.^^
 
히스토리아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3월
품절


1월 14일 박종철
1987년 1월 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서울대 언어학과 재학생 박종철이 고문을 받다 숨졌다. 경찰은 박종철의 ‘대학문화연구회’ 선배로 수배 중이던 박종운의 소재를 캐기 위해 그 전날 자정께 박종철을 연행했다.
물고문과 전기고문의 개연성을 확인한 부검의의 용기 있는 증언이 나온 뒤 고문 사실을 시인하고 수사 경관 두 사람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한 혐의로 구속했다.
그 죽음과 연루되었던 선배 박종운 씨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5공 정권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나라당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 오정구에서 출마해 세간의 탄식을 자아냈다.
-26쪽

1919년 1월 18일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국제회의가 파리의 프랑스 외무부 청사에서 시작됐다. 이것이 파리강화회의다. 그 해 5월까지 계속된 이 회의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조지,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가 주도했다. 파리강화회의에는 독일을 비롯한 패전국의 출석이 허가되지 않았고 약소국들의 의견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 회의의 결과로 체결된 여러 강화조약을 뭉뚱그려 파리강화조약이라고 하는데, 그 조약들은 구체적으로 독일에 대한 베르사유 조약(1919년 6월), 오스트리아에 대한 생제르맹 조약(1919년 9월), 불가리아에 대한 뇌이 조약(1919년 11월), 헝가리에 대한 트리아농 조약(1920년 6월), 오스만투르크에 대한 세브르 조약(1920년 8월)이다.
-30쪽

1월 22일 김상옥
1923년 1월 22일 일제하 독립운동가 김상옥이 자결했다. 향년 33세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제하의 무장독립투쟁이나 테러 활동 같은 직접적 민족해방운동은 대체로 민족 구성원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1923년 오늘 자결한 김상옥 의사도 그 예다. 조선조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던 왕족이나 양반을 비롯한 상층 계급에서 무력 독립운동의 투사들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민족사의 슬픈 대목이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자칭 ‘주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명예심이다. 그들은 친일을 외치던 그 입으로 해방된 조국에서 애국을 외치면서도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만큼 둔감하거나 교활했다.
-34쪽

1월 30일 김창룡
1956년 1월 30일 육군 특무대장 김창룡 소장이 출근 길에 암살당했다. 이 사건의 배후는 육군 중장 강문봉으로 밝혀졌다. 공식 문서에는 김창룡의 생년이 1920년으로 돼 있어 죽을 때 나이가 36세지만, 그 자신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1916년생이다. 함경남도 영흥군 출신. 김창룡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주류를 자처해 온 우익 세력의 가장 흉한 몰골을 표본화하고 있다.
김창룡이 관동군 시절부터 익힌 첩보와 공작 기술 그리고 무자비한 파괴/공격 성향은 최고 권력자 이승만의 필요에 적절히 부응했다. 그가 소위가 된 1947년부터 암살된 1956년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커다란 시국사건 뒤에는 거의 어김없이 그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의 손에 걸려든 사람들 가운데는 진짜 공산주의자도 있었으나, 단순히 이승만의 정적 그리고 김창룡 자신의 군대 내 라이벌도 숱하게 끼어 있었고, 많은 수는 자기도 모르게 용공 조작 사건에 휘말린 애매한 사람들이었다. 1992년에는 백범 김구의 암살도 그가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서울 관악산 근처에 묻혀 있던 그의 유해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8년 초 대전 국립현충원의 장군묘역으로 옮겨졌다.-42쪽

2월 23일 배정자
1870년 2월 23일 구한말 일제 시대의 친일반민족 행위자 배정자가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1951년 서울에서 몰.
배정자의 아버지 배지홍을 처형함으로써 어린 분남(배정자의 아명)을 길거리로 내몬 것이 민씨 일파였다.
그녀는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였고, 사다코(정자)라는 이름도 이토에게서 얻었다. 그녀는 일제의 한국 병탄 이전에나 이후에나 일관되게 일본의 밀정으로서 정치 공작에 종사했다. 배정자의 81년 삶 속에는 확인할 수 있는 사실들과 확인이 힘든 소문/전설들이 뒤범벅돼 있다. 국권 피탈 이전에는 이토의 앞잡이로, 이후에는 일본군 헌병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의 앞잡이로 그녀가 종사한 첩보 활동이나 선무 공작의 많은 부분은 실제로 확인된다. 그리고 그녀가 세 번 결혼했다는 것과 그녀 남편들의 행적도 확인된다. 그러나 배정자의 삶을 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더 많은 요소들은 확인할 수 없는 소문들이다.
배정자는 1948년 반민특위가 체포한 여섯 명의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66쪽

3월 11일 데아미치스
한국에는 사랑의 학교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쿠오레(1886)’는 토리노의 초등학교 4학년생인 엔리코의 일기라는 틀에다 조국애/우정/용기/효도/겸손/박애/존중 따위의 주제를 담아내고 있다. 이탈리아의 한 학기가 시작하는 10월부터 학년 말 방학이 시작하는 그 이듬해 7월까지의 각 달을 한 챕터로 삼았다. 엔리코의 일기가 뼈대를 이루고 있지만 더러 아버지/어머니/누이가 엔리코에게 쓴 편지가 첨부돼 있고, 각 챕터마다 담임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 달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이 달의 이야기’ 가운데는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이야기가 많다.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아펜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쿠오레’는 이탈리아어로 ‘마음’ ‘심장’이라는 뜻이다.



-82쪽

3월 23일 파시스트당 결성
1919년 3월 23일 베니토 무솔리니가 전투자동맹을 결성했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첫 파시스트 정당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파시스트 정당이었다.
파시즘은 ‘전투자동맹’의 ‘동맹’, 이탈리아어로 파쇼(fascio)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은 본디 ‘묶음’이라는 뜻이고 확대된 의미라야 ‘결속/단결’ 정도였지만, 오늘날에는 독특한 정치적 의미, 즉 국수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이며 지극히 반공적인 정치 운동의 주체를 뜻한다. 파쇼주의, 즉 파시즘은 대체로 반합리주의, 불평등한 인간관, 폭력 숭배, 엘리트주의, 인종주의 따위를 구성 요소로 삼는다.
-94쪽

3월 31일 데카르트
1596년 3월 31일 프랑스의 철학자 겸 수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투렌라에서 태어났다. 1650년 몰. 데카르드는 1649년 스웨덴 알렉산드라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청으로 스톡홀름에 가 여왕의 개인 교사가 되었는데, 매일 새벽 다섯 시에 레슨을 받기 고집한 여왕가 함께 어쩔 수 없이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다가 폐렴에 걸려 죽었다. 스웨덴에 온 지 넉 달 만이었다.
‘굴절광확’ ‘기상학’ ‘기하학’ 세 논문에 대한 서론으로 집필된 ‘방법서설’은 1637년에 네덜란드에서 간행되었는데, 놀랍게도 플아스어로 집필되었다. 데카르트가 살던 시절에 학술 서적은 라틴어로 쓰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 저서는 학문 탐구의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학문적 생애를 이야기하는 형식에다가 학문 연구의 방법과 형이상학/물리학의 개요를 담아냈다. 그러니 이 책은 논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102쪽

4월 6일 모르몬교
1830년 4월 6일 24세의 미국 청년 조지프 스미스가 뉴욕주 맨체스터에서 "고대 기독교의 부활"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모르몬교이 창시를 선포했다.
1843년 스미스는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일부다처제를 인정한다고 선포해 중혼규탄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았고, 그 이듬해 반대파에 의해 옥중에서 살해됐다. 이 악명 높은 일부다처주의는 한동안 모르몬교의 상표였는데, 스미스는 생전에 50명의 여성과 결혼했다. 중혼 관습은 대법원의 개입으로 금지됐고, 교회 내부에서도 1895년에 중혼을 금하는 결의를 해 일단락됐다. 스미스가 죽은 뒤 모르몬교는 다처주의에 반대하는 그의 아들 일파와 이에 찬성하는 브리검 영 일파로 분열됐다. 브리검 영은 원래 감리교 신자였다가 1832년 모르몬의 성서를 읽은 뒤 모르몬교로 전향한 사람이다. 그는 신자들을 이끌고 1847년에 유타주의 주도 솔트레이크시티로 이주한 뒤 이곳에 본부를 두고 교세를 크게 확장했다. 유타주는 지금도 모르몬주로 불릴 만큼 인구의 다수가 모르몬교 신자다.
브리검 영은 생전에 27명의 아내와 56명의 자녀를 두었다.
-110쪽

4월 12일 보스토크 1호
1961년 4월 12일 세계 최초의 유인 인공위성인 옛 소련의 보스토크1호가 발사됐다. 탑승자는 유리 가가린. 한 시간 29분 만에 지구 상공을 일주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된 가가린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감상을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라고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보스토크는 러시아어로 ‘동쪽’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을 단 인공위성은 그 뒤 6호까지 발사됐다. 제3호와 제4호는 하루 차이를 두고 발사됐는데, 가장 접근했을 때 두 인공위성의 간격은 5km로서 최초의 그룹 비행을 했다. 우주 랑데부를 위한 예비실험이었던 셈이다. 제6호에는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인 테레슈코바가 탑승했다.
유리 가가린의 유리는 조지 워싱턴 할 때 조지의 러시아어형이다. 그 스페인어 형은 호르헤, 이탈리아어형은 조르조, 독일어형은 게오르크다. 이 이름들의 기원은 그리스어 이름인 게오르기오스다. 게오르기오스는 ‘땅에서 일하는 사람’ 곧 ‘농부’라는 뜻이다. 맨 처음으로 게오르기오스라는 이름을 지녔던 사람은 농부였을까? -116쪽

4월 14일 타이타닉호 침몰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께. 영국 화이트스타사가 건조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거대한 빙산과 충돌했다. 두 시간 40분 가량의 아비규환 뒤에 그 배는 해상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승선자 2천 208명 가운데 1천 523명의 희생자를 낸 사상 최대의 해난 사고였다. 타이타닉호는 4월 9일 아일랜드의 퀸스타운을 떠나 뉴욕항으로 처녀 항해 중이었다. 총 톤수 4만 6천 328톤, 길이 259.08m, 너비 28.19m, 깊이 19.66m, 속력 22km의 타이타닉호는 바다에 떠 있는 15층짜리 궁전이었다.
타이타닉호는 즉시 sos를 포함한 온갖 조난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타이타닉호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던 캘리포니안호는 우연히 무전기를 꺼놓고 있었다. 타이타닉호가 조난 신호로 쏜 꽃불을 캘리포니안호에서는 불꽃놀이라고 생각했다.
-118쪽

4월 20일 나폴레옹 3세
1808년 4월 20일, 뒷날 프랑스 제2공화국의 대통령을 거쳐 제2제정의 황제(나폴레옹 3세)가 될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1873년 몰. 그의 아버지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의 동생인 루이 보나파르트였다.
나폴레옹 1세와 3세를 배출한 보나파르트가의 전성기는 나폴레옹 1세가 제위에 있던 19세기 초일 것이다. 그 당시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는 스페인의 왕이었고, 동생 루이는 네덜란드 왕, 또 다른 동생 제롬은 베스트팔렌 왕이었다. 형제들만이 아니라 누이동생들도 한자리씩 차지했다. 엘리자는 토스카나 대공비였고 폴린은 이탈리아의 보르게제 공비였으며, 카롤린은 나폴레옹의 부장 뮐러와 결혼해 나폴리 왕비가 되었다.
-124쪽

4월 22일 지구의 날
지구는 태양계에서 고등생물이 서식하는 유일한 행성이다. 그래서 ‘하나뿐인 지구를 사랑합시다’라는 구호는 상투적인 만큼이나 절실하다.
-126쪽

4월 26일 게르니카 폭격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4월 26일,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란군을 지원하던 독일 공군이 인민전선 정부를 지지하던 바스크 자치정부의 수도 게르니카를 폭탄으로 도배했다. 파시스트 세력끼리의 군사적 협력을 노골화한 이 폭격으로 1천 600명이 죽고, 900여 명이 다쳤다.
1936년 7월 프랑코가 이끄는 모로코 주둔군의 반란으로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세계 양심의 시험장이었다. 이 내전은 지식인 사회에서도 좌파와 우파를, 우파와 우파를, 좌파와 좌파를 분열시켰다. 예컨대 프랑스의 우파는 대개 프랑코의 반란을 지지했지만, 클로델이나 베르나노스 같은 가톨릭 작가는 파시즘과 스페인 교회를 비판하고 나섰다. 당초에 프랑코의 반란에 호의적이었던 모리악도 결국 공화파 지지로 돌아섰다. 좌파 내부에서도 스탈린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분열했다. 승리를 파시스트에게 돌아갔다. 양심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130쪽

5월 14일 조명하
1928년 5월 14일 대만 타이중시 다이쇼조 도서관 앞에서 23세의 조선 청년 조명하가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이자 일본군 육군 대장인 구니노미야 구니히코에게 독검을 던졌다. 조명하의 독검은 구니노미야의 왼쪽 어깨와 목을 스쳤다.
구니노미야는 현장에서 죽음은 모면했으나 그때 입은 상처로 이듬해 1월 사망했다.
조의사는 그 해 7월 대만 고등법원에서 황족 위해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순국했다. 1945년 민족해방의 가장 큰 동력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연합국의 승리다. 그러나 그 뒤에는 해방을 향한 민족적 열망과 그 열망을 최일선에서 구현한 여러 선열들이 있었다. 그들이 자기 희생적 실천으로 노현한 그 열망이 없었다면, 우리의 해방은 훨씬 더 늦춰졌을 것이다. 이들의 반대편에는 일제에 대한 소극적 순응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른 이들이 있었다. 역사를 잊은 이에게 역사는 반드시 복수한다. 박정희 기념관이 세워져서는 안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다.
-148쪽

6월 13일 알렉산드로스 대왕
기원전 323년 6월 13일 마케노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서 죽었다. 33세.
알렉산드로스는 문무 겸전의 군주였다. 당대 최고의 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펠라의 궁정에 초빙돼 그에게 온갖 학문을 가르쳤다. 알렉산드로스는 호메로스의 시를 애독해 원정 때도 시집을 지니고 다녔다. 알렉산드로스는 세 번 결혼했지만, 여자들에게는 별 취미가 없었다. 그가 탐하던 몸은 남자들의 것이었다. 그가 18세가 되어도 여성과 동침을 하지 않자 아버지 필리포스 2세와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캄파스메라는 이름난 매음녀를 궁전으로 불러 아들에게 열락을 경험하게 하려 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캄카스메의 갖은 교태에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애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페르시아 출신의 미소년 바요아스다. 바요아스는 대왕의 첫 번째 원정에서부터 그를 동행했고, 그의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 있었다.
그가 다스리던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종족적 자부심이 매우 강해, 자신들의 군주가 동성애자라는 사실보다 그 군주의 가장 가까운 애인이 페르시아 사람이라는 점을 더 불편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178쪽

6월 14일 스토 부인
1811년 6월 14일 미국의 소설가 해리엇 비처 스토가 코네티컷의 리치필드에서 태어났다. 1896년 몰. 스토 부인은 장편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으로 유명하다.
켄터키주의 흑인 노예 톰이 주인을 바꿔가며 겪는 비참한 삶을 그린 이 소설은 통속적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지만, 그로부터 11년 뒤 남북전쟁의 와중에 링컨이 노예해방 선언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링컨 역시 켄터키주의 호젠빌 출신이다. 켄터키 흑인 노예들의 슬픈 운명은 포스터의 우수에 찬 가곡 ‘켄터키 옛집’에서도 에둘러 노래되고 있다.
노예 제도는 사람이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평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 노예 제도는 외국인 노동자나 혼혈인들을 멸시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고, 여성들을 깔보는 남성들의 마음속에 있고, 장애인들을 백안시하는 비장애인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것은 차이의 권리를 권리의 차이로 바꿔치기하는 우리들의 교활함 속에 있다.
-179쪽

6월 18일 워털루 전투
1815년 6월 18일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나폴레옹 시대가 끝났다.
이틀 전부터 워털루에서는 나폴레옹이 이끄는 12만 5천 프랑스군이 웰링턴 지휘하의 영국군 9만5천 그리고 블뤼허가 지휘하는 프로이센군 12만 등 20여만의 연합군과 싸우고 있었다. 6월 16일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군을 격파한 다음 18일 영국군에게 총공격을 개시했으나, 또 다른 프로이센군의 내원으로 4만의 전사자를 내고 패배했다. 22일 나폴레옹은 남대서양의 영국령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됐다.
나폴레옹이라는 사람의 기묘한 점은 그가 전제군주이자 정복자였으면서도, 한편으로 자유주의와 혁명 사상의 전파자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가 비록 프랑스혁명을 탈취했지만, 프랑스혁명의 자식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이 절대 군주는 유럽의 다른 절대군주들의 적이었고, 이 정복자는 해방자이기도 했다.
-183쪽

8월 5일 마릴린 먼로
1962년 8월 5일 미국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가 36세로 죽었다. 약물 과용 탓이었다.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었는지 우발적이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마릴린은 그때 전 남편인 야구 스타 조 디마지오와 다시 결합하기로 하고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둘째 남편 조 디마지오와 셋째 남편 극작가 아서 밀러를 포함해 세 번 결혼했다.
배우 겸 가수 이브 몽탕과 프랭크 시나트라, 영화 제작자 조 솅크,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 미합중국 대통령 존 케네디(와 어쩌면 그의 동생인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 같은 널리 알려진 이름들이 그녀의 ‘베드메이트(bedmate)'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들 가운데 그녀를 진정으로 존중한 남자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234쪽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았다. 그로부터 꼭 3년 뒤인 1948년 8월 15일 미국 군정이 폐지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돼 우리는 독립을 얻었다.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를 흔히 해방기라고 부르는데, 문학평론가 김윤식 씨는 이 기간의 한국을 ‘해방공간’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해방 공간은 나라 만들기의 작업장이면서 분단체제의 원공간이기도 했다.
외세와 외래 이념이 휘두르는 원심력을 감당해 내기에 우리 민족의 내적 역량은 충분치 않았다. 그리고 사정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방공간은 단순히 다사다난이라는 말로는 형용이 미진한 격동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 속에서 송진우/여운형/장덕수 등의 거물 정치인들이 차례로 암살됐고, 정치 집회와 파업과 폭동은 끊일 줄 몰랐다.
-244쪽

8월 27일 부전조약
1928년 8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미국/프랑스 등 15개국의 외무장관들이 모여 부전 조약, 곧 전쟁 포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가 조약의 규정을 위반했을 경우에 그에 대한 구체적 제재 수단을 명시하지 않아 실효성을 담지 못했다. 다만, 전쟁이 불법이라는 것을 명문화한 조약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군국주의는 일반적으로 군대만이 아니라 민간 사회의 재향군인회, 우익 단체, 군수 자본가들에 의해 떠받쳐져 있다. 특히 전쟁의 유혹이 군수 자본가의 이해와 연결돼 군산복합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은 평화 교육에서 거듭 강조돼야 한다.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흔히 인종이나 종교 사이의 갈등이므로 반인종주의, 세속주의, 개인주의도 평화 교육의 지향점들이 돼야 한다. 결국 타인에 대한 관용의 확산이야말로 전쟁을 막는 심리적 무기다.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속언은 군국주의자들의 금과옥조였지만, 전쟁 준비는 늘 전쟁으로 마무리됐다.

-256쪽

9월 3일 호치민
1969년 9월 3일 베트남의 혁명가이자 정치가 호치민이 79세로 타계했다. 그는 1946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초대대통령을 지냈다.
호치민은 성년이 된 뒤 일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았지만, 그의 공산주의는 20세기 베트남의 가장 큰 대의였던 민족해방운동과 한몸을 이루고 있었다.
호치민은 공식적으로는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의 지도자였지만, 그의 이름은 외세에 맞서 싸우는 남북 베트남 민중 전체의 단합을 상징했다. 남북을 통틀어 그런 지도자를 가져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부러워할 만한 점이다. 정약용을 깊이 흠모해 그의 기일을 손수 챙기기도 한 호치민은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263쪽

9월 11일 아옌데
1973년 9월 11일 오전 9시, 무장을 한 채 자신의 관저인 모네다궁에 남아 있던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그때까지 군사 반란군이 유일하게 접수하지 못한 국영방송 마야가네스 라디오와 전화를 연결해 마지막 대국민 메시지를 남겼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될 것입니다. 마야가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조국의 운명에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사람들이 싸워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우리의 아름다운 거리들이 다시 개방돼 시민들이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이고, 그리하여 더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저의 마지막 말입니다."
-271쪽

그 직후 아옌데는 모네다궁으로 밀고 들어온 반란군과 맞서 싸우다 살해됐다. 65세였다. 의과 대학 출신의 아옌데는 25세에 칠레 사회당에 참여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1942년 34세의 나이로 사회당 서기장이 된 그는 1970년 대통령 선거에 좌파 정당들의 연합체인 인민연합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인민연합은 집권 뒤 대기업과 천연자원을 국유화하고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는 한편, 쿠바와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강화했다. 미국과 국내 우익 세력은 아옌데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마침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육군참모총장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육해공 삼군과 경찰의 연합 쿠데타를 조직해 아옌데를 제거했다. 아옌데가 몸을 피했다면 목숨을 보전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피신을 권했다. 그러나 이 ‘노동자들의 대통령’은 조국의 민주주의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정했다.
-271쪽

9월 17일 광복군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의 가릉빈관에서 대한민국 광복군이 출범했다. 총사령에 이청천, 참모장에 이범석.
광복군은 이준식/공진원/김학규를 각각의 지대장으로 삼은 3개의 지대로 편성돼 출범했고, 1941년 1월에는 주로 전지 공작원들로 구성된 제5지대가 발족해 전후방 공작 업무를 수행했다. 나월환이 이끈 이 부대가 제4지대가 아니라 제5지대로 명명된 것은 이런 공작활동 때문이다. 정규군에 호응해 적의 후방에서 각종 모략/파괴/간첩 활동을 하는 비밀 집단이나 그 집단의 구성원들을 오열(제5열, 또는 제5전선)이라고 부르는 관습은 스페인 내전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 이 말은 일반적으로 간첩/스파이와 동의어로 쓰이게 되었다.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광복군은 1941년 12월 9일 대일 선전을 정식으로 포고했고, 이를 계기로 좌파 군사조직과의 합류를 추진해 그 이듬해 7월에 김원봉을 광복군 부사령으로 맞아들임으로써 그가 이끌던 조선의용대를 흡수했다.
-277쪽

1989년 9월 28알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망명지인 하와이에서 72세로 사망했다. ‘피플파워’라고 불렸던 민중 봉기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지 세 해 만이었다. 마르코스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인물이었다. 항일운동 경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대통령이 된 민간인으로서, 선거 부정이 촉발한 민중 봉기로 하야해 하와이에서 죽었다는 점에서 그는 이승만을 닮았다. 그러나 독재 체제의 강화 과정과 정적 탄압 방식에서 그는 박정희를 더 닮았다.
어느 점에서 마르코스는 박정희보다 더 나아갔다. 김대중을 납치하고 가두면서도 살해하지는 못했던 박정희와 달리, 마르코스는 정적 베니그노 아키노를 백주 마닐라 공항에서 살해했다. 그 정적의 아내 코라손 아키노는 세 해 뒤 대통령궁의 새 주인이 되었다.
-288쪽

10월 18일 낭트칙령 폐지
1685년 10월 18알 프랑스의 신교도에게 조건부로 신앙의 자유를 허용했던 낭트칙령이 폐지됐다. 당시 국왕은 루이 14세였다. 낭트칙령은 1598년 4월 13일 앙리 4세가 낭트에서 공포했다.
젊은 시절 프로테스탄트로서 위그노 전쟁(1562-1598)에서 활약했던 앙리4세는 즉위 직후 내전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신교도에게 제한적인 신앙의 자유를 부여하는 이 칙령을 공포했다.
특별법정의 구성은 가톨릭에게 크게 유리했는데도 가톨릭측은 계속 불만을 드러냈고, 마침내 절대군주 루이 14세가 이 칙령을 폐지함으로써 신교도의 종교적/시민적 자유를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낭트칙령이 폐지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프랑스 신교도 가운데 30만 명 가량이 영국/네덜란드/프로이센 등 이웃나라로 망명했는데, 이들은 대개 뛰어난 기술자/상인/군인들이어서 프랑스는 막대한 산업적/군사적 손실을 입었다.
-310쪽

10월 31일 인디라 간디
1984년 10월 31일 인도 총리 인디라 간디가 시크교도 경호원들에게 암살당했다. 67세.
인디라 간디의 뒤를 이어 인도 총리가 된 장남 라지브 간디도 1989년 총선 패배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두 해 만인 1991년 5월 21일, 유세 도중 꽃다발 속에 장치된 폭탄이 터져 사망했다. 모자가 똑같이 정치적 반대자들 손에 살해된 것이다.
1948년 1월 30일에 암살당한 그 위대한 사상가는 간디 모자와 친인척 관계가 없다.
인디라 간디는 인도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총리를 지낸 자와하를랄 네루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그녀 집안은 북인도 카슈미르 지방의 부유한 브라만 계급에 속해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아버지처럼 인디라도 옥스퍼드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다.
옥중의 네루가 어린 딸에게 보낸 편지들은 뒷날 ‘세계사 엿보기’라는 제목으로 편집돼 전세계 독자들에게 읽혔다. 인디라 간디는 인도 독립 뒤 아버지를 도우며 정치 훈련을 받았고, 네루에 이어 총리가 된 랄 바하두르 샤스트리가 1966년 심장병으로 사망하자 그를 이어 인도의 세 번째 총리가 되었다.

-323쪽

11월 2일 마리 앙투아네트
1755년 11월 2일 프랑스 루이 16세의 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1793년 몰.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는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고, 아버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란츠1세다. 그녀는 빈의 황궁에서 태어났지만, 38년 뒤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머리와 몸이 분리된 채 죽었다.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성적으로도 무능했던 남편을 제쳐놓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이 살던 베르사유궁의 트리아농관으로 수많은 애인을 불러들였다.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그녀의 전기를 쓴 슈테판 츠바이크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가 낳은 자식들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그녀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고 한다. 루이 16세가 무능하되 검소했던 데 비해, 왕비의 낭비벽은 프랑스의 재정을 흔들거리게 할 정도였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죽음은 참혹하다. 그러나 그 사실이 그녀가 형편없는 여자였다는 사실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명성황후 민씨의 죽음은 그보다 훨씬 더 참혹했지만, 그것이 민씨를 좋게 볼 이유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325쪽

11월 10일 창씨개명
서양 사람이나 일본인과는 달리 한국인의 성은 예외적인 경우를 빼놓고는 일생 동안 변하는 일이 없다. 굳은 맹세를 하면서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면 "성을 갈겠다"고 말하는 관습이 아직 남아 있는 데서도 드러나듯,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은 성을 가는 것을 최대의 치욕으로 여긴다.
1939년 11월 10일 일제는 조선민사령을 개정해 조선 민족 고유의 성명제를 폐지하고 일본식 씨명제를 도입하면서, 그 이듬해 2월부터 8월 10일 사이에 모든 조선인이 ‘氏’를 결정해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이른바 창씨개명의 시행이다.
창씨개명 자체를 친일의 징표로서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골적인 친일 인사들의 일본 이름이 우리에게 슬픔을 자아내는 것도 사실이다. 광복군 장교 출신으로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가 1975년 경기도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서 의문사하 장준하는 생전에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셋 있는데, 첫째는 오카모토 미노루, 둘째는 다카키 마사오, 셋째는 박정희"라고 말한 바 있다. 세 사람은 동일인이다.
-333쪽

11월 19일 게티즈버그
1863년 11월 1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대통령 링컨이 민주주의 역사에 남을 만한 연설을 했다. 링컨은 이날 남북전쟁의 격전지인 게티즈버그의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는 식전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건국이념을 강조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병사들이 자신들의 목숨과 맞바꾼 목적에 더 헌신할 것을 다짐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 목적이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를 지상에서 소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이것은 흔히 ‘링컨의 5분 연설’이라고 불린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가 동시적으로 구현될 때에만 가능하다. ‘인민에 의한’만이 강조될 때, 정치는 대중의 변덕과 이기주의에 이끌리는 포퓰리즘으로 타락할 수 있다.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인민을 위한’만 강조될 때다. 이때 정치는 흔히 ‘수호자주의’라고 불리는 엘리트 독재로 변질될 수 있다. 수호자주의는 공자나 플라톤에 기원을 둔 위계적 사상이지만, 그것은 20세기의 좌익 이론인 레닌의 전위당 이론과도 결합해 수많은 독재정권을 낳았다.
-342쪽

11월 20일 톨스토이
1910년 11월 20일 러시아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가 82세로 작고했다. 유럽 문학사에서 19세기는 소설의 시대였다. 그 소설은 프랑스/영국/러시아 세 나라를 중심으로 꽃피었다. 톨스토이는 작품의 양으로나 질로나 그 시기 유럽 문학을 대표할 만한 너더댓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노벨 문학상에 제정되고도 10년이다 더 산 그가 그 상을 못 받았다는 사실이, 이 상 운영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한 근거로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343쪽

11월 30일 처칠
1874년 11월 30일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이 옥스퍼드셔에서 태어났다. 1965년 몰. 처칠은 ‘대영제국’의 마지막 지도자였다.
대독 유화론자였던 체임벌린의 뒤를 이어 1940년 5월 총리가 된 처칠은 전시 거국내각의 지도자로서 의회에서 한 첫 연설을 통해 "내게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외에는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이 연설은 동료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영국인 전체를 하나로 묶어 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전쟁을 견뎌내게 한 힘이 되었다. 처칠은 이 전쟁에 대한 회고록으로 195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처칠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이 권위 있는 상이 정치적 고려에 휘둘린 치명적 예로 자주 거론된다.
-353쪽

12월 4일 남산 제2호 터널
1970년 12월 4일 서울 남산의 제2호 터널이 개통됐다.
중구와 용산구에 걸쳐 있는 높이 262m의 남산은 북악산/낙산/인왕산과 함께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다. 조선조 초기에 서울이 왕도로 정해졌을 때는 다른 여러 산과 함께 왕도의 위곽을 이루었지만, 오늘날엔 ‘남산’이라는 이름과 달리 서울 한가운데에 자리 잡게 되었다. 남산의 옛 이름은 목멱산이다. ‘목멱’은 ‘남산’을 뜻하는 중세어 ‘마뫼’에서 왔다고 한다.
-357쪽

12월 6일 파농
1961년 12월 6일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이론적 지도자였던 프란츠 파농이 미국 메릴랜드 주 베세스다의 한 병원에서 백혈병으로 작고했다. 36세. 생전의 소원대로 그의 유해는 알제리에 묻혔다. 그가 죽은 이듬해 알제리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파농은 알제리 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서인도제도의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흑인이다. 그는 프랑스의 리옹 의과대학에서 훈련을 받은 뒤 정신과 의사가 되었고, 대학 시절에 사귄 백인 프랑스 여성과 결혼했고, 죽을 때까지 프랑스 시민으로 살았다.
그가 보기에, 식민주의는 생각하는 기계도 아니었고 이성을 지닌 신체도 아니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이고, 더 큰 폭력 앞에서만 항복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마르티니크 출신 흑인이 대서양 건너편 아랍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웠다는 점에서 파농은 혁명의 국제주의를 실천했다. 그 점에서 그는 토머스 페인이나 로자 룩셈부르크의 후예였다. 그러나 그와 더 닮은 사람은 체 게바라일 것이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질병은 진료실에서가 아니라 사회 변혁의 과정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359쪽

12월 14일 워싱턴
1799년 12월 14일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67세로 작고했다. 워싱턴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버지니아주의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독학으로 토지 측량관이 됐다. 버지니아 대표로 1774년과 그 이듬해의 대륙회의에 참가했고,d l 회의에서 영국에 대한 무력 항쟁이 결정된 뒤 독립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해인 1789년에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재임 중인 1793년에 일어난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에서 중립을 선언함으로써 유럽의 분쟁에는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수립했다. 이 원칙은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워싱턴은 1796년 3선 대통령으로 추대됐지만 민주주의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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