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없다 - 다시는 못 볼 아주 작은 추억 이야기
도종환 외 17인 지음,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엮음 / 학고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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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정책은 협상 테이블의 메뉴가 될 수 있다. 가치? 그것도 전술에 따라 칼집에 잠시 넣어둘 수 있다. 그러나 정서! 그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한 인간의 생애가 농축된 것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그만의 스타일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스타일은 무슨 근사한 패션 감각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와 정서를 농축한 생활 양식이다. 걸음걸이와 말투와 웃음과 농담과 손짓은, 한 인간의 성장과정과 지향하는 가치와 교육, 성격과 문화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동시에 그 어떤 결함을 가리고자 하는 한 인간의 간절하면서도 ‘미숙한’ 연기까지 어김없이 노출시키는, 외부로 노출된 내부, 곧 한 인간의 세계 전체인 것이다. 저마다의 스타일에 의하여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단 한 명의 존립자가 되는 것이다.
-50쪽

‘노간지’라고도 하던가. 나는 ‘노무현 스타일’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와 같은 스타일을 갖고 있지 않다. 그와 같은 정서와 눈물을 가진 사람이, 그것이 농축된 스타일의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스타일은 결코 재연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서정과 그 서정에서 길러진 애이불비의 위대한 연대와 그 연대에 의해 형성되는 진실한 마음의 울림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거의 유일하게, 그 애틋한 눈물을 진심으로 흘릴 수 있었던 사람. 그가 1년 전에 자연의 다른 한 조각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진실로 슬픈 것은, 그런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것이다.

-52쪽

기사 할아버지는 매일매일 빈소에 들렀다가는 사람들을 그들의 집으로 실어다주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살다 살다(군대도 가고 사우디에도 가보고 조기 축구회도 해보았지만) 그렇게 자발적인 사람들은 처음 봤어요."
그리고 그렇게 자발적인 사람들을 며칠씩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우리도 누군가를 굉장히 사랑하고 존경하고 싶어 했던 것 아닐까......"
-56쪽

누군가를 상실했다는 것, 그것은 비극이다. 그런데 그 상실이 빛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메마른 합리주의에서 벗어나는 수단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비극적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이다’라고 했을지 모른다.
우리의 상실, 우리의 이별에도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일까? 그건 가능하다. 추모 기간 동안 우리들은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단 하나의 이미지, 슬픔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우리는 더 이상 불행해할 필요가 없고, 대신 무엇인가 만들어내면 된다. 우리는 더 이상 불행해할 필요가 없고, 대신 무엇인가 만들어내면 된다. 죽어 떠나간 사람들의 부재도 우리에게 말을 건다. 부재를 존재로 만들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죽음 앞에서 다시 한 번 (대통령이 되기 전처럼) 비상히 강해졌을 그의 의지를 생각해 본다. 그의 의지, 죽음 앞의 의지, 죽어서 살려고 했던 의지, 죽어서 표현하고자 했던 그 의지를 소생하고 재구성될 수 있다. 우리는 다시 사랑하고, 그리하여 그를 진정으로 떠나보낼 수 있다.
-58쪽

퇴임 후 그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를 봉하마을 그의 집에 걸어두었다. 90살 먹은 우공 노인이 산을 옮기기로 결심한 이야기. 주변 사람 모두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하자 우공 노인은 나에게는 아들이, 그 아들에게도 아들이, 또 그 아들이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꿈 또는 의지는, 명사가 아니라 한없는 이름과 행위로 연결되는 동사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꿈을 꾸고, 내가 받아 다시 건네주는, 바로 그 행위 말이다.

-59쪽

그는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썼다. 그는 시민 사회에 희망을 걸었다. 그는 미완의 자서전에서 ‘원칙’이란 단어를 무척 자주 썼다. 그리고 죽음에 임박한 마지막 순간에는 ‘우공이산’이라는 고사성어를 벽에서 떼어냈다. 그 ‘우공이산’을 다시 벽에 거는 일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우리 몫이다.

-60쪽

아메리칸 드림의 세계는 강한 자에게 혜택을 주고 약한 자를 불리하게 한다. 개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운명까지도 내가 책임진다는 확고한 책임 의식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도 있었지만, 부의 축적이나 개인적 성공이라는 좁은 목표를 추구했기 때문에 배타적이다. 하지만 유러피언 드림의 세계에서 시민의 행복은 ‘재참여와 재결합의 깊이’에 달려 있다. 재참여란 무엇인가? 깊은 공감 속에서 다른 존재에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공감적 경험이다.

-61쪽

그의 죽음을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를 지배했던 아메리칸 드림과 코리안 드림을 생각해 본다. 개인의 행동과 선택이 이 세상의 다른 존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숙고하는 사회,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주어진 권리처럼 배타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사회, 집단적 희생양을 만들지 않는 사회, 타인의 불행에 어떻게든 나도 관련되어 있음을 생각하는 사회, ‘무질서보다는 불의가 낫다’고 외치지 않는 사회, 언젠가 올 유토피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회. 이런 사회는 가능한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기력한 우리 앞에 미래는 없다.

-62쪽

"운동이 원칙의 문제라면 정치는 선택의 문제더군요. 운동은 항상 원칙적으로 문제 제기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고 부득이한 선택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는 것이죠. 이에 반해 정치는 선택인 거지요."-1998년 인터뷰 당시

-81쪽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는 경찰, 군인, 우익 청년과 미군들이었다. 농민, 여성, 어린이들이 빨치산 출몰 지역에 산다는 구실로 학살되곤 했다. 빨치산 출몰 지역은 그야말로 ‘킬링필드’였다. 또 국군이 후퇴하면서 자행한 보도연맹 사건 및 형무소 재소자 집단 학살 사건 등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민간인 학살 사례가 많았다. 이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 풀어야 할 일이었다.

-94쪽

부자들이 돈을 잘 모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얻어먹을 것이 많다는 요즘의 정책 기조로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나눔과 소통, 화합이 있는 부드럽고 여유로운 인간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이란의 변호사이자 인권 운동가이며 2003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시린 에바디를 위해 이렇게 말했다.
"페르시아 시인 하페즈는 7천 년의 기쁨도 7일 간의 억압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다. 에바디는 바로 이 시구를 체화한 사람이다. 오늘 저녁, 여기 있는 그녀가 우리 각자인 동시에 모두이기를! 그녀가 타의 모범이 되기를! 그녀 앞에 어떤 어려움이 놓이더라도 그녀가 사명을 다하기를! 그리하여 다음 세대는 ‘불의’라는 단어를 삶에서가 아니라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기를!"
바로 우리가 되새겨야 할 말이다.
-124쪽

"내가 대통령 보러 왔어. 칠십 평생 대통령 실물을 못 봤기 때문에 천릿길을 달려왔다고." -전남 순천의 조재현 할아버지(70)

"여기 오려고 밭 매서 하루 일당 2만 5천 원씩 벌어 가지고 옷도 하나 사 입고...... 신발도 하나 사 신고 왔어. 이래봬도 메이커여......." -전남 화순의 조이남 할머니(62)
-211쪽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양복을 입고 대통령을 모시던 비서관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농사일을 배우고,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동네 머슴’이 됐다. 마을에서 이동할 때는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이용한다. 등산화에 삽자루를 들고 마을을 누비고 검게 그을린 얼굴 때문에 마을 주민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몰라보게 변했지만 스스로 행복하다 말하는 봉하마을의 ‘행복한 머슴들’, 그리고 대통령의 귀향과 함께 그의 고향으로 내려온 노사모까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대통령 노무현의 꿈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져 가고 있었고, 그래서 봉하마을에서의 72시간은 여느 <다큐멘터리 3일>처럼 따뜻할 수 있었다.

-218쪽

봉하 마을에 노점상이 부쩍 늘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깁니다.
마을 사람끼리 노점을 하지 말자고 합의하고도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이날도 할머니 한 분이
대통령 생가 입구 골목에 미나리 노점을 떡하니 열었습니다.
도리 없이 비서진이 몽땅 사버렸습니다.
그걸 어쩌지 못해 마을 장터로 가져가 되팔게 됐습니다.
미나리를 사는 사람에겐 사진 찍을 기회를 주겠다며
방문객을 상대로 호객 행위를 했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던 비서진들이
시골에서 미나리를 파는 모습이 신선했던 모양입니다.

2시간 만에 다 팔았습니다. 3만 원에 사서 3만 1천 원을 벌었습니다.
접대용 막걸리 값으로 1만 7천 원을 써버리는 바람에
이날 장사는 망했습니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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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5-24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밑줄 쳤던 곳에 마노아님도 밑줄 그었군요.

마노아 2011-05-24 10:15   좋아요 0 | URL
이심전심이에요.^^

카스피 2011-05-25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노무현님이 돌아가신 벌써 2주년이군요.세월은 참 무심히도 빠르게 흐릅니다.

마노아 2011-05-26 00:06   좋아요 0 | URL
무심하다는 표현이 딱이에요. 정말 무심히 세월이 흘러갑니다...
 
노무현이, 없다 - 다시는 못 볼 아주 작은 추억 이야기
도종환 외 17인 지음,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엮음 / 학고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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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가득할 것 같은 책 속에서 밝은 표정의 대통령 사진을 보아서 마음이 좋았다.
봉하마을 방문객들과 함께 했을 때의 모습인데 덩실 춤이라도 출 것 같은 모양새다.
책 속에는 대통령이 사실은 무척 춤을 잘 췄다는 증언이 곧잘 나왔다.
그 춤이 우리가 생각하는 춤이 아니라 곱사춤이긴 했지만...^^

1990년 3당합당 직후 민자당 반대 시위에 나선 송기인 신부와 대통령 사진이다.
저때도 골 깊은 이마의 주름은 여전했구나.
그때도 소탈한 웃음은 그대로였구나.
노대통령은 나이가 들면서 더 멋지게 패이는 주름을 가진 이였다.
노간지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이 책에는 인간 노무현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과 소회가 잔뜩 담겨 있는데 가장 나를 울컥하게 만든 이는 만화가 정훈이였다.
글도 쓰긴 했지만,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만화가 그의 감정을 더 잘 전달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
이보다 더 슬프게 들릴 수도 있을까.

뜻하지 않게 나를 팍 건드려 나도 모르게 엉엉 울게 했던 것은 저 부분 때문이었다. 탄핵 반대 시위를 하러 가던 길에 차려입은 점퍼. 찢어져도 눈물 안 날 것 같은 점퍼라는 구절이다.
웃겨서 빵 터지며 웃고 말았는데 그게 어느새 엉엉 큰 울음이 되어서 나도 당황했다.
이렇게 웃기면서 절박하게 만들 수 있었던 그 사람이었다.

심지어 남자로 하여금 남자를 사랑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
참 그립고 그립구나.

238쪽이다.

대통령이 사저 앞 만남의 광장에서
방문객들에게 인사하는 도중이었습니다.
진주에서 오신 88세의 어르신이 수백 명의 인파를 뚫고대통령을 향해 돌진해 왔습니다.
사진 한번 찍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경호를 뚫고 오는 분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거절하지 못하고 같이 사진도 찍고 말씀도 나누었습니다.
이 할머니가 대통령에게 말합니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왜 요즘엔 텔레비전에 안 나옵니까?”

그러게 말이다. 이제는 그를 TV에서 보려면 가슴 한켠 찬 바람이 휙 불기 마련이어서......

249쪽이다.

대통령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잘 맞추었습니다.
인자하고 재미있는 할아버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대통령은 종종 꼬마들 사탕도 빼앗아 먹었습니다.
놀란 아이를 향해 익살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지요.
사탕을 빼앗긴 아이의 부모는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 박장대소합니다.

저 아이는 자신에게 어떤 추억이 있는지 먼 훗날 알아차릴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풍경 속에 자신이 놓여 있었는지 알게 될까. 기억 속에 따뜻한 웃음 짓던 대통령 할아버지의 모습,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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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5-24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높이 맞추는 할아버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몸에 밴 습관이지요.
우리 애들은 할아버지는 다 자기 할아버지처럼 근엄한 줄 알았다고...

마노아 2011-05-24 10: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지요.
그래서 그 사람의 한 모습이, 그 사람의 전체를 보여줄 때도 참 많아요.
저 사진을 보니, 유독 더 그립네요.

책가방 2011-05-24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고 싶어졌어요.
사진을 보니 새삼 그립네요.

마노아 2011-05-24 10:15   좋아요 0 | URL
읽어보셔요. 코디나 요리사님 이야기는 이럴 때 아니면 접하기 힘들 것 같아요.
여러 곳에서 울컥했답니다.
 


제 1352 호/2011-05-23

혈액형은 구식, 이제 박테리아로 체질 분류해!

“제발, 그만해, 그만! 알았다고!!”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며 친구들 험담을 늘어놓는 태연에게 아빠는 완전 질린 표정이다.

“아냐, 아빠가 몰라서 그래요. 엊그제 운동회 때 말자가 순자한테 모래 뿌려서 넘어졌었잖아요. 말자가 원래 O형이라서 승부욕이 엄청나거든요. 한마디로 물불을 안 가려요. 그런데 순자는 진짜 A형답게 이러면 되고, 저러면 안 되고 또박 또박 바른 멘트를 날리는 거예요. 그러고선 온종일 숨어서 홀짝홀짝 울었어요. 더 기가 막힌 건 B형 경잔데, 순자가 우는데도 신경 하나도 안 쓰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말하고 행동하고 그러더라고요.”

지난 달 머릿니 사건을 극복이라도 하려는 듯, 태연은 혈액형에 관한 온갖 지식을 습득하고는 하루 종일 혈액형으로 친구들 분류하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그래서, AB형인 넌 뭘 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우아하게 관조의 자세를 유지했죠. AB형은 원래 자신이 다른 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태연아, 아빠가 혈액형별 성격 구분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니. 물론 A, B, O, AB형 혈액형 분류가 성별, 인종, 나이 등을 초월한 인류 최초의 생물학적 분류체계인 건 맞아. 하지만 이제 그건 구식이라고.”

“네에? 저 혈액형 공부한지 한 달 밖에 안됐는데 벌써 구식이면 어떡하란 말이에욧!”

“이제 몸속에 사는 박테리아의 종류에 따라서 사람을 분류할 수 있게 됐거든.”

“엥? 박테리아라면 사람의 장이나 위에서 주로 사는 그 단세포 미생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인간의 몸속에는 약 100조개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단다. 인간 세포가 10조개 정도인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숫자지. 그래서 그동안 몸속의 박테리아를 전면적으로 조사하는 건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었어. 그런데 얼마 전 독일의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팀이 그 엄청난 일을 해냈단다. 덴마크, 일본, 미국 등 6개 나라 39명의 몸 안에 사는 1,151종의 박테리아 유전자를 분석한 거야. 그 결과 몸 안에서 지배적으로 발견되는 박테리아가 박테로이데스, 프레보텔라, 루미노코쿠스 이렇게 세 가지라는 것을 밝혀낸 거지.

“에이, 겨우 39명 분석한 걸 가지고 어떻게 인류 전체를 분류했다고 그러세요. 암튼 킹왕짱 뻥이시라니깐!”

“아이고, 너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370명을 더 실험에 참가시켰는데도 결과는 똑같이 나왔어. 그리고는 지배적 박테리아를 기준으로 한 체질 분류에 ‘장형(腸型·enterotypes)’이란 이름을 붙였지. 이제 어떤 사람에게 어떤 박테리아가 많은가를 가지고 인간을 분류할 수 있는 세상이 드디어 온 거란다.”

“그럼 혹시 혈액형처럼 박테리아 종류별로 수혈을 따로 해야 된다던가, 성격이 다르다던가 뭐 그런 것도 있나요?”

“그건 아니지만 장형별로 체질을 알 수는 있단다. ‘박테로이데스’ 유형에서는 ‘비오틴’이라는 비타민이 많이 만들어지고 ‘프레보텔라’ 유형에서는 ‘티아민’이라는 비타민이 많이 생성된다는 식으로 말이야. 비오틴은 피부나 머리카락을 건강하게 가꿔주는 아름다움의 비타민이라고 알려져 있어. 티아민은 ‘피로회복 비타민’이라고 불릴 정도로 육체적, 정신적 피곤함이나 집중력 저하 등을 막아주는 비타민이란다.”

“어머, 그럼 난 100% 박테로이데스 유형이겠네? 난 아름다우니깐!!”



[그림 1] 사람의 체질은 장 속 박테리아의 종류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사진은 프레보텔라 박테리아. 사진 출처 : 룩포다이아그노시스“암튼 다행인 건, 박테리아는 혈액형과는 달리 후천적으로 결정된다는 의견이 많아. 태어난 직후 장을 지배하는 박테리아 종류에 따라 장내 생태계가 3가지 유형 중 하나로 발전해간다는 거지. 아무리 거울을 봐도 아빠는 박테로이데스 유형은 아닌 것 같은데…. 너한테 유전이 안 됐으면 하는 게 아빠의 간절한 바람이란다.”

태연, 평소와는 달리 자신을 낮추고 딸을 엄청나게 배려하는 듯한 아빠의 말투에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아빠의 얼굴이 유난히 검고 어두워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혈액형을 알고 있듯이 머지않아 자신의 장형도 알고 사는 세상이 될 거야. 그러면 대장이나 위에 생긴 병을 치료할 때 어떤 박테리아를 많이 갖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서 그에 맞는 체질별 치료를 할 수 있겠지. 아니면 아예 병원균이 발붙이지 못하는 박테리아 생태계를 인체에 조성시킬 수도 있겠고. 또 대다수의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이른바 ‘슈퍼박테리아’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될 가능성도 커졌단다.”

“와, 아픈 사람들이 훨씬 줄어들겠어요. 또 아파도 체질별로 치료를 할 수 있으니까 금방 나을 수 있고. 특히 아빠처럼 평생을 ‘장트러블타’로 살아 온 분들에게 정말 희소식이네요. 그런데 아빠! 지금 저의 뇌수를 미친 듯 흔들고 지나간 이 끔찍한 냄새의 정체는 뭐죠?!”

“아까부터 계속 장이 안 좋아서 말이다. 장트러블타의 결과물들이 어느새 항문을 빠져나와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지 뭐냐. 난 정말 네가 이 아빠의 박테리아 유형을 닮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나 혼자 오염시켜도 온 집안에서 퇴비 냄새가 가득한데, 너까지 내 장속 박테리아를 닮아 가스를 분출해댄다면 네 엄마는 정말 방독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할지도 몰라. 그건 너희 엄마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잖니?”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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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 수영장에서 내가 받은 라커 번호는 59번이었다. 하지만 열쇠는 돌아가지 않았고 나는 문을 닫을 수가 없어서 벗었던 옷을 다시 주섬주서 끼어 입고 카운터에 가서 열쇠를 바꿔올 참이었다. 좀 짜증이 났고 꽤 귀찮았지만 뭐 어쩌랴. 그런데 누군가 옆에서 쭈뼛거리며 말을 건다. "저기..." 

응? 그가 내민 것은 59번 열쇠였다. 얼라? 다시 보니 내가 가진 열쇠는 65번이었다. 전자 숫자는 뒤집어도 숫자가 되어서 자주 헷갈리는데 딱 걸린 거였다. 나가기 전에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었다. 씩씩 대던 스스로가 참 민망했지만...;;; 

2. 며칠 전에 다현 양이 할머니는 몇 살이냐고 내게 물었다. 예순 여섯이라고 했더니 알아듣지 못한다. 다시 말해주었더니 '예수님?'이런다. 하핫, 아니, '예순 여섯!' 했더니, 쪼르르 달려가며 제 엄마한테 이른다. "엄마, 이모가 할머니더러 '녀석'이래!" 

하하핫...;;;; 

3. 지난 주에는 스토리템에서 팬시 제품을 구입했다. 내가 주문하지 않은 상품이 잘못 왔고, 알라딘에 신고를 하자 알라딘은 기프트 상품 업체에 대신 접수를 해주었다. 나는 당연히 그쪽에서 사과 전화를 하고 사후 처리에 대해서 얘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화는 오지 않았고 원래 내가 주문한 제품만 도착했다. 교환 얘기가 없어서 둘 다 가지란 소린가? 하고 괜히 김칫국을 마셨는데, 다음 날 교환 상품 가지러 왔다는 택배 기사님의 전화를 받고 신경질이 났다. 제대로 된 소통이 되었으면 기사님이 헛걸음 하시지 않아도 될 텐데, 게다가 괜히 좋아한 나는 또 뭐란 말인가. 다음 날 다시 오시기로 하고 집에 가서 상품을 재포장했다.  

그런데 실물을 보고 나니 욕심이 생긴다. 결국 업체에 전화를 해서 잘못 온 제품도 내가 추가 구매하겠다고 했다. 기사님이 다시 발걸음 하시지 않게 택배 업체에 연락을 해달라고 했는데, 업체는 연락을 했지만, 택배 회사는 기사님께 제대로 전달을 못했고, 결국 기사님은 또 내게 전화를 주셨다. 정말, 소통하기 힘들군.... 

 

4. 역시 또 며칠 전 극장에서는 인사이드잡이 왜 12시 넘어서야 상영을 하냐고 물었을 때 직원은 영화의 내용상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내용이 뭐 어떻다고 그렇다고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해할 수 있을까? 

 

 

5.  나랑 90도 각도로 앉은 교감 샘은 예상 외로 좀 수다스러운 분이신데 질문이 무척 많고 참견도 잘 하신다. 목요일에는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교무실에 둘만 남았는데 50년대에 겪은 전쟁 이야기와 상이 용사 이야기, 어릴 때 살던 한옥 이야기, 당신 군대 이야기, 당신 아드님 군대 이야기 등등... 이야기가 끝이 나질 않았다. 원래는 경복궁에 가려던 나는 지쳐버려서 때마침 알라딘에서 온 중고책 알림 문자를 마치 약속 문자인 척 접수하고 일어설 수 있었다. 어려워....;;;;;

6. 어제는 퇴근하는데 좁은 길목에 폐지를 모으시는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벌려 놓으셔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잠시 멈춰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너, 올해는 결혼해야 되겠다." 

허걱, 언제 봤다고 이런 말씀을 하시지???? 이 얘기를 엄마께 했더니 엄니는 펄쩍 뛰신다. "큰 애가 먼저 가야지, 니가 먼저 가면 어떡해!" 

아씨,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ㅡ.ㅡ;;;;; 

7. 또 어제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집에 돌아오는 길, 사당에서 4호선을 갈아탄다는 것이 반대 방향 열차를 타고 말았다. 어쩐지 사당역인데 사람이 꽉 차 있다 싶었다. 이건 소통의 오류가 아니라 방향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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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요 며칠 동안 '오페라 스타'를 아주 재밌게 보았다. 다 보기는 길어서 노래 부분만 듣고 건너 뛰기는 했는데, 대중 가요를 부르는 가수들이 일주일 동안 연습해서는 오페라 아리아를 멋지게 불러내는 것은 감탄을 넘어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첫번째 주에 선데이와 김은정을 빼고는 모두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었고, 두번째 주에는 전 주에 기사회생한 선데이조차도 무척 성장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신해철이 삐딱한 태도로 무례하게 굴었던 게 참 별로였는데, 신해철은 마지막 대회날 모두가 기립박수칠 때도 혼자만 자리에 앉아 있더라. 역시 한 성깔 하심...;;;;; 

오늘 씨즌 1의 마지막 회를 보았는데 특별 무대를 가진 조수미 씨가 쓴 소리 한 마디 하겠다며 선곡에 이의를 제기했다. 마지막 무대인 만큼 대곡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기대했던 노래가 안 나왔다고 투정을... 하지만 제시한 곡들은 이미 이전 무대에서 불려졌던 노래들이다. 조수미 씨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간 수고했던 심사위원들을 무안하게 만드는 한 마디였는데, 그 한 마디는 결국 자신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9. 오늘 주말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은 무척 슬프게 진행됐다. 안 그래도 요새 많이 힘들어 하던 정원(김현주)이가 고두심의 밀어내기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무리 진심이 아닌 말이어도, 모질고 표독스러운 말들은 상대를 할퀴고 아프게 한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엔 숱한 역경을 다 딛고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며 행복해질 사람들임을 의심하지 않지만, 그래도 딸 인생에서 자신이 '짐'이고 '늪'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엄마의 무너진 마음과 온 세상이 합심해서 절벽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 같은 압력을 받고 있는 착한 딸이 참 가여웠다.  

드라마에서 잘못 인쇄되어 파기된 책은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였는데, 푸른 숲이 '지혜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중이어서 고른 책인가 보다. 이 책이 나온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었구나. 아무리 드라마의 설정이지만 멀쩡한 책이 갈려서 폐기되는 걸 보니 아찔했다. 실제 편집자였다면 가슴이 미어졌을 것이다.  

 

 

10. 내가 좋아하는 9집의 수록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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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5-23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통 오류, 소통 불가의 세상살이는 고단하지요.
다현양이 큰 웃음 줬어요~~~~ ㅋㅋ
반짝반짝 빛나는~~~ 오늘은 정말 눈물이 주르르~~~~~
한비야 책은 표지만이고 속은 진짜가 아닐거에요.^^

마노아 2011-05-23 09:30   좋아요 0 | URL
다현양은 자기가 뭐라고 했는지도 모를 거예요. ㅋㅋㅋ
아, 반짝반짝 너무 슬펐어요. 한비야 책 표지만 붙인 거겠지만,
그렇게 기계 아래에서 책이 막 갈리니까 너무 속상한 거예요.
경쟁 출판사 이름으로 --동네 나오던데 그건 문학동네일까요? ㅎㅎㅎ

2011-05-23 0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3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05-23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그러니까 이유리가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필름 버려서 그렇게 된거죠? 아... 이유리, 연기 참 잘하는것 같아요. 그런 표독스러움이 순간순간 잘 살아나요.
저는 어제 반짝반짝 빛나는 을 보지 않았어요. 대신 [포기의 순간]을 읽었죠.

6번 할아버지는 음, 그러니까,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실까요? 그리고 마노아님의 올해 운명을 점 쳐 주신게 아닐까요? 올해 결혼하는거라고......... ( '')

마노아 2011-05-23 09:33   좋아요 0 | URL
필름 건으로 회사에서 난리가 난 것도 큰일이었는데 고두심이 내가 기다리는 건 금난인데 니가 여기서 버티니까 갸가 못 온다고, 너 가라고 막 떠밀었거든요. 그러자 정원이가 나도 너무 힘들다고 막 울음을 터뜨리는데 진짜 가여웠어요. 배유미 작가가 워낙 울게끔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알면서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식구들이랑 보다가 완전 민망했어요...;;;;

어제는 또 울컥할 일이 있어서 그 할아버지가 정말 운명을 점쳐준 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밤새 심난해서 새벽이 되도록 잠이 안 와서 혼났어요. 그랬더니 아침부터 너무 피곤해요..ㅜ.ㅜ

2011-05-23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3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5-23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짝반짝은 도저히 마음이 아플거 같아서 못보겠어요 --

마노아님이 먼저 가셔도 된다의 한표! 결혼하시게 되면 청첩장 주세요 ^^;;

마노아 2011-05-23 09:58   좋아요 0 | URL
비극적인 상황이 너무 많이 나와서 참 보기 힏들어요. 어휴..;;;
아하하핫, 제가 먼저 갈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소문 내고 가겠습니다.
아, 그렇지만 올해가 얼마 안 남았네요..ㅜ.ㅜ

다락방 2011-05-2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ㅎㅎㅎㅎㅎ
사진이 반짝반짝 빛나요!!!

마노아 2011-05-23 10:18   좋아요 0 | URL
사진 찍어준 사람의 솜씨가 훌륭했어요. 애정이 담겼달까요. ㅎㅎㅎ

잘잘라 2011-05-2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나가다가 봉창' 이라는 소리를 꽤 들어요.
봉창, 소통의 오류, 그 지점에 꼭 나타나는 봉창..
봉창은 두드려도 열리지 않구요, 애초에 열 수가 없는 창이구요,
그래서 계속 두드리구요.
음.. 이거 제게 또 봉창 두드리고 있네요. 흑-

마노아 2011-05-23 12:21   좋아요 0 | URL
열 수 없는 창문 봉창이라니, 소통의 오류에 딱 맞는 이름인 걸요.
도무지 소통이 되지 않는 창문이에요. (>_<)

하늘바람 2011-05-2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 다현양 넘 귀엽습니다, ㅎㅎㅎㅎ
6. 물오른 미모를 말하시는 게아닐까요
8. 오페라 스타를 못 보아서 아쉬워요
9. 반짝반짝 빛나는
이 드라마 보며 사실 저런 실수는 생길 수 없는 실수랍니다. 요즘 인쇄소에서도 다 필름을 하니.
정확하게 실수를 만들려면 필름에 살짝 손을 대야겠죠. 뭐 기술은 그렇다치고
저도 펑펑 울었습니다. 반짝반짝은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합니다.

마노아 2011-05-23 12:23   좋아요 0 | URL
그 할아버지는 뒤에서 제 어깨를 툭 치셨는데 제 뒷태가 남달랐나 봅니다. ㅋㅋㅋ
오페라 스타는 생각날 때마다 유튜브에서 하나씩 꺼내볼까 봐요.
시즌2도 기대하고 있어요.
토요일자 방송을 못 봐서 정확히 어떤 실수인지 모르겠는데, 간혹 출간 일주일 만에 전량 회수되어서 폐기되는 책들이 등장하잖아요. 편집 실수로 몇 페이지 정도 앞뒤 섞이기도 하고요. 이런저런 사건들이 참 많을 것 같아요. 그런 실수 없이 책이 나와도 독자들은 오탈자를 신고하고요. ㅎㅎㅎ

Mephistopheles 2011-05-23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 스맛폰 어플 중에 "페이크 콜"이라는 어플이 있답니다. 그건 버튼 하나 누루면 전화벨에 띠리링 울린다죠...
전화 받는 척 할 수 있다죠..ㅋㅋㅋ

마노아 2011-05-23 12:23   좋아요 0 | URL
오오오, 그렇게 훌륭한 기능이 있다니! 역시 스맛흐합니다!!!

차좋아 2011-05-2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다현이 이야기 들으니 다야 생각이 나네요.ㅎㅎㅎ
"할머니 멧돼지가 도착했어~~~" 작년일인데요. 알고보니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라는 문자 알림이더라구요.ㅎㅎ
애들 땜에 웃지요^^

마노아진 사진이 반짝거려요^^

마노아 2011-05-23 13:30   좋아요 0 | URL
멧돼지가 도착했다니, 다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완전 귀여워요.^^ㅎㅎㅎ
이러니 애들이 집에 있으면 웃음이 날 수밖에 없어요. 행복한 웃음이에요.^^

고백하자면, 뽀샤시 효과를 살짝 주긴 했습니다. =3=3=3

BRINY 2011-05-2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지난 번 학교 교감샘이 그러셨어요. 언젠가는 6.25 이후의 학생 시절 얘기를 '몇번째냐...'하고 듣다보니, 교무실에 저랑 교감샘밖에 안남고 다 퇴근해버리셨더라구요. ㅠ.ㅠ

마노아 2011-05-23 18:21   좋아요 0 | URL
오늘은 칼퇴근했어요. 다음에는 꼭 주변을 살피고 마지막까지 남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05-23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전쟁을 겪은 나이라면 이미 은퇴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분이 몇 살이죠?

마노아 2011-05-23 18:21   좋아요 0 | URL
57년생이요. 정확히는 한국전쟁 이후의 후유증을 겪으신 거죠.

노이에자이트 2011-05-24 17:38   좋아요 0 | URL
후유증이라...저 어릴 때엔 5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육이오 운운 하면 어르신들한테 "어린 놈이 뭘 알아서..."하면서 야단 맞았어요.

마노아 2011-05-24 20:56   좋아요 0 | URL
전쟁을 겪으신 분들의 얘기를 계속 들으면서 자랐겠지요. 당연히 전쟁 이후의 암담했던 현실도 직접 겪으셨을 것이고요. 그 정도면 후유증이라고 해도 무방하지요.

프레이야 2011-05-23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통의 오류, 오늘도 저 그거 겪었잖아요.ㅋ
특히 문자메시지는 그런 경우가 잦아요.
마노아님 단발머리 넘 이뻐요.^^

마노아 2011-05-23 21:03   좋아요 0 | URL
문자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오해하기 참 쉽게 만들어요.
단발머리가 더워지는 계절이 왔어요.
다시 볶고 싶은데 주말에 시간이 안 나요.^^;;;;
 
꿈의 포로 아크파크 2 : 사...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4월
절판


꿈의 포로 아크파크 시리즈 2권.
책 날개를 펼치면 나오는 그림은 1권과 동일하다.
무수한 군중 속에 느낌표 아래 있는 아크파크 씨.
가만히 지켜보니 저 많은 얼굴들이 모두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다.
월리를 찾아라 느낌도 난다.
제각각의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웃고 있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무섭게 인상을 쓰고 있고 잔뜩 찡그리고 있다.
부조리한 사회, 근미래이지만 오히려 퇴보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일까.

1권이 '컷'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면 2권은 '색'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은 '사...'까지만 소개했고 그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뭔가 큰 비밀이 담겨 있는 게 분명하다.

아크파크 씨는 거대한 빛의 폭발을 목격했다.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모든 물질들이 흩어지고 추락한다.
아크파크 씨도 중력에 의해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동시에 추락하고 있는 인물은 썰렁한 얘기를 곧잘 하시는 이웃 아저씨다.
두 사람의 밑으로는 이 만화를 그리고 있는 만화가의 책상이 보이고,
그 책상 위 잉크 옆 커피 잔에 풍덩하게 생겼다.
이윽고 풍덩! 암흑 속에 빠진 두 사람.

그리고 울리는 탕탕탕 소리!
또 다시 1권과 마찬가지로 잠에서 깨어나는 설정이 이어진다.
아침부터 들이닥친 불청객은 '생활 공간 검사'다.
말 그대로 생활 공간의 규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검사하는 공무원들.

이들은 문짝 귀퉁이에서 잠금 장치까지의 거리를 재고,
벽장에서 침대까지, 가스레인지에서 침대까지의 폭도 잰다.
모든 수치는 단 1mm도 규정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리 되면 그 사람은 불공정하게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의 적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아크파크 씨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장롱 서랍을 열어둔 채 두었던 것이다.
서랍을 열어두고 방치할 정도의 여유 공간을 그가 갖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셈!

결국 검사관 몰래 서랍을 닫으려다가 측량도구를 훼손하게 되고 잘 닫히지 않은 서랍 은닉죄까지 포함되어서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거리에는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로 꽉 차 있고,
공무원들은 '살맛찾기부'에서 거리의 불만을 다른 방향으로 돌릴 방도를 차장야 한다고 중얼거린다.
'살맛찾기부'라는 부서가 필요한 사회라는 것도 놀랍지만, 불만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주요 업무라는 것은 더 충격적이다.
이 사회의 분위기와 삶의 만족도가 충분히 짐작 간다.

이미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되는 재판에 아크파크 씨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평결문은 단조로운 노래로 불려지지만 운율도 맞지 않고, 박자도 어째 시원찮다.

어찌 됐든 따귀 두 번에 해당하는 벌을 받게 된 아크파크 씨.
집행자가 팔을 들어 뺨을 두 차례 내리치자 아크파크 씨는 또 다른 세상에서 눈을 뜬다.
성벽 밖 남문이라는 그곳의 명칭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뭐가 아무 것도 아닌지, 그 실체를 찾아 따라가 보자.

남쪽으로만 가라고 해서 무작정 걷고 또 걸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때에 만난 한 장님 할아버지가 주는 한 마디가 의미심장하다.
아크파크 씨가 물었던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면 또 뭐가 필요하죠?"
그가 말했다.
"믿음"이라고....

강경옥 작가의 '거울 나라의 수수께끼'였던가? 그렇게 통과할 수 없는 미로 속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길을 물었지만 계속 헤매며 빙빙 돌던 주인공은 계속 물을 것이 아니라 첫 사람이 알려준 길을 믿고 끝까지 진행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통로를 찾는다.
아크파크 씨 역시 지금 필요한 것은 의심이 아니라 신뢰!

그리고 나타난 쉬어가는 곳이 놀랍다. 흑과 백의 경계로 이루어진 여관 아닌 여관은 문 너머 모든 공간이 방이고, 사실은 뻥 뚫려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 방(?)의 침대 머리 위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고, 그 액자 속에는 극장이 보인다.
이번엔 극장 안에서 눈을 뜨게 된 아크파크 씨.
도대체 몇 개의 시간과 몇 개의 공간을 뛰어넘는 것일까.
오늘 무지 바쁜 아크파크 씨다.

알고 보니 자신이 주인공이자 관객인 공연이 열리려고 하고 있었다.
무조건 '네'라는 대답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디 그렇게 되겠는가?
왜 하필 나인지 아크파크 씨는 물어야 했고, 예정되어 있지 않은 질문과 답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자들은 큰 혼란에 빠진다.
지극히 당연한 물음이었건만 아크파크 씨의 질문은 그들에게 '혁명적'이었다.

자명정 소리와 함께 여관 아닌 여관 방에서 깨어난 아크파크 씨에게 '역'이 도착했다. 역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역이 아크파크 씨를 찾아온 것이다.
오, 이 세계에선 앞으로도 몇 번이나 더 놀라야 하는 것일까?

역 안은 충격적이었다. 주거 문제가 심각한 이 세계에서는 코인 로커를 단칸방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지난 1권에서 승강기가 지나는 통로를 집으로 쓰던 형제들도 그 전에는 코인 로커 집을 썼었다고 했는데 그 실체를 이렇게 확인하게 되었다.

로커 룸은 좀 낫다. 역사 바닥에 '식탁'이니 '창문'이니 '의자'니 써놓고 생활공간으로 쓰는 사람들의 무리는 더 기가 차다.
저 안에서 열차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는 얼마나 클 것인가.
대책 없고 답이 없는 미래를 기다리며 비참한 현실을 버티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주변에서도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예가 아니던가.

쫓아오는 사람들을 떨쳐내고 무사히 열차에 오른 아크파크 씨가 마침내 도착한 곳은 등대였다.
마치 하늘 끝에 닿으려던 바벨탑 같은 규모의 거대한 탑에 오른 아크파크 씨는 그 안에서도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는 통로에 다달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아크파크 씨에게 뭔가 비밀을 말하려고 했었다.
그들은 '사....'라고 입을 열기 시작했지만 주변 사람에 의해 저지 당했고, 혹은 스스로 깜짝 놀라며 제 입단속을 했다.
그들 세계의 비밀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크파크 씨는 마침내 그 비밀의 정체를 알아차렸을까?
시작할 때 한 번 언급하고 지나갔지만, 궁금증을 단번에 풀어주는 것은 도리가 아니니 여기까지만 얘기해 보자.
수상하고 위험한 흑백 만화의 세계는 앞으로도 쭈욱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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