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메일진 제2298호 

친정 부모님께도 똑같이 효도할 길이 열린다는 말과 남편보다 아이 중심으로 키우면 아이 망친다는 말이 와닿는다. 물론, 나는 남편도 아이도 시부모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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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31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좋은말씀이지만.....그러니깐 전, 1번부터 만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마노아 2011-05-31 19:2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일단 1번부터 만들고요.^^ㅎㅎㅎ

따라쟁이 2011-05-3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은.. 그저 나죠.. 라고 생각하는 아주 이기적인 1인

마노아 2011-05-31 19:22   좋아요 0 | URL
나는 0순위랄까요. ㅎㅎㅎ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6권을 예약 주문해 놓고도 정작 답사 전날 부여 부분을 다 못 읽어서 졸린 눈을 부릅뜨며 사투를 벌이다가 새벽 2시에 고꾸라졌다. 5시 20분에 기상해서 전날 못 읽은 부분을 마저 읽었지만 여전히 내 눈이 내 눈이 아닌 상태. 집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내가 원했던 압구정 역이 아닌 광림 교회에서 멈춘다기에 혹여 헤맬까 걱정되어서 지하철을 탔다. 그 새벽에 앉을 자리도 없이 사람이 빼곡해서 무척 놀랬더랬다. 다들 참 열심히 사는구나... 

우리를 실어다 줄 버스에 유홍준 선생님도 함께 승차하셨다. 하핫, 왠지 우린 1진이 되어버린 것 같고 괜히 어깨가 으쓱! 선생님은 마이크를 잡으시고는 그 달변을 발휘하시어 한 시간이 훌쩍 넘도록 많은 이야기들을 내려놓으셨다. 참여 정부 이야기도 해주시고, 어쩌다가 부여에 제2 고향을 잡게 되었는지의 긴 여정이었다. 잠이 부족해서 어느 순간 정신줄을 놓을 뻔했지만 재밌어서 열심히 경청했다. 노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으로 가시는 게 마땅하다고 했더니 대통령님은 선생님께 시골로 내려가라고 권해 주셨단다. 이런 분들이 내려가서야 함께 발전할 수 있다며 가급적 섬을 권하셨지만, 차마 섬까지는 가지 못하시고 정착한 곳이 바로 부여였다. 주5일은 도시에서, 그리고 주말은 시골에서라는 의미로 5도2촌을 실천하고 계시는 선생님.  

버스 안에서 창비 출판사와 눌와 출판사 담당자 분들의 소개를 듣고 수십 년째 함께 답사 여행을 진행 중이신 마기사님 소개까지 들었다. 도착 시간까지 아주 잠깐의 여유가 생겨서 불시에 들르게 된 곳은 궁남지. 

 

백제의 별궁 연못인 궁남지는 무왕의 출생설화와 관련이 있다. 무왕의 부왕인 법왕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가에서 홀로 살다가 용과 통하여 얻은 아들이 바로 서동요로 유명한 무왕이라는 것이다.  이곳에선 7월에 연꽃 축제가 열리던데 아직은 축제 철이 아니어서인지 무척 한산했다. 우리는 가볍게 눈도장을 찍고 바로 버스에 탑승, 집결지로 출발했다.  

집결지에는 부여문화원에서 접수를 받은 회원들과 강남구청 평생 교육원에서 출발한 회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선생님은 버스를 갈아타시고 우리는 그 뒤를 쫒아갔다. 그리하여 첫 번째 답사지는 장하리 3층 석탑. 원래 시기상으로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먼저 보아야 하지만, 너무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인해 먼저 볼 경우 다른 탑들이 모두 시녀로 전락해버리는 단점이 있기에 제일 마지막으로 밀려버리고 말았다. 원래 가장 특별한 요리는 나중에 나오는 법! 

 

이곳에서 출발한 고장이 어디인지 지역 조사를 했는데 우리는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귀여운 항의를 하기도 했다. 고려 중기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탑은 1층과 2층의 가느다란 홈이 3층에서만 위쪽 반만 깎인 것이 특징인데 그것이 곧 매력 포인트가 되고 말았다. 석탑에서는 귀여운 사리장치가 출토되었는데 지금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고 한다. 일정을 다 마치고 나면 박물관에 들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이어서 찾아간 곳은 대조사.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사찰에서 키우는 꽃사슴과 산딸나무였다. 

 

산딸나무꽃은 나뭇잎 위로 피어나기 때문에 아래쪽부터 위에서 내려올 때 더 잘 보이는 꽃이었다. 보통의 꽃잎은 다섯 장이지만 이 꽃은 네장이어서 더 특별해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꽃이 아니라 꽃받침이 변한 것인데 자세히 보면 하얀 꽃받침으로 보인다.  이곳 대조사 말고도 곳곳에서 산딸나무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참 반가웠다. 초록의 계절에 가장 눈에 잘 띄는 흰색이 반가웠다.  

이번 답사에서는 곳곳에서 무수한 꽃들과 열매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는데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저마다의 매력에 홀딱 반해버렸다. 다양한 곳의 사진들을 한데 모아봤다. 아는 꽃 몇 개 있는지 세어보시라. 그렇지만 내가 알지 못하므로 정답은 확인해 줄 수 없음...^^ 

 

(클릭하면 커지는 건 알죠?)

 

처마 너머로 은진미륵이 수줍게 보인다. 계단을 부지런히 올라가니 제법 큼에도 불구하고 2등신으로 보이는 까닭에 참으로 귀여운 미륵불이 우리를 반긴다. 

 

법당 뒤쪽 벽에 유리창을 두어서 예불한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미륵보살의 얼굴 부분이 창을 가득 메운다고 해서 무척 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스님이 예불을 하고 계시기에 차마 들어가보지 못했다. 아쉬워라... 

미륵불은 56억 7천 만년 후에 중생을 구제하러 오신다는 미래불. 그때 땅을 뚫고 올라온다고 해서 머리 위의  저 네모난 판떼기가 땅의 형상에 해당된다. 뭐랄까... 참 무거워 보인다. 고생 많으시구나... 

대조사에 왔으니 명물 꽃사슴 해탈이를 놓칠 수가 없다. 

 

사람 사이에서 성장한 해탈이는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낯도 가리지 않는다. 된장을 좋아해서 여러 집 장독을 깨뜨리기도 했다던데 절에 있던 장독들이 염려스러웠다. 사람들이 마구 다가오자 스타 행세를 하며 빠르게 사라져버린 해탈이. 어느새 저편으로 건너가 무언가를 따먹고 있다. 멀어서 보진 못했지만 열매 등을 먹은 것일까? 내 평생 사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후훗, 뿔이 있었으면 더 근사했으려나? 

이어서 원래 답사 일정은 아니었지만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를 보기로 했다. 중간에 공사 구역이 나와서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칠 뻔했는데 어떻게 우회를 했는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거대해서 사진이 잡히질 않아 한참을 뒤로 뒤로 후퇴해야만 했다. 

 

둘레가 총 9미터 30cm이고, 높이는 35미터. 백제 26대 임금 성왕 때의 전설이 남아 있어서 수령을 대략 1500년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세상에, 1,500년이라니... 아득하고 아득한 시간이다. 일제 강점기에 징용 나간 청년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고 하니, 정말 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천연기념물 3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축 처진 가지들을 부축해 주기 위해 대나무 지지대를 곳곳에 세워뒀는데 그 중 한 통에 은행나무 씨앗이 떨어졌는지 아주 작은 가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여쁘기도 하여라. 이어서 찾은 민들레꽃. 하나는 우리나라 것이고 하나는 서양 것이라고 같이 간 나의 야곱이 말해주었는데 어느 사진인지 까먹었다. 왼쪽이 우리나라 것이고 오른쪽이 서양 것이던가??? 

어느덧 시간은 무르익어 배꼽 시계가 꼬르륵 거릴 때. 무량사 사하촌 식당가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이 들아간 곳은 은혜 식당. 소박한 외관이지만 음식 맛까지 소박할 거라고 여기면 오산! 

 

비빔밥에 메밀전, 도토리묵과 청국장에 각종 나물까지, 하나같이 일품인 반찬들이었다. 우리쪽 테이블은 금세 사라진 메밀전이었건만 옆 테이블엔 저 맛있는 것을 무려 남기지 뭔가. 것 참 소식하는 분들일세...;;;;; 

메뉴가 탁주 한 사발 들이키면 딱 좋을 모양새건만 우리의 선생님은 음주를 아니 하시는 분. 답사하면 음주가 연결되건만 그걸 하지 않으시니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여 오셨나보다. 식사 일찍이 마치시고 사인하기 바쁘신 유선생님. 관광버스 한 대에 딱 한 명만 책을 샀다고 해서 무척 구박을 받았단 강남구청 팀은 뒤늦게 창비가 들고 온 책을 현장 구매해서 사인을 받았더랬다. 정작 책을 샀던 나는 집에 두고 가서 사인을 못 받았지만...ㅜ.ㅜ 

일정이 바쁘니 빨리 빨리 움직여야 했다. 다음 코스는 당연히 무량사! 

천왕문을 다 통과하기 전에 시선을 들면 정면에 극락전이 보이고 그 앞의 탑과 석등까지가 한 줄로 보인다. 그 명장면을 액자처럼 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천왕문이 해준다.  

 

보물로 지정된 것만 모두 6점에 해당하는 무량사에서 아무래도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드물게 중층 건물인 극락전이다. 

 

현대의 기술로는 재현해낼 수 없는 저 고색창연한 단청 빛깔이 마음에 들어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은 말년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그의 영정이 남아 있다. 새로 지은 손님방 청한당은 현판 글씨에서 한가할 한(閒)자를 뒤집어 쓰는 유머를 보여주었는데 쥐20 그림의 그래피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 정도의 유머도 승화하지 못하는 꽉 막힌 사회라니 씁쓸할 뿐이다. 

돌아나오는 길 사천왕이 각별해 보여서 크게 한 컷 찍었다.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오히려 해학적으로 보이는 사천왕 되시겠다. 

 

나올 때는 출입구에서 비켜난 샛길을 잠시 다녀왔다. 학생들 데리고 다니실 때는 입장료 안 내려고 이렇게 둘러가기도 했다 하신다. 우리야 그 길을 한 번 밟아본 것뿐. 물이 흐르는 길도 예쁘고 울창한 나무들도 근사하기만 하다. 

여길 지날 때 토양의 종결자 서어나무 얘기를 잠시 하셨는데, 자꾸만 언급하시는 나무들이 모두 궁궐의 우리나무에 나오는 이야기란다. 이거 이 책도 바로 보관함으로 직행하게 생겼다. 

일단은 오늘 도착한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을 먼저 봐야되겠지만... 

그밖에 매월당 김시습 사리탑을 잠시 감상하고 바로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이어서 살 곳은 성주사터. 지금은 건물 하나 남아 있지 않지만 오히려 비어 있어서 꽉 찬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오래 전에 만복사지를 갔을 때는 그 황량함에 오히려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는데 이곳 성주사지에서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충만감이 있었다.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으로 잔뜩 마모되어 시멘트로 땜질이 되어 있었다. 어쩐지 바보 별명 갖고 계시던 김수환 추기경 님을 떠올리게 하는 인상이어서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성주사지에 이어서 외산 반교마을 돌담길을 차분히 걸어갔다. 햇볕은 쨍쨍했고, 반바지 입은 나는 정강이가 화상 입은 것처럼 후끈거렸지만 돌담의 예쁜 미소까지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에는 선생님이 반교리의 주민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와 유난히 돌이 많은 이 지역과 그리하여 돌담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기까지의 에피소드 등이 소개되어 있다. 충청도 사투리로 읽는 돌담사는 구수함에 유머까지 더해져서 오래오래 킥킥거리게 만들었다.  

저 돌담길을 돌아서 도착한 어느 아담한 집의 흙을 밟는 순간 악 소리가 나왔다. 책에서 보고 무장 부러워했던 선생님의 집 '휴휴당'이 아닌가! 

 

땅을 고를 때 나온 돌을 가지고 돌담을 쌓았다는 선생님의 예쁜 세칸 집은 아담한데도 눈이 부셨다. 계곡과 숲을 모두 집 안으로 끌어들인 선생님은 진정 욕심쟁이 우후후!! 

 

방문객이 많아 다들 한 호기심을 증명해 보인듯 구멍난 창문의 한지가 웃음을 자아낸다. 

 

주말에 잠깐 내려오면 잡초 뽑는 일로 해가 졌다는 선생님의 바쁜 나날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이건 정말 부러운 걸!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아무리 주문을 외어보아도 너무너무 근사해서 샘이 나서 혼났다. 선생님도 직접 배 아플 거라고 말씀하셨으니 두 손 두 발 다 든셈. 노대통령께서는 이곳에 와보셨냐고 질문을 드렸는데 애석하게도 오지 못하셨다고 한다. 무척 와보고 싶어하셨다는데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그분의 삶이 너무 짧았다. 또 다시 안타까운 마음이 울컥 들고 말았다. 이 좋은 곳을 눈에 한 번 담아보지도 못하셨다니....ㅜ.ㅜ 

 

방문 앞과 대문 앞의 푯말이 귀엽기 그지 없다. 사모님은 이곳에서 지내실 때 너무 바빠서 쉬는 것을 오히려 쉬는 집이라고 부르셨다는데 그 역시 충분히 짐작이 가는 상황들이다. 돌아나오면서 혹시 청지기 필요 없냐고 나의 야곱은 재차 물었지만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노코멘트! 그런 질문 많이 받으셨을 것이다. 

 

왼쪽은 양파가 심겨져 있고 오른쪽은 마늘이다. 선생님이 책 속에서 바늘로 마늘쫑 뽑는 법에 대해서 소개를 하셨는데 그 모습을 재현해 보는 모습이다. 그냥 뽑으면 뿌리에까지 영향을 주어서 오히려 안 좋고 바늘로 마늘대 밑에서 서너번째 마디를 콕 찌르고 당기면 쑥 빠진다고 한다. 연대 공과대학 민옥기 교수님은 이것을 전문용어로 '응력집중'이라고 표현했다. 어려운 설명은 내가 못하겠으니 책을 읽으시라.^^ 

나오는 길은 내리막길이었는데 폐교를 수리해서 유스호스텔로 만든 건물이 나왔다. 

 

근사한 변신이다. 초등학교가 분교로 전락하고 다시 다른 학교와 통합되어 사라지는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그 터를 살려둔 것은 다행으로 보인다.  

그나저나 저 풀은 갈대인가 억새인가.... 그 차이점을 작년 가을에 설명 들었는데 그새 또 까먹었다. 아시는 분 설명해 주세요~

 

이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답사의 대미를 장식해줄 정림사지 5층 석탑이다.  2006년에 세워진 정림사지 박물관 주변 곳곳에는 백제를 상징하는 무늬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무척 기품이 있어 보였다. 

 

소문이 자자했던 정림사지 5층석탑은 소문에 눌리지 않을 만큼 진정 아름다웠다. 압도적인 크기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았고, 백제 석탑 특유의 말려 올라간 옥개석의 모서리도 버선코처럼 가볍고 정갈했다.

탑신에는 나당연합군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한 후 새긴 기공문이 남아 있다. 이 아름다운 걸작에 저런 걸 써 놓다니, 무식한 놈! 

뒤쪽으로는 고려 때 만들어진 많이 마모된 석불 좌상이 남아 있는데 정림사지 오층 석탑의 위용에 많이 비교가 되었다. 

박물관도 같이 구경하고 싶었지만 출발 시간이 다 되어서 아쉬움을 남기고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그리고 차창 너머로 저것을 발견하는 순간 비명이 새어나왔다.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 기니까 줄여서 얘기하자. 백제금동대향로! 

아뿔싸, 부여까지 왔는데 부여 국립 박물관을 가지 못했군. 못 갔으니 저 명품도 보지 못했구나! 지나치게 아쉬워서 한숨이 나왔다. 부여를 꼭 다시 와야 하는 이유가 그렇게 생겨버렸다. 하루에 끝내긴 아쉬운 곳임을 이렇게 확인시켜 주는구나.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아마도?) 모두가 곯아 떨어졌다. 나와 나의 야곱은 서로 고개를 떨구며 서울까지 내내 지당하십니다를 온 몸으로 표현하며 돌아왔다.  

서로가 일들에 치여 몹시 피곤한 컨디션이었지만, 다녀와서 안도가 되었던 하루의 답사길이었다.  

행사를 준비한 부여군과 창비/눌와 직원들과 우리들의 안내자 역할을 기꺼이 해주신 유홍준 선생님께 무척 고마운 마음이다. 남겨진 아쉬움은 책을 보며 달랠 것이다. 그리고 그 독서는 필시 또 다른 답사로 나를 안내해줄 테지. 20대 1의 경쟁률이었다고 하셨는데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행운이 내게로 와서 무척 기쁘다. 아무래도 내가 복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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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한 부여 답사
    from 엄마는 독서중 2011-06-03 13:15 
    '유홍준 선생과 함께하는 부여 답사'에당첨되고바로 책을 주문해 '당일배송'으로 받았다.'아는 만큼 보인다'고했으니까예습은 필수, 일단 답사지인 부여 문화권만 읽었다.우리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흥미로웠지만, 내고향 충청도 말의 오리지날 버전이 곳곳에 나와 깔깔 대며 읽었다. 충청도 사람이 느린 것은 동작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어리숙해 보이는 건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 기질을 모르는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이다. 유홍준 선생님은부여
  2. <답사기>의 유홍준과 시골의사 박경철의 대화
    from 그대가, 그대를 2011-08-09 14:39 
    일시, 장소 : 2011. 7. 26 서울 역사 박물관 7시.역사박물관 강당을 9시까지는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박경철 씨가 청중을 대변해서 질문을 하는 것에 양해를 구했다. 얼마든지요!박경철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을 통해 다시 돌아온 감회가 어떤가요?유홍준 : 빨리 돌아오고 싶었지만 숭례문 화재로 죄인의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1년간 자숙하며 지냈다. 나의 본업은 미술사. 따라서 한국 미술사 강의 책부터 냈다. 분량상 3~4권 나올지
  3. 유홍준 교수님과 함께 한 창비 남도 답사 여행 첫째날!
    from 그대가, 그대를 2011-09-05 00:17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는 일을 목격하게 된다. 7월와 8월에 걸쳐 삼재가 꼈나 싶을 만큼 되는 일도 없고 뒤로 엎어져도 코가 깨지는 형상이 비롯되더니만, 그런 불운들을 다 엎어버릴 행운이 내게 찾아왔다. 바로 유홍준 교수님과 함께 하는 창비 답사 여행에 가게 된 것이다.계간 창비 인문사회팀과 편집 위원 교수님과 그들의 가족분들, 그리고 답사여행기 디자인을 맡은 비타 팀과 명지대 미술사학과 조교님들, 그리고 또 다른
  4. 유홍준 교수와 함께 하는 창비 답사 여행 둘째날!!
    from 그대가, 그대를 2011-09-18 13:30 
 
 
순오기 2011-05-31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상세한 후기 좋아요! 마노아님이 빼놓은 것은 내가 보출할 수 있겠네요.ㅋㅋ
역시 일행이 많아서 선생님 곁에 바짝 따라 붙지 못했을 땐 놓친 부분이 많군요.
답사길에 만난 꽃들은 나도 저렇게 편집하려고 많이 찍었는데~~~ 우린 통했네요.^^

마노아 2011-05-31 07:16   좋아요 0 | URL
사진 편집해 놓은 게 더 있는데 도저히 힘들어서 못 올리겠어요. 순오기님의 멋진 후기에서 부족한 것들을 모두 봐야겠어요.^^
중간에 김시습 설명할 때 땡땡이쳤는데 나중에 선문답을 하셔서 들킨 줄 알고 막 무안해했거든요.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물어보더라는...ㅎㅎㅎ 도둑이 제발 저렸어요.^^;;

hnine 2011-05-31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전에 살면서 부여와 공주는 몇 차례 가봤는데 마노아님 가신 곳은 제가 다음에, 다음에 라고 미루면서 아직 못 가본 곳이네요. 저는 부여 박물관만 몇 차례 갔었거든요. 얼마전에도 정림사지 석탑을 그냥 통과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꼭 가봐야겠어요.
유홍준 님과 함께 하는 답사였다니, 특별한 답사 여행을 하셨습니다 ^^

마노아 2011-05-31 07:17   좋아요 0 | URL
저와는 반대네요. 전 충청권은 한 번도 가보질 못해서 볼 게 앞으로도 많아요.
무척 기대가 되는 곳이에요.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 하는'이 붙어서 냉큼 신청해서 다녀왔어요.
아니었다면 쉽게 엄두가 안 났을 것 같아요.^^

BRINY 2011-05-31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네요. 경상, 전라에 비해 충청권 답사는 못가봤어요...

마노아 2011-05-31 11:27   좋아요 0 | URL
저두요~ 경상도와 전라도랑 강원도는 한 번씩 가봤는데 충청도는 처음이에요.
이제 숫자로는 구색을 맞췄어요.^^

또치 2011-05-3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생생한 후기...! 너무 재미있고 맛있게 후딱 읽었네요 >.<
저는 이쪽 고장에서 자랐어요. 부여에는 고모가 살고 계시고요.
해질녘에 능산리 고분군에 올라가 멍 때리고 있는 거 정말 좋아해요. 마노아님도 담에 부여박물관 가서 금동향로 보실 때 능산리 고분군에도 한번 들러보셔요. 경주 고분군이랑 좀 다른, 아주 편안한 느낌이랍니다.
불두화, 찔레꽃, 감자꽃, 개양귀비, 작약, 금낭화, 해당화, 패랭이... 여름꽃이 한창 이쁠 때 잘 가셨네요.
참, 저건 억새예요. 갈대는 물가에 살고 억새는 주로 들판에 사니까.
억새꽃은 부채꼴 비슷하게 퍼지고 갈대는 부들부들 솜뭉치 같이 생긴 꽃이 피어요 ^^

마노아 2011-05-31 11:29   좋아요 0 | URL
아아아, 능산리 고분군! 부여를 다시 가야만 하는 이유가 또 늘었네요.
꼭 가보고 싶어요. 공주도 가봐야겠고, 가야 할 곳이 참 많아요.^^
억새! 맞다. 작년 가을에도 갈대는 물가에 산다고 설명 들었는데 그새 또 까먹었어요.ㅜ.ㅜ
우와, 저 중에 이름 예쁜 꽃들이 많군요.
불두화랑 감자꽃이랑 금낭화, 패랭이까지는 봤던 것 같은데 사실 구분은 못하고요...ㅎㅎㅎ
양파도 양파 몸체를 못 봤으면 그냥 파라고 했을 거예요. 양파 머리만 봤지 저렇게 기다랗게 자라는지도 몰랐답니다..;;;;

pjy 2011-05-3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알차고 멋진 여행이었군요, 저는 피곤하기도하지만 멀미때문에 차만타면 내내 지당하십니다~입니다ㅋㅋ
휴휴당이라니 참 근사하네요~

마노아 2011-05-31 11:30   좋아요 0 | URL
멀미는 극복했지만 졸음은 극복할 수 없었어요.^^
휴휴당 창문 안에 창이 또 있어요. 한지 창 속에 유리창이 더 있더라구요.
사람 사는 집 티가 났답니다. 참 멋져요.^^

구름고래논술토론 2011-05-3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종 민들레는 꽃이 흰색이랍니다. 약으로 쓰는 건 토종 뿐이라고 엄니가 그러시더군요.

마노아 2011-05-31 12:36   좋아요 0 | URL
그럼 제가 왼쪽과 오른쪽을 바꿔 얘기한 거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글샘 2011-05-3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좋네요. 버스도 안 타고 공짜로 구경하는 맛이 ㅋ
저거 억샌데요.
갈대는 '갈색'이랍니다. 억새는 '은빛'이고요.
갈대 = 갈색! 외우기 쉽죠?

마노아 2011-05-31 12:37   좋아요 0 | URL
갈대가 갈색이군요. 그렇다면 저는 갈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갈대=갈색! 쉬워요. ^^ㅎㅎㅎ

세실 2011-05-3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이리도 상세히 올려주시니 함께 여행한 느낌입니다^*^
정림사지 5층 석탑 작년에 가보았는데 다시 보니 반갑네요. 배흘림기둥이라고 하죠~~~

마노아 2011-05-31 19: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배흘림기둥! 목조건물 양식으로 지었지요.^^
찍어온 사진이 많아서 골라내는데 애 먹었어요.^^ㅎㅎ

조선인 2011-05-31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윽윽 부러우면 지는 거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난 이번 여름휴가로 부여갈 거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엉엉엉

마노아 2011-05-31 19:24   좋아요 0 | URL
신한카드 대전 행사에 이승환이 나오는데, 겸사겸사 한 번 더 뜰까 말까 지금 고민 중이랍니다.^^ㅎㅎㅎ
조선인 님의 여름 휴가를 기대할게요~

따라쟁이 2011-05-3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완전 기행문 싫어하는데, 어디 갔다왔다 이런글 진짜 잘 안 읽는데 (자기는 쓰면서.-ㅁ-;;;) 근데 이 사진들은 쫌 부럽지 말입니다. 어느새 읽고 있지 말입니다. -ㅁ-;;;

마노아 2011-05-31 19:24   좋아요 0 | URL
헤헷, 나도 기행문 잘 안 읽는데 제가 쓰고 나니 많이 읽어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죠. ㅎㅎㅎㅎ

프레이야 2011-06-1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늦게야 봤네요. 알라딘 뉴스레터 보고요.ㅎㅎ
순오기님과는 또다른 색깔의 멋진 페이퍼에요!!
지금 마노아님은 교회 계시려나요?^^

마노아 2011-06-12 22:07   좋아요 0 | URL
알라딘 뉴스레터에 연이어 제 이름이 올랐네요.
오늘 방문자가 많았던 것도 뉴스레터 때문인가 봐요.
예배 잘 마치고 TV도 보고 그림책도 보고 그랬어요.
일요일이 벌써 저물어 가네요. 새롭게 한 주 우리 즐겁게 시작해요.^0^

선율 2011-06-1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심하고 꼼꼼한 글과 사진, 감사하게 잘 보았습니다. 답사여행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런 글과 사진들이 정말 좋은 길잡이가 되지요...^^

마노아 2011-06-14 15:39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오랜만에 다녀온 답사 길이었는데 얼마나 좋고 뿌듯하던지요. 좋은 책이 좋은 길로 또 인도하는 것 같아요.^^
 
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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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어를 안다거나, 다른 것들을 배웠다고 해서 미래를 준비했다고는 할 수 없어. 네 미래는 올바른 질문을 찾아내고 용기 내어 그 질문을 던지면서 찾아 나서는 거다. 좋은 질문은 좋은 대답보다 훨씬 중요한 거야. 그렇지만 질문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지. 가브리엘라, 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알겠지. 하지만 왜 사는 지도 알겠니?"

-46쪽

"두려워하고 불안해해도 괜찮아. 두려움과 불안이 변화를 가져온단다."


-48쪽

아빠는 몸집이 크지 않지만, 옹이진 오래 된 나뭇가지처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평생 일한 탓에 피부는 거칠고 주름졌다. 삶이 아빠에게 주름살을 주었고, 지혜는 아빠에게 인내를 주었다.

-52쪽

약속이란 미래에서 빌려 오는 것이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68쪽

천둥이 칠 때마다 나는 알리시아를 끌어안고 달랬다. 알리시아는 계속 나를 엄마라고 불렀는데 굳이 고쳐 주지 않았다. 아이들한테는 누구나 엄마가 필요한 법이니까.

-82쪽

기억말고는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내가 장에 지고 간 어떤 짐보다도 무겁게 내 마음을 짓눌렀다. 내 등 뒤에는 죽음의 재가 깔려 있고, 내 앞길에는 부연 구름이 뒤덮여 있었다. 나는 위험한 나라에서, 집도 미래도 없이 홀로 남은 어린 여자 아이였다.

-87쪽

"조용히 해, 아가야! 네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는 거야. 살고 싶으면 날 도와 줘야 돼. 난 네 엄마도 아니고, 세상은 언제나 친절하기만 한 건 아냐."

-108쪽

군인들은 면도를 하고 교대로 몸과 군복에서 피를 싯어 냈다. 갈끔한 모습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결코 깨끗하게 씻어 낼 수 없을 것이다.

-125쪽

산미겔 수용소에는 식량과 구호품이 지금보다 열 배는 더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보다 절박하게 바라는 것 한 가지는, 트럭이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건 바로 희망이다. 전쟁이 곧 끝나리라는 희망, 가족들이 고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 희망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하고 스러져 간다.

-152쪽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특히 마음이 아팠다. 전쟁 때문에 어린 시절을 빼앗겨 버린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울지도, 놀지도, 웃지도, 큰 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아이들은 그 동안 매일 두려움에 떨었고, 언제나 조용히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걸 마음 속에 새겨야 했다.

-167쪽

"공 한 개 구해 주실 수 있어요?"
미국인 구호 요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가 놀이터니? 여긴 난민 수용소잖아."
"아이들은 다시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야 돼요."
구호 요원이 화를 내지 않을까 겁이 났지만 나는 계속 매달렸다.
"행복해지려면 놀이가 필요해요. 놀기 위해서 제대로 된 공이 필요하고요."

-169쪽

"좀더 신경 써주실 수 없어요? 아이들은 오늘 행복해져야 해요. 내일이면 늦어요. 제발요."-170쪽

그건 여러 전쟁 가운데 하나일 뿐이야. 네 경우에는, 여자라는 것도 평생 치러야 할 전쟁이야. 그리고 우리 둘 다, 인디오이기 때문에 군인들이 등장하기 전부터 전쟁을 해왔다고 할 수 있어."-177쪽

"지금으로선 여기가 우리 집이고, 몇 년을 더 있어야 할지 모르잖아요. 아이들은 교육을 받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인디오라는 걸 평생 수치로 여겨야 할 거예요."
마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긍지와 자부심을 배우지 못하면 아이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말 거야."-180쪽

빗속에 비닐과 판자 조각을 덮고 앉아 있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칠판도 책상도 없는 교실에서 무얼 배운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배우지 않고 희망을 버리는 것보다는 나았다.-181쪽

내가 학살에서 살아남은 건 내가 겁쟁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강하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기 때문이다.-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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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3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같아요

마노아 2011-05-31 01:01   좋아요 0 | URL
한 해에 한 권씩은 이 시리즈를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참 교육적인 책이었어요.
 
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한때 꽤 잘 나가는 극단이었지만 지금은 이렇다 할 연극을 못 세우고 시간이 흘러버린 극단 명우. 그 명우의 홍보 직원이자 극작가인 장유안은 얼마 뒤 자신의 첫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로 되어 있었다. 인생의 제법 중요한 순간이었던 그때에 극단의 살림을 책임지던 실장이 사라져버렸고, 그녀는 졸지에 실장 임무까지 맡게 되지만 극단 식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5년 동안 사귀어 온 남자 친구는 이렇다 할 직업은 갖지 않은 채 아르바이트로 연명 중이었고, 두 사람은 만나서 밥 먹고 모텔을 찾는 순서만 되풀이하며 서로의 감정을 소모시키고 있었다.  

한편 극단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동료 작가는 알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때도 글을 잘 써서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그 친구 앞에서 십여 년이 지났건만 주인공 유안은 여전히 열패감을 느낀다. 

위장이혼을 했던 아빠는 따로 살림을 차리고 아이까지 생겼다며 영영 엄마와 헤어져버렸고, 언니 재영은 동호회에서 만난 싱글맘과 전세금을 반씩 부담하며 동거 중이었다. 엄마는 재영을 다시 집으로 불러들이려고 무지 애를 섰지만 재영의 결심은 확고했고 그들은 자주 충돌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로를 원망하며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에 바빴다. 엄마는 재영 때문에 아빠가 집을 나간 것이라고 하고, 또 그런 그들을 보며 유안은 엄마 때문에 아빠와 언니가 모두 떠난 거라고 탓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자기 생각만 하고 있었다. 누군들 자기가 가장 중요하고 먼저 생각하는 대상이 아니겠냐만은, 이들은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상대가 지나치다고만 생각한다. 거기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찾을 때도 있지만 머리로 아는 것이 가슴으로 체득되는 것은 아니다.  

왜 항상 우리는 상대보다 더 많은 걸 주고 더 많은 걸 실망하게 되는 것일까. 나의 오랜 친구는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너이기 때문에 네가 실망스러운 거라고. - 200쪽 

내가 열을 주었기 때문에 상대도 똑같이 열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관계는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무척 냉랭하게 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제까지의 평정심을 무너뜨리고 만다. 배우인 엄마는 아이의 학교 운동회에 갈 때도 완벽한 메이크업을 고수하는 분이시건만 할머니가 심장 마비로 홀로 계시다가 돌아가시자 헝클어진 모습을 보이고 만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고 할머니의 시골 집에서 딸들과 함께 잠든 날, 엄마는 왜 그동안 할머니에게 냉랭했는지를 고백한다.  

내가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야. 엄마는 그런 식으로 자꾸 나한테 들켰어. 그럼 털어놓든지. 그게 너무 서운한 거야. 하나뿐인 딸자식한테 친구처럼 터놓을 수도 있었잖아. 부모 노릇도 하고 싶고 자기 사랑도 지키고 싶었던 거지. - 263쪽  

할머니가 마음에 둔 사람은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출산을 하고 몸을 풀러온 딸을 위한 미역국이 아닌 그 사람을 위한 메주가 동동 띄워져 있었을 때 엄마가 느꼈을 노여움은 충분히 짐작 간다. 고백한 대로 감정을 들키면서 자꾸 아닌 척하는 게 서운했을 것 같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가 더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1순위, 엄마의 가장 큰 사랑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 말이다. 더구나 외동딸이었으니 그 사랑을 독점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부모 노릇도 하고 싶고 자기 사랑도 지키고 싶었을 거라는 추측도 틀리지 않겠지만, 자식에게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쉽게 꺼낼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할머니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했고,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할머니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도 모두 '나를 더 생각한' 사람들이다. 

언니 재영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딸이다.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것은 말없이 다 사주었지만 재영에게는 왜 그것이 필요한지부터 묻곤 했다. 재영은 아버지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아버지는 재영에게 상의하여 신중하게 골랐다. -248쪽 

재영은 자신이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심하게 행동했고 그것은 아빠를 서운하게 만들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유안은 집 안에서도 또 열패감을 느껴야 했다.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고 속으로 생각할 때는 늘 '재영'이라고 이름을 부른 것도 그런 감정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우연히 만난 아빠에게서 빨래 냄새를 맡고 그것으로 현재의 아빠가 자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확인을 하고 싶었던 재영은 아빠의 냄새가 안정된 새 가정의 냄새로 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진짜 이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밤, 유안은 오랫동안 방치해뒀던 자신의 블로그에 아빠에 관한 글을 쓴다. 

전체 공개, 스크랩 허용, 검색 허용 버튼에 체크하고 글쓰기 저장 버튼을 클릭한다. 아버지를 비공개 카테고리에 넣지 않은 건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바깥, 전체 공개 카테고리에 있는 게 더 나았다. 아버지는 내 블로그에서 깨어나 모락모락 숨을 토해 낸다. new 표시가 달린 아버지 글은 24시간 후에 new를 떼어 버리고 고요히 침잠할 것이다. 내가 컴퓨터를 부팅할 때마다 야금야금 전기를 먹으며 살아나는 내 아버지. 아. 따뜻한 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있었던 기억만으로도 나는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참 이상하다. 몸이 사라진 곳에서 마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252쪽

나는 이 글을 보면서도 유안이 아버지를 위해서 썼다고 밝혔지만,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로가 필요한 것은 그녀였다. 그리고 이렇게 씀으로써 정리가 되어 그녀가 평안을 찾은 것은 퍽 다행이라고 여긴다. 

등장하는 캐릭터 중 가장 화를 돋우는 인물은 승원이었다. 그가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것은 속상한 일이지만, 구하려고 애도 쓰지 않은 것은 더 속상한 일이었다. 공장을 운영하시는 아버지가 계시지만 그 곁을 도우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속상하다. 제3자가 곁에서 본다면 유안이 왜 그 관계를 지속하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실도 답이 없지만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오늘을 견디며 살아온 연인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   

“어떻게 살래? 이 말이 제일 싫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어떻게 살 거냐는 걱정을 끼치고 있다는 거잖아.” -292쪽 

연극계를 떠나 카페를 차린 한 사장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뭐냐는 질문에 답한 것이다. 나는 저 답이 가슴에 콕 박혔다. 오랜만에 전화 통화하는 사람이 묻는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과 맥락이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승원의 열패감도 이해가 가고, 그가 유안에게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는 마음가짐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방법이 나빴다. 비겁했고 저열했다. 그래서 그 동안의 찌질함을 보태어 더 화가 났다. 유안이 다시 그에게로 가서 주저앉고 같은 패턴을 반복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유안은 승원보다는 건강했고 용감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시를 저평가한 친구의 말을 듣게 된 후 다시 시를 쓸 수 없었던 그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극작가로 일어선 것이 고마웠다. 그것도 배고플 게 뻔한 연극 세계에서 살아남았으니 더 대단하다.  

솔직히 작품은 중간까지는 몰입이 쉽지 않았다. 시각적으로 가장 임팩트가 컸을 레스토랑의 정전 씬은 극적인 상황에 비해 너무 싱겁게 지나갔고, 고교 때 단짝 친구 정민의 자살 소식을 전하는 장면도 무덤덤하기만 했다. 건조한 것도 아니고 무심한 것도 아닌, 뭔가 밍숭맹숭하고 양념이 덜 된 느낌으로 진행되던 소설은 중반을 넘어서면서 긴장감과 궁금증을 같이 자아냈다. 승원이 유안을 밀어내고 난 다음부터일 것이다.  

택시는 쉬이 오지 않았다. 승원의 연락이 오지 않는 휴대전화 액정 화면은 막막하고 맹랑했다. 이토록 작은 세상이 나의 전부를 거머쥐고 있었다. – 224쪽  

휴대전화의 작은 액정 화면에 매달려 그것이 그녀의 온 세상을 지배했던 것처럼, 그 순간에는 독자도 작은 책의 두쪽 화면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서 몰입했다. 클라이막스가 늦게 찾아오긴 했지만, 꾸준히 언덕을 향해 올라갔고, 무리수를 두지 않고 차분히 내려오며 작품은 완성되었다.  

어제까지 내 삶의 중심이 나였던 인물이, 오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내일부터는 나를 향한 사랑을 타자로 옮기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게 바람직하다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이제는 나를 사랑하는, 나만 생각하던 나를 조금은 벗어나 그 생각에, 그 마음에, 그 행동반경에 또 다른 사람이 깃들 여지가 생겼다면 그 사람의 삶은 보다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원하던 사랑 곁에 머물 용기를 얻고, 새롭게 다가서는 사랑을 향해서도 좀 더 기꺼이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나만 생각하던 내가, 이제는 나도 생각하는 나로 바뀔 때가 되었다. 그런 나를 응원하는 나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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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품절


"오해하는 남자는 이해시키면 되고 이해 못 하는 남자는 기다려 주면 되죠."
-88쪽

"실장님, 다시 안 올 겁니다. 이렇게 대접도 못 받는 곳에 있을 바에는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게 낫다고 봐요. 청춘을 바쳤다고 해서 평생을 저당 잡힐 수는 없어요."
-97쪽

연극을 한다고 말했을 때 소중한 생업에 임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어떤 흥에 겨운 놀음으로 치부하거나 다른 세상 이야기로 취급했다. 그들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에서 나는 자부심을 느꼈다. 나에게 연극은 생업이면서 미래다. 그들은 연극이 돈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의 선택을 진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178쪽

왜 항상 우리는 상대보다 더 많은 걸 주고 더 많은 걸 실망하게 되는 것일까. 나의 오랜 친구는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너이기 때문에 네가 실망스러운 거라고.
-200쪽

택시는 쉬이 오지 않았다. 승원의 연락이 오지 않는 휴대전화 액정 화면은 막막하고 맹랑했다. 이토록 작은 세상이 나의 전부를 거머쥐고 있었다.
-224쪽

승원과 연애를 시작했을 무렵, 그는 카페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열심히 들려주었다. 통과의례 같은 서로의 사용설명서들, 부풀려진 추억들이었다.
-231쪽

"사실 아버지를 포옹한 건 다른 이유도 있었어. 아버지 냄새를 맡고 싶었거든. 냄새로 아버지의 현재를 파악하고 싶었어. 아무리 오래 입은 옷이어도 식구들의 옷과 함께 세탁한 옷에서는 티가 나거든. 속일 수 없는 집의 향기가 있어. 서로 으르렁거리는 가족이라도 같은 세탁기에 옷을 넣어 빤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그게 바로 가족이고 벗어날 수 없다는 거야. 이미 다른 세탁기를 사용한다는 건 가족에서 이탈한 거나 마찬가지지. 난 그래."
-247쪽

어떤 일에서건 엄마는 완벽한 화장을 한 후 외출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엄마는 완벽한 화장으로 주목을 끌었다. 수수한 차림으로 나타난 다른 아이들의 엄마와는 달랐다. 엄마는 달리기를 할 때도, 이인삼각 경기를 할 때도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거울을 볼 시간은 있어도 내 입에 김밥을 넣어줄 시간은 없던 엄마였다. 나는 엄마를 잃은 딸을 바라보았다. 초췌한 얼굴로 머리를 대충 묶고 검은 카디건과 검은 바지를 갖춰 입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253쪽

내가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야. 엄마는 그런 식으로 자꾸 나한테 들켰어. 그럼 털어놓든지. 그게 너무 서운한 거야. 하나뿐인 딸자식한테 친구처럼 터놓을 수도 있었잖아. 부모 노릇도 하고 싶고 자기 사랑도 지키고 싶었던 거지.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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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5-2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을 바쳤다고 해서 평생을 저당 잡힐 수는 없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마노아님.

마노아 2011-05-28 00:11   좋아요 0 | URL
그걸 알아차릴 수 있고, 또 자각하는 순간 움직일 수 있다면, 그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 거예요. 실장님은 진정한 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