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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칼의 노래는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나서 주변에 엄청 선전했었다. 그때가 2002년 가을이었는데, 정말 괜찮은 책 있다고 말을 하지 못해서 입이 근질근질할 지경이었다.
당시엔 검객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 쓰는 일에 열중하던 때여서 이 책이 누구에 대해서 쓴 소설인 지는 생각지 않고 제목이 '칼'이 나오길래 무작정 도서관에서 빌려갔었다. 그리고는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특이하게도 1인칭 시점이고, 그 문장력의 흡인력이 거의 마력 수준임을 알고는 내 책 주문에, 지인들 선물에, 아주 책바람이 일어버렸었다.
그래서 이 책을 주변에 빌려주고 나면, 그 사람도 이 책의 매력 앞에 무릎을 꿇고 결국엔 모두 책을 사서 보는 신기한 일이 생겼는데, 아주 간혹, 난 별로던데? 하는 사람이 나오면 야만인! 취급을 할 정도로 이 책을 좋아했었다.
어쩌면 김탁환씨에 대한 나의 박한 점수는 똑같이 이순신을 노래했으나, 한 사람에 대한 편애로 빚어진 결과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이 책은 드라마로 다시 제작되기에 이르렀고, 나의 꿈은 계속 부풀었다. 안타깝게도, 집에서는 정규방송 시간에 드라마를 보기가 어려웠다. (지금까지도..)
그래서 나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1편부터 보기 시작했고, 아주아주 뒤늦게 다시금 이순신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작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대단히 놀랐는데, 나중에는 수긍이 매우 잘 갔다. 난 특히 예고편을 아주 좋아라 했는데, 예고편에서 카피라이트처럼 나오는 문장들이 김훈의 어법을 밟으면서도 여성 특유의 서사성과 시적인 느낌을 그대로 간수했기 때문이다. 몇 개를 옮겨보면 이렇다.
명량해전(1597년 9월)
불패의 신화가 부활한다.
물살 우는 울돌목으로
오라, 나의 적이여
내 몸에 포개진 칼날
다시 빛나는 승리를
(불멸의 이순신 94회 엔딩, 95회 예고)
다시 돌아온 바다
물의 칼들이 일어섰다
일휘소탕(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혈염산하(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불멸 95회 엔딩)
세상의 끝에 선 투쟁
스스로 피 흘려 부르는 희망
불멸의 승리를 향해
오라, 아득한 적이여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102회 엔딩. 103회 예고)
7년 전쟁의 끝
노량해전
이겨서 지켜내리라
내 칼의 마지막 울음
칼날 사이로 열리는 세상
불멸의 역사가 온다(104회 예고)
현재 주몽이 대단히 인기를 끌고 있지만 불멸의 이순신 볼 때만큼 재밌지는 않다. 더 길게 두고 봐야 알 터지만.
하여간, 불멸의 이순신을 오랜 시간 걸려서 104회에 스페셜까지 모두 보고는, 감격에 겨워 다시 칼의 노래를 펴 들었다.
일단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머리 속에 이미지와 함께 녹아 있고, 전쟁의 상황까지 모두 그려져 있으니 책을 더 샅샅이 살펴보며 그 재미를 더 만끽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토록 좋아했고 감탄했고 감동 받았었는데, 드라마라는 대하사극을 머리 속에 집어 넣은 뒤에 보는 이 책 칼의 노래는, 처음 읽을 때만큼의 재미가 없었다. 그만큼의 탄력을 받지 못해 읽는 속도도 빠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너무 느리고 지루하게 여겨졌다.
아뿔싸! 이게 영상의 힘이고 또한 함정이던가. 이 책이 원작이고, 이 책에 흠뻑 빠졌기에 드라마도 그토록 재밌었던 것인데, 오히려 이제는 드마라의 영향으로 영상과 음향이 없는 책 칼의 노래는 처음만큼 매력적으로 와닿지 않는 것이다.
암담했다. 왠지 내가 뭔가 실수한 것 같았다. 드라마를 본 직후 이 책을 다시 펴드는 것이 아닌데, 오히려 처음 만났던 그 설레임의 감격마저 퇴색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또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런 것들은 다 기우다. 김훈은 김훈이고, 드라마는 드라마고, 이순신은 이순신이다.
강렬한 영상을 본 직후여서 그렇지,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접하게 되면 그 감동은 또 다르게 다가올 텐데... 그런 걱정은 불필요한 시간 낭비였다.
그래서, 이제 칼의 노래는 김훈 작품의 '바이블' 격이 되어서, 그의 다른 모든 작품을 항상 칼의 노래에 비추어서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에 읽은 강산무진이 그랬듯이...
작가 김훈에게 칼의 노래의 성공이 꼭 장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처럼, 독자에게도 그런 것 같다. 그건 배우 김명민이 불량가족에서 깡패로 나왔을 때 참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그의 고군분투에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던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시간이... 필요하다. 감동을 살리고, 오히려 더 숙성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 일 년 뒤에 다시 읽으면 또 달라질 테지. 그때는 어떻게 다를 지 수수께끼로 남겨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