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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살해사건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6월
평점 :
이 책은 '사화로 보는 조선'의 개정판이다. 재밌는 것은, 할인 쿠폰과 마일리지를 모두 더하면 새 책이 구판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표지가 많이 이뻐졌다. 구판은 솔직히 표지가 정말 아니었다.(ㅡㅡ;;)
이덕일 선생님 책은 옛날 책들이 복간되거나 개정되어 나오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만큼 역사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더 기다리면 '운부'도 개정판으로 나오지 않을까? 그건 역사서라기보다 소설쪽에 더 가깝기 때문에 힘들지두...;;;
이 책은 여말선초부터 시작하는데, 고려 말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고려가 망할 수밖에 없는, 새 시대를 열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알게 하고, 그 무렵에 활약한 여러 인물들의 군상을 깊게 파고든다.
우리에게는 '충신'의 대명사로 알려진 정몽주도 사실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 꽤 뜻밖이었다. 차라리 태종처럼 나 왕 되고 싶다!라고 대놓고 강짜 부린 것보다 어쩐지 좀 비겁하게 느껴진다. 태조와 태종에게는 절개를 지킨 인물처럼은 보일 수 있지만, 그가 절개를 지킨 대상이 과연 고려일까... 생각해볼 만하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왕조의 생명이 긴 편이어서 역성혁명이 그닥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개혁을 뽑으라면 나는 고려와 조선의 교체를 들고 싶다. 토지개혁을 했다고는 하지만 온전히 민중을 위한 것은 분명 아니었으나, 조선은 많은 부분 고려와 달랐다. 조선의 체제는 그래도 합리적으로 보였고, 합리적으로 가기 위해 많이 애썼다. 많은 중세적인 부분들이 근대적인 것으로 바뀐 시점이다. 난 그 과정에서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을 태종이라고 본다.
책에서 태종의 최대 치적을 세종이라고 제목까지 넣은 것처럼, 그는 세종이 일할 수 있는, 뜻을 다 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정적을 제거하고, 측근을 베어버리면서 모든 욕은 본인이 다 먹었고, 심지어 외척까지 발본할 수 없도록 싹을 제거했다.(많이 잔인했던 것은 사실이다.) 세종은 양위를 받고도 장인이 제거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같은 작업들이 그의 치세를 태평성대로 이어주었다. 지금도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임금 이름을 대보라면 하면 열에 아홉은 세종대왕이 제일 먼저 나온다. (부동의 만원 지폐 고수.ㅡ.ㅡ;;;) 뿐아니라 대마도를 정벌하는 과정도 세종의 치세였지만 움직인 것은 태종이었다. 드라마 용의 눈물의 영향도 솔직히 없다고는 못하겠다. 그렇지만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을 읽어보아도 역시 태종의 치적은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괜찮은 아버지를 두었던 세종은 괜찮은 아들까지 두진 못했다. 문종은 병약했고, 수양대군은 야심이 너무 컸다. 아버지를 닮았던 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에피소드는 슬며시 미소 짓기에 좋았다. (그런 군주가 있다면 어느 신하가 충성을 다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 수만 있었다면 역사는 참 많이 달라졌을 텐데, 의미 없는 '만약에'를 중얼거려본다. )단종이 즉위했을 때는 뒤를 봐줄 어머니도 할머니도, 누구도 있지 않았다. 수많은 피 위에 힘겹게 올라선 조선은 위기를 맞는다.
수양대군... 그의 치세를 아주 나빴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그러나 이건 함정이다. 전두환 치세 때 경제가 안정되긴 했지만, 그의 정권을 결코 칭찬할 수 없는 것처럼. 뿌리의 중요성, 시작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부도덕한 정권의 끝이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세조는 태종처럼 되고 싶었지만, 태종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의 가장 큰 실수는 조카를 살해한 것 말고도 더 있으니, 바로 공신들을 조정에 꽉 채워 놓은 것이다. 그것이 조선을 문약하게 만들고, 선비 정신을 해치며 조선을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시작점이 되었던 것이다.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세조를 그래도 좀 멋지게 표현했던 것 같다.(앞부분을 보지 못해서 사실 잘 모름^^;;; 아무튼 채시라가 세조 이야기를 많이 하였음..) 뭐, 자식 복 없기는 세조도 마찬가지지만.(ㅡㅡ;;;)
단종복위운동은 실패했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중요한 과업을 두고서 날짜를 변경한다던지 머뭇거리면 꼭 실패하더라는..ㅡ.ㅡ;;;; 그 과정에서 희생된 김종서도 너무 안타까운 인물이었고, 단종은 더 없이 가여웠다.(이상하게 영창대군은 불쌍하긴 해도 애처롭진 않았는데 단종은 참 애처롭다.)
또 다시 수많은 선비들의 피가 뿌려졌다. 누군가는 세조에게 붙어 일신의 영달을 꾀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고 죽음을 택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에 역사에 대한 위안이 생긴다. 선비들을 죽일 수는 있었지만 그 선비들의 정신까지는 죽일 수 없었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긴다. 이덕일 선생님 말씀처럼 대쪽같은 선비가 없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라는 말에 은근히 기가 산다.
이 책은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님에도 무겁지 않고 더군다나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글 곳곳에서 느껴지는 문학적 감수성은 내가 특히 이덕일씨 책을 좋아하는 부분이다. 딱딱하지 않고, 단어나 대구의 등장 등은 거의 시인의 감수성에 비할 수 있겠다.
다음 권은 7월 20일에 나온다. 얼마 남지 않았다. 역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