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런 사람이 가까이에 있습니까?

1. 음반 매장에 비정상적으로 자주 드나든다.

2. 이름으로 동네나 시의 이름을 쓰고 있다.

3. 대화의 포커스가 미묘하게 빗나간다.

4. 맨손으로 사람과 접촉하려 하지 않는다.

5. 항상 비를 몰고 다닌다.

그렇다면 그는 사신(死神)일지도 모릅니다.

첫장에 나오는 글이다.  도입부부터 관심을 확 끌고 있다.  작가는 생각보다 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감각도 젊은 것인가?

사신은 일주일 동안 맡은 사람을 조사한다. 그리고 별다른 일 없으면 可라고 보고를 올리고, 보고가 올라가면 그 사람은 다음 날, 즉 여드레 째에 죽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 사신 치바는 인간의 죽음에 관심 없다.  그래서 그가 죽음을 보류한 경우는 딱 한 번! 그가 죽도록 좋아하는 음악에 관계된 어느 재능있는 여자의 죽음만 미뤘을 뿐이다.

그는 인간 자체에 관심이 없고, 그들의 생활과 그들의 행동, 그들의 생각들을 황당해 하거나 한심하다 여기기도 하지만, 실상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호기심으로 뭉쳐 있고, 때문에 어색한 대화가 이어지고 피식 웃게 되는 행동양상이 나타난다.

더 미묘한 것은, 그가 일주일 동안 조사 대상을 만나면서 그 사람에게 생을 정리할 수 있는, 혹은 미련을 덜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 혹은 죽음의 때가 이르러서인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한 번씩 돌아보고, 후회될 여지를 제거해 나가고, 조금씩 죽음을 향한 준비를 마쳐간다.

치바는 어쩌면 꽤 유능한 사신일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동안에 인생을 정리할 기회를 주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의 묘한 재미 또 하나는, 시간의 점프다.  사신의 시간은 영속이다. 때문에 그가 오래 전에 만났던 사람을 먼 훗날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뒷 얘기에 나오는 에피소드에 앞 이야기가 겹쳐지면 그가 사신이라는 것을, 그에게 인간의 시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비식 웃게 된다.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그의 태도도 너무 좋았다. 요새 좋아진 음악이 너무 많아서일까.  사신 치바에게 추천하고픈 음악도 엄청 많아졌다.  흠, 그렇다고 그가 내 주위를 배회한다면 좀 더 오래 있다가 오라고 말하고 싶다.

책에서 아쉬운 점 하나는, 삽화가 종종 끼어 있는데, 사신 치바의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는 것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이미지가 들어가 있어서 상상력을 조금 방해한다.  그것 말고는 표지의 색감과 깃털, 글씨까지 모두 맘에 든다.

사신 치바가 일을 할 때는 언제나 비가 내렸는데, 작품 말미에서 마지막으로 태양을 볼 수 있었던 점도 맘에 드는 장면이었다.  그의 수고에 대한 대가, 혹은 선물 같은 기분. (사실 난 할머니가 또 다른 사신이어서 치바에게도 마지막이 있나? 뭐 이런 반전을 기대하긴 했다...;;;;;)

맘에 드는 리뷰를 읽고 충동적으로 구매했지만, 그 충동구매의 결과가 나쁘지 않은, 아니 상당히 좋은 소설이었다.  제목의 시원한 느낌과 함께...

앞에서 제시한 특징을 가진 사신의 방문을 받는다면 특히 조심하기 바란다.  피하긴 어려우니, 남은 생을 잘 정리하는 게 필요하니까. 혹시 아는가? 음악을 좋아하는 그를 잘 구슬려서 몇 십년 간 생을 연장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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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20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었지요!
마노아님.. 책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마노아 2006-07-2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고른 건 전적으로 비숍님 덕분이에요^^ 아주 재밌었답니다^0^
 

♬ 저승새로 살아가리 (새타니, 해명)
song by 김은희, 김법래


- 내 님... 내 님....

명림 동굴에 사는 새소리로 말하는 무녀야, 너의 눈엔 내가 무엇으로 보이느냐.

- 커다란 새, 저승 새, 저승의 날개. 이제 죽으니, 죽어 돌아오는자. 죽음을 지고 이승에 오르는 커다란 날개.

내 이름은 해명이다. 고구려의 태자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졸본의 왕이라 한다.

- 그 이름에 더하여 저승의 왕. 이젠 그 이름도 얻으시겠죠.

들어라. 저승 길을 볼 줄 아는 무녀야.
내일이면 이미 늦어 없는 인연될테니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을 너의 따뜻한 품에서 보내고 싶구나.

그대 이승 떠나는 허망한 걸음
저승새의 날개가 펼쳐지네
우리 사랑 이 밤 지나면
꿈길 같은 죽음 뿐이네

이젠 가야해 허무한 삶이여
저승길의 꽃들은 피어나네
이 생의 나의 마지막 밤을
네게 안겨 보낸다

저승새의 신부로 살아가리
저승새의 눈물을 닦아주리
우리 사랑의 꿈길을 잊지 못하리
저승에서 영원히 간직할테니

내 사랑 손에 쥘 수도, 놀 수도 없어라
맘 깊이 피어도, 시들어도 슬퍼
나는 눈 감고 있으려오, 그대 눈 앞에
세상이 눈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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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7-19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redshadow.pe.kr/tt/index.php?pl=511&PHPSESSID=c2a2b004e1894f3e458dbdea88b715fe에서 퍼왔어요.
원작 만화를 읽지 않았다면 저 노래가 얼마만큼 가슴을 에이는지, 저 대사가 얼마나 심장을 치는 지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사실 공연이나 영화 등을 보고 난 후의 감상문은 개인홈에만 올리는데 원작을 향한 한없는 애정과 [바람의 나라-무휼]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싶은 열망이 결국 여기에까지 글을 올리게 만드는군요. ^^

 다소 긴 글이라 읽는 분들을 오히려 지치게 만들지도 모르지만,이렇게 홀릭한 관객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점을 잡아내려면 물론 잡아낼 수도 있지만 굳이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저 지금 이 순간만큼은 2시간 여 동안 제 몸을 휘감았던 '바람'에 대한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외칩니다.

공연실황DVD+OST+지방순회공연!!!!! 

자, 그럼 길고 지루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문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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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무휼]-원작을 존중함으로써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간 새로운 바람

원작·1차 각색: 김진
연출·2차 각생: 이지나
작·편곡: 이시우
작사: 정 영
음악감독: 구소영
안무: 안애순
무술연기 감독: 와이킷 탕
의상디자인: 홍미화
타악구성: 서한우
주연: 무휼-고영빈(15일 19:30)/김산호(16일 15:00)
     해명-김법래(15일 19:30/16일 15:00)
     혜압-고미경
     호동-조정석
     이지-도정주
     연-유나영
     괴유-김영철
     세류-신영숙
     가희-이채경
     마로-김백현(15일 19:30)/이종한(16일 15:00)
     배극-임춘길(15일 19:30)/배성일(16일 15:00)
     병아리-심정완
     새타니(젊은 시절의 혜압)-김은혜
     대소-박원묵
     연비-박석용


2006. 7. 15. 19:30 2층 C열 40번/2006. 7. 16. 15:00 1층 B열 92번


미리 말해두지만, 2006년 7월 새롭게 단장하여 무대에 올려진 [바람의 나라-무휼]은 지금까지 접해온 뮤지컬과는 사뭇 다르다. 원작 일러스트에 배우 얼굴을 합성한 공연 포스터를 보고 이미 짐작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철저히 원작을 존중한다. 원작의 팬이자 15, 16일 공연을 거의 홀린 상태에서 관람한 본인이 한 마디 더 덧붙인다면, [바람의 나라-무휼]은 원작 『바람의 나라』에 바치는 헌사이자 오마주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무대의 세트는 최대한 간결하게 유지한 채 부족한 부분은 무대 뒤의 스크린에 비춰지는 원작의 일러스트를 최대한 활용하는데, 시작부분에서 낮게 깔리는 바람소리와 함께 갑옷을 입은 무휼의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떠오른다. 맙소사, 그때부터 감잡았다. 이 공연은 팬들의, 팬들에 의한, 팬들을 위한 공연이란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철저하게 원작의 이미지로 공연을(심지어는 포스터에서 프로그램까지도) 도배할 리가 있나. 여기서부터 공연은 이미 50점 먹고 들어갈 수도 있고, 반대로 50점을 잃고 들어갈 수도 있다. 원작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호오(好惡)가 완전히 갈릴 수 있다는 뜻이다. 대사의 대부분은 원작 만화에 나오는 대사 그대로이고, 그때그때마다 해당 장면의 일러스트가 스크린에 비춰진다. 혜압이 ‘내가 그의 피를 닦고 그의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내가 그를 이승으로 불러 올리는 굿을 했다.’라는 대사를 치는 부분에서 팬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앗, 저건 3권 105쪽의 혜압!(시공사판 기준)’으로 바로 싱크로해버리는 거다. 몇 십번, 몇 백번을 곱씹어 읽으며 마음에 드는 대사를 수첩에 옮겨 적고 머릿속으로 그리며 꿈에라도 나와 주기를 꿈꿔온 시간이 10년이 넘거늘(참고로 『바람의 나라』는 1992년부터 연재되었다), 바로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배우가 감정을 실어 말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전투를 벌인다. 이러니 원작의 팬들이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원작을 접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있어 이 작품은 굉장히 난해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주요 등장인물만 손가락으로 꼽아봐도 다섯손가락이 넘는데, 그 중 어느 하나를 접어버리면 작품의 맥이 끊겨버린다. 결국 원작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이들은 공연을 보며 모든 관계를 짐작해야 하는데, 이게 결코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2006년의 [바람의 나라-무휼]은 매 장면이 사슬처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장면의 이미지 자체에 정성을 기울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무대 우측 하단에서 무휼과 이지의 첫날밤이 진행되는 동안 좌측 중단에서는 연이 호동을 구하기 위해 절규하고, 좌측 상단에서는 해명이 나타나 연에게 칼을 건넨다. 한 장면 안에서 현재와 과거,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며 인물간의 갈등 역시 덩굴처럼 얽혀 들어간다. 흔히들 예상하는 일반적인 극의 흐름으로 작품을 이해하려 한다면 십중팔구 1막이 끝나자마자 GG를 외칠지도 모른다. 뮤지컬이면서도 노래에 기대지 않고 대사와 안무, 그 모두를 감싸안는 음악이 빚어내는 이미지로 승부를 내려는 작품이 바로 [바람의 나라-무휼]이다. 그 때문인지 공연이 끝나고 앵콜을 외치려고 해도 그에 화답할 만한 적당한 넘버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그나마 적당한 곡이 ‘바람이 온다’나 ‘저 부도로’ 정도?). 이 부분만큼은 조금 보완이 있어야 할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의 공연되었던 [바람의 나라]에 비해 이번 공연은 굉장히 짜임새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2001년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를 다룬) [바람의 나라]는 한 곡 한 곡을 떼어놓고 들으면 상당히 좋았지만, 막상 공연장에서는 일관된 흐름을 타지 못하고 끊기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한번에 듣고 귀에 꽂히는 곡보다 두고두고 들어야 인상에 남는 곡들이 많았던(=어려운 곡이 많았던) 공연이었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는 일단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편하게 와닿는다. 극의 이미지는 여러 챕터로 나뉘어지는데도 음악만큼은 전혀 어색함 없이 자연스레 이어지고 장면장면에 녹아든다(공연을 보는 중에도 음악이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사운드트랙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작·편곡을 하신 분이 드라마 [대장금]의 음악을 담당하신 분이었다). 원작을 모르는 관객이라면 애써 작품의 흐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차라리 음악에 귀를 맡기고 무대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배우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소득을 얻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공연의 진면목을 느끼고 싶다면 적어도 공연 시작 전 프로그램을 미리 구입해서 인물관계만이라도 숙지해두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그러나 재차 언급하자면 이 작품은 (원작의) 팬들에 의한, 그리고 (원작의) 팬들을 위한 작품이다. 공연을 보러가는 사람들도 팬이고, 공연을 만든 사람들도 팬이다. 팬이 아니고서야 원작의 이미지를 이렇게까지 뽑아내어 무대 위에서 형상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비록 스태프 전원까지는 아니겠지만― 배우들 역시 원작을 적어도 세네 번은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시놉시스나 대본만으로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이해하고 소화해내기란 불가능했을 테니까.

킹메이커 해명태자와 무휼
아싸 저 팔근육, 골반께에 걸쳐진 랩스커트, 쫙 뻗어주신 다리(참아라 좀;)


음악 외에 이번 공연에서 중요한 부분을 꼽아보자면 바로 안무이다. 2001년도의 공연에서 군무 장면이 다소 혼란스럽고 복잡하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의 군무는 훨씬 간결하면서도 움직임이 크고 박력이 넘친다. 특히 2막의 전쟁 장면은 결코 많은 인원을 동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대 전체를 꽉 채울 정도로 더없이 충만하다. 타악기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며 전투태세를 갖추고 귀면 형태의 거대한 방패가 서로 모였다 흩어지는 부분은 마치 난타와도 같은 퍼포먼스를 연상시킨다. 2막 초반의 고구려와 부여의 전쟁 장면에서 급격히 몰아치는 음악에 맞춰, 노래나 대사 없이 12분이라는 시간동안 벌어지는 배우들의 춤과 무술연기는 영화의 그것 못지않게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있고 전투의 중심에서 무대를 휘어잡는 괴유의 안무는 더없이 화려하고 날이 서 있다. 배우들에게 상당히 무리가 가는 장면이었을 텐데도 다들 무난하게 소화해낸다(만쉐이!!). 다만 발을 구르는 장면 등에서 한번에 ‘쾅’하고 울리는 게 아니라 살짝 엇박자로 비껴가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쉽다. 이는 공연을 하면서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군무뿐만이 아니다. 시작 부분에서 무휼의 움직임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미 스크린에 비춰지는 무휼의 일러스트로 입은 충격에 더해서 크리티컬 히트를 먹여버린다. 이 작품의 색다른 점이라면 분명 주인공은 대무신왕 무휼임에도 불구하고 극의 흐름을 관장하는 역할은 해명태자가 맡고 있고(나는 이 공연의 해명태자를 명실공히 ‘킹 메이커’로 불러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일종의 나레이터 역할은 혜압이 맡고 있다. 무휼의 대사나 노래는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 극히 적으며 때로는 무휼의 대사까지 혜압이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바람의 나라-무휼]의 중심은 분명 무휼이다. 명림의 귀신들이, 마로가, 해명태자가, 혜압이, 세류가, 괴유가, 호동이, 연이, 이지가, 대소와 동명왕의 구신들이 제 아무리 그를 비난하고 애원하고 사랑하고 책임을 지우고 꿈을 걸고 목숨을 걸어도 왕인 그는 늘 중심에서 흔들림이 없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런 그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 바로 춤이다. 어린 호동은 ‘울어서 내보내도 가슴속에 눈물이 차오른다.’며 슬퍼하고 괴로워할 때 무휼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기보다 자신의 아픔과 그를 덮고도 남을 굳은 의지를 유려하면서도 단호한 안무로 형상화한다(2막에 나오는 이 장면은 호동과 무휼의 차이를 한눈에 부각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백호의 안무 역시 춤이라기보다 액션 연기에 가까울 정도로 강렬한데 그저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음악에 몸을 싣고서 칼을 휘두르며 춤을 춘다(맙소사, 저 좀 살려주셈. OTL). 설문지에도, 그리고 프로그램을 팔고 있던 극단 관계자께도 애원했지만, 이 작품의 공연실황 DVD를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단 일주일 만에 막을 내리기에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이 작품의 안무는 무척 공을 들였고, 그 아름다움 또한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라면 무휼과 이지의 첫날밤이다. 정략결혼으로 왕비가 된 이지는 무휼을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고, 직접 몸을 부딪치면서까지 그의 사랑을 얻으려 안간힘을 쓴다(1층 객석에서 자세히 보면 무휼 앞에서 휘장을 두르고 있는 이지의 팔이 계속 떨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작에서도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긴장감 넘치던 장면이었지만 무대 위에서 이렇게까지 관능적으로 묘사될 줄은 몰랐다; 15일 공연을 본 관객 중 한분은 ‘마치 탱고의 한 장면 같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동작 하나하나는 절제되어 있는데도 성적인 긴장감이 넘쳐서 보는 사람이 절로 얼굴을 붉히게 될 정도다(오해 마시라, 좋아서 그런 거다;). 마치 침상의 휘장(揮帳)을 연상시키는 하늘하늘한 긴 천으로 무휼의 몸을 감싸고 풀어내며 매달리는 모습은 무휼을 향한 이지의 갈구를 표현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무휼(김산호)+연(유나영)

 


15일 19:30, 고영빈 씨의 무휼이 부도를 향한 의지로 모든 아픔을 억누른 채 부도를 향해 내달리는 강인한 무휼이었다면, 16일 15:00 김산호 씨의 무휼이 주는 느낌은 한(恨)이 섞인 애잔함이다. 일단 두 배우는 같은 장면에서 대사를 치는 톤이 완전히 다르다. 공연을 보고 난 후 고영빈 씨의 무휼이 주는 느낌이 훨씬 강렬했던 것만은 사실인데, 신기하게도 자고 일어나니 이젠 김산호 씨의 무휼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돈다. 사실 원작의 무휼은 강하디 강한 왕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그 강함만큼 한과 슬픔을 품은 왕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태자의 자리는 그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일곱 살 어린 나이에 맞지도 않은 투구를 눌러 쓴 채 학반령에서 적장의 목을 베며 그 피에 온몸을 적셔야만 했던 사내아이, 그가 바로 무휼이다. 명림의 군사들이 그의 앞에 무릎꿇고 일어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전장에 죽어 널브러져 있던 군사들이 천천히 일어나 무휼의 뒤를 따르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해명과 괴유, 그리고 세류가 끊임없이 되뇌던 말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그대의 머리 위에 얹힐 것이다.’―무휼은 이제 그 혼자만의 목숨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를 이어 미래까지 모든 것을 건 모두를 위해 살아야만 한다. 그것이 왕의 자리인 것이다. 그 단호한 목소리의 울림, 칼같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절도있는 움직임, 왕으로서의 굳은 의지를 담아내는 힘찬 노래(마마님, 저도 솥단지 이고 전장 따라가게 해주세요 제발. ㅠ_ㅜ). 고영빈 씨의 무휼은 왕으로서의 무휼에 더없이 어울렸다.

그러나 김산호 씨의 무휼은 왕으로서의 무휼보다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로서의 무휼에 더 초점을 맞춘 연기를 보여준다. 단 한명 사랑했던 여인이 자신의 목숨과 바꿔 남긴 소중하기 그지없는 아들과의 살(殺). 무휼 자신이 나아갈 부도와 호동이 지향하는 부도가 다름을 알고, 호동이 자신을 따르기 위해 왕될 자의 표식인 신수를 버린 순간 아들을 왕으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아버지. 해명은 괴유에게 무휼을 두고서 ‘그는 다른 왕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무휼 역시 자신은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읊조린다). 해명의 이 대사는 왕으로서의 무휼을 두고 한 말이지만 내게는 아버지로서의 무휼을 해석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으로도 읽혀진다. 어쩌면, 아버지 유리처럼 아들을 셋이나 죽이고 남은 생을 회한에 젖는 업을 되풀이하지 않고, 오히려 호동이 꿈꾸는 부도에의 열망을 더욱 자극하여 자신과 반목하게 되더라도(그로 인해 무휼 자신이 죽음을 맞게 되더라도) 자신을 뛰어넘는 왕이 되어주기를 바란 아버지로서의 소망. 김산호 씨의 무휼에서 받은 느낌이 이러했다면, 이건 나만의 지나친 아전인수격인 해석일까? 하지만 원작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도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의 묘미가 아닐는지.

무휼 못지않게 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역할이 바로 해명태자인데, 15, 16일 모두 김법래 씨의 해명태자를 관람했다. 명림의 새타니에게 말을 건넬 때는 그리도 사근사근하게 말씀하셔서 마지막 남은 한 조각 소녀심을 채가시더니 나중엔 진정 ‘해명태자’의 목소리로 말하고 노래하셔서 여심을 온통 뒤흔들고 말더라(에잉 나쁜 사람). 특히 무휼이 노래를 부르는 대신 안무로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데 비해 해명태자는 자신의 의지에 더하여 무휼의 의지까지 함께 실어 노래한다. 나중에는 분명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은 배우인데 어떻게 된 게 그 얼굴은 원작의 해명태자 얼굴이 오버랩되어 보이는 착시현상까지; OTL 해명태자와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인 혜압(고미경) 역시 원작의 팬으로서도, 뮤지컬의 관객으로서도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특히 혜압의 연기뿐만 아니라 극의 장면을 설명하는 나레이터 역할에 시공간을 넘나들며 함께 무대 위에 있는 다른 배우의 연기에 맞춰가는 장면도 많았는데도 전혀 튀지 않는다. 사실 혜압의 카리스마도 무시 못 할 정도인데 그 완급조절이 너무나 매끄러워서 배우의 연기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기도 했다.

무휼과 해명태자, 괴유 등의 남자 캐릭터들이 부각되다 보니 아무래도 세류와 연, 이지, 가희 등의 여자 캐릭터가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남자 캐릭터들의 너무나도 바람직한 의상에 비해(하체 선이 확 드러나는 과감한 슬릿, 골반께에 걸친 랩스커트, 헐벗은 상반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남자배우들의 탄탄한 몸매…오 하늘님, 제작진들은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자 캐릭터들의 의상이 다소 불만족스러운 것도 사실이다(특히 세류 마마님 팔에 둘러진 그 어설프게 나풀대는 하얀 천, 그거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 하지만 공연을 보며 새삼 놀랐던 것은 결코 적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이미지를 무척이나 잘 잡아냈다는 것인데 특히 이지가 그러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지의 권력욕이나 개인적인 야심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전무하기 때문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무휼에 대한 감정 뿐인데 이 감정이 바로 그 문제의 ‘첫날밤’에서 적나라하게 표현된다(다시 한번 연출가님과 안무가님께 감사의 삼천배를 마음속으로 올린다). 목소리도 굉장히 아름다워서 ‘모래꽃’을 부를 때의 이지는 정말이지 애절함 그 자체다. 그렇게 애절한 노래를 부르고 나서 ‘―이제! 나는 그가 밉다.’라고 대사 한번 강하게 찔러주시니 보는 사람은 그냥 흐물흐물 녹아버리고; 노래도 좋았지만 ‘이제!’를 외칠 때의 그 감정선이 훌륭했기에 매우 만족.

연의 경우 노래도 연기도 굉장히 강하게 나오는 터라 원작의 연을 기억하는 이들은 살짝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 게다가 해명태자마저 ‘그대는 고구려 왕될 자의 아내요 고구려의 어미’라며 칼까지 쥐어주니 용기백배, ‘내가 왕자의 어미요 고구려의 국모다!’ 딱 이 분위기랄까. 물론 그 장면이 연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부분인지라 상당히 부합하기는 한데 사실 그런 연이라면 무휼이 돌아오지 않아도 필요할 때마다 해명태자 불러 올려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연과 대립되는 입장에 있는 이지가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연은 똑같이 한 남자를 사랑하는 데 더해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의 면모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지와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연의 강인함을 강조하는 것도 나름대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싶다.

세류를 연기한 신영숙 씨의 경우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연기를 본 이후 이번 공연에서 세류 역을 맡았다는 얘기를 듣고서 무척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당찬 세류 공주에 잘 어울렸다. 다만 원작에서 세류가 차지하는 중요도에 비해 공연에서의 세류는 그 역할이 무휼의 부하이자 조력자로 많이 축소되었기에 그만큼 세류의 진면목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린 동생을 염려하고 그를 대신하여 싸울 것을 강조하는 누나 세류와, 전장에서 그의 충직한 부하로서 왕을 보필하는 장군이자 한 나라의 공주인 세류로 연기할 때의 대사 톤이 확실히 다르다. 세류의 노래가 더 있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긴 하지만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하자면 역시 개인적인 욕심이므로 살짝 접어둔다.

여럿 아낙네 벌써 잡아먹은 문제의 그 백호;;(저 근육, 아주 바람직하다. ㅠ_ㅜ)


무휼의 유려한 움직임과 강인함, 해명태자의 진중한 대사와 듣는 이를 사로잡는 노래에 이어 관객석에 앉아있는 여인들의 혼을 홀랑 빼놓은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백호, 괴유이다. 원작에서도 숱하게 많은 여성 독자들을 울고 웃게 한 인물이 무대 위에 턱하니 나타났으니 어떻게 관객들이 진정할 수 있단 말인가; 첫 등장에서부터 어깨에서 허리께로 이어지는 문양하며, 칼을 휘두를 때마다 꿈틀거리는 그 근육하며, 조명이 비춰질 때마다 근육의 굴곡에 따라 지는 그림자하며, 내 분명 장담하는데 이건 제작진이 대놓고 노린 거다! 안무나 무술 연기에서 가장 고난이도의 연기를 선보이는 것도 바로 괴유인데, 고구려와 부여의 군사들이 2막 군무에서 간결하지만 힘찬 동작으로 전투의 시작을 알리면 고구려의 상장군인 괴유가 검무를 추는 양 화려하고 날렵한 동작으로 군무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양손의 단도를 이용한 기교도 많아서 보는 이도 함께 연기하는 이도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장면들인데 무리없이 소화해낸다. [바람의 나라-무휼]의 이미지들을 완벽하게 구현화하는 데 있어서 괴유는 가히 일등공신감이다.

호동과 병아리는 공연 전부터 내심 걱정하던 부분이었는데 생각 외로 참 훌륭했다. 와이어를 이용한 병아리의 아크로바틱 연기는 무대 위에서 봉황인 병아리를 묘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두 캐릭터가 무휼을 두고 대립하는 부분은 랩으로 처리되는데, 이 또한 작품 내에서 어린 축에 속하는 두 캐릭터를 더욱 신선하게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호동과 병아리는 서로 반목하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데 호동은 자신의 신수를 내칠 수도, 신수와 함께 자신이 바라는 부도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는 병아리를 버리면서까지 아버지 무휼을 따르고자 하지만 기실 그의 꿈은 무휼의 그것과는 겹쳐지지 않는다. 1막 마지막에서 ‘칼을 갖다줘.’라고 호동이 말하며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쥐면 붉은 빛 조명이 그 손에 가득 비춰지는데 그 붉은 빛이 강렬해질수록 호동의 말끝은 흐려진다. 아버지 무휼이 어린 나이에 스승 연비를 비롯한 사랑하는 이들, 백성들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 역시 나어린 호동은 손에 쥐어진 피에 물든 칼을 보며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유약하다? 맞다. 2006년 공연의 호동은 여리고 착하고 순진한 아이다. 그런 호동이기에, 그의 죽음을 뒤로 하고 부도로 가야 한다고 발걸음을 옮기는 무휼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에 그 피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다. 이미 무휼은 너무나 많은 것을 지고 있고, 아들의 죽음을 이유로 부도로의 열망을 늦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아버지인 자신을 접어두면서까지 왕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후대에 대왕(大王)으로, 무왕(武王)으로, 신왕(神王으)로 불린 인물이 바로 무휼(大武神王, 4~44)인 것이다.

원작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이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바람의 나라』는 무척이나 방대한 작품이다. 분명 처음 시작은 색색의 실 몇 가닥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읽다보면 거대한 비단 위에서 세세한 문양을 짚어나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원작의 팬들도 어차피 그 유장한 서사를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풀어낼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한 몇십부작 정도 되는 대하드라마 정도라면 또 모를까. 그렇다 해도 제작진이 서사적 흐름으로 작품을 풀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원작의 이미지를 무대 위에서 형상화한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아름다운 몇몇 장면을 단순히 빌려오는 것만으로 작품이 성립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제작진이 선택한 것은 바로 원작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원작의 탄탄함은 새로운 장르를 창작하는데 가장 심한 압박감이다. 만화 ‘바람의 나라’ 마니아들은 원작이 심어준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고, 따라서 원작과 새로운 장르와의 비교 평가는 불가피하다. 제작진의 원작에 대한 존경심은 만화 캐릭터의 이미지와 흡사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 뮤지컬 1차 각색을 김진 원작자가 직접 진행하는 것으로 추진되었다.
-서울예술단 변화의 바람, <뮤지컬 바람의 나라> 프로그램 17쪽에서 발췌



바로 이거다. 이쯤 되면 이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 제작진들이 과연 얼마나 원작을 들이팠을까 궁금해질 정도다. 무휼을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들을 추려내고, 그 부분 중에서도 시청각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부분들을 다시 모아서 재구성했다. 대부분의 대사는 원작의 대사를 거의 그대로 따오고(『바람의 나라』의 문학성은 『불의 검』과 쌍벽을 이룬다), 노래로 장면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안무와 그를 뒷받침하는 음악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90% 성공했다. 나머지 10%는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들마저 사로잡을 수 있을 정도로 [바람의 나라-무휼]이 앞으로 갖추어갈 매력으로 메꿔야만 할 것이다. 이토록 다채로운 이미지들이 독립적으로,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분명 원작이 지닌 힘이다. 그러나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은 『바람의 나라』라는 거대한 서사에 짓눌리기보다 그를 최대한 존중하며 팬들이 꿈꾸고 바라는 이미지들을 무대 위에서 빚어냈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뮤지컬과는 사뭇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진다면 그 또한 분명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단순히 좋아하는 원작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는 감동에서 그치지 않고, 뮤지컬 관람객으로서 기존의 뮤지컬의 틀을 깨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보고 듣고 느낀 것으로도 이 작품은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불과 일주일 남짓의 기간으로 막을 내리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작품, [바람의 나라-무휼]. 때로는 산들바람처럼 잔잔하게, 때로는 모든 것을 휩쓸어가버리는 태풍처럼 강렬하게 우리를 감싸안는 바람처럼, 그렇게 그치지 않고 꾸준히 그 시도, 그 흐름을 이어가주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꼬리1> 이 아름다운 안무들이, 이미지들이 서서히 잊혀지게 놔둘 수는 없다! 서울예술단은 공연실황 DVD를 내든가, 빨리 지방순회공연일정을 발표해주세요! 아님 적어도 OST라도 내든가(흑흑).
꼬리2> 16일 낮의 김산호 씨는 ‘저 부도로’ 첫부분이 다소 불안했다. 시간이 지나면 좀더 안정될 수 있을런지. 그리고 역시 16일, 연의 노래도 박자가 갈수록 빨라지고; 15일은 괜찮았는데 말이지(훌쩍).

다른 분들의 감상:
팬심으로 만든 뮤지컬 바람의 나라(2006)-빨간그림자 님
원작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한 가이드:
뮤지컬 <바람의 나라> 장면 해석-빨간그림자 님

2006. 7. 17. by misha(별님사랑/12345)

 

http://misha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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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 싸이 홈페이지에서 퍼왔어요. http://town.cyworld.com/70045130/6100511193333


굵은 글씨체는 읽으면서 공감간 부분 제가 강조한 것^^

그런데 고영빈씨는 사진발이 안 받는군요.

아니면 노메이크업 상태였던가^^ㅎㅎㅎ

실제로 공연장에선 엄청 근사했는데 보도 사진에서 몇몇은

이상하게 나왔더라구요.(ㅡㅡ;;)

김산호씨는 안 봐서 모르겠는데, 81년생이라고...;;;;;

아들 호동 왕자 역을 맡은 배우가 80년생인데...(둘 다 어리다....;;;)

그나저나 진짜 DVD가 나와야 할 텐데... 과연....

하다 못해 OST라도 나와야 하는데...

물어보았을 땐 온라인 판매한다고 했지만, 음반시장이 워낙 악조건인지라 나올 지...

작년에 불의 검도 다급히 공연실황으로 대체했었지. 하지만 그땐 한달이상 공연을 했지만 이번엔 겨우 일주일 뿐인지라....  듣고 들어도 목마르다. 음...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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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재능 중에서 가장 갖고 싶고 또 부러운 것은 바로 타고난 목소리, 노래 실력이다.

연습으로 후천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타고난 성량이라던가 감각... 그런 것이 너무도 탐이 난다.

짚어 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목소리가 좋거나 아니면 아예 직업이 노래 부르는 사람이었다.

가수 이승환이 그렇고, 크로스 오버 테너 임태경,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뮤지컬 배우 류정한도 그렇다. 성우로는 홍성헌씨!(노래도 잘 부르신다>_<)

노래 부르는 것을 들어 보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저건 신의 선물 아니면 신의 질투, 혹은 신의 유혹이나 심판이 아닐까.  늘 나를 시험들게 하는 것을 보면...;;;;;

부모님 몰래 3개월 간 레슨 받고 서울대 성악과를 붙었다면, 확실히 그건 노력만 가지고는 아니될 문제가 아닐까..@.@;;;;

하여간, 조승우 지킬만 워낙 부각되다 보니 류정한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억울할 정도로.

게 중 올댓뮤지컬이라고 하는 프로에서 지킬앤 하이드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지금 이 순간"을 부른 것 하나를 건졌다.  으하하핫. 3분짜리건만 어찌나 반갑던지...T^T

공연에선 이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불렀는데, 솔직히 이 무대에선 많이 오버한다. 그치만 그조차도 좋아보인다.  입을 저렇게 크게 벌려야 더 잘 불러지는 걸까? 뭐 이런 생각도 하면서.(소냐의 영상을 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음, 이승환은 별로 입 크게 안 벌리는데.... 임태경도.....ㆀ)

하여간. 오늘도 너무너무 부러워서 몸부림쳤다.  이건 받은 자와 준 자... 공연을 본 자, 노래를 들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갈급함이다. 아흑.... 애가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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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한국사 1 - 단군조선에서 후삼국까지, 식민사관을 벗고 고대사의 원형을 복원한다 교양 한국사 1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살아있는 한국사의 개정판이다. '살아있는---"라는 제목도 당시 나왔을 때 유행처럼 퍼지는 제목이었는데, "교양---"라는 제목도 대중적 인기의 잣대를 계산한 것 같아서 조금 씁쓸했지만, 포장만 바꿔 나온 것이 아니라, 내용이 추가 되었으니 그 정도는 너그러이 넘어갈 수 있다.(안 넘어가면 어쩌겠는가.ㅡ.ㅡ;;;;)

저자 이덕일은 참 독특한 사람이다.  학자이면서도 대중 역사서 집필에 골몰하고 있는 이력도 독특하고, 남들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역사를 들여다보는 안목도 흔치 않은 광경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대중에게는 지극히 친근하고 또 고마운 존재로 남아 있다.

그의 연구 방법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1차 사료를 깊이 파고들지만, 그 1차 사료 인용의 함정과 한계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는 것이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이상에야, 교과서에서 그렇게 나오고 또 선생님이 그리 알려주시면 우린 모두 그게 진실이려니 의심 않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교과서가 틀릴 수 있고,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내용도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니 틀렸다는 것을, 그는 그 1차 사료를 가지고 조목조목 비판하며 독자를 설득한다.   그러니 그의 책을 진지하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배워온 역사적 지식에 대해서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책을 찾게 만들고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만드니, 그가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고 하겠다.

이 책은 통사다.  세권으로 이루어졌는데, 우리의 고대사로부터 중세사 근대사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방대한 오천년 역사를 책 세권에 나누었다지만 지면의 한계가 있는 법, 따라서 미시사를 기대하면 안 된다.  대체로 친절한 설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완전 초보용 책은 아니라고 하겠다.  읽다가 막히거나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저자나 그밖의 다른 사람의 책을 참고하며 더 깊이있는 공부를 해야 할 거라고 말하고 싶다.(역시 공부시키는 저자라니까..;;;;)

과거의 제목은 '살아있는 한구가'였는데, 이젠 '교양 한국사'가 되어버렸다.  저자 이덕일의 그간 작업이 죽어있는, 감춰져 있는 한국사를 들춰내는 데에 접목했다고 한다면, 이제 그의 작업은 그렇게 들춰낸 우리의 역사를 대중의 교양으로, 상식으로, 일상으로 파고들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제목도 그리 바꾼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 짐작해 본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그의 다른 저작물에서도 느껴지는 바지만, 챕터의 서두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부분인데(원래 좋은 글은 서두에서 판명된다!) 그 글을 아주 문학적으로 쓴다는 것이다.  문학적으로 쓴다고 해서 감정적인 글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딱딱하지 않게, 우리의 논리를 자극하면서 감정도 동시에 따라오게 만드는 글쓰기라는 의미.  아마 공감하겠지만, 그런 글쓰기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사실, 만나기도 쉽지 안?.

그래서 이덕일 선생님의 책은 볼 때마다 경외감이 들고 늘 고맙기 그지 없다.  아마 이덕일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한국사 공부는 아주 지루했을 것이다.

너무도 오래, 친일파로부터 시작된 기득권자들의 사학계 지배로 인해, 우리 국민 모두의 머리 속에 식민사관의 틀이 깊게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이야 많이 벗겨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주류는 그들로 채워져 있다.  어찌보면 그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덫 속에 이덕일 선생님은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 움직이고, 교양처럼 인식될 수 있는 역사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애쓰는 그 수고가, 시간은 걸릴지언정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을 뿌리리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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