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디지팩 특별판 (dts 3disc)
이명세 감독, 하지원 외 출연 / 엔터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공교롭게도 나의 카테고리 제목과 동일한 제목이 나와버렸다.  강렬했던 색상과 이미지들을 모두 조합한 멋진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저 솔직한 감상으로 나가자니, 저런 제목이 나와 버렸다.

형사는 기대가 큰 작품이었다.  일단 다모에 열광했던 폐인이었던지라 걱정과 우려도 컸지만, 그래도 이명세 감독이고 강동원과 하지원, 안성기 등이 나오는데 작품이 안 나올 리 없다고 난 믿어버렸던 것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떠올리면, 그땐 장동건도 조연이었다... 뭐 이런 정도와, 안성기 대사 참 없다... 뭐 이런 것과, 그리고 음악 끝내줬었다!까지 기억난다.

프란체스카와 소울 메이트를 볼 때 느낀 거지만(둘 다 노도철 피디!) 감독들은 음악에도 탁월한 감각을 지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감독이 있겠지만, 극 전체를 아우르는 감독은 본시 총 책임자가 지녀야 할 터, 그런 면에서 난 형사를 보면서 내내 즐거운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필요 이상의 파격이었다고 얘기했는데, 사극에 클래식 선율을 이토록 과감히 입혀놓은 감각이란 단순히 과잉을 넘어서 일종의 확신같은 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런 작품은 큰 화면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스피커를 갖춘 데서 들어야 한다.  집에서 볼 땐 이런 면이 영 분위기 다운 시킨다.ㅡㅡ.;;

영상도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우리 한복의 특징이긴 한데, 보색 대비가 이토록 아름다운 칼라를 다른 옷에서 본 적이 없다.  작품 속에선 의상뿐 아니라 조명 자체가 아주 예뻤다.  초반부터 성적 긴장감을 잔뜩 유발하더니, 등장인물에선 오히려 여주인공보다 남주인공 강동원을 통해 섹쉬함을 보여줬달까...;;;;;

대사 없이 눈빛과 처연한 듯한 미소가 그의 입장과 감정을 대변해 주는데, 달빛 아래 담장 아래서 둘이 검을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가 검무로 보이듯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그래서, 작품을 다 보고나서는 스토리의 부재가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다.  드라마도 용두사미 격으로 잘 나가다가 끄트머리에서 미끄러졌는데, 두시간 필름에 어찌 담을까 걱정이었건만, 감독은 오히려 뒷통수를 치듯 스토리는 알아서 생각하게~ 모드로 일관한다.ㅡ.ㅡ;;;;

재밌는 것은, 감독의 그런 주문이 먹힌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 여자들은 이 작품을 보고서 강동원과 하지원에 열광하며 딱부러지게 떨어지지 않는 결말의 의미를 굳이 문제삼지 않았다.  나로서도 그게 크게 문제될 건 없다는 생각이다.  

대중적이기보다 대단히 매니아적인 요소를 듬뿍 지닌 작품인데, 그것도 이명세 정도 되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보는 사람이 없는데 뚝심 지키기는 어려울 게 아닌가.  뭐, 김기덕 같은 독특한(!) 감독도 있지만^^;;;

하여간, 이 작품은 강동원의 재발견이었다.  내 짐작보다는 연기를 잘한 것.  하지원은 사투리가 영 어색했고, 안성기의 코믹은 대본의 문제점이 보였지만 그래도 음악과 영상으로 다 용서된다.

나로서는 앞으로도 이명세 감독이 지금같은 감각을 계속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뭐, 대중의 평가야 내가 책임질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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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09-22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상은 너무 좋았는데, 아, 정말 하지원은 왜 나왔는지... 감독도 찍으면서 배우 바꾸고 싶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마노아 2006-09-22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다모를 즐겁게 봐서 하지원은 괜찮았는데, 의외로 안성기씨가 별로였어요. 유머가 안 웃기더라구요ㅡㅡ;;; 물론, 시나리오가 별로일 수 있지만.

marine 2006-09-23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안성기씨도 좀 안 어울리긴 했어요 전 전라도 사람이라 하지원의 그 말도 안 되는 전라도 말투가 너무너무 거슬렸거든요 그래도 뭐, 보는 내내 영상이 너무 예뻐서 아주 나쁘지는 않았어요 색감이 너무 좋더라구요

마노아 2006-09-23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다. 사투리 진짜 못하더라구요. 그게 컨셉인지, 아니면 익숙치 않아서인지도 헷갈리더라구요. 안성기씬 사투리가 자연스러웠잖아요. 이번에 하지원은 황진이도 찍던데... 근데 확실히 사극 복장이 어울리긴 했어요^^
 
폼페이 - 최후의 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3
로베르 에티엔 지음, 주명철 옮김 / 시공사 / 1995년 8월
평점 :
품절


시공 디스커버리 도서가 그렇듯이 이 책 역시 문학적 재미를 느낄만한 책은 아니다.  다만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기, 학술적 도구로서 유용한 책일 뿐이다.  때문에 짧은 페이지에도 불구하고 빨리 읽혀지지 않는 따분함은 충분히 감수해야 한다.  지겹다 느껴질 땐, 담고 있는 역사적 진실로 만회를 해야한다.

사실, 이 책은 가볍게 접근하기에는 미안해지는 내용이다.
79년 8월 24일, 인간 세계에서 완전히 소멸되어버린 비운의 도시 폼페이가 어떻게 다시 그 흔적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는지의 발굴 과정이며, 그곳 폼페이 유적 발굴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말이다.

축소된 백과사전 같은 분위기로 편집되어 있는데(시공 디스커버리 책들의 특징이다.) 관련된 여러 사진과 도면, 그림 등을 삽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오래 전에 예술의 전당에서던가, 폼페이 최후의 날 전시회가 있었는데, 당시 나는 가보지 못하고 엄마랑 언니가 다녀왔었다.  그때 사온 팜플렛이 아마 어디에 끼어 있을 텐데..;;;;;  그때 언니의 소감.  당시 사람들의 체격이 참 작았다는 것. 그들의 생활이 참 화려했다는 것... 등등이 기억난다.  이 책에도 폼페이인들의 생활상을 짚어볼 수 있는 여러 자료가 등장해서 그들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데, 그들이 불시에 당한 참변을 떠올리면 착잡해진다.(물론, 현재 강원도의 물난리보다 가엾지는 않다...;;;)

저자는 오늘날 폼페이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그곳을 오염시켜, 폼페이를 두번이나 죽게 만든다고 안타까워 하였다. 이는 복원이 가능하지 않은 고고학적 대재앙이라는 것이다.

비단 폼페이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귀한 여러 유적지와 유물들도 비슷한 경로로 많이 훼손되는 예를 접하게 된다. 예전에 기전 문화재 소속으로, 유적 발굴 조사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공사 현장에서 유물이 발견될 경우, 공사 기간의 방해와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로 모른 척 유물을 매장시키는 일이 다반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곳이든 옛 사람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흔적을 되짚어 볼 때, 그것이 단순한 관심이나 흥미이든, 학술적 목적이든 적어도 그 가치를 최상으로 살려 우리 뿐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비록 이 땅에서는 한 순간 재로 사라져간 폼페이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위안도 되주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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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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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접할 때 작가의 인지도와 함께 가장 먼저 고려하는 부분은 제목이다.  어떤 제목을 쎃는가, 얼마만큼 문학적이고 함축적 의미를 가졌는가가 구매 의욕을 많이 불사른다. 

이 책은 반복된 어구의 제목과 따스한 다갈색 표지가 제목의 대상처럼 자연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이었다.  표지를 열어보니 작은 활자체가 간결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한줄씩 줄 간격을 떨어 뜨렸는데, 여백의 미를 잘 사용했지만, 이런 형식은 읽는 속도를 엄청 떨어뜨린다.(나만 유독 그런 지는 모르겠다. ...;;;)

이 책은 기행문과 같은 형식으로, 전국의 곳곳을 다니며 엽서를 띄운 것을 모아 놓았다.  역사적 사건가 숨결이 묻어 있는 곳, 깊은 사색이 묻어나는 곳 등등, 평소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삶의 이면과 편린들을 조각조각 모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의 책이다.

따라서 읽다 보면 고개 끄덕이는 부분이 많고 짙은 교훈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가볍지 않고 무겁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쩌면 저자의 약력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지식인으로서 그가 갖고 있는 계몽 의식 같은 것이 두드러지게 느껴져 어느 한편으론 껄끄럽기도 했다.  제목의 느낌과 달리 자연스럽다기보다 인위적으로 느껴져서 말이다.

가끔은 가볍게 지나가도 좋을 것 같은데,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이상으로 아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 비슷한 우려가 일었다.

물론, 이는 작품의 진가와 저자의 숨겨진 의도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독자로서의 내 책임이 크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보다 사색이 깊어졌을 때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같이 신청한 다른 책은 집다가 말았다...;;;; 나중에 봐야지.. 하면서.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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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29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잊고 있었어요. 보관함에 넣어요. 마노아님, 고마워요^^

마노아 2006-07-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어야 하는데, 자꾸 망설여져요. 비숍님은 저보다 재밌게 읽으실 거예요^^

비로그인 2006-08-02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에 좋은 상태로 나와있다길래 주문했어요~^^;; 무진장 기대하고 있어요..;;

마노아 2006-08-0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잘 됐어요. 헌책방에서 좋은 책 깨끗하게 구할 때 진짜 흥분되죠^^
 
연인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연인'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검색을 하면 너무 많은 책이 쏟아지지만, 연인이라고 하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느낌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책의 느낌처럼.

어른을 위한 동화로 쓰여졌지만, 동시에 소설같고 또 동시에 시와 같은 작품이다.  표지의 새하얀 느낌에서부터 작품을 열어보면 푸른 새벽빛의 청명함과 또 온몸을 사르며 져버리는 저녁 놀의 뜨거움까지 모두 간직했다는 느낌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운주사의 풍경 '붉은 툭눈'이다.  비어가 되어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자신의 존재와 또 갈망하던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이 그의 여행의 목적이다.  그래서 그의 여행은 미지의 것에 대한 동경이면서 동시에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을 담았다.

먼 길 떠날 때마다 닥쳐오는 생명의 위기, 그 고된 길을 돌아돌아 결국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곳은 운주사였다.  그렇게 자신이 헤매이며 뒤척일 때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며 긴 시간 기다려준 이는 운주사에서부터 자신의 짝이었던 검은 툭눈이다.

결국, 푸른 툭눈은 그에게서 깊은 안도감과 평안함을 얻고 마침내 그토록 갈망해 하던 깨달음을 얻고 만다.  마치,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근처에,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찾은 것.  그의 깨달음은 독자에게도 산뜻한 깨달음과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선사한다.

생각해 보니, 운주사가 나오는 책을 여러 번 보았던 것 같다.  그곳에 와불이 유명했던가... 언제고 나도 찾아가보고 싶다.  그곳에 서로를 보듬어주는 풍경 한쌍을 내 눈으로 확인하며 나의 파랑새를 기억해 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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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장르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 지 잠시 난감했다.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 역사쪽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개인의 자서전으로 볼 수도 있고, 매체를 생각하면 만화쪽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나는 개인의 일대기라는 쪽으로 카테고리를 분류했다.

소문을 익히 듣고 구입했는데, 첫장 넘겨보고 숨이 턱 막혔다.  소프트하고 샤방샤방한 그림이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까만 테두리에 까만 그림, 까만 글씨, 도통 음영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온통 까만 책 속 내용이 읽기도 전에 벌써 숨쉴 공간을 주지 않는 답답함으로 다가온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이구나... 하는 긴장감이 바싹 엄습했다.

작가는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를 경험했던, 그리고 살아남은 부모를 둔 유태인 작가다.  여러 실험적인 작법을 통해 신선하고도 독특한 만화작법을 연출해 낸 그는 아버지를 인터뷰하여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1권에 8년, 2권까지 모두 13년에 걸친 작업이었고, 이 책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단순히 이 책이 히틀러에 의해 학살된 억울하고도 불쌍한 유태인 이야기라고만 짐작하면 책의 절반만 읽은 셈이 될 것이다.  유태인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학살 당했는 지는 모두 안다.  하지만, 그랬다!라는 결과만 알 뿐이다.  이 책에는 그들의 처절한 생존 싸움이 무서울 만큼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위험한 상황, 당장에 누가 죽을 지 알 수 없는 상황, 그 와중에선 믿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도 내가 살기 위해선 뻔히 죽을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등 떠밀어 내보낸다.  죄책감조차 사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살아남는 자는 착한 자도 아니고 명예로운 자도 아니다.  능력있는 자!  악착같이 살아남을 수단이 있는 자!  작 중 작가의 아버지인 블라덱은 딱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구사할 수 있는 언어와, 손에 익히 재주와, 긴박하게 움직여야 하는 예민한 본능을 가지고 지옥같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남는다.  그의 처세술은 로빈슨 표류기의 로빈슨도 못 쫓아올 수준이다.;;;;;

전쟁은 끝났고, 그는 살아남았다.  그의 아내도 살아남았다.  새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작가는 대학에 가서야 모든 아이들이 악몽에 시달리는 부모의 괴성에 한밤에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놀랍게 체득한다.  굶주림이 무엇인지를 아는 아버지는 절약이 습관화된 정도가 아니라 신성시할 정도다.  그런 악착스러운 모습들은 아들과의 사이를 자꾸 벌어지게 만든다.  아버지의 가치관으로,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아들의 생활습관이나 직업 등은 모두 한숨 나오는 것으로만 보일 뿐이다. 

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해보고자 애쓰지만 이내 지쳐버린다.  병든 아버지를 자기 집에 모셔 와 살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자살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아버지도 똑같은 무게로 그를 억누르고 있다.

작가가 보여준 극단적 비극의 한 단면은 인종차별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그 아버지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도둑 취급하며 어찌 상대할 수 있느냐고 펄펄 뛰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은 아버지가 정말 싫어진다.

작품은 이야기 말고도 여러 독특한 점을 지닌다.  작품 속에서 유태인은 쥐로 묘사되고 독일인은 고양이로 그려진다.  폴란드인은 돼지로 묘사되고 미국인은 개로 나왔으며, 프랑스인은 개구리로 그려졌다.

그가 1권의 성공 이후 사회적 부와 명성을 얻으면서 더 고독해지고 더 우울해지고 더 힘들어하는 모습은 몹시 인상적이다.  그의 책상 밑으로 셀수도 없이 많은 쥐들이 갈비뼈를 허옇게 드러낸 채 죽어 쌓여 있는 모습이 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일지라도, 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끔찍했던 기억은 유산처럼 그가 짊어지고 갈 몫이 되어버렸다.  피할 수도 없고 벗어날 방법도 없는 채로.

아버지가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며, 그를 이미 죽은 형의 이름으로 부른 장면도 책장을 바로 넘기지 못하고 멈추게 하는 힘을 지녔다.  형은 가스실로 보낼 수 없다며 숙모가 독약을 먹이는 바람에 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 

현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전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비난받을 짓을 했고, 비난 받고 있지만 아마도 끄떡도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무섭게, 독하게 만들었을까.  2차 세계대전의 악몽이?  수천년에 걸친 유랑 생활이?  그 모든 이유들을 도합해서 오늘의 그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들은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 싸울 뿐이라고 항변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들은 불과 60년 전의 일을 잊은 것일까.  가해자이면서 뉘우치지 못하는 일본도 욕먹어 싸지만, 피해자였으면서 다시금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대체 어떤 양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읽어 마땅한 책인데, 후유증이 남을 것이다.  가슴 속이 더 무거워지는 답답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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