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1814 호/2013-03-04

 

마른땅에 날벼락…싱크홀의 비밀

#1.
2013년 1월 28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의 도로에서 지반이 갑자기 주저앉는 사고가 발생했다. 넓이 약 50㎡, 깊이 9m로 뚫린 커다란 구멍은 그 자리에 서 있던 건물을 순식간에 삼켜 버렸다.

#2.
2012년 2월 18일, 인천시 서구의 지하철 2호선 공사장에서 지반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왕복 6차선 도로 한 가운데 가로와 세로 12m 길이에 깊이 27m 가량이 둥글게 주저앉으며 인부 1명이 매몰됐다.

멀쩡하던 도심 한복판에 뚫린 이 구멍들은 모두 ‘싱크홀(sink hole)’이라 부른다. 싱크홀은 글자 그대로 가라앉아 생긴 구멍을 말한다. 본래 싱크홀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구덩이를 말하며, 산과 들, 바다 어느 곳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인천에서 발생한 사고로 대한민국 역시 싱크홀의 안전지대가 아니란 것이 알려지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림 1] 2012년 2월 18일 인천지하철 2호선 공사장 지반이 무너지며 생긴 싱크홀. 사진 제공 : 인천서부소방서

세계적으로 볼 때 싱크홀의 크기와 모양새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지각운동이 매우 안정적인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생각도 못할 경관이 많다. 예컨대 멕시코에 있는 제비동굴(Cave of Swallow)은 세계 최대의 수직 싱크홀로 지름 50m에 깊이가 376m에 달한다. 베네수엘라의 해발 2,000m가 넘는 산 정상부에는 사리사리나마(Sarisarinama)라고 불리는 지름과 깊이가 350m에 이르는 싱크홀이 단층선을 따라 연속적으로 나 있다.

이들은 모두 경이롭다 못해 보는 이의 심장을 멈추게 할 만큼 전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최근 도심지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은 공포의 대상이다. 도심지에서 싱크홀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알려면 싱크홀이 왜 생기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싱크홀은 한마디로 땅속에서 지하수가 빠져나가면서 생긴다. 땅속에는 지층 등이 어긋나며 길게 균열이 나 있는 지역(균열대)이 있는데, 이곳을 지하수가 채우다가 사라지면 빈 공간이 생기면서 땅이 주저앉게 된다. 이것이 싱크홀이다. 싱크홀은 퇴적암이 많은 지역에서 깊고 커다랗게 생긴다. 빈 지하공간이 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토 대부분은 단단한 화강암층과 편마암층으로 이뤄져 있어 땅 속에 빈 공간이 잘 생기지 않는다. 우리나라 싱크홀이 얌전한 축에 속하는 이유다.

겨우 지하수가 빠져나간다고 싱크홀이 생길까 생각한다면 지하수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땅속은 2.5m 깊이 들어갈 때마다 1기압씩 압력이 증가한다. 깊이 25m의 암반층은 10기압의 압력을, 250m 지점에는 100기압의 압력을 받는다. 이 힘을 지하수가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지하수가 사라지면 땅속 공간은 막대한 압력을 버텨내지 못하고 가라앉는다. 사라지는 지하수의 양이 많을수록 싱크홀의 규모도 커진다.


[그림 2] 베네수엘라의 해발 2,000m가 넘는 산 정상부에 있는 사리사리나마(Sarisarinama) 싱크홀. 지름과 깊이가 350m에 달하며 단층선을 따라 연속적으로 나 있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그렇다면 땅속을 잘 버티고 있던 지하수가 왜 갑자기 사라지는 걸까. 땅속에는 복잡한 지하수 네트워크가 있다. 장구한 세월 동안 땅속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 빗물이 암반으로 스며들어 암반지하수를 형성한다. 이런 복잡한 지하수 네트워크가 융기와 침강, 단층과 습곡, 지진 등 지각변동과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변동 등으로 변하면서 싱크홀이 생겨나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싱크홀은 주로 석회암 지역에서 발견된다.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지하수에 녹으면 서서히 땅이 꺼져 내리며 용식돌리네가 만들어진다. 땅속에 석회암 공간이 생긴 경우에는 함몰돌리네가 생겨난다. 흐르는 지하수가 지하의 소금층이나 석고층을 녹여도 지하에 빈 공간이 생겨 싱크홀이 만들어진다.

도심에 생기는 싱크홀은 지하수 네트워크에 이상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하수를 너무 많이 끌어다 쓰면 지하수위가 낮아지면서 지하수가 감당하던 압력을 땅 속 공간이 고스란히 받게 된다. 이 결과로 지표가 무너져 싱크홀이 만들어진다.

지하수를 너무 뽑아 쓰면 멀리 떨어진 곳의 지반도 내려앉는다. 지하수도 지표수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데, 지하수위가 낮은 지점에서 물을 많이 끌어 쓰면 높은 곳에 있는 지하수가 이동해 공동이 생기면서 땅이 내려앉게 된다. 2005년 6월 전남 무안과 2008년 5월 충북 음성에서 발생한 싱크홀도 이 같은 원인으로 생겼다.

싱크홀의 원인은 이 밖에도 많다. 지표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경우 그동안 물이 많지 않았던 흙에 물이 가득해진다. 이 때문에 응집력이 떨어지면서 지반이 약해져 땅이 내려앉을 수 있다. 또 공장에 쓸 저수지를 모래가 많은 지표층 위에 만들거나 도시 상하수관이 새면서 주변 흙에 물이 많이 스며들어도 싱크홀이 생길 수 있다.

지하수가 잘 흘러도 싱크홀이 생길 수 있다. 지하수가 흐를 때 점토, 실트, 모래 등 크고 작은 알갱이들도 함께 흐르며 지하수가 흐르는 구멍을 점점 깎아낸다. 지하수길이 침식돼 점점 커지면서 싱크홀의 위험도 높아진다. 2007년 2월과 2010년 5월 과테말라 도심지를 습격한 싱크홀은 허리케인이 쏟아 부은 빗물이 화산재층을 함몰시켜 만든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싱크홀이 점점 자주 출현하고 있다. 근본 대책은 무분별한 도시개발의 중단뿐이다. 지하수는 결코 우리가 맘대로 빼내 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싱크홀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도시 주요 지역에서 지하수의 흐름을 늘 모니터링 해야 한다. 특히 도심지 공사장의 무분별한 공사는 싱크홀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만큼 예의주시해야 하겠다.

글 : 박종관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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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현양이 초등학생이 되었다. 갓 태어나서 조물락거리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아, 세월이 무심할 만큼 빠르다. 우워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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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SION 과학

제 1808 호/2013-02-20

아이디어 원천으로 떠오른 동물, 뱀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

우리 조상들의 낙천성을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무엇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결국 어떻게든 해결하게 돼 있다는 긍정성이 담겨 있다. 이가 없으면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잇몸으로 씹어 넘길 수 있고, 스포츠 경기에서 뛰어난 선수가 빠진다고 반드시 지는 게 아니다. 주어진 상황이 나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긍정성’을 가지라는 게 속담이 전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2013년 계사년의 주인공인 ‘뱀’은 이 속담이 가진 의미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생물이다. 뱀은 애초에 다리 없이 태어나지만 네 발, 혹은 두 발 달린 다른 동물에게 뒤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 듯 다리 없이 껍질로 사는 법을 터득한 덕분이다.

뱀 껍질도 기본적으로 다른 동물의 피부나 털이 하는 역할을 한다. 온몸을 둘러싸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껍질은 단백질의 일종인 젤라틴으로 이뤄져 습도 변화에 대응하기 좋다. 젤라틴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몸 밖에서 들어오는 습기를 잘 막고, 몸에 있는 습기도 잘 뺏기지 않는다. 그 덕분에 뱀은 습도에는 큰 상관없이 서식할 수 있다.

언뜻 뱀 껍질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하나씩 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고 비늘 사이에는 주름이 잡혀 있다. 자기보다 몇 배나 큰 먹이를 통째로 삼키면 비늘 사이의 주름이 늘어나서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소화시킬 수 있는 구조다. 비늘이 모두 연결된 덕분에 뱀이 벗어놓은 허물도 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뱀 비늘은 이동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리가 없는 뱀은 온몸을 지면에 밀착해 기어 다닐 수밖에 없는데, 이 때 땅이나 물에 비늘이 직접 닿는다. 효과적으로 이동하려면 각종 표면과 맞닿은 비늘의 마찰력을 조절해야만 한다. 또 늘 어딘가에 닿는 비늘이 잘 닳지 않도록 신경도 써야 한다. 뱀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미세한 표면 구조를 발달시켜 해결했다.

잘 이동하기 위한 첫 번째 비결은 몸통 각 부분의 마찰력을 다르게 만든 것이다. 뱀은 직진만 하는 성질을 가졌는데 이는 뱀의 배 비늘이 앞으로 갈 때는 마찰력이 가장 작아서다. 뒤쪽이나 옆쪽은 마찰력이 강해서 온몸을 움츠렸다가 펴면 앞으로 나가도록 이뤄졌다.

실제로 미국 조지아공대 데이비드 후 교수팀은 뱀 몸통의 마찰력을 측정해 2009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싣기도 했다. 연구진은 작고 온순한 뱀인 ‘퍼블란 밀크 스네이크’를 마취시켜 몸통을 앞과 뒤, 그리고 옆으로 기울여 각 방향의 마찰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앞 방향의 마찰력이 가장 작고 옆 방향의 마찰력이 가장 컸다. 마찰력이 큰 몸통 옆쪽은 브레이크 장치처럼 작용해 뱀이 S자 곡선을 그리면서 이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뱀 비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 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일정한 형태의 무늬가 잘 발달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무늬는 뱀 비늘이 지표면에서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마찰을 최소로 줄이고, 최대한 덜 닳도록 도움을 준다.

이런 뱀 껍질의 구조는 사막에 사는 도마뱀인 ‘샌드피시’와 비슷하다. 샌드피시는 모래 속을 파헤치고 다니면서도 반짝거리는 껍질을 유지하는데, 이는 껍질 표면이 마이크로미터(μm·100만 분의 1m) 에서도 매끄럽고 미세한 칸막이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미세한 작은 칸막이에는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 등이 담기는데, 이는 샌드피시나 뱀이 윤활제로 쓰게 된다. 이렇게 되면 뱀은 모래 표면에서도 부드럽게 지나갈 수 있고, 오랫동안 바닥에 닿아도 껍질이 쉽게 닳지 않는다.


[그림]뱀이 움직이는 힘은 껍질의 독특한 무늬에서 나오는데, 서식환경에 맞게 진화했다. 샌드피시(좌)와 보아뱀(우).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뱀이 사는 환경에 따라 표면 무늬는 조금씩 달라진다. 사막이 아닌 동남아시아처럼 습기가 많은 환경에 사는 뱀은 표면에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무늬뿐 아니라 나노미터(nm·1nm=10억 분의 1m) 크기의 작은 돌기도 발달시켰다. 이렇게 볼록볼록 튀어나온 표면은 물기를 머금게 되면 뱀 비늘과 물이 맞닿는 부분에 충격이 줄어든다. 그 덕분에 뱀이 이동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며 비늘도 덜 닳게 되는 것이다.

결국 뱀은 다리를 가지지 못한 대신 껍질의 마찰력을 조절하고 독특한 무늬를 발달시키는 쪽으로 진화했다. 다른 동물들처럼 날쌔게 달리지는 못해도 이동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껍질도 많이 상하지 않게 됐다. 이들이 ‘다리 없음’을 극복한 지혜는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레인보우 보아뱀 껍질을 마이크로미터와 나노미터 크기에서 관찰해 표면의 무늬를 찾아낸 문명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계산과학연구단 선임연구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런 표면을 자동차 엔진 등에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자동차 엔진에 있는 실린더는 마찰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 표면을 뱀 비늘에 있는 무늬처럼 만들면 마찰이 작고 마모가 거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의 한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 엔진의 실린더 부분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서 비슷한 효과를 얻기도 했다.

또 1년에 2~3차례 허물을 벗으며 아예 새로운 껍질을 가지게 되는 원리도 새로운 영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새로운 표면을 만들어내 벗겨낼 수 있다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고, 닳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은 ‘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전략으로 살아남은 뱀이 주인공인 해다. 올해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의지와 잘 될 거라는 긍정으로 헤쳐 나갈 수 있길 빌어본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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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CUS 과학

제 1804 호/2013-02-18

[FUTURE]“귀하의 생체 정보를 병원에 전송 완료했습니다”

<2013년 KISTI의 과학향기에서는 올 한 해 동안 매월 1편씩 [FUTURE]라는 주제로 미래기술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칼럼에서 언급된 미래기술은 KISTI에서 발간한 <미래기술백서 2013>의 자료를 토대로 실제 개발 중이며 10년 이내에 실현 가능한 미래기술들을 선정한 것입니다.
미래기술이 상용화 된 10년 이후 우리의 생활이 어떨지, 또 이 기술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이야기로 꾸며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3년 2월 18일, 설 쇠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설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이름은 유향기, 올해 떡국 한 그릇 더 먹어 35살. 화려한 싱글이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로 늘어나면서 여자의 결혼적령기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늘었다. 결혼도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반평생을 함께 살 건데, 결혼 잘못해서 두고두고 후회하며 사느니 확실한 남자가 아니면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뭐 요즘 세태이기도 하고. 아기가 갖고 싶다면 정자은행에서 우량 정자를 구입해 아이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설 전날 찾아온 삼촌과 고모가 ‘왜 결혼 안 하느냐’, ‘여자는 때 놓치면 X값 된다’ 등 저속한 표현까지 써가며 양동작전으로 날 몰아세웠다. 틈만 나면 결혼한 걸 후회하시는 분들이 왜 나에겐 명절날만 되면 이토록 결혼 전도사 역할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간다. 선문답, 침묵, 무시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가며 상황을 벗어나려 해봤지만 백약이 무효.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화려한 솔로한텐 가장 비참하다는 주말 아침. 늘 그렇듯 약속이 없는 관계로 늦잠을 실컷 즐길 심산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침대가 아이돌스타도 소화하지 못하는 웨이브를 하며 송중기 목소리로 날 깨우는 것이 아닌가!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공주님! 회사 갈 시간이라고요~!”



비몽사몽간에 침대 머리맡에 있는 정지 버튼을 눌렀다. 스마트 침대¹⁾의 알람 기능을 주말 모드로 변환했어야 했는데 깜박했다. 그 바람에 잠이 확 깼다. 하지만 따뜻한 잠자리를 떨쳐버리고 일어나기가 싫었다. 벽에 걸린 TV를 향해 ‘아침 드라마’라고 말하자 대화형 스마트 TV²⁾에서 어제 보던 드라마가 이어서 나온다. 스토리가 막장 드라마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갑자기 지루해졌다. 손가락으로 TV를 가리키며 까딱거리자 다음 채널로 넘어간다.³⁾ 홈쇼핑에서 국내 최저가라며 다이어트 음료를 열심히 설명하는 MD가 갑자기 뽀글 파마를 한 엄마로 바뀌면서 잔소리를 쏟아낸다!

“아직까지 늘어져 자는겨! 엄마 시장 보고 곧 들어갈 테니 방 청소 좀 해놔잉!”

나는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떨어질 뻔 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다.

“할 말 있으면 휴대폰으로 하지, TV에 왜 나타나고 그래! 엄마는 방송 스타일이 아니라구 했잖아!”
“난들 어케 알어? 너한테 휴대폰한 것 뿐이여.”

요즘엔 통화가 안 되면 자동으로 TV나 다른 디지털 기기로 접속돼 어떻게든 상대방과 연결시킨다. 유비쿼터스가 만든 새로운 세상이다.

마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뭐 먹을 게 없는지 냉장고로 갔다. 냉장고 모니터에는 김치의 숙성도와 우유와 과일의 신선도가 그래프로 잘 나와 있다.

“흠, 우유 마시기 딱 좋은 상태네.”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를 꺼내려는 순간, 모니터에 엄마의 얼굴이 또 짠~ 하고 뜬다.

“이것아, 우유 먹으면 살 쪄. 옆에 채소즙 갈아놨으니 그거나 먹어! 그렇게 살 쪄서 어디 시집이라도 가겠냐! 그리고 집 청소는 해놨니? 곧 들어간다잉!”

요즘 나는 엄마의 손바닥 안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엄마의 휴대전화에 다 나타나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세상이 되면 다들 편리하고 행복할 거라고 했지만 나의 사생활은 이미 끝났다.

나는 어쨌든 엄마의 잔소리를 더 듣기 싫어 애완견 로봇 ‘부담스러우니’를 불렀다.

“부담스러우니~~”

그러자 부담스러우니가 달려와서 내 허벅지에 올라타며 부담스런(?) 애교를 부린다. 실제 애완견 보다는 못하지만 로봇 애완견도 귀엽긴 귀엽다. 나는 부담스러우니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거실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랬더니 부담스러우니가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열심히 방청소를 한다.⁴⁾ 이곳저곳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먼지란 먼지는 다 핥아먹는다. 그리고는 나에게 느끼한 미소를 한번 던지고 충전기가 설치된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간다. 저건 필시 로봇이 아니라 요물이다.

웃! 아침부터 차가운 우유를 마셔서일까? 갑자기 배에서 신호가 왔다. 급히 화장실로 가 변기에 앉았다. 아랫배에 힘을 줬더니 시원함과 동시에 찢어질 듯한 통증이 함께 동반됐다.
이때 화장실 벽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침착하고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변에 미량의 혈액이 섞여 나옴. 항문과 괄약근에 이상 조짐 발견. 현재 측정한 생체정보를 병원으로 보내겠습니까?”

나는 조금 놀라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오케이”라고 답했다. 삐~ 하는 전송음이 잠시 들리더니

“귀하의 생체정보를 병원에 전송 완료했습니다.⁵⁾”

화장실을 나와 외출 준비를 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항문병원 닥터 김입니다. 귀하는 현재 초기 치질 단계가 의심됩니다. 가까운 시일 내 병원을 방문하셔서 검사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한편으로는 창피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고 해서 작은 목소리로 그러겠다고 했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글 : 정영훈 과학칼럼니스트


[각주-미래 기술]

1) 스마트 침대 : 침대에 내장된 센서가 잠을 편하게 잘 수 있게 도와주고,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하며, 아침엔 흔들어 깨워준다.
2) 대화형 스마트 TV : 인터넷과 TV시청이 동시에 가능한 미래형 TV. 휴대전화를 비롯, 여러 디지털기기와 연결돼 원하는 정보를 볼 수 있다. 표정이나 손짓으로도 동작이 가능하다. 지능형 홈 네트워크 기술
3) 제스처, 행동패턴 및 언어기반 의미추출 기술 : 오류율 1% 이내로 인간의 제스처, 행동패턴과 언어에서 의미를 추출해 인간 대 인간의 의사소통과 같이 자연스러운 인간 대 기계 간 인터페이스를 통해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하는 기술. 1~2년 후 기술이 실현될 예정.
4) 인지/판단 기반의 인간로봇 상호작용기술 : 로봇이 사용자 의도를 파악, 이에 적합한 반응과 행동을 수행함으로써 인간과의 의사소통 및 상호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판단-표현 기술. 5~6년 후 기술이 실현될 예정.
5) 홈 헬스케어 시스템 : 가정에서 측정한 생체정보를 병원으로 전송해 진단받고, 이상이 있을 경우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10년 후 기술이 실현될 예정.

참고 : <KISTI 미래백서 2013>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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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9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0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02-1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문병원 이름 때문에 많이 웃었네요.^^ㅎㅎ
잘 지내시죠?
감기조심하세요.*^^*

마노아 2013-02-20 00:31   좋아요 0 | URL
실제로도 대장항문병원, 이런 식의 간판들이 보이더라구요. 민망해서 웃었어요.^^ㅎㅎㅎ
프로필 사진에 맑은 하늘이 있어서 좋아요. 덕분에 눈이 호강했어요.^^
 

   FUN 과학

제 1803 호/2013-02-13

 

심장이 두근두근! 사랑일까, 뇌의 착각일까?

드디어 내일이 발렌타인데이! 태연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든 채 무언가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으… 짜증나, 으~ 짜증나! 도대체 왜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를 않냐고! 혹시 초콜릿이 별로 안 좋은 건가? 아님 모양 틀이 미운건가? 아아, 어떡하지?”

“태연아, 도대체 누굴 주려고 그렇게도 열심히 초콜릿을 만드는 게냐? 혹시 아빠? 으흐흐. 역시 그렇구나. 원표랑 헤어진 지 두 달도 안됐는데 벌써 남자친구가 생겼을 리는 없고. 아빠 맞지?”

“아빠가 아니므니다.”
“그럼 새 남친이냐?”
“남친이 아니므니다!!”
“그럼 누군데?”
“사람이 아니므니다. 수종이는 신이므니다. 너무나 잘생겼으므니다!! 수종이를 볼 때마다 심박수가 200을 찍스므니다!”

아빠는 급속히 기분이 나빠진다. 아빠를 위해서는 달걀 프라이 한 번 부쳐 본 적 없는 태연이가 알지도 못하는 어떤 녀석에게 초콜릿을 만들어 바치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심술이 나고, 그 녀석을 칭찬하는 것도 얄미워 죽겠다.

“심장이 그렇게나 뛰냐?”
“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아요.”
“단지 심장만 뛰는 거야?”
“네, 엄청! 베리 어~엄청!!”
“에이, 그럼 넌 사랑에 빠진 게 아냐. 단지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을 하는 거지.”
“예에??”
“진짜야. 네가 수종이란 녀석을 좋아해서 심장이 뛰는 게 아니라 심장이 뛰니까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거라고. 이런 사실은 실제로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됐어.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교의 아서 아론, 도널드 더튼 박사가 했던 ‘카필라노 실험’이 대표적인 경우지. 박사들은 실험에 참가한 남성들 중 절반은 낮고 안전한 다리를 건너게 하고, 절반은 아찔한 흔들다리를 건너게 했단다. 남성들이 다리를 건넌 직후, 한 젊은 여성이 그들에게 다가가 엉뚱한 설문조사를 했지. 그런 다음 설문결과를 알고 싶은 사람은 그 여성에게 전화를 하라고 말했더니,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아니? 아찔한 다리를 건넌 남성들이 8배나 많이 여성에게 전화를 했다는구나. 아찔한 다리를 건너느라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있었던 탓에 상대 여성을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꼈고, 전화를 하게 됐다는 거야.”

“말도 안 돼. 인간이 얼마나 오묘하고 영특한 존재인데, 심장 뛰는 것과 사랑을 구분조차 못한다는 거예요?”

“그럼 또 다른 실험을 말해줄게. 뉴욕주립대학교 심리학과 스튜어트 밸린스 교수는 방 안에 남성을 한 명씩 데려다놓고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스피커로 들려주면서 여성의 사진들을 보여줬단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아니라 가짜로 녹음된 심장소리였지. 교수는 미인 사진을 보여줄 때는 보통의 심장소리를, 평범하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 사진을 보여줄 때는 미친 듯이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를 들려줬어. 그랬더니 어떻게 됐게? 남성들은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고 생각되는 평범한 여성에게 훨씬 높은 호감을 보였다는구나. 이런 착각을 심리학적으로는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부르는데, 이 실험처럼 너도 단지 심장이 뛰니까 ‘내가 수종이를 좋아하는 구나’ 그렇게 생각한 거라고.”

“진짜요? 흑흑, 이번에는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아니거든! 인간의 뇌는 현실과 착각을 구분하지 못하는 속성을 갖고 있단다. 심지어는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보여주자 자신을 노인이라고 착각한 실험참가자들이 노인처럼 굼뜬 행동을 했다는 실험까지 있어. 특히 사람의 뇌가 가장 심한 착각 상태를 보일 때는 사랑에 빠졌을 때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대방의 모든 것이 멋있어 보이고, 작은 키나 괴팍한 성격까지 사랑스럽게 느끼게 되는 ‘제 눈에 콩깍지’ 상태가 되는 거지. 그런데 인간은 이러한 착각을 착각이라고 여기지 않고 사랑이라고 인식한단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냐!”

“알겠어요. 모든 것이 제 뇌의 착각이었다면… 다시 생각해 볼게요.”

“그렇지!! 그런 태도 참으로 좋다. 우리나라 교육방송에서도 실험을 했었는데, 놀이공원 소개팅을 한 커플이 실내 소개팅을 한 커플보다 실제 연인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단다. 놀이공원은 곧 무엇이냐! 무서운 놀이기구! 다시 말 해 벌렁대는 심장 아니겠니? 그러니까 태연아, 넌 결단코 사랑에 빠진 게 아니란다. 심장이 좀 빨리 뛰었을 뿐이지. 알겠니?”

“흑흑흑, 정말로 감사해요 아빠. 깊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오늘처럼 아빠의 과학상식을 좋아한 건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놀이공원에 가서 수종이에게 자이로드롭을 타게 한 후, 고백을 하면 커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신거죠? 꼭 실천할게요!”

“헉! 그게 아니라….”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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