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미래 식량자원 확보,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FOCUS 과학

제 1844 호/2013-04-15

[FUTURE]미래 식량자원 확보,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2013년 KISTI의 과학향기에서는 올 한 해 동안 매월 1편씩 [FUTURE]라는 주제로 미래기술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칼럼에서 언급된 미래기술은 KISTI에서 발간한 <미래기술백서 2013>의 자료를 토대로 실제 개발 중이며 10년 이내에 실현 가능한 미래기술들을 선정한 것입니다.
미래기술이 상용화 된 10년 이후 우리의 생활이 어떨지, 또 이 기술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이야기로 꾸며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3년 농림수산부 글로벌식량관리부에 근무하는 박대진 사무관은 하루도 빠짐없이 전 세계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상태를 체크한다. 현재 전 세계가 긴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농산물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서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에 의해 흉작이 예상될 경우 그 영향을 최소화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박대진 사무관은 5년 전인 2018년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다. 중국이 점점 경제력이 좋아지면서 생활수준이 높아지더니 하루 2끼 먹던 식습관이 하루 3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최대 식량 수출국인 중국이 13억 인구의 수요를 맞추기에도 급급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가뭄과 한파 등 기후 이상으로 인해 세계적인 흉년이 덮친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어렵게 되자 국내 농산물과 수산물의 값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공산품이야 당장 급하지 않으면 구입하지 않으면 되지만 농산물은 생사(生死)가 걸린 문제이므로 가격에 바로 반영된 것이다. 거기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사재기를 하면서 대형 마트는 물론 동네 재래시장에도 식료품들이 동이 나기 시작했다. 2018년 식량대란은 이렇게 발발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가정이나 식당, 식품회사의 중국 농산물 의존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았던 것이다.

가정에서는 식료품을 구하지 못해 불만이 터져 나왔고 원재료를 구하지 못한 식당과 식품회사는 도산할 위기에 처했다. 이런 영향은 연쇄적으로 국가 경제에도 충격을 가하고 있었다. 핵폭탄보다 더 강력한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에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고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모든 행정부에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안을 내놓으라고 명령을 하달했다. 박대진 사무관은 이 모든 것이 식량에 대한 과도한 중국 의존도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하고 식량 수입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중국 다음의 식량 수출국 인도의 상황을 체크했다. 그러나 인도도 생활수준이 높아져 식량 수출을 계속 줄이고 있었고 가격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유럽 등 선진국은 식량을 무기화해 가격을 이미 높여놓은 상태라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박 사무관은 남미를 주목했다. 다행히 칠레와 브라질에서는 아직 식량 재고분이 남아있었고 가격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지금 수입 계약을 맺으면 식량이 들어오는 시기는 한 달 이상 걸린다. 그러나 늦다고 판단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빨리 보고서를 만들어 상부에 보고하고 식량 수입에 대한 결재를 받아 진행했다. 그동안 정부는 재고로 비축해두었던 비상식량을 출하해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렸고 한 달 후 수입 식량이 도착해서야 2018 식량대란을 겨우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박 사무관은 이것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공산품 수출을 용이하게 하고 농산물을 저가에 수입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과 FTA를 체결했었다. 그로 인해 국내 농업은 가격 경쟁이 되지 않아 아사 상태가 돼 버렸다. 물론 일부 뜻있는 사람들이 조합을 결성해 유기농업을 일으키는 틈새를 공략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왔다. 우리나라가 식량대란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쌀의 자급자족율을 100% 유지했기 때문이다. 쌀시장을 지키고 쌀농사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박대진 사무관은 먼저 식량자급도를 높이는 것만이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농업의 부활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렸다. 그 보고서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도시 빌딩에서 태양 대신 LED 조명과 별도의 이산화탄소 주입, 로봇과 센서 등으로 시설을 자동 관리하는 도심 내 친환경 수직농장 개발기술¹⁾과 식량증산을 위한 광합성 기능 및 불량환경 저항성 향상기술²⁾, 유전체 기반 미래 육종 기술³⁾ 등의 아이디어를 정리해 우리나라가 더 이상 식량대란을 겪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년 후 2023년 현재, 국내의 식량자급도는 70% 수준까지 올라왔고 계속 향상되고 있다. 그리고 식량의 수급상태가 전 세계 네트워크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보고되고 있다. 국외의 작물 현황, 기후 현황, 국내의 식량 현황이 실시간 체크되면서 조금이라도 이상징후가 발견되면 재빨리 대처하게끔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했다.

농업은 이제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2023년, 농민과 도시민 모두가 먹거리, 즉 우리의 생명줄을 다함께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글 : 정영훈 과학칼럼니스트

[각주-미래 기술]

1)도심 내 친환경 수직농장 개발기술 : 도심 속 빌딩 안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수직농법 기술. 빛,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양분, 수분 등 생육환경을 인공적으로 제어해 생물을 공산품처럼 계획 생산할 수 있는 농업시스템. 3~4년 후 기술의 실현이 예상됨.

2)식량증산을 위한 광합성 기능 및 불량환경 저항성 향상기술 : 복합 재해 저항성을 지닌 품종과 친환경 작물성장 촉진물질, 작물보호제 및 활용기술 등을 이용해 친환경 농산물 생산을 촉진하는 기술. 10년 후 기술의 실현이 예상됨.

3)유전체 기반 미래 육종 기술 : 동식물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재조합하거나 유전자를 구성하는 핵산을 세포나 세포 내 소기관으로 직접 주입해 인공적으로 변형시킨 생물을 개발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기술. 해충이나 신종 바이러스에 강한 농작물 육종이 가능하나 GMO 안정성 확보가 관건. 3~4년 후 기술의 실현이 예상됨.

참고 : < KISTI 미래백서 2013 >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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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43 호/2013-04-10

  • 적자생존 NO!! 이제 낙(樂)자생존~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휘파람이 절로 나올 것 같은 흥겨운 노래, 가사에서처럼 벚꽃이 폴폴 휘날리는 분홍빛 거리,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4월의 동물원은 사랑스러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하지만 태연이는 그 속에서 유일하게 무척이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태연아, 왜 그래? 동물원 가자고 그렇게 조르더니. 무슨 일 있어?”

“아빠, 작년 말 미국 갤럽이 전 세계 14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감 설문에서 한국이 97위를 기록했다는 사실 아세요? OECD 국가 중에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된지는 이미 오래고, 이제는 통계가 잡히는 나라 가운데서도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돼 버렸죠.”

아빠는 태연의 말에 깜짝 놀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폭력, 왕따가 아이들을 자살로 내몬다는 뉴스가 나오는 세상 아닌가!

“무슨 일 있어? 혹시 하루 종일 조증 걸린 사람처럼 헤헤 웃고 다닌다고 애들이 왕따 시키냐? 그러게 적당히 좀 웃으라고 했잖아!”

“그게 아니라, 배고파요! 그것도 베리 어~엄청!! 아빠는 ‘동물원 나들이도 식후경’이란 얘기도 못 들어보신 거예욧?”

“그럼 너의 극단적인 우울함이 단지 배가 고파서였단 말이냐? 넌 어쩌면 그리도 단순하고, 말초적이며, 본능에만 충실한 것이냐.”

“저만 그런 건 아니거든요? 저 우리 안에 있는 원숭이, 낙타, 이구아나, 구렁이도 모두 먹을 거 하나만 생각하고 살잖아요!”

“세상에, 별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 같은 얘기를 다 들어보는 구나. 동물은 먹을 것만 생각하지 않아. 감정이 아주 풍부하다고. 예전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특권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동물학, 뇌 과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동물의 의식과 감정에 관한 연구가 활발한데다 PET, MRI 같은 뇌 영상 기술 덕분에 동물의 뇌도 인간처럼 희로애락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알아냈단다. 다시 말해서 표현방법이 다를 뿐 동물 역시 감정을 느낀다는 거야. 실제로 기니피그의 어미와 새끼를 떼어놓을 때 이들이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뇌 부위는 사람이 슬픔을 경험하는 뇌 부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는 실험결과도 있단다.”

“정말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그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심지어 조너선 밸컴이라는 저명한 동물행동연구학자는 동물들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단다. 즐거움을 느끼려고 무척 애를 쓴다는 거야. 너도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애기는 들어봤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체계가 무너져 쉽게 병에 걸리지만, 반대로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 오피오이드(opioid)나 엔도르핀(endorphin) 같은 스트레스 감소 물질의 분비가 촉진돼 면역력이 강해지고 어지간한 병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게 되지. 동물들은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 즐거움을 느끼려고 노력한다는구나. 즐거움이야말로 진화와 생존을 위한 최고의 원동력이라는 거야.”

“와, 진짜 신기하다!!”

“저 앞에 있는 이구아나를 한 번 보자꾸나. 햇볕 있는 쪽으로 꼼짝도 않고 고개를 돌리고 있지? 이구아나 같은 변온동물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햇볕을 쪼여야 하는데, 저렇게 따뜻한 온기를 느끼면 기분까지 좋아진단다. 실제로 햇볕을 쬘 때 활성화 되는 뇌의 영역은 인간이 쾌감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영역과 거의 일치하지. 또 얼마 전 파우나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협회는 고양이가 만족스러워 할 때 보이는 그르렁거림에 무의식적인 치유 효과가 있어서, 부러진 뼈와 손상된 조직의 회복을 촉진한다는 놀라운 연구결과도 내놓았단다.”

이구아나가 햇볕 좋아하는 게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것이고, 그 덕분에 면역력이 좋아지고, 그러면 생존에 더 유리해지고…. 저 행동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흔히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만이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글이라고 생각하지. 수많은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강한 놈만 살아남는 동물의 세계를 봐 왔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야. 하지만 조너선 밸컴은 동물이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즉 면역력이 강한 신체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애와 이타심을 발휘하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한단다.”

“와~ 동물의 세계는 놀랍고도 신비해!!”

사람도 마찬가지야. 여자들에게 좋아하는 이성 타입을 물어보면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뇌의 입장에서 보면 유머감각이 뛰어난 남자가 보다 많이 즐거움을 느낄 것이고, 더 탄탄한 면역체계를 갖췄을 테니, 더 강한 녀석일 가능성도 높은 거야. 어쩌면 우리의 똑똑한 뇌가 더 강한 녀석을 배우자로 삼기 위해 웃긴 사람을 좋아하도록 일부러 조종하는 건지도 모르지. 아빠 생각에 태연이 넌, 아마 나중에 숙녀가 되면 어마어마하게 인기가 많을 거야.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뭐가 그리 재미난 지 웃고 있잖니. 네가 어지간하면 감기에도 걸리지 않는 게 다 웃음 덕분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그래서 아빠도 매일 웃고 계신 거였구나. 지난번에 엄마랑 엄청 싸우고 쫓겨나신 날도, 정말 환한 미소를 짓고 계셔서 참 신기했었어요. 밖은 영하 10도인데 그 추위 속에 벌벌 떨면서도 그렇게 맑은 미소를 짓고 계시다니, 그게 다 면역력을 강화해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셨군요?”

“무, 물론이지!!”

“근데 엄마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아빠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웃는 상이라서, 별명이 ‘고사상의 웃는 돼지’였다고 하시던데요? 초상집에 가서도 계속 웃고 계셔서 상주한테 주먹질을 당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시던데….”

“우하하하하~! 너의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들으니 또 다시 웃음이 나는구나. 오~ 콸콸콸 넘쳐나는 나의 엔도르핀이여!!”


관련서적: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 조너선 밸컴.
(ISBN : 9788972202172 (8972202177))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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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4-14 0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자생존'이라는 이름을 못붙여서 그렇지, 이거 정말 저의 평소 생각인데!! ^^
기계, 물질 문명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능력, 낙천적이고 긍정적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갈수록.

마노아 2013-04-14 16:11   좋아요 0 | URL
'적자생존'이라고 소리내어 말해 보면 꼭 루저가 된 기분이 드는데, '낙자생존'이라고 소리 내어 말해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걸요. 아자아자 낙자생존!!!
 

3월 28일 목요일, 창비에서 나온 인권만화 세번째 시리즈 '어깨동무' 북 토크에 다녀왔다.

 

 

한주 전에는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에 당첨되었는데 무려 다섯 명에게 물어보았지만 다들 일정이 맞지 않았고, 나도 직장 일이 겹쳐서 참석하지 못했다. 아쉬웠던 찰나, 한주 뒤에 어깨동무 북토크 당첨 소식에, 마찬가지로 앞서 친구들은 모두 힘들게 되었고 혼자라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주 탁월했던 것으로 입증되었다.^^

 

 

인문카페 창비를 찾기 위해서 지도를 출력해 갔다. 길치인 나로서는 늘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서교 호텔'을 묻는 어느 여자분, 미안하게도 내 지도에서 서교 호텔은 잘리고 없었다. 알고 보니 아주 가까웠는데 알려주지 못해서 살짝 미안한 마음. 카페 2층으로 안내받고 올라가보니 이런 풍경이 맞아준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 서재가 떠올랐다. 저 기다란 책장 위에 여백의 미를 갖고 꽂혀 있는 책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저녁 시간 주린 배를 잡고 부랴부랴 도착했을 사람들을 위한 센스있는 간식! 빵도 맛있고 커피도 맛나고, 그리고 오렌지 쥬스는 더더욱 맛나고!!(어디 제품인가요!!)

 

이어서 네분의 작가님이 들어오시고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유승하, 최규석, 김성희, 윤필 작가님이 참여해 주셨고 사회는 뒷풀이에 빠지는 바람에 떠안게 된 김성희 작가님이 맡게 되었다. 작품에 참여한 작가님이 사회를 보면서 자연스레 작가님들에게서 여러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게 분명 목적이었겠지만, 편집을 맡은 창비 직원분이 사회를 보았더라도 좋았을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세번째 책 어깨동무. 사실 나는 이 책이 네번째 시리즈인 줄 알았다. 사이시옷이 나오던 시점에서 같이 보게 된 '이어달리기'는 여성노동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똑같이 열 명의 만화가들이 참여하였고, 여성과 노동과 인권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주제 의식도 통했기 때문이다. 다시 보니 출판사도 다르고(길찾기), 기획 주체도 달랐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의 세번째는 엄연히 어깨동무였던 것이다.

 

네분 작가님 앞의 마이크가 앙증맞고 귀여웠다. 빨간 불이 들어오는데 뭔가 새싹이 돋는 그런 분위기? 유승하 작가님이 마이크에서 멀찍이 얘기하셔서 잘 안 들렸던 게 하나 흠이었을 뿐이다.

 

 

(왼쪽부터 최규석, 유승하, 윤필, 김성희 작가님)

 

전작을 전혀 읽어보지 못한 작가님은 이중에서 윤필 작가님 뿐이었다. 최규석 작가님 추천으로 합류하게 되었는데 원고료가 높아서 아주 깜놀했다는 후문! 그러자 여기저기서 자신도 놀랐다는 증언이 방언처럼 터진다. 최규석 작가는 사이시옷 때부터 참여했는데 당시 받은 고료가 무려 일반 원고료의 네배나 되었다고! 그러나 지금도 그때 그 고료라는 건 함정!

 

아무튼. 당시 유승하 작가님은 만화가들의 인권을 생각해서 책정한 금액이었는데 그게 만화계의 전설이 될 줄 몰랐다고 하셨다. 그림책 작가이셔서 당시 만화계의 고료 사정에는 어두우셨나보다. 그 덕에 원고료의 생수를 담뿍 부어주셨으니 고마운 일!

 

 

 

 

 

 

 

 

돌쟁이 선물로 적극 추천해 왔던 '아빠하고 나하고'의 작가님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정말 몰랐지~

 

김성희 작가님도 높은 원고료에 잔뜩 고무되어서 작업을 빨리 마치셨다고 했다. 원고료 빨리 받고 싶어서였다고...^^

 

각각의 작가님께 '인권이란?' 질문을 드렸다.

 

최규석 작가님의 답변이 관심을 끌었다. 숭고한 인권을 지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찌질한 인권 역시도 지켜져야 한다고. 그러면서 사이시옷에 실은 '창'이란 작품으로 설명해 주셨다. 이 작품은 군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여기에 어마어마한 민폐 캐릭터가 나온다. 이기적이고 아주 못된... 그런데 이런 성향의 인물일지라도 인권은 지켜져야 하는 게 마땅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무척 은유적으로 표현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고백하자면, 나도 그랬다. 도저히 그 캐릭터가 받은 대우가 부당하다고 느껴지질 않는 거였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런 인물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할 '인권'이 맞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그 찌질한 인물에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아주 백해무익한 어떤 인물을 대입시켜 본다면 여전히 수긍하는 게 참 쉽지가 않다. 머리와 가슴의 판단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런 시사점을 던져준 작가님이 참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그때 독자들의 몰이해에 부딪혔던 최규석 작가님은 이번 작품에서는 '직구'를 던졌다. 이번 작품에서 '맞아도 되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참여했는데, 역설적인 제목에서 이미 많은 것을 얘기한 것이다. 아주 쉽게,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사실적인 질감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담아냈다. 작품을 위해서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그것들을 작업에 반영시키지는 못했다고 했다. 재미가 없어도 주제가 명징하게 드러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고. 그렇다고 취재가 의미 없었던 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독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번 작품은 주제도 명확하게 드러났지만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최규석 작가님이 더 좋아졌다.^^

 

김성희 작가님은 인권이 사람에 관한 모든 문제라고 했고, 윤필 작가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권리라고 말했다. '개'에 관한 작품을 많이 쓰신 것 같은데, 그랬기에 사람이 아닌 존재에 대해서도 두루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다. 처음 작품을 만들었을 때는 다이애나 시점에서 얘기하는 빨강 머리 앤을 그렸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잔잔해서 퇴짜를 맞았다고..ㅜ.ㅜ 그리하여 마감 시간에 쫓겨 고민하던 와중에 일본에서 잦은 고독사로 인해 그 뒷처리를 해주는 업체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작업 시간은 4~5일 정도 걸렸고, 너무 급히 하는 바람에 컬러 그림까지는 못했다고 한다. 음, 고백하자면 배경 그림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그림에 좀 성의가 없다고 여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작품은 짧고도 굵직했다. 고독사 하니 언젠가 읽었던 데스 스위퍼가 생각난다.

 

더불어 장례사 이야기가 나온 영화 '굿바이'도. 우리나라에도 남일이 아닐 것이다. 초고령 사회에 맞추어 치매도 늘어나고 노후가 보장이 되지 않는 불안한 삶이 줄곧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ㅜ.ㅜ

 

유승하 작가님은 십시일반 작업할 때에는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막 생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금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그 시설물이 그때는 대단한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장애인의 인권을 보다 생각해주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시혜가 아니라 당연한 복지가 되어야 하는 부분인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였던가? 클론의 강원래 씨가 지하철에서 휠체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와중에 사인 요청을 받고 거절한 것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사과'를 앞세웠지만 그 생각없는 팬심에 대해 둘러서 지적한 것이 아닐까.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의미이겠지만, 그 기구가 움직일 때 나오는 노래도 신경쓰인다. 그 위에 올라선 채로 그 노래가 끝날 때를 기다리는 시간이 참 길 것 같다.

 

최규석 작가님은 어떤 부분에서 인권감수성이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예인 스캔들 기사에는 이니셜로 표기하는 게 당연했는데 언젠가부터 기소 여부와 상관 없이 본명을 바로 쓰고 있다고. 사실 그렇게 묻지마 까발림 기사로 애먼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다. 한명숙 전 대표가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른다. 좀 더 올라가서 바보 대통령도 한 분...

 

유승하 작가님은 탈모로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만화 속에서 나쁜 놈은 '대머리'로 표현되곤 했던 관행에 대해서 지적했다. 하긴, 예전에 조춘 씨였던가? 쌍라이트로 활동하시면서 그런 캐릭터를 컨셉으로 삼았던 것도 같다. 만화 속에서도 그런 편이고... 유작가님은 '대머리'란 말도 쓰지 않고 '탈모인'이란 표현을 쓰셨다. 탈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아주 절절하게 느껴졌다...

 

십시일반, 사이시옷, 어깨동무까지... 인권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쏟고 보태라는 기획으로 만들어졌는데, 사실 이런 책이 만들어질 필요도 없고, 더 이상 읽혀질 필요가 없어질만큼 인권이 제자리를 찾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 세상을 우리는 꿈꾼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쉽게 오지도 않지만 빨리 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걸 만들어내는 게 인간인 이상. 그래서 떠오른 생각 하나. '인권' 과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국영수만 배울 게 아니라 인권도 배우고 노동도 배우고 정직한 소비도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정작 중요한 것은 배우지 않은 채, 모르는 것도 모르는 채 겉껍데기만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는 조바심이 든다.

 

얼마 전 중학교 어느 교실에서 학급문고로 비치해 둔 책중에 '십시일반'을 보았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 읽으라고 본인의 책을 갖다 놓으신 건데, 그밖에도 강풀 작가의 여러 시리즈와 '맨발의 겐'도 있었고, 여러 쉬우면서도 의미있는 책들이 가득했다. 그 바람에 그 반 담임선생님께 잔뜩 호감을 가졌다는 걸 고백한다. (그렇지만 그분은 여자...;;;)

 

서로 마이크를 앞다투어 잡는 분들이 아니었기에 토크 시간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대신 이 자리에 참여한 분들이 질문을 많이 해주셔서 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었다. '습지생태보고서'를 쓴 최규석 작가님께, 어떤 여자분이 자신이 이 작품을 습지생태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읽었다고 했을 때는 온 청중이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하하핫, 그런 재밌는 우연이!

 

 

 

 

 

 

 

 

 

공룡 둘리에 대한 과제가 있어서 나오게 된 작품이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였다고... 오, 이렇게 극적인 전환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웠다. 역시 작가들은 남다른 상상력을 가진 게 분명하다. 존경스럽다. 최작가님은 노동문제를 다룬 만화를 연재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것도 네이버에! 그렇다면 '다음'에 연재하는 게 낫지 않냐는 어느 청중의 질문에도 모두가 빵빵~

 

 

사인해 주시는 작가님들. 최규석 작가님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실물이 더 근사했다. 영화 포스터 하나 더 찍으세욧!

(영화 '두개의 문' 포스터 주인공인데 너무 가리고 나와서 아무도 먼저 알아보지 못했을 거라고, 사인 받으며 우리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평소에 작가님들 사인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지만, 이번엔 만화가분들이 자리했으니 그림 사인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놓칠 수가 없었다. 재빠르게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작가님들이 그리신 작품의 앞 페이지를 열고 기다렸다.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그림들이다. 최규석 작가님의 저 사인은 무척 익숙하다. 이미 받은 것도 있고~

 

위에 그림이 잘려 있는 건 내 실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하핫....

 

 

긴 책장 맞은 편에는 창비의 책들이 놓여 있고, 그 뒤로 주방이 있다. 인문카페 창비에 행사 아닐 때에도 가서 커피 마셔도 되는 걸까? 살짝 궁금...

 

사실 이날은 목요일이었고, 업무가 많았던 한주라서 무척 피곤했던 날이었다. 같이 갈 사람도 없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는데, 이 자리에 참여하지 않으면 무척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은 내가 조금 기특했다. 좋은 시간을 나누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또 깊이 생각할 거리들을 잔뜩 안고 갈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인권에 마침표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니까 우리는 물음표를 가지고 더 많은 느낌표를 찾아가면서 인권 여행을 떠나 보자. 우리가 합승해야 할 많은 친구들이 이곳에 있다.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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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과 나의 어깨에 함께 매달린 인권
    from 그대가, 그대를 2013-04-14 00:17 
    국가 인권위원회 기획 세번째 책 어깨동무. 십시일반과 사이시옷을 무척 인상 깊게 읽었고, 그 무렵에 나온 이어달리기가 세번째 시리즈라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이어달리기'는 여성 노동에 대해서 다룬 책으로 맥락은 서로 통하기는 했다. 어쨌든 그리하여 만난 인권 시리즈 세번째 책 '어깨동무'도 전작들처럼 무척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첫 작품 십시일반이 2003년도 출간이니 어느새 십년 세월이 흘렀다. 세번째 출간이다 보니 지나치게 무거웠던 앞의 작품들에
 
 
마노아 2013-04-1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쓰고 보니 최규석 작가님 얘기만 많이 적었네. 나의 편애를 이해해 주시라...ㅎㅎㅎ

아무개 2013-04-12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하는 강연회 두세번 갔었는데 좀 실망스러워서 이번 북콘서트는 아예 신청할 생각도 안했는데
왠지 배가 아픕니다....힝

마노아 2013-04-12 22:57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작가님과 좋아하는 책과 관련된 북토크여서 만족스러웠나봐요. 많이 가보지 못했지만 저는 대체로 좋았거든요. 예전에 강풀 작가님 때도 정말 좋았구요.^^ 하하핫...

순오기 2013-04-1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규석 작가님만 보여요~ ㅋㅋ
익숙한 사인에도 머리칼이 덧씌워졌군요.^^

마노아 2013-04-13 12:17   좋아요 0 | URL
이게 편애모드라 쓰고 보니 최규석 작가님 얘기만 듣고 온 기분인 거 있죠. 사진도 어쩔 수 없이 편애모드..ㅎㅎㅎ
 

  

감기는 약을 먹어도 낫는데 7일, 먹지 않아도 낫는데 7일 걸린다는 말이 있다. 콧물, 코막힘, 기침 등 증상도 다양하고 증상을 치료한다기 보다는 완화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감기약의 효과를 최대로 보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고 먹어야 한다. 우선 감기 기운이 있다고 미리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콧물을 멈추게 하는 항히스타민 성분은 졸음과 현기증, 입안이 마르는 증상을 유발하고, 가래를 없애주는 코데인 성분은 장기 복용 시 중독 위험이 있다. 때문에 감기 증상이 있을 때만 약을 골라 먹는 것이 중요하다.

또 감기약을 커피나 녹차, 에너지 음료 등과 함께 먹는 것은 위험하다. 감기약에도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어있기 때문에 함께 먹으면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고, 소화장애를 일으켜 위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대부분의 감기약은 식후 30분을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해열제나 소염제가 들어있는 감기약은 위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꼭 식후에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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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불안한 이유, 빛으로 찾아내다   FOCUS 과학

제 1839 호/2013-04-08

인간이 불안한 이유, 빛으로 찾아내다

애플의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단추가 달린 옷을 잘 입지 않았다. 공식석상에 나타났던 그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단추가 달린 옷차림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그는 버튼이 수십 개나 되는 현대식 리모컨이 아니라 6개만 달린 구식 리모컨을 고집할 정도로 단추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가 만들어낸 혁신적인 스마트폰인 ‘아이폰’에도 단추가 전혀 없다.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이에 대해 미국의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티브 잡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시장성이 아니라 바로 휴대폰에서 단추를 없애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잡스는 왜 그처럼 단추를 싫어했을까? 전문가들은 그가 ‘단추공포증’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한다. 단추공포증이란 말 그대로 단추에 대해 공포심을 느껴 높은 강도의 두려움과 불쾌감에 시달리면서 그 조건을 회피하려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는 공포증은 발작과 같은 다양한 증상을 동반하면서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발전한다. 자신이 느끼는 공포가 불합리하고 그 공포가 자신에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발작 외에도 숨이 가빠지거나 오한, 발열, 경련, 어지러움, 구역질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불안은 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다. 불안을 느껴야 위험을 감지하므로 생존본능을 가진 동물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다. 약육강식의 야생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불안감을 유지하고 있어야 천적이 나타났을 때 민첩하게 도망가거나 싸울 태세를 갖출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인 스트레스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 자신의 약점인 불안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불안이 너무 지나쳐 개인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거나 사회적 활동에 지장을 주면 장애가 된다. 스스로 제어하기 힘들 만큼 불안한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불안장애’라고 진단한다.

특정 상황에서 갑자기 극심한 불안과 함께 심장이 조이고 공황 발작이 되풀이되는 ‘공황장애’가 대표적인 불안장애다. 또 반복적으로 특정 행동을 하는 ‘강박장애’와 끔찍한 사고 후 불안해지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공포증’, 모든 것이 불안한 ‘범불안장애’ 등도 모두 불안장애에 속한다.

2005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정신장애의 39.4%를 불안장애 환자가 차지했다. 불안장애 환자들은 심한 스트레스로 대부분 두통, 복통, 흉통 등 각종 신체 증상을 나타내는데, 이를 다른 질환으로 오해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의료쇼핑족’이 되기도 한다. 또한 환자의 1/3의 정도는 우울증으로 시달린다.

이렇듯 심각하지만 불안장애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다. 불안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생기는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부 김성연 박사과정 연구원과 칼 다이서로스 교수가 불안을 느낄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밝혀냈다.

연구진은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불안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진 ‘분계선조침대핵(BNST)’이 계란처럼 타원핵과 바깥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타원핵을 자극할 경우 불안해지지만 바깥 부분을 자극하면 불안감이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즉, 이 두 부위의 균형이 불안 정도를 결정하는 셈이다.

또한 연구진은 타원핵 바깥 부분에서 BNST의 명령을 수행하는 부분이 뇌의 시상하부나 간뇌 등과 연결되는 3곳의 신경회로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곳을 자극하면 쥐가 용감해지거나 호흡이 느려지는 등 불안 반응을 보인 것이다. 연구진은 이 연구결과가 앞으로 부작용 없이 불안장애를 치료하는 약물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뇌에서 불안이 어떻게 조절하는지 규명한 이번 연구결과는 ‘광유전학’이라는 최신 바이오기술을 이용해 이루어졌다. 광유전학이란 말 그대로 빛을 이용하는데 유전공학 기술을 접목했다는 뜻이다.

빛을 이용해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절할 경우 기존의 전기 자극을 이용해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것보다 더욱 정밀하게 신경세포의 활성을 통제할 수 있다. 전기 자극이 불특정 다수의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것에 반해 광유전학 기술은 목표로 하는 특정세포를 정확하게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유전학은 빛을 받으면 채널이 열리고 빛이 없으면 채널이 안 열리는 녹조류의 채널로돕신이라는 단백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기술이다. 유전공학 기술로 바이러스를 활용해 이 단백질을 유전자의 형태로 신경세포에 주입하면 바이러스가 세포 속으로 들어가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밀어 넣게 된다.

광유전학을 이용한 연구는 이미 꾸준히 진행돼 왔다. 2012년 11월 기초과학연구원(IBS) 신희섭 단장팀은 광유전학 기술을 활용해 수면방추가 수면 장애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최초로 입증했다. 2013년 1월에는 이화여대 전상범 교수를 비롯한 국제공동연구팀이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신경회로의 특정 신경전달 경로를 기록할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파킨슨병, 헌팅턴병, 무도병 등 다양한 퇴행성 신경질환의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이렇듯 광유전학 기술은 불안장애뿐 아니라 수면장애, 파킨슨병 등의 치료제 개발에도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글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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