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1894 호/2013-06-24

 

기억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만일 살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한 조각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저장된다면 어떨까. 한번 본 것이 사진 찍듯 머릿속에 저장된다면 어떨까.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당신은 머릿속이 온통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예요. 그건 평생 과거라는 철창 속에 갇혀 사는 거라고요." - 소설 ‘궁극의 아이’ 中 앨리스의 대사

과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증상을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ia)이라 한다. 이 증후군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며 종종 드라마, 문학 속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해 왔다. 장용민의 소설 ‘궁극의 아이’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고 있다. 일명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인 앨리스는 일곱 살 이후 벌어진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한다. 몇 백만 명 중 한 명이 생길까 말까 한 희귀한 증세지만, 실제로 전 세계에 수십 명이 이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서프라이즈’라는 TV 프로그램에서는 실제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이들이 등장한 적이 있다. 한 외국 여성은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 일들이 마치 일상을 녹화해 놓은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며, 사소한 일에 예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자가 직업인 한 남성은 자신이 인터뷰한 내용뿐 아니라 며칠 전 편집장이 회의에서 한 말도, 몇 년 전 의사가 한 말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10년 전의 의미 없는 사건도 사진처럼 생생히 저장돼 현재와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기억이 다가 아니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수준의 기억만 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기쁨은 물론 슬픔, 좌절, 분노, 고통 등)도 똑같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흔히 과거가 좋은 이유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기쁨이건, 슬픔이건, 아픔이건 공평하게 모두 지나간다. 이러한 ‘망각’의 행운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은 과연 일반인과 뇌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내게 과거는 상영 중인 영화 같아요. 멈출 수도, 통제할 수도 없어요.” - AJ

2006년, 뇌과학 분야의 학술지인 ‘뉴로케이스’에는 공식적으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판정을 처음 받은 여성의 사례가 등장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신경생물학과의 제임스 맥거프 박사가 주도한 이 연구에서 AJ라는 가명의 여성은 11세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거의 빠짐없이 기억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후에 밝혀진 여자의 본명은 질 프라이스. 맥거프 박사에게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기 전까지 그녀는 35년 동안 자신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에 대해 가족에게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각종 검사 결과 질 프라이스의 기억 능력은 자서전적인 기억에 치중돼 있었다. 학습 영역으로 볼 수 있는 암기력에는 취약했으며 기타 인지능력은 평범했다. 맥거프 박사팀은 일화기억의 인출을 담당하는 좌우 대뇌피질의 특정영역이 일반인과 다른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후 후속연구에서 그녀의 뇌 영상을 촬영한 결과, 대뇌구조의 24개 영역이 일반인에 비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은 오래된 과거의 기억을 뇌의 우전두엽에만 저장하지만 과잉기억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우전두엽과 좌전두엽에 모두 저장한다. 물론 이것이 과잉기억증후군의 모든 이유로 볼 수는 없다. 밝혀지지 않은 의문들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이런 초인적인 기억력을 나타내는 증상으로 서번트 증후군도 있다. 이는 자폐증상을 가진 사람 중 극히 일부에서 나타나는 증후군으로 암기능력이나 음악, 미술 등 특정 분야에서 놀라운 기억력을 발휘한다. 영화 ‘굿윌헌팅’, ‘레인맨’ 등에는 이 증후군을 앓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특히 레인맨의 실제 모델이었던 천재 킴 픽은 1만 2,000여 권의 책을 암기한다고 알려졌다. 영국의 화가 테판 윌트샤이어는 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놀라운 기억력을 이용해 도시와 건축물의 모습을 정밀하게 그려낸다.

세계 명 지휘자 ‘로린 마젤’도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악보를 한번 보고 기억했으며 교향곡을 통째로 외우는 천재소년이었다. 이런 기억력을 포토그래픽 메모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눈으로 본 것을 마치 사진 찍듯 머릿속에 저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억력은 일종의 암기력으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과는 차이가 있다. 질 프라이스를 비롯해 과잉기억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 학습의 영역과 기억의 영역은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암기력은 훈련을 통해 어느 수준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기억을 ‘뉴런 사이의 일정한 연결 패턴이 저장된 것’이라고 정의한다. 뉴런은 신경계를 이루는 기본적인 단위세포를 말한다. 인간의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있고, 각각의 뉴런은 5,000~1만 개의 시냅스를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보통 성인의 뇌에는 총 500~1,000조의 시냅스가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미국 의회도서관 장서 15~30배 정도를 저장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우리가 과거의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이 방대한 네트워크의 연결 패턴에 변화가 일어난다. 시냅스는 더 견고해지기도, 더 약해지기도 하며 아예 새롭게 형성되기도 한다. 이 정교하고 신비로운 과정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들로 가득하다. 기억과 망각의 세계, 이를 밝히기 위한 과학자들의 도전이 계속되는 이유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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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4 19: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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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5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5 0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5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13-06-24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스마트폰의 패턴 잠금.해제 모양이 떠올라버렸습니다.
저는 상상력이 좀 과한 편인데요, 상상에 빠졌을 때는 뇌의 시냅스가 어떤 모양인지 궁금하네요.(웃음)

마노아 2013-06-25 00:25   좋아요 0 | URL
아마 그 순간에 엘신님의 뇌는 반짝반짝 마구 불이 들어올 것만 같은 걸요.
그 순간의 무늬는 어쩐지 세포를 확대한 것처럼 무척 예쁘게 보일 것 같아요.^^
 

   FOCUS 과학

제 1889 호/2013-06-17

[FUTURE]미래의 에너지, 절약과 효율이 대세!

 

2013년 KISTI의 과학향기에서는 올 한 해 동안 매월 1편씩 [FUTURE]라는 주제로 미래기술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칼럼에서 언급된 미래기술은 KISTI에서 발간한 <미래기술백서 2013>의 자료를 토대로 실제 개발 중이며 10년 이내에 실현 가능한 미래기술들을 선정한 것입니다.
미래기술이 상용화 된 10년 이후 우리의 생활이 어떨지, 또 이 기술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이야기로 꾸며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2023년 6월 17일. 봄이 잠시 머무르나 싶더니 연일 섭씨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유월을 점령해 버렸다. 새내기 신입사원 김새경 씨는 가장 먼저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전 인식장치로 사무실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조명도 알아서 켜지더니 친근한 안내음이 들린다.

“실내 온도를 몇 도로 유지할까요?”
“오늘 하루 26도 유지하면 좋겠지.”
“네, 알겠습니다.”

이제 가정은 물론 사무실과 공장에선 지능형 에너지 관리시스템 기술¹⁾이 활용돼 쾌적한 실내 환경 유지는 물론 에너지 소비도 자동으로 최적화되고 있다. 하루 중 출퇴근 시 온도와 가장 더운 온도를 파악해 냉방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으며 기적으로는 계절별 온도 조절도 가능하다. 그리고 직원들이 가장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곤한 시간을 파악해 알아서 공기청정도 해준다. 빅데이터와 스마트 기능이 결합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무실과 공장에 전면적으로 이런 시스템을 설치한 것은 에너지 절약과 효율을 위해서다. 에너지가 부족한 곳이 없도록 에너지 공급에 만반의 준비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원칙이지만 이산화탄소 배출 등의 문제로 발전소를 무한정 지을 수는 없는 게 고민거리다. 그래서 정부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현실적으로 발전소를 계속 짓는 것이 더 이상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11년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2013년에 국내에서 일어난 원전 비리 사건이 문제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 세계에 원자력 발전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됐다. 사실 원자력 발전은 화석 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지구온난화가 심화돼 가고 국제유가의 불안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관리를 잘못했을 경우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는 것을 목격했다. 원자력 발전이야 말로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절대 안전의 영역이다.

그런데 2013년 국내에서 이러한 원전 안전성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일부 원자력 관계자와 납품 업체들이 야합해 수년 동안 불량 부품을 납품하고 또 부품에 대한 시험 성적서를 위조하는 등 구조적인 비리가 발각됐다. 그로 인해 원전이 무더기로 가동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러 그해 전력수급에 큰 차질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발 빠른 수사와 관련자 전원을 처벌해 이후 원전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었지만 하마터면 작은 구멍이 큰 둑을 허물 듯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의 원전 건설은 국민들의 합의가 어려워 진행이 어렵게 된 것이다.

에너지의 수급이 한정되자 초점은 에너지 절약과 효율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들도 최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적은 에너지로 큰 효율을 낼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먼저 가정에서는 에너지제로하우스 건축 기술²⁾이 도입됐다. 이 기술로 인해 자연에너지만으로 난방, 급탕, 취사 및 각종 전기에너지원을 자체적으로 충당하는 주택이 만들어지고 전면적으로 보급됐다. 우리나라는 아파트의 거주 비중이 높기 때문에 아파트를 재건축하거나 리모델링할 때 이 기술을 엄격히 적용해 에너지의 절약과 효율을 극대화했다. 이로 인해 가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제로로 줄일 수 있었으며 주택관리비를 많이 줄여 가계에 도움이 되고 있다.

퇴근하기가 무섭게 김새경 씨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다이어트와 몸매 관리를 위해 에어로빅을 등록했는데 7시까지 학원에 도착해야 한다. 어? 그런데 세경 씨가 장만한 차는 청정 경유차도 아니고 수소연료차도 아니고 전기자동차도 아닌 색다른 스타일. 다연료(Multi-fuel)엔진 기술³⁾로 만든 신개념의 자동차. 하나의 엔진 시스템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의 연료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한마디로 연료 융합형 자동차다.

2023년이 됐지만 자동차는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청정디젤차 등 어느 한 기술로 천하 통일되지 못했다. 어느 한쪽으로 통일되는 순간 관련 에너지 공급에 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로 모든 자동차가 재편됐을 때 연료 충전을 위해 너도나도 플러그를 꽂는다면 전력 대란이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다연료(Multi-fuel) 엔진 자동차는 현실적으로 에너지를 가장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대안이 되고 있다.

퇴근시간 차가 밀리는 바람에 에어로빅 학원에 조금 늦게 도착한 새경 씨는 헐레벌떡 옷을 갈아입고 에어로빅실로 들어갔지만 이미 음악소리에 맞춰 격렬한 에어로빅이 진행되고 있었다. 몸에 붙어있는 살이라는 살은 모두 빼겠다는 기세로 몸을 흔들어대는 수강생들.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몸짓과 에너지 낭비처럼 보이지만 이 학원은 에어로빅을 하면서 생기는 열, 진동, 소음 등을 전기에너지로 재생산하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⁴⁾을 활용해 모든 전기를 자체 충당하고 있다. 쿵쾅거리는 격렬한 에어로빅의 운동에너지는 에너지 하베스팅 소자 기술로 특수 설치된 바닥에 그대로 흡수돼 전기에너지로 변환되고 있다. 이렇게 아껴진 관리비로 이 에어로빅 학원은 수강생들에게 훨씬 저렴한 수강료를 받고 있다. 도랑 치고 가제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2023년 미래의 에너지의 키워드는 ‘절약과 효율’이다. 모든 사무실이나 집, 공장, 자동차도 허투루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 계단에서도 에너지를 모은다. 그래서 꼭 필요한 만큼만 에너지를 생산하니 더 이상의 발전소를 세울 필요가 없어 상대적으로 설치에 필요한 비용도 감소되고 그만큼 위험도 감소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새경 씨는 조건 좋고 능력 많은 남자보다 연봉은 많지 않지만 돈을 아낄 줄 알고 효율적으로 쓸 줄 아는 남자한테 더 눈길이 간다. 그런 남자가 훨씬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 : 정영훈 과학칼럼니스트

[각주-미래 기술]
1) 건물, 공장 등의 지능형 에너지 관리시스템 기술(BEMS, 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 : 실내 환경과 에너지 성능을 최적화하기 위한 건물관리시스템. 에너지의 소비량과 장비나 시스템의 운전상태 등을 모니터링한 후 적절한 평가를 거쳐 다양한 에너지 소비량 분석, 비효율적인 장비 및 시스템의 파악, 최적의 자동제어시스템 구축 등 궁극적으로 쾌적한 실내 환경을 조성하면서 에너지 소비는 최소화 시키는 시스템. 3~4년 후 기술 실현 예정.

2) 에너지 제로하우스 건축 기술 :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너지만을 이용해 난방, 급탕, 취사 및 각종 에너지원을 자체적으로 충당하는 주택. 2020년을 목표로 주택 유지비가 현저히 낮출 수 있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적인 에너지 제로하우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 7~8년 후 기술 실현 예정.

3) 다연료(Multi-fuel) 엔진 기술 : 하나의 엔진 시스템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의 연료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엔진. 다연료 엔진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관건은 각 연료에 맞는 엔진 변화를 최적화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뿐만 아니라 내구성, 편의성 측면에서 전혀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 이미 다연료 엔진 기술을 사용한 제품들이 출시돼 있으며 최적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질 전망. 3~4년 후 기술 실현 예정.

4) 버려지는 열, 진동, 소음 등을 전기에너지로 재생산하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 : 자연의 빛에너지, 인간 신체 또는 연소형 엔진으로부터의 저온 폐열에너지, 휴대용 기기 탑재/부착장치의 미세 진동에너지, 인간의 신체활동으로 인한 소산에너지 등을 흡수해 에너지 하베스팅 소자 기술을 통해 전기에너지로 변환, 전자기기의 전력으로 사용하는 환경에너지 재생형 에너지원. 1~2년 후 기술 실현 예정.

참고 : <KISTI 미래백서 2013>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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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주일 전에 친구가 시집을 갔다. 내가 신부 들러리였고 부케도 받기로 했다. 결혼 소식은 3월 말에 들었고, 그 사이사이 우린 몇 차례 만났다. 친구의 신랑을 소개 받은 것은 결혼식 2주 전이었는데 둘 다 청첩장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이메일로 보낼래? 했더니 우편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말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도착하질 않아서 연락을 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친구가 빌려간 불의 검 애장판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워낙 거리도 멀고 무겁기도 하니 택배로 부치고 청첩장도 끼어서 보내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친구는 이미 우편으로 청첩장을 보냈다고 했다.

 

"책을 결혼식장으로 들고 가면 좀 그렇지? "

 

 

 

 

 

 

 

 

아니, 장난하나. 거리도 멀고(한 시간 반!) 분명 높은 굽 신고 갈 것이고, 결혼식 당일 정신 머리로 그걸 어떻게 챙기나. 택배로 부치라고 했다. 편의점에 가서 부쳐도 좋고. 비싸지 않냐고 걱정한다. 많이 비싸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알았다고 했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친구네 집 근처에 볼 일을 만들어도 될 것 같아서 약속을 잡을까 했는데 선약이 있다고 했다. 만나면 그냥 내 배낭에 책을 담아올 생각이었는데 한참 바쁠 때이니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내게 보낼 청첩장만 엄마가 실수로 안 보내셨다고, 다음 날(수요일) 다시 보내겠다고 했다. 알았다고 했는데 수요일 저녁 편의점에서 전화를 한 것이다. 택배 보내려면 포장은 자기가 해야 하냐고. 아니, 얘가 계속 장난하나....;;;;;  네가 포장해야 한다고 하니 상자가 마땅치 않다고 한다. 그래서 내일 오전에 우체국으로 가라고 했다. 아니면 금요일까지 청첩장 도착 못 한다고. 책은 나중에 보내도 되지만 청첩장은 결혼식 전에 보내야 한다고. 그랬더니 너무 정신 없어서 그랬다고 우는 소리를 하더니 다음날 보내겠다고 했다.

 

2. 금요일이 되어 고민을 했다. 지난 번 머리를 파마하지 못하고 자르기만 했더니 영 상태가 안 좋았다. 아침에 미용실에 가서 드라이를 하고 가자니 식장이 멀어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우리 동네는 모두 10시나 되어야 문을 여는 것이다. 식은 1시였지만 들러리답게 두 시간은 일찍 가줘야 되지 싶어서. 그래 친구는 식장에 몇 시에 도착하나 물어보려고 통화를 했다. 예의 청첩장도 물어보았는데 어제(목요일) 보냈다고 한다. 책은 부내지 않고 청첩만 보냈다고. 어떤 걸로 보냈냐고 물었다. 내 생각에 빠른 등기로 부쳐야 금요일에 올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모른다고 한다. 왜 몰라? 그랬더니 정신 없어서 모르겠다고. 그럼 가격 기억나냐고 물었다. 대략 천몇 백원 나오면 빠른 등기겠거니 싶어서. 근데 가격도 모른다고 했다. 아니 얘가 정말...(ㅡㅡ;;;;)

 

하여간, 그렇게 청첩장은 받지 못하고 토요일이 되어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식장 근처 미용실을 들어갔는데 드라이 비용이 25,000원. 미용실 가서 드라이 받은 게 처음이라서 그렇게 비싼 줄 몰랐다. 우리 동네는 15,000원인데..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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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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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더운데 그냥 확 올려버리고 갔다 올 걸 그랬나. 물론 결혼식장은 아주아주, 동태가 될 정도로 추웠지만.

 

 

손톱 관리 받은 건 작년 초에 이어 두번째인데, 하루도 안 되어서 손톱이 부서졌다. 흑...;;;;

 

결혼식장에 도착해서는 둘 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생각보다 준비가 오래 걸리지 않았나보다. 친구가 따로 웨딩 촬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카랑 핸드폰 최고 화질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여기서 내 이름은 제2 카메라.ㅎㅎㅎ

 

 

3. 결혼식 마치고 식사하는 도중에 언니한테 문자가 왔다. 우체국 택배가 왔는데 아주 무겁다고. 아핫! 책을 같이 보냈구나. 근데 책 안 보냈다고 말한 걸 보니 이 친구가 보낸 게 아니구나 싶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빠가 보내셨다고. 근데 이날도 청첩장은 같이 오지 않았다. 청첩장은 결혼식 마치고 사흘 뒤인 화요일에 도착했다. 270원짜리 우표를 달고서.

 

하.하.하... 버럭! 난 이게 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청첩장은 기본 아닌가? 청첩장을 잊고 온 2주 전부터 청첩장을 보낼 기회는 아주 많이 있었다. 당연히 바빴겠지만 그래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수년 전에 고등학교 때 절친이 결혼할 때도 비슷했다. 결혼 날짜 잡고 나서 신랑이랑 같이 한번 보자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계속 바쁘다고 미루더니 끝내 보지 못하고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그래서 청첩장을 우편으로 보내겠다고 문자를 보낸 것이다. 그때 좀 빈정 상했더랬다. 얼굴 못 보고 부르니 미안하게 됐다며 전화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문자 하나 띡 보내면서 주소를 묻는 게 역시 성의가 없어 보였다.

 

둘째 언니는 늘 청첩장 보내지 않으면 결혼식도 안 가겠다 주의였다. 그런 말을 듣고 지내서 나도 청첩장에 예민하게 구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친한 친구였던 만큼 섭섭하다. 친구는 이제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것이다. 찍어둔 사진이 워낙 많아서 폴더 하나를 통째로 만들었다. 이메일로 보내줘야지.

 

4. 며칠 전에는 부채를 사러 인사동에 갔다. 작년에도 접는 부채를 하나 샀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쁜 부채 고를 마음에 첫번째 가게부터 들러보았다. 매장 바깥쪽 상자 안에 여러 부채가 있었다. 하나를 펴보니 색은 있지만 그림이 없는 무지였다. 하나를 더 펴보니 역시 색만 다른 무지였다. 기왕이면 무늬도 있고 글자도 있는 걸 고르고 싶어서 다른 크기의 부채를 펴봤다. 그러자 매장 안에 있던 사장님이 나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만지는 것 다 살 거예요?"

 

읭? 누가 만지는 걸 다 사나? 만지면 무르는 과일을 주무른 것도 아니고! 그러더니 나더러 놀러 왔냐고 묻는다. 읭?? 부채 사러 왔다고 하니 찾는 디자인을 말하란다. 자기가 골라 주겠다고. 아니 이 무슨 그지 같은 경우가 다 있지? 언짢아서 나와버리니 뒷통수에 대고 욕을 한다. 되돌아가 따지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냥 돌아온 게 영 찝찝했다.

 

5.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학교에 화장실만 전담해서 청소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 혼자서 그많은 화장실을 담당하시려니 많이 힘드실 것이다. 이분이 내가 3월에 처음 학교 갔을 때 이틀 연속으로 화장실 쓰고 나면 물 꼭 내리라는 당부를 한 적이 있다. 당연히 물 내리고 나왔고 늘 뒷처리 신경 쓰면서 살펴보고 나오는 편이다. 처음 보는 얼굴이어서 당부를 한 것인지, 아니면 누가 쓰고 물을 안 내린 걸 내가 그랬다고 착각을 하신 것인지, 하여간 이틀 연속으로 그리 말씀하셔서 좀 불편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헌데 일주일 전에는 나더러 강사비 얼마 받냐, 일주일에 수업은 몇 시간이나 하냐며 꼬치꼬치 물으신다. 역시 불편했지만 그냥 대답해 드렸다. 궁금하실 수도 있지... 그런데 이날은 화장실 쓰고 나오는데 나더러 화장실 문을 꼭 닫으라고 하신다. 난 이게 좀 납득이 안 갔다.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두고 안쪽 화장실 문은 열려 있는 게 낫지 않나? 그래야 안에 사람 있는지 없는지도 파악이 되고 환기도 잘 될 것이고. 근데 이분은 늘 바깥쪽 문을 열어두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화장실 안쪽이 보이게 만들어둔다. 그러던 분이 안쪽 화장실 문은 꼭 닫으라고, 손 씻는 동안 무려 세번이나 연달아 얘기하는 것이다. 아씨, 대체 왜 이러나! 마가 끼었나. 다들 나한테 왜 이래??? 버럭! 하고 싶었지만 역시 못 하고....;;;; 안쪽 화장실에 어제부터 휴지 없다고 휴지 끼워달란 얘기만 하고 나왔다. 그래놓고 또 어쩐지 미안해져서 신경 쓰이고... 바부팅이.

 

6. 4월부터 시작한 수영장을 열심히 다니고 있다. 여전히 잘 못하지만 그래도 한달에 열 번은 가려고 한다. 생리다 뭐다 해서 몇 차례는 빠지기 마련이지만 되도록 안 빠지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수영장에 다녀와서 가방을 정리하다 보니 수영복과 샤워 타울, 그리고 수영모자를 짤순이 속에 두고 온 걸 알아차렸다. 아하하핫....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야...ㅜ.ㅜ

결국 다음 날 아쿠아를 가시는 엄니가 카운터에 부탁해 놓은 것을 찾아다 주셨다. 민망하오...

 

7. 작년 일한 것에 대한 연말 정산을 3주 전(너무 늦잖아!!)에 받았다. 당시 사용하던 급여 통장은 이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때 돈이 들어오면서 문자로 입금 알림 메시지를 받았다. 그 사용료 20원을 내라고 어제 은행 쪽에서 문자가 왔다. 아, 그랬었지... 하며 20원을 이체했더니 다시금 20원 입금 됐다는 문자가 왔다. 아뿔싸! 다음 달에 알림 서비스 1건에 대한 20원 보내라고 또 문자가 오겠다. 완전 바보. 20원 보내고 그 사용료로 또 20원 낸다...;;;; 은행 들어가서 문자 알림 서비스를 해지했다.

 

8. 올해부턴 기간제 교사도 성과금을 준다고 해서 부푼 마음을 안고 작년에 일한 학교로 전화를 걸었더니 자기네는 해당이 없다고 한다. 교육청 관할이 아니라 학력인정학교여서 그렇다고. 교장 재량이라고. 이런 우라질! 완전 헛물 켰다. 속상해..ㅜ.ㅜ

 

9. 딱 일주일 전에 컴퓨터가 고장 났다. 부팅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루 기다려봤는데 안전모드로도 접속이 되질 않아서 결국 컴을 밀어냈다. 원래 쓰던 운영 체제 그대로 쓰고 있는데 그 후로 '페이지에 문제가 있습니다'라면서 브라우저 충돌 메시지가 계속 뜬다. 출석 체크해서 받는 포인트도 분명 받았는데 적립이 되어 있질 않고, 알라딘에서는 다들 보인다는 '목차'가 보이질 않고 어제는 입금 통보 알림 서비스 해지하러 은행 사이트 들어갔는데 메뉴도 안 보이는 것이다. 여러모로 난감하다. 익스플로러 7 쓰는데 xp라서 윗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도 안 된다. 일주일 만에 다시 밀어야 할 것 같다. 형부 나 좀 도와줘요...ㅡ.ㅜ

 

10. 요새 일본 잡지 무크지에 홀려버렸다. 당연히 일본 말은 모르고, 잡지는 원래 안 좋아하는데, 부록으로 주는 가방이 탐이 나서였다.

 

 

 

 

 

 

 

 

급 흥분해서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뭘 지를 것인가 마구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언니가 싸늘한 한마디를 던져 주었다.

 

"부록은 부록일 뿐이야."

 

아, 그렇구나. 이성을 찾아야지. 일단 지금 눈독을 들인 건 맨 앞의 두 개다. 쿠폰 할인을 받으려면 같이 주문을 해야되지만, 왠지 그러면 후회할 것 같아 고민하고 있다. 일단 상태를 봐야 계속 주문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겠다. 피츠제럴드 에코백도 마구마구 땡겼는데 하나 있는 100자평이 제동을 걸었다. 사뒀는데 마치 신발주머니 같은 분위기 아닐까? 고민 고민 중... 피츠제럴드 이름만 예뻐~ 검은색은 너무 더워보일까나?

 

마지막의 츄츄는 다현양에게 어떨까 생각 중이다. 근데 요새 만원짜리 가방도 편하게 들고 다닐 만한데 무크지 부록들은 대체로 2만원 선이라서 역시 고민스럽다. 실물을 보거나 후기라도 보이면 참고가 될 텐데 그게 없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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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3-06-0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크지 부록은 책이 부록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ㅎ

마노아 2013-06-08 16:28   좋아요 0 | URL
오, 이것도 명언이군요. 책이 부록이라니! 사실 책은 아웃 오브 안중이었어요. 저한테는 그냥 광고지죠.ㅎㅎ

BRINY 2013-06-0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스포삭 무크지 부록들은 거의 괜찮지 않나요? 전 해마다 사는 편이에요. 올해는 백인백에 도시락용 런치박스(사실은 조금 떨어진 대형마트에서 생치즈를 사올 때 담아오려고)까지 샀어요.

마노아 2013-06-09 01:33   좋아요 0 | URL
레스포삭 훌륭하지요. 브라이니님 산 그 백인백을 저도 사서 언니 선물했는데 잘 쓰고 있어요. 이번에 고민을 했는데 백인백은 있으니 패스했어요. 사실 인터에서 50% 할인해서 8천원대에 판매한다는 소식 듣고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이미 품절됐더라구요. 하하하, 이번엔 검은색으로 구입하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다락방 2013-06-0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속상합니다 속상해요.
마노아님은 실물이 훨씬 더 예뻐요 진짜. 물론 사진에서도 마노아님의 장점이 잘 드러나긴 하지만 사진은 마노아님의 미모를 많이 죽이는것 같아요. 사진 밑에 설명 좀 써놔요. 실물은 이것보다 이백배쯤 더 예쁨, 이렇게요.

마노아 2013-06-09 17:03   좋아요 0 | URL
내 사진은 다락방님이 찍어줄 때 가장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우리 조만간 봐요.
프로필 사진 바꿔야겠어요. 다락방님을 만나지 못하니 프로필 사진이 모두 남의 사진이에요. ㅋㅋㅋ

hnine 2013-06-09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까 사진 봤지요 ^^ 좀 비싸더라도, 앞으로 중요한 자리에는 드라이 하고 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주 예뻤거든요.
수영장 한달에 열번 가기가 더 힘들지 않나요? 전 매일 안빠지고 가든지, 아니면 쭉, 그냥 결석해버리는 타입이라서요. 이렇게 극과 극이랍니다 ㅠㅠ

마노아 2013-06-09 23:02   좋아요 0 | URL
헤헷, 미용실 다녀온 티가 났나요? 다행이에요.^^
제가 다니는 강좌는 월수금 주 3회반이에요. 한달 내내 풀로 가더라도 12, 13회 정도? 보통 공휴일이 한차례씩은 끼더라구요. 예전에 친구는 월수금과 화목반을 같이 등록해서 일주일 내내 다녔다던데 확실히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고 하네요. 저는 영 늘지를 않아요.^^;;;;
 

   FOCUS 과학

제 1879 호/2013-06-03

대기 중 CO₂ 농도 400ppm, 지구 온도에 빨간불!

1958년 3월, 313ppm.
2013년 5월, 400ppm.


미국 하와이 마우나 로아(Mauna Loa) 관측소에서 최초로, 그리고 가장 최근에 측정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농도다. 이 기록은 55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기 중 CO₂ 농도가 무려 87ppm이나 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지구 온도는 높아졌고 이상기후 현상도 많아졌다.

여기서 더 중요하게 살펴야 할 부분은 가장 최근 기록인 ‘400ppm’이다. 지난 2007년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가 제시한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IPCC는 지구 온도를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2도 이상 높이지 않으려면 대기 중 CO₂ 농도가 400ppm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야 그나마 지금의 지구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세계 각지에서 측정한 CO₂ 농도가 400ppm을 넘긴 데다 마우나 로아 관측소 기록까지 이 선을 넘어버렸다. 2013년 5월 9일에는 400.03ppm으로 발표됐고, 가장 최근 측정값인 5월 27일치는 400.27ppm이었다. 지구 온도가 섭씨 2도 이상 높아질 수 있다는 빨간색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55년 간 살펴본 지구 상태 진단서, ‘킬링 곡선’

마우나 로아 관측소의 기록이 특히 중요한 경고가 되는 까닭은 ‘킬링 곡선(Keeling Curve)’에 있다. 이 그래프는 1958년부터 마우나 로아 관측소에서 측정한 대기 중 CO₂ 농도의 추세를 나타내는데, 매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1950년대 말에는 연간 0.7ppm 꼴로 높아지다가, 최근 10여 년 동안에는 매년 2.1ppm씩 높아지고 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등 인간의 활동이 많아지면서 CO₂ 농도가 급격히 늘어나고 지구 온도도 높아지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지구 상태의 진단서’인 셈이다.


[그림] 미국 하와이의 마우나 로아 관측소에서 대기 중 CO₂농도를 측정한 값을 그래프로 나타낸 킬링 곡선. 1958년 3월 313ppm이었던 CO₂농도는 2013년 5월 27일 400.27ppm으로 측정됐다. 출처 : 미국 Scripps 해양과학연구소.

이런 귀한 자료가 만들어지게 된 건 1958년 당시 서른 살이었던 젊은 화학자 찰스 데이비드 킬링(Charles David Keeling) 박사 덕분이다. 그가 맨 처음 마우나 로아 화산 중턱 해발 3,397m에 세워진 관측소에서 수집한 공기를 분석해 대기 중 CO₂ 농도를 밝혀냈기 때문이다.

처음 1년 동안 측정한 CO₂ 농도는 평형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식물의 광합성 등의 영향으로 대기 중 CO₂ 농도가 높아졌다 낮아지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자 CO₂ 농도가 확실히 늘어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2005년 77세로 죽을 때까지 이 작업을 지속했으며, 이후에는 그의 아들이 이 일을 계속하며 지구 상태를 꾸준히 살피고 있다.

결국 마우나 로아 관측소에서 CO₂ 농도가 400ppm을 기록했다는 점은 중요한 경고다. 이런 속도로 CO₂ 농도가 늘어난다면 곧 450ppm도 넘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지구 온도도 섭씨 2도 높아져 생태계에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여유 온도는 0.65도, 마지막 시간 벌었나?

지구 생태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기 위해 IPCC에서 제시한 지구온난화의 기준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2도 이상 높아지지 않는 것’ 이다. 현재 여기까지 남은 여유는 섭씨 0.65도에 불과하다.

이미 지구 온도가 섭씨 0.75도 높아졌고, 앞으로도 섭씨 0.6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섭씨 0.6도 상승은 2005년 국립기상연구소의 기후변화모델로 온실가스와 에어로졸 농도를 고정시키고 미래를 전망한 결과 나온 값이다. 그러니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남은 여유는 섭씨 0.65도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소식은 지구온난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는 연구결과다. 영국 옥스퍼드대 환경변화연구소(Environmental Change Institute)와 미국 항공우주국(NASA) 등이 포함된 국제공동연구진은 지구 온도가 높아지는 게 생각보다 느리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2013년 5월 19일자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실었다.

2007년 IPCC는 지구온난화에 따라 히말라야 빙하가 오는 2035년까지 완전히 녹아 없어질 수 있고, 지구 온도가 단기간에 섭씨 1~3도 높아질 거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그 상승폭이 섭씨 0.9~2.0도 정도일 것으로 예상돼 최대 섭씨 1도 차이가 났다. 또 향후 수 십 년간 전 세계 평균 기온은 예상치의 약 20% 정도만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연구진은 그 이유를 최근 바다가 대기 중의 열 흡수를 크게 늘린 데서 찾고 있다. 지난 10년 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열을 흡수해 대기 중 CO₂ 농도가 400ppm을 돌파하는 와중에도 지구온난화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바다가 열을 흡수하는 일을 멈추게 되면 대기의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지구온난화를 경계하는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 규모가 늘어나면 지구 온도가 섭씨 2도 이상 높아지는 건 여전히 시간문제일 수 있다. 결국 약간의 여유는 생겼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덜 할 이유는 없다는 이야기다.

이미 400ppm이라는 위험한 지점을 넘어서고 말았지만 아직 완전히 늦지는 않았다. 지구와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을 맞을 수 있도록 오늘부터 지구 살리기에 동참하는 건 어떨까.

반세기 세월을 하와이 화산 위에서 묵묵히 CO₂ 농도를 측정한 킬링 박사가 꿈꾼 건 어쩌면 매번 꼬물꼬물 올라가는 킬링 곡선의 기울기가 조금이라도 누그러지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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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6-03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 식민지 계획에 관련된 다큐를 본 기억이 나는데요.

목성인가 토성의 위성이 인류가 살기 가장 적당하다고 하면서 단지 위성의 대기 온도가
너무 차갑다라는 언급을 하더군요.

그런데 워낙 행성 열 올리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인류가 대기 온도만 조그만 올려도
그 위성이 제 2의 인류 거주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란 말 듣고 참 민망해졌답니다.ㅋㅋㅋ

마노아 2013-06-03 14:47   좋아요 0 | URL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으로 어디서든 살아남을 것 같은 인류네요.
목성으로 가면 워낙 커서 땅싸움은 좀 줄어들까요? 거기서도 누군가는 땅 투기를 할 것 같네요....;;;;;;;
어느 세대부터는 '아름다운 지구'라는 단어를 자료로만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다큐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 보면서요.
이 엄청난 만행들을 인류는 어떻게 갚아야 할지, 참 갑갑하네요.
 

한 해의 절반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믿고 싶지 않다. 크흑....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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