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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 2009-05-25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바 선생님의 책 <몽골의 초원>이군요.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거두 중 한 분이신 몽양 선생도 당시의 몽골을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행기를 남기셨지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네요. http://haksodo.com/news-124-1 그런데 정말 가수 이승환 씨인가요? ^^;

2011-08-19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몽골에 돌아왔다.

4개월 만이다.

국회의원 선거에 따른 시위로 5사람이나 죽었고, 통행금지령이 내렸다고 한다.

칭기스 칸 국제공항을 향하던 비행기는 기상관계로 공항 상공을 30분이나 방황한 후에 지상에 착륙했다. 그래도 지상에 발을 디디니 약간 쌀쌀하게 느껴질 정도로 낮은 기온에 상쾌한 느낌이 든다.

 


7월 초에 도착하여 돌아본 울란바타르는 여전히 분주할 뿐이다. 불과 며칠 전에 격렬한 소요가 있었던 것은 시내 한복판의 수흐바타르 광장 옆에있는 인민혁명당사의 불에 타 그을린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그 주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조차 그 건물에 눈길을 주지 않는 듯이 보였다.

 


오랜 만에 시내를 벗어나 장기 여행을 잡았다. 몽골의 북동쪽에 있는 헨티(Khentii) 지방으로의 여행이다. 헨티지방은 칭기스 칸의 고향이자, 그가 나라를 일으킨 성지이다. 이번 여행은 가는 데만 약 530km에 달하는 거리라서, 전체 일정은 3박 4일로 잡았다. 특히 이번 여행에는 동창인 이승규 선생이 동참하였고, 한국에서 독수리를 비롯한 자연보호에 앞장서고 계시면서, 이곳 몽골에서도 들꽃과 독수리를 연구하고 계시는 한국자연정보연구원의 노영대 원장님이 바쁘신 일정을 맞춰주셔서 아주 든든한 원군이 되었다.

 

통역과 기사를 포함하여 총 5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일행은 7월 18일 금요일 아침에 울란바타르를 출발하였다. 이번 일정 중에서도 첫날은 동북쪽의 러시아 국경지대 근처의 빈데르라는 마을까지 400km를 하루에 움직여야 되어서 특히 걱정이 되는 일정이었다. 울란바타르를 벗어난 일본산 랜드크루저는 잘 포장된 길을 달려서 약 2시간 만에 130km 떨어진 바가노르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터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는데, 그 동안 계속해서 내린 비 때문에 물이 불어서 도로 사정이 특히 좋지 않았다. 첫 번째 목적지인 호흐 노르(Khokh Nuur)까지는 바가노르에서 불과 85km인데 3시간 반이 걸려서 도착하였다.

검은 호수라는 뜻의 호흐 노르는 1206년에 테무진이 칭기스 칸으로 즉위한 곳이다. 이 해를 기념하여 2006년에 몽골에서는 건국 800주년 기념행사를 크게 거행하였으니, 실질적으로 몽골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인 셈이다. 하지만 몽골의 대부분의 유적지가 그렇듯이 최근에 세운 기념물 외에는 특별한 유적이 없다. 물빛이 검은 호수는 800년의 역사가 흐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 경치를 담아내고 있다.

 

즉위식 때에는 10만 군사가 집결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하나, 지금은 무는 파리가 극성이어서 사진 몇장만 겨우 찍고는 근처의 식당 겸 매점으로 대피할 수 밖에 없었다. 이곳의 파리는 노원장님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등에(쇠파리)에 해당되는 것으로, 사람도 물어서 피를 빨아 먹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뜨거운 물과 컵라면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부근에 있는 발단 바레븐 히드(Baldan Baraivan Khiid)라는 사원으로 향했다. 1700년에 처음 건립된 이 사원은 한 때 승려가 5,000명이 넘고 몽골의 3대 사원 중의 하나로 꼽혔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고, 안내인이 1인당 1,000원의 입장료를 받으면서 주변을 안내하고 있다. 

처음 안내 받은 곳이 예전에 많은 승려가 거주할 때 음식을 만들던 곳이라고 한다. 아마도 커다란 방만한 곳에 솥이 얹혀 있어서 많은 사람의 식사를 한꺼번에 만들었을 텐데, 솥을 걸었던 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울란바타르 근처에 있는 만치르 사원에는 솥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는 그것마저 없어진 모양이었다. 겨우 남아 있는 건물도 내부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산 위에 남아 있는 몇 개의 불상들 또한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5시 반에 사원을 출발하여 약 30분을 가지 않아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2개의 사슴무늬가 그려진 돌이 있었다. 이곳에는 여러 기의 무덤이 흩어져 있었고,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커보이는 무덤에는 사슴무늬를 조각한 돌로 장식을 하여 놓은 듯이 보였다.


오늘의 목적지는 빈데르(Binder)라는 곳으로 이곳에 있는 관광캠프에서 1박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저녁 7시 반 쯤 되어서 빈데르에 가까운 곳에서 우리 찝차의 바퀴가 펑크나고 말았다. 바퀴를 교체하느라 시간을 보내는데, 설상가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요즘 몽골의 날씨가 변하여 수시로 비가 내리는데, 덕분에 주변의 산야가 온통 녹색으로 덮힌 것은 좋았지만, 기후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겨우 바퀴를 교체하고, 다시 길을 잡았는데 벌써 날이 어둡기 시작하였다. 9시가 넘은 깜깜한 시간에 겨우 빈데르 마을에 도착하였고, 우리의 캠프를 찾아 들어가니 벌써 밤 10시 반이 되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지만, 내일을 위하여 소주로 건배를 하고 취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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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있는 집] 몽골 음식점 <몬소>

 

양갈비 구이 '허르헉', 담백함이 일품

 


 
최근 몇 년 사이 몽골 여행과 무역 등 양국간의 관계가 확대되기는 했지만 우리에게 몽골은 여전히 낯선 곳이고 음식은 더욱 그렇다. 요즘 붐을 타고 있는 동남아시아 레스토랑처럼 쉽게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나라 자체도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몽골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양고기를 즐겨 먹어 특유의 냄새와 함께 느끼할 것이라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몽골 음식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거부감이 들 정도로 먼 나라 음식이 아니라는 얘기다. 밥을 주식으로 하되 모든 양고기 요리는 소고기로 대체할 수 있고, 향신료를 쓰지 않아 독특한 향이 전혀 나지 않기 때문. 또한 만두처럼 만드는 방법이나 맛이 거의 똑같은 음식도 있다.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부근에 자리한 몬소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몽골 음식 전문점이다. 주인을 비롯해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본토 출신이다. 한국어를 공부하던 에르덴밧(Erdenebat) 사장이 지금의 부인을 만나면서 서울에 정착하게 된 것. 음식점을 낸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는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둘째는 몽골 음식을 알리고 싶었던 것. 지금은 많은 몽골인들이 향수를 달래거나 한국어를 공부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 외에도 재한 몽골인들의 편의와 정착을 돕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몬소는 몽골(MONGOL)과 한국(SOLONGOS)을 의미하는 몽골어의 앞 글자만 따서 주인이 직접 지었다.
 
건강식으로 몽골인들이 즐겨 먹는 ‘허르헉’은 양갈비 구이다. 만드는 방법은 몽골 전통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까맣고 동그란 돌과 양고기를 압력솥에서 찌면 돌이 지방을 흡수해 고기 맛이 담백하고 깔끔해져 맛도 그만, 건강에도 유익한 음식이 된다. 양념을 최소화해 재료 맛을 느끼게 하는데 충실했다. 음식이 나올 때도 돌이 같이 나와 밥을 먹기 전에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소갈비와 양갈비구이와 밥, 야채가 기본으로 제공되는 메뉴가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다. ‘보즈’는 우리네 왕만두랑 거의 똑같아 친근감이 느껴진다. 만두소로 소고기, 양고기 모두 쓸 수 있다. ‘슐’은 국종류를 의미하는데, 고기를 기본으로 갖가지 야채가 들어가 그 자체만으로 한 끼 식사가 된다.
 
모든 주요리와 함께 제공되는 양배추 샐러드나 피클은 우리 입에 잘 맞는다. 재료는 쉽게 구할 수 없어 에르덴밧 사장이 한달에 한번 정도 몽골에 가 직접 공수해 온다고. 그래서 가게 안에는 몽골산 보드카나 과자, 껌, 신문이나 잡지 등이 준비되어 있다.
 
손님들 중 상당수가 몽골인이지만 요즘은 몽골 여행을 앞두고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들도 종종 찾는다. 다행히 에르덴밧 사장의 한국어 솜씨가 수준급이라 의사소통엔 큰 무리가 없다. 음식을 먹기 위해 찾았어도 그가 들려주는 몽골 이야기 또한 재미있다. 또한 주말이나 생일,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몽골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므로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전화 연락 후 찾아가는 것이 좋다.

* 메뉴 : 허르헉(4인 기본) 20,000원, 샤샴 허르헉 8,000원, 보즈 6,000원, 하르 슐(소고기) 6,000원, 호쇼르(호떡처럼 생긴 튀김 만두) 6,000원, 몽골 보드카 20,000원~50,000원 선.
* 찾아가는 길 : 7호선 어린이대공원 역 4번 출구, 파리바게트 옆 건물 1층. 02-2205-2015 www.mons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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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몽골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책도 찾아보고 다큐도 찾아보고 있었죠. 아무래도 최근 것을 먼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몽 합작 '하늘의 땅 몽골'1부부터 4부까지를 먼저 보았습니다. 국내엔 개봉하지 않은 영화 '몽골'(2007)도 비슷한 때에 보았는데 다큐 쪽이 훨씬 재밌더라구요^^

 

몽골 공부하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랑 유사한 것들이 참 많더라구요. 몹시 신기했어요. 사실 생김새도 엄청 닮았잖아요. 그래서 한민족의 '시원'이란 얘기가 곧잘 나오나봐요.

 

다큐는 1부 초원의 전설 토올,

          2부 자연과 인간의 매개자, 버

          3부 아름다운 동행 야탁과 가야금

          4부 바다흐 가족의 외출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좀 지루한 편이었는데 4부로 갈수록 점점 더 재밌어졌어요. 






토올은 꼭 우리나라 판소리 하는 사람과 비슷했는데, 영웅서사가라고 하면 될까요? 전통 악기를 연주하면서 문서 없이 구전되어 온 설화/신화 등의 이야기를 연주하고 또 노래하는 거예요. 그것을 하는 사람들을 토올치라고 부르구요. 너무 길어서 며칠을 불러야 끝이 나기도 한답니다. 우리나라도 판소리 한마당 전부 다 들으려면 엄청 오래 걸리잖아요.(사실 들어본 적이 없네요ㅠ.ㅠ)

사회주의 시절에는 핍박을 많이 받았고 악기도 빼앗기고 막 그랬는데, 그럼에도 면면히 그 전통을 이어왔대요. 대를 이어서 가르치기도 하고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기도 하구요. 몽골 사람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는 음유시인이랄까요.

 

2부는 샤머니즘을 다뤘어요. 지금도 몽골에서는 샤머니즘이 굉장히 강력해서 무당이 많다고 하네요. 남자 무당을 버라고 하고 여자 무당을 오트강이라고 합니다.

몽골인들은 90%가 라마 불교를 믿지만 사람들 마음 속엔 이 샤머니즘이 생활의 일부로서 자리하고 있대요.

스님 역시도 성직자라기보다 마음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자'로 자리했구요. 

 



 

역시 사회주의 시절에 핍박받았던 샤머니즘. 그래서 많은 버들이 주술 도구를 빼앗기기도 하고 직업을 바꾸기도 했대요. 그럼에도 당연히 그 맥은 이어져왔구요.

워낙에 넓은 땅 몽골이지만 인구 밀도가 작고 의료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으니 더더욱 주술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한 듯합니다.

외과적 수술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마음을 다스려서 위로해 주고 걱정을 덜어주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한의 기후와 험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온 몽골인들인지라 우리나라에서 느껴지는 '샤머니즘'에 대한 통속과 달리 몹시 자연스런 조합인 듯해요. 그러니까 '미신'이라기 보다 '소통'에 가까운 어떤 것이요.

 

3부는 음악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일단 귀가 즐거웠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야금은 12줄인데, 몽골의 야탁은 13줄이에요. 둘은 굉장히 흡사하게 생겼어요. 가야금은 바닥에 앉아서 뜯지만 야탁은 의자에 앉아서 바닥에 기울여 세운 채 뜯더라구요. 소리는, 가야금은 좀 더 낮고 중후한 맛도 나고 깊이가 있다면, 야탁은 좀 더 높고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을 주더군요.

 

현대 가야금은 현이 18개, 22개, 25개까지도 있고, 야탁도 21현 짜리가 있으니 더더욱 둘은 닮은 꼴이에요.

놀랍게도, 몽골 연주가가 '아리랑'과 '도라지'를 연주하는 겁니다. 가사까지 넣어서요!

알고 보았더니 그들의 스승 김종암 선생님이 북한 사람이었어요. 

 



가야금 교사였던 그가 1961년부터 1967년까지 몽골에서 가야금을 지도한 겁니다.

역시나 사회주의 시기에 '전통'을 배제하던 분위기에서 야탁 역시 위기를 맞았지만 그래도 잘 살아남은 게지요.

 

몽골의 대표 악기 마두금은 남성 연주자들이 많이 쓰는데, 야탁은 주로 여자 연주자들이 한답니다. 현 위에서 춤추는 그 손가락들은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몽골의 야탁 연주자가 한국에서 가야금을 배우기 위해서 열심히 한국말을 공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꿈이 있기에 더 아름다운 노력이었지요.

 

4부는 현대 몽골의 유목민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었어요. 전통적으로 유목만이 생존의 방법이었는데, 이제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유목 이외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죠.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몽골 역시 '교육'에 올인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양을 팔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대학 공부를 시키려고 하죠. 그런데 모든 자식을 다 그렇게 키우기는 힘들어서 공부 잘하는 누군가는 대학을 나와서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일을 하고 다른 자식들은 유목 생활을 하며 뒷바라지를 하는, 그런 모습들이 보이네요. 마치 우리가 예전에 소팔아서 자식 대학 보내고 장남이 공부할 때 그 아래 동생들이 희생했던 모습을 보는 듯해요.(물론 요새는 소팔아서는 대학 공부를 시킬 수가 없지만...;;;;)

 









 

초등 6년에 중등3년까지가 의무교육입니다. 아이들을 도시에 보내어 공부를 시키는데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해요. 그게 안쓰러울 땐 조부모가 근처에 게르를 짓고 아이를 돌봅니다. 초원에서 넓게 살던 노인들이 손주들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모습이지요.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기숙사를 떠나 유목 생활로 잠시 돌아가구요. 

 

 

몽골에도 한류 열풍. 배우들이 좀 많이 젊었을 때 사진들이군요^^

 





기숙사에서 생활하다가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 "그냥 울어요......"

 




울란바토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호텔에서 근무하는 큰 딸

 



 

큰 딸이 사준 휴대폰. 울란바토르에 도착해야 사용이 가능해진다.

 
 






백화점에서 동생의 화장품을 사주고 난 뒤. 

 


선명한 화질의 LCD TV에 놀라고, 그 가격에 더 놀라고!

 


 

바다흐 가족 중 아버지와 둘째 딸과 아들 하나가 울란바토르에 있는 큰 딸의 직장으로 방문을 합니다. 양을 팔아서 여비를 마련했지요.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호텔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사실, 둘째 딸은 늘 찬바람 맞으며 초원 생활을 한 터라 솔직히 얼굴에서 좀 촌티가 흘렀습니다. 근데 큰 딸은 대단히 도시적이더라구요. 소니 디카를 들고 가족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서 그 격차에 잠시 아찔하기도 했구요. 몽골이 지금은 전통을 등지지 않고 현대화의 물결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본주의의 특성상 양극화 현상으로 몹시 힘들어질 날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요. 사실 우리도 그랬으니까요.

 









둘째 딸도 도시에 나가서 살고 싶지만 물어보면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해 보여요. 

 





선진국민이 되려면 컴퓨터 교육이 필수라며, 2006년에 컴퓨터 수업을 개설하고 2008년엔 인터넷 도입 예정이라고 했어요. (작년에 촬영했더라구요. 방송은 올 봄.) 지금쯤 몽골 아이들도 학교 수업에서 인터넷을 쓰고 있겠네요.

 

과거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몽골 땅. 유목과 정착이 공존해 가는 몽골 땅. 참 신선하고도 애틋한 느낌으로 시청했어요.

아직 자본의 때가 그리 많이 묻어있지 않기에 좀 더 오래오래 그 모습이 남아있었으면 싶고, 그러나 또 도시 생활 외에는 모르는 나로서는 저 아이들이 좀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면 싶기도 하구요. 결국 그 모든 것은 제 일방적인 기준이지만 말입니다.

 

태고의 땅 몽골도 있던데, 그것도 차차 감상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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